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1화
완전히 땅거미가 진 금요일의 늦은 저녁 시간.
자신의 일터에서 퇴근을 한 직장인들이나 이런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들도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이었다.
나름 일주일의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날이라 그런지 그 중에는 '오늘은 회식이다!' 라면서 술집으로 들어가는 직장인들도 많을테고, 학교생활에 지쳐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고있을 많겠지.
어느정도 그런 가벼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평범한날.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집에서 저녁을 먹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주가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기 쿄우스케… 역시 이런데는 좀…"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고층 빌딩내에 있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나는 오늘 쿠로네코에게 평소처럼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말을 꺼낸 후, 미리 예약해둔 시각에 맞춰 쿠로네코를 가게에 데려왔다.
"어제 월급도 받았으니 신경쓰지 마"
"그래도 역시 비싸잖아? 그냥 평소에 가던 가게에 가도 되고, 아니면 우리집에서 먹어도 될텐데…"
"어이어이, 나도 가끔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이런 사소한 것까지 지나치게 신경을 써주는 쿠로네코의 마음은 고맙지만, 정말로 나도 가끔은 쿠로네코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뭐… 확실히 생각한것 이상으로 비싼 가게기도 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아니면 뭐야? 역시 이런 가게는 처음이라 긴장된다던가?"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잠깐, 당신… 이런 분위기 있는 가게에 자주 오기라도 한거야?"
내가 개구장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살짝 놀리자, 쿠로네코는 살짝 뺨을 붉히며 말했다.
"후후. 어때, 그래보여?"
"……어떤 여자랑?"
"여자라니…"
저기 쿠로네코씨 조금 표정 무서운뎁쇼.
"뭐, 사실 나도 처음이야"
"흐응… 나는 또 당신의 여동생이랑 자주 온줄 알았어"
"어이 잠깐, 내가 이런 가게에 키리노랑 오는걸로 의심했다면 왜 아까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본건데!?"
"여동생은 브라콘. 오빠는 시스콘. 당신들 남매는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 없으니까"
"그렇슴까…"
음. 듣고보니, 다음 월급때는 키리노 녀석하고 와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여차하면 쿠로네코나 사오리도 같이 불러서 와도 괜찮겠지.
"키리노, 말이지…"
갑자기 키리노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멍하니 있던 나를 눈치챈 쿠로네코는
"아라. 시스콘의 오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역시 다시 유학간 여동생이 그리워서?"
아까와는 반대로, 개구장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실실 웃으며 나를 놀려왔다.
"확실히, 그립긴 하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키리노는 다시 머나먼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도 이미 '하고 싶은 걸 할거야' 라고 하는 키리노의 고집은 잘 알고 있으셨기에 어느정도 포기한듯 했지만, 적어도 처음엔 반대를 하셨다.
하지만 이번의 유학은 육상이 아니라 모델쪽의 유학. 게다가 그 후지마 사장이 주도하는 일이라 혹시나의 일도 없을테고, 무엇보다 아야세와 함께 유학을 간다는 점 때문에 부모님은 쉽게 승낙하셨다.
나? 나야 물론 반대했지. 저번에도 그런일이 있었는데, 이번이라고 다르겠어?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동생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슬퍼하겠지. 아카기 녀석이었으면 울고불고 난리 났을거야.
응? 처음에는 그렇게 여동생이 싫다고 했으면서 왜 그러냐고? 야야. 사람은 성장해 가는거야. 그런셈 쳐줘.
확실히, 키리노가 중학생때 갔었던 유학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때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그 머나먼 외국땅에서 엄청 외로워 했었으니까. 게다가 일부러 연락조차 안했었고.
하지만 그래도 키리노가 다시 유학을 가는것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결국 키리노의 고집에는 이기지 못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키리노에게 몇가지 조건을 붙였다.
[후… 좋아. 그럼 나도 몇가지 조건이 있어]
[하? 조건?]
[조용히 하고 일단 들어.
첫째.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있거나 상담할 것이 있을때 나에게 연락할것.
