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40「세계」
모처럼의 휴일답게, 온 거리가 수많은 인파와 차들로 뒤덮인 도시.
거대한 TV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거리의 잡음이 섞여 무질서한 혼란을 낳는다.
넓디넓은 저 창공과는 대조적으로, 이렇게나 발달한 문명 속에서 새로운 습성을 익히기라도 한 듯, 사람들은 비좁은 공간을 답답하리만치 가득 채운 채 생활하고 있다.
그런 군중들 속에서, 홀로 활보하는 여자가 있다.
묘하게 눈길을 끄는 여성이었다.
딱히 화려하게 꾸민 것도 아니고, 눈에 띌 만큼 이상하게 걷지도 않는다.
수수한 색깔의 청바지를 입고, 가죽잠바를 셔츠 위에 걸쳤을 뿐인 복색.
그녀의 두 손은 그 잠바의 주머니에 넣어져 있었고, 오른팔엔 작은 편의점봉투가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통행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보도 구석에서 걷는 여성.
남들보다 걸음이 약간 빠른 것은, 그녀가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리가 긴만큼 보폭이 크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높여 통화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럼에도 앞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그 여자를 보면, 곤란하단 표정으로 올려다보곤 지나친 뒤에 반드시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 했다.
여자치곤 커다란 키.
신장이 일본인의 평균 신장을 분명히 웃돌고 있기에 군중 속에서 홀로 머리 하나가 삐죽 나와 있는 듯 보일 정도였다.
펑퍼짐한 잠바 탓에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알 만한 사람이 본다면 단련된 근육 탓에 체격이 한층 더 크게 부풀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보기 드문 여성 보디빌더나, 아니면 프로레슬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자가 시선을 끄는 건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보라색 리본에 한 가닥으로 묶인 어깨길이보다 약간 더 긴 흑발이,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등에서 흔들린다.
머리 위엔 야구모자가 씌어져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챙 밑으로 눈매가 감춰질 정도로 눌러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전부 숨길 순 없는 법.
무엇보다, 그 키 탓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를 올려다보게 되기에 결국 얼굴이 드러났다.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흉한 얼굴은 아니다.
오히려, 길게 째진 눈매나 오똑 선 코를 보자면 미인의 부류에 들어가는 여성이다. 만약 더 사근사근한 몸매였다면, 그 큰 키 덕에 모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아름다운 얼굴 위에 새겨진 것들이었다.
무수히 아로새겨진 작은 상처들, 그중에서도 더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왼뺨에서 눈가까지 찢겨진 흉터였다.
지금은 꽤나 나아진 듯 보이는 상처.
하지만 대체 어떻게 다쳐야 저런 흉터가 생기는 건지. 평화로운 일본에 사는 사람들에겐 낯설고, 묘하게 눈에 띄는 상처였다.
그 상처가, 그녀의 미모에 대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무표정 일색인 입가에 이르러선, 뽑힌 칼 같은 예리함과 싸늘함이 느껴졌다.
여성의 외모나 인상으로 볼 때 싸운 게 원인인 듯 보였으나, 단순한 나이프에 베였다고 생길만한 상처가 아니다.
──뭔가 사고라도 당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역시 싸워서 생긴 걸까.
──설마, 짐승한테 덮쳐지기라도 한 건가.
스쳐지나가는 통행자들은 멋대로 그런 상상을 하면서, 부담스럽다는 듯 여자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본인은, 자신에게 향해지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깨달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묵묵히 발을 놀릴 뿐이다.
이윽고 여자가 도착한 곳은, 넓은 공원이었다.
설비가 충실히 갖춰진 한가운데 연못에는 타고 놀 수 있는 보트까지 마련되어 있다.
오후가 되어 약해진 햇볕은 나무 사이사이를 통과하여 땅에 얼룩무늬를 수놓는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발을 디디자, 그 선을 경계로 소란스런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여유로움이 한껏 느껴지는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시간이 시간이기에 지금 있는 건 노인들이나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들 뿐.
평화로운 공원 안에서, 여성에게 향해지는 호기심 깃든 시선은 훨씬 적어져 있었다.
공원에 들어가 연못으로 향하니, 딱 나무 그늘이 길게 진 장소에 벤치 몇 개가 늘어서 있다.
그 벤치 중 하나에 앉아 있는 인물을 향해, 여자가 걸어간다.
앉아있던 인물은,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는 소녀였다.
남자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여자와는 달리, 비교적 여자다운 원피스와 가디건을 함께 갖춰 입은 소녀.
소녀의 여린 몸매와 점잖은 외모까지 함께하니, 나이에 걸맞은 귀여움이 돋보였다.
쾌활한 표정으로 손에 쥔 책에 집중하던 소녀는 점점 다가오는 여자를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 소녀 옆에, 여자가 말없이 자리를 잡는다.
한 벤치에 앉은 두 명의 조합은 기묘해보일 뿐이었다.
외모로 연령을 추측하건데, 부모자식, 혹은 나이차가 많은 자매로도 보였다.
하지만 체격은 물론, 생김새조차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
그야말로 짝짝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다행스럽게도 그녀들 주변엔 없었다.
「아, 왔군요. 수고했어요」
여자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녀는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맞장구를 쳤다.
갑작스런 반응이었지만, 여성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봉투 속에 든 물건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이상한 손이었다.
손등도 손바닥도 온통 상처투성이.
손가락에 이르러선 한 번 잘라버린 뒤에, 다시 이어 붙여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몇 번이나 골절되었던 듯, 모양까지 비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참혹하단 느낌이 드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셀 수도 없이 두 손을 빽빽 매운 상처 아래에는, 울퉁불퉁한 바위를 연상케하는 주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러졌다 낫기를 반복한 결과 굵어진 뼈를, 딱딱한 살로 뒤덮고, 그 위에 두꺼운 고무 같은 피부를 덮어씌운 주먹.
상처는 그 주먹의 겉면을 마치 숫돌로 갈아내어 연마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런 상처가 나는 건지, 평범한 사람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손이었다.
만약, 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숨기고 있지 않았다면, 얼굴의 상처보다 더 많은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이런 손이 만들어진단 말인가.
이 손은, 뭘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보는 사람들에게 강한 호기심과 공포를 부여할 만큼 인상적인 그 손이, 어디서나 볼법한 편의점 봉투를 벌렸다.
