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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그 44「코치야 사나에」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하면, 「날 수 있을 리 없다」라고 다른 사람이 말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들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것을 말리려 든다.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건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들은 단정 짓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자신이 날 수 없기에, 남도 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거기다 날아서 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그들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발밑에 대지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식」이라고 하는 움직이지 않는 대지의 안정감.
 한 치의 요동도 보이지 않는 땅이 주는 안심감이 없다면, 그들은 침착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곳을 떠나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초조해진다.
 만약, 정말로 달까지 날아갈 수 있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그걸 인정하지 못한 그들은 그 인간을 쏴 맞추어 땅에 떨어트리기라도 할 셈일까.

 상식으로 가득 찬 세계가, 내 행동 그 자체를 막으려 한다.
 마음껏 날 수 있는 세계에 가고 싶다.
 높은 곳에서 날려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세계.
 그런 행동이 용납 받는 세계.

 ──나는, 하늘을 나는 인간이 되고 싶다.







「나, 코치야 씨를 좋아해. 그, 괜찮다면 나와 사귀어주지 않을래?」

 내가, 인적이 뜸해진 방과 후의 교실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그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본 채,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눈앞의 남학생은 같은 반의 친구이며, 성은 분명 토오야마 군이라고 할 것이다. 이름은 모른다. 즉, 그 정도의 사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올곧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얼굴은 진지하기 짝이 없다.

 이건 이른바 고백이며, 결코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엇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동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마음속의 대부분의 차지한 감정은 바로 납득이었다.

 아, 그랬구나. 몇 번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그가 왠지 오늘만, 평소에도 교실에 남아 간단한 청소를 한 뒤에 돌아가는 나를 도와준 건 이것 때문인가──하는.
 그런 납득이었다.
 작은 의문의 해답을 낸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나를?」

 내 자신이 생각해봐도 좀 아니다 싶을 만큼, 평소나 다름없는 말투였다.
 항상 그랬듯 서먹서먹한 느낌이 담긴 말과 행동. 반대로 얼굴이 붉어질 만큼 긴장한 표정을 지은 토오야마 군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에, 그러니까……그게, 코치야 씨는 귀엽잖아」

 토오야마 군은 면접에서 가장 알맞은 대답을 하려는 면접자처럼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미남」이란 소릴 듣는 아이다. 반 친구들도 나도, 그가 문무양도에 능하며 축구부에 들어가 있는 「멋진 남자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남자애한테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평범한 여자아이는 두근거릴지도 모른다.
 고백을 받는 이유라 치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하지만, 딱히 좋은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확실히 말해, 나로선 그 말을 고백의 이유라고 납득할 수 없었다. 귀여운 여자애라면 나 말고도 잔뜩 있다.
 일단 「고마워」라는 말이라도 해두는 게 좋은 걸까?
 하지만 그 대답을 승낙했다고 받아들여도 귀찮게 된다.
 그렇다고 「생긴 게 예쁘면 누구든 좋다는 거야?」라고 말꼬리를 잡아 대답 할 만큼 나는 비뚤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말을 재촉하듯이 입을 다물고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내 시선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그는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거, 거기다 아주 상냥하고, 훌륭한 아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항상 방과 후에 남아서 모두가 쓰는 교실을 청소해주기도 하잖아. 선생님이 따로 시킨 것도 아닌데」
「응.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게 굉장하단 거야. 거기다 나, 저번 일요일에 코치야 씨가 할머니들이랑 같이 공원을 청소하고 있던 걸 봤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을 뿐이에요」
「나, 나 그걸 보고, 뜨거운 햇볕 아래서 노력하는 코치야 씨가……엄청 예쁘게 보였어!」

 토오야마 군은 감동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날 칭찬해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 기분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는 아마, 요즘에 보기 드문 올곧고 수수한 남자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것에 감동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어째서 단순한 자원봉사 활동을 저렇게나 미화하는 걸까.

 그때, 그가 말했다시피 나 말고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함께 그가 말했던 뜨거운 햇볕 아래서 힘쓰고 계셨다.
 그 사람들과 내가, 그에겐 어째서 다르게 보였던 걸까?
 나로선,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런가요」

 나는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답은, 내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가 아니었다.
 어째서 그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모든 걸 말했을 터.
 그저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그의 말에서 느껴진 의문을, 그대로 전부 들려주는 게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다간 토오야마 군에게 쓸데없이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의도치 않은 꾸짖음이 될 것임은 나도 알고 있다.
 그는 그저, 남의── 내 선행에 미덕을 느끼고 그걸 이성의 매력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동년배 학생은 잘 하지 않는 일을 내가 하고 있었기에 눈에 띄었고, 그런 내 모습을 그가 우연히 봤을 뿐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 내 매력이란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공감하기가 어렵다.

「……죄송해요. 당신과는 사귈 수 없어요」

 결국, 나는 그저 단순히 그렇게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한 곳에 뭉쳐 있던 그의 표정이, 좌절스런 표정으로 무너져내렸다.

「그, 그래……하하, 확실히 말해줘서 고마워……」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보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그가 상냥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남자애에게 고백 받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절당한 상대는, 대체로 내게 이유를 묻는다. 그걸 잘 설명하지 못하는 내게, 왠지 한 번 거절한 고백을 다시 강요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토오야마 군은 나를 신경써주고 있었다.

「죄송해요」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다시금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 여기 있어봤자 거북할 뿐이다.
 나는 내 가방을 들고, 제자리에 우뚝 선 토오야마 군을 놔둔 채 교실에서 나가려 했다.

「……저기」

 교실의 문을 빠져나가려다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토오야마 군. 제 머리카락, 무슨 색으로 보이나요?」

 왜, 그런 말을 물은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의 고백은, 확실히 거절했을 텐데.
 그가 뭐라고 대답하든, 내 결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주 착한 사람이니까──어떤 이유도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당황하며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아……응, 아주 예쁜 「흑발」이야!」

 나는 제멋대로인 인간이다.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착실한 대답에, 나는 내 멋대로 낙담하고 만 것이다.
 나는 그의 대답에 「그래요」라며 애매하게 답했다.
 웃으려 해봤지만, 제대로 웃고 있긴 한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ㅉ가 어루만졌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고, 난 그대로 교실을 나섰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되도록 그와 가까워지지 말자.
 그를 상처 입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서 마음의 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기대하고, 마음대로 낙담했다.
 그리고 멋대로 그와 내 사이에 벽을 만들고 말았다.
 그도 역시 남들과 똑같은 「나와는 다른 인간」이다.

