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43「경계」
야쿠모 유카리의 집은, 하쿠레이 신사와는 또 다른 환상향의 경계선 사이에 있다.
하쿠레이 신사와는 달리, 그 장소가 어딘지를 아는 자는 극히 소수. 현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인간이든 요괴든 어느 누구도 그 저택에 발을 들이미는 것을 용납 받은 자는 없다.
오늘, 그것에 두 개의 예외가 늘어나게 됐다.
「맛나는 밥이구먼」
된장국이 든 그릇에서 입을 떼고, 마미조가 마음속을 털어내듯 중얼거렸다.
겉치례로 한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배어나온 말이었다.
된장국만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요리들. 희미한 김을 풍기는 흰쌀밥과 생선구이 등을 비롯해 그 모든 것이 일품이었다. 그 외에도 반찬으로 나온 채소절임과 날달걀은 바깥세계의 슈퍼 같은 곳에서 균일 판매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맛을 뽐냈다.
순일본식 식사라는 것 또한, 마미조에게 있어선 보기 드문 것이었다. 바깥세계에서는, 전문 요정에라도 가지 않는 이상 이 수준의 일식을 맛볼 수 없다.
식사를 하는 장소 또한 훌륭하다.
집주인에게 있어선 아무런 특징도 없는 거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마미조가 툇마루 너머로 바라보는 안뜰은 그야말로 절경.
밖에서 사람이나 차 소리 같은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도시에는 없는 정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가끔 울려 퍼지는 대나무방아의 속이 시원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안뜰을 바라보면서, 요리로 입을 달랜다.
바깥세계에서는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얻지 못할 식사와 풍경을, 이곳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맛볼 수 있다.
마미조는, 환상향에 흘러 들어오게 된 것에 감사함조차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아니, 증말로 맛나는 밥 맞잖여?」
마미조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다른 인물들을 재촉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옆자리의 레이무가, 시선을 돌린 게 다다.
침묵과 식기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만이 되돌아오는 상황 속에서, 드디어 숨기지 못한 땀 한 방울이 주륵, 하고 마미조의 이마를 따라 흘러내렸다.
거북한 분위기가 맴돈다.
그 「위험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미조 단 혼자였다.
식사를 시작한 뒤로, 계속 이 상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이무와 마미조가 이 야쿠모 유카리의 저택에 초대되가 난 뒤부터 계속, 이라고 말함이 옳겠지.
두 명이──특히 마미조가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이란 사실을, 묵묵히 보이는 쓴웃음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졌다.
고개를 수그린 채 식사를 계속하며, 마미조는 눈치를 살폈다.
이 안에서 가장 문제인 건, 이곳의 주인인 요괴와 그 시종이다.
야쿠모 유카리와 야쿠모 란.
우호적인 의미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자기소개를 처음 들은 뒤, 이름과 간단한 지위만은 알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그 뒤로는 마미조 자신이 추측 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할 것도 없이, 야쿠모 유카리가 말도 안 되는 대요괴란 것은 싫어질 정도로 알 수 있다.
이 저택에 방문할 때, 딱 한 번 「틈새」라 불리는 힘을 보았지만, 정말이지 무섭고 기분 나쁜 능력이었다. 정말 정체불명이다.
시종인 야쿠모 란도 강력한 요괴다. 무엇보다, 여우 요괴다. 서로가 다루는 힘의 본질이 비슷하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피부로 느꼈다.
환상향에서, 뛰어난 실력과 그에 걸맞은 지위를 갖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두 마리의 대요괴.
그런 자들이, 바깥세계에서 어쩌다 흘러 들어온 생판 남인 자신을 환영할만한 합당한 이유는 없다.
마미조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장소의 분위기가 이런 것도 어쩔 수 없다.
──라고 이해하고 있음에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마미조 나름의 성품이었다.
「그런데 말여, 니들」
이제까지 묵묵히 밥을 입에 넣고 있던 마미조가, 밥그릇과 젓가락을 조용히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릇 속에 들어있던 것은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지만.
「요따구로 눅눅하게 바람 잡고 묵는 밥은 맛있는겨?」
「식사 중엔 정숙하시길 바랍니다. 후타츠이와 님」
란이 눈조차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그러니께, 적당히 하라 카는 기라!」
마미조가 탁자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그래도 난동을 부리려들진 않았지만, 어깨를 들썩이며 란을 노려본다.
「니 말이여, 내한테 말하고 싶은 기 있음 퍼뜩 말하라!」
「……뭔가, 손님께 무례를 저지르기라도 했습니까?」
「그거다, 그거! 겉만 그럴싸하게 꾸며싸코, 배에 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차있다 아이가! 불평이나 불만스러운 게 있음 그따구로 맹하니 있지 말고, 그냥 되는대로 불란 말이여!」
「불만이라니. 유카리 님이 초대하신 손님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 주인이 내를 초대했으니 마지못해 대접한다는 게 뻔히 보인다 안 카나! 뭣보다──」
마미조는 레이무를 향해 시선을 돌린 뒤, 얼음처럼 굳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란의 얼굴을 다시금 날카롭게 째려봤다.
「내는 됐다 혀도, 레이무한테까지 그러는 건 뭐 어쩌자는 긴데!?」
레이무는 크게 놀랐다.
놀란 점은 두 가지.
