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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호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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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고 이성적인 코르보 아타노. 위기에 처한 ​그​리​스​톨​(​디​스​아​너​드​ 작 중 배경)를 구하고 여제 에밀리를 수호하며 슬기롭게 황금기를 열었구나."

"그런 너의 냉철함과 지혜를 빌려주겠나?"

"댓가는, 여제 재스민 콜드원과의 만남이다."

거래 1화


코르보는 어려진 육체를 살폈다. 수많은 싸움에서 입은 상처는 그대로다. 그러나 상처입은 관절이 아프지도, 끊어졌던 인대가 결리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중 점프는 물론이요 손가락 하나만 걸 공간이 있다면 하루 종일 매달릴 정도다. 전성기 체력 그대로면서도 몸은 이십 대 초반이다.
방관자 아웃사이더와 다시 맺은 계약은 코르보의 왼 손등에 그대로 남았다. 정신을 집중해 어둠과 벽, 온갖 것들을 투시하고 소리를 시야로 볼 수 있는 다크 비젼이 발동됐다. 아웃사이더가 준 흑마법은 어마어마한 정신의 소비를 불러오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우스운 것은 밴드 타임을 써도 큰 소모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다.
방관자는 계약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상은 재미를 위해서, 라는 것을 코르보는 이해하고 있다. 그는 그를 간절히 원하는 이에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인간의 모순, 분노와 용서, 증오와 행복 등의 가치를 두고 고민하는 인간에게 힘을 준다.
코르보는 블링크를 사용해 근처 민가 위에 올라갔다. 굴뚝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거대한 벽이 눈에 띄었다. 다크 비젼을 집중해 펼치자 벽 안쪽에 파묻힌 거대한 인간들이 보였다. 코르보는 품 속에서 가면을 꺼냈다. 가면에는 확대경이 붙어있고, 이 확대경은 다크 비젼의 능력을 상승시켜준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거대한 벽 안쪽으론 거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진실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심장을 꺼내들자 바르르 떨렸다.
[아-. 이 도시는 어찌 이리 추악하고, 그럼에도 빛이 날까요.]
빛이 난다? 코르보는 다시 심장을 꼭 쥐었다.
[잊혀진 것들. 잊혀지지 말아야 할 것들. 그것들을 침묵으로 지켜온 이들은 어떤 부담을 지고 있을지.]
[인류는 다시금 날아오르겠죠. 떨어지면 죽고, 비상하면 사는.]
[이렇게 양질의 대지가 그리스톨에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코르보는 어째서 방관자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눈치챘다. 확실해. 그는 나에게 다시금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분노로 찌들었던 시절, 증오와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진실과 용서를 선택할 것인가. 그 지독한 선택처럼.
그 때,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가면을 쓴 탓일까.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타오르던 시절의 격정이 마음을 불태운다. 가면의 확대경이 올라가고 거인과 벽을 너머 윌 마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어지간한 코르보도 거대한 거인들이 사람들을 잡아먹는 모습에 눈쌀을 찌푸렸다. 거인은 세는 것이 힘들 정도고 사람들은 너무나 무력했다. 집중할 필요도 없이 블링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코르보는 윌 로제의 벽 위에 있었다.
어이어이, 이건 너무하잖아. 코르보는 방관자 아웃사이더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놀랬다. 블링크는 먼 거리를 이동하게 해 주는 기술이지만, 수백 미터를 이동시켜 버릴 줄이야. 뼈부적으로 블링크를 강화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지만, 들켰을지도 모르겠군. 다크 비젼으로 살펴봤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이것대로 안타깝다. 항상 경계를 늦추면 안되것만. 아니, 어쩌면 적이 달라져서 인간의 전투에 대한 교범도 달라졌을지 몰라. 코르보는 그늘 한쪽에서 블링크의 위치를 조절하고 사용했다. 이번엔 50 미터를 이동했다. 이게 정상이지. 코르보는 연달아 블링크를 사용해 윌 마리아로 향했다.

아아아아악-!!
사방이 비명이다. 빅츠 라웨는 풀린 다리를 가누지 못했다. 월 마리아를 뚫고 거인이 들어왔다. 그 자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놀라운 건, 3m가 넘는 거인이다. 거인의 크기는 15m. 거인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민간인이 기형종을 알리가 있을까. 3m짜리 거인이 목책을 부수고 동료를 부르기 전까지, 마을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했었다.

-인간은, 이렇게나 무력해.

