그 28 「췌몽상」
보름달이 뜨는 오늘 밤, 하쿠레이 신사에서 전대미문의 대연회가 거행되고 있다는 것은, 환상향의 인간이고 요괴고 할 거 없이 장안의 화제였다.
──어떤 연회가 펼쳐지고 있을까?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서로마다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사람이 인육을 먹고, 요괴가 동족의 피를 핥는,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진 않을까.
이름만 연회지, 환상향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이 밀담을 나누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오니」라는 전설의 요괴와 함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란의 연회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비참가자들의 처참하고 음습한 상상과는 달리, 하쿠레이 신사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회는 밝은 활력으로 물들어 있었다.
술을 마신다.
음식을 먹는다.
모두가, 지금 이 때를 즐기고 있다.
「넌 꽤 조용히 술을 마시는군」
레이무는 자작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혼자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옆에 잇달아 찾아오는 객들이 눌러 앉아 있었다.
처음은 레밀리아, 그 다음엔 유카리, 그리고 바로 전엔 접시를 거두는 김에 사쿠야가 새로운 요리를 가져왔다.
서로 한 잔 씩 나누며 약간이지만 대화도 나눴다.
그 사쿠야가 가버린 지금, 자리를 바꾸듯이 레이무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유우기였다.
「너는……」
「유우기다. 호시구마 유우기」
술병과 거대한 잔을 양손에 따로따로 들고, 연회장 여기저기를 쏘다니던 유우기가 레이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이무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지 마. 딴데로 가서 다른 상대를 찾아보지 그래」
「상당히 직설적인걸, 마음에 들었어」
유우기는 호쾌하게 웃었다.
눈앞의 젊은 인간에게서 기묘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아까부터 이따금 살펴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모습에서 묘하게 고독함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숙한 의식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눈길을 끄는 무언가가 레이무에게서 엿보였다.
본인이 딱히 바란 것도 아닌데 항상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하던 건, 그런 독특한 분위기의 탓일지도 모른다.
유우기는 전부터 레이무에게 갖고 있던 흥미가, 더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레이무라고 불러도 괜찮나? 나는 유우기라고 불러라」
「마음대로 해」
「너한테는, 옛날부터 흥미가 있었지」
「어머니한테서 무슨 말이라도 들었어?」
「그래」
레이무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본 유우기는 자신이 들고 온 술을 그녀의 잔에 따랐다.
그 행동에 너무나도 거리낌이 없었기에, 레이무는 당연한 것처럼 그 술을 받았다.
「넌, 머지않아 나를 퇴치할 인간이라던걸」
「……뭐야 그게, 어머니가 그런 말도 했어?」
「그래. 네 어머니에게 잔뜩 맞아서 진 다음에, 들었지」
「난 이유 없이 요괴를 퇴치하진 않아」
「즉, 이유가 있으면 퇴치를 한다는 말이로군」
「그야 당연하지」
「그것이 오니여도 말이냐」
「뭐가 됐든 변하지 않아」
레이무는 유우기의 눈빛을 곧게 맞받아치며, 단언했다.
「좋은 여자인걸, 넌. 더 마음에 들었어」
자신을 쏘아보는 시선에서 레이무의 가슴속에 깃든 사상이나 신념을 깨달은 것일까.
유우기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웃었다.
──잘 웃는 녀석이네.
레이무는 처음으로 본 오니라는 존재에 그런 감상을 품었다.
잊혀져버린 요괴.
지저에서의 오니퇴치를 서술한 신문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그 어머니와 사투를 펼쳐 중상을 입힐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요괴라는 것은 실감하고 있었다.
걱정까지 하진 않았지만, 경계심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경위는 어찌됐건 간에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힌 상대를 향한 적의와 함께.
멍하니 상상만 하던 레이무의 앞에 나타난 그 오니는, 생각지도 못한 인상을 주는 상대였다.
확실히 강해보였다. 큰 체격과 강렬한 존재감, 강대하면서도 거친 면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밝은 성격이 특출나게 보였다.
그런 인상을 가진 이유가, 이 흐트러지지 않는 웃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오니란건, 이렇게 잘 웃는 요괴인가──.
「너는……특이한 녀석이네」
「그래?」
「퇴치한다고 듣고선 너처럼 웃는 요괴는 처음이야」
레이무는 솔직하게 말했다.
즐긴다──그것이 이 호시구마 유우기라는 요괴의 가장 큰 특징인 듯 했다.
이 인요가 뒤섞인 연회 속에서, 눈앞의 오니는 남보다 더욱 즐기고, 누구보다도 크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니는, 그런 요괴거든」
유우기는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그 뒤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대답이다.
오니라는 종족을 더 이상 파고드는 것이 귀찮아진 레이무는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자신을 납득시키고, 잔에 따라진 술을 들이켰다.
그 담백한 반응 또한 유우기가 즐겁다는 듯 바라본다.
「너는, 즐겁지 않은 거냐?」
「그렇진 않아. 요리도 술도, 이제까지 먹은 것들 중에서 제일 맛있어」
「하지만 술은 남들보다 훨씬 조용히 마시던걸. 친한 녀석이 없어보이지도 않던데,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마시고 있어. 남이 옆에 있을 때도 반드시 말을 끝낸 다음에 마시더군」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야」
「술을 잘 못하는 건가?」
「아니, 꽤 마시는 편이라고 생각해. 맛있기도 하고」
「그럼, 왜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질 않지? 유쾌해진다던가, 마음이 풀린다던가……취하는 걸 즐길 생각은 없어?」
「그러네. 나한테는, 술이란 「그런 게」 아니라는 인상이 있거든」
레이무는 또 한 모금,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
그 행동은, 유우기의 말대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엄숙한 의식과도 같았다.
「──싸운 뒤엔, 술로 증오를 내쫓는다」
툭하니, 레이무가 말을 흘렸다.
그 단 한 마디에 유우기의 눈빛에는 강한 흥미가 깃들었다.
「호오?」
「어머니가, 술을 마실 때 했던 말이야」
「선대가, 말이냐」
「내가 처음으로 술이라는 걸 안 건, 어머니가 마시는 걸 봤을 때였어」
「확실히, 선대도 술은 마시지만. 그렇게 기꺼이 마시는 것 같진 않던걸」
「술을 좋아하는지 어떨지는 나도 몰라. 그렇지만, 어머니는 반드시 술을 마실 때가 있었어. 항상 요괴퇴치를 하고 돌아온 날 밤마다 말이야」
중얼거림과 함께, 어릴 적의 기억을 선명히 떠올린다.
어머니의 모습은, 아무리 옛날의 기억이어도 퇴색하지 않는다.
레이무의 머릿속엔, 신사에 모셔진 술병에서 단 한 잔만 술을 따르고, 그걸 조용히 마시는 어머니의 엄숙한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이 뭔지를 묻고, 의문을 품었을 때, 어머니는 방금 그 말을 했었다.
「싸운 뒤에 남은 탁한 증오를, 술을 마심으로서 피에서 내쫓는다……고」
「……과연」
마치 선대에게 직접 들은 것처럼, 유우기는 그 말에 감동하고 있었다.
「지금이든 옛날이든, 딱딱한 여자인걸」
「어머니는, 술에 취하지 않으셨어.
그 모습이 강하게 남아서 나도 자연스레 따라하게 된 거야. 닮았지만 어울리진 않긴 해도」
「아니, 그렇지 않아. 네 술에 대한 자세가 제대로 느껴졌거든」
「어떨까나? 나는, 어머니만큼 요괴를 퇴치하는데 감개를 품지 않는다고 생각해」
「──」
「그런 인간일지도」
그런 무덤덤한 말투 속에 숨겨진 일말의 외로움을, 유우기는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선대와 레이무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모녀지간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두 사람이 진짜 모녀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외모나 행동, 힘──그 둘이 모녀라고 납득할 수 있는 증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우기는 누구보다도 레이무 자신이 양모와 양녀라는 관계에 경계선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고서, 더욱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소녀에게 흥미를 가졌다.