 ──나의, 이 「녹색 머리카락」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코치야 사나에」라는 이름은 조금 보기 드문 이름이었다.
 어릴 적엔 「코치야」라는 성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토​후​야​-​と​う​ふ​う​や​-​」​라​고​ 착각 당해서 「사나에 집은 ​두​부​가​게​-​と​う​ふ​う​や​-​」​라​며​ 놀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로 이루어진 3인 가정이며 평범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생활이 부유하진 않지만, 딱히 궁핍하지도 않다. 가족들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할 것 없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 토지의 대명사인 「모리야」와 혈연이긴 하지만, 그게 딱히 내 인생이나 생활에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제사에 대해 해박해서, 연중행사 때마다 중심이 되어 참여하는 게 다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를 먹고 등교한다.
 반 아이들과 인사하는 겸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수업을 듣고, 그게 끝나면 평소와 똑같이 교실을 가볍게 청소한 뒤에 귀가한다.
 저녁식사 시간엔 어머니나 아버지와 담소도 나누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하는 날이면 텔레비전도 본다.
 숙제나 예습을 끝마친 뒤,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아무 문제없는 인간으로서의 하루가 끝나고, 또 다음날이 시작된다.
 문제라는 것은, 말하자면 내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지만,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에 말을 건네는 행동을 반복한 결과, 부모님 포함한 다른 어른들의 걱정을 샀던 일을 말한다.

 ──이 세계엔, 내게만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숨기며 살아간다는 방침을 굳힌 지 대체 얼마나 지났걸까. 이젠 확실히 떠올릴 수가 없다.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무렵, 나는 내 자신의 비상식적임을 이해했다.

 처음엔, 내게 품어진 이상성과 남들의 상식에 어떻게든 타협을 해나가며 살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내 생각은 그런 행동을 보이기 쉬운 어린아이랍시고 어느 정도 용납 되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난 조금 남들 눈에 띄는 아이가 됐다. 그건 좋은 의미이기도 했고, 나쁜 의미이기도 했다.

 이미 충분히 사리분별을 할 수 있게 됐을 만큼의 나이가 된 나는, 내게만 보이는 존재나 나만이 가진 머리카락 색, 나이를 먹을 때마다 점점 커져가는 내 속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힘」이, 세상에서는 이질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숨길 필요성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부분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서, 나는 남들이 선호하는 가치관에서 조금 어긋난 듯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일이라거나, 가끔 가다 보는 곤란해 하는 노인이나 아이들을 돕는 건, 내게 있어서 딱히 자랑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집이나 문앞을 청소하는 게 의식해야 할만한 행동은 아니다.
 집안이 그런 탓에 신사 청소 같은 걸 어릴 적부터 버릇처럼 했던 것도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내가 보자면 이런 행동에 일일이 이유를 구하려는 생각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간의 상식은 달랐다.
 학생인 내가 쉬는 날에 일찍부터 청소를 하는 건, 다른 어른들 눈에는 칭찬 받을 만한 행동이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동급생들의 눈에는, 이른바 「요즘 젊은이」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상한 행동으로 보였나보다.

 자원봉사에게 참가한 다음날, 토오야마 군처럼 날 칭찬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등생이 점수 벌이를 하는 거라는 험담을 들은 적도 있다.
 직접, 나한테 그렇게 말한 아이도 있었다. 한때엔, 이른바 「왕따」 같은 걸로 발전한 적도 있었고, 고교생이 된 지금도 몇몇 아이들에게선 그런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심각한 사태로 발전하진 않았다.
 가장 사태가 심각했던 왕따를 당하던 시절에 내가 겪은 사건 뒤로, 나를 향한 남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이다.

 당시, 담임이었던 남성 교사가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화학 준비실로 나를 불러냈다.
 왜 직원실이 아니라 인적이 뜸한 화학 준비실이었는지는, 바로 파악됐다.
 그는 내 상담에 응하는 척 하며 내 몸을 더듬어왔다.
 나를 성희롱하는 게 목적이란 것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어느 정도의 저항을 보이는 게 타당한 일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고민하는 일이고, 그때를 다시 떠올리면 후회하기도 한다.
 평범한 여학생이라면, 몸이 만져졌다고 바로 대담하게 행동하려 들지는 않는다. 강간당할 가능성이라도 없는 이상 비명을 지르거나 날뛴다는 결단을 좀처럼 내릴 수 없는 게 아닐까 한다.
 세간에 대한 체면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년경이니. 다음날부터 남들이 자길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을 상상하고, 움츠려드는 게 아닐까. 마음이 약한 여자애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때 그 담임이, 어디까지 할 작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왕따를 당하는 나를 마음이 여린 여학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의 나는 심각하진 않았지만, 나름 기분이 가라앉는 일이 잦았다.

 담임이 교복 아래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진 순간, 난 저항했다.
 구속할 작정인 듯 내 어깨를 붙잡은 다른 손을 냉정하게 두 손으로 잡아, 새끼손가락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고통과 당황스러움에 뒤로 물러난 담임의 머리를 내가 앉아 있던 의자로 후려갈긴 뒤에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불렀다.

 담임이었던 교사는 경찰에 체포됐고 피해자인 나는 사회의 비호와 주변 사람들의 정당한 동정을 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일부 동급생들에게 「냉정하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녀석」으로 보여 기피 당했고, 왕따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 대신,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아이들도 완전히 사라졌고, 다른 동급생들에게도 경원시 당했다.
 문제가 해결됐다면 해결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반 친구들과의 교류가 적은 학생으로서 아무 문제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문제없는 나날.