마미조가 정말로 란에게 화가 났다는 것. 그리고 그게 자신을 위해서라는 사실에.
「니가 내를 경계하는 건 잘 안다. 만난 지도 쪼매 전이고, 뉜지도 모를 쌩판 남이니께. 다른 땐 아무도 안 찾아오는 니 주인 네 집에 그런 녀석이 찾아와선 밥에다 잘 곳까지 빌리면 맘에 안 드는 건 당연한기라.
게다가 닌 여우 요괴니께, 요수로서 가진 힘도 격도 꽤 한다는 건 안다. 너구리 요괴인 내하곤 궁합이 나쁜 기 뻔하제, 그냥 별 이유 읍이 내를 싫어 칸다 혀도 어쩔 수 읍다. 그 전에 내도 니가 그냥 싫으니께 안심혀라」
영문 모를 말로 화제를 올리며, 마미조가 말을 이었다.
「글타 케도, 레이무는 니들 가족이잖여! 근데 니가 아까부터 해쌌는 눈초리는 내처럼 쌩판 남 보는 것 같은 차가운 눈이여! 재난 탓이 집에 가족까지 잃은 이 아를 환영하는 건 무리라 혀도 적어도 따뜻하게 맞아줄 순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마미조, 난 괜찮아」
「아니, 안 괜찮구먼!」
냉정한 레이무와는 반대로, 마미조는 말하는 동안 점점 감정이 격렬해진 듯했다.
레이무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 같은 애먼 사람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 정도는 차라리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마미조가 이 저택에 초대받은 것은 우연이었다.
그때 신사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혹 신사에 남아 레이무를 돕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던 건 레이무 혼자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그녀는 아무 불평불만 없이, 장식품 같은 취급을 받으며 온기 없는 식사를 아무 말 없이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용서할 수 없다.
마미조가 정말로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이 아닌 레이무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였다.
「애당초 말이여, 이건 야쿠모 유카리 공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 안 혀?」
「──」
「주인인 당신의 태도가, 시종의 태도에 반영되고 있는 기라고 생각하는구먼」
화살을 돌린 마미조의 말에도, 유카리는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식사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에게 비난을 돌린 탓일까, 란은 이제까지 숨겨왔던 위협적인 눈빛을 쏘아 보내며 마미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그렇게 잠시 동안 유카리를 가만히 노려보던 마미조는, 이윽고 작게 혀를 참과 동시에 내세워졌던 몸을 뒤로 당겼다.
유카리나 란의 위협에 눌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분노에 대한 반응을 기대하는 게 잘못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커튼을 손으로 밀치는 것 같았다.
결국, 자긴 오늘 막 만난 출신도 모르는 요괴. 그런 자신의 말 따위에 대꾸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을 시옷자로 만들고 짓씹으며 분노를 거두기 위해 찻잔에 손을 댄 마미조의 표정이 문득 바뀌었다.
무슨 꿍꿍이라도 생긴 듯, 히죽거리는 미소를 짓는다.
「……어이 여우, 찻잔이 비었잖여. 손님이 계시걸랑 짝짝 차를 따라 드려야제」
란은 그 정중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무례한 말투를, 수준 낮은 도발이라 받아들였다.
묵묵히 찻주전자를 집어 안에 담긴 차를 따른다.
「──무슨!?」
그 순간, 이변을 알아챈 란이 목소리를 높였다.
차를 따르기 시작하자마자, 찻잔에서 차가 넘쳐흐른 것이다.
기울여진 찻주전자에서 나오는 차의 양과 찻잔에서 흘러넘치는 차의 양은 확연히 달랐다.
찻잔 위로 살짝 흘러나오는 수준 밖에 안 되던 찻물이 단숨에 몇 배로 불어나 탁자를 뒤덮더니, 탁자 위에 차려진 요리를 밀쳐내고 순식간에 온 방으로 퍼져나갔다.
방에서 흘러넘친 차가 바닥을 타고 마당으로 흘러내린다.
찻잔에서 흘러나왔다고 보기엔 확실히 비정상적인 양이었지만, 넘쳐흐르는 물의 기세는 전혀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차라기보다 녹색 바다라고 부름이 옳을 그것에 하반신이 잠겼지만, 그 자리에 모인 넷은 어느 누구도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오」
마미조는 란을 가만히 바라본 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란은, 이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찻주전자를 기울인 채 계속 차를 따르다가, 시간을 재듯 마저 따르곤 찻주전자를 평행하게 기울였다.
바로 그 순간, 찻잔에서 넘쳐흐르던 찻물의 홍수가 멎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의 다다미는 물론이요 탁자 위에도 넘쳐흐른 찻물의 모습은 없었다. 요리는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있었고, 분명히 흠뻑 젖었을 터인 네 명의 옷은 그 어디에서도 젖은 자국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흐음, 용케 흘리진 않았구먼」
새로이 따라진 찻잔 속을 들여다보며, 마미조는 악동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에 란이 작게 코웃음을 치며 답한다.
방금 일어난 현상은, 전부 마미조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이다.
란은 그것을 간파하고, 진짜 차가 흘러넘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작업을 끝냈다.
당연히, 레이무와 유카리 둘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흐흠」
그럼에도 마미조로서는 맨 처음 란의 놀라는 표정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약간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차를 입에 머금는 마미조.
