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를 들킬리가 없어 2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 빠른 오후 5시. 나는 아야세와 항상 만났던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이 벤치 바로 뒤에는 공원의 파출소가 있어서, 나를 근친강간시스콘변태로 생각하는 아야세에게는 이른바 '안전한 장소' 라는거다.
하지만 아야세의 이 장소선택이 이렇게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살해당하지는 않겠지.
평소에도 아야세에게 상담이 있다고 하면 30분은 일찍 나와서 기다렸지만, 집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다가는 나가지도 못할것 같아서 무리해서 일찍 나오게 됬다.
부활실에서 쿠로네코에게 이미 유언은 전해 뒀다.
'내가 죽으면 마저 못다한 시스시스를 클리어 해줘. 그리고 키리노를 잘 부탁한다'
'진지한 얼굴로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아줘. 그 정도로 살해당할리 없잖아?'
'난 근친강간시스콘변태로 취급받고 있다고..'
'사실이잖아'
'...'
'뭣하면 나도 같이 가줄수 있는데.. 그 여자, 분명 어둠의 주민이야. 처음 봤을때 검은 오라를 느꼈어'
'너랑 같이 가면 오히려 역효과일것 같다..'
바보같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꽤 진지하다고..
키리노에게 '건강하게 지내야돼' 라고 농담반으로 메일을 보냈더니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오고있다. 아아 귀찮아.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옆에있는 벤치에 있는 신문이 눈에 띄었다. 내가 목표로 하는건 오늘의 운세.
점같은건 믿지도 않고, 신문을 자주 챙겨보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봐야할것 같다.
"에.. 오늘의 운세. 처녀자리.. 몸을 조심할것. 거짓말을 할때에는 신중히"
신중히는 또 뭐야.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던가.
점이란건 항상 이런식으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맞는 느낌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벌써 시간은 15분전, 항상 등장하는 방향으로. 아야세가 나타났다.
"오빠. 기다리셨어요?"
"오..오우"
언제나 처럼 천사같은 미소를 싱긋 짓는 아야세.
그 미소에 또 넋이 나갔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어서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그래서 상담이란건 뭘까?"
"무슨일 있으세요? 오빠"
아뿔싸!! 아주 자연스럽게 본문으로 유도하려고 했것만
항상 하던 성희롱을 안하고 건너띄운게 실수였나! 하지만 아야세가 나를 부른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건 위험도가 너무 높다!
여기까지는 조..좋아 쿄우스케. 진정해라 나! 이것은 세이브 데이터 없이 최종보스(마왕) 에 도전하는 용사의 기분으로 어떻게든 승률을 높여야 한다!
"아..아무일도 없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바보같이 이 상황에서 먼쪽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던건 최악의 판단이었던것 같다..
아야세는 뭔가 머리위에 물음표라도 띄울것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말 귀엽다..) 나를 보다가, 아무래도 상관없는지 상담을 시작했다.
"카나코에 대한 건데요.."
"결혼하자. 아야세"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오늘은 얌전하다 했더니 역시나군요!! 다가오지 말아요 변태! 죽여버릴거에요!"
아아 카나코에 대한 것이었나!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지! 마치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엄~청 가볍다!
쿄우스케의 머릿속에서 재판이 일어났다. 피의자 코우사카 쿄우스케. 무죄! 땅땅
"훗. 이봐 아야세. 혹시 양치기 소년 효과라고 알아?"
"오늘 오빠는 정말 이상한 소리만 하시네요.. 양치기 소년 효과라면 그거죠?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진짜여도 아무도 믿지 않는거"
"그래 그래. 여기서 양치기 소년이자 양은 아야세, 늑대는 나, 뒤에 파출소 경찰관들이 마을 사람들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에요?"
"너가 매일 그렇게 가짜로 방범부저를 올리다 보면, 내가 나중에 진짜로 너에게 하아하아-를 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거지!"
"전 언제나 진심인데요? 늑대가 딱히 양을 잡아먹지 않아도 양 앞에 있는 늑대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마을사람들은 도와줘요"
"..."
"유언은 끝인가요? 이 변태!"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으아아아아! 농담이야 농담!"
소리나는 방범부저를 주먹에 쥔채로 때리는 아야세. 저번에 수갑때도 그러더니, 정말 이 여자는 귀여운 얼굴 하고선 때리는 방법은 살벌하다..
"아 정말~ 제대로 상담해주세요"
뾰로통하여 얼굴을 붉히는 아야세. 나름 화를 내고 있는 거겠지만, 아야세가 진심으로 화났을때 공허한 표정이 훨씬 무섭다.
오히려 저렇게 화난건 귀엽기만 하다고 우히히
"알았어 알았어 미안. 내가 나빴어. 그래서 그 건방진 꼬맹이가 왜? 무슨일 있어?"
그 건방진 꼬맹이란 쿠루스 카나코. 키리노와 아야세의 친구로 중학생 주제에 유아체형에, 입도 더럽고, 담배도 피는 말괄량이다.
