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9「화영총」
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다.
죽은 인간은 육체를 버리고 영혼뿐인 존재가 되어, 삼도천으로 이끌린다.
그 강에서 사신의 손에 의해 저승으로 안내받아 염라의 앞에서 살아생전의 일들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재판을 받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은 여럿 있지만, 그런 곳들에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머지않아 다시 하나의 길로 돌아온다.
전생하여, 다시금 현세에 태어나는 것이다.
적어도, 이것이 환상향에 살아가는 인간의 이치.
자신은, 이 이치를 알고 있다.
하지만 사물의 쓰임새마저 모를 정도로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꽃이 된단다.
그렇게 가르쳐주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어린 아이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을 좀 더 원활히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다.
스스로 말하기엔 뭐하지만 난 꽤 귀염성이 없는 아이였던지,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은 기간은 일 년도 채 안 됐다.
어머니에게 다시 배우기도 전에, 나는 현실의 섭리를 깨달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를 소홀히 대하거나 멍청한 소리라고 여긴 적은, 머리가 굵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방황하던 혼이 자리를 튼 식물이 꽃을 피우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머니의 박식함에 감탄한 적도 있다.
……역시, 나는 그 사람한테 있어선 그리 귀염성이 없는 아이였다.
그럼에도──그때 어머니가 가르쳐 준 이야기를, 단순히 어릴 적에 겪은 빛바랜 추억으로 남겨 두지는 않았다.
가끔, 뜬금없이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은 죽으면 꽃이 된다, 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하게도 사람도, 꽃도 한 종류밖에 없진 않다.
──만약, 정말로 사람이 죽어 꽃이 된다면, 도대체 어떤 꽃이 되는 걸까?
◆
눈을 뜨자, 그 앞엔 강변이 펼쳐져 있었다.
기다란 강이 시야를 메운다.
건너편은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어째서 이런 곳에 서 있는 건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어떤 사실을 깨닫자, 그 순간 이해됐다.
다리가 없다.
서있는 게 아니라, 몸이 떠 있다.
그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죽어서, 영혼이 된 것이다.
이해가 된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이 온다고 하는 장소── 「삼도천」이다.
「어이, 이쪽이야─」
저 멀리서 들려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령은 시선을 돌렸다.
이미 육체를 잃고, 눈과 귀가 없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는 것이다.
이상한 감각이긴 했으나, 어쨌든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삼도천 강변에 정박한 작은 배 위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상냥한 미소를 지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자연스레 그 여성의 손짓에 이끌려, 다가간다.
「여어, 반가워. 넌,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해해?」
여성의 질문에, 죽은 자가 끄덕였다.
당연히 머리도 목도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어쨌든 끄덕였다.
생전의 형태를 잃고 영혼뿐인 존재가 된 인간의 영문모를 행동이었지만, 이 여성은 그것을 알 수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럼 잘 됐네. 무사히 왕생한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며, 만족스럽게 웃는 여성.
「내 이름은 오노즈카 코마치. 너를 저승으로 보낼 뱃사공 역할을 맡은 사신이지」
코마치라고 자칭한 여성의 설명을 듣고, 유령이 놀랐다.
하지만 듣고 보니 「과연」이라고 납득할 수 있었다.
코마치는 어깨에 큰 낫을 짊어 매고 있었는데,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사신의 낫」이구나, 라며 납득과 동시에 감동까지 했다.
그런 죽은 자의 영혼이 보이는 반응에, 코마치는 몰래 쓴웃음 지었다.
사실, 이 낫은 이런 식으로 죽은 자를 마중할 때 납득시키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 비밀이다.
「자, 납득했으면 얼른 배에 타. 이 삼도천을 건너서, 염라 님 곁에 보내줄 테니까」
코마치의 재촉에, 죽은 자의 영혼은 배에 올랐다.
이 때에 이르기까지, 말에 의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신인 코마치와 이 영혼 사이에는 확연한 의사소통이 성립되고 있었다.
「아, 그렇지. 뱃삯을 받을게」
더 이상 재촉할 필요도 없다는 듯, 죽은 자가 살아생전의 「덕」을 나타내는, 그 세상의 동전을 건네주었다.
건네주었다기보다, 멋대로 그렇게 됐다.
코마치의 손바닥엔, 어느새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
생전에 저지른 죄가 클수록 삼도천은 더욱 길어지고, 그 길어진 강의 너비는 뱃사공 역할을 맡은 사신에게 동전을 건네주면 짧아진다.
그리고 그 동전의 수는, 생전에 한 선행에 좌우된다.
덕을 쌓지 못한 악인은, 당연하게도 무일푼, 동전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저승까지 펼쳐진 강의 거리를 줄이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삼도천을 헤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선인은 눈 깜짝할 새에 저승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코마치가 받은 동전은 그러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좋아, 확실히 받았어. 너, 훌륭한 인간이었나 보구나」
코마치는 생긋 웃고는, 배를 젓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 나르는 사신의 배가 삼도천을 가른다.
「너라면 이 강을 건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강을 건너며, 코마치가 틈틈이 말을 건넨다.
「나는 꽤 말하는 걸 좋아해서 말이지. 이렇게 강을 건너는 동안에 말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 취미거든. 귀찮았다면 미안해.
──응, 그렇지 않다고? 하하, 그래. 너도 한가하구나. 그럼, 살아 있을 시절의 이야기라도 해줘. 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니까」
이 상냥한 사신은, 아무래도 듣는 것에도 자신이 있는 듯싶다.
외모도 아름다운 것이, 귀염성이 엿보이는 여성이다.
대화를 하잔 말을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죽은 자의 영혼은, 흥에 겨워 코마치에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생전에 경험한 사건들.
사랑하는 친구, 가족들과 함께 쌓아 올린 훌륭한 인간으로서의 생활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지만, 가장 훌륭했던 시대의 이야기들──.
「──과연. 너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인간이었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코마치가 감명 깊다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싫은 일이야, 전에 여길 거쳐 갔던 영혼도 너랑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았어. 세대교체란 걸까. 아마 네 동년배였을지도」
병이나 사고가 아닌, 인간의 수명이 다하여 죽은 것이라면, 임종의 시기 또한 어느 정도 겹치는 법.
코마치는, 최근 들어 비슷한 말을 하던 죽은 자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해 주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훌륭한 인생을 정정당당하게 살고 죽은 영혼들이었다.
수많은 인간이, 수많은 생애를 거쳐, 수많은 죽음을 겪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다.
선인善人이 많으면, 악인惡人도 당연히 많다.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 불행한 사람도 있다.
코마치는 그런 수많은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안내해왔다.
그리고 최근, 자신이 안내해준 죽은 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인간들도, 같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걸. 듣자 하니, 대단한 사람인가보네──그 「선대무녀」라는 녀석은」
◆
──환상향이 되살아났다
세상이 하얗게 덧칠됐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의 햇살로 물든 환상향은 훌륭히 생명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겨울동안 잠들어있던 다양한 색채들이 눈을 뜨고, 자신들의 힘으로 환상향을 뒤덮었다.
꽃과 함께 요정들 또한 소란스러워졌다.
그 비정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은, 환상향의 인간들을 놀래켰다.
벚꽃, 해바라기, 들국화, 도라지── 아직 봄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계절에 피어날 꽃이 동시에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인간들과 요정들은 자연의 선물이라며 그 광경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태평한 사람이라도 이윽고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환상향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이상 현상── 『이변』이라는 것을.
◆
「──뭐, 사실은 이변이 아니지만」
레이무는 태평한 목소리로 마리사에게 말했다.
툇마루에 앉아 태평하게 차를 들이키는 레이무.