둘째. 괜히 또 자신에게 씌우는 족쇄니 뭐니 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지 말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
[적어도 한달에 한번. 너가 잘 있나 내가 직접 날라가서 보고 올거다. 또 아버지가 집에서 혼자 안절부절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나 역시 걱정되니까. 대충 금요일 저녁에 바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일요일 저녁에 올 작정이다. 그러고보니 시차도 있네. 흠…]
[어떻게 되먹은 되먹은 시스콘이야 넌?]
[뭐, 싫다고 하면 나는 결사반대니까]
그러자 키리노는 양손을 꼼지락 거리며 안절부절 하더니,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앞으로도 잘부탁해! 바보 오래비!]
아무리 키리노가 성인이 됬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빠고 키리노는 여동생이다. 무엇을 하든 걱정되고, 지켜주고 싶은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딱히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남매나 이렇겠지.
그러는 동안 어느샌가 주문한 음식이 나와 직원이 테이블 위에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라면, 세계 어딜 간다고 해도 악착스럽게 잘 지내고 있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너도 사실은 보고 싶잖아?"
"누가 그런 여자를…"
쿠로네코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여담으로, 키리노에게 '너도 쿠로네코 보고 싶잖아?' 라고 말했을때, 키리노의 대답은 '누가 그런 녀석을…' 이었다.
정말, 나이를 먹어도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녀석들이구만. 하지만, 정말로 서로에 대해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세팅을 다 끝낸 직원은 말을 끊기가 미안한듯, 살짝 고개를 숙인후 제자리로 돌아갔다.
평소처럼, 우리는 말없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정도 지나고, 나는 슬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키리노. 이번달에는 일본으로 돌아온데"
"으,응. 그,그래? 또 잔뜩 지고 도망쳐 오는건 아닌가봐?"
"뭐, 그런건 아닌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명백하게 입가를 느슨하게 풀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쿠로네코는 엄청나게 귀여웠다.
정말, 그냥 솔직하게 키리노가 돌아온다는 것에 대해 기뻐해 하면 좋을텐데.
"사오리도, 집안 이야기는 대충 다 정리된 모양이야. 카오리가 가업을 받는다고 한다더라"
"…향후 오타쿠 시장이 걱정되는걸"
"그러게 말이다"
"…"
"……"
"마카베 녀석, 세나랑 사귄다더라"
"그 이야기는 저번에 내가 했어"
"…"
"……"
약간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달그락 달그락 식기 소리만 계속해서 났다.
그렇게 2분쯤 지났을까, 5분쯤 지났을까, 나는 창밖에 있는 야경을 보면서 말했다.
"야경, 이쁘네"
"응. 그렇네"
"저기, 루리"
"왜 그럴까?"
"결혼, 하지 않을래?"
그러자 쿠로네코는 '정말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정도의 표정과 반응속도로 즉답했다.
"응. 좋아"
………
……………
…………………
"에에!!?"
"뭐, 뭐야?"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 탓에 쿠로네코는 깜짝 놀랐지만, 내가 더 놀랐다고!
내가 몇날 몇일을 생각하다가 겨우 결심을 하고 한 이야기인데! 조금은 생각해달라고!
아니 뭐라고 할까! 받아준건 정말 너무나 기쁜데, 이러면 뭔가 찝찝하잖아!
깜짝 놀란 자세 그대로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노려보는 쿠로네코를 향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저, 루리씨? 뭔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그렇게 즉답해도 괜찮은거야?"
"…그럼 당신은 내가 거절해도 괜찮아?"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역시 방금건 못들은걸로 할게"
"아니, 그, 뭐라고 할까…"
그, 그래서 내 프로포즈에 대해 승낙이라는 거야, 아니면 거절이라는 거야? 뭔가 엄청 애매한데…
창백한 얼굴로 새파랗게 질려서 당황해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쿠로네코는 쿠훗. 하고 살짝 웃더니 얼굴을 붉혔다.
"항상 당신만 고백하는건 치사해"
그렇게 말한 쿠로네코는 자신의 가슴 앞에 양손을 모아 아직도 하고있는 역십자 모양의 목걸이와 검은색 큐빅이 박혀있는 반지를 소중한 물건인양 조심스럽게 감싸안으며
"저와 결혼해주세요"
나에게 평생동안 지속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저주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