봉투 속을 뒤적이며 여자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오렌지 쥬스로 부탁드려요」
소녀가 그녀의 말을 막아서듯 대답했다.
여자는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봉투에서 나온 것은, 소녀가 말한 오렌지 맛 캔 음료수였다.
책갈피를 끼우고 펼쳐진 책을 덮은 소녀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받고난 뒤, 노려보듯 가만히 바라본다.
관찰하듯이, 아무런 특징도 없는 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핀다.
이윽고, 소녀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여는 거죠?」
신묘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소녀의 모습에, 그런 소녀를 바라보던 여자의 무뚝뚝한 얼굴이 작게 일그러진다.
그런 반응이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캔을 내미는 소녀였지만, 여자는 말없이 그것을 받았다.
탭을 당겨 입구를 열고는, 다시 소녀에게 캔을 돌려준다.
「고마워요……」
소녀는 부끄럽다는 듯, 캔에 입을 대고 내용물을 홀짝이는 소녀.
그 모습을 본 여자 또한 봉투에서 자기 몫의 음료수를 꺼냈다.
이쪽은 병에 든 탄산음료다. 뚜껑을 돌려서 따는 타입의 음료였다.
하지만 여자는, 어째서인지 그 병을 거꾸로 들어올렸다.
그리곤, 반대쪽 손으로 병의 바닥 부분을 잡곤, 비틀었다.
원래 그렇게 열어야 하는 뚜껑 부분은 아래쪽을 향해 있다.
하지만, 빠각 하고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병이 열렸다.
잡고 있던 병의 바닥 부분이, 원래 그런 구조였다는 듯 깔끔한 단면을 드러냈다.
바닥이 사라진 병을 잡은 여자는, 그대로 들어 올린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광경을 처음부터 바라보던 소녀는 놀랍지도 않은 듯, 오히려 기막히단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탄산음료를 원샷해서 목이 아프다니, 바보도 아니고」
「──」
「함부로 만화 흉내를 내서 그런 거잖아요」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오렌지 쥬스를 한 모금 홀짝였다.
여자가 크게 트림을 하더니,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코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모금.
그렇게 캔을 한 손에 든 채,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본다.
공원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이나, 보트를 타고 노는 가족들.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며, 비행기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 구름이 길게 뻗어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거리의 소음.
차의 소리.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
──이 모든 것이 소녀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본 적 없는 풍경.
들은 적 없는 소리.
그리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세계.
하늘의 넓이만은 어디서든 변함없지만, 이 공원에서마저 느껴지는 숨이 막힐 정도의 답답함.
그 소녀──코메이지 사토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지친 듯 한숨을 내뱉는 사토리.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요?」
「모르겠군」
사토리의 혼잣말에 대답한 것은, 마찬가지로 낙담하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던 선대였다.
◆
「레이무 녀석──」
하쿠레이 신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스이카가 투덜댔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레이무를 향해 혼잣말을 한 것이었다.
「오니한테 잡심부름을 시키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스이카는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겉모습은 어려보이기만 하는 스이카와 비슷한 크기를 자랑하는 짐.
하지만 보이는 것만큼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보따리 속에 든 것은 두 장의 이불이었기 대문이다.
「─어이, 레이무─」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선 스이카는 마당을 지나서 툇마루에 간신히 도달했다.
마침, 마루 청소를 끝마친 레이무가 고개를 든다.
「다녀왔어」
「어서와」
대답을 돌려주는 레이무의 모습에 약간 기분이 좋아진다.
신사에 돌아올 때마다 꼭 주고받는 이 인사는 스이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불은 얻어 왔어?」
「응. 근데 이거, 재고로 쌓인 낡은 거라던데」
「공짜로 준 거니까 됐잖아」
스이카가 매어 온 이불은, 마을에 있는 이불가게에서 받아온 물건이었다.
레이무가 먼저 교섭을 한 뒤, 오늘 스이카가 받아온 것이다.
「레이무 너, 대체 어떤 거래를 한 거야?」
「딱히 별 거 없어, 그 가게 사람의 후의지. 난 하쿠레이의 무녀니까」
「그러고 보니, 이 신사에 세전이 안 들어오는 것치곤 생활하는 데 힘들어보이진 않아. 무녀한텐 그런 특권이라도 있어?」
「권력 같은 게 아냐.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을의 사람들의 후의일 뿐이지. 물건 살 때 덤을 얹어주거나, 남는 고기나 야채를 주는 거. 뭐, 특별히 요괴 퇴치 보수를 돈으로 받기도 하니까 금전이랑 아주 관계없이 살고 있진 않아」
보따리를 펼친 레이무는 재빨리 그 이불을 말리기 시작했다.
바지랑대엔 이미 두 장의 이물이 널어져 있었다.
지금 가져온 것을 포함해, 네 개의 이불이 나란히 걸렸다.
지금 하쿠레이 신사에서 사는 건 무녀인 레이무와 식객 취급 중인 스이카 단 둘 뿐이다.
그 스이카조차 아무 말도 없이 휙, 하고 나가선 밤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고. 있다고 해봤자 지붕 아래서 자는 일은 그다지 없다.
실질적으로 이불을 쓰는 건 레이무 뿐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겠는데, 왜 이불을 네 장씩이나 준비한 거야?」
햇볕에 쬐이고 있는 이불을 바라보며, 스이카가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늘이 선대가 묵으러 오는 날이란 건 알아」
한 달에 한 번, 선대무녀는 레이무를 만나기 위해 신사에 방문한다.
스이카 또한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원래 있던 이불 두 개로 충분하잖아?」
「다른 하나는 네 거야. 고마워하도록 해」
「뭐!? 아니, 고맙긴 한데……다른 땐 저 이불을 못 쓰게 했잖아」
「저건 어머니 전용이니까 안 돼」
「레이무는 상냥한 건지 짠돌이인 건지 모르겠어」
「그야 물론 상냥한 거지」
태연히 단정 짓는 레이무를 보며, 스이카는 묵묵히 어깨를 들썩였다.
방금 막 닦인 툇마루에 걸터앉고는, 그대로 드러눕는 스이카.
물이 마르기 시작한 마루의 서늘함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어머니가 데려오는 손님도 포함해서, 네 개」
「그렇구나─」
질문에 대답한 레이무도 스이카를 따라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작은 기둥을 사이에 둔, 스이카의 바로 옆자리였다.
