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를 들킬리가 없어 3화

코우사카 쿄우스케. 두번째 데드플래그를 맞이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두뇌를 회전시켰다. 키리노의 취미를 알고, 인생상담을 받은 그 날 이후 키리노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교환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교류다운 교류는 없었고, 저번에 통화했을 때는 '중요한일 아니면 전화 걸지 말아줄래. 짜증나거든'

이라고 말한 키리노가. 183번이나 전화를 건 이유에 대해 필사적으로 고민을 한 결과. 퍼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반은 농담이었지만 키리노에게 유언을 보낸것. 그것만 있었으면 괜찮았겠지만 쿠로네코까지 키리노에게 거든 결과가

마치 내가 어쩔 수 없이 출가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게 문제일 것이다.

가족에게 저런 악질 메일을 보냈다고 너무 뭐라 하지마라. 나머지 반은 진담이라는 거니까.. 진짜 죽는줄 알았다고..

쿠로네코가 말한대로, 오늘의 나는 꽤 날카로운 판단을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무리 키리노가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가족이니까 걱정하는 정도는 당연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키리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찰칵 

"..너 어디서 뭐 하고 있는거야?"

우연인가? 통화 연결음이 들리지도 않았던거 같은데..

"아니 그.. 그게 말이야. 이야기 하자면 길어서.. 들어가서 이야기 하면 안될까?"

"뭐야, 너 가출하는거 아니었어?"

"그럴리가 없잖냐.."

"그럼 뭐야? 나한테 그런 메일 보내놓고, 검은거 시켜서 그런 연락하고, 딴여자랑 야반도주라도 할 생각? 아니면 여동생 걱정하게 만들어서 느끼는거야? 헤에.. 시스콘인건 알았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위험하지 않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응? 뭐야 너, 내가 걱정되서 그렇게 전화한거냐?"

"웃.. 그럴리가 없잖아! 뭘 멋대로 착각하는 거야! 시스콘인 주제에 귀여운 여동생이 전화하면 재깍 받으란 말이야! 기분나빠, 진~짜 기분나빠!"

너 말하는게 앞뒤가 안맞는다고..

평소에 이정도로 욕을 먹었으면 아무리 나라도 화가 났겠지만, 이번에는 순전히 전부 다 내 탓이다.

쿠로네코가 진짜 키리노에게 연락 한 것은 의외였지만.. 쿠로네코라면 농담인건 알았을텐데.

그 쿠로네코 조차 믿을 정도로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게 분명하다.

"그래 그래. 들어가서 다 설명할테니까, 그 대신 나도 인생상담이 있다. 너한테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엣? 으..응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검은거한테 이야기 대충 들었으니까, 속일생각 하지마"

방금까지 그렇게 방방 뛰던 키리노는 뭔가 묘하게 기분이 좋은듯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데드엔딩을 회피한건가? 무슨 말이 키리노를 기분 좋게 한거지?

그렇게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는건 없고, 어찌됬던 데드플래그를 회피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집에 돌아갔다.

"... 그렇게 된거야"

"하아.. 진심으로 여자 중학생한테 살해당할까봐 걱정하는 남자 고등학생이라니.. 한심해도 정도가 있지"

나는 지금 평소대로 키리노의 방에서 정좌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평소와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평소에 쓰던 고양이 모양 방석이 없다는 점.

"너가 아야세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

"헤에.. 너, 내 친구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정도로 만나고 있는거야?"

키리노의 음색과 얼굴이 싸늘하다. 키리노와 사이가 좋아지기 전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완전히 벌레를 보는 눈이잖아.

특대 지뢰를 밟았나보다. 왼발에 묵직한 감각이 딸려 올라온다.

"키..키리노씨? 그게 아니라.. 내가 절대 너한테서 친구를 뺏거나 하는건 아니니까요? 전에 아야세가 너한테 준 선물 있잖아.. 그때 한 매니져일 때문에 가끔 볼 뿐이야. 요번에도 그랬고"

"너.. 설마 카나코한테까지 손을 댄건.."

