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가? 괴로운가? 고통스럽나?"
"그렇다면 그대는 살아야 한다."
"살아만 있다면, 인간은 겪었던 모든 마음들을 원동력으로 살아가게 된다."
"설령 그것이 지독한 증오와 원한이라도, 틀림없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윌 마리아 성벽은 거인들을 유인하기 위해 돌출된 구역이 있다. 신이 만들었다고 말해지는 윌 마리아, 로제, 시나의 벽 전체를 경계하면 어마어마한 낭비가 된다. 물론 돌출지구는 무척이나 위험하기에,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가진 힘이 적은 약자들 뿐이다. 당연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서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으아아아아!"
"아악! 안돼에에에에!"
비명이 퍼지고 피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거인의 손에 잡힌 사람들은 꿈틀거리며 저항한다. 으적, 으적. 거인의 입이 움직일 때 마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르보는 왼손에 집중했다. 흑마법 밴드타임이 시전되고 코르보를 제외하면 모든 것들이 멈췄다. 다크 비젼으로 생존자를 찾는다. 분노와 증오를 억누르고 냉철하게.
인간을 찾아 헤매는 거인의 목에 스프링 칼날을 거인의 목덜미에 설치한다. 인간을 잡거나 먹기 위해 입을 멀린 거인은 직접 칼로 살을 파헤친다. 밴드타임이 해제되는 순간 다시 밴드타임. 연속으로 사용하자 부담이 확 온다. 인간을 잡거나 들어올린 거인을 노린다.
밴드타임이 끝나자 스프링 칼날의 요란한 소리와 거인들이 쓰러지는 굉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비명소리가 끊겼다. 허공을 날아오르던 병사들이 전부 죽은 거인들을 보며 당황했다.
다크 비젼으로 감지 가능한 모든 거인은 죽였다. 코르보는 다친 사람들을 부축해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부상자들은 대게 절단, 골절이다. 심한 경우엔 눌려서 육체가 끊겨버렸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인간은 코르보가 편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을 옮기는 중, 한 여성이 의식을 되찾았다. 허리가 부러진 여인이다. 그녀는 지독한 통증에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흐릿한 동공을 보니 정상이 아니다. 그녀는 코르보의 손을 잡고 지켜달라고 웅얼거렸다.
코르보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심장이 천천히 멎어간다. 부셔진 허리뼈와 갈비뼈가 심장은 물론 동맥과 정맥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코르보는 그녀의 목을 베었다. 고통은 없으리라.
조용해진 도시에 갑작스런 비명이 울렸다. 코르보는 죽으면서도 자신보다 다른 누군가를 걱정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총을 꺼냈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이 이상의 피해를 낼 수 없게 하리라. 손등에 새겨진 문장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몇배나 강력한 다크 비젼이 가면의 확대경과 맞물리며 어마어마한 시야를 제공했다. 그 시야엔 일반적인 거인과 달리 갑옷을 입은 듯한 괴물이 있었다. 갑옷 사이의 살은 피부를 들어낸 듯한 진홍색이다.
문제는, 거인의 목덜미에, 인간의 형상이, 비치는 것.
코르보는 블링크를 연속적으로 사용해 거인에게 다가갔다. 갑옷 거인은 몸을 웅크렸다. 거인 앞에는 문이 닫히고 있었다. 저 질량, 내구. 약간의 속도만 있다면, 저 문은 종잇장처럼 부셔진다.
이성은 냉정하게. 판단을 빠르게. 결정은 잔혹하게.
적이다.
코르보는 망설였다. '이걸' 쓴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어쩌면 이 곳은 지옥보다 더 한 지옥이 될 지도 모른다. '이걸' 쓴다면 그 어떤 변명도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의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전염되면 방법은 없다. 왼손에 새겨진 문장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갑옷거인은 힘껏 뛰었다. 저 문은 순식간에 뚫릴 것이다. 코르보는 망설임을 잘라냈다. 왼 손의 문장이 발광했다. 코르보의 쇠뇌가 거인을 가르키는 순간 거인의 살과 갑옷같은 것 사이에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은 수백마리의 쥐를 뱉어내고 사라졌다. 디바우어링 스윔. 공간을 넘어 튀어나온 식인 쥐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인을 파먹기 시작했다. 쥐떼는 인간을 완전히 파먹는데 일분도 걸리지 않는다. 만약 거인이 통증을 느낀다면, 산 채로 씹혀먹는 고통을 느끼리라.
