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4화
"어이, 아침이야. 일어나"
이튿날, 오늘로 세번째인 상투적인 아침인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뭐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나를 깨우고 나서 얼굴이 약간 빨간듯한 키리노는, 감기기운이 있는지 훌쩍이며 기침을 했다.
"엣츙!!"
...................엣츙?
"너.. 감기걸렸냐?"
어제도 전체적으로 멍해 보이던데, 감기기운 때문이었나. 걱정스레 물어보자, 키리노는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가벼운거니까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서는 키리노. 보통같았으면 "시스콘 기분나빠~" 하면서 독설을 한마디정도 했겠지만, 그럴 기운도 없나보다.
키리노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니, 역시나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키리노를 보고 있었다.
"키리노? 오늘은 그냥 쉬는게 어떠니?"
"괜찮아 괜찮아, 기운 넘쳐"
어머니의 물음에, 과도하게 활발하게 대답하는 키리노. 저번에도 그랬지만,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정말 싫어하는 녀석이다.
'뭐, 괜찮겠지'
등교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고, 현관문으로 나가자, 어제처럼 아야세가 반겼다.
"안녕 키리노!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 아야세"
"오우. 좋은아침"
그리고 셋이서 등교. 아까까지 훌쩍대며 멍해보이던 키리노는, 아야세를 만나 기쁜건지, 아니면 아야세가 걱정하는게 싫은건지, 철저하게 아픈걸 숨기는 기색이다.
"C반의 걔가 말이야~"
"거짓말~ 바보 아니야?"
재잘재잘 떠들며 걷는 둘을 보니,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중학생 여자아이.
아야세도 그렇겠지만, 꽤 배울점이 많은 키리노도 이럴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다. 그리고ㅡ
등교할때 항상 보는 갈랫길. 어제, 쿠로네코와 있었던 일 때문에 창피해서 잠도 설쳤다. 그러면서, 쿠로네코와 마주쳤을때 어떤 반응을 해야되는가- 로 고민을 한 결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대하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절대 내가 수줍어서 그런게 아니라, 쿠로네코를 신경써주는 거라고.
뭐 그것도 쿠로네코가 있을때 이야기지만, 어제는 분명 '우연' 이라고 했으니, 오늘도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갈랫길을 도니 (왠지 아야세와 키리노도 이때는 잡담을 멈추고 조용했다) 스트레이트의 짙은 흑발이라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여어 쿠로네코! 좋은아침"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려고 하다보니, 뭔가 불편한 인사였다. 인사를 하니, 키리노와 아야세는 실눈을 하며 쳐다봤다. 왜? 그렇게 어색했어?
그리고 다시한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된다고 자기암시를 걸었다. 평정심 평정심. 그리고 쿠로네코는 뒤돌아서며
"안녕 선배. 우연이네"
두번째 듣는 상투적인 대사. 다만 그 모습에 변화가 있다면ㅡ
"너너너너ㅓㄴ너ㅓ너너너너너너.."
"???"
쿠로네코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까지 버벅이며 반응하는 키리노와, 무슨일인지 모르겠다는 아야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면ㅡ 쿠로네코의 얼굴에, 평소와는 다른 물건이 있었다.
검은색 안경다리에 빨간색 뿔테안경.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원색의 빨간색이라기 보다 약간의 분홍기가 감도는 요염하고 정렬적인 빨강색.
게다가 빨강과 검정이라는 색의 조합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겨서 보통의 검은뿔테나 빨강뿔테보다 더욱 느낌이 좋다.
알의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고, 처음부처 여성용. 그것도 얼굴이 작은 사람을 위한 제품인지, 안경 자체도 작아서 귀여우면서도 그 안경의 매력은 죽지 않는다.
검은색 안경다리 왼쪽에는, 하얀색으로 조그맣게 고양이가 앉아있는 그림이 있는게 챠밍포인트. 고양이라는 쿠로네코의 이미지와 맞으면서도, 검은고양이가 아닌 흰 고양이라는 상극점과,
눈부시게 흰 피부의 쿠로네코이기에 빨간색 뿔테안경은 더욱 강조되고, 반대로도 쿠로네코의 피부는 더욱 하얗게 느껴지는 점, 게다가 청초한 흑발 스트레이트에 블랙+레드 안경이 소름끼치게 어울렸다.