"네 친구들이랑 사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니까.."

그러니까 아니라고! 이 녀석은 대체 얼마나 자기 친구를 뺏길까봐 걱정하는거야! 키리노는, 단지 자신의 친한 친구가 다른 사람, 특히 나랑 노는게 싫은거다.

훗.. 아야세면 몰라도 카나코는 이쪽이 사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야세를 꺼내면 밟고있는 지뢰가 폭발하는 확신이 있기에, 그냥 조용히 있었다.

후훗. 오늘의 나는 정말 날카롭군.

"그 망할괭이가.. 헷갈리게 하고있어."

"응? 쿠로네코가 뭐라고 했는데 그래?"

"넌 알 필요 없어. 그거보다 인.인생상담이 있다며?"

키리노는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오늘따라 너 기복이 엄청 심한거 같다..

"오.오우. 아까 이야기랑 이어지는건데.. 오타쿠 취미가 불특정 다수에게 들킬것 같슴다"

"뭐야.. 겨우 그런거였어?"

"겨우 그런거라니 임마! 넌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면서 아야세한테 들켰을때 울고불고 했으면서 뭐라고!? 나 진짜 화낸다!?"

"웃, 뭐야! 부탁한건 너잖아! 감사하게 들으라구! 하여튼.. 그런 의미로 말한건 아니야. 그 정도면 어떻게든 해결 가능하지 않아?"

그래서 너는 인생상담을 부탁할때 자는사람 뺨싸대기를 때려 깨워서 그렇게 무례했냐 이 잡것아

오히려 그때는 분명 '초 귀여운 여동생이 부탁하는 거니까 감사하게 들으라고!' 라고 했던거 같은데.

정말 남에일이라고 이정도로 무신경하다니.. 난 진지하다고..

"본명으로 참가한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화장하고 해서 보통은 못알아보지 않아? 그냥 시치미 뚝 떼"

"일리는 있다만.. 난 아는 사람, 특히 아야세한테 들키면 살해당한다고.."

"아 그건 괜찮아. 아야세한텐 내가 보여준거니까"

"하하 그러니까 사진을 ​너​가​뭐​임​ㅁ​마​아​아​아​아​아​!​!​!​!​!​!​!​?​?​?​?​?​?​?​?​?​"​

너가 보여줬다고!? 왜!? 내가 그렇게 살해당하길 바랬냐!? 오타쿠 취미랑 연관도 먼 아야세가 내 코스프레 사진을 접할 기회는 아주 적었을 거다.

그걸 자기 손으로 보여줬다고!? 그럼 오늘의 아야세는 다 알고 나를 불른거야!? 시찰!? 시찰이야!?

내가 패닉에 빠져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때 (내가 탈모가 생기면 다 이녀석 때문이다) 키리노가 말했다.

"살해당하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걱정마. 왜 바보같은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너보다 내가 더 아야세에 대해 잘 안다고, 겨우 그 정도로 살해당하지는 않아"

"..더하면 살해당한다는 거냐.."

"그렇지. 딱히 아야세가 아니더라도"

"뭔말이야.. 난 아야세만 걱정이라고.. 그러니까 너 무언가 확신할 수 있는 그런게 있는거지!? 설명해줘, 내 목숨이 달린 이야기니까!"

"웃. 그건.. 이익! 그런걸 너한테 말해줄 리가 없잖아! 바보! 변태! 등신! 시스콘! 기분나빠! 나가!"

분노한 키리노의 무차별 폭격에 어쩔수 없이 방에서 밀려났다.

오오. 오랜만에 듣는 분노한 키리노의 6콤보. 옛날 생각 나는구나. 오늘은 쿠로네코도, 키리노도, 대체 뭐가 불만이어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야세와 약속했던, 메루루 이벤트날이 왔다. 아키하바라에 도착해서, 행사 두시간전부터 정장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넘기고, 선그라스까지 쓰면 완벽!