「──푸웁!!? 이기 뭐꼬, 쓰다 아이가!!」
차를 마신 순간, 성대한 기침과 함께 마신 걸 그대로 뱉어낸 마미조가 울상을 지었다.
「이런,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찻잎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군요」
이번엔 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미조의 속임수에 이어, 그녀 또한 들키지 않게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네, 네 녀서억~」
원망스러움이 녹아든 말과 함께, 마미조의 눈이 날카롭게 째진다.
당장이라도 한 판 벌일 듯한 분위기였으나,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건 이상, 여기서 직접 손을 대는 건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마미조의 인식은 그랬다.
「담력 좋구먼. 바깥으로 퍼뜩 나오라 임마!」
「죄송합니다. 지금은 시시한 장난에 어울릴 여유가 없군요」
「핫! 정중한 척이나 하더니 무례한 본성이 훤히 나오는구먼」
「그쪽도, 시골 너구리다운 품성과 얄팍한 힘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좋다 이거여, 한 판 뜨자 이거제. 흠씬 두드려주꾸마!」
마미조와 란은 서로 몸을 내세우곤 짐승이 이를 드러내듯 웃으면서 이마를 맞부딪혔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유카리는 여전히 무시에 가까운 태도를 보일 뿐이다.
그런 둘 사이를, 레이무가 나서서 가로막았다.
「마미조, 그만해」
부탁이라기 보단 명령하는 듯한 강압적인 말투였다.
「식사중이잖아」
「하, 하지만 말이여……」
「이유가 뭐든 간에, 식탁 앞에서 말썽부리는 건 용서 안 해. 예의 없긴」
레이무의 질책에, 마미조는 푸욱 하고 낙담했다.
그 뒤, 레이무는 란에게도 차가운 시선을 쏘아보냈다.
「란, 너도」
「무슨──」
「야쿠모의 식 주제에, 밥상 앞에서 지켜야할 예의도 몰라?」
그 지적에 란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앞에서 수모를 당했단 생각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뚜렷하게 들어났지만, 레이무에게 반론을 펼친다는 행위가 더더욱 수치스러움을 더할 뿐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옅게 뺨을 붉히며, 란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몸을 바로 했다.
원흉인 마미조의 모습을 노려보듯 살핀다.
고개를 수그린 마미조의 입엔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제야, 란은 간신히 그녀의 속셈을 알아챘다.
처음부터, 레이무가 란을 혼내게 하는 것이 마미조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레이무를 푸대접하는 란을 향한 보복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그것을 알게된 란은 작게 신음하며,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패배감을 곱씹었다.
「──레이무」
서로 반대되는 심경으로 입을 다문 두 요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카리가 작게 입을 열었다.
마미조와 란의 대화.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꿍꿍이와 진심들은 이미 알아챈 지 오래다.
이윽고, 유카리는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었다.
「너, 꽤 재밌는 요괴를 데려왔구나」
식사를 시작한 뒤, 유카리는 처음으로 레이무에게 시선을 보냈다.
레이무는 그 시선을 좌절감 어린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유카리」
「왜?」
「나도, 차」
「알겠어」
내밀어진 빈 찻잔에, 유카리가 미소 지으며 차를 따랐다.
◆
잠옷으로 갈아입은 레이무는 툇마루에서 마미조를 찾아냈다.
밤의 장막이 펼쳐진 안뜰을 바라본 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뭔가 재봉을 하고 있는 듯, 두 손 사이로 붉은 천과 바늘이 보였다.
「오, 목욕하고 온 겨?」
점차 다가서는 레이무를 눈치채곤, 마미조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은 제대로 말려야 혀. 안 그럼 몸이 식으니께」
「알고 있어」
마치 어머니 같은 말을 하는 마미조.
덧붙여, 레이무의 어머니는 과묵했기에, 무어라 말하기 전에 행동으로 먼저 나서는 일이 잦았지만.
──왜, 이 너구리 요괴는 나한테 이렇게 괜한 참견을 하는 걸까?
레이무는 그것이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답을 내지 못한 채 마미조가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곤,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뭐하는 거야?」
「쪼매만 기다리래이. 좀만 더 하믄 끝나는구먼」
마미조는 마지막이라는 듯 바늘을 길게 빼더니, 그대로 실을 물어뜯었다.
「어여 받어」
마미조가 휙 던져 건네준 그것을, 레이무는 당황하며 두 손으로 받아냈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천이었다. 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천의 양끝엔 하얀 프릴이 달려 있었다. 잘 보니, 붉은 천 위로 흰 실로 뜬 아름다운 자수까지 들어가 있다.
「이거, 리본이야?」
레이무의 질문에, 마미조는 재봉 도구를 정리하며 끄덕였다.
「무너진 신사에서 찾은 옷이 하나 있었잖여. 그 천으로 만든 것이여」
「에, 그건 넝마가 돼버려서 유카리한테 부탁해서 처분했을 텐데……」
「그야 옷 구실을 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케도, 무사한 부분이 많았으니께. 그냥 버리믄 아깝잖여? 리사이클이여, 리사이클」
「 「리사이클」이 뭐야?」
마미조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아깝다고 걸레로 만들면 안 되잖여. 중요한 어무이 옷이니께」
「……알고 있었어?」
「니가 입기엔 쪼까 컸으니께. 야쿠모 유카리 공한테도 이러저러 들은 게 있고 말이여」
이야기를 들었다──기 보단, 이쪽에서 물어본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멋대로 말해준 유카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자신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 예상했던 걸까. 그렇다면, 왠지 무섭다. 아니, 비뚤어졌다고 말함이 옳을 것인가.