어느새 이 둘은 그 거리가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친해져있었다.
「저기, 레이무」
「응?」
「방해꾼이 둘이나 있어서, 귀찮지 않아?」
「방해꾼?」
「그러니까, 모처럼 가족끼리 만나는 자리에 나랑 그 손님이라는 건 없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괜한 배려야」
레이무는 쓰게 웃었다.
전부 함께 살며 깨달은 것이지만, 이 오니는 의외로 세심한 부분에서 걱정이 많다.
「난, 이제 아이가 아니니까」
레이무가 대답했다.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레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 레이무의 옆모습을 뒹굴 거리며 바라보던 스이카는, 이윽고 레이무와 자신 사이를 막은 기둥에 시선과 흥미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이 기둥에 난 상처는 뭐야?」
툇마루의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에는, 자그마한 상처가 여럿 나있었다.
하쿠레이 신사는 수많은 무녀들이 대대로 살아온 낡은 건물이다.
기둥만이 아니라 이 건물 어디에 상처가 있든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툇마루에 있는 몇 개나 되는 기둥 중에서, 스이카가 보고 있는 이 기둥에만 이 자그마한 상처가 나 있는 것이다.
노화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상처로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칼로 그어놓은 것 같은 흔적.
게다가, 꼭 눈금처럼 모든 상처가 기둥과 수직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 부자연스러움 탓에 스이카의 눈에 띈 것이다.
「아, 그거 말이구나」
스이카가 가리킨 상처를 본 레이무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건 옛날에 어머니가 낸 거야」
「선대가?」
「그래. 내가 아직 어릴 적에 말이지, 기둥을 써서 키를 재선 기록하셨거든」
「기록이라니……뭐 하러?」
「어머니는 「성장의 기록」이라고 말했어」
「키를 재기만 할 거면 일부러 집의 기둥에 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어머니가 그걸 바랐으니까」
「그건 또 왜?」
「글쎄, 왜 그런 걸까──」
레이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기둥을 마주봤다.
기둥의 상처는, 대부분 레이무의 허리춤에 몰려 있었다.
「여기가 10년 전의 나. 여기가 9년 전의 나」
그 상처들을 아래로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레이무.
「이런 식으로 예전의 나보다 키가 컸다는 걸 알면, 왠지 기뻐져」
그런 레이무의 얼굴에는, 꽃이 피어나는 듯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일부러 기둥에 상처를 내가며 키를 잴 필요성과 그것에 구애된 어머니의 진심은,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찍이 품었던 그 의문은, 이젠 거의 사라질 만큼 희미해져 있었다.
이제 와서 어머니에게 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려니 할 뿐이다.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의미는 있었으리라고 레이무는 혼자 납득했다.
성장해서, 기둥의 상처를 볼 때마다, 그것을 실감한다.
「……그래」
스이카는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정을 레이무의 표정을 보고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성장하는 인간과는 달리, 요괴인 스이카로선 레이무에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것이라면 알 수 있다.
「레이무한테 있어서 재산이라는 건, 돈이나 물건이 아니라, 이 집 그 자체구나」
스이카는 납득이 간다는 듯 끄덕였다.
그리고 빙긋, 하고 미소 짓는다.
「레이무는 뭔가 은둔자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런 인간다운 집착이나 애착심이 제대로 남아있었구나」
「그거 칭찬이야?」
「물론이지! 뭐야, 귀여운 면도 다 있네」
「……왠지 화가 치미네」
「너무 열 내지 마. 놀린 것처럼 들렸으면 용서해달라고.
나는 말이지, 요괴 퇴치를 할 때엔 인정사정 안 보는 오니 같은 레이무가 어머니를 대할 때만 나오는 그런 평범한 인간 같은 일면을 좋아해」
「아 그러셔」
싱글벙글 미소 짓는 스이카의 고백을 그냥 놀리는 것이라 판단한 레이무는 단번에 말을 끊었다.
집착이나 애착이란 것은, 스스로로서는 잘 모를 감각이다.
스이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고, 착각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자신이 이 신사를 좋아한다는 것뿐이었다.
약간 거친 다다미가 깔린 거실을 보면,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며 보내온 시간들이 생각나서 좋아한다.
낙엽이 떨어진 마당을 보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좋아한다.
펼쳐진 식탁을 보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식사의 맛이 생각나서 좋아한다.
내 신발밖에 없는 현관을 보면 어머니가 외출하셨을 때의 외로움이 생각나서 좋아한다.
이곳에는, 자신의 중요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의 새로운 가족과 보낼지도 모를 미래 또한 이곳에 있다.
──레이무한테 있어서 재산이라는 건, 이 집 그 자체구나.
재산이라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며 소중히 쌓아가다가, 마지막엔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
사람에 따라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레이무에게 있어서, 재산이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이카의 말만큼은 확실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신사는 자신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재산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아, 소중히 지켜가야 하는 것이다.
「스이카」
「왜?」
「고마워」
「응? 뭐, 천만에」
잘 모르겠다는 듯 되돌아온 스이카의 적당한 맞장구에, 레이무는 홀로 쓰게 웃었다.
가족이라고 하니, 이 기묘한 식객 또한 지금은 가족일지도 모른다.
서로 내킬 때나 함께 식사 자리를 함께하는 정도의 관계를 가진 스이카지만, 다음부턴 내 쪽에서 먼저 권해 봐도 좋을지도 몰라──라고 레이무는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 흘렀다.
청소를 끝내고 이불 또한 깨끗하게 말려서 준비를 완료했으니, 이젠 어머니와 손님이 방문하길 기다릴 뿐이다.
「그러고 보니」
둘이서 함께 툇마루에서 멍 때리고 있을 쯤, 스이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대가 데려온다는 네 명째는 누구야?」
레이무가 대답했다.
「코메이지 사토리」
◆
「흐음」
사토리는 서재에서 종이 한 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방은 평소 지저 관리를 위한 사무를 하기 위한 곳으로 대체로 혼자 있는 일이 많다.
서류를 쓰거나 아니면 이쪽으로 온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있는 방이다.
하지만 지금 사토리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글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인물의 전신상을 그린 그림이다.
사토리가 잉크와 펜만을 가지고 그린 러프였다.
「잘 그린……걸까요?」
자신이 없다는 듯, 사토리가 중얼거렸다.