신사 바깥으로 펼쳐진 흐드러지게 피어 온갖 색채를 자랑하는 꽃들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녀의 시야를 막아서듯, 바로 앞에서 기세 좋기 서있던 마리사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이변이잖아! 보라고, 이 광경을!」
꽃이 피는 식물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피어 있다, 라는 상황을 가리키며 마리사가 소리를 질렀다.
「꽃만 그런 게 아냐. 여기 오면서 요정 녀석들이랑 몇 번이나 싸웠다고. 아무리 봐도 예삿일이 아니잖아」
「그 싸움을 전부 의리 있게 받아줬으면서」
하쿠레이 신사에 오다가 합류한 사쿠야가 말했다.
이쪽은, 레이무의 말을 듣고서도 얄미울 정도로 동요하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은 소쇄한 모습 그대로, 품속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당연하지. 요정 녀석들한테 얕보일 순 없다고」
「게다가, 탄막놀이를 연습하기에 좋은 상대니까」
사쿠야에게 대번에 속내를 들킨 마리사는 희미하게 뺨을 붉혔다.
평소의 충실한 노력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리사에게 있어서 그런 사실은 밝히고 싶지 않은 사항이었다.
「사, 사쿠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게 이변이 아니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마리사」
「뭔데!?」
「자, 선물이야」
사쿠야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마리사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고깔모자를 벗겨내더니, 그 머리에 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씌워주었다.
아까부터, 적당한 야생초의 꽃을 엮어 만든 듯했다.
「어머, 귀엽네」
말문이 막힌 마리사의 얼굴을, 사쿠야와 레이무가 훈훈한 미소와 함께 바라본다.
완전히 조롱당하는 중이라고 생각한 마리사는 당황하며 자신의 모자를 빼앗곤, 머리 위의 화관을 숨기듯 눌러썼다.
「무슨 짓이야!? 남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나도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어. 이건 이변이 아니야」
차를 마저 들이키곤, 텅 빈 찻잔을 옆에 내려두며 레이무가 입을 열었다.
「60년마다 한 번, 바깥 세계에서 혼이 많이 생겨나게 돼. 그리고 오늘이 딱 그 날이고」
「그건……분명 이변이 맞지 않아?」
「틀려. 이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인위적으로 일으켜진 일이 아니란 말.
삼도천의 안내자인 사신의 역량을 벗어날 만큼 많은 수의 영혼이 환상향으로 흘러넘쳐버린 상황인 거야」
「꽃이 잔뜩 핀 건?」
「그 흘러넘친 영혼들이 꽃에 빙의해서, 계절이랑 상관없이 피어버렸을 뿐. 요정이 흥분하고 있는 건 그런 부자연스러운 개화 때문이고.
즉, 이번 사건은 방관하는 게 답이란 소리지. 가만 놔둬도 사신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면, 점점 피어있는 줄어들 테니, 머지않아 해결될 거야」
「과연」
납득했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은 사쿠야 뿐이었다.
레이무의 간단명료한 설명에도, 마리사는 묘하게 불만스럽단 기색을 내비쳤다.
이 설명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용쓰던 중이었는데, 단번에 진상이 밝혀지니 마음의 정리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건이 이변이라 느끼고 가정 먼저 하쿠레이 신사로 발길을 돌린 것은 레이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느 쪽이 먼저 이변을 해결하는지 승부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정작 와보니 사건의 진상은 이미 밝혀져 있었다.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행동한 레이무에 비해, 마음도 행동도 헛수고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무어라 반론을 펼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문 마리사의 속내를 알아챈 사쿠야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사태는 알겠어. 큰 문제가 없는 거라면, 모처럼 온 기회니까 즐기는 게 어떨까?」
「즐긴다니……」
푹 수그러든 고개를 들어올린 마리사에게 사쿠야가 주위를 둘러보란 듯 재촉했다.
「한 자리에서 볼 수 없는 꽃들이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핀 광경을 볼 수 있잖아. 이 꽃들이 사라질 때까지 즐겨두지 않으면 손해 아니겠어?」
「너도 꽤나 태평한 녀석이네」
기막히다는 듯 중얼거리는 레이무에게 윙크를 돌려주는 사쿠야.
사쿠야는 찻잔 옆에 놓은 찻주전자를 손에 들고는 툇마루에서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차, 새로 끓일게. 찻잔 두 개 정도는 있지?」
「마음대로 찾아봐. 아, 그리고 선반에 있는 전병도 가져와줘」
「알겠어」
「마리사. 너도 그런 데 멍하니 서있지 말고 이리 와 앉아」
「……응」
레이무가 옆을 펑펑 두드리며 말하자 마리사는 당황하면서도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사쿠야가 방 안쪽으로 떠나간다.
남겨진 두 사람은, 온갖 색채로 물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말이야」
「응」
「조금 성격 바뀌지 않았어?」
「그럴까나」
「원래 마이페이스인 건 알고 있었지만, 태평해졌네」
「……그거, 뭐가 다른 거야?」
「아, 아니……말하기 어렵지만, 뭐랄까,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야」
「흐응─」
레이무가 그렇냐는 듯 콧소리를 내어 대답한다.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마리사가 중얼거렸다.
「응, 그래. 예전보다 느긋해진 것처럼 보여」
「그럼, 예전의 난 긴장해서 초조해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렇구나」
마리사의 근거 없는 말에도, 레이무는 왠지 모르게 납득된다는 듯 끄덕였다.
정말로, 자신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계기로 삼았는지는 알고 있다.
지금의 레이무가 가진 침착함은, 일종의 달성감에서 생겨난 것임을 본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막상 이변 때에 너무 태평하진 않을까 걱정되는걸」
「진짜 이변이었다면, 진지하게 임할 거야」
「믿음이 안 가네. 그나저나 레이무는 정말 뭐든 알고 있구나」
「전부 아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이번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잖아. 나는 그렇다 쳐도 사쿠야도 모르는 일이었는걸. 60년에 한번 있는 사건이라니, 오래 산 노인이나 요괴밖에 모를 거야」
「나도 어머니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야. 분명」
「이번 일, 네 어머니가 가르쳐준 거야?」
「맞아, 어릴 적에 말이지」
「그래서인가……」
「미리 알지 못했다면, 나도 이변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몰라」
「……위로는 필요 없어」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말이지……」
두 명은 자연스레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풍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레이무의 어머니는 그래 보여도 꽤나 오래 사셨구나」
「그러게」
「60년 전에, 같은 사건이 있어서 알고 있는 걸까?」
「글쎄……」
애당초, 자신은 어머니의 정확한 나이조차 모른다.
레이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 신경 쓰이는 의문은 아니었다.
명심하고 있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 모녀에게 있어서, 별다른 문젯거리도 되지 못할 수수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그런 자그마한 의문만을 남기고, 이 환상향을 뒤덮은 기묘한 현상은 『이변』 이라 인정되는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
「이건 분명 이변이야!」
「무어라, 그게 정말인가요!? 치르노 씨!」
가슴을 활짝 피며 선언하는 치르노의 외침에 아야는 일부러 놀라는 시늉을 했다.
「주위를 보면 알 수 있어. 저기 피어있는 꽃은, 사실 가을에만 피는 꽃이야!」
「놀라워라. 치르노 씨는 박식하네요」
「에헤헤……박식이 뭐야?」
「아는 게 많다는 뜻이랍니다」
「응! 케─네랑 공부를 많이 했거든!」
치르노의 만면에 피어난 미소를, 아야가 재빨리 사진으로 남겼다.
뒤를 이어 치르노가 가리킨 주변의 풍경도 찍어나간다.
두 명이 함께 있는 안개의 호수의 주변엔 꽃이라 불리는 식물이라면, 애먼 바닥의 잡초에 이르기까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사실, 이런 반응에 반해 아야는 이 이상 현상에 대한 놀라움은 없었다.