어쨌든,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지만 딱히 불만스럽지도 않았다.
마미조는 복잡한 심정을 레이무에게서 숨기며, 쓴웃음을 씹어 삼켰다.
「괜한 도움이었던겨?」
「……아니」
「그려, 그거 다행이구먼」
「고, 고마워」
「뭘 또 고맙다는 거여, 기뻐해준다면 내는 그걸로 만족혀」
레이무는 리본을 품속에 끌어안듯이, 잠시 동안 꽉 움켜잡고 있었다.
「……저기, 마미조」
「와 부르는 겨?」
「왜, 넌 나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거야?」
「왜냐니……친절하게 굴면 안 되는 겨?」
「그게, 우린 만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게다가 인간이랑 요괴 사이기도 하고」
「그건 그렇제, 서로 남일 이유는 있다 혀도, 친해질 이윤 읍다 그거가」
「맞아」
「흐음. 이유, 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미조는 품속에서 홀쭉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 주머니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담뱃대였다.
물부리와 설대에 금장식이 들어간, 가치와 연륜이 함께 배인 물건이다.
「──이유란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여?」
담뱃대를 손안에서 빙글빙글 굴리며 중얼거리는 마미조.
「이유가 없으면 이상하잖아」
「별로 이상할 것도 없구먼. 빚이나 씌우자고 니를 도왔다든가, 그런 대단한 꿍꿍이로 한 일이 아니여. 작은 수고와 마음에서 나온 친절함이제」
「하지만, 납득이 안 가」
「도리가 통하지 않는 일엔, 무심코 의심이 가는 거구먼?」
「그건……그럴지도」
「그럼 안돼야, 제대로 되먹은 이유가 없음 남의 선의를 순순히 못 받아들이는 건 비뚤어진 녀석이란 증거여. 그 생각은, 그 야쿠모 공의 영향인 겨?」
「왜, 거기서 유카리가 나오는 거야?」
「그야, 내 나름대로 니들을 보고 멋대로 느낀 것이제. 아까 밥 묵을 때도 그랬잖여」
그렇게 말하며, 마미조는 손으로 놀리던 담뱃대를 고쳐 잡았다.
같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던, 종이에 싸인 살담배를 꺼내더니. 그것을 담배통에 말아 넣는다.
「처음엔 내 혼자 화가 나부려서 불평하기도 했지만 말이여, 야쿠모 공은 야쿠모 공 나름, 의외로 니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지도 몰러」
「……뭐야 그게. 기분 나쁜 말 하지 마」
레이무가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유카리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본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였다.
마미조의 눈으로 본 레이무에게 있어서 야쿠모 유카리란, 말로만 들은 의모와는 또 다른 대모 같은 입장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레이무의 반응에 그걸 직접적으로 입밖에 꺼내려 들진 않았다.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말을 들은 레이무의 기분은 확실하게 불편해질 것이다.
「상냥하게만 대하는 걸 애정이라고 혀진 않는구먼」
마미조는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엄하게 대하는 것 또한, 사랑이여」
부모의,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레이무. 니, 어무이한테 맞은 적은 있는 겨? 아, 물론 혼난 거 말이여」
「있어」
레이무가 대답했다.
「몇 번?」
이번엔 빨리 대답할 수 없었다.
눈앞의 요괴는, 마치 이쪽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정확한 부분을 찔러든다.
「……딱 한 번」
「오호라, 그거 굉장하구먼. 사리분별 하난 허벌나게 잘했던 모양이제」
「어머니가 날 엄하게 대하지 않은 건, 날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아니, 그게 아녀. 분명 상냥한 어무이고, 너도 영리한 아라고 말하고 싶은 거여.
그래도 말이여, 한 번 아픈 꼴을 당하지 않음 익힐 수 없는 일이 있는 건 인간이고 요괴고 마찬가지구먼. 니가 맞았다던 한 번, 그때 분명 중요한 걸 배웠제?」
레이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마미조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마음속에 쌓여가던 시커먼 속내를 털어놨을 때.
그래서 어머니한테 맞았을 때.
그때의 아픔은 아직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떠올리면,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밀려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중요한 것이 되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봐라, 레이무. 어무이를 좋아하제」
「……응, 좋아해」
「반항기──는, 모르겠구먼. 뭐, 쉽게 말하자믄 이따금 어무이가 귀찮다는 생각은 안 한 겨?」
「없어. 한 번도」
「그려. 하지만, 아한테 소외당하는 것도 부모가 맡은 하나의 역할인 거여. 무슨 일이 됐든, 좋은 걸 배웠음, 나쁜 것도 알아야만 하는 기라고 내는 생각혀. 차가움으로 따스함을 알고, 실수를 하고 올바른 걸 배우는 거제」
「그게, 유카리의 역할이라는 거야?」
「글씨, 어떨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마미조는 담뱃대를 빨았다.
레이무는, 마미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연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기, 생각해본 건데」
「뭔디?」
「처음 했던 질문에서 이야기가 새지 않았어?」
「어라라, 그리 돼부렸나?」
마미조는 시치미 떼듯 웃었다.
얼버무리는 거 한 번 잘하네, 라고 레이무는 생각했다.