애당초 「잘」과 「잘못」의 경계조차 모른다.
이 환상향에서 보자면 낮선 인상을 주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법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사토리가 그린 그림의 화풍은 그린 본인조차 보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만화적」인 일러스트라고 불러야 할까.
사토리는 손에 들린 그림에서 눈을 돌려 책상 위에 펼쳐진 다른 종이들을 바라봤다.
종이들엔 전부 인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대상 또한 달랐다.
하지만 똑같은 만화 같은 그림체로 그려진 일러스트라는 점은 같았다.
사토리 자신이 심심풀이로 시작하여, 약 한 시간쯤 걸려 그린 그림들이다.
대충 완성한 그림이긴 하지만, 이걸 봐도 자화자찬은커녕 완성도에 대한 납득도, 불만도 느끼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진심이다.
사토리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전부 남──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대──의 영향 탓이 컸다.
발단은, 저번에 선대가 지령전에 찾아왔던 날이었다.
리얼 쉐도우라는 이름의 영문 모를 바보 같은 수련을 본 뒤, 방에서 수다를 떨 때였다.
『잘 그린다! 사토링, 그림 엄청 잘 그려! 만화가 할 수 있는 거 아냐!?』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생각에 그린 그림에, 선대는 과장이라 생각될 만큼 마구 칭찬을 퍼부은 것이다.
물론, 마음의 소리로. 요컨대 지나치게 진심이 가득 담긴 칭찬에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현재, 그림에 대한 평가는 선대만이 해주고 있기에, 객관적으로 정말 잘 그리는 건지 어떨지 자신할 순 없었지만, 그린 소재가 선대에겐 특히나 잘 먹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대의 기억에서 본 만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그렸다.
이제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 말곤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만화가 실제로 종이에 그려진 것을 보고 흥분한 듯했다.
이미지든 실제 종이든 내용은 어차피 같은 것 아니냐고 생각한 사토리였지만, 선대 입장에선 상당한 차이를 가진 듯 보였다.
어쨌든, 굉장히 까불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런 그녀를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칭찬 받으니 나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사토리는 선대의 부탁에 따라 몇 장이고 그림을 그렸고──그렇게 지금에 이른다.
그때 피어오른 이상한 열기는 식었지만, 여유가 생겼을 때 문득 자기도 모르게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아졌다.
딱히 그림 그리는 게 좋아진 건 아니고, 취미로 삼을 생각도 없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는 것이다.
뭘 확인할 생각인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건지 신경 쓰일 때가 있긴 하다.
사토리로선 그저 상상을 종이에 그대로 베껴서 열심히 선을 따라 그리는 정도의 느낌이었기에, 그다지 익숙지 않은 화풍의 그림을 새삼스레 신기하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다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게, 선대의 기억 속에 있는 「우리」군요……」
만화적인.
애니메이션적인.
혹은──게임적인.
사토리는 선대의 기억 속에 있는 「동방 프로젝트」라 불리며, 게임으로서 온 세계에 퍼진 세계관에 대한 생각에 몰두했다.
세상이라고 해봤자,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환상향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 이 환상향을 둘러싸고 있을 바깥세계도 이곳과는 틀리다.
말하자면, 이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란, 도대체 뭘까?
이웃 마을처럼 가깝지도 않고, 지상과 지저처럼 나뉘지도 않고, 천국과 지옥처럼 딴판인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이세계」.
선대의 말을 빌리자면 「이차원」과 「삼차원」인 것이다.
선대의 진심을 처음으로 읽어냈을 때, 분석이나 고민하기를 그만뒀었지만, 이렇게 그림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괴는 인간의 환상에서 태어난 존재. 자신은 선대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환상에 대해 현실적인 시선으로 고민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단언했다.
──그걸로 자신은 납득했고, 지금도 의문스러운 점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있자니 생각나고 만다.
──선대가 「지금의 세계」에 오기 전까진, 그녀에게 있어서 우리의 존재는 「이 그림」 그 자체였던 것이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점점 사고가 소용돌이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별 생각 없이 그린 그림 속의 인물은, 그저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존재.
단순한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림일 뿐이지, 모델이 된 인물 본인이 아니다.
이 그림 속의 인물에게 개성이 있고, 의지가 있고, 하물며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 보통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 있다.
다른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환상향이란 이름 아래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란, 대체 뭘까요?」
사토리의 독백은, 아무도 없는 방의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노크 소리를 들은 사토리는 그제야 제정신을 차렸다.
딱히 남이 봐도 곤란하진 않았지만, 당황하며 손에 든 종이와 책상 여기저기에 퍼진 그림들을 주워모으며 대답했다.
「누구죠?」
「요우무입니다. 나가신다고 말하셨던 시간이 됐기에,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문 너머에서 대답한 것은, 요 수개월 동안 지령전에서 살며 사토리를 돕는 것이 완전히 몸에 익어버린 요우무였다.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사토리가 들어오란 허가를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가를 내려주지 않은 이유는 딱히 없었고, 그저 사토리가 깜빡하고 있을 뿐이지만, 요우무는 멋대로 방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백옥루에서 유유코를 돌봐왔기 때문일까, 주인에 대한 예절이 가득 차 넘칠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구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지령전에서 일하게 된 뒤, 도움이 된 적은 있어도, 문제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 아……예. 지금 가죠. 고마워요」
「아니요. 짐은 이미 현관에 옮겨뒀습니다」
「……고마워요」
문 앞에서 요우무의 기척이 말없이 떠나가는 것을 느낀 사토리가 한숨을 내뱉었다.
요우무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사토리 자신이 아무리 지나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할까, 일에 너무 진지하게 임하는데다, 하는 것도 너무 잘한다.
애완동물을 돌본 적은 있어도, 남에게 도움 받아본 적은 없는 사토리로선, 요우무는 감당키 힘든 존재였다.
오린은 자신의 애완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아이지만, 제대로 된 하인을 곁에 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요우무를 주웠을 때엔,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라 예감했다.
예감은, 바로 현실이 되어 찾아왔다.
일단 폭풍이 한 번 몰아친 뒤, 자신이 한 짓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요우무의 존재를 귀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더욱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대로 그냥 두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복잡한 기분이군요」
사토리가 투덜대듯 중얼 거렸다.