치르노를 찾아 이곳에 이르기까지, 요괴의 산이나 오는 길목에서 질릴 정도로 봤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기에 피지 않을 꽃이, 치르노가 가리킨 가을에 피는 꽃 외에도 다양하게 피어 있다는 사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원인에 대해서도 대강 짐작을 하고 있는 그녀는, 적어도 치르노보다는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감탄하는 시늉을 낸 것은, 치르노를 치켜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이변이라면 해결해야만 하겠네요」
「그럼, 이 몸이 해결해줄게!」
치르노의 단순한 대답은, 화제를 유도하려 했던 아야에개 있어서 기쁜 오산이었다.
「하지만 이변을 해결하는 건 하쿠레이의 무녀가 할 일이 아닌가요?」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죽이며, 시치미 뚝 뗀 얼굴로 물었다.
「그런 건 빠른 쪽이 이기는 거야! 이 몸이 레이무보다 먼저 이변을 해결하겠어!」
「오오, 굉장한 자신감이군요. 과연 선대무녀님의 첫째 제자 치르노 씨에요!」
「헤헤헤, 당연하지! 지난번에 이변을 해결했을 때처럼, 이번엔 이 몸이 이변을 해결해서 사부에게 한사람 몫이라고 인정받을 거야!」
호오, 라는 감탄을 내뱉은 아야는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사려가 얕은 요정의 말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고 한결같은 목적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치르노가 말하는 「이변」이란, 환상향 전체를 뒤흔든 오니 이변을 이르는 것이다.
그 이변의 해결함에 의해, 레이무가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선대무녀를 포함한 여타 인물들에게 당당히 인정받은 것은 더할나위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야 자신 또한 그 자리에 함께하여 신문에 기록으로 남겼다.
오랜 세월동안 발간되어 온 붕붕마루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기사였다.
그때부터 겨울을 넘기고, 사람들의 기억 또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 붕붕마루는 몇 번이나 발행되었으나, 당연하게도 그때보다 더 임팩트 있는 기사는 만들 수 없었다.
요괴의 산에서 나온 이유도 이번 개화 사건에 대한 취재 재료를 찾기 위해서이다.
──요정들도 흥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타 요정들보다 강한 치르노라면 뭔가 커다란 사건을 일으켜 줄 것이라 어림잡긴 했지만.
이 현상에 의문을 느끼고 있던 것은 의외였다.
단순한 치르노가 남한테 싸움을 걸고, 탄막놀이를 하는 광경을 몇 장 찍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은 의미로 상정하지 못한 사태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이유가, 요정답지 않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것임을 안 아야는 약간이긴 해도 감탄한 것이다.
「이거 참, 역시 치르노 씨는 흔한 요정들이랑은 다르시네요. 즐겁게 해줘요」
「이 몸은, 최강이니까」
「확실히 그 말이 맞아요」
아야는 꾸민 웃음을 지으며 치르노와 말을 맞추었다.
속으로는, 요정의 자부심 따윈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곤 해도 치르노에 대한 평가는 예전에 비해 약간이나마 올라 있었다.
치르노가 이미 단순한 요정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있던 일들 덕에 잘 알고 있으니까.
진상은 어떻든 간에, 직함만 따지고 보면 그 선대무녀의 「첫째 제자」.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대 당사자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아야가 치르노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선대무녀와의 관계를 알고 난 뒤부터였다.
──아야야, 왠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했더니.
갑자기 그런 사실을 깨달은 아야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춘설이변을 기사로 쓴 뒤에도, 이렇게 다음 기사거리를 찾아 치르노를 찾아왔고, 지저에서 선대가 일으킨 소동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와 상황이 꽤 비슷하다.
지저에서 오니와 싸웠다는 말에 놀라, 그 싸움에서 이긴 선대의 힘에 전율하고, 유우기와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스릴 넘치는 경험까지 겪었다.
그때 겪은 일을 떠올리니, 다시금 이상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자신을 덮쳐왔다.
이 앞에서 그녀들을 기다릴 사건에 망설임과 함께 호기심도 솟아났다.
「치르노 씨의 이변해결, 저도 따라가죠. 그럼, 일단 어디로 가볼까요?」
「사실, 이 이변의 범인은 이미 알고 있어. 꽃의 이변……즉, 범인은 유카가 분명해!」
「과연! 훌륭한 추리에요!」
「흐흥. 그럼, 유카를 퇴치하러 가자!」
상정하고 있던 상대들 중 가장 재미있는 인물과 싸우기를 택한 치르노의 행동력을 내심 칭찬하며, 아야는 치르노의 뒤를 쫓았다.
기이하게도 상대는, 선대무녀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요괴.
치르노가 향하는 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실로 흥미로웠다.
역시 선대의──그 아이가 관련된 소동이나 소동의 씨앗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그 아이를 요괴의 산에서 처음 찾아낸 이래, 언제나 놀라기만 해왔다.
그녀의 행동을 볼 때마다, 항상 기대감과 불안감이 솟구쳤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심정이 되어버리고 만다.
──또, 너에 대한 예상 못한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는 걸까?
머릿속에 떠오른 선대의 모습을 향해, 아야가 중얼거렸다.
◇
──나는, 이 남자에게 분명 진다. 그리고 살해당한다.
내 앞에 나타난 적은, 그런 남자였다.
내 생애 최대, 최강의 적이라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사투를 펼쳐온 환상향의 요괴들을 제쳐두고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에서 맞서보기는 처음이지만, 이 남자의 힘을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장은, 장신인 내가 약간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 할 정도.
복장은 흑색의 쿵푸복에, 그 아래엔 「단련됐다」라는 형용사를 그대로 표현해낸 육체가 감춰져 있다.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사자의 갈기이고, 얼굴은 악마, 혹은 오니와도 같다.
그 위로 떠오른 표정은, 전투태세를 취한 나를 앞에 두고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미소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남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지상 최강의 생물」
비유도 뭣도 아닌, 설령 이 환상향의 요괴나 신을 포함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기묘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강하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런 신앙심조차 품은 상대와, 나는 지금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로 기묘한 이야기다.
나는, 스스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믿고 있는 상대에게, 도전하려 하고 있다.
정말로 모순된 행동.
게다가, 내가 바라여 이렇게 된 것이다.
유우기와 스이카와 싸우게 됐을 때도, 모두 형편이 좋지 않았을 뿐,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들 이상의 강적에게 패배와 죽음까지 각오하며 싸움을 바라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기쁨마저 느끼고 있었다.
내 자신의 일임에도 믿을 수 없었다.
패배는 둘째 치더라도, 죽음이라는 결과가 어떨지 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요컨대, 저 거대한 힘을 내포한 육체가, 나의 육체를 파괴하러 오는 것이다.
닭의 가슴살에서 날개에 이르는 고기를 먹을 때처럼 관절을 꺾이거나 눈을 뽑히거나 산 채로 얼굴 가죽이 벗겨질 수도 있다.
나는, 그 광경에 내 자신을 대입하여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눈앞의 남자가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전부, 보았다.
그럼에도…….
──기쁘다.
──흥분이 공포를 넘어선다.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눈앞의 남자에게 도전한다는 행위가, 너무나도 기뻐서 참을 수 없다!
굳게 자세를 취한 나를 상대로, 눈앞의 적은 그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있을 뿐.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공격해야 좋을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각오를 끝마치고 승부에 나섰다.
작전 따윈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전심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뻗는다.
「하앗!!」
목적은 얼굴.
하단을 노린다든가, 속임수를 쓴다든가 하는 잔재주는 쓰지 않는다.
쓰지 않는다기보다, 분명 통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믿는 최고의 일격을, 급소를 향해 내지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한시도 빠짐없이 단련해온 자신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먹의 일격이, 남자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1만번의 정권지르기를 견뎌오며 단련한, 이 일격.