그래 「잘 했다」 . 어느새, 그녀의 친절함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렇게 친근하게 대화하는 상황이 기분 좋게 느껴지고 말았다.
레이무는 옆에 앉은 요괴에게 자신이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저기, 마미조. 잠깐 들어줘」
「뭘 말이여?」
연기를 내뱉곤 마미조가 답했다.
「신사를 부순 범인이 있나봐」
「그려. 그거 참 너무한 짓을 하는 자슥도 있구먼」
「나, 그 녀석이 미워」
「그렇구먼. 그야 당연히 밉겠제」
「……죽이고 싶을 만큼 , 미워」
숨겨져 있던 마음의 어둠을 털어놓는 레이무.
입으로 소리를 내어 말해보니, 자기도 놀랄 만큼 거무칙칙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려」
마미조는 그런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 마음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것만으로도, 레이무는 고마웠다.
「응」
「왜 그려?」
「죽이는 건 나쁜 일이잖아.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그렇제, 그래도 좋을 대로 혀」
마당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 마미조가 말했다.
레이무는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니도 잔뜩 화났잖여?」
「……응」
「복수혀서, 상대를 죽이삐는 게 참말로 옳다고는 내는 생각 안 혀」
「그래 맞아. 하지만, 참을 수 없어.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내 중요한 게, 전부 부서져서……젠장」
「음. 그라믄 말이여, 맘대로 하면 되는 거여. 불합리하게 당했는데, 복수를 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께」
「하지만……」
괴로운 듯 말끝을 흐리는 레이무의 눈에는, 약간이지만 눈물이 맺혀 있었다. 원통함이 담긴 눈물이었다.
마미조는 레이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작은 아이를 대하듯, 상냥하게 속삭인다.
「어느 쪽이 올바른지, 내는 대답할 수 없구먼. 그러니께, 적을 앞에 두고 다시 결단해야만 하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전부 하고 싶은 대로 혀면 되는 거여」
「──」
「그 자리서 그만 멈추는 것도, 잘못이란 걸 알고도 저질러버리는 것도, 니한테는 마찬가지인 일이여. 분명, 어느 쪽을 고르든 응어리가 남을 테니께」
「──」
「그 다음, 니가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무이한테 말하면 되는 거여. 분명, 어무이는 니를 혼내지 않고 용서해줄 테니께」
「…………응」
레이무는 잠시 동안, 마미조에게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레이무는 말없이 몸을 떼었다.
담뱃대로 연기를 빨아 마시는 마미조의 모습을, 약간 원망스런 눈빛으로 노려본다.
「너, 냄새나」
「흐음, 담배 냄새 아니여?」
「알고 있어. 그 담배라는 거, 몸에 나빠. 어머니가 말했단 말이야. 「술을 마시는 건 좋지만, 담배만은 배우지 말거라」라고」
「후후후, 그거 참 훌륭한 교육이구먼. 그 말이 맞어, 이런 건 백해무익한 것이여」
「그럼, 넌 왜 그걸 피는 건데」
「그러게 말이여. 왜 그런지는 내도 모르겠지만, 나쁘단 기는 잘 아는디 그만두질 못 혀. 아니, 이거 참 곤란하구먼. 곤란허기 짝이 읍어」
그렇게 말하며, 마미조는 큰 목소리로 웃었다.
◆
평일의 책방은 한가하다.
특히 점심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식사를 하러 가기에 그 수가 더욱 줄어든다. 저녁 시간대에 학생 손님이 들어오기 전까진 일이 그렇게 바쁘지도 않다.
「──저, 죄송합니다」
그 여성 점원은, 카운터에서 자신에게 들려온 말에 반응했다.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곤, 이윽고 시선의 방향을 약간 아래로 향해 고친다.
「네, 뭔가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책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몸집이 작은 귀여운 소녀였다.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에 원피스와 그 위로 걸친 가디건. 단정한 이목구비와 함께, 무심코 미소가 지어질 정도의 귀여움이다.
점원의 영업용 미소가,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떤 책을 찾고 계시죠?」
「만화책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는 제목이에요」
들어보지 못한 제목이었다.
컴퓨터로 검색해봤으나, 가게의 재고는 물론이요, 제목 자체가 검색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만, 그런 책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제목이 틀린 건 아닐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또 한 권, 「동방구문사기」라는 책은 있나요?」
「──죄송합니다. 그런 제목의 책도 없는 듯합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이거, 계산 부탁드려요」
소녀는 애석해하는 기미도 없이, 몇 권의 문고본을 카운터 위에 올려놨다.
점잖은 아이구나, 하고 점원은 감탄했다.
겉으로 보기엔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어른 점원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질문을 건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어른스러운 소녀라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눈앞의 소녀의 나이는 분명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 시간대엔 학교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땡땡이라도 치는 건가? 아니, 그런 불량한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가녀린 몸매를 보니 묘하게 병약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 혹시 입원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게 아닐까──.
「저는 몸이 약해서 병원에서 잘 나오질 못해요. 그래서 학교에도 못 가죠, 그래서 대신 이런 책을 읽고 있답니다」
역시 그랬구나──라며 점원은 약간 거북해지는 기분을 참으며 납득했다.
아마 쇼핑은 익숙하지 않은 듯. 당황하며 돈을 꺼내드는 소녀에게 방금 일에 대한 사과도 할 겸 정중한 태도로 대하며 계산을 마쳤다.