빅츠는 도망치지 않았다. 가족이 있었다. 다 무너진 집의 잔해를 타고 굴뚝을 기어올랐다. 어머니. 아버지. 형.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동생. 모두 저 괴물이 먹었다. 다행이라면 한 놈이 다 먹었다는 것일까.
"미안해.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해서, 정말 미안해."
다리가 떨린다. 몸이 떨린다. 마음이 떨린다. 그런데도 칼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을 먹어치운 괴물이 입가의 피를 닦을 생각도 않은 채로 다가온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저 손을 타고 달려서, 아니야. 저 손에 매달리자. 아니야. 난 힘이 약해. 오랫동안 못 매달려. 가까이 오면, 달려야 해. 그것 뿐이야.
거인의 손이 다가오고 빅츠는 칼로 힘껏 엄지손톱 밑을 후볐다. 박힌 칼의 손잡이를 쥐고 힘껏 올랐다. 그리고 있는 힘껏 거인의 팔을 타고 달렸다. 칼은 품 속이 두자루나 더 있다. 목의 살을 힘껏 도려낸다. 거인이 손으로 날 붙잡기 전에-!
그러나 그건, 이뤄지지 못했다. 거인이 고개를 돌리고 혀를 내밀었다. 그것만으로도 빅츠는 전진할 수 없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
혀에 칼을 박는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길게 빼문 혀는 빅츠의 몸을 감고 동굴과 같은 입으로 돌아간다.
싫어. 적어도, 적어도 이 녀석은 죽이게 해줘. 신님. 왕님. 하느님. 뭐든 좋아요. 이 녀석만은, 이 녀석만은 죽이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윌 시나에서 쫒겨나, 이 작은 산골에서 살아왔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우리 남매를 위해 열심히 사셨어요. 효도도 못했다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빅츠는 품 속에서 칼을 꺼냈다. 혀를 타고 미끄러졌다. 목 젖이 보였다. 그래. 같이 죽자.
양 손에 쥔 칼로 힘껏 찌른다. 그걸 잡고 목젖을 붙잡는다. 거인의 입이 열리고 손가락이 쭈욱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나갈 생각은 없다. 빅츠는 힘껏 목 안으로 뛰어내리며 칼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자랑하던 날카로운 은색 칼은 거인의 살에 박혀 훌륭한 지지대가 되었다. 빅츠는 힘껏 칼을 돌렸다. 미끄러 떨어질 것 같아도 칼을 후비고 또 파냈다. 목구멍 안 쪽의, 아주 어두운 곳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죽인건가?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빅츠를 덮쳤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가 몸을 파고든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빅츠는 눈을 감았다.

-빛줄기가 파고든다.

빅츠는 눈을 떴다. 거기엔 검은 로브를 입고 해골과 같은 가면을 쓰고,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쇠뇌, 온갖 무기로 무장한 인간이, 당연하다는 듯이 거인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빅츠를 들어 무너진 잔해더미 사이로 던졌다. 빅츠는 벽에 부딪히고 땅에 엎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 정도면 됐어. 어차피 혼자다. 거인을 이길 수는 없어. 기대하지 않는다. 쿵. 쿵. 거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그러나 소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빅츠는 고개를 들었다. 거인의 시체는 사라지고, 그 위로 사라져가는 거인이 자리잡았다.
"뭐, 뭐야!"
빅츠는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거인을 죽이는, 사신인지 악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괴물을.

블링크, 암살. 블링크, 암살.
코르보는 기계적으로 거인을 도륙했다. 다크 비젼으로 아무리 봐도 이 녀석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라기보단, 무언가의 열화체. 되다가 만 실패작이란 느낌이 들었다. 가면을 쓴 코르보는 단 한방울의 피도 묻히지 않은 채, 또 다시 거인을 죽였다.
"뒤!"
거인의 몸 속에서 구해낸 아이가 코르보의 뒷편을 가르켰다. 코르보는 허공으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위퍼만도 못한 지능으로 허겁지겁 덤벼든 거인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려졌다. 코르보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거인의 목덜미를 잘라냈다.
이걸로 끝. 적어도 윌 마리아 깊숙히 들어온 거인은 다 죽였다. 밴드타임을 몇 번이나 사용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연속해서 사용하면 무리가 따르는군. 코르보는 몇 병 안남은 소콜라프의 엘릭서를 마셨다. 육체적인 활력과 정신적인 충족감을 느끼며 코르보는 다크 비젼을 사용했다. 저 멀리 싸우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 당신은 누구시죠? 어째서 지금...."
코르보는 분해 보이는 표정의 빅츠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에밀리를 닮았다. 에밀리가 남자라면 저렇게 당돌했을까. 믿었던 마틴경에게 배신당했어도 끝까지 저항하던 그 모습. 코르보는 빅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블링크를 사용했다. 적은 많고 시간은 적다. 시간에 쫒기는 듯한 감각. 에밀리가 여제에 오르고 황금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만약 코르보가 가면을 벗고 있었다면,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기가 질렸을터. 코르보의 얼굴에는 흉악한 미소가 깃들었다. 사정없이 베어도 된다. 역병 걱정도 없고, 인류에게 명확한 해가 되는 존재들이다. 위퍼처럼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다.

코르보는 아직, 칼과 흑마법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호국경님 짱짱맨
코르보님 짱짱맨.
샘 피셔랑 코드네임 47 꺼지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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