반응할 수 있겠나──!?
「큭」
남자가 흘린 것은 작은 신음소리 뿐이었다.
괴로워서 낸 신음소리가 아니다.
웃음을 견디려다가, 무심코 새어버린 것 같은 작디작은 신음소리였다.
다음 순간, 내 몸통 정중앙에 남자의 주먹이 꽂혀들었다.
내 공격보다 빠르다.
그리고, 내 공격보다 무겁다.
갈비뼈가 완전히 박살났다.
내장은 짓뭉개졌다.
짓뭉개진 살들이 핏덩이가 되어 입에서 펌프질을 하는 것 같은 기세로 흘러나왔다.
치명상이다.
나는, 몽롱해진 눈빛으로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변함없는 미소를 지은 채, 한쪽 발을 크게 치켜 올렸다.
믿기지 않을 만큼 유연하고, 강력한 다리였다.
뒤꿈치가 하늘을 향하고 있을 정도다.
아, 저게 내려찍히는 건가.
저 뒤꿈치가 정수리에 꽂혔다간, 두개골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즉사한다.
즉, 단 두 방에 승부가 끝나는 것이다.
바로 방금 내질렀던 혼신의 일격은, 이제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공격을 한 건 내 쪽인데, 한순간에 이쪽이 죽을 위기에 빠지고 말다니.
불합리하다──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아니, 믿고 있었다.
역시──.
역시, 강해──.
내가 두려워하던.
내가 동경하던, 압도적인 힘.
남자의 뒤꿈치가, 내려찍힌다.
굉장해.
무서워.
감동적이야.
「이것이 「한마 유지로」의 공격인가……」
나는, 황홀한 기분 속에서 머리가 박살났다.
이건, 역시 즉사겠지.
나는──죽었다.
◆
환상향에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광경은, 조합에 따라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곳도 있었다.
그런 이상 현상 속에서 「태양의 밭」만은 평소와 똑같은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해바라기의 색만이, 마치 통솔되는 것만 같이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니, 비유가 아니다. 이 장소를 단신으로 통제하여 지배하는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가 있었기에.
그 유카와 공중에서 맞서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치르노였다.
「이 몸이──이겼어!」
유카의 눈동자를 곧게 마주보며, 치르노가 선언한다.
마주선 유카는, 바로 방금 쓰인 스펠카드를 손으로 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승리야」
「야호!!」
치르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기쁨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듯 공중을 날아다니는 치르노에게서 눈을 돌리며 유카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치르노는 아직도 신나서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이미 잊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유카가 쓴웃음을 짓는다.
「아야야야, 의외로 상냥하신 분이셨군요」
속뜻이 감춰진 말과 함께 유카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아야였다.
유카와 치르노의 탄막놀이를,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물론,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고 있었다.
「상냥하다니?」
유카는 미소를 지은 채, 아야를 바라봤다.
그것은 즉, 치르노와 아야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없음을 뜻하고 있었다.
이는 유카에게 있어선, 요정이든 텐구든 상대함에 있어 차이를 둘 필요가 없음을 뜻했다.
불만스러움과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 속내를 숨기며 아야가 말을 이었다.
「탄막놀이의 승패 말이에요. 승리를 양보하신 거죠?」
「아니」
「호오? 그렇다면, 플라워 마스터라고 일컬어지는 대요괴가, 설마 요정에게 졌다는 말씀이신지?」
「그래」
「이 무슨, 이건 대사건이로군요. 좋은 기사가 써지겠어요」
「어머, 그렇구나」
유카의 대답은, 끝까지 덤덤할 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아야 쪽에서 먼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치르노 씨랑 친하셔서, 일부러 손속을 둔 게 아닌가요?」
「너, 아까 그 승부에 그렇게 꿍꿍이가 있었으면 싶어?」
「솔직히 말해서, 뜻밖의 전개니까요. 당신이 치르노 씨의 탄막놀이를 받아준 것도, 거기에서 진 것도──」
「만약 장기를 해서, 졌다고 치자」
「예?」
「진 뒤에, 탁자 째로 장기판으로 맨손으로 쪼개고 「난 이렇게 힘이 세다」라고 말하는 건,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
「──」
「탄막놀이는 치르노가 이겼어. 신문엔 좋을 대로 써놔」
유카의 미소는,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강자의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이 뒷받침 해주는, 여유로운 미소.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에게 느껴오던 위험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침착함과 관록을 실물에게서 느낀 아야가 입을 열었다.
「유카 씨는, 의외로 알기 어려운 분이시네요」
「적의나 살기를 보이는 편이 더 알기 쉬웠을까?」
「처음엔, 그럴 줄 알았어요」
「예전의 나였다면, 그렇게 해서 재빨리 쫓아냈겠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비밀이야」
「음―, 정말 귀여운 대답이시네요」
「기사거리라면 대신할 걸 알려줄 테니까, 얼른 치르노랑 같이 여기서 나가」
「역시, 이번 이변의 원흉은 유카 씨가 아니셨군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아야의 말에, 유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유카에게는 꽃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번 사건과 이 능력은 아무 관계도 없다.
그것은, 아야 또한 왠지 모르게 예상하고 있었다.
「어떤 외적인 존재가 머물러 꽃이 피었을 뿐이야. 그저, 수가 많아서 이런 거지──그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예」
「머물고 있는 건 바깥 세계에서 온 영혼이야」
「호오. 「바깥 세계의 영혼」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네요」
「원인을 찾고 싶다면 「재고의 길」을 지나서 「무연총」으로 가봐」
「거기에, 이번 사건의 진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군요?」
「네가 바라는 건 진상보다 기사거리겠지만 말이야」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요」
「얼른 가도록 해」
이미 말할 건 없다는 듯, 유카는 말을 끝맺자마자 아야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야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기자로서의 경험도 긴 그녀는, 끝내야 할 때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은 치르노를 부르는 아야의 목소리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유카는 발밑에 핀 작은 꽃을 내려다보았다.
겉모습만 봐선 모를 일이긴 하나, 이 태양의 밭에 있는 해바라기들은 이번 이상 현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이곳에 피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발밑에 핀 이 꽃은 다르다.
자연적으로 핀 것이 아니다.
자연의 힘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피어진 꽃.
유카는 능력에 의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선대, 예를 들어 네가 죽으면──」
유카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어떤 꽃을 피울까?」
◆
신문의 기사거리를 찾고 있던 아야에게 있어서, 치르노와의 동행은 싫증나지 않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이번 이상 현상의 원인 규명이나 해결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과거에 비슷한 현상을 본 기억이 있어, 대충이긴 하지만 개요도 파악하고 있다.
그 이상을 추구하려는 의욕도 그다지 없다.
아야는 기자로서──나쁘게 말하자면 그냥 구경꾼으로서──이변해결에 힘쓰는 치르노의 뒤를 따라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결국, 치르노의 행동은 심플했다.
쓰러트릴 적을 찾고, 탄막놀이로 이긴 뒤, 흑막을 찾아 계속 나아간다.
카자미 유카와의 승부에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둔 뒤, 이변에 흥분한 요정 떼거리와, 가던 길에 마주친 요괴 들을 치르노가 파죽지세로 쓰러트려간다.
스펠카드 룰 덕분이라곤 해도, 계속 이겨나가는 치르노의 실력엔 아야 또한 경탄할 정도였다.
선대무녀에게 수행을 받았다는 것으로 납득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가 아니다.
치르노의 힘은, 요정이라는 골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아야는 의문을 느꼈다.
의문을 느끼곤, 바로 「아니, 아무래도 좋아」라고 내던져버렸다.
──요괴를 물리치고, 이변을 해결하는 요정.