모아놓은 그림을 손에 든 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요우무의 말대로 나갈 예정이었다.
지상에, 그것도 하룻밤을 보낸 뒤 돌아올 작정이다.
새삼스럽게도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정해지고 말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토리는 다시금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방을 나오기 전에, 손에 들린 종이들을 꾸깃꾸깃하게 구긴 뒤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림을 바라볼 때에 떠오르던 수많은 생각이, 그때만큼은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
「실례합니다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추스르며 방문을 연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토리의 방에, 린이 발을 디뎠다.
사토리 본인이 지령전을 출발한 지 벌써 수 시간 째.
재빨리 방에 들어간 린은 수레의 뼈대에 달린 바구니에 쓰레기통 속 내용물을 전부 쏟아냈다.
정기적으로 지령전의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는 것이 린의 일이다.
방 자체의 청소는, 꼼꼼한 사토리가 부지런히 하고 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쓰레기를 회수한 린은, 재빨리 다음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토리의 서재에 있는 쓰레기들 중엔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서류도 많다.
폐기하는 서류를 보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린은 괜한 흥미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을 배려와 주인을 향한 커다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고로, 그것은 우연이었다.
손잡이를 눌러 수레를 세우려다가 문득 고개를 떨어트린 린이, 난잡하게 뒤섞인 쓰레기 속에서 그 그림을 찾아내버린 것은.
평소엔 자기 머리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잔뜩 쓰인 서류밖에 없었던 탓일까, 그 그림은 묘하게 린의 눈길을 잡았다.
「이거……이 몸인가?」
잔뜩 구겨진 종이를 펼쳐보니, 그것에 그려져 있던 것은 보도 듣도 못한 화풍으로 그려진 인물화였다.
게다가, 특징을 보건데 딱 봐도 자신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란 것을 린은 깨달았다.
「에, 사토리 님이 그림도 그리셨나!? 우와, 의외네─……」
무심코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린.
「게다가 잘 그렸어. 아깝네, 사토리 님은 왜 이런 그림을 버리신 걸까?」
처음으로 보는 그림이었지만, 린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아부가 아니라 정말로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모델로 그려주었다는 점도 기뻤다.
전부 한데 뭉쳐져 있던 종이를 풀어놓아보니, 다른 종이에도 전부 린이 알고 있는 인물들이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유우기는 둘째치더라도, 대화를 나눈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관계가 없는 다리를 지킨다는 여신이나 땅거미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이상했지만, 어느 그림이고 못 그린 것이 없었기에 린은 자기 할 일도 잊은 채 그림에 몰두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토리의 특기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이유로도 기쁨을 느꼈다.
안심과 가까운 느낌의 기쁨이다.
선대무녀와 관계를 맺은 뒤로, 주인에게 막연히 느껴왔던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사라져갔다.
「에헤헤, 다음에 사토리 님에게 부탁하면 이 몸의 그림을 새로 그려주실까?」
아무리 그래도, 사토리가 버린 것을 멋대로 챙길 생각은 없었다.
아깝지만, 이 그림은 이대로 처리하자.
다음에, 사토리 본인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마지막 그림을 보았을 때였다.
「에──」
린의 사고가 얼어붙었다.
「이건……오쿠?」
린의 혼잣말에는, 애매한 의아함이 섞여 있었다.
여태까지 본 그림은 전부 린과 사토리가 아는 공통된 인물 뿐이었다.
그것을 한눈에 보고 알 정도로, 잘 그려져 있었으며, 아주 비슷했다.
지금 보고 있는 그림 또한, 인물의 특징을 보건데 오쿠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비슷하다」 「닮지 않았다」라는 판단 기준을 들이대기 이전에, 린이 아는 오쿠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 여럿 있었다.
오쿠의 몸집이 지금보다 훨씬 커진 것은 차라리 좋다.
하지만, 오른팔의 팔꿈치부터 돋아난 이 거대한 봉은 대체 뭘까?
오른쪽 다리가 녹은 철 덩어리처럼 변해있는 것은 왤까?
왼발을 뒤덮은, 저 정체 모를 물체는 뭐지?
그리고, 가슴의 중앙에서 튀어나온 기분 나쁜 눈동자가 의미하는 건 대체──?
「어라, 이게……뭐야?」
린은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기괴하게 그려진 오쿠의 모습.
자신의 친구가, 주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인다는 것인가.
사라져가던 불안감과 두려움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주인을 향해, 품어서는 안 될 외경심.
「사토리 님……?」
린의 애절한 중얼거림에 대답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사토리가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 알게 될까봐 불안했다.
사토리가 오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무시할 순 없었다.
주인이 그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건지, 요만큼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시기에 갑작스레 지상으로 올라간 사토리의 진심이,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토리 님은, 대체 뭘 하실 생각이신 거야──」
◇
「구체적으로 뭘 할 건지, 한마디로 하자면 「걸즈 파티」다」
「……아 예. 뭐, 어떻게 부르든 상관은 없지만요」
아니면 「파자마 파티」라고 부를 수도 있어!
요컨대 신사에 묵으면서 모두 함께 꺄앗꺄앗우후훗 같은 느낌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하룻밤이 지나자, 어머나 놀라워라! 지령전과 하쿠레이 신사는 벌써 이웃지간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는 거지.
「그렇게 이상적인 전개가 가능할까요?」
……사토리. 그런 소극적이어서야 잘 될 것도 안 되는 법이야.
사람들과의 관계란, 대체적으로 자신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달린 거라고.
「그런데 저는 이것저것 오해 받는 게 많잖아요. 오해를 빼더라도 미움 받기 쉽상이고……」
그건 변명 아닐까?
할 수 없다고, 무리라고,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안 돼, 안 된다고! 포기해선 안 돼!
할 수 있어! 꼭 할 수 있어!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더 뜨거워지란 말이야……!!
뜨거운 피를 불태우라고……!!
인간, 뜨거워져야만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네버 기브업!!
「아니, 인간이 아닌데요……그것보다 뜨거워!? 에, 뭐야 이거 정말로 뜨겁잖아요!? 잠깐, 혼자 멋대로 분위기 내지 좀 마세요!」
어라, 사토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기 위해 불의 요정을 흉내 내다가 너무 흥분하고 말았다.