유아체형에 건방진 꼬맹이라 몰랐지만, 아야세가 말해줘서 생각해보니 키리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스타더스트☆위치 메루루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을 깨닫고
아야세가 키리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카나코에게 도움을(이용해먹은거지만) 청해서 메루루 코스프레 대회에 참가하게 됬다.
어쩌다보니 내가 그 매니져 역활을 하게 됬는데, 처음의 그 망할 애새끼 라는 느낌과는 다르게 프로의식도 있고 처음보는 동생도 용기내서 구해주는 사실은 착한 녀석이다.
성깔이랑 입은 정말 더럽지만.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다고 내가 키리노의 오빠라는 것도 못알아채는 바보기도 하다.
"그.. 전 매니져를 돌려달라고 난리라.."
"전 매니져? 나?"
내가 가짜 매니져 역활을 한 후에 카나코는 아야세가 다니는 소속사에 모델로 고용됬다. 오타쿠 모델이지만.
그 후, 정식으로 매니져가 생기기 전까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몇번 더 매니져 일을 하게 됬었다.
"부탁드려요! 카나코도 제 소중한 친구고.. 일단 설득은 해보겠지만 바쁘지 않을때 가끔이라도 카나코를 부탁드려요"
"으음.."
사실 매니져 아르바이트가 어렵지도 않고 돈도 꽤 짭잘해서 좋기야 한데, 아무래도 수험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꼬맹이 상대하는게 정말 힘들단 말이야.. 그래도 마이러블리엔젤 아야세땅의 부탁이고. 여기선 승낙해볼까-
라고 생각한 찰나 아야세가 말했다.
"코스프레를 정~말 좋아하시는 오빠니까 해주실거라 믿어요!"
............................ 지금 얘가 뭐라고..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 아야세의 얼굴을 보니,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지 아닌지 정말 애매하다. 확신이 없다.
오오.. 이것이 주마등.. 특히 방금의 '양치기 소년 효과' 가 역으로 나에게 적용된다.
양치기 소년에게 당하는 늑대가 방범부저를 아무리 울려도 마을사람들은 오지 않아!!
어떻게 하지? 모르는 척을 해야할까? 하지만 아야세는 거짓말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그 선택지는 배드엔딩이 아니라 데드엔딩이라고.
카나코 이야기는 함정이었나!? 지뢰를 밟은건가!? 특대 지뢰 N2지뢰를 밟은건가!?
그리고 떠오른 아까의 운세. '거짓말을 할때는 신중히' 보다 '몸을 조심할것'이 떠올랐다.
"오..오우. 어..언제 가면 될까요"
데드엔딩보다는 배드엔딩이 차라리 낫지.
쿄우스케 머릿속 재판장이 재판을 번복했다. 피의자 코우사카 쿄우스케 집행유예! 땅땅
"하아.."
아야세의 취조(상담)을 듣고 나서 맥이 빠진 나는 이 답답함을 누구에게 상담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항상 믿음직한 사오리에게 부탁했지만. 진성 오타쿠에 사정도 모르는 사오리에게 전화해서
'사오리! 나 오타쿠란걸 들킬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폐라고 그건..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가는 도중에, 쿠로네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오 내 정신적 지주
"여 쿠로네코. 집에 가는거야?"
"......"
쿠로네코는 나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다. 왜 무시하는거야! 나는 지금 HP1 상태로 마왕앞에서 일시정지중인 용사라고!
"쿠로네코? 왜그래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빠 보이는 쿠로네코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말했다.
"나보다 선배쪽이 더 고민하고 있는거 아니야? 사람이 좋아빠진 당신이라 평소처럼 그 거인녀한테 상담하지도 못할텐데"
자주 느끼지만, 쿠로네코는 정말 눈치가 빠르다. 사기안 설정의 중2병이 아니라 진짜로 사기안 일수도 있다고..
꽤나 여러번, 쿠로네코는 나와 키리노 본인도 모르는 점을 지적해줄때가 많다.
"우우.. 쿠로네코. 인생상담이 있어"
"거절할게. 차라리 죽으면 어때?"
"뭐가 그렇게 화가 난거야.."
기본적으로 내가 둔감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적어도 쿠로네코가 마음 상냥한 좋은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쿠로네코가 이런식으로 나에게 화를 낼때는 분명히 내가 무언가 잘못한게 있겠지. 하지만 그걸 모르겠는데 어떻게해..
갈랫길에서 나와 반대방향인 쿠로네코가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코우사카가로 등을 돌리자
"선배"
"오..오우"
"선배는 에로게임의 주인공이 아니야. 그 스윗트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을 분간해. 그렇게 아무한테나 플래그를 꼽다 보면 게임과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무언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소린지 이해도 못하는 나를 두고, 쿠로네코는 다시 뒤돌아 세걸음즘 가더니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선배 동생한테는 오빠가 '키리노를 잘 부탁한다' 라고 전해줬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했었지. 혹시나 했었지만 데드엔드로 끝나지 않았으니, 키리노에게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고 핸드폰을 열자
코우사카 키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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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설마 데드플래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