"왜 그러는 걸까 선배?"
쿠로네코는 이쪽으로 다가오며 요염한 웃음을 지었다.
"아, 저, 그,"
입을 반쯤 벌리며 쳐다보던 나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가 처음 꺼낸 말은
"아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내 발등을 밟은 키리노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는줄 알았다고 정말.
거기에 끝나지 않고, 내가 비명을 지르는데도, 키리노는 내 발등을 밟은채로 계속 힘을 주고 있었다.
"뭐야! 완전히 넋이 나가서는! 기분나빠! 안경이 그렇게 좋은거야!?"
훗.. 평소같았으면 오해였겠지만, 이번에는 인정하마. 넋이 나갔다고.
나는 계속되는 아픔을 참으며 반쯤 미소를 띄우며 허리를 꼿꼿히 피고 일어났다.
"알았으니까 발좀 치워주지 않을래.."
발가락에 감각이 없거든. 그리고, 미소녀 + 안경은 누가 뭐래도 플러스 효과지 마이너스 효과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단다.
내 주위에 안경미소녀라고 해도 없고 말이야.. 아. 뱅글뱅글 안경은 논외다. 그건 안경이란 물품이 아니야. 소품이지.
게다가 미소녀 + 평소에 아는 사람이라는게 또 신선해서 좋은거란 말이다!!
같은 말을, 속으로 삭혔다. 세나 녀석이 부녀자 커밍아웃하면서 폭발했던게, 어느정도 공감이 되는구만.
키리노가 발등을 밟지 않았으면...
세나의 대사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요 저는 호모가 좋아요! 사랑한다구요! 완전 썩었다구요!]
등골에 쭈삣 하고 한기가 드는게 느껴졌다.
그 소란을 보며, 쿠로네코는 만족스러운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다보니 구매하게 됬는데.. 어때?"
먼저 키리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눈 나빴던거야?
그러자, 쿠로네코는 한심하다는 음색으로
"양쪽다 2.0 인데, 무슨 문제라도?"
"죽인다 너!!"
"어이 키리노!! 진정해!"
쿠로네코를 덥칠 기세인 키리노를 뒤에서 붙잡아 겨우 제지시켰다. 쿠로네코는 키리노의 박력에 조금 겁을 먹었는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다시 평정을 찾고 말했다.
"요즘 패션안경은 흔하잖아. 뭐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는 걸까?"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우왓 무셔.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하는 키리노는 아야세 못지않은 박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키리노의 바보짓을 보고 있으니, 쿠로네코와 눈이 마주치고, 쿠로네코가 부끄러운듯 쭈뼛대며 물어왔다.
"선배는 어때?"
남자의 평가를 원하는 거구만, 나는 약간의 고민도 없이, 엄지를 피며 즉답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그러자 셋의 반응은,
"우왓; 기분나빠."
"구제할 수 없는 변태네요."
"그 정도까지 되면 무서운걸.."
쿠로네코 너까지 그러기냐!
나를 내버려두고, 세명은 노골적으로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걸어갔다.
그리고 횡단보도에 도착. 키리노와 아야세를 배웅하게됬다.
"아야세,키리노 잘가라"
"그럼 나중에 봐요 오빠"
"오우"
키리노는 대답도 없이, "흥!" 하는 콧소리만 내고 돌아갔다.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공손하게 배웅하고 키리노에게 "키리노 같이가~" 하면서 쫓아가는 아야세를 보며, 다시 등을 돌려, 나를 기다리는듯이 서있는 쿠로네코와 교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문으로 들어가자, 쿠로네코는 안경을 벗어서 가방에 있는 안경 케이스에 넣기 시작했다.
내가 굉장히 아쉬운듯 쳐다보자, 잠시 눈이 마주친 쿠로네코는 내 안쓰러운 얼굴을 봐서 알았는지, 짧게 "창피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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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의 안경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