그것이 좋은 기사거리가 된다는 생각에 기뻐할 뿐이었다.
한결같이 나아가는 치르노와 그 모습을 찍는 것만이 목적인 아야로 이루어진 이인조가, 원흉 없는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온갖 종류의 꽃이 두 명의 여행길을 물들이고, 이윽고 그 색이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그것은 가을에 피어야 할 피안꽃이었다.
피안꽃만이 가득한 길이었다.
두 명은 유카의 말대로 「재고의 길」을 지나, 마침내 「무연총」으로 간신히 도달한 것이다.
「온통 피안꽃 천지네요. 치르노 씨,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어요」
「벚꽃도 피어 있어. 여기가 「무연총」이야?」
「그 말대로에요. 환상향에는 인연을 맺지 못한 자들이 잠든 묘지라고 하던데요. 이거 참, 여기서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요사스러운 보라색 벚꽃이 지며, 주변에 수많은 영혼이 방황한다.
아야는 그것들을 이를 긁어 없애듯 지워나갔다.
흑막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이 이곳에 있을 터이다.
그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도록, 아야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서 기다리는 건 죄랍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범해왔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라색 벚꽃은 죄를 모아 꽃을 피우죠. 남한테 말할 수 없는 죄도, 본인이 모르는 죄도, 벚꽃은 가리지 않아요」
아야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냈다.
「보라색 벚꽃은, 모든 죄를 보고 있답니다」
「……저기─, 누구시죠?」
아야는 당황하며 물었다.
두 명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명의 여성이었다.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요괴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이나 영혼이냐면, 그런 느낌도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조용한 압박감이 인상적인 장엄한 분위기의 여성.
아름답지만, 두렵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아야조차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말 정도로, 정체모를 거물이었다.
──설마, 정말로 흑막이 있었던 건가요?
아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시키에이키라고 합니다. 전 영혼이 가진 죄의 무게를 재는 자──그래요, 염라랍니다」
에이키라고 자칭한 여자의 말에, 아야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에, 염라 님이시라고요!? 어째서 이런 시골구석에 계시는 거죠?」
「염라……」
단번에 낭패한 기색을 보이는 아야와는 달리, 낮게 중얼거리는 치르노에게 에이키가 시선을 돌렸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은 요정에게 있어서, 사후의 존재인 염라는 가장 소원한 존재 중 하나다.
그 역할마저 모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는 치르노의 눈빛에선 그 뜻을 이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 몸, 알고 있어. 염라는, 인간이 죽은 뒤에 만나는 존재래」
「잘 알고 있네요.」
「공부했으니까!」
가슴을 피며 대답하는 치르노를, 에이키가 살피는 듯 바라봤다.
「저기, 염라. 이변을 일으킨 건 너야?」
「아니요, 틀려요. 환상향의 꽃이 핀 것을 말하는 거라면, 그 원인은 대량 발생한 영혼에 있죠.
지진, 분화, 해일, 전쟁──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바깥 세계의 죽은 자들이 이따금 크게 늘어날 때가 있습니다. 대개 60년마다 한 번 정도의 주기에 늘어나게 되죠. 마침, 올해가 그 시기로군요」
「그런가요……그러고 보면 철이 지나거나 이른 꽃들이 피었던 적이 예전에 몇 번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60년 주기라니, 잊어버려도 어쩔 수 없는걸요」
묘하게 변명하는 듯한 아야의 혼잣말이 이어졌다.
아야 자신이 그렇게 자각하고 있었다.
몰랐다는 척 연기하는 자신을, 에이키의 맑은 눈빛에 모두 들키고 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염라에게는 모두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아야는 꾸민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그 대신, 아야의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에이키와 대면한 뒤부터, 원인 모를 긴장감에 온몸이 묶인 것만 같았다.
눈앞의 존재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다.
힘의 차이에 따른 압박감이 아니다.
지위와 권력에 의한 외경심도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죄」에 대한 공포.
에이키에게 바라봐질 뿐인데, 가슴 속에 죄책감이 깃들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만큼 그 죄책감이 눈밭에 눈덩이 굴러가듯 커지는 것이다.
텐구로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지금까지 저지른 금기나, 자그마한 거짓말들까지 전부 포함한 죄목이 눈앞에 나열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거짓말, 이라.
의도치 않게 뇌리에 어린 선대무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아야는 당황하며 생각을 뿌리쳤다.
그 한순간의 생각마저, 에이키에게 읽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로 변변치 못한, 약점이 되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자신이 그 아이를 떠올렸는지, 의문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그럼, 결국 이변을 일으킨 녀석은 없단 말이야?」
지금 확실히 재판석에 앉아 마주보고 있던 아야와 에이키의 긴박한 대치는, 갑작스레 끝나버리고 말았다.
길었는지 짧았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치르노가 끼어든 것이다.
「그 말대로에요. 머지않아 영혼의 수가 줄어들어, 환상향 또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겠죠. 나머지는, 사신이 할 일이에요」
「뭐야……그럼, 여기 온 의미가 없잖아!」
치르노가 공중에서 발을 굴렀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좌절감에서, 허무함에 젖은 좌절감에 빠지는 치르노.
「묘지에 있기도 싫으니까, 이 몸 이제 돌아갈래……」
「멈추세요」
이곳에 올 때까지 보여주던 기세가 완전히 죽어 발을 돌리려던 치르노를, 에이키가 불러 세웠다.
마주쳐 있던 시선이 돌아간 것을 감사하며, 아야가 몰래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두 손은 빈틈없이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었다.
이곳의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은 치르노가, 어떤 대화를 해나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볼일이 있어 이승까지 찾아왔습니다만──지금 여기서, 죄 많은 요정이 보였으니 그냥 갈 순 없겠군요」
「어라, 이 몸, 뭔가 나쁜 일이라도 했어!?」
「호오. 요정인 당신이 선악의 구별을 할 줄 아시는 건가요?」
「바보 취급하지 마! 좋은 일이랑 나쁜 일의 구별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런가요. 그건, 아주 훌륭한 일이에요. 당신에겐 좋은 가르침을 하사해주는 사람이 있나보군요」
자세히 봐야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변화이긴 했으나, 에이키의 표정이 그때 처음으로 바뀌었다. 에이키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번진다
「응! 최강의 사부랑 친구가 있어!」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치르노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폈다.
떠올린 인물들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아야는 옆에서 몰래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선행을 하고, 악행을 이성적으로 참아내는 데엔 의지의 힘이 필요한 법이죠. 이를 지키는 것은 인간이라도 하기 힘든 일이에요. 치르노, 당신은 다른 요정이 가지지 못한 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건, 이 몸 정말 최강……!」
「하지만 그건, 자신의 영역을 크게 벗어났다는 말도 됩니다」
에이키가 미소를 지우고, 말을 이었다.
「요정은, 때로는 잔혹한 행동을 하죠. 하지만 그 행동에 악의는 없습니다.
자연이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과 같아요. 자연의 구현자인 요정들의 행동엔 하나같이 악의가 없으며, 그 행동의 과정이나 결과를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인의 가치관에 따를 뿐. 그 행동 자체에 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 에─그러니까……」
「치르노. 잊어선 안 됩니다, 당신은 요정이에요. 원래는 죄를 가질 수 없는, 자연 그 자체입니다」
「──」
「이대로 있다간, 당신은 자연의 힘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될지도 몰라요」
「──」
「즉, 그건 죽음, 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죽으면, 분명 우리가 당신을 재판하겠죠. 그때엔,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갈 수도 있어요── 아직 거기까진 알 수 없지만」
「……이 몸은」
「그래요, 당신은 조금 과하게 힘을 가지고 말았어요」
에이키의 이야기를, 치르노는 가만히 들었다.