그리고 대기실에서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벤트 중간중간에 카나코와 브릿지의 편의를 도와주면서 무언가 큰일이 안나게 조정만 하면 되는 편한 아르바이트다.

일 자체는 쉽지만 카나코의 성격은 키리노와 맞먹을 정도로 악질이므로,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다. 얕보면 큰일난다.

게다가 아이돌 일이기 때문에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꽤 높다고 한다. 악질 팬이 대기실까지 쳐들어온다던가 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고,

그것 말고도 너무 과도하게 스킨쉽을 요구하는 악질팬이라던가를 중간에서 컷하는게 나의 임무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라도 나를 믿고 맡긴 일이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하면 안된다.

여러가지 시뮬레이션을 상상해서, 여러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연습도 했지만- 오늘의 돌발상황은, 상상도 못했다.

이벤트 회장에 도착하니 마이러블리엔젤이자 마왕인 아야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아야세님? 무슨 용건이 있으셔서 여기 계신지요?"

"그거야 당연히 오빠가 카나코에게 손대는게 걱정되니 있는거죠"

여태까지 본 웃음중에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는 아야세를 두고,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든 퇴로를 막고 있었다. 아아. 나는 여기서 살해당하는구나..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주..죽이지 말아줘.. 키리노한테 손대지 않았단 말이야.."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너가 검은양복을 입은 암살자를 풀어놨다는 것은 이미 알고있다 으아아ㅏㅏ아아 곱게죽진 않겠어!"

"..이벤트 스테프들이 양복을 입는건 ​당​연​한​거​잖​아​요​.​.​"​

나는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아​.​.​안​죽​일​거​야​?​"​

"안죽여요! 오빠도 참.. 그 정도로 겁먹으면 ​상​처​받​는​다​구​요​.​.​"​

아아 키리노가 해냈구나! 아야세를 말려줬구나! 고맙다 나의 여동생이여! 오빠는 왠만하면 우는 사람이 아닌데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오늘은 카나코 일하는것도 확인하고, 오빠가 카나코한테 손대지 못하게 감시하러 온거에요."

"너라면 몰라도 내가 그 꼬맹이를 손댈 일은 절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만일이지만 스태프들 사이에 암살자가 껴있을 수도 있겠네요"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아야세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소리내어 웃더니, "농담인게 당연하잖아요 오빠" 라고 말했다.

그럼 평소에 농담같은 일을 하던가 이 ​여​자​야​. ​

"그럼 카나코나 만나러 갈까요?"

"에? 하지만 나 아직 변장 안했는데"

"이제와서 숨길 필요도 없잖아요. 사실 변장 수준도 아니고"

"그건 그런데.. 딱히 밝힐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 꼬맹이 억세니까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겠다"

"그럼 그건 오빠 자율에 맡길게요."

하아.. 뭔가 불행한 일이 생길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아야세에게는 약하다.

아야세가 내 취향의 미소녀라는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야생의 감이 거역하면 안된다고 항상 말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기실에 안내를 하려고 했는데, 아이돌이 타는 선팅한 밴이 끼익 하고 스더니, 타이밍 좋게 카나코가 나타났다.

헤에.. 오타쿠아이돌이어도 저런거 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카나코가 먼저 이쪽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 줬다.

"아야세! 왠일이야? 카나코 일하는거 확인하러 온거야?"

"응. 카나코 열심히 하는 모습 구경하러 왔어"

"헷헤- 카나코는 아이돌 타입이라구? 근데 누구야? 남자친구?"

"안녕하세요 아야세양의 남친입니 푸겍"

"무슨 농담을 하는거에요! 변태! 죽여버릴거에요!"

저번에 공원에서 코스프레를 추천하고 돌려차기를 맞은 기억이 있지만, 이번은 예전보다 더욱더 깔끔해진 타격이 명중했다.