──정말 뜻밖에도, 귀여운 면도 있지 않은가.
레이무의 속내를 헤아리고 거북함을 가지긴 커녕, 오히려 유쾌해했다.
「재미있는걸, 넌」
웃으면서 말하는 유우기에게 레이무는 기막히다는 눈빛을 보냈다.
「지금 그 이야기의 뭐가 재밌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니, 뭐. 내 멋대로 느낀 감상이야. 그것보다, 마시자고」
「마시긴 하겠지만……딱히 나랑 마셔도 재미없을 거야. 어머니한테라도 가」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지. 안심하라고, 소란 피우진 않으마. 네 옆에서 마신다면, 조용히 마시도록 하지. 그럼 옆에 있어도 괜찮겠지?」
유우기는, 다시 빈 레이무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술잔에도 스스로 술을 따르고는, 혼자서 건배를 하듯이 잔을 내밀었다.
물론 레이무는 그러지 않았지만.
「말없이 술을 즐길 수도 있는 법. 지금은 너와 조용히 술을 마셔보도록 할까」
감정이 상하지도 않은 듯, 유우기의 얼굴에는 변함없는 밝은 미소가 피어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레이무는 오니라는 요괴가 점점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사토리는 유우기와 레이무의 마음을 듣고 있었다.
「말」 아니라 「마음」을 말이다.
이 소란스러운 연회 속에서 저 둘의 작은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귀가 좋진 않다.
하지만 제3의 눈 덕분에 마음의 소리는 이미지까지 붙여서 싫어도 들리게 된다.
레이무의 마음을 전부 읽은 뒤, 사토리는 생각했다.
지난날의 하쿠레이 모녀.
소녀의 동경을 사토리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간파할 수 있었다.
좋은 말이다.
감동적이다.
──라니, 「요괴소년 호야」의 대사잖아!
레이무의 기억 속에서 본 과거의 선대가 했던 말에 대한 딴지였다.
아마, 그때 선대는 만화 속 캐릭터의 행동을 따라 해보고 싶어서 술을 마신 뒤, 딸의 순수한 질문에 겉멋을 들여 그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속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본인이 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자각이 없다는 점에서 구할 방도가 없군요.
이렇게 지상의 인요들의 마음을 읽으며, 선대의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또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착각이 생기고 있는지, 사토리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남의 말이나 행동에 담긴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 생각지 않았던 의미로 이해되어 남에게 큰 영향을 줄 때도 많다.
「부모 심정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이가 보는 부모의 모습이에는 크든 작든 오해가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선대에 대한 착각은 영향도 규모도 수도 너무 큰 게 아닐까.
연회 속에서 잡다하게 흘러들어오는 인요의 마음속에 있는 선대의 인상과 자신이 아는 그녀의 실태를 비교하자니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혹시, 이건 선대 자신의 능력과 관계 있는 걸까──.
사토리는 혼자서 그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토리의 옆에 앉아 있던 자는, 앨리스였다.
「글쎄요」
사토리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앨리스는 별다른 추궁을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애당초 흥미는 없었던 듯 「그렇구나」라며 맞장구를 치고는, 그걸로 말을 끊었다.
한 공간에 이렇게나 많은 인요가 모여있는 곳에서, 남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사토리가 선택한 곳이 바로 앨리스의 옆자리였다.
조용하고, 침착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뿐이었다.
앨리스 또한 사토리가 옆에 앉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런 기구한 만남을 가진 둘이었으나, 사토리와 앨리스는 서로에게 이렇다 할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술자리에서 함께 앉아 있는 걸까.
어떤 이유도 없으니까──서로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이 둘에게 있어선 차라리 낫기 때문이었다.
「앨리스 씨의 옆에 있으니 침착해지는군요」
「그래?」
「여긴, 제게는 조금 소란스럽네요」
「그건 소음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마음의 소리?」
「둘 다에요」
「나는, 시끄럽지 않아?」
「예, 마치 장식 같군요」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두 명은 이곳에서의 의무와도 같은 술잔을 들고, 외부인으로서 소란스러운 연회를 지켜봤다.
이 연회의 주역인 선대의 주위가 특히나 소란스러웠다.
플랑도르와 메이링이 찰싹 옆에 붙어있는 데다가, 어느새 레밀리아와 사쿠야가 더해지더니, 참견하듯이 마리사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선대는 조용하게 미소 짓고 있었으나, 사토리만큼은 그녀의 속내가 누구보다도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쿠모 유카리와 야고코로 에이린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술을 즐기기보다 이 연회를 살피는──아니,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다.
그런 두 명의 곁에 연회를 한창 즐기던 유유코가 웃으면서 요리와 술을 가져간다.
그녀들의 시종들은 서로의 주인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은 둘이서만 대작하고 있는 유우기와 레이무도, 머지않아 저 소란 속에 들어갈 것이다.
모두가, 즐겁게 연회를 즐기고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큰 목소리, 작은 목소리, 많은 말, 적은 말──여러 가지가 뒤섞여 사토리의 「제3의 눈」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이 장소에 불러준 선대의 순수한 호의가 기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 자신에게는 괴롭다.
지상은, 맞지 않는다.
사토리는 그렇게 느끼는 자신에게도 약간이나마 싫증을 느끼며 살그머니 한숨을 내뱉었다.
「지친 거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토리의 상태가 변한 것을 앨리스가 재빨리 깨닫는다.
세세한 부분에 대한 깨달음이 빠르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행동이 철두철미하다.
그래서일까, 마치 무기물처럼 평탄하면서도 조용한 마음속의 소리가 사토리는 마음에 들었다.
인형을 조종하는 마법사 「앨리스 마가트로이드」──그것이 사토리가 아는 그녀의 대략적인 정보다.
선대에게 사전에 얻은 지식에선 「상식인이며 괜한 참견을 좋아하는 참견쟁이」라는 인상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상상과는 꽤 차이가 났다.
인형을 조종한다지만, 이래서는 마치 앨리스 자신이 인형 같다.
그녀는 이 연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듯 했다.
즐겁지는 않지만, 싫지도 않고, 귀찮지도 않다.
선대무녀의 복귀를 축하하는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럼 왜 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으며, 마리사에게 끌려올 때까지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그녀의 마음속을 사토리는 능력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조차 기억을 정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앨리스가 그 질문에 스스로 낸 대답에 놀라기도 했다.
마리사에 끌려와서 이곳에 있다.
그러니까 그냥 이곳에 있다.
자신이 원해서 온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 연회에 참가한 것에 후회도 하지 않고, 돌아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에는, 색이 없다──사토리는 그렇게 느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혹은 세계 그 자체에, 그녀는 심각하게 무관심했다.
「앨리스 씨는, 피곤하지 않나요?」
「아니」
「이 연회가 즐겁지 않는 것 같군요」
「그렇구나. 너한텐 숨겨도 의미는 없나보네」
「예. 여기에는 당신의 흥미를 끄는 게 없는 것 같네요」
「그 말대로야. 없어」
앨리스는 그저 평탄하게 대답했다.
그 평탄함이 반대로 사토리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이 연회장은 마음의 소리가 너무 소란스럽다. 그래서 귀를 막고 싶어진다.
그러나 앨리스의 옆자리만은 공간이 뻥 뚫린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마음의 소리도 작고, 말도 적다. 그렇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사토리는 주변의 소음을 헤치며 앨리스의 마음을 읽기 위해 집중했다.
그녀 속에는 떠오르다가 이내 사라지는 이미지가 있었다.
사람 모습을 한 누군가.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누군지를 생각해내려고 하지만, 실패하여 형체가 무너진다.
앨리스는 그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에 관심을 주지 않고, 어쩌다 생각난 것처럼, 그저 결코 질리지 않고, 자신만의 사고에 빠져 있다.
──이래서인가.
──이게, 그녀가 세계에 관심이 없는 이유인가.
──그녀는, 항상 이 애매모호한 이미지가 마음에 걸리는 걸까.