「감사합니다」
점원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요즘엔 보기 드문 예의 바른 여자 아이다.
자연스레 바래다주는 것에도 열의가 생겼다.
「아니요.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
「예──기회가 있다면요」
매장에서 떠나가는 소녀의 등을, 점원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접객업을 하다 보면 어떤 손님은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할 때도 많다. 그런 와중에 그 소녀의 방문은 마치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다시 와 줄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기억에 남은 시간이었다.
카운터로 돌아온 점원은, 아직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소녀가 찾은 책의 제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다.
「……응, 역시 그 애가 뭔가 착각한 걸 거야」
소녀가 찾고 있던 책은 물론, 키워드 하나조차 맞아드는 것이 없었다.
◆
──나비효과.
브라질에서 나비가 일으킨 바람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작은 차이가, 머지않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여파를 일이키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요컨대 「비가 내리면 우산장수가 득을 본다」는 말이로군요」
손에 들린 문고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토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충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간다.
즉, 사물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의 톱니바퀴가 사라지는 것을 수많은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이렇게 바깥세계에 있음으로 인해 지령전의 주인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그 탓에 지저의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있는 것과 같이.
자기가 비유한 것임에도, 사토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싶어졌다.
무사히 환상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분명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정말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머릿속을 처음 한 생각으로 되돌렸다.
「진짜를 읽는 거,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방금 방문했던 책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미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선대의 지식 속에 있던 만화들은, 그녀가 전생해온 이세계에만 존재하는 책이며, 이 바깥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었다면, 바깥세계를 오다닐 수 있는 야쿠모유카리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선대의 인식에 따르면, 모두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선대는 그 만화속의 대사를 몇 번이고 인용해왔다.
선대 스스로가 말했듯이, 그런 높은 지명도를 지닌 「명대사」를, 야쿠모 유카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본이 되는 만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사토리는 예전부터 이미 그런 예상을 해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쯤 기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없다는 것이 판명되니, 유감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토리에게 가장 신경 쓰인 것은 그게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방금 언급했던 「명대사」──선대가 그러했듯이, 이런 말은 인용되는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위인의 말이 그럴까.
또한 「패러디」라는 장르도 존재한다. 유명한 작품을 2차 창작하여 모방하거나 비슷하게 연출한 작품들을 일컫는 장르다.
사토리는 원작이 유명한 만화책들도 알고 있었고, 그 패러디들 또한 선대의 지식 덕에 잘 알코 있다.
이 세계에, 선대가 아는 수많은 서브컬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그것을 원작으로 삼는 패러디나, 인용된 대사조차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소한 의문도, 그로부터 시작하여 시야를 넓게 가지니, 사물 전체로 번진 일그러짐을 깨달았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장수의 이득은 없는가.
홰치는 나비가 없어지면, 회오리는 사라지는가.
「확인, 해야 겠죠……?」
그것이 어떠한 금기에 접하는,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사토리는 읽던 책에서도 시선을 떼고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바깥세계에 오기 전, 지령전에서 생각하던 것을 떠올린다.
선대의 지식 중엔 「동방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작품에 불과하던 이 세계.
눈에 보이는 것들 전부가, 대충 수정과 삭제가 가미된 왜곡된 풍경으로 보여 왔다. 그 흔적이, 미세한 모순을 남기고 세계의 밑바닥에 잔존해 있다.
자신이 사는 세계가, 지구라는 거대한 구체임은 사토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걸까요?
──이 세계에 한해서,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머엔 사실 아무것도 없고, 바닷물이 그대로 폭포수처럼 저 아래로 떨어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생각이 진지하게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곳이야말로 환상의 세계네요」
일본 신화에선 신이 최초의 인간을 낳고, 그 인간이 사는 나라 또한 만들어냈다고 전해진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의문과 일그러짐을 추구한 끝에, 바깥세계에서 부정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도착하다니, 왠지 짓궂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성과도 없이 고민만 하고 있음을 깨달은 사토리는 생각을 멈췄다.
고개를 올려, 다시금 자신이 앉은 자리를 확인한다.
공원 한 구석. 사토리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원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이나, 보트를 타고 노는 아이와 부모가 보였다.
본 적 없는 풍경.
들어본 적 없는 소리
평일의 조용한 공원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답답함, 비좁은 세계가 전해주는 압박감.
그것들에서 눈을 돌리고, 사토리는 다시금 손에 든 책에 눈을 돌렸다.
잠시 뒤, 선대가 온 것을 눈치챘다.
사토리가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책방을 들른 것에 비해, 그녀는 조금 먼 편의점에 물건을 사라 갔던 것이다.
선대의 그 커다란 몸이, 바로 옆자리에 자리 잡자 목제 벤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낯익은 무녀복과는 다른 현대풍 패션이, 묘하게 어울린다.
선대가 사 온 오렌지 쥬스를 받아들고, 약간의 대화를 나눈 뒤, 사토리는 다시금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고민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요?」
바깥세계에 온 뒤, 몰라도 괜찮은 것들을 알고, 거기에 골머리를 썩히는 자신.
「모르겠군」
선대의 대답이, 사토리에겐 왠지 무책임하게 들려왔따.
──그녀는, 내가 앞으로 이틀 뒤에 이 세계에서 소멸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
사토링의 현대 패션이 너무 어울려서 뿜었다.