국회의원 딸이라고 무술이라고 배우는 것일까. 이거 왠만한 양아치 두세명은 혼자 때려잡겠는걸

"아니야 카나코. 키리노의 오빠분이셔"

"아 그 평범남! 그래서? 오빠도 내 열렬한 신자?"

개구장이처럼 씨익 웃는 카나코. 역시나 성격 나쁘다. 키리노의 오빠 입장으로서는 카나코와 만난건 두번째지만, 첫번째도 제대로 된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한 사람한테나 막말하나보다. 평소같았으면 '다 큰 어른이 키즈애니메이션 오타쿠라니 기분나쁘다구~' 라고 했을게 분명하다.

오히려 평범남에서 독설이 끝난걸 칭찬해주지.

"아 뭐 그렇다고 해두지. 그건 그렇고 처음에는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적응됬나보네"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

으아.. 말 실수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카나코를 돌보다 보니 여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걱정하다 보니..!

카나코는 눈치를 챘는지 못챘는지 애매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 카나코? 슬슬 준비해야되지 않아?"

마이러블리엔젤 아야세가 적절한 타이밍에 중재를 넣어줬다. 굿쟙 아야세! 카나코를 배웅하며 "열심히 해~" 같은 말을 하고, 아야세는 나에게 말했다.

"자 오빠도 가서 준비해주세요. 혹시나 하지만 카나코에게 손대면 가만히 두지 않을테니까"

"오,오우"

키리노도 그렇고 아야세도 그렇고, 자신들의 친구는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만. 나만 불쌍한 놈이잖아..

돌발상황이 발생했었지만, 아마도 아까의 불길한 느낌은 기분탓이었나보다.

새끼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듯한 표정으로 과하게 나를 반기는 브리짓과, 평소처럼 "아 오덕 짱나" 하는 카나코를 진정시키고, 무난하게 이벤트가 진행됬다.

브리짓과 카나코의 연기는 저번보다 훨씬 섬세해졌고, 카나코는 자신의 팬들을 완전히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서운 꼬맹이..

특히 메루루 관계자와 팬대표, 브리짓과 같이 토크쇼를 할때는 연약한척, 내숭은 어찌 그렇게나 잘 떠는지..

브리짓과의 관계도 확실히 더 나아져서, 아무 이유없이 브리짓을 괴롭히거나 하지 않고 동생을 지켜주는 언니처럼 잘 행동한다.

브리짓도 그런 카나코를 마치 친 언니처럼 잘 따르고.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데, 왜 카나코는 전 매니져를 돌려달라고 한걸까. 오면 물어봐야지.

아 여담으로, 대기실에서는 마치 뒷골목에서 앉은 상태로 다리를 쩍 벌리고 흡연하시는 양아치들처럼 "아앙? 도도리치 사와 임마" 하는 카나코가 애교를 부리는 괴리감은 정말 쩐다.

"둘다 수고했어. 자 마실거"

"고마워요 매니져~"

"으아아 뻐근해. 매니져 어깨좀 주물러"

"헤이 헤이"

이상 없이 이벤트가 끝난 ​대​기​실​. ​

메루루의 코스프레는 굉장히 야한데, 이런 의상을 입고도 남성에게 어깨를 주물러달라, 등을 긁어달라 하는 이녀석은 굉장히 둔감한 녀석인거 같다.

물론 나는 로리콘이 아니니까 나의 하이퍼병기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진짜라고. 카나코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흐잇! 거, 거기! 우히히!" 대고있는 카나코를 무시하고 있으니, 브리짓이 입을 열었다.

"저.. 매니져"

"응? 왜그래?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아뇨.. 매니져가 돌아와줘서 기뻐요. 아마 카나카나도 같은 생각일거에요"

"아냐 아냐. 나야말로 신참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

물론 카나코가 "아~니거든요" 같은 말을 했지만 카나코의 등쪽, 날개뼈 부분을 주무르니 ​"​거​깋​ㅎ​ㅎ​앙​됗​ㅎ​ㅎ​"​ 같은 말을 하게해서 저지시켰다. 너의 조종법 이제 알겠다고.