 그게 이렇게나 답답한 것을 온몸에 휘감고 사는 것이었다니, 어릴 적의 난 몰랐다.
 마치 늪에 머리까지 잠겨든 것 같은 압박감.
 나를 붙잡고 내 움직임을 막는 것은 「상식」의 중압감.
 설령 가슴이 꽉 막히게 되더라도, 나는 결코 얼굴을 내밀지 않도록 참으며, 그저 가만히 늪 속에 잠긴 채 살고 있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머리를 내민다면, 남들은 마치 괴물이라도 봤다는 것처럼 놀래며 소란을 피울 것이다──그런 상상이, 내게 경고하고 있다.

 ──아니.
 이건 이미 상상이 아니다.
 나는 늪 속에 깊이 숨어들이, 숨을 죽인 채 살아가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내 일상엔 감동이 없다.
 남들과 같은 것을 볼 수 없고, 할 수 없으며, 거기다 일희일비 하지도 않는다.
 시시한 세계. 시시한 일상. 학생인 내가 그런 고민을 입에 담으면, 남들은 평범한 젊은이의 푸념이라 생각하고 신경도 쓰지 않고 받아 넘길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무엇 하나 감동할 수 없는, 지루하고 시시한 나날들.
 시간을 거칠 때마다, 그것을 보다 깊게 이해해나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오며 점점 감동이 사라져 가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점점 하루하루 사는 게 귀찮아진다.

 어른이 되면 결혼해서 가정을 쌓거나 아이를 낳아 기르는 등의 수많은 특별한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지금의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앞으로 내겐 특별한 것도, 특별한 사람도, 분명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 믿기지 않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릴 적엔 정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던 로봇이, 텔레비전 속에서 뛰쳐나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남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어째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걸까.
 어째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걸까.

「──신도, 정말로 있는데」

 그렇게 중얼거릴 수 있는 건, 학교에서 돌아와 내 방에 있었을 때 뿐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듣지 못하고, 이상한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사실에 안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최근,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늘었다.
 그 날, 귀가하던 길목에서의 시간도 그 일부였다.
 내가 그녀들에게 쫓겨 골목 안으로 간단히 몰려버린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느 때처럼 교실을 청소한 뒤에 학교를 나선 난, 무얼 계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래에 희망은 없다는 영문 모를 피해망상을 하고 있었다.
 21세기는 우주의 세기라니 뭐니 말하더니, 지금은 환경을 지킨다느니, 경기대책이 어떻다느니, 바보 같다. 분명, 인류가 화성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내가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어른이 돼서 그곳으로 이주하기 위한 돈을 모을 필요는 없다──.
 그런 부정적인 느낌의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부정적……? 어떨까, 이게 「부정적」이란 범주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발상인가?
 누구라도 권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난 자타가 공인하는 사춘기가 드는 불안정한 자아정체성을 가진 년경이다.
 이럴 때에 푸념을 하거나 기분 전환 삼아 같이 놀러 갈만한 친구가, 내겐 없다.

 그 사실에 홀로 괴로워하며 눈에 익은 귀갓길을 걷자니, 상가를 거쳐 가는 길목에서 내 앞길을 막은 집단을 눈치챘다.
 남학생 둘과 여학생 셋이 모여 있었다. 나와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저 애들을 모른다.
 동급생이라고 추측되는 다섯 명 사이에 낀 여학생 한 명이, 다가오던 내 모습을 용케도 찾아내곤 싫은 느낌이 드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넷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다섯은 일제히 웃음소리를 내고는,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빼도 박도 못할 싸움의 징조를 느낀 난, 상대들에게 내가 놀란 걸 들키지 않게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옆으로 난 골목길로 발을 꺾었다.
 그게 큰 실수임을 깨달은 것은, 점점 좁아져가는 골목의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때, 당황하고 그대로 발을 돌려서 도망가는 편이 낫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얼간이 같단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 발로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버린 것이다.

 체념과 정색이 뒤섞인 기분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니, 좁은 골목길을 메우듯이 그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선 내게 다가왔다.
 남학생 두 명이 앞으로 나서고, 여학생 셋이 뒤로 물러나서 꼭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을 부리는 것 같은 모양새로 다가와선, 내 앞에 멈춰 섰다.

「너, 코치야 사나에지」

 질문이 아니다. 확인하기 위한 단정적인 말투다.
 내게 직접적인 볼일이 있는 건 뒤쪽에 있는 세 여학생들인가 보다.
 저 셋이 누군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그녀들의 말은 이러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하다.

 뭐라 뭐라 말은 많았지만, 결국 결론은 그것이었다.
 예전부터 내게 앙심을 품고 있던 듯하지만, 가장 큰 계기는 요전 날 받은 고백인가보다.
 뭐라더라, 여학생들 중 한 명이 토오야마 군을 좋아한다든가.
 딱히 사귀는 사이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고백했고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건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일이라고 한다.
 제재를 받아야 한다나 뭐라나.
 친구로 보이는 다른 두 여학생도, 그 결론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소녀 만화 같아, 라고 생각한 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를 탓할 필요가 있나요?」

 남학생 한 명이 갑자기 의미 없는 요상한 기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위협을 목적으로 한 행동인 듯하다.
 이렇게 몰린 상황에서 의외로 냉정한 상대를 겁먹게 할 셈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내 눈엔 그냥 덩치 커다란 남자가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를 냈을 뿐인지라 우스울 따름이었다.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 상황 속에서, 무서워하긴 커녕 당황한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는 데에 지친 걸까, 세 여학생은 지금 주제완 아무 상관없는 말로 나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가라사대, 남들이 귀엽다며 떠받들어 준다고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른다든가, 하지만 속내는 추녀라든가, 하는 짓 하나하나 교사한테 아양을 떠는 것 같다든가──뭐, 내 외모나 행동을 죄다 악의 가득한 시선으로만 바라본 사람이나 할법한 말이었따.
 그러던 도중, 여학생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것보다 너, 신은 진짜로 있다고 말하고 다니던 정신 나간 종교녀잖아!」

 나는 그 말에 약간 동요했다.
 그런 말을 꺼낸 그녀의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중학교나 초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옛날의 날 알고 있다.