사토리는 앨리스가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쏟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이미지의 정체는 사토리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자는 「신키」가 아닌가요」
예상외의 사태에 놀란 사토리는 무심코 그 이름을 입에 담고 말았다.
앨리스는 그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힘차게, 사토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지금, 뭐라고 말했어?」
앨리스는 사토리를 추궁했다.
표정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왠지 두려움이 느껴지는, 말없는 박력이 깃든 목소리였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던 애매모호한 이미지가, 단번에 바로잡혀간다.
마음을 읽지 않고도, 사토리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누구」의 이름을 말한 거야?」
──위험해, 지뢰 밟았다.
사토리는 그제야 그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연회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 연회가 언제쯤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직 누구도 취하지 않았다.
술은 마시고 있긴 했으나, 요괴는 물론 일부의 인간 참가자들도 얼굴에 홍조하나 띄고 있지 않았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배에 음식을 집어넣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말을 나누며, 그 사이에 조금씩 술을 마신다.
지금은 아직 그런 평화로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회의 양상 또한 변해갈 것이다.
순수하게 연회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들은, 적어도 그런 절차를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유카리와 에이린은 코메이지 사토리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어 신중에 신중을 가하고 있었다.
천천히 상황이 변해간다.
선대와의 담소를 끝맺은 레밀리아가 「그럼, 슬슬 사토리 요괴인지 뭔지를 시험해볼까」라는 도전적인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유우기의 억지에 휘말린 레이무가 떠들썩한 어머니의 곁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그것을 눈치챈 마리사가 갑작스레 찾아오는 거북함에 여기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떠나야할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지금, 사토리가 자신의 실언에 의해 앨리스의 커다란 흥미를 끌었다.
연회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가장 큰 변화는 연회 속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선대였다.
「──새 참가자가 온 것 같군」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선대가,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다가오는 자들을 알아차린다.
낮익은 기척이다.
일어서서 그들을 마중나간다.
주변에 모인 인요들이 이끌리듯이 선대의 시선을 쫓는다.
밤하늘의 어둠에 녹아든 검은 날개를 가진 사람의 형체가 셋, 신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리사가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중얼거린다.
「저거, 텐구인가?」
「샤메이마루 아야, 히메카이도 하타테 이누바시리 모미지다」
「대단해, 아주머니. 저게 보이는 거야?」
「기척으로 알 수 있다. 눈에만 의지하지 마라」
「……과연」
마리사로선 「기척」이라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선대가 해준 조언의 개념을 대충이나마 알고 감탄했다는 듯 끄덕인다.
물론 마리사는, 그 조언 자체가 만화에서 나온 대사라는 것을 모른다.
선대는 그대로 마당에 내려선 텐구들을 맞이했다.
그 얼굴에는 친한 사람이라면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표정이 변해 있었다.
선대는 아야 일행의 갑작스런 방문을 귀찮게 생각하기는커녕, 매우 환영하고 있었다.
요괴의 산에서 날아온 그 셋은, 하타테를 선두로 내세워 연회의 참가자들과 마주했다.
「잠깐 아야, 왜 날 먼저 보내는 거야? 네가 제일 발이 빠르잖아」
「됐으니까, 얼른 끝내줄래. 눈에 띄고 싶지 않단 말이야」
「……이 망할 헤타레」
「떫냐」
「아니, 목소리도 작아서 전혀 무섭지도 않은데, 모미지 등에 숨어 있는 주제에」
「하타테 씨」
「뭐야? 모미지 너도 이 녀석 응석을 너무 받아 주는──」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모미지에게 지적받은 하타테는 그제야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인요가 갑자기 나타난 텐구들을 주목하고 있다.
연회에 참가하는 것이 자유롭다는 건 이미 신문에 실렸고, 텐구는 그 기사를 쓴 요괴들이다.
이곳에 찾아오는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참가자들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자신에게 향해지는 경계의 시선을, 하타테는 힘을 주어 곧게 받아쳤다.
정체를 모르는 자, 반대로 유명한 자, 어느 누가 상대여도 풀이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일하게, 아야 일행에게 한 치의 경계심도 품지 않은 선대가 한 발짝 다가왔다.
「이봐──」
「우왓!?」
선대와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하타테는 기성을 지르며 눈을 돌렸다.
「연회에, 참가하러 와 준 건가?」
「아, 아, 아니……아니야, 하지만」
「그런가」
「아니! 하지만 그것도 아니랄까! 축하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도록 해!? 그, 복귀 축하해!」
「고맙다」
「……후, 후힛」
어딘가 핀트가 빗나간 선대의 감사였으나, 호의적인 미소를 받았다는 사실에 하타테는 단순히 기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끔찍하게 무너지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선대 앞에서 단순히 쓸모없는 변태가 되어버린 하타테를 바라보던 아야는, 포기했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안녕하신가요, 선대무녀 님. 사태가 급하니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하타테와는 반대로 평소 컨디션을 되찾은 아야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급박하다니, 무슨 일이지?」
「이변입니다. 그것도 상당한 규모의. 하쿠레이의 무녀와 야쿠모 유카리는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귀찮게시리」
선대의 옆에 나란히 서듯이 유카리와 레이무가 아야의 앞으로 걸어 나온다.
두 명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들리도록 아야는 낭랑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지저에서 오니가 출몰했습니다. 오니의 사천왕 「이부키 스이카」님을 필두로, 이미 환상향 전역에 흩어졌습니다.
수는 대략 백. 통일된 목적은 없으며, 저희 텐구들의 마을에 습격으로 시작하여, 마을 습격, 스펠카드 룰을 무시한 강자와의 결투, 마지막으론 환상향의 관리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반란까지 꾸미고 있는 듯 합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빌빌거리던 모습과는 달리,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아야는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것을 바로 정면에서 들은 세 명중, 선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레이무는 약간이지만 얼굴을 찡그렸고, 유카리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연회장에 불온한 소음이 퍼져간다.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한 것이다.
오니가 적이라는 사태의 위험함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
그 오니는, 지금 이곳에도 있으니까.
한 차례 소란이 일고, 자연스레 그녀를 향해 시선이 모였다.
오니의 사천왕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호시구마 유우기에게.
「──에, 왜 여기에 오니가 있는 거야!?」
하타테가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고는 놀라움으로 가득 찬 소리를 질렀다.
뭘 이제 와서 그러냐는 듯 아야가 기막히단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하타테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저에서 나타난 오니가, 환상향을 덮치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나 다름없는 소식이다.
사태의 자세한 전모도, 오니의 의도도 알 수 없다.
그저 그 행동에서 오싹할 정도로 느껴지는, 환상향에 사는 모든 자들에 대한 적의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오니인 유우기는 어떨까?
연회 속에서 희미해져가던, 그녀를 향한 경계와 의심이, 연회가 시작되기 전보다 커져 각자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수많은 시선에 꿰뚫린 유우기는 잔에 시선을 떨군 채,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자세다.
그녀에게서 불온한 기척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알 수 없는 위용이 느껴졌다.
레이무가 유우기 옆에서 떠나왔기에, 지금 그녀의 옆엔 아무도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모두가 그녀에게서 떨어진 것이다.
「너는, 적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나?」
최초로 말을 꺼낸 것은 하타테였다.
수많은 말과 잔을 나누어, 유우기의 됨됨이를 알게 된 연회의 참가자들이 신중히 진심을 추측하려던 중, 외부인인 그녀가 칼날처럼 예리하고 정직하게 물었다.
옆의 아야는 속으로 「또냐」라는 생각을 하며 굳은 미소를 지었다.
모미지가 칼의 손잡이에 손을 얹는 소리를 듣고, 더욱 위가 아파졌다.