"다른 매니져는 무서워서.. 매니져는 오빠 같아서 좋아요"

봤지 이것들아? 난 초 귀여운 코스프레 아이돌한테 '좋아요' 라는 말을 듣는 ​남​자​라​고​. ​

"나도 너희들이 동생같아"

그러자 브리짓은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나갔다. 나 얼굴에 뭐 묻었나. 흐음.. 새로운 매니져랑 갈등이 있는건가. 주제넘지만 한번 물어봐볼까

"근데 카나코, 새 매니져란 사람 그렇게 무서워?"

"으흥 별로? 아 거기 아파!"

"그래? 그럼 왜 날 찾은건데?"

아마 브리짓이 사람 대하는게 익숙치 않아서 그런거겠지. 그리고 그런 브리짓을 카나코가 걱정해줘서 날 부른게 분명하다.

"벼얼로~ 상관없잖아? 너 로리콘이니까 기쁘면서 우히히"

"자신이 유아체형이라는 자각은 있었냐"

"카나코는 성장중이니까 괜찮거든요~"

중3에 그 사이즈면 무리인것 같다만.

그러자 카나코가 가지고 온 조그마한 가방을 뒤적이면서 말했다.

"그거보다, 이거 너 맞지?"

"응?"

무의식적으로 카나코를 주무르던 (야한 표현이 아니다) 손이 멈췄다. 카나코가 꺼낸것은 한장의 사진. 그것도 나의 코스프레 사진.

객석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기실에 있는 나를 몰래 찍은듯한 사진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됬지만 키리노의 말대로 침착하게. 그래 침착하게 시치미 뚝 떼면 괜찮겠지.

​"​아​.​아​.​아​.​아​.​아​닌​데​?​"​

뭐야 이 바이브레이션!! 키리노도 그랬지만, 돌발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건 우리 가족 내력인가보다.

내 생각으로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진정한 상태에서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목소리는 완전 떨리고 있었다.

아아 끝났어! 뭔가 치바현 오타쿠 네트워크라도 있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눈치채냐고!!

"하긴, 이게 너일리도 없나"

카나코가 부정해줬다. 좋았어! 이 꼬맹이는 기본적으로 멍청하다. 이 타이밍을 놓칠것 같냐!

"으..응! 물론이지, 설마 내가 코스프레 같은걸 하겠냐"

"이사람은 묘하게 잘생겼는데 너는 굉~장히 평범하니까 말이야"

"그래그래 나는 평범하니까, 그렇게 잘생기지 않았다고

"그건 그렇고 키리노랑은 잘 지내? 전에 싸웠다고 하던데"

"아냐아냐 ​화​해​했​어​어​어​어​어​ㅓ​어​어​어​ㅓ​어​더​어​어​어​어​어​어​어​더​어​더​!​?​!​?​?​?​?​!​?​?​!​?​"​

아뿔싸!! 유도신문? 유도신문이야 이거!? 무슨 형사영화물도 아니고! 멍청해 보이는건 연기였나!? 어디서부터 눈치챘지!?

그대로 OTL 자세로 굳어서 고개를 삐걱삐걱 돌리니, 언젠가 봤던 애니메이션의 여왕처럼 의자에서 나를 내려깔아보는 카나코가 능글능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 바보 아니었냐.."

