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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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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1화


"아아.. 평화롭구만."

여름의 평일. 한심하게 키리노 녀석에게 옮은 감기가 완치된지 몇일 후.

뜨거운 햇살이지만, 가끔 부는 시원한 바람에 상쾌함을 느끼며, 나는 혼자서 평소에 자주가는 동네 공원에 앉아서, 전쟁영웅이 비전쟁때 평화를 즐기는, 만화에 나올법한 대사를 읇조리고 있었다.

최근의 한달은 너무나 정신없는 한달이었다. 재미를 못느꼈냐고 물어보면 뭐, 솔직히 말하면 충분히 재미는 있었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했다.

"사람이라는건 적응하는 생물이구나.."

물론 최근 한달의 일이 아니더라고 해도 키리노 녀석의 취미를 알고, 키리노 녀석에게 휘둘리면서 생겼던 이런저런 일도 충분히 정신없었다.

아니 오히려 키리노 녀석의 취미를 알기 전의 나라면은 지금보다 더욱 정신 없었겠지. 하지만 어찌저찌 적응을 해보니, 나쁘지 않은 정신없음 이었다.

마치 뭐랄까, 초등학교를 다닐때 4교시 까지 하는 수업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다가, 중학생이 되어 5교시를 하게 되면 4교시 수업 하는 날은 정말 일찍 끝나는 느낌이 드는, 그런 것이다.

옛날의 내가 바라던 평범한 일상, 평범한 인생은 이미 안드로메다 우주 끝까지 날아간게 분명히 느껴진다. 분명히 비일상. 오타쿠 친구들과 아키하바라에 가서 놀고 그런것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괜찮겠지만, 코스프레 대회에 나가거나, 임시라도 독자모델을 하는게, 평범한 것은 아닐거다.

그 증거라고 할까, 공원 그늘 벤치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힐끗힐끗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벤치에 양손을 받치고 고개를 올려, 지나가던 구름이나 보고 있으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쿄우~"

"여, 마나미"

"오래간만이네~ 요즘 바뻣어?"

"아아. 머리가 터질정도로 정신없었다."

"헤헤~"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는 마나미는,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극상의 미소를 지어줬다.

"..."

"......"

긴 시간의 침묵.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하다던가 하는 그런 의미의 침묵이 아니라, 그냥 그저 시간만을 떼우는 기분좋은 침묵이었다.

공원에서 놀고있는 아이들도 보고, 느릿느릿 지나가는 구름도 보는 단지 그거뿐인 휴식. 얼마만일까, 마나미와 이렇게 무의미하면서도 가치있는 휴식을 보내는건.

"키리노랑은 잘 지내?"

마나미는 긴 침묵을 깨며 물어왔다. 기분좋은 침묵이 끊겼다는 기분나쁨도 없고, 나름대로 속이 편해지는 음색.

"뭐, 예전보다야 훨씬 좋아졌지."

"으응. 잘됬네~"

다른 남매랑 비교하면 아직 멀겠지만, 확실히 옛날이랑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

"......"

다시 기분좋은 긴 침묵. 몇분정도 지났을까, 이번에는 내쪽에서 침묵을 깼다.

"넌 정말 가족보다 더 가족같다니까."

"쿄우도 참~ 그리고 아무리 정신 없다고 해도 공부 게을리 하면 안돼."

"뭐 그건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없는 말을 주고받는 이 시간은 최근 들어서 가장 마음편한 시간이었다.

볼일이 있는 마나미를 먼저 보내고, 10분정도 더 그늘에 앉아 있으니, 주머니속 진동을 깨닫아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놀랍게도 아야세였다.

아야세와의 첫 만남에서 번호를 교환한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나는 여동생을 사랑한다!!' 사건 때문에 수신거부가 되었지만 모종의 거래로 겨우 수신거부는 해제.

그 후, 내가 키리노를 오타쿠로 만들고 시스콘 커밍아웃을 한것에 대해 그것이 거짓말이라는걸 아야세가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기에, 아야세가 나에게 대하는 취급이 좀 좋아질거라 기대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야세에 있어 나의 취급은 근친강간시스콘변태 때와 다름이 없다.