뇌 속 카메라로 「동방현대화」라는 태그를 붙여서 보존해두자!
옷을 선택한 청아의 센스엔 Good job이라는 말을 금할 수 없었다.
청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 날, 청아는 아침부터 나와 사토리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는 가까운 옷가게에서 옷을 사 갖다 준 것이다.
사실 우리들도 동행해서 옷가게에서 시험 삼아 입어보며 제대로 된 걸 골라서 사는 게 좋았을 테지만, 역시 거기까지 입고 갈 옷이 없다.
게다가 어젯밤에 시가지에서 그런 일까지 일으킨 나다.
덤으로, 그 사건이 아침 뉴스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트럭 사고에 대한 뉴스는 있었지만 「경찰이 현재 조사 중」이라고만 나왔을 뿐 자세한 내역은 설명되지 않았다.
뭐, 마초 무녀가 트럭을 때려서 멈췄다든가 하는 일을 방송하면 불평이 잔뜩 밀려들어서 프로그램의 신용이 폭삭 무너질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쨌든 경찰 쪽에서 정식적인 견해가 나오기 전까진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바로 어제 그런 일을 한 주제에 오늘 그 현장에 뻔뻔히 얼굴을 들이밀 순 없는 노릇이다. 나도 사토리도 눈에 띄는 모습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결국,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청아 홀로 가줄 수밖에 없다.
자금도 완전히 그녀 몫이기도 했고, 정말 머리가 계속 숙여질 따름이야. 아니 근데에─, 이거 꼭 기둥서방 같은 꼴이네.
하지만 그 덕분에 복장만은 눈에 띄지 않게끔 갈아입을 수 있었다.
……변장은, 주변에 녹아들 수 없는 신체적인 특징 탓에 무리지만.
나는 어쨌건 간에 몸집이 커서, 외국제 남성복밖에 맞는 게 없었고, 디자인도 한정되어 있었기에 손에 넣은 건 한 벌 뿐이었지만, 사토리에겐 귀여운 디자인의 옷이 여러 벌 주어졌다.
게다가 이것들이 전부 어울린다.
청아는 정말 센스 좋네. 역시 현대에 사는 여자다워.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 발상 탓에 그 방면에 대한 미적 센스가 부실한 나와는 천지차이다.
환상향에서도 일상생활을 할 때엔 무녀복만 입고 있었던 탓도 있고, 전생의 지식을 모조리 끄집어내봐도 옷 고르는 센스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내가 입는 옷은 소매를 찢어낸 도복으로 봐도 좋았을 정도다.
게다가, 이건 현대들이를 한 폐해인지, 환상향의 주민인 우리들과 현대 사회에 사는 청아와 사이에는 감각적인 차이가 컸다.
청아가 사온 옷을, 집에서 사토리에게 입힐 때 있던 이야기다.
나는, 무심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옷이 너무 수수한 색밖에 없지 않나──하고.
「선대, 생각해보세요. 분홍색 머리를 한 일본인이 있을까요?」
청아는 나에게 말했다.
「만약 염색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심하게 튀다 못해 모르는 사람 기억에도 남을 정도일 거예요. 옷도 마찬가지랍니다」
청아의 지적을 받은 나는 다시금 내가 가진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챘다.
나는 그렇다 쳐도, 사토리의 외모는 전혀 일본인 같지 않다. 아니, 그렇다고 외국인이라 하기에도 이상하다.
복장도 그렇다. 이런 밝은 색조의 옷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면 몰라도 현실에서 보기엔 눈이 아파진다. 꼭 코스프레 같은, 아니, 동방 캐릭터의 코스프레라고 보면 딱 그렇긴 한데.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사토리가 가진 「제3의 눈」은 어떻게 된 거지?
소녀의 몸에 눈알이 들러붙어 있는, 말 그대로 호러한 모습일 텐데.
밤거리를 걸을 때, 우리들은 확실히 주목 받고 있긴 했지만, 그런 기괴한 부분에 대한 의심스러운 눈길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 내 생각을 듣고, 청아가 설명했다.
「그게 바로 이 세계에 가득 찬 환상을 부정하는 힘이에요.
제 머리카락 색이, 선대들에겐 푸른색으로 보이시겠죠. 이게 제 머리카락이랍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은 없어요. 그런 인식이 뿌리내린 인간의 시점에선, 제 머리카락 색은 그네들 딴에 좋게 보이는 거예요」
남의 시점이 어떨지 잘 알 수 없기에, 구체적으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요컨대 평범한 인간에겐 납득되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 중에선 흔한 흑발로 보이는지, 아니면 남의 얼굴을 일일이 상세하게 기억하지 않도록 멍하니 스쳐지나갈 뿐인 건지.
어쨌든,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귀신을 보고 그저 버드나무 이파리라고 자신을 속이듯이, 사토리의 모습을 상식이란 필터를 걸쳐서 보는 것이다.
당연히, 제3의 눈이란 생물에게 존재하지 않는 기관도, 평범한 인간에겐 보이지 않는다.
환상향에 있던 나는 사토리와 청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 분홍색이나 푸른색 머리칼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복장이 수수하게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환상향과 바깥세계의 차이는, 꽤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라는 이유는 아니지만 어쨌든 빨리 환상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토리를 얼른 돌려보내고 싶었다.