「직설적으로 묻는걸」
무례한 하타테의 말투에, 유우기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텐구 치고는 담이 큰 녀석이야」
「오니는 말을 돌리는 걸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너도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
「스이카가 그렇게 말한 거냐?」
「말했어. 그 녀석은 하쿠레이의 무녀를 죽여서 먹어치운다고 했거든」
「 「그 녀석」이라……좋겠는걸, 사양이 없어서. 그래서, 넌 어떻게 했지?」
「걷어차 줬어」
유우기는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거 잘했군」
「너도 같은 오니의 사천왕. 너도 이번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어쩔 셈이지?」
「하, 말 돌리는 거 정말 좋아하네」
오니를 상대로 정면에서 물러섬 없이 대답하는 하타테의 모습을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지켜본다.
하타테는 유우기에게 이미 반쯤 적의를 품고 있다.
불필요한 알력을 낳는 위험한 문답이다.
그러나 유우기의 진심을 아는데엔 이런 단도직입적인 방법이 제일.
아야가──속으로는 선대도──전전긍긍하는 것을 무시하며, 하타테는 유우기를 노려봤다.
「너는, 지저의 요괴임에도 여기에 초대받았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지?」
「그래」
하타테와 유우기는 똑같이 선대를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서로를 마주봤다.
「만약, 네가 이부키 스이카와 결탁했다면」
「했다면?」
「너는 저 아이를 배신한 거야」
「그럼, 어쩔 셈이지?」
「여기에 있을 가치가 없어. 지옥까지 걷어차 줄게」
그렇게 단언하는 하타테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유우기가 적이라고 결정된 것은 아니다.
섣부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를 받고 있는 유우기는 전혀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타테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읽어내고선, 더욱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유우기는 일찍이 아야에게 들었던 이야기 속에 「하타테」라는 텐구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방금, 선대를 「저 아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하타테가 말한 「하쿠레이의 무녀」란 당대인 레이무가 아닌, 선대를 언급한 것일 테지.
하타테에게 있어서 하쿠레이의 무녀는, 아직도 그녀였다.
단편적이지만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된 유우기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바뀐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인가……」
잔을 내려두고, 천천히 일어서 옷을 고쳐입는 유우기.
「텐구라는 건, 이렇게 재미있는 녀석들이었군. 안 그러냐, 아야?」
「……아, 예? 무, 무슨 말씀이신가요, 유우기 씨」
「이쪽 이야기다」
당황하는 아야의 모습을 즐기듯이 바라보던 유우기가 시선을 돌리더니, 지금까지 보이던 털털한 자세를 고쳤다.
등을 피고, 곧게 자신을 바라보는 인요들을 곧은 눈빛으로 마주보며, 마지막으로 하타테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답하지. 거짓말은 하지 않으마.
──나는 스이카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지저에서 일어났던 나와 선대와의 결투를 계기로, 언젠가 싸우러 지상에 나올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지」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을 잇는다.
「머지않아, 스이카가 무슨 짓을 일으킬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우기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모두가 눈치챘다.
긴장감 속에서 살기가 섞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우기는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 치의 긴장감도 없이, 오히려 힘이 빠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
「스이카의 「무슨 짓」이 뭔지 나는 몰랐고, 알았더라도 동참할 생각은 없었다는 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선 나도 금시초문이거든. 아무래도 선대와의 결투에 만족한 나까지 동료로 넣어주긴 싫은 모양인데」
「관계 없다는 뜻이야?」
「스이카의 생각을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공범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뭐, 좋을 대로 받아들여」
「흐응─」
유우기의 말은 어딘가 무책임한 면이 있었다.
자세한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였다면 오히려 믿을 수 없었겠지만, 유우기가 말하니 오히려 효과가 반대였다.
시원시원한 대답이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유우기의 견실하고 솔직한 면이, 그대로 믿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하타테는 적의와 흥미를 동시에 잃은 듯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맞장구로 대답할 뿐이었다.
유우기는 무해하다는 것을 이미 인정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끌리듯이, 다른 자들의 긴장감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어간다.
아야가──속으로는 선대도──남몰래 안심하던 중, 일단락 난 대화의 틈새에 비집고 들어가듯이, 유카리가 목소리를 높혔다.
「그럼, 코메이지 사토리. 당신은 이번 사건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거죠?」
「…………예?」
갑작스레 화제가 자신에게 향해져 당황한 사토리가 얼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
──뭐야, 이게? 어쩌지!?
나는 갑자기 이세계에서 신쥬쿠로 뛰쳐나온 드래곤이 된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외쳤다.
갑자기 「오니가 환상향을 습격했다」니, 아차─……초전개에도 정도라는 게 있잖아!
네, 잠깐 기다려봐.
이변은 그렇다 쳐도……이 연회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알고 있어.
정말로 긴급사태인데 술은 마시고 때가 아니지.
그래도, 그렇지만…….
그런…….
연회……기대했었는데……지금 막, 시작했는데…….
우……우우우……너무해…….
너무하잖아아아아아아~~~~!!!
──후우, 개운해졌다.
대충 미친 듯이 울어재낀 뒤, 나는 정신적 동요를 회복했다.
기둥의 남자가 침착해지기 위해 했던 행동을 한 번 따라해 본 건데, 정말로 깔끔하게 의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걸.
내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효과가 있던 걸지도 모르지만, 역시 만화 속 선구자들은 위대해.
그리고 이런 때만은 굳어버린 내 철면피가 매우 편리하다.
여태까지 한 생각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 역시 유감스럽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냉정히 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갑작스런 사태 덕분에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침착하게 가다듬은 나는, 하타테와 유우기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정리했다.
유우기에게 공범이 아니냔 의심을 할 때엔 긴장했지만, 섣불리 참견하지 않고 지켜본 건 정답이었던 듯 하다.
무난하게 유우기 스스로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해줬다.
물론,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각자의 재량이지만, 나는 어떠냐고 묻는다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원작의 캐릭터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투를 펼쳐본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신뢰였다.
……솔직히 하타테의 모습은 다양한 의미로 의외였다.
오니와 마주서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진짜 상남자.
뭐, 상남자 수준을 넘어 거의 싸우기 일보직전이던 분위기엔 조금 쫄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멋대로 품었던 믿음직스럽지 못하단 인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왠지 나를 엄청 자연스럽게 「저 아이」 취급했지만.
실제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왤까……조금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어졌다.
……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 침착해졌다고 해놓고 아직 멘붕상태였나!
진정해라 나.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우선 스이카가 주모자인 이번 이변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이해했다.
유우기만큼은 아니어도, 사실 나 또한 이 사태가 벌어진 짐작이 간다.
원작 게임 중 하나인 「동방췌몽상」에서 나오던 전개다.
스이카가 환상향의 멤버와 싸운다는 것뿐이긴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원작에서는 연회를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보다 평화로운 이유이거나, 엔딩에서 다른 오니도 부르려고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무난한 엔딩이긴 했어도──요컨대, 이게 내가 있기에 생긴 차이인가.
뭐랄까……너무 악화되지 않았어?
다른 오니, 오고 있는데요.
나, 이미 전범 아니야?
오니는 동방 원작에서 최강의 요괴였을 텐데, 그게 백 마리라니, 야…….
게다가 목적이 전부 달라서 스이카를 쓰러트려도 끝나는 건 아닌 것 같고, 메탈 쿠우라가 울고 가겠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도 스펠카드 룰을 무시해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이변해결(물리)」입니까!
……위험해.
뭐가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스펠카드 룰이 제대로 환상향에 적용될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단순한 이변의 규모도, 적의 전력도 전대미문의 사태인 이번 이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좋은 생각도 안 떠오르고, 무심코 유카리를 의지하듯이 시선을 돌린 그 때.
「그럼, 코메이지 사토리. 당신은 이번 사건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거죠?」
유카리가 사토리에게 의심스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 그런가.
오니는 지저에 있었으니까.
사토리는 그 지저의 관리자고.
그 사토리가 연회에 나온 날, 미리 짜놓은 것처럼 오니가 환상향을 덮쳤다는 거구나.
그렇다면 아, 이거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하고 의심할 테지.