그리스톨에선 결코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쥐들은 인간을 먹고, 역병을 옮기고,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피해를 남긴다. 이 세계에서 이 능력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만약 저 갑옷거인이 인간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죽어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쥐떼들은 오직 식인에 몰두하니까.
코르보의 예상대로 갑옷거인은 쥐떼가 파먹자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발은 멈추지 않고 뛰었다. 월 마리아의 개폐문은 결국 부셔지고 말았다. 수리하기 위해선 이 곳을 지켜야 하리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곳을 지킬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코르보는 거인이 문에 부딪히기 직전 밴드타임을 사용해 사람들을 옮겼다. 갑옷거인의 목을 베어낸다 해도 이미 관성으로 인해 막을 수가 없었다.
문을 뚫고 들어온 갑옷거인은 곧바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겠지. 쥐떼에 걸린 인간은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식인쥐떼가 선사하는 고통은 죽음보다 더했다.
들고 있던 병사가 정신을 차렸는지 당신은 누구냐며 소리쳤다.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코르보는 병사를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자그마한 짐과 식량을 가진 사람들이 윌 로제쪽으로 가고 있었다. 윌 마리아와 윌 로제 사이의 지역을 포기한거다. 옳은 판단이다. 거인은 강하고 인류는 약하다. 코르보는 윌 마리아로 몸을 숨긴 거인을 관찰했다. 갑옷거인은 쓰러지고, 목 뒤에서 인간이 튀어나와 쥐떼를 피했다. 다크 비젼은 사람의 상처를 보여주지 않기에, 거인일 때 입은 상처가 그대로 남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추적술을 모르는 코르보는 그를 쫒아간다는 생각을 털어냈다.
문제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
코르보는 즉시 블링크를 사용해 이탈했다. 처음은 상공, 벽으로 벽으로.
한네스는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알렌에게 했던 말처럼, 자신에겐 용기가 없었다. 거인과 맞설 용기. 주둔병단은 벽을 끼고 싸울 때,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들에게 조사병단처럼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해 싸우라고 하면 반사람 분의 몫도 할 수 없다. 한네스가 알렌과 미카사의 어머니를 구할 수 없다. 그의 판단은 옳고, 확실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네스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알렌과 미카사가 탄 배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한네스도 말에 올라탔다. 사실 한네스도 배에 타야 했지만, 그는 많은 수의 거인이 갑작스레 죽을 것을 봤다. 알아보고 싶었다. 알렌과 미카사는 한네스의 동료들이 돌봐주겠지.
죽음을 각오한 것은 아니다. 그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입체기동장치의 가스는 가득했고, 말은 힘이 넘쳤다. 장비 또한 충실하다. 무심코, 한네스는 그리샤 예거를 떠올렸다. 그는 전염병이 돌아도 자신보다 남을 걱정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쓰게 웃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을 리가 있겠냐고. 자신도 무섭다고. 그저, 자신이 있었을 뿐이라고. 이미 만들어진 약물이 반드시 치료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을 뿐이라며.
그래, 무섭지 않을리가 없다.
한네스는 이를 악 물었다. 가자. 어차피, 자신은 주둔병단. 저 벽과 같이 목숨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최대한, 많은 주민을 구하리라.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정신이 드나?"
"으, 윽. 여기는 대체..."
어지럽다. 뇌 일부분이 마비된 기분이다. 몸에 감각이 뒤죽박죽이다. 덜걱 덜걱. 자신의 몸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푸르릉 소리가 들렸다. 말 위라는 것을 눈치챘다.