"여 아야세! 드디어 고백할 마음이 생긴거야?"

"......"

뚜. 뚜.

"응?"

잘못걸어서 끊긴건지, 아니면 실수로 끊은건지, 통화가 종료되고 내가 어이없어하며 멍하니 액정화면을 바라보자, 바로 아야세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그렇게 끊어버리면 안돼지 아야세"

​"​.​.​.​.​.​.​.​.​.​"​

뚜. 뚜.

"끊었어!?"

일부러 끊었던 거구만! 그리고 아야세의 세번째 전화.

"여보세요. 코우사카 쿄우스케 입니다만"

"아 오빠. 안녕하세요. 왠지 모르게 이상한 변태가 받길래 번호가 바뀌었나 했어요."

"그, 그러냐.."

봐봐, 예전이랑 취급이 똑같다니까.

"무슨일이야?"

"오빠에게 인생상담이 있습니다.."

상담.. 이라.. 저번에 아야세에게 부탁받을때도 '인생상담' 이라고 칭해졌었다. 그때는 분명 '그건 부탁을 떠넘기는 마법의 주문이 아니라고!' 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니 의문을 품을만하다.

"아야세, 갑자기 물어보는건데, 그 인생상담 이라는거 키리노 녀석에게 들은거냐?"

"예? 아 네.. 키리노가 즐거운 듯이 오빠 이야기를 할때 들었어요."

"하아..."

아야세는 뭔가 약간 불만인듯한 목소리였다. 역시나 키리노 녀석때문이었나 저 인생상담 건은...

"그래서? 평소에 가던 그 공원으로 가면 돼?"

"아니요. 오늘은 제가 바쁘기고 하고 오빠 얼굴을 보기도 싫기에 전화로 합니다."

"산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말을 한다.."

"혹시 키리노, 집안에서 무슨 일 없습니까?"

나의 불만을 무시하면서 말한 아야세의 목소리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응.. 별일 없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최​근​에​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고민이 있는건지, 멍하게 있을 때가 많습니다."

멍한거라.. 하긴 요즘에 그러기는 했는데.

"처음 그런 증상이 보이다가 고열로 학교를 쉬고 나서, 아픈거 때문에 그렇겠지 생각했는데 감기가 나아도 그러니 걱정이 되서..."

"으음..."

하긴 나도 처음엔 감기 때문에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에도 그러는 건가.

"키리노의 저런 모습은, 대부분이 오빠 ​때​문​입​니​다​만​.​.​.​"​

"그럴리가 있냐.."

"하아..."

"뭐, 무언가 알게 되면 너에게 가장 먼저 연락 할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삑.

한숨을 쉬는 아야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정도 밖에 없었다. 키리노 녀석이 고민을 하는 이유라... 내가 본 고민이라고 해도, 아야세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와 휴대폰 소설이 도작당했을때 방안에서 소리죽여 울고있던 기억밖에 없다.

"나 때문.. 이라고 해도 말이지."

최근에 그 녀석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모르는게 더 많아진걸 느낀다. 가족인데도, 아니 가족이기에 더 모르는 것일까..

뭐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샤워하고, 키리노의 방문앞에서 노크를 했다.

똑똑

"...뭐야?"

몇초간 기다리자, 천천히 문이 열리며 키리노가 물어왔다. 최근엔 확실히 예전처럼 문을 확 열어서 발등이 찍힌다던가, 문에 코를 찢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어져서 다행이다.

"뭐 할말이 있어서 말이야"

"..들어와."

키리노는, 이제는 완전히 내 전용이 되어버린 고양이 모양 방석을 건내줬다. 받아서 앉고, 키리노는 침대 위에 앉은 상태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 봤다.

"요즘 무슨 고민있냐? 아야세가 걱정하던데."

"아 응? 별거 아니야."

진짜 별거 아닌건가, 대수롭지 않다는듯 대답하는 키리노는, 오른쪽 검지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요번 주말, 바다로 놀러갈거니까."

"아아. 잘 갔다와라."

왜 니 놀러가는걸 나한테 보고하냐.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즉답했다. 그러자

"무슨 소리야? 너도 가는게 당연하잖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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