──최악이야!!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정말인가요?」
「자세히 말해, 어떤 의심을 하시는 거죠?」
「예를 들면, 이 연회에 수많은 유력자들을 모아 오니의 움직임을 늦게 알아채게 했다──라든가」
「이번 연회는 선대가 제안한 겁니다. 저는 우연히 초대받았을 뿐이고요」
「당신이 선대무녀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했을 거란 의심도 하고 있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유카리의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원호사격이 들어왔다.
에이린이다.
어째서?
「오해입니다. 제게는 오니에게 명령할 권력이 없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유도라고 한다면?」
「환상향에 원한은 없고, 그럴 의미도 없어요」
「당신은 오니에게 명령을 할 수 없다고 했죠. 그렇다면 지저에서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오니가 퇴치돼도, 당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토리의 도망갈 길을 차례차례 막듯이, 두 현자에게서 잇달아 뻗어나오는 추론.
그 추리에 사토리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모두 사토리를 몰라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기에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저거, 글러먹었어!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진 얼굴이라고!
그리고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나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날 엄청 심하게 디스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절대로 착각이 아니다.
애당초 유카리도 에이린도 오해하고 있다.
왠지 저 둘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무심코 납득해버릴 것 같지만, 저 추리들은 전부 틀렸다.
사토리에겐 아무 잘못도 없다. 이번 이변과는 정말로 어떤 관계도 없다. 연회 또한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고, 사토리는 무리해서 와준 것이다.
이건, 아주 위험한 흐름이다!
「기다려라, 유카리」
유카리와 에이린의 말에 점점 불온해지기 시작한 분위기에, 나는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참견을 해야겠어!
다른 인요들까지 사토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게 된다!
「사토리를 의심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을 텐데?」
초조함 때문일까, 유카리 일행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사토리의 혐의를 풀어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무심코 다른 누군가의 대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으으……, 왠지 기분 나쁜 말투가 돼버렸는걸.
「……선대?」
아니나 다를까, 유카리도 갑자기 끼어든 내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투가 나쁜 탓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못 말한 것도 아니니…….
「주모자가 이부키 스이카라는 오니인가,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코메이지 사토리인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이변의 전모는 바뀔 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건 어찌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엔 에이린에게, 그렇게 반론했다.
……어라, 흉내낼 사람을 잘못 골랐나?
왠지 내 말이면서도 쓸데없이 반감을 살 말투였다.
에이린은 커녕, 레이무마저 날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억지로라도 이야기를 끊어야 한다.
사토리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내 비밀까지 알려줘야만 하기에, 쓸데없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어쨌든 지금은, 사토리에게 걸린 쓸데없는 혐의를 벗겨내고,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처를 해줬으면 했다.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이때를 기회삼아, 억지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오니의 습격에 대처하는 것이 먼저다. 유카리, 우리들은 어떻게 움직이면 되지?」
「……그래, 그 말대로야」
유카리는 찡그리고 있던 눈썹을 피고, 평소와 같은 냉정한 말투로 대답했다. 고마워라.
……부채로 입가를 숨기고 있는 게 신경 쓰이지만.
감정을 죽일 때 나오는 버릇이거든, 저거, 아, 그럼 숨기고 있을 뿐이지, 아직 걸리는 게 있다는 건가.
미안! 나를 의심해도 괜찮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대책을 마련해줘!
「우선 오니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내는 게 먼저겠네. 환상향 어디에, 얼마나 나눠졌는지를 알아내야 해」
「환상향의 결계를 조사하면,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유카리의 옆에서 묵묵히 서있던 란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계라면, 환상향 전역을 둘러싼 두 개의 대결계 말인가.
바깥 세계와 단절하는 것만이 아니라, 응용하여 내부를 살필 수도 있는 것 같다.
대단해요, 란 님. 저, 전 하쿠레이의 무녀인데 그런 거 전혀 몰랐어요. 무능해서 죄송합니다.
란에게 미움 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겠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의외롭게도 모미지였다.
「이미 오니의 움직임은 제가 파악했습니다」
「호오, 어떻게 말이지?」
「이 천리를 간파하는 눈으로」
「천리안의 능력인가. 훌륭한 성능이군. 이름을 말해봐라」
「이누바시리 모미지」
「그렇다면 모미지. 유카리 님께 상세한 내용을 전해드려라」
「예」
첫 만남일 터인 란과 모미지는 당연하다는 듯 상하관계를 정하더니, 그걸 전제로 막힘없이 서로의 의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란이, 모미지를 인정했다는 것에도 놀랐다.
……모미지는 좋겠다, 이름으로 불려서.
내 본명은 란도 알고 있을 텐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불러 줬다구.
「백 마리의 오니 중, 반 이상이 마을을 습격하고 있으며, 이곳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부키 스이카가 있는 곳은 어딘지 알고 싶은데」
「마을을 덮치는 오니들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습격하는 중이야?」
「지금은 아직, 피해가 크게 번진 것 같진 않은 걸 보니 마을에도 대처하는 자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신속한 보고 고마워. 감사할게」
모미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역시 멋지다─. 그냥 무뚝뚝하기만 한 나랑은 달라─.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태평하게 이러고 있을 새가 아닌 듯 했다.
역시, 내가 생각대로 시급한 판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보다 유카리! 빨리 마을에 보내줘. 케이네라든가 엄청 걱정이야!
「레이무는 마을로 가」
내 눈빛을 본 유카리는 가장 먼저 하쿠레이의 무녀인 레이무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을로?」
「피해 규모가 가장 커질지도 모르는데다가 환상향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이야. 인간의 대표인 「하쿠레이의 무녀」가 지켜야만 해」
「알고 있어」
반이 넘게 모여있다고는 해도, 오니는 다른 곳에도 있다. 그리고 그 만큼 피해가 번진다.
유카리는 그런 희생보다, 마을의 안전을 우선시한 것이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인간을 위해 싸운다──그것을 강조할 필요성도 함께.
냉정하고, 냉철한 판단이었다.
나는 그 판단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유카리를 꾸짖을 생각은 없다.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원래는 하쿠레이의 무녀. 인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고 있으며, 자만할 생각도 없다.
「나도 가지」
그렇기에 나도 움직인다.
선대여서가 아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하는 법. 바보는 그것 밖에 모른다고!
「좋아. 당신과 싸우는 것 또한 스이카의 목적인 것 같으니까, 적의 전력을 한 곳에 모아둘 수 있겠지」
즉, 미끼가 되라는 말이다.
유카리의 아이디어에 불만은 없다. 오히려 만족이다.
후후후……좋은걸. 심플해졌어. 옛날이 떠오르는구나, 유카리여.
「다만, 오니와 싸울 때 이걸 써줘」
그렇게 말한 유카리는 내게 음양옥을 건네줬다.
레이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디자인이 미묘하게 다르다. 흑백에서 흑색 부분이 진한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음, 결계의 효과가 있다는 건 왠지 모르게 알겠지만…….
「나는 결계는 잘 다루지 못한다만」
「아니. 이 결게는 막기위한 게 아니야.
사용하면 이걸 중심으로 주변 일대의 경계가 빗겨나게 돼──간단하게 말하자면, 당신을 포함한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을 전부 결계 속에 가두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 대상 중에 인간만은 무조건 제외되게끔 설정됐지」
「그 말은?」
「오니가 당신을 노리고 모였을 때 쓰면, 당신과 오니만을 가둔 공간이 생겨. 거기서 싸우면 주변에 피해가 가진 않을 거야」
과연, 한 마디로 「디바이딩 드라이버」……라는 거지?
나는 단번에 이해했다.
이럴 때 애니메이션의 지식 같은 게 있으면 이해하기 쉬워서 좋단 말이지─.
「그리고 당신의 싸움을 누군가가 볼 리도 없어」
납득한 표정의 나와는 반대로, 유카리는 약간이지만 표정이 흐트러져 있었다.
「더 이상, 선대무녀인 당신이 현재의 환상향의 이변과 엮이는 모습을 보일 순 없어.