「에, 뭐라고? 얘 그렇게 위험한 애였어?」
「맞아. 농담이나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애들한테 진지한 얼굴로 신은 있다든가 신앙은 중요하다고 떠벌리고 다녔다니까. 게다가 아무도 없는 곳을 보고 말하는 걸 본 녀석들도 많아」
「뭐야 그게, 진짜 위험한 애 아니야?」
「재수 없어─! 이런 녀석이 사회에 나가서 범죄 일으키지 않아?」

 공격할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듯 세 여학생은 째진 웃음을 흘리며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뒤를 이어 두 남학생도 맞장구를 치며 추임새를 넣는다.
 그녀들에게 있어, 아는 사람이 종교에 엮였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인 듯했다.
 모든 종교가, 수상한 방법으로 신자를 모아 돈을 긁어모은다거나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고쳐주려 하는 것이 헛수고임을 이미 깨달은 나는, 그저 묵묵히 그녀들의 말을 흘려들을 뿐이었다.

「있잖아, 너. 아직 신이 정말 있다고 말하고 다녀?」

 여학생 한 명이, 내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주관과 수의 폭력으로 한도 끝도 없이 부정하여, 정신적으로 굴복감을 주려는 속셈임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무어라 대답도 없는 나를 보고 뭔가 오해라도 한 듯, 그녀는 이미 우쭐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요」

 나는 작게 대답했다.

「신은 있어요. 적어도, 이 토지엔 두 주의 신이 계십니다」

 그녀들은 웃었다.
 그들도 웃었다.
 다섯 명 전부가 내 대답을 듣고, 비웃고 있다.

「에─, 정말!? 이 녀석,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말했잖아, 위험한 애라니까!」
「뭐야, 우등생인가 했더니 이렇게 머리가 불쌍한 여자였었네. 나, 좀 환멸」

 그 반응에 실망하진 않았다. 짜증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묵묵히, 말을 이을 수 있을 때를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다른 한 명이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 신이 뭘 해주긴 해? 믿는 사람을 구해주기라도 하는 거야? 너를, 지금 이 상황에서 도와준다고 믿고 있어?」

 다섯 명에게 둘러 싸여, 그 중 두 명은 나보다 몸집이 큰 남자애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도망가지도 못한다──그렇다고 위협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렇게 내가 반론도 하지 못한 채, 분한 얼굴로 입을 열지 못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눈치다.
 나는, 그런 기대에, 처음부터 생각해뒀던 말로 답했다.

「신은, 저를 위해 무언가 해주지 않아요. 당신들처럼 괜한 화풀이를 하고 싶은 사람들의 불만이나 불평을 들어줄 뿐이죠」
「……뭐?」

 눈앞에 서 있던 여학생의 표정이 바뀌고, 다른 네 명의 얼굴에도 같은 표정이 퍼져나갔다.

「마음에 든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넋이 나가서, 그게 짜증난다든가. 공부나 운동, 아니면 단순한 인기 같은 게 자기보다 잘난 녀석이 있어서 마음에 안 든다든가──」

 나는 다섯 명의 얼굴을 일일이 바라보며 말했다.

「성적이 내려갔다든가, 돌아가다가 비를 맞았다든가, 넘어졌다든가, 사고를 당했다든가, 다쳤다든가──」

 누군가 작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그럴 때, 욕해도 좋은 게 신이라는 존재에요」
「무슨……말이야」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불합리한 사건을 대신 책임지는 게, 신이랍니다」
「──」
「괜히 짜증이 나거나 불만이 생겼을 때엔, 신의 탓으로 돌리잖아요. 그건, 구원받는 게 아닌가요?」

 나는 말을 끝맺었다.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했다. 이해 받고 싶단 생각은 없고, 분명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이미 안다.
 하지만, 내게 「신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항상 이렇게 말한다.
 신은 있다. 그리고 난, 지금 세상에도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저,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이 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를 보는 다섯 명의 눈빛이, 어느새 변해 있었다.
 이질적인, 비정상적인 것을 보는, 작은 두려움이 눈빛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다고 한들, 이 상황이 뒤집힐 리는 없을 것이다.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꺼내고, 최후의 정열을 전부 쏟아낸 나는, 냉정해진 머리로 「그럼, 이제 어쩔까」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태평히 생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모습이 많이 죽긴 했지만, 그녀들에게 이대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비켜 주세요」라고 말해봤자 일이 잘 풀리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시 불을 지피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지.
 굳이 그런 말을 한 게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냥 입을 굳게 다문 채 저항 없이 당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골목 안쪽이라고 해봤자, 이런 백주대낮에 그렇게 일을 크게 저지를 것 같진 않았다. 알몸으로 만들어서 사진을 찍히는 게 다였을 수도 있다. 큰절이라도 하면서 용서를 빌었다면, 만족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걸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왠지 이젠 만사가 귀찮게 느껴졌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일 일어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사람도,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세상엔, 믿기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항상 똑같다.
 앞으로도 계속──.

「바빠 보이는데 실례하겠습니다」

 변하지 않는다──.

「코치야 사나에 씨죠?」

 그 순간 다섯 명이 고개를 돌리고, 나는 그녀들 너머로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했다.
 그곳에 있던 건, 초등학생만한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였다.
 어슴푸레한 골목길 안에 모여 있는 고등학생들 앞에, 겁도 없이 발을 들이민 것이다.
 이상하고, ​불​가​사​의​하​며​─​─​그​리​고​ 무엇보다 기분 나쁜 소녀였다.

 그 소녀의 모습을 본 나는 눈을 부릅떴다.
 나는, 오늘 가장 큰 동요를 맞이하고 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 색은 일본인은커녕 인간이 타고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복숭아 색」이었고, 가슴 앞에는 온몸에서 뻗어 나온 몇 가닥의 관으로 연결된 「눈 같은 기관」이 존재했다.

「멀군요, 잘 안 들려요」

 그 이상한 소녀는 말 또한 그 겉모습처럼 이상했다.
 멀다고?
 무슨 뜻일까, 그녀는 과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자기보다 커다란 고등학생 다섯 명과 3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겁을 먹은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무심코 소녀의 몸을 걱정했다.
 설마 저 애들이 아이한테까지 폭력을 휘두를 만큼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위험하리란 생각은 했다.