"미안하군. 말을 빌렸다."
"난, 왜, 여기에...."
"내가 기절시켰다. 사죄하지."
젊은 목소리다. 한네스는 어렵사리 고개를 돌려 윌 마리아를 찾았다. 햇볕을 막으며, 윌 로제의 벽이 불타고 있었다. 무언가가 머리 속을 헤집었다.
"어째서!"
".......?"
"어째서, 날 막은거지.....?"
"뭘 막았다는 거지?"
"나는, 마리아 지역에 사는 거주민들을 구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주둔병단이라고!"
한네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나는 안도하는 건가. 나는 어째서, 이렇게나 추한걸까. 엘런처럼, 미카사처럼, 아르민처럼 잘난 것 하나 없다.
"뭔지 모르겠지만."
코르보는 그런 한네스의 마음을 잘 몰랐다. 죽인다. 살린다. 이용하고, 이용당한다. 소콜로프가 위퍼(역병에 감염된 인간들. 지능저하, 탈모, 안구출혈과 체중 감소 등을 겪는다.)를 치료한 이유도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내가 천재니까' 라는 의무감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인간은 오직 행동으로 전할 수 있지. 살아 있다면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지 않겠나."
한 때,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여제 재스민을 구하지 못한 자신. 에밀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코르보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분노와 증오에도 흐려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어째서, 어째서 나야.... 어째서 내가... 내가 살아있는 거냐고...."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호국경이면서도, 지켜주지 못했다. 왜 자신이 살아있는 건가. 6개월간 고문을 당하면서도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다.
말은 달린다. 윌 시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로를 통해 이동한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겠지. 적막함 속에 한네스의 울음소리만 조용히 흘렀다. 지키고 싶었던 이를 지킬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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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고.
"하아? 자, 잠깐만! 이게 대체 뭐야!"
"미카사! 안돼! 어? 미, 미카사?"
"코르보! 날 강하게 해 줘! 저 거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게!"
제 3화.
힘을 바라는 자.
"그렇다면 그대는 살아야 한다."
"살아만 있다면, 인간은 겪었던 모든 마음들을 원동력으로 살아가게 된다."
"설령 그것이 지독한 증오와 원한이라도, 틀림없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전투(1) 2화
윌 마리아 성벽은 거인들을 유인하기 위해 돌출된 구역이 있다. 신이 만들었다고 말해지는 윌 마리아, 로제, 시나의 벽 전체를 경계하면 어마어마한 낭비가 된다. 물론 돌출지구는 무척이나 위험하기에,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가진 힘이 적은 약자들 뿐이다. 당연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서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으아아아아!"
"아악! 안돼에에에에!"
비명이 퍼지고 피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거인의 손에 잡힌 사람들은 꿈틀거리며 저항한다. 으적, 으적. 거인의 입이 움직일 때 마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르보는 왼손에 집중했다. 흑마법 밴드타임이 시전되고 코르보를 제외하면 모든 것들이 멈췄다. 다크 비젼으로 생존자를 찾는다. 분노와 증오를 억누르고 냉철하게.
인간을 찾아 헤매는 거인의 목에 스프링 칼날을 거인의 목덜미에 설치한다. 인간을 잡거나 먹기 위해 입을 멀린 거인은 직접 칼로 살을 파헤친다. 밴드타임이 해제되는 순간 다시 밴드타임. 연속으로 사용하자 부담이 확 온다. 인간을 잡거나 들어올린 거인을 노린다.
밴드타임이 끝나자 스프링 칼날의 요란한 소리와 거인들이 쓰러지는 굉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비명소리가 끊겼다. 허공을 날아오르던 병사들이 전부 죽은 거인들을 보며 당황했다.
다크 비젼으로 감지 가능한 모든 거인은 죽였다. 코르보는 다친 사람들을 부축해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부상자들은 대게 절단, 골절이다. 심한 경우엔 눌려서 육체가 끊겨버렸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인간은 코르보가 편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을 옮기는 중, 한 여성이 의식을 되찾았다. 허리가 부러진 여인이다. 그녀는 지독한 통증에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흐릿한 동공을 보니 정상이 아니다. 그녀는 코르보의 손을 잡고 지켜달라고 웅얼거렸다.