하물며, 스펠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당신이, 그 힘으로 요괴를 퇴치하는 광경을 보여져버리면 곤란해. 그렇게 되면, 예전의 환상향으로 돌아가고 말아」
「──」
「당신의 명성이 높아지는 건 좋아. 하지만 전설은 전설로 끝나야 해. 당신이, 환상향의 미래를 이끌어선 안 돼. 그건 당대의 무녀가 가진 역할이니까」
유카리가 말하는 것들은 전부 당연한 말들 뿐이었다.
나를 배려하기 위해선지, 묘하게 비통함이 배어나오는 표정이었으나, 당사자인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괜찮다.
……오히려, 내쪽이 거북해.
역시 문제가 있겠지. 영야이변에서 달을 날려버렸으니.
솔직히 지금 이곳에서 유카리를 민폐를 끼친 만큼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란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는 평정을 가장하며, 말없이 끄덕였다.
「내 전쟁은 끝났다」
언젠가, 유카리에게 말했던 유명한 노병의 말을 흉내낸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해야만 하는 게 있다. 그걸 이루러 갈 뿐이다」
──뭐, 그래도 그가 했던 것처럼 자살하는 것도 아니니까.
멀리서나마 레이무를 지원해주자. 부모로서, 그리고 이 분야의 선배로서.
나의 결의를 들은 유카리는 「고마워」라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워…….
의지가 생기는걸.
「──레이무. 당신이라면 자기가 뭘 해야 할지는 알겠지?」
「상대 방식에 말려들지 말라는 거잖아. 알고 있아. 하쿠레이의 무녀인 내 일이니까」
레이무는 품에 넣어둔 스펠카드를 내보이며, 유카리에게 대답했다.
원작의 췌몽상에서는 직접적인 물리공격이 섞이긴 했지만, 스펠카드 룰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다.
그 변칙적인 룰은 이것 때문이었나.
무심코 납득해버렸다.
하지만 어렵다는 건 변함없겠는걸. 스펠카드 선언은, 실전에선 큰 빈틈이 될 테니까.
어떻게 될지 불안하긴 하지만──그래도, 지금은 레이무를 믿어야한다.
「나는 날아갈 건데, 어머니는 어쩔 거야?」
「달려서는 시간을 너무 까먹겠지. 레이무에게 부탁해서 나도 하늘로 가려고 했다만……」
「예이! 그렇다면 우리 텐구에게 맡기시라! 구체적으론 여기 계신 이 샤메이마루 아야에게 말이지!」
「하……하타테!? 너 갑자기 무슨……!」
「긴급사태잖아? 언제나 환상향 최속이라고 자칭하는 속도를, 여기서 살려봐」
「……뭐가 목적인데, 너?」
「조금쯤은 저 아이한테 도움이 되란 말이야, 이 몹쓸 어미야」
「어미라니, 무슨 무서운 말을……」
「시끄러, 이 삐뚤 근성」
갑자기 튀어나온 하타테가 제안을 하더니, 왠지 아야와 둘이서 작은 소리로 말싸움을 시작해버렸다. 대화 뒤쪽을 알아듣기가 힘든데.
아미? 아니, 아닌데. 어미? 무슨 암호인가?
잘 모르겠지만, 아야가 데려다준다면 고마울 것이다.
……게다가 아야와 함께 나는 것도 기대되고.
상당히 옛날의 기억이지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내가 처음으로 봤던 텐구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아직도 동경하고 있다.
들뜬 속마음을 감추며, 나는 이곳에서 출발하기 전에 천천히 사토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연하게도 유우기도 같이 있었다.
「미안, 사토리. 이렇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지금은 됐군요. 일단, 몸 조심하세요」
변함없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토리의 대답에 묘하게 안심하며, 이번엔 유우기를 돌아본다.
유우기도 복잡한 입장이 돼버렸구나.
내가 떠난 다음에 이상한 오해에 휘말리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일단 확인할 것이 있다──.
「유우기. 나는 오니와 싸우게 될 거다」
「그래, 사양은 하지 마. 아니, 오히려 방심하면 큰 코 다칠걸. 강하다고, 오니는?」
말할 것도 없다.
유우기와 했던 승부의 결과가, 나의 실력 덕분이란 생각은 아직도 하지 않으니까.
「선대, 나한테 원하는 건 없어?」
「원하는 것?」
「사정을 몰랐다곤 해도, 환상향에서 날뛰려는 놈들은 전부 내 동족이야. 스이카는 내 친구지.
나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 스이카들을 돕는 것도, 지상을 위해 싸울 생각도 없었지. 하지만, 나한테 이긴 네가 명령한다면, 나는 거절하지 않겠어. 백에 달하는 동족을 전부 희생해도 좋아」
……뭐야 그게, 무섭잖아.
유우기는 왠지 굉장한 각오를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결코 그럴 생각은 없다.
것보다, 나랑 유우기는 친구잖아.
명령한다든가, 그런 걸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
「진짜 친구란 대등한 것이다. 내가 네게 내릴 명령 따윈 없다」
「──」
「하지만, 단 한 가지. 내 대신 사토리를 지켜다오. 부탁한다」
「……「부탁」인가. 맡겨두라고, 이 호시구마 유우기가 확실히 지켜보이지」
유우기는 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왠지 묘하게 믿음직한걸.
도움이 돼줘서, 고마워.
──이걸로 됐지, 사토리? 그러니까 그렇게 「나를 두고 가는 건가요. 왠지 주변에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불안한 상황 속에 저를 홀로 내버려두겠다는 거군요. 그렇네요. 즉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에요」라는 눈으로 보는 건 그만둬주세요.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뼈저리게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용서해줘,
도망치듯이 사토리에게서 떨어지고 유카리 일행을 바라보자,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듯 무서울 정도로 싫다는 표정을 지은 아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죠, 선대. 마을까지 데려다드리기만 할 거에요? 절대로 함께 싸우자고 하지 말라고요? 텐구가 인간을 위해 싸울 의리는 없으니까요」
「물론이다. 고맙다」
「뭔가요, 그 감사인사는. 절 괴롭히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아, 정말 귀찮네요」
「……미안하군」
「흥. 빨리 가죠」
역시, 아야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서 거북하다…….
아야는 억지로 나를 끌어안더니, 굉장한 속도로 급상승했다.
보름달이 뜬 밤하늘을, 내가 난다.
바로 옆에서 레이무가 뒤를 따르듯 날아오른다.
향하는 곳은 마을.
오니와의 싸움이 기다리는 곳.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사소한 의문이 하나 있다면.
왜 사토리 옆에 앨리스가 있던 걸까?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진 거지, 그 둘.
◆
「부탁해. 레이무, 선대──」
야쿠모 유카리에게 있어 기도란 가장 쓸데없는 행위다.
요괴인 자신이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 행동이 어떤 이익도 낳지 않고, 동시에 어떤 해도 입지 않는다면──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인정한 무녀와 점차 인정하시 시작한 그녀의 딸을 위해서.
「그 둘에게만 전부 맡길 생각은 아니겠지?」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에이린이 유카리에게 물었다.
오니가 덮치고 있는 것은 마을만이 아니다.
그 마을조차 오니란 요괴가 가진 힘을 아는 유카리에겐, 아무리 상식을 초월한 힘을 가졌다고는 해도 단 두 명의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저 두 명에 자신까지 더해진다고 해도 부족하다.
오니란, 그렇게나 무서운 요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니가 떼를 지어서 환상향을 덮치고 있다.
유카리는 고개를 돌려 이미 연회 때 보이던 즐거운 분위기 따윈 사라져버린 참가자들을 마주봤다.
「이 사건은 환상향 그 자체의 위기. 이 이변해결을 위해 환상향의 관리자 「야쿠모 유카리」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협력을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유카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주인이 고개를 숙이자, 란도 주인을 따라 머리를 내렸다.
이 상황에서 남을 견제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조절된 표정 아래에 커다란 반발심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
야쿠모 유카리가 고개를 숙인다──그 의미는, 무겁다.
「그전에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이린이었다.
다만, 말과 함께 눈을 돌려 본 것은 유카리가 아니다.