「일단, 틀림없는 것 같군요. 그 「머리카락 색」──」

 내 심장이, 크게 뜀박질했다.
 하지만, 소녀는 갑자기 말을 끝맺고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소녀가 본 건, 가장 가까이 있던 한 여학생이었다.

「뭐야, 이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군요」

 자기보다 연상인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노기 섞인 눈빛을, 그 소녀는 엷은 미소조차 지으며 받아 넘기고 있었다.

「기분 나빠. 귀찮아. 타카시, 빨리 겁 줘서 쫓아버려──라고 생각했네요」

 소녀의 말에, 시선을 받은 소녀와 다른 남학생 한 명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타카시──사람의 이름?
 혹시, 지금 움찔거린 저 남학생의 이름인 걸까.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에 떠오른 건 생뚱맞은 발상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다. 저 소녀의 말이 기묘하다고 한들, 맨 먼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는 난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정말로, 설마 저 아인?

「무, 뭐야 너!」

 여학생 한 명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엔 분명히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기분 나빠. 왜, 타카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그렇게 말하던 소녀가, 말을 끊더니 뒤로 살짝 뛰었다.
 갑작스런 행동이었다.

「이 녀석……」

 한 박자 늦게, 여학생의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충동적으로 소녀를 때리려 한 듯했으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내 눈엔 웃음이 나올 정도로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려 움직이기 전에, 소녀는 이미 피해 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을 때린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나 이외의 다섯 명 또한, 그 불가사의한 상황에 놀란 듯했다.
 역시, 저 아인──.

「설마, 마음을 읽는 걸까──라고 의심했군요」

 그건 내 마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일까, 아니면 여기 있는 모두일까.
 이미 정체 모를 무언가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몸을 틀었다.

「길은 비워두겠습니다」

 소녀가 골목의 벽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도망쳐도 쫓지 않도록 하죠」

 또다시 불가사의한 말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뭘 할 셈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 나쁘고,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는, 그녀에게 「기대」하고 있다──.

「상기」

 소녀는 자신의 가슴 위로 떠 있는 「제3의 눈」이라는 단어 외엔 표현할 방도가 없는 물체에 두 손을 얹었다.
 그 눈이 빛을 뿜었다.
 아니, 정말로 빛을 뿜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분명 다른 다섯 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순간 빛이 일었다.

 현기증에 걸린 것처럼 흐릿해진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간 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 상황과 거의 변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여전히 소녀와 마주선 다섯 명의 등이 보인다. 장소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 영향도 없는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난 알 수 있다. 저건, 어떠한 「힘」이나 「술식」의 일종이다.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면, 아마 환각이나 정신조작 계열이겠지.
 상당히 오컬트적인 표현이긴 하나, 그런 표현을 웃어넘길 생각은 없다.

 주의 깊게 소녀를 관찰한다.
 역시, 아무 변화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다.
 변화를 보인 것은, 오히려 다섯 명 쪽이었다.

 나는, 이제야 겨우 그 다섯 명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 듯,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흐트러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냄새를 맡고 몇몇의 모습을 살펴보고, 실금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확실히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다. 저 다섯에겐, 나로선 알 수 없는 것이 보이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주 무서운 장면일 것이다.

「대단하네요, 인간은」

 내 등골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저 여자애가 말한 건가?
 확실히 목소리는 저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두려울 정도로 위화감이 느껴졌다. 소녀의 목소리인데, 소녀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마치 음역이 낮은 남자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확실히, 아까까지 들었던 소녀의 목소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냉담함이 배어든 목소리였다.

「평소에 쓰지 않는 힘까지 꺼내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분명 두려우리만치 잔혹할 것이란 확신이 설 정도였다.

「──당신들도 다섯이서 사이좋게 「그곳」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떤가요?」

 소녀가 그렇게 말한 순간, 다섯 소년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달렸다.
 허리에 힘이 빠졌음에도 억지로 달리려 하는 기묘한 동작이었으나, 더할 나위 없이 필사적이라는 것만은 나도 알 수 있었다.
 미리 소녀가 비워둔 길을 통해 달려 나간 다섯 명은 그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골목길에서 도망쳤다.
 남은 건, 나와 그 소녀 단 둘뿐이었다.

「과연, 그녀가 자랑하는 굴지의 트라우마 씬 다운걸요. 이건 앞으로도 쓸 만하겠어요」

 그들이 어쩌든 상관없단 느낌으로 중얼거린 소녀가, 다시금 내게 시선을 보낸다.
 역시, 목적은 어디까지나 나인 듯했다.

 천천히 다가온다.
 점점 나를 향해 걸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의 소녀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은 완전히 딴 생각 천지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턱 막혀왔다. 얼굴이 점점 달아오른다. 
 무서울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증거다.

 어째서?
 아무리 봐도 인간으론 보이지 않는 소녀가 적이라서 그런 걸까?
 나한테 덤벼들지도 몰라 불안해서 그런 걸까?
 그냥 무서울 뿐인 걸까──?

「그럼, 다시 묻도록 하죠. 당신이 바로 코치야 사나에로군요」
「……저를 찾아다니신 건가요?」

 나는 내 목소리가 약간이나마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찾아다녔어요」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거죠? 전, 평범한 학생입니다만……」
「아니요. 당신은 「특별한 인간」이에요」

 그 말을 들은 내 가슴이 한층 더 크게 두근거렸다.

「거짓말하려 해봤자 소용없어요, 그 「녹색 머리카락」을 숨기지 못하는 이상에야」

 소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딱히, 이 머리카락을 숨겨본 적이 없다.
 그저 아무도, 나처럼 「원랜 있을 리 없는 존재」를 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녀가, 그걸 볼 수 있을 뿐이다.
 똑같이.
 나와 똑같이.

「거기다, 당신이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압니다. 오리발을 내밀어봤자 안 통해요. 당신이 두 주의 신을 모시는 「풍축」이자, 「현인신」이 될 소질을 갖춘 인간인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아.
 ──그래요. 그 말이 맞아요.