"으응~? 그런 버릇없는 말을 하는건 어느 입일까아~? 키리노랑 아야세는 알고있어? 로리콘 변태 고등학생이 정체를 숨기고 아이돌 매니져! 라고 말이야"

으아아아.. 아야세한테 들켰을때 육체적인 말살을 걱정했다면, 이녀석한테 들켰을때 사회적 말살을 ​걱​정​해​야​되​는​구​나​.​.​

"따..딱히 속이려고 그런건 아니야"

"상관 없어어? 간단한 협상으로 묵비권을 행사하려고 했었는데 그런게 아니면 괜찮겠네. 키리노한테 전화해야지"

"잘못했습니다. 꼭 협상하고 싶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하아.. 그래서 데이트냐"

"데이트? 넌 단순한 지갑이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는거야 로니져"

카나코의 조건은 간단했다. 요번 주말, 심심하니까 놀아달라. 물론 비용은 전부 네가.

뭐 눈앞에서 할복하라, 알몸으로 아키하바라를 뛰어다녀라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그건 매우 간단한 조건이었고, 승락했다.

지갑이라고는 했지만, 남녀 둘이 팔짱끼고 돌아다니는건 데이트라고 이녀석아.

참고로 로니져는 로리콘 매니져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망할 꼬맹이.

"네네. 지갑은 데이트 코스같은거 모르니까 말이야"

기본적으로 데이트 경험.. 같은건 없고, 마나미와 근처 공원이나 식물원에서 시간떼우기밖에 모르기에, 데이트 코스는 카나코가 잡기로 했다.

엄청 난이도 높은 코스를 예상했지만 카나코의 데이트 코스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조금 비싼 가게에서 점심먹고, 시부야 거리에서 아이쇼핑, 그리고 지금은 유명한 파르페 가게에서 파르페를 먹고 있다.

뭔가 비싼 악세사리 같은거라도 뜯어낼줄 알고 긴장했지만 (그래도 군자금은 넉넉히 챙겨왔다) 그런건 없고, 생각보다 수수한 데이트였다.

"자꾸 데이트 데이트 하는데 왜? 입에 발린 말이라도 데이트라고 해줬으면 좋았어? 로니져"

"별로 이래도 저래도 상관 없다만.. 뭐 덕분에 오늘 나도 재밌었으니까."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녀석도 나름 재밌었는지,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우히히 하고 웃었다.

"헤에.. 근데 말이야 로니져. 아까부터 따라오는 저사람, 아는사람?"

"응? 따라오는 사람?"

카나코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조명이 잘 들지 않는 자리에서 뭔가 검은 형체가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듯 해서, 검은 배경에 앉아있으니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이 익숙해지고 보인건

​"​쿠​.​.​쿠​로​네​코​!​?​ 왠일이야!? ​우​.​.​우​연​이​네​!​?​"​

"아라. 안녕 선배. 데이트는 즐기고 있어?"

쿠로네코의 박력은 주위에서 쿠구구구구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것 같았다. 쿠로네코가 아야세에게 느꼇다고 하는 '검은 오라' 라는 녀석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이것에는 깊은 사정이.. 데이트 같은거 아니야!"

재미있는 듯 지켜보던 카나코는, 평소보다 한층 더 소악마적인 웃음을 씨익 짓더니, 갑자기 내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쿄우스케♡ 저여자 누구~? 우리 데이트 방해하는거야~? 혹시 옛여자? 자기 못됬다♡"

"얌마!! 지금 아수라장인거 안보이냐! 왜 날 연옥까지 끌고가려고 해!? 너야말로 진짜 못됬다!"

카나코는 내 팔에 매달린 상태에서, 쿠로네코를 쳐다보며 다시 씨익 웃었다. 키리노의 친구란 녀석들은 다 이모양인가..

쿠로네코는 관자놀이에서 빠각- 하는 효과음을 내더니 (물론 착각이겠지만 들린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호..호오.. 서,선배가 그..그런 취향이었을 줄은 모..몰랐네. 방해해서 나..나빴어"

쿠로네코는 순식간에 키리노조차 따라갈 수 없는 스피드로 뛰어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탁자에 고개를 파묻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카나코는 씨익 웃으며 다시 말했다.

"에 뭐야뭐야? 진짜 아는사람?"

너 임마 다 알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