사토리였다.
「한 번 더, 확인할게. 당신은 이번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건 정말이겠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곳에서 당신 앞에 머리를 박고 발을 핥으면, 영원정을 습격하는 오니들을 막을 수 있어?」
「사부!?」
「조용히 하렴, 우돈게」
당황하는 레이센을 눈빛으로 입 다물게 하며 에이린은 사토리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사토리는 자신의 능력 덕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진심인가요」
사토리의 목소리엔, 놀라움이 아닌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대답은?」
「무리입니다. 이유는, 방금 제가 설명했겠죠. 저는 정말로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가자, 우돈게」
「……아, 예!? 간다니, 어디에요!?」
「공주님을 지키러」
그렇게 말한 에이린은 마치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조금 전 유카리한 부탁 따윈 듣지도 못한 것 같은 태도였다.
유카리의 제안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에이린에게 있어 카구야라는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무거울 뿐인 것이다.
유카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멈춰 세우려던 란을 말렸다.
에이린과 레이센은 그대로 하쿠레이 신사의 하늘에서 종적을 감췄다.
──야고코로 에이린의 행동은 대충 예상대로.
유카리는 어디까지나 냉정히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코메이지 사토리는 어떨까?
그리고 냉정하기에, 모두가 눈앞에 닥친 사태에 혼란에 빠진 지금도 사토리의 행동에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오니의 습격을 알았을 때부터 생겨난 사토리를 향한 의심.
그 의심은 지금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녀의 의심을 더욱 부풀리게 된 계기는 바로 선대의 말.
「사토리를 의심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을 텐데?」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건 어찌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게 아니다」
분명히 사토리를 감싸려는 의도가 엿보이던 그 행동.
얼핏 보면 정론이었으나, 평소의 선대라면 하지 않았을 무리한 말 돌리기.
선대의 행동이 전부 환상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것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 결의는 그녀가 이곳에서 출발할 때 했던 말에서,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단 하나──그때 사토리를 추궁하던 순간 선대답지 않은 말을 듣고 느낀 불신감과 반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선대의 고귀한 신념.
그것을 교묘히 다뤄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 있는 자가 있다.
그 자가 바로, 코메이지 사토리가 아닐까?
오늘 밤의 연회가 시작했을 때부터 사토리가 모든 것에 관련되어 있던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토리의 진심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도, 유카리는 그런 각오만을 명확하게 굳혔다.
「다른 분들은 어쩌실 건가요?」
에이린이 떠난 뒤, 남은 자들을 향해 유카리가 물었다.
그 말에 「기대」는 담겨있지 않다.
그저 퍼센티지로 나누어진 예측만이 있을 뿐이었다.
친구인 사이교우지 유유코의 협력은 든든하다. 하지만 이 위험한 이변에서까지 절대적이진 않다.
남은 두 텐구는 협력해주겠지만, 그녀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여 줄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사토리와 유우기는 오히려 나서주지 않는 쪽이 낫다. 다행히도 선대가 유우기에게 부탁한 덕분에, 그녀는 이대로 수비를 굳힐 것이다.
앨리스는 미지수. 조금 전부터 사토리의 옆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홍마관의 당주인 레밀리아는 기분파이기에 도움을 줄지 안 줄지의 도박.
단순한 인간인 마리사는 논외다. 전력이 될 수 없다.
얼마 안 되는 시간, 서로 술잔을 나눈 것으로 인요 사이의 도랑이 메워질 리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 장소의 구심점이던 선대무녀는 없다.
모든 것이 그 영야이변 때와 마찬가지──.
「──없어, 인간을 위해 싸울 이유 따윈」
레밀리아가 작게 웃었다.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비웃음이었다.
「적어도, 이 레밀리아 스칼렛이 싸울 의리는 없어」
「아가씨……」
「하지만, 아주머님이……」
레밀리아의 말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것은 메이링과 플랑도르 뿐이었다.
사쿠야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졸라오는 두 명의 시선을 무시하며, 레밀리아는 말을 이었다.
「내가 싸우는 건, 내 자신의 긍지를 위해서 뿐. 요컨대── 「지금」 「여기」서, 말이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 진실을 묻기도 전에, 레밀리아가 갑작스레 모미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누바시리라고 했던가. 마을에 오니가 가장 많이 모여 있다는 건 알겠어. 그럼, 두 번째는 어디지?」
「여기입니다」
모미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부키 스이카 님을 선두로, 이 하쿠레이 신사에 오고 있습니다」
레밀리아의 눈동자는, 틀림없이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왔네」
확실히, 그 순간.
마당 저편의 계단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모두가 느꼈다.
낮익은 기척이다.
그것은 호시구마 유우기가 왔을 때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굉장히 빠르며, 기세를 실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렬한 폭풍이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듯이, 하쿠레이 신사의 마당에 「오니 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태를 한 자.
인간의 형태를 하지 않은 자.
팔, 다리가 인간보다 배는 많은 자도 있었으며, 팔, 다리는커녕 몸조차 없는 머리만 있는 오니도 있었다.
크고 작은 그들이, 땅을 밟고, 하늘을 춤추며, 환상향의 인요들 앞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흐음, 수는……20마리 정도인가. 많은걸. 꽤나 「잊혀진 요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야. 차라리 저기 있는 오니 한 마리 쪽이 더 존재감이 커」
레밀리아의 농담에 유우기만이 웃음으로 답했다.
레밀리아를 제외한 홍마관의 멤버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인요가 갑자기 나타난 오니 떼가 뿜어대는 「귀기」라고 부를 수 있는 기운을 느끼며 전율했다.
이것이 오니.
유우기와는 다르다.
지금부터 맞서 싸워야만 할, 오니의 위협.
「좋네, 지상에도 꽤 쓸만한 놈이 있잖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스이카가 나타난다.
유우기가 그랬듯이, 계단을 걸어 당당히 마당에 발을 디뎠다.
그 행동에서부터, 이미 다른 오니들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 느껴졌다.
「네가 이부키 스이카냐」
모두가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중, 레밀리아가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을 덮치는 오니들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 그쪽에도 있지」
「과연, 분신 같은 거로군」
「흡혈귀의 얼빵한 사역마 같은 것과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걸. 나의 분신은 몇으로든 나눠져 모든 오니와 함께하고 있지.
인간을 먹고 싶은 오니가 있다면 모든 인간을 휩쓸고, 강자와의 결투를 바라는 오니라면 그걸 지켜본다──이 이부키 스이카야 말로, 이 이변의 진짜 흑막이다!」
스이카는 가슴을 피며 단언했다.
상쾌하면서도, 그렇기에 너무나도 두려운 말이었다.
그녀는 지금 분명히, 환상향 그 자체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유카리는 자신을 향하는 스이카의 시선을 눈치챘다.
대등한 친구라고 생각한 상대다.
그렇기에 이미 대화를 나눌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유카리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부키 스이카는, 지금 대등한 「적」이 되었다는 것을.
「호오, 요컨대 싸움을 걸러 왔단 말이렸다?」
주변을 포위한 오니와 그들을 인솔하는 스이카에 의해 이 장소 자체가 집어 삼켜질 것만 같은 압박감 속에서도, 레밀리아는 누구보다 앞장서 맞서고 있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다.
제자리에 멈춰선 스이카의 맞은편에 선 레밀리아 또한 움직임 없이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둘의 몸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피어오르고 있다.
서로의 그 무언가가 닿은 순간, 연기처럼 섞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밀어낸다.
그 두 무언가의 사이에 낀 공간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비뚤어져 보였다.
「얕보였나 보네. 지금 눈앞에 있는 너도 결국 분신이잖아」
「그거야 얕볼 수밖에 없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피를 빨아먹는 게 다인 가짜 오니가 본고장의 오니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하핫, 착각도 심하셔라. 나를 너희 같은 하등한 요괴의 아종 따위라고 생각하지 마.