왠지 싫은 예감이 든다.
사토리는 바깥세계에 와서 받은 영향 같은 건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청아가 해준 설명만 들으면 전부 환경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들뿐이다. 이런 차이가 사토리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기분 탓이길 바란다만, 사토리가 어제보다 기운이 없어 보여.
지금도 같은 벤치에 앉아, 뿌연 눈으로 공원의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지령전에 남겨둔 우츠호나 린이 마음에 걸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사토리는 지저의 높으신 분인데. 행방불명 돼도 괜찮나? 아니, 괜찮을 리 없나. 위험해, 문제가 또 늘어났어.
역시, 얼른 행동으로 나설 필요가 느껴지는걸.
환상향으로의 귀환── 「현대들이」와 대립되는 「환상들이」의 실행을 위해서!
「아무래도, 목적지가 정해졌나 보군요」
내 마음을 읽은 듯 사토리가 말했다.
평소였다면 내 계획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을 텐데, 능력이 약해져서 파악하고 못한 부분도 많은 거겠지.
그런 고로, 내가 어젯밤부터 생각하던 작전을 다시 사토리에게 설명해주자.
「착실하게 생각해둔 것 같네요. 들어보죠」
……그거, 평소에는 착실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는데.
무, 뭐어 됐어. 어쨌든 설명할게.
처음에 상정하던 귀환법은 「바깥세계의 하쿠레이 신사를 통해 환상향으로 돌아간다」라는 거였지.
이 「바깥세계의 하쿠레이 신사」 말인데, 청아에 물어본 결과 근처에 그런 신사는 없다는 듯하다.
「뭐, 그렇게 이야기가 잘 풀리진 않을 테니까요」
그 말대로야. 역시 운이 좋다고 너무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리고 애당초 「바깥세계의 하쿠레이 신사」가 있는 장소 자체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적어도, 청아는 모른다고 했고.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사토리가 말한다면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청아가 거짓말을 한다고 상정하는 건, 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토리는 정말로 청아를 믿지 않는구나.
「신뢰 관계는 사람마다 달라요. 야쿠모 유카리처럼」
뭐, 유카리도 주변에선 묘하게 못미더워하니까. 나는 어느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지만.
알았어. 사토리와 청아의 사이에 대해서 지금 내가 말할 필욘 없겠지.
어쨌든, 바깥세계와 환상향. 양쪽 모두에 정통하고 있는 듯 보였던 청아도 하쿠레이 신사에 대해선 몰랐다.
왠지 만화책의 흔한 클리셰인 「뒷세계의 거주자는 그쪽 일에 해박하다」같은, 막연한 정보력을 청아에게 기대했었지만, 이것 또한 제멋대로 한 기대에 불과했다.
신사를 찾는대봤자, 그걸로 손에 쥐고 있던 단서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작정 찾는 것도, 그다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고. 일본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니면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청아라면, 의외로 그냥 따라와 줄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래선 야쿠모 유카리가 저희를 찾아내는 걸 기다리고 있는 편이 현실적이겠군요」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나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아니, 사실 어젯밤에 이미 생각이 끝나있었지.
그리고 지금, 이 작전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인 판단 소재가 다 모였다고.
이건 청아 덕분이다.
그녀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걸 안 덕에, 이 작전이 생각났다.
그녀의 존재가, 이곳이 환상향과 이웃한 세계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바깥세계에도 아직 요괴나 신이 남아 있단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어젯밤에 청아에게서 물어둔 어떤 장소와 그 지명. 그것을, 내 지식에 있는 일본의 지리와 대조한다.
나는 방금 편의점에서 사온 지도를 봉투에서 꺼내들었다.
생각해두었던 곳을, 실제 지도로 확인해본다.
……응, 문제없어.
그 뒤를 이어 꺼내든 것은, 이 근처에 있는 전철역의 시간표였다.
이것도……OK야.
전철 표만 살 수 있다면, 내일 아침에 나와서 오후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어.
「……과연. 청아 씨가 따로 행동하고 있던 건, 내일 출발할 예정이어서 그랬던 거군요」
응. 하쿠레이 신사가 주변에 없는 이상, 환상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어차피 먼 곳까지 가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청아는 「그럼, 여행 준비를 해야겠네요」라며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아마, 준비를 하기 위해 쇼핑을 하러 간 것이겠지.
저녁까지는 돌아올 것이다.
그럼, 그걸로 나갈 준비는 끝이다.
「내일, 인가요. 잘 될까요?」
사토리가 질문한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이 작전이 확실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환상향에 돌아갈 수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적인 면으론 나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타이밍만 좋다면, 우리들은 어떤 사건에 편승하여 환상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지금은 「그 시기」다.
만약, 그 기대가 빗나간다면, 돌아간다고 해봤자 우리가 돌아갈 날은 저 훗날이겠지.
하지만 사토리의 얼굴에선 불안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오히려 내가 더 불안할 정도다.
하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단은 이거야.
우선, 남은 건 내일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 생각하자.
적어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하쿠레이 신사를 찾는 것보다야, 제대로 지도에 있고 교통수단까지 확실한 장소를 목표 삼는 편이 나으니까.
가자, 내일.
──나가노에 있는 스와 대사에.
거기에 있을 터인 「야사카 카나코」와 「모리야 스와코」, 두 주(柱)의 신에게 도움을 받아, 우리들은 환상향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