 나는, 그런 대답이 새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 흘러넘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말에 수긍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심스러운 점도, 불확실한 점도 많다.
 어째서, 처음 만난 그녀가 나라는 개인의 정보를 그렇게 깊게 알고 있는 것인가.
 그걸 알아서, 날 어쩔 셈인 것인가.
 아까 봤던 정체불명의 힘도 그렇고, 이 소녀는 경계해야 할 상대다.
 방심하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난──기뻤으니까.
 내가 살아가던 아무 문제도 없던 일상을 단번에 깨부수고, 내 앞에 ​나​타​난​─​─​나​타​나​준​─​─​소​녀​의​ 존재에 감동마저 했기 때문에.

「코치야 사나에,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할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작은 교섭에 지나지 않는 일이니……」
​「​아​…​…​알​겠​어​요​!​」​

 정신을 차리니, 내 손이 소녀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감극적인 마음에서 나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집에 와주세요! 차도, 과자도 대접할게요!」

 이 세상에 믿기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내겐, 특별한 것도, 사람도,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죠!!」
「……예?」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이, 지금 내 앞에 찾아왔다!







 모리야 자료관──.

 주변의 가정집들이나 풍부한 자연 탓에 언뜻 보면 자료관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곳.
 넓은 부지 안엔 관광이나 참배를 하러 온 듯 보이는 외부인 몇 명이 눈에 들어오긴 했으나, 정작 자료관 안엔 여성 손님 한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여성 역시 현지인은 아니었다. 한껏 단장한 차림새와 한 손으로 끌고 다니는 캐리어를 보아 이곳을 찾아온 관광객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하나, 커다란 가방이었다.
 외국에서 며칠 동안 숙박하는 데에나 필요할 법한 가방이다. 그런 커다란 가방을, 숙박시설 같은 곳에 맡기지도 않고 이런 곳까지 힘겹게 끌고 다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엔 약간 기이하게 보이는 여성이었다.

 조명 아래 전시된 전시물들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펴보며 걷는 여성.
 전시되어 있는 것은, 동물의 박제였다.
 ​모​레​야​신​(​洩​矢​神​)​은​ 수렵의 신이기도 했다. 그 신에게 바쳐졌던 공양물들이 자료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사냥에 쓰인 도구는 둘째 치더라도, 꼬챙이에 꿰인 토끼나 사슴 75마리의 머리가 질서 정연히 나열되어 있는 광경은, 꽤 자극이 강했다.
 박제라고는 하나 시체의 생생한 인상이 피부에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전시관 내부는 약간 어슴푸레한데다가 오래된 건물 특유의 눅눅함을 갖고 있었다.
 이 안까지 비집고 들어온 바깥 공기의 영향 또한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은 자료관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흐린 하늘을 떠올렸다.
 사전에 조사해둔 일기예보에 따르면 요 며칠 동안은 맑을 터일 텐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완전히 틀어진 예보에 한마디 푸념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성은 뭔가 이상하단 듯 묘한 웃음을 흘렸다.
 무엇에서 이상함을 느낀 건지, 잘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봤어?」

 누군가가 물었다.
 아무도 없을 터인 공간에, 그 여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여성이 눈을 돌렸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목소리의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주저 없는 움직임이었다.

「여어」

 한 아이가, 그렇게 말하며 여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소녀다.
 소녀는 기묘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위로 두 개의 둥그런 무언가가 들러붙어 있다.
 그 무언가란 바로 훤히 드러난 눈알이었다.
 기분 나쁜 장식처럼 보였지만, 장식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눈의 표면엔 끈적끈적한 물기가 배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뒹굴, 하고 움직여 여자를 똑바로 바라본 것이다.
 소녀 본인의 눈은 모자의 넓은 챙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에, 마치 소녀가 그 눈알을 통해 사물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무심코 숨쉬는 것조차 잊을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여성의 입가에 진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예, 아주 흥미로운 자료로군요」

 여자는 자기보다도 훨씬 몸집이 작은 소녀에게, 일부러 정중한 말투를 써서 답했다.

「딱히,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잖아」
「그런가요?」
「적어도, 너한테는」
「이곳에 온 건 처음인데요」
「그게 아니라. 아까까지 네가 봤던 것들 같은 건, 너한테 딱히 드문 건 아닐 거란 소리야」
「그런 거라뇨?」
「시체」

 소녀는 얼굴을 들어올렸다.

「박제 같은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 걸, 말 그대로 썩을 만큼 봐왔을 테니」

 소녀는, 여자와 똑같이 웃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런 걸 보고 뭘 느낀다는 거야?」
「신을 향한 공포……라든가」

 여자의 대답에, 소녀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개구리가 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재미있는 농담이었어」
「농담으로 들리셨나요?」
「꽤나 성격이 못돼먹었구나, 너, 정말 여긴 뭐하러 온 거야?」
「관광하러 왔을 뿐이에요」
「처음 본 사이라고, 계속 떠보는 건 슬슬 그만두자」

 소녀의 말에선 묘하게 위험한 느낌이 풍겼지만, 그 얼굴엔 희열로 찬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이 여성과의 대화가 흥미로운 듯했다.
 얇은 입술이 뻐끔 갈라지고, 그 속에서 분홍빛의 기다란 혀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랫입술을 넘어 턱을 지나 가슴팍까지 닿을 정도의 길이.
 사람의 혀가 아니다.

「수상해」

 소녀는, 여성의 가방을, 그 긴 혀로 가리켰다.

「 『그런 것』까지 질질 끌고, 『내 영역』에 왜 온 거냐──」

 소녀의 눈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기세로 번뜩였다.
 하지만, 그 입가는 변함없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눈앞의 상대를, 경계하는 건지 환영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다.
 소녀의 눈에는 광기와도 같은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에 대응하는 여성 또한, 처음부터 조금도 변치 않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도중, 여성이 상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곽청아라고 합니다. 황공합니다──」

 청아가 말한다.