이 동방의 땅에서 쓰이는 통칭만으로 본질조차 오해하는 경박함.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말도 안 나오네」
「넌 「오니鬼」가 아니냐? 그럼, 넌 뭐지?」
「알려줄게──」
레밀리아는 비웃었다.
그 등 뒤로 박쥐와도 같은 검은 날개가 펼쳐진다.
오니가 뿔을 가졌듯이, 레밀리아만이 가진 칠흑의 날개.
마치 보름달의 영향을 받은 레밀리아 자신의 힘을 나타내듯이, 평소보다 더욱 거대한 모습을 뽐내는 날개가 일대를 위협한다.
「나는 「붉은 악마」 나는 「불사의 여왕」 나는 「괴물」──근대 서양의 어둠을 지배한 스칼렛 가문의 현당주인 내가, 구식 요괴 따위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버리시지!」
「웃기지 마라, 계집년이!!」
레밀리아의 강한 도발에 참지 못한 오니가 덤벼들었다.
스이카의 옆에 서있던 오니다.
빼빼 마른 남성적인 체격을 가진 오니였으나, 두 팔만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쭉 뻗으면 그야말로 한 자루의 창.
예리한 손톱이 돋아난 손가락을 한데 모으면, 그 끝은 그야말로 창날이나 다름없다.
그 팔을 레밀리아의 심장을 향해 내지른다.
레밀리아는 회피할 생각조차 없다는 듯, 그 일격에 꿰뚫렸다.
상처에서 마치 분수처럼 피가 뿜어졌다.
「좋아, 당신의 「도전」을 받아줄게」
역류하는 피를 입으로 흘리며, 레밀리아는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럼, 스펠카드 선언──」
「이럴 수가!」
느긋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그 동작은 적에게 있어선 틈 투성이였다.
카드를 꺼내려고 하는 레밀리아의 팔을 오니의 손톱이 잘라낸다.
심장을 꿰뚫은 팔을 뽑아, 자유를 되찾은 두 팔로 동시에 배를 찌른다.
체구가 작은 레밀리아의 몸은, 혈액과 함께 내장을 쏟아내며 그 팔에 두 쪽이 났다.
처참한 광경이다.
지탱할 힘을 잃은 하반신이 그대로 땅에 풀썩 떨어지고 한 쪽 팔을 잃은 상반신은──그대로 오니를 내려다보듯이 허공에 떠있었다.
「피라미들은 승부를 서두르려고 하니 품위가 없는 법이지」
레밀리아는, 어느새 피를 흘리는 입으로 스펠카드를 물고 있었다.
「뭣이!?」
「뭐, 좋아. 환상향의 규칙을 무식한 오니에게 가르쳐줄게. 첫 째, 선언은 우아하게──홍부 「불야성 레드」」
레밀리아가 선언한 순간, 자신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형상을 한 마력이 솟아올라, 밀착해있던 오니를 집어삼켰다.
불길의 색으로도, 피의 색으로도 보이는 진홍색 섬광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하늘높이 날아간 오니는 잠시 뒤 땅에 떨어졌다.
스펠카드로 발위한 기술임은 틀림없으나, 탄막놀이에서 사용되는 비살상용이 아니었다.
압도적일 정도의 파괴력.
그 공격을 뿜어낸 레밀리아 자신은, 쓰러진 오니와 대조적으로 입었던 데미지가 전부 나아 있었다.
보름달 아래서의 흡혈귀가 가진 불사성은 굉장하다.
잘려나간 하반신을 이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처음부터 재구축하여, 레밀리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있었다.
「대단한걸, 입을 놀린 만큼은 돼」
싸움을 바라보던 스이카는 태평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엔 두려운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얕보고 있다고 밖엔 생각되지 않아, 스펠카드 선언인지 뭔지. 처음부터 그 기술을 썼으면 됐을 텐데. 빈틈을 잔뜩 내보여주다니, 일부러냐?」
미소 속에 숨겨진 스이카의 초조한 심정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능력의 차이 탓에 밀려버렸으나, 실전에서 올바른 것은 먼저 덮친 오니 쪽이다.
일부러 스펠카드를 선언할 틈이 있다면, 그 사이에 공격을 하는 게 낫다.
아니, 좋든 아니든, 그게 진정한 의미의 「전력」이다.
즉, 레밀리아는 대충 상대한 것이다──라고. 스이카는 그렇게 파악했다.
그리고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스이카의 분노를 무시하며, 레밀리아는 비웃음과 내려다보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얕보냐고 묻는다면, 얕보고 있어. 일부러냐고 묻는다면……그 말이 맞아, 일부러야」
「뭐라고?」
「이봐, 오니. 너희, 싸움을 걸러 온 거 아니었어? 이 환상향의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날뛰러 온 거잖아? 그런 너희들의 하등한 행동에 내가 굳이 어울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레밀리아는 정말로 바보 같다며 코웃음 쳤다.
길게 찢어진 초승달 같은 입에서 긴 혀가 튀어나온다.
「바보들, 멋대로 재롱떨어봐. 나는 내 룰로, 내가 지켜야 할 긍지로, 너희들을 상대해줄 테니」
「네 녀석……」
스이카가 억눌린 것 같은 목소리를 흘린다.
오니라는 종족 자체를 하등종족 취급하는 레밀리아의 행동에 화가 난 것이다.
그러나 스이카는 그와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오니 특유의 감성일지도 모른다.
오니가, 웃는다.
「알기 쉬워서 좋군! 그 얄팍한 카드와 너의 긍지를, 오니의 주먹으로 쳐부숴주마!」
「좋아, 상대해줄게! 다음 스펠카드는 이거야!」
양팔을 펼친 레밀리아는 다시 심하게 과장된 몸짓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빈틈이 가득하면서도, 웅장한 모습.
허세 가득한, 의미 없는 우아함.
하지만 그 모습엔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적어도, 이 장소에 있는 오니를 제외한──환상향의 거주자들은 레밀리아가 스펠카드를 치켜드는 그 모습에 매료됐다.
특히 그 중에서도, 레밀리아를 올려보는 유카리의 눈엔 존경조차 엿보였다.
유카리는 미소 지었다.
오니가 습격해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뒤 처음으로 짓는, 여유 넘치는 미소였다.
유카리는 지금 확실하게, 레밀리아 스칼렛을 대등한 존재라고 인정했다.
「자, 이 레밀리아 스칼렛에게 도전하고 싶은 오니는 앞으로 나와라!」
레밀리아의 외침에, 스이카만이 아니라 다른 오니들도 외치기 시작했다.
「것보다─! 우리들을 얼마나 얕봐야 속이 시원한 거냐! 이래서 딴 나라 요괴 놈들이 싫단 말이지!」
「두목, 나한테 맡겨줘! 저 짝퉁 오니 새끼의 대갈통을 깨부숴주겠어!」
「기다려, 나부터다! 내가 먼저라고!」
「멈춰라 새끼들아! 아직 나와의 승부가 끝나지 않았어!!」
불야성 레드를 맞고 리타이어 했다고 생각한 오니까지 일어섰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나, 상처는 가죽에만 상처를 남겼을 뿐, 치명상은 아니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전혀 봐주지 않고 내뿜은 전력을 담은 일격이었다.
그걸 제대로 맞고도, 일어섰다.
레밀리아는 오니라는 종족이 가진, 무서울 정도의 단단함을 실감했다.
──이런 녀석들이, 백 마리나 있다고!
그러나 그 속내를 결코 겉으로 들어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여유롭게, 강대한 적의 무리에게 손짓한다.
「서로 싸우지들 말지 그래, 꼴불견이야. 나 같이 고귀한 귀족과 촌스러운 토착민은 너무 격이 달라서 탈이라니까.
자신의 의지로 내 긍지를 쳐부숴봐, 완벽한 원을 그린 이 밤의 달을 넘겨, 이 내 숨통을 물어뜯어 보시지──!」
뿜어져나오는 레밀리아의 마력이, 보름달을 붉게 물들인다.
오니가 주먹을 치켜들고 포효하며, 스펠카드 선언이 그 포효에 맞서듯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