침착하기 위해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사토리에게서 약간 더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선 그 무엇보다 사토리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제안한 것도 나, 준비한 것도 나지만, 결국 레이무와 친해질 수 있을지 어떨지는 사토리 자신에게 걸려있으니까.
「알고 있어요. 일부러 지상까지 왔는걸요, 모처럼 온 기회를 낭비하고 빈손으로 갈 순 없죠」
사토리의 대답에, 나는 끄덕였다.
──나와 사토리가 함께 가고 있는 곳은, 하쿠레이 신사다.
목적은 「신사에서 하룻밤 자기」. 지저에서 사는 사토리 입장에선 1박2일 지상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까놓고 말해, 그것 말고 따로 할 것도 없었다.
월말마다 레이무를 보기 위해 신사에 방문하는 내 일정에 맞춰 함께 동행하게 된 것이므로, 하쿠레이 신사에 나와 사토리, 그리고 레이무와 있을지 모를 스이카까지 합하면 네 명이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묻는다면──그건 아까 말했다시피, 사토리 하기 나름이다.
애당초 사토리에게 받은 상담이라고 할지 푸념이라고 할지 모를, 어쨌든 그녀가 가진 문제들을 상담 받았던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사토리는 나에게 「일부 권력자들에게서 받는 미움과 오해가 위험해요」라는 고민을 꺼낸 것이다.
「 「선대 탓에」가 빠져 있어요. 아니면 「선대가 저지른 일 탓에」던가」
……그거, 중요해?
「아주 중요합니다」
아니……그래도 내가 원인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당신과 인연을 끊으면, 제가 짊어진 문제들이 반 이상 해결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만, 시험해봐도 괜찮을까요?」
나 때문에! 사토링이 유카리나 에이린에게서 엄청나게 오해를 사고 말았기에, 그걸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단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낸 해결책이 바로 「그럼, 우선 다른 권력자랑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차 오해를 풀어나가면 되잖아?」라는 겁니다!
──뭐, 요컨대 지상에서의 우호 관계를 넓히라는 소리였다.
이 방법의 시작점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사토리에게 편견을 갖지 않은 레이무였던 것이다.
「하쿠레이 레이무가 후보로서 적절하단 것은 인정해요.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지위에는 불평할 여지가 없고, 그녀의 성격을 보면 저에 대한 소문이나 선입관 같은 것에 끌려다닐 리 없겠죠. 당신을 동경하고 있으니, 첫 인사나 그 뒤로 교류하는 동안 당신이 도움을 주기도 쉽겠고요」
그러고 보니, 이렇게 태연한 사토리는 저번 연회가 열렸을 때 레이무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레이무와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숙박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왜냐면, 사토리와 레이무는 미래에 지저에 이변이 일어났을 때 서로 싸우기로 정해져 있으니까.
이때 만약 서로를 적대하고 있더라도 처음 보는 사이느냐, 아니면 아는 사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레이무는 아는 사람이 적이 돼도 자비가 없지만, 모르는 녀석이 적이라면 더 자비가 없다.
「확실히, 친해지면 손해는 보지 않을 상대군요……」
잘만 하면 적대 자체를 안 하게 될지도 몰라.
뭐, 나로서는 그런 손익 계산을 따지기 이전에 둘의 사이가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사토리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어지니까.
「저는 그 타산적인 쪽을 중요시하고 싶지만요. 경계하지 않도록 일부러 혼자서 올라온 거기도 하고」
그 「경계하지 않게끔 하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안 좋은 거 아닐까.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사토리가 나랑 있을 때처럼 평소 같은 태도로 레이무를 대한다면 자연스레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야.
「당신은 몰라요. 일방적으로 상대의 마음이 보이는 대화라는 게 어떤 건지──」
사토리는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확실히 나는 모른다.
사토리가 지저로 숨어들고, 그 지저에서조차 미움 받고 있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하려는 자세는 좋지 않다.
벌써 여기까지 와버린 거. 나도 되는대로 협력할 테니까, 사토리도 지금까지의 자신을 바꾸겠단 각오로 힘내줘.
괜찮아! 왜냐면, 레이무는 내 딸인걸!
나는 사토리의 어깨에 살그머니 손을 얹었다.
「……예, 알고 있어요. 당신의 선의와 딸을 향한 신뢰가 아플 만큼 느껴져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올려다보는 사토리의 얼굴엔, 아까와는 다른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음, 그 상태야.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건 즉 「1박2일 여행」이자 「파자마 파티」이며 「걸즈 파티」다.
지상의 관리자와 지저의 관리자가 회의를 여는 게 아니야.
함께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이불 속에서 서로 좋아하는 애가 누군지 몰래 가르쳐주면서 밤새 수다를 떨자는 것 뿐이야.
중요하게 여길 일은 하나도 없어.
마음 편하게 먹고 가자.
레이무와 친해지면 나는 기쁘겠지만, 일부러 의식해가며 행동할 필요는 없어.
나도 사토리에 더해 가족들과 함께 보낼 밤이 순수하게 기다려지거든.
옛날부터 살아왔던 그 신사에서, 사토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추억거리가 잔뜩 있어.
예를 들면, 레이무가 아직 어릴 때 이야긴데 말이지, 키가 얼마나 컸는지 재려고──.
「예이예이, 그건 오늘 밤 편하게 들을게요.
그나저나 이제와서 말하기도 새삼스럽습니다만, 마음을 편하게 먹는 건 좋은데……야쿠모 유카리에게 미리 말해두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응, 사토리라면 권력을 써서 혼자 지저에서 나올 수 있으니까.
입장만 따지고 보면 유카리랑 동등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니까, 허가에 대한 거라면 문제없다고 생각해.
「또 무슨 나쁜 계획이라도 꾸미는 건가, 하고 경계 받을 것 같은데요」
이제 와서 그런 게 신경 쓰여?
「……슬퍼지네요」
괜한 참견이나 방해라도 받았다간, 그땐 정말로 레이무와 교류를 나누는 데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사토리 본인이나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유카리의 오해를 풀 수 없다면, 일단 레이무와 사이가 좋아진 뒤에 제삼자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네요──도착했어요」
사토리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하쿠레이 신사의 마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오오, 정말로 왔어. 레이무의 감은 굉장하네」
아무 말도 없이 신사의 마당으로 이동한 레이무를 쫓아온 스이카는, 계단 저편으로 보이는 두 방문자를 찾아내고는,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돌계단을 느긋한 발걸음으로 올라오는 두 명 중,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키가 큰 선대였다.