코르보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심장이 천천히 멎어간다. 부셔진 허리뼈와 갈비뼈가 심장은 물론 동맥과 정맥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코르보는 그녀의 목을 베었다. 고통은 없으리라.
조용해진 도시에 갑작스런 비명이 울렸다. 코르보는 죽으면서도 자신보다 다른 누군가를 걱정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고 총을 꺼냈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이 이상의 피해를 낼 수 없게 하리라. 손등에 새겨진 문장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몇배나 강력한 다크 비젼이 가면의 확대경과 맞물리며 어마어마한 시야를 제공했다. 그 시야엔 일반적인 거인과 달리 갑옷을 입은 듯한 괴물이 있었다. 갑옷 사이의 살은 피부를 들어낸 듯한 진홍색이다.
문제는, 거인의 목덜미에, 인간의 형상이, 비치는 것.
코르보는 블링크를 연속적으로 사용해 거인에게 다가갔다. 갑옷 거인은 몸을 웅크렸다. 거인 앞에는 문이 닫히고 있었다. 저 질량, 내구. 약간의 속도만 있다면, 저 문은 종잇장처럼 부셔진다.
이성은 냉정하게. 판단을 빠르게. 결정은 잔혹하게.
적이다.
코르보는 망설였다. '이걸' 쓴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어쩌면 이 곳은 지옥보다 더 한 지옥이 될 지도 모른다. '이걸' 쓴다면 그 어떤 변명도 받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의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전염되면 방법은 없다. 왼손에 새겨진 문장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갑옷거인은 힘껏 뛰었다. 저 문은 순식간에 뚫릴 것이다. 코르보는 망설임을 잘라냈다. 왼 손의 문장이 발광했다. 코르보의 쇠뇌가 거인을 가르키는 순간 거인의 살과 갑옷같은 것 사이에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은 수백마리의 쥐를 뱉어내고 사라졌다. 디바우어링 스윔. 공간을 넘어 튀어나온 식인 쥐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인을 파먹기 시작했다. 쥐떼는 인간을 완전히 파먹는데 일분도 걸리지 않는다. 만약 거인이 통증을 느낀다면, 산 채로 씹혀먹는 고통을 느끼리라.
그리스톨에선 결코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쥐들은 인간을 먹고, 역병을 옮기고,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피해를 남긴다. 이 세계에서 이 능력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만약 저 갑옷거인이 인간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죽어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쥐떼들은 오직 식인에 몰두하니까.
코르보의 예상대로 갑옷거인은 쥐떼가 파먹자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발은 멈추지 않고 뛰었다. 월 마리아의 개폐문은 결국 부셔지고 말았다. 수리하기 위해선 이 곳을 지켜야 하리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곳을 지킬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코르보는 거인이 문에 부딪히기 직전 밴드타임을 사용해 사람들을 옮겼다. 갑옷거인의 목을 베어낸다 해도 이미 관성으로 인해 막을 수가 없었다.
문을 뚫고 들어온 갑옷거인은 곧바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겠지. 쥐떼에 걸린 인간은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식인쥐떼가 선사하는 고통은 죽음보다 더했다.
들고 있던 병사가 정신을 차렸는지 당신은 누구냐며 소리쳤다.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코르보는 병사를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자그마한 짐과 식량을 가진 사람들이 윌 로제쪽으로 가고 있었다. 윌 마리아와 윌 로제 사이의 지역을 포기한거다. 옳은 판단이다. 거인은 강하고 인류는 약하다. 코르보는 윌 마리아로 몸을 숨긴 거인을 관찰했다. 갑옷거인은 쓰러지고, 목 뒤에서 인간이 튀어나와 쥐떼를 피했다. 다크 비젼은 사람의 상처를 보여주지 않기에, 거인일 때 입은 상처가 그대로 남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추적술을 모르는 코르보는 그를 쫒아간다는 생각을 털어냈다.