「부탁이 있어 당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모리야 스와코』 님」

 알고 있을 리 없는 이름을 불린 스와코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선대무녀는 세차게 부는 바람 속을 걷고 있었다.
 그 든든한 몸을 가죽점퍼 속에 가두고, 야구 모자의 챙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
 이곳은 그녀가 소란을 일으켰던 거리와 꽤 먼 곳에 위치한 장소이기는 하나, 역시 얼굴에 난 흉터가 눈에 띄었다. 선대는 그런 상황을 꺼려 단단히 채비하긴 했으나, 두말할 것도 없이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휘날리는 머리칼을 정리도 않고 걷는 선대의 모습은, 그저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절로 피해갈 만큼 기묘한 박력감이 있었다.

 선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그녀가 찾아온 이 지역에서도 당연 대표적인 장소인 『스와 대사』였다.
 스와 대사에는 상사(上社)와 하사(下社)가 따로 존재한다.
 선대무녀가 방문한 곳은, 상사 쪽이었다. 이곳을 선택한 것은 거리적으로 가까웠다는 이유 하나뿐이다.

 신사 앞 토리이를 통과하기 전, 하늘을 올려다보는 선대.
 아까까지만 해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푸른 하늘이었을 터인데, 어느새 먹구름이 지기 시작했다. 바람 또한 아까부터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단순히 날씨가 변한 것이라면, 그뿐이다.
 하지만 선대는 그 풍경이 무언가 일이 터지기를 예고하는 전조임을 느끼고 있었다.

 토리이를 통과하여, 자연스럽게 신사의 토지에 발을 디딘다.
 이상하게도, 인적이 없다.
 지금 시간은 평일 낮. 참배객이 잔뜩 몰려들 시간대도, 특별한 날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 유명한 신사에 사람 하나 없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 또한 그냥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선대는 한순간 발을 멈췄으나, 곧바로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사의 본궁 앞에 간신히 다다른 선대.
 낡고, 위엄으로 가득 찬 건물을 앞에 둔 채 발을 멈춘다.

 선대의 시선이, 가볍게 위로 들렸다.
 시선에 담긴 것을 판단하려 드는, 진지한 눈빛이었다.
 사물을 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신사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누군가를 찾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눈이다.

「──『야사카 카나코』」

 그녀의 입에서 작게 새어나온 것은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나를 부르는 건 어디의 인간인고』

 아무도 없을 터인 신사에서, 선대의 말에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대의 시선이, 더더욱 위를 향한다.
 신사의 지붕보다도 아득히 높은 곳에서, 그것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허공 위로 떠오른 여자였다.

 양반다리를 틀고 앉은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고, 가볍게 턱을 괸 채, 그 여자가 선대의 앞에 내려섰다.
 등에는 마치 후광이 빛나는 모습을 표현한 듯 금줄을 메고, 가슴엔 둥그런 거울이 달려 있는 모습.
 일반적인 감성으로 보자면 기발한 모양새긴 했으나,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보이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인 감성이란, 즉 인간의 감성이다.
 눈앞의 여자는, 분명히 그것을 초월한 존재였다.

 이 존재가 인간이 아니란 점에서 보자면, 전혀 기발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그런 이치에 할 수 없이 납득이 가고 만다.
 그야말로 신과 같은 위엄을 갖춘 여성이었다.

「인간에게 그 이름으로 불리는 건, 실로 오랜만이로군」

 선대가 조금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위치에 떠오른 채, ​여​성​─​─​카​나​코​─​─​가​ 말했다.
 입가엔 맥 빠진 웃음이 지어져 있었으나, 시선만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선대무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누구냐, 이름을 대라」
「선대무녀라 불리고 있다」
「이름을, 대라고 했을 텐데」

 선대의 대답에, 카나코는 얼굴색을 무표정하게 바꾸며 대답했다.

「……신의 이름을 입에 담은 주제에, 자신의 이름은 입에 담을 수 없더냐?」

 선대의 침묵을, 카나코는 대답이라 받아들였다.
 입가가 말려 올라가고, 다시금 미소가 돌아온다.
 하지만, 카나코의 얼굴에 지어진 그 미소는 아까까지완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뭐 좋다. 어차피, 말한다고 아는 것도 아니니」

 무거운, 칼날을 벼린 듯한 미소가, 카나코의 입술 위로 드러난다.

「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만」
「……적이 아니다」
「모처럼 대답을 했다 싶더니, 그런 상투적인 대사는 마라. 좀 더, 멋들어진 책략이 있지 않느냐」
「믿어다오」
「너, 날 너무 얕보고 있구나. 내가 누구라 생각하는 거지」
「알고 있다. 당신은 신.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나른한 듯 턱을 괴고 있던 카나코가 느긋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다리는 그대로 양반다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리만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살기등등한 분위기가, 카나코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의 나무들이 웅성거린다.
 단순히 바람에 의한 현상에 불과했으나, 카나코를 눈앞에 둔 선대의 입장에선 그녀의 힘이 자연을 조종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늘의 구름이,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모여들고 있다.
 이 기상의 변화마저도, 눈앞의 초상적인 존재가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느끼고 있다. 네게서 나를 향해 오는 『신앙』이 오싹할 정도로 느껴지는군.
 아아──너는, 대체 무슨 인간이더냐. 네가 내 이름을 ​『​타​케​미​나​가​타​노​카​미​(​建​御​名​方​神​)​』​도​ ​『​야​사​카​토​메​노​카​미​(​八​坂​刀​売​神​)​』​도​ 아닌, 『야사카 카나코』라 불렀다는 것조차 사소하게 여겨질 정도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나 날 믿는 것이냐? 어째서, 그렇게나 내 신으로서의 모습을 마음속에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이더냐? 이 시대에 신의 존재를 간파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치 않은 힘을 가졌음에도, 어이하여 너는 내 힘을 그렇게나 존중할 수 있는 게냐──」

 무쇠나 다름없는 선대의 표정에, 작은 동요가 스쳤다.
 서로 시선을 나누고 있는 카나코 눈동자엔, 약간이긴 했으나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던 것이다.
 신인 그녀가, 인간을 앞에 두고 감극에 겨운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보인 것이 부끄럽다는 듯, 그것은 곧바로 카나코 본인의 손으로 씻겨나갔다.