이야기를 전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에는 곤란하단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다른 요정에겐 없는 총명함과 성실함, 아야는 그런 치르노의 모습을 아까 에이키의 말과 대조하며,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그렇구나」
이윽고, 치르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대로 가다간, 이 몸은 요정이 아니게 돼서, 죽는 거구나」
「그 말대로에요」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중얼거리는 치르노의 혼잣말에, 에이키가 끄덕였다.
엄숙한 긍정을 뜻하는 행동이었다.
「그럼──」
치르노가 에이키를 올곧게 마주보며 답한다,
「사부랑 같아」
그 얼굴은, 기쁨의 미소로 가득했다.
「이 몸, 사부랑 같은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몰라」
「──」
「이 몸, 한 번 나쁜 짓을 했어.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엔, 아주 슬프고, 분했어.
그래도 잘못한 걸 반성하고 올바른 일을 하면, 사부나 다른 사람들은 용서해주거나 칭찬해주기도 했어. 그게, 무지 기뻤어. 그러니까, 이 몸은 더 좋은 일을 하고 싶고, 알고 싶어」
「──」
「이 몸이 죽으면, 이 몸이 해온 일이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네가 제대로 가르쳐 줘」
「……죄가, 깊군요」
에이키의 입에서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그 작은 목소리가 치르노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에─키라고 했지?」
「네」
「너는, 이 몸을 걱정해준 거지?」
「네, 그래요」
「에헤헤, 고마워!」
「그렇게 생각한다면, 요정으로서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모순된 일입니다만, 영리한 당신이라면 알겠죠. 더 이상 요정의 골조에서 엇나가는 것은 잘못된 것──나쁜 일, 이에요」
「응, 알고 있어」
「그렇다면, 그만두세요. 만약 죽는다면, 당신은 우선 그 죄를 재판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 몸은 지금의 자신을 그만둘 수 없어. 왜냐하면, 기쁘니까」
「기뻐요?」
「응, 에─키가 날 걱정하거나 혼내주는 게」
에이키가 눈을 둥글게 떴다.
약간이긴 하나, 이 엄격한 염라는 의표를 찔려 놀란 것이다.
아야는 그 귀중한 장면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 몸이 평범한 요정이었다면, 에─키는 분명 그러지 않았을 거야」
「……네」
「그도 그럴게, 길가의 나무나 발치에 있는 돌을 혼내지는 않는걸」
「그렇겠죠」
「이 몸은 지금보다 강해지고 싶고, 똑똑해지고 싶어. 그때처럼, 잘못을 저지르는 건 이제 싫어. 그때의 이 몸은, 정말로 바보였어. 바보로만 있기는 싫어. 그래서 요정이 아니게 된다면, 이 몸은 그래도 좋아. 죽은 뒤에, 너한테 많이 혼날 거야」
「──」
「일단……」
말문이 막힌 에이키에게, 평소의 기운을 되찾은 치르노가 한쪽 팔을 들어올린다.
그 손에는, 스펠카드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졌어! 이 몸이랑 놀자, 에─키!」
치르노는 당당히 선전포고의 외침을 내질렀다.
◆
「아야야야, 「무지는 죄」라고들 합니다만──」
아야가 웃으며 에이키에게 다가섰다.
천박한 미소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 것이지만.
에이키에게 품고 있던 공포는 이미 사라진 듯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 「두려움을 모르는 것」 또한 용감함이라 볼 수도 있겠네요」
에이키의 시선이 아야를 향한다.
여전히 칼날이 꽂혀드는 것만 같은 시선이었지만, 아야는 더 이상 기죽지 않았다.
능글맞게 웃으며 시선을 돌린다.
에이키의 품에는, 기절한 치르노가 안겨 있었다.
탄막놀이에 져서 땅에 곤두박질 칠 뻔 했던 치르노를 에이키가 구한 것이다.
아야의 도발적인 말에도 아랑곳 않은 에이키는 조심스레 땅으로 내려섰다.
적당한 벚나무 등치에 치르노의 몸을 기대이듯 상냥한 손길로 내려놓는 에이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상냥함과 자애로움이 흘러넘치는 행동이었다.
「치르노 씨는 만만치 않으셨나요?」
「승패를 따질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에이키는 무난한 대답을 돌려줬다.
「그나저나 이 탄막놀이라는 것은 이번이 첫 경험입니다만, 꽤 나쁘지 않군요. 야쿠모 유카리도, 가끔씩은 좋은 생각을 하네요」
작게 중얼거리는 그 입에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태어나 두 번째로 본 염라의 미소를, 아야는 재빨리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 아야의 작태에도 아무 말 않은 에이키가 아야를 무시하며 몸을 일으켰다.
「치르노에게 말해주세요. 즐거웠다, 고」
「이제 가셔야 하는 건가요?」
「예, 지금부터 서둘러 일을 해야 하거든요」
「치르노 씨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직접 말해주시는 건 어떠신가요? 분명, 치르노 씨도 기뻐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 모습을 기사에 실을 테고 말이죠」
「아야야야……」
「당신은 호기심이 너무 왕성해요」
담담하게 흘러나온 짧은 설교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아야는 메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훑었다.
얌전히 물러서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지금 단번에 들켜버리고 만, 이 솟구치는 호기심을 이겨낼 길이 없었다.
「염라님. 환상향의 인간은, 누구든 죽으면 당신에게 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에 예외는 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런지요?」
떠나가는 에이키의 등을 향해, 아야가 말을 건넸다.
고개를 돌리지도, 발을 멈추지도 않고, 에이키가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그게 만약 「선대무녀」라 할지라도, 말이죠」
발이 멈춘다.
「하쿠레이의 무녀일 무렵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환상향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웠음은 아시는 줄로 압니다.
그녀는 수많은 생명을 지키고, 구해왔지만, 그만큼 무수한 요괴를 죽이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말았죠.
이러한 행동이 선인지 악인지── 저로서는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염라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선대무녀가 해온 일은, 과연 「백」인가요? 아니면 「흑」인가요?」
그렇게 물었을 때, 아야의 속내엔 정말로 호기심 말고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에이키와 치르노의 대화를 듣다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이었을 뿐이다.
선대가 세운 위업이 염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신경 쓰였다.
마을 사람 백 명에게 묻는다면, 백 명 전부가 그녀를 칭송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선대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지키기 위해, 요괴라는 다른 종족을 죽여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대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젊은 육체를 유지한다는 자연의 섭리에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염라의 재판이란, 그런 행동 하나하나의 뒷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관점으로도 판단된다.
오니 이변을 거쳐, 선대는 본격적으로 은퇴했다.
이런저런 고비를 넘기며, 그녀가 지금까지 이룩해온 위업들에 대해 염라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아야는 순수한 흥미가 생긴 것이다.
──다른 인간이나 요괴들처럼, 그녀의 업적을 칭송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설교할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염라의 재판은 죽은 자가 아니라면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돌리는 상황이 가장 있을법하다.
아야는 멋대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뛰어오를 것만 같은 기분으로 에이키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동안의 침묵 뒤, 에이키는 입을 열었다.
「「백」도 「흑」도 아닙니다. 제가 그녀를 재판할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
예? 라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목소리는, 말이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의 생애는 염라가 재판하지 않습니다」
용케도 동요를 내보이지 않던 아야에게, 에이키는 그 마음을 짓뭉개듯 직설적으로 말했다.