그 다음, 약간 늦게 사토리의 작은 몸집이 드러났다.
희귀한 것을 봤다는 듯, 스이카가 휘파람을 불었다.
「코메이지 사토리가 선대무녀와 밀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구나」
「표현이 불온하잖아」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둘 다 꽤 잘난 입장을 가진 사이니, 무슨 억측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어」
「어머니는, 이미 은퇴하셨어」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잘 알아」
「너도 그 현장의 중심에 있었으니까.……어머니한테 싸움 걸면 안 된다?」
「그 결판에 후회도 미련도 없고, 화근도 남기지 않았어. 놀이 수준의 결투라면 해보고 싶단 마음은 있지만」
일찍이 사투를 벌인 끝에 패배한 선대를 앞에 두고서도, 스이카는 쾌활한 표정으로 단언해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대와 싸운 것은 여기 있는 이 이부키 스이카가 아니다.
그녀의 힘과 육체를 나누어준 또 다른 스이카다.
그 반신의 패배와 죽음에 의해, 스이카는 힘과 영혼의 반을 잃고 말았다.
그것이 스이카 자신에게 정확히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당사자 말곤 아무도 모른다.
스이카가 그 싸움에 대해 말할 때는, 가슴 속 깊이 실감했다는 일면을 보이는 한편,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그때의 심경을 말하기도 한다.
적어도, 지금의 스이카가 선대에게 좋고 나쁜 감정이나 큰 집착을 품고 있지 않음은 확실한 듯 보였다.
레이무는 스이카의 옆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이윽고 홀로 납득한 듯 시선을 어머니를 향해 되돌렸다.
두 명은 계단을 다 올라와, 마당에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참배길이, 레이무와 스이카가 기다리고 있는 새전함 앞까지 뻗어 있다.
「그나저나, 이 일 유카리는 알고 있어?」
선대가, 레이무 일행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사토리를 데려온다는 거?」
사토리도 그것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단순한 인사만을 할 생각인 듯, 붙임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 유카리 녀석, 사토리를 엄청 경계하고 있으니까」
레이무는 주로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친구다」라고 했어」
이번엔 말로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천천히 다가오는 둘.
「실제로, 어떤 녀석인지 알려면 좋은 기회야」
어머니가 다가왔기 때문에 레이무는 스이카와의 이야기를 끝맺었다.
입을 연다.
여느 때처럼 「어서오세요,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환영한다.
환영하려 했다.
그 순간.
「──어머니!」
레이무의 감이, 이변을 감지했다.
온몸으로 느껴진 절대적인 위기감에, 레이무는 크게 외치며 경고한다.
그 위기가, 현실로서 일어난 것은 바로 직후였다.
땅이 격렬하게 떨린다.
땅울림과 함께, 하쿠레이 신사에 있는 것들 전부가 흔들렸다.
발을 디디고 있던 대지가, 갑작스레 붕괴하기라도 할 것 같은 흔들림이었다.
레이무나 사토리는 물론, 선대나 스이카조차 서있는 게 위태로워질 만큼 강력하고, 무엇보다 전조 하나 없는 갑작스런 지진이었다.
「뭐, 뭐야 이건!? 젠장, 누가 흔들고 있는 거야!?」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스이카가 크게 투덜댄다.
레이무는 그 말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한순간에 내린 판단으로 하늘로 떠올라 지진의 영향에서 벗어난 레이무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지진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 치곤 전혀 징조가 없었던 데다가, 주변을 보아하니 하쿠레이 신사를 중심으로 일정한 범위만을 국소적으로 덮치고 있다.
스이카의 말대로, 틀림없이 인위적으로 일어난 지진이다.
무엇이 목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지진을 멈추기 위해선, 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원흉을 어떻게든 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갑작스런 지진에 습격당했음에도 레이무의 사고는 재빨리 회전하며, 최적의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더욱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눈을 굴린다.
스이카도, 레이무를 보고 깨달은 듯 공중으로 피신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를 보니 흔들림에 버티지 못한 듯, 손으로 땅을 짚고 있었지만, 적어도 신변의 위험은 없다.
사토리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범위 안에 적의 모습은 없었다.
레이무는 더 크게 시선을 돌리곤──동요를 보이며 눈을 부릅떴다.
「신사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격렬하게 흔들리는 하쿠레이 신사.
마치 신사 그 자체를 일부러 노리고 있는 것만 같은 국소적인 진동에, 나무로 지어진 가옥이 삐걱이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붕의 기와가 벗겨지고 금줄이 끊어져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하쿠레이 신사가 고통에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는 듯이 보였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간, 신사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이다.
「젠장!」
레이무의 입에서, 드물게도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서 챙겨두었던 부적을 흩뿌리며 신사 전체에 결계를 둘렀다.
결계의 완성도와 술식을 완성시킬 때까지 걸린 속도는, 그 방면의 달인조차 칭찬할 정도였다.
지진이 건물에게 가하는 영향을 놀라울 정도로 상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찾아왔다.
노화가 크게 진행된 목조 건축물에, 무엇보다 건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무리 사방을 결계로 굳혀봤자, 지진의 충격은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만다.
「스이카, 너도 도와!」
레이무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뭐 하는 거야, 레이무!」
대답한 것은, 스이카가 아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틈새를 통해 나타난 유카리였다.
이상을 느끼고 어디선가 서둘러 온 듯했다.
이쪽 또한 거의 보이지 않던 동요와 초조함을 드러내며 레이무를 날카롭게 째려보고 있었다.
신사를 지키려 행동한 레이무의 판단을 꾸짖는 시선이었다.
「유카리! 도와줘!」
「이 지진은 어떠한 영적인 간섭에 의해 일어나고 있어. 눈에 보이는 흔들림보다, 하쿠레이 대결계에 가는 영향이 더 커!」
「그러니까, 이렇게 억누르고 있는 거잖아!」
「신사는 포기해. 그것보다 결계 쪽을──!」
「포기하라니, 웃기지 마──!」
유카리와 레이무의 의사가 엇갈렸다.
하쿠레이 신사는, 환상향과 바깥 세계를 나누어놓는 하쿠레이 대결계의 경계선에 세워진 곳이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그곳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며, 중요한 거점이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건물 자체에는 결계의 유지에 필요한 기능이 없다.