문제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
코르보는 즉시 블링크를 사용해 이탈했다. 처음은 상공, 벽으로 벽으로.
한네스는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알렌에게 했던 말처럼, 자신에겐 용기가 없었다. 거인과 맞설 용기. 주둔병단은 벽을 끼고 싸울 때,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들에게 조사병단처럼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해 싸우라고 하면 반사람 분의 몫도 할 수 없다. 한네스가 알렌과 미카사의 어머니를 구할 수 없다. 그의 판단은 옳고, 확실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네스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알렌과 미카사가 탄 배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한네스도 말에 올라탔다. 사실 한네스도 배에 타야 했지만, 그는 많은 수의 거인이 갑작스레 죽을 것을 봤다. 알아보고 싶었다. 알렌과 미카사는 한네스의 동료들이 돌봐주겠지.
죽음을 각오한 것은 아니다. 그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입체기동장치의 가스는 가득했고, 말은 힘이 넘쳤다. 장비 또한 충실하다. 무심코, 한네스는 그리샤 예거를 떠올렸다. 그는 전염병이 돌아도 자신보다 남을 걱정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쓰게 웃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을 리가 있겠냐고. 자신도 무섭다고. 그저, 자신이 있었을 뿐이라고. 이미 만들어진 약물이 반드시 치료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을 뿐이라며.
그래, 무섭지 않을리가 없다.
한네스는 이를 악 물었다. 가자. 어차피, 자신은 주둔병단. 저 벽과 같이 목숨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최대한, 많은 주민을 구하리라.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정신이 드나?"
"으, 윽. 여기는 대체..."
어지럽다. 뇌 일부분이 마비된 기분이다. 몸에 감각이 뒤죽박죽이다. 덜걱 덜걱. 자신의 몸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푸르릉 소리가 들렸다. 말 위라는 것을 눈치챘다.
"미안하군. 말을 빌렸다."
"난, 왜, 여기에...."
"내가 기절시켰다. 사죄하지."
젊은 목소리다. 한네스는 어렵사리 고개를 돌려 윌 마리아를 찾았다. 햇볕을 막으며, 윌 로제의 벽이 불타고 있었다. 무언가가 머리 속을 헤집었다.
"어째서!"
".......?"
"어째서, 날 막은거지.....?"
"뭘 막았다는 거지?"
"나는, 마리아 지역에 사는 거주민들을 구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주둔병단이라고!"
한네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나는 안도하는 건가. 나는 어째서, 이렇게나 추한걸까. 엘런처럼, 미카사처럼, 아르민처럼 잘난 것 하나 없다.
"뭔지 모르겠지만."
코르보는 그런 한네스의 마음을 잘 몰랐다. 죽인다. 살린다. 이용하고, 이용당한다. 소콜로프가 위퍼(역병에 감염된 인간들. 지능저하, 탈모, 안구출혈과 체중 감소 등을 겪는다.)를 치료한 이유도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내가 천재니까' 라는 의무감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인간은 오직 행동으로 전할 수 있지. 살아 있다면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지 않겠나."
한 때,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여제 재스민을 구하지 못한 자신. 에밀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코르보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분노와 증오에도 흐려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어째서, 어째서 나야.... 어째서 내가... 내가 살아있는 거냐고...."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호국경이면서도, 지켜주지 못했다. 왜 자신이 살아있는 건가. 6개월간 고문을 당하면서도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다.
말은 달린다. 윌 시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로를 통해 이동한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겠지. 적막함 속에 한네스의 울음소리만 조용히 흘렀다. 지키고 싶었던 이를 지킬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
아래는 예고.
"하아? 자, 잠깐만! 이게 대체 뭐야!"
"미카사! 안돼! 어? 미, 미카사?"
"코르보! 날 강하게 해 줘! 저 거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게!"
제 3화.
힘을 바라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