「어……어째서죠?」
「어째서, 라니요?」
「저기, 요컨대……선대의 행동은 재판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악랄하단 뜻인가요?」
「아니요. 재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녀는, 죽지 않는 건가요? 예를 들자면, 사실 이미 선인이나 천인 같은 존재가 되어서──」
「아니에요. 죽은 뒤, 재판하지 않는 거예요」
「왜요!?」
자기도 모르게, 아야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는 피안에 올 수 없으니까요」
에이키는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그녀의 영혼이 삼도천을 건너 피안에 올 일은, 아마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환상향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말도 안 돼」
「전 환상향의 염라. 또한 제가 소속된 시비곡직청(是非曲直庁)도 환상향의 조직이죠. 관할에 들어오지 않은 인간을 재판할 순 없습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선대는──그 아이는 환상향의 인간이라고요!」
「아니요, 틀려요. 적어도, 환상향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은 아닙니다」
「살아있지 않나요, 지금도!」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상향의 인간으로서 살고 있진 않죠. 고로 그녀의 생애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하지 않는 생애가 재판 받을 일도 없습니다」
「무슨──」
「알 수 있어요. 염라니까」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에이키가 단언했다.
하지만 그런 에이키의 말은 오히려 아야에게 혼란을 일으킬 뿐이었다.
어떻게 반론해야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한기가 느껴진다. 온몸에서 흐른 식은땀에 옷이 축축해져 있었다.
「……수십 년 전에, 요괴의 산에서 그 아이를 찾아냈어요」
자신의 기억을 되새기듯, 아야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태까지 줄곧, 그 아이를 봐왔었죠. 절벽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은 적도 있고,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맸던 적도 있어요」
「──」
「그 아이는, 살아있습니다」
「──」
「살아있다고요! 환상향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이런저런 사건에 말려들어가 해결하기도 하면서, 환상향의 인간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란 말이에요! 제가 확실히 기사를 써왔어요! 제가, 궁금한 건, 그 아이의 그런 행동이 어떻게 재판될지 뿐입니다!!」
노기에 찬 목소리를 높이며, 아야가 다가섰다.
에이키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 그 모습이, 그녀의 말에 진실성을 띄어보이게 하고 있었다.
아야는, 그런 사실을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선대가 지옥행이라면,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그녀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아니, 사후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저조차 알 수 없어요」
에이키가 말했다.
──전생을 하지 못하고.
──천국이나 명계, 그도 모자라 지옥에조차 가지 못하며.
──영혼이 환상향에 남을 일조차 없다.
선대가 죽는다면, 그 영혼은, 피안은커녕 꽃에 자리 잡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새로운 사실이, 아야의 안색을 창백히 만들 만큼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에이키가 말을 잇는다.
「시작은 아마, 60년 전이겠죠」
「……예?」
「당신들이 「선대무녀」라고 부르는 인간의 존재를, 우리들이 정식적으로 확인한 시기는 현세에서 그녀를 처음 확인했을 때와 그리 차이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알아낸 당시 그녀의 연령으로부터 역산해서, 60년 전, 딱 지금과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죠.
바깥 세계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여, 이번처럼 수많은 혼령이 환상향에 밀려들어왔습니다. 피안이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가득 차있던 혼란을 틈타 숨어들 듯, 그녀는 환상향에 나타났다──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하지만 이윽고, 바깥 세계의 인간도 아니었다는 게 확인됐죠. 당신은, 그녀가 태어나는 순간이나 혹은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을 직접 보았나요?」
「……아니요」
「저희들 또한, 그녀가 어떻게 낳는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환상향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을 두 눈에 담은 건 당신이 처음이겠죠」
아야는 그날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파냈다.
요괴의 산에서, 어린 선대를 찾아낸 것이 그녀와 아야의 첫만남.
그래, 어린 아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이가 아니었다.
주변엔 부모님도 없었다.
일찍이 느꼈던 사실이라곤 하나, 지금 생각해봐도 온통 부자연스러운 일들로 가득하다.
그녀가 점점 유명해져감에 따라, 자연스레 태생과 부모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발견할 수 없었다.
아야는, 그녀를 「어디」의 「누가」 낳은 건지 모른다.
누가 낳았을까?
누가 길러왔을까?
누가 그곳까지 데려온 걸까?
어째서──?
「어떤 악당이 되었건, 지옥에서 살아생전 쌓은 죄를 갚으면, 전생해서 새로운 생명이 되어 다시 환상향에서 태어납니다」
고개를 수그리고 입을 굳게 다문 아야를 둔 채, 에이키는 천천히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야는 그런 그녀를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될지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저, 야마자나두「환상향의 염라」의 관할을 넘어서 있어요. 제가 간섭할 수 있는 사후의 세계가 아니어서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에이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아야가 고개를 드니, 어느새 에이키의 모습은 아득하리만치 머나먼 곳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 마치 거리 자체가 길어지는 것 마냥,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런데도,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에 답해드린 거예요. 제가 해드리는 건 여기까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당신 나름입니다」
이미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떨어진 거리였지만,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린 에이키의 얼굴이 살짝 보인 것 같단 생각이 든 아야였다.
「우연히 만나 변덕스런 마음으로 행동했다 한들, 그건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도중에 내던진 책임,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해내 보이세요」
태어나 세 번째로 보는, 염라의 미소였다.
「못하겠다면, 그때야말로 당신은 지옥행. 적어도 어머니를 자부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당신이 쌓은 선행이 되겠죠──」
그 말을 끝으로, 에이키는 자취를 감췄다.
남겨진 아야와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치르노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보라색 벚꽃이 바람을 타고 덩실거리고, 온 사방에 활짝 핀 피안화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
──나는 죽었다. 깔끔하게(웃음)
「꽤나……여유로워 보이네요」
대자로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사토리가 중얼거렸다.
그 눈빛에서 쌀쌀맞은 기색이 느껴졌다.
미안. 걱정하게 만들어서, 역시 태도가 불성실했나.
「딱히 걱정 같은 건 안 했지만요」
「츤데레 수고」
일어나려던 내 얼굴을, 사토리가 말없이 짓밟았다.
미안! 미안해! 농담이니까 그만둬! 이상한 취미에 눈을 떠버릴 것 같단 말이야!
당황하며 일어선 난, 바로 옆에 있던 의자에 몸을 실었다.
나와 사토리 사이의 탁자엔, 완전히 식어버린 홍차 두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눈을 뜰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린 듯 하다.
이곳은 지령전에 있는 사토리의 방이다.
나와 사토리 말곤, 아무도 없다.
바로 아까까지 나와 마주보고 있었음이 분명한 남자는 물론이요, 내가 직접 체험한 사투의 자취까지,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어때요?」
식은 홍차를 마시며, 사토리가 질문했다.
「당신이 가진 만화의 지식에서 꺼낸 「강적」꽈 싸워본 감상은──」
「완패였다. 고작 두 방에 맞아 죽을 줄이야」
이야, 정말 순식간에 당해버렸네.
그 사람한테 이길 수 있단 이미지는 눈곱만큼도 없긴 했지만, 선전하는 정도의 이미지는 있었는데.
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이쪽이 죽어버렸다.
내 상상에서, 상상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져버리다니.
이게 무의식 효과라는 건가.
지금도 몸통이랑 정수리에 맞은 충격과 고통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 정말이지. 그렇게 좋다고 다시 생각하지 마세요. 저한테도 이미지가 떠오른단 말이에요」
「미안하다」
「정수리가 쪼개진 게 그렇게나 기뻐요?」
「그래」
왜냐하면, 그 「한마 유지로」의 내려찍기를 맞았다고! 에네르기파에 맞아서 태양까지 날아갈 정도로 감동스럽단 말이야!
프로레슬링에 나오는 악역 레슬러 팬이, 그 레슬러한테 맞았다고 좋아하던 걸 지금이라면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비교해봤자 어느 쪽의 감동도 모르겠는데요」
으으……이 감동을 모르는 건가. 아깝네.
