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코믹! 1화
"우웅..."
2시간쯤 잤을까, 낮잠이라고 해도 충분히 오래 잤기에 꽤나 상쾌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머릿속도 정말 맑아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먼저 거실로 내려가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신발장을 봤다. 그리고 거실에서 TV를 보시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키리노 녀석 나갔어?"
"응 친구랑 약속 있다던데?"
"아아."
어머니게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고, 나는 아까 왔던 길 그대로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훗..."
그리고 나는 그대로 내 침대에 앉은 후.
"저질러버렸드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침대위에서 머리를 싸매고 뒹굴거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난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그런 뒷감당 못할 거짓말이라니! 아아.. 아까는 정말 어떻게 됬었나. 기껏 남매사이가 어느정도 회복됬다고 생각했드만 내가 다 물거품으로 만들 기세잖아!
발끈해서 말한거 치고는 너무 악질인 농담이다. 게다가 내 입으로 소개까지 시켜준다고 한 마당에, 거짓말인게 들켰을땐...
사악- 하고 온몸에 핏기가 없어지는게 느껴진다. 내가 애인이 생기던 말던 키리노 녀석은 아무 상관 없겠지만, 내가 키리노 녀석에게 한방 먹이려고 했다는걸 눈치채기라도 했을때의 키리노의 보복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진짜 애인이라도 만들어야 되나.."
손톱까지 깨물면서 고민해도 딱히 이렇다한 해결책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내가 당장 애인을 만들 능력이 있었으면 여태까지 애인이 없었을리가 없겠지!
'당신과 내가, 가짜연인이 되는거야.'
"!!!"
궁여지책이라고 해야할까, 사람은 위기에 빠지면 두뇌회전이 빨라진다는건 누가 뭐래도 사실이다. 분명해. 나는 어제 바다에서 쿠로네코가 꺼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분명 그렇게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고 (물론 가짜라도 쿠로네코와 연인이 된다는건 기쁜 일이지만) 쿠로네코의 의도도 파악할 수 없었으며 (사실 파악할 수도 없지만) 그 후 쿠로네코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때문에 흐지부지 끝났었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내 무의식이 이 사건을 인지를 한 상태에서 키리노에게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식한건 지금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쿠로네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일일까 선배.]
이 사람을 약간 무시하는 듯한 쿠로네코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꼴사납게도 내가 쿠로네코에게 처음으로 꺼낸 말은
"사, 살려줘 쿠로네코.."
살려줘였다.
[발끈해서 홧김에라.. 선배답다면 선배답네.]
쿠로네코 덕분에 어느정도 진정된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어제 이야기 했던 가짜연인 건,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그때는 흐지부지하게 끝나긴 했었지만, 쿠로네코가 먼저 꺼냈던 이야기기도 하고 이거라면 괜찮겠지. 그리고 쿠로네코는 전화기 너머로, 몇초간 침묵하더니 말했다.
[싫어.]
"어째서!?!?"
진짜 의미를 모르겠네! 너가 먼저 꺼냈던 이야기잖아! 금융사기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된거야! 쿠로네코는 전화너머로 나를 놀리는게 즐거운건지, '후후후...' 하면서 웃고있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도피처쯤으로 생각하다니, 생각이 너무 무른거 아니야?]
"너..!"
악마냐! 너는 악마냐! 키리노의 성격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다니 대단하네 진짜!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쿠로네코는 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몇가지 조건을 넣는다면, 어울려 줄 수도 있어.]
"...조건?"
내가 의아해 하며 물어보자, 쿠로네코는 담담히 계속 말을 시작했다.
[그래 조건. 미리 들어본다던가 하는것도 안돼. 선배는 어둠의 계약의 준비, 되었어?]
"하아... 그래. 그 어둠의 계약이라는거, 할테니까"
그 외에 선택지도 없고 말이야. 쿠로네코가 나에게 거는 조건이라고 해도, 키리노나 카나코와 비교하면 꽤나 무른 조건을 달게 분명하다. 그런 녀석이기도 하고.
내가 한숨을 쉬며 대답하자, 쿠로네코는 전화너머로 '훗,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첫번째, 가짜연인 행세를 하는 동안 당신의 여동생 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도 속일거야. 당신에 대해서라면 눈치가 빠른 여자니까, 할거면 확실하게 해보려고 해. 중간에 다 들켜서 나까지 창피해지긴 싫으니까. 그래.. 한명정도 예외가 있다면, 사오리에게는 말해도 괜찮아. 두번째. 가짜연인 행세를 하는 동안은 나를 인간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해. 세번째. 아무리 상황이 악화된다고 해도, 내가 괜찮다고 하기 전에 사실을 고백한다던가 하는 행위는 금지야. 어때? 이 정도로 알아 들었을까?]
"으, 응. 알겠다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쿠로네코가 막힘없이 줄줄 이야기 했기에 정확히 전부 듣지는 못했다. 어찌됬던 내가 쿠로네코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살아날 구멍이 생긴다는건 확실하기에 넘어갔다. 에.. 뭔가 중간에 전혀 상관없던게 하나 껴있었던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계약성립.. 이네.]
"그래.. 그래서 제대로 도와주는거지?"
[물론. 어둠의 계약은 절대적이야. 그리고 겁쟁이 오빠가 조건을 정확히 따라주지 않는다면, 온몸에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괴로워하면서 죽을테니까.]
"너, 산뜻한 목소리로 엄청난걸 말한다.."
[그렇게 되기 싫으면, 오빠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후.. 적어도, 여자친구가 있다. 라는 거짓말이. 비록 가짜라도 거짓말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말야 쿠로네코. 가짜 연인이라고 해도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뭘 어떻게 할거냐?"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마. 나에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야. 적어도, 여름코믹이 끝난 이후가 아니면...]
"아.."
그렇군. 여름코믹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비교적 나는 할일이 적지만, 소설이나 만화, 일러스트를 그리는 나머지 애들은 시간이 빡빡하겠지.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감수를 해야한다.
"뭐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키리노가 내 여자친구에 그렇게 집착할 일도 없겠지만."
[그때 까지는, 평소처럼 지내는 걸로 좋아.]
그리고 쿠로네코는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 여자도, 나도' 라고 말했다. 무슨소리래?
그렇게 나의 불안과 가짜연인 사건은, 쿠로네코의 통화와 함께 일단락 되는것 같아 보였다.
그 후 통금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돌아온 키리노는 평소와 다름 없어 보였고, 괜히 긴장한 나만 손해본거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니 쿠로네코와 연락한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다음날도 정말로 평소와 다름 없었다. 이제는 '평소' 라고 말할 정도로 익숙해진, 키리노가 아침에 깨워주고 등교하는 것도 평소대로였고 말이야.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여름방학이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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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짧아져서 오늘중에 또 쓸거 같기도 하고.. 아닐거 같기도 하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