신사의 붕괴가, 결계의 파괴와 직결된 것은 아니다.
고로, 유카리는 결계를 중시하고, 신사 자체는 뒤로 미루었다.
그 판단과, 레이무의 인식은 반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다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명은 동시에, 또 다른 이변을 감지했다.
레이무는 유카리의 경고대로, 하쿠레이 대결계에 틈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유카리가 다루는 틈새와는 다른, 하쿠레이의 무녀에게만 보이는 「균열」과 같은 것이 주변의 공간을 침식해나간다.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다.
그리고 아마 이 지진의 힘으로 하쿠레이 대결계가 파괴될 리는 없다.
──그 판단이, 방심을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에 이르기까지, 레이무는 신사를 지키는 것을 우선했다.
결계의 균열이 아주 약간이나마 커진 것을 눈으로 좇다가, 시선을 옮겼을 때.
아직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그 주변의 결계가 작게 벌어져가고 있다는 것 또한.
「──! 어머니, 거기서 벗어나!!」
레이무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스스로의 감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레이무의 힘에 의해 유지되던 결계가 사라지는 것조차 무시하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가깝다고 생각했던 거리가, 이 한순간에서는 너무나 멀었다.
손이 닿지 않는다.
그 대신, 바로 옆에 있던 사토리가 선대의 손을 잡았다.
레이무의 마음의 절규를 듣고, 몸이 자극 받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녀 자신 또한 무슨 감이 든 걸까.
어쨌든, 그 행동은 무의미한 결과를 냈을 뿐이었다.
──레이무의 눈앞에서, 선대와 사토리의 모습이 무언가에 감춰지듯 사라졌다.
레이무가 외쳤다.
이번에야말로,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는 비명이었다.
레이무의 시선을 좇아, 그 둘이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한 유카리와 스이카 또한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무엇이 일어난 건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요, 반응마저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층 더 큰 지진의 충격이 파도처럼 그녀들을 덮쳤다.
술식의 행사가 중단된 불완전한 결계로는, 그 마지막 흔들림을 막을 수 없었다.
비통한 소리를 내며, 하쿠레이 신사가 무너진다.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이, 그곳에 깃든 추억과 함께 무너져가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레이무는 멍하니 바라봤다.
바로 아까까지, 어머니가 있었음이 분명한 장소를.
지금은 이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 어머니의 모습을.
◇
이래 봬도 산 있고 골짜기 있던 인생,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왔다.
철이 들 무렵엔 요괴의 산에서 방치 플레이.
평범한 인생에선 도전하기조차 꺼려지는 비현실적인 단련을 실제로 해냈다.
어느새, 바위를 맨손으로 부수기도 하고, 손에서 뭔가 빛나는 힘을 써서 공격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 힘을 사용해 수많은 요괴와 싸웠다.
죽을 뻔 했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 세계에서 게임 세계로 전생했다」는 가장 믿기지 않는 경험이, 내 근원에 존재한다.
이 날에 이르러, 나를 정말로 놀래킬 수 있는 사건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으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어깨너머로 사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처럼, 잠깐 기절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도 조금 전에야 정신을 차렸다.
갑작스럽게 신사를 덮친 그 지진을 지나 지금까지.
내가 기절하기 직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영향을 받아 기절한 것 같았다.
깨어난 내가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뺨에 닿은 딱딱한 바닥의 감촉이었다.
그제야 나는 어느새 난 기절해 있었고,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아니, 지금도 혼란스럽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상반신을 일으킨 나는 그 시점에서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격렬하게 흔들리던 땅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멈춘 건 둘째 치더라도, 문제는──.
「……뭐죠, 이 땅은?」
사토리도, 자신이 밟은 땅에 위화감을 느낀 듯하다.
이 딱딱한 감촉은, 흙이나 모래로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쿠레이 신사의 마당과 이어진 돌계단도 아니다.
아마, 사토리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내가 가르쳐주고 싶지만, 솔직히 나도 혼란에 빠져서 평소에 잘 움직이지 않는 입이 더더욱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사토리.
만약, 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을 읽고 이해해다오.
이건── 「콘크리트」라고 한다.
「……어디죠, 여긴?」
주위를 둘러보던 사토리는, 자신이 어떤 장소에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장소를 파악할 수 있을만한 지표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여기에는 하쿠레이 신사의 주변에 있던 나무가 한 그루도 존재치 않았다.
사람도 없다.
집도 없다.
원래 있던 장소 말고는 주변에 땅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꽤 높은 곳에 있는 것인지, 눈에는 머리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하늘에, 한줄기로 이어진 부자연스러운 구름이 선을 긋고 있다.
저것은 「항적운」이다.
「선대, 무슨 말이든 해줬으면 하는데요」
「……들리지 않는 건가?」
이쪽으로 다가온 사토리에게,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거리가 멀지는 않다.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려보니, 서서히 이 이상 상황을 이해한 듯, 사토리의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예, 당신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 대답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듯이 시선을 앞으로, 아니 아래로 되돌린다.
나는 지금,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땅바닥이 끊긴 위치에 서있었다.
우리들이 있는 높은 곳의 경계선이다.
낙하를 막기 위한 철제 「펜스」가, 그 경계를 따라 둘러져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모양새를 가진 울타리에 조심스레 손을 얹으며, 사토리는 그물코 사이로 나처럼 아래를 바라봤다.
「……대체 여긴, 어디죠?」
멍하니 중얼거린 사토리의 두 번 째의 질문에, 역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애당초 믿기질 않았다.
사토리, 침착하고 들어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일단 내가 침착해지기 위해서라도 들어줘.
우리들이 지금 있는 곳은 「빌딩 옥상」이야.
그리고, 저 아래 있는 곳이 「시가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건 「차」랑 「오토바이」라는 거고, 돌기둥은 「전신주」라고 하는 것이며, 강도 없는 곳에 만들어진 다리 같은 생긴 저건 「고속도로」야.
「대체 어딘가요, 여긴……」
사토리가 세 번이나, 맥빠진 질문을 되풀이했다.
혼란에 빠진 내 머릿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희미하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그래도 굳이 말하겠어, 사토리.
나도, 몰라.
아니 그 전에…….
──뭐야, 이거어어어어어언!!?
「시끄러워요」
아, 가까워지면 마음을 읽을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