「──그러니까」

 눈물을 씻어낸 카나코의 눈동자는, 날카롭게 벼려져 선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널 이해할 수 없다. 신인 내 눈으로 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어떻게 하면, 적이 아니라는 걸 믿어줄 수 있지?」
「네가 적이라면, 차라리 낫겠지. 난 적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믿는다』라는 것이 가장 어렵다. 네 모든 걸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인간들의 신을 향한 신앙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어째서 너 같은 인간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인지. 너라는 존재 그 자체가, 나로선 믿기지 않는다」

 갑작스레, 카나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이 폭발하듯 늘어났다.
 그것은 명확히 선대 한 명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것.
 틀림없는 적의였다.

「적대할 이유는 없을 텐데!」

 무심코 자세를 잡는 선대에게, 카나코는 기세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말했다.

「그걸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과 싸울 생각은 없다」
「하나, 가르쳐주마. 네 그 자연체에 달할 정도로 승화한 호흡법, 훌륭하구나. 하지만 네 호흡이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힘이, 이곳에선 상당히 눈에 걸린다. 이곳은 신이 거주하는 영역이니까 말이다. 네 힘이, 마치 파문처럼 퍼져 내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카나코가 말했다.
 어느새, 그 입가에는 다시금 얕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뱀이 떠오르는,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것 같은 미소였다.

「일단, 그걸 이유삼아 정체 모를 상대인 널 적으로 여기도록 하마」

 마주선 두 명의 귀에, 머리위에 떠오른 먹구름에서 내리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나코 님한테 「네가 숨쉬는 것만 봐도 불쾌해」란 말을 들었습니다. 죽고 싶다.

 아니, 그게, 환상향에선 꽤 다양한 사람이나 요괴들과 교류를 가져온 나다.
 그렇기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양호한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건 잘 안다. 나도 많이 고생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나이기에 이 스와시에 방문한 뒤 사토리, 청아와 분담하여 모리야의 관계자를 찾으며 미리 각오하고 있었다.

 상대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들은 왠지 몰라도 자기들을 알고 있는 정체불명의 방문자. 의심이나 경계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장소가 장소인 만큼, 영원정 때 그랬던 것처럼 어중간한 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신을 향한 신앙이 드물어진 시대에, 그런 신의 힘을 빌리러 온 우리들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집단일 터다.

 그래도 일단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으니 생전의 지식까지 활용해가며 모리야 신사의 원 소재지라고 추정되는 스와 대사에 찾아오게 된 거지만…….

 헤, 헤헤헤……아무리 그래도, 만나자마자 이렇게 대놓고 적 취급을 당한 건 처음이야.

 ……꺾일 것 같아. 마음이.

 뭐야 이게!? 다시 말하건대, 나는 절대로 카나코 님을 적대할 생각은 결코 없었어!
 오히려 만나기 전부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고!
 왜냐하면 상대는 진짜 신이잖아. 존경할 수밖에 없어.
 지식으로 알고 있는 원작 캐릭터한테도 위대함을 느끼는 판국에, 실제로 만난 신을 상대로 숭배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뭘 가지란 거야.
 적의? 설마. 그런 것 따위, 생각하는 것조차 우스워!

 그 전에, 내 마음속에선 카나코 님과 스와코 님은 이미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게 디폴트라서.
 진짜를 앞에 두니, 무조건 넙죽 업드려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다.

 유카리나 마리사 같은 동방의 인요 캐릭터가 아이돌이라면, 카나코 님들은 천황폐하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물론, 사나에도 만나고 싶다. 게다가 환상들이 하기 전이라는 건 현실 여고딩이라고!
 교복을 입은 사나에 씨라……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어.

 어쨌든, 그녀들 중 누군가와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스와 대사 앞까지 오자, 내 기대감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왠지 저렇게 하늘이 흐린 모습조차 「아─, 이건 카나코 님의 힘 때문이구나. 아니면 스와코 님의 위광이야. 틀림없어」같은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신사에 발을 디뎌 평범하게 관광을 즐기며 안쪽으로 나아가다가, 난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두 눈에 담은 본궁에 감동해서, 무심코 중얼거린 내 말해 답하듯 카나코 님이 강림하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신이 신사에서 인간처럼 생활하고 있을 턱이 없지만, 「여기가 카나코 님과 스와코 님이 홈쉐어하는 집인가─」같은 생각을 자연스레 하며 완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내 앞에, 카나코 님이 나타난 것이다.

 그때의 감동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극 했다.
 얼마나 감극 했냐 하면, 무심코 『당신이 신인가!』같은 대사를 칠 뻔했다.

 우와, 위엄 쩌네요 카나코 님.
 그 양반다리 포즈라든가, 레알로 신들이 쩔어서 위험하지만. 생으로 봐버렸어. 야호!
 신앙이 부족해서 환상향에 왔다는 게 원작에서 나온 설정인데, 그거 진짜야?
 이 모습을 보고 공포심이나 경외심을 갖지 않을 인간은 없다고.
 적어도, 나는 신의 위엄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꼈다.

 저, 카나코 님을 믿을게요! 아니, 처음부터 믿었지만, 더 잔뜩 믿을게요!
 하쿠레이의 무녀 아니냐고? 아니, 나 벌써 은퇴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 신사의 신님한테 제사 지낸 적은 없으니 노 카운트로 하자!
 이곳에 찾아온 목적마저 잊은 채, 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신과 이야기한 건 아무리 나라도 첫 경험이야.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이런 꼴로 있으면 실례되는 거 아닐까?
 싫다 정말, 나도 참. 콧털 같은 게 나오진 않았겠지?
 아, 혹시 가벼운 선물이라도 가져오는 게 예의였나? 음양옥 말곤 가진 게 없는데!

 이런 느낌으로, 내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자니──.

 이 상황으로 돌아온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


 ──Oh My God!


 아니, 이 상황에 이 드립은 아니지.




역자후기

후우... 오랜만에 루리웹에서 좋은 팬픽 만화를 보고 삘 받아서 번역해봤습니다. 조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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