만화속의 수련을 동경하여 그걸 현실로 해낸 내게 있어서, 혼자 하는 수행이 아닌 「만화 캐릭터와 싸운다」라는 상황은 최고로 흥분되는 감동적인 체험이었는데.
그런 꿈같은 체험──현실이 아닌 머릿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므로,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을 가능케 한 요인이 바로, 사토리의 협력에 의해 가능해진 수행법, 이름하여──
──쉐도우 복싱의 궁극형 「리얼 쉐도우」였다.
몇 시간 전, 나는 유카리의 허가와 협력을 얻어 지령전에 방문했다.
저번 방문은 오니 이변을 해결하고 며칠 뒤였던가.
그로부터 겨울을 넘겨, 벌써 몇 번이나 지령전을 찾아왔다.
지상과의 불가침 조약은 대체 어따 팔아먹은 거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지만, 실제로 나 또한 이젠 아예 정색하고 친구 집에 놀러가는 가벼운 기분으로 오고 있다.
얼굴을 볼 때마다 사토리의 말투가 불쾌하단 듯 험악해지지만, 익숙해진 지 오래다.
왜냐하면, 유카리가 괜찮다고 했는걸! 나, 나쁘지 않은걸!
……아니, 정말로 유카리한테 부탁했더니 허락해줬을 뿐이지만, 속으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 불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전해들은 일이지만, 그 요우무의 처분은 예상외로 지령전에 체제한단 결론이 났다.
즉, 지금 지령전에는 요우무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백옥루에는 유유코 한 명 뿐이다.
이거 위험하지 않아?
라는 느낌으로, 사토리한테 물으니 「위험하다」란다.
그렇구나, 위험하구나……어떡하려고?
나를 지저에 데려다준 뒤, 유카리는 사토리나 요우무와 말을 나눌 새도 없이 지저를 떠났다.
아니 이거 참, 침묵 속에 이거저거 들은 게 많은 것 같은데, 내 쪽에서 화제를 꺼낼 수도 없었다.
음, 이 일에 대해선……잘 모르겠다.
사토리도 불안해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는 듯하다.
솔직히, 그렇게 빨리 해결될 일은 아니어 보이지만.
사토리와의 잡담 속에서 그런 결론을 내린 나였다.
뭐, 여기까지는 여담이라 치고.
주제는 따로 있다.
계기는, 그런 대화 중 나온 한 마디였다.
요우무 일로, 사토리가 유카리와 유유코를 상대로 「상기」를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사토리는 내 기억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만화 속 악당」을, 능력을 통해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상기──원작에선 다른 캐릭터의 탄막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건 탄막이라는 매개체가 없는 경우엔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 기술인지, 잘 모르겠지만.
2차 창작에 따라선, 상대의 기술이나 능력까지 재현할 수 있는 일종의 카피기술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무지 강력한 능력이다.
배틀물 만화에서 꼭 나오는 타입이니까.
「뭐, 실제로는 느낌이나 분위기를 흉내 내서, 상대방한테 전달하는 정도가 다지만요」
──라니, 정말로 저게 한계인 듯싶다.
원작대로 탄막에 이용할 순 있지만, 스펠카드를 재현하는 것과 능력을 재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즉, 사토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무지 비슷한 흉내」라는 느낌일까.
뭐, 생각해보면 마음을 읽는 능력 자체가 정신 공격을 전제로 한 능력이기도 하니.
사토리라는 요괴는, 오니처럼 힘이 세서 두려움을 사는 요괴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강타할 수 있는 공포를 가진 요괴이기에 두려움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상기」의 효과를 듣고, 나는 이 「리얼 쉐도우」에 써먹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사토리가 내 기억에 있는 만화 캐릭터를 재현하고, 그것과 마주하는 것으로 「리얼 쉐도우」를 만들기에 부족한 자신의 상상을 보충하는 것! 바로 그게 노림수였다.
이 계획은, 훌륭하게 성공.
나는, 상상이긴 했지만 그 전설적인 오거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사토리 덕분이야!
「아니요. 정말 굉장한 건 당신이에요. 정말로 상상만 갖고 재현할 수 있을 줄이야──」
사토리는 내 이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직접 볼 수 없는 내게 아릿한 고통이 알려주고 있다.
무언가에 맞아 생긴 것이라 짐작되는 멍이 생겨 있겠지.
물론, 처음부터 있던 것도 아니고, 넘어졌을 때 생긴 것도 아니다.
그곳은, 이미지 속에서 내려찍기를 맞은 자리였다.
그때 입은 충격이, 현실의 상처가 되어 몸에 새겨진 것이다.
가슴에서도 비슷한 고통이 느껴졌다.
「진짜였다면, 이정도로 끝나진 않았다」
「그랬겠죠」
정말로 피가 나왔을 테니까.
그 전에, 몸에 피해가 반영되는 걸로 끝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상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종국엔, 거대 사마귀와 싸울 수 있게 되기도 하던가.
「하지만, 요령은 잡은 느낌이 드는군」
「그런가요. 그럼 나머진 알아서 하세요」
그래! 최후의 목표는 「공기 된장국」이다!!
완성되면, 먼저 사토리한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줄게.
마음속에 내건 목표를 읽어낸 걸까, 사토리는 진심으로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후, 개그치는 것처럼 보이지?
난 진심이라고.
그래,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이야.
상상이라곤 하지만, 만화 캐릭터랑 싸울 수 있다니. 이것보다 굉장한 수행은 없어! 절대로 완성해보이고 말겠다!!
수행법을 습득하기 위해 수행한다는 영문 모를 의욕이 잔뜩 샘솟았다.
기나긴 시간동안 느껴보지 못한 정열이다.
레이무를 주운 뒤로는, 수행에 열중하는 시간이 상당히 줄었으니까 말이지.
「당신, 그 오니 이변을 계기로 좀 변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보이나?」
「예, 머리가 이상한 건 변하지 않았지만요」
「……너무하군」
「그저,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져 있어요」
그럴지도 몰라.
나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토리의 분석이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난 뭔가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다.
현재, 지상에선 사계절의 꽃이 동시에 흐드러지게 피는 이변──까고 말해서 원작의 「동방화영총」 스토리가 진행되는 시기가 되었다.
물론, 그 진상은 이미 알고 있고, 그 지식을 미리 레이무에게 돌려서 말해주었다.
그 뒤, 레이무가 어떻게 판단해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식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이변──정확히는 그 이변과 엮인 딸──을 항상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
아니, 분명 이번뿐만이 아니라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할 날은 이제 오지 않겠지.
오니 이변을 해결한 날 밤, 나는 레이무에게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이다.
레이무가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지저에서 친구와 어울리고, 바보짓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좋아하는 수행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 건 분명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말은……뭐, 나이 값도 못하고 주책을 부릴 수 있게 됐다는 소리네요」
사토리가 토를 달 듯 말했다.
부정할 수 없어…….
하지만 실제로 한 번의 고비를 거쳐, 심경의 변화가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
요괴의 산에서부터 시작된 서바이벌 유아기를 살아남고, 하쿠레이의 무녀가 된 뒤부턴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레이무라는 딸을 얻은 뒤부턴, 첫 육아나 교육에 번번이 악전고투하기 일쑤였다.
현역을 은퇴했을 터인데, 왠지 나도 모르게 말썽에 계속 말려들어가고──이제야 겨우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는 느낌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을까?
수십 년……수십……구체적으로 몇 년이지? 위험해, 내 나이도 모르겠어!
뭐 어쨌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나다.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빨리 죽을 생각은 없지만, 이렇다 할 미련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데에 소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애당초, 만화에서만 가능한 말도 안 되는 수행을 동경해서 따라했다.
내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일단 혼자 리얼 쉐도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내 수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마지막 화가 아니잖아요.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이제 됐죠?」
이어줘서 고마워, 사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