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2화
쿠로네코에게 청혼 아닌 청혼을 받은 이후, 우리는 양가의 허락을 받기 위해 서로의 집에 찾아갔었다.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거절한다!"
밑도 끝도 없이 꺼낸 나의 말에, 쿠로네코의 아버지는 즉답하시더니
"코우사카군이 좋은 사람이란건 알겠네. 그래. 루리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것도 알고 있고, 루리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고, 꽤 길게 교제를 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말한건 아니겠지. 하지만"
눈을 살짝 감은채, 엄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 쿠로네코의 아버지는 갑자기 울먹거리시더니
"우리 루리가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아버지도 참…"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는 쿠로네코.
"하, 하여튼 나는 반대야! 평생동안 키워온 사랑스러운 딸이 집을 나가버린다니, 어느 부모가 찬성할것 같은가!?"
저기 아버님. 그 마음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요. 아니, 오히려 쿠로네코 같은 딸이라면 무지하게 공감되지만, 어쩔 수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며, 쿠로네코의 아버지 옆에서 조용히 웃고 계신 쿠로네코의 어머니가 입을 열으셨다.
"그럼 당신, 우리 루리가 평생동안 결혼 안하고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울먹울먹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인자하게 웃으시더니
"아야야야야야야!"
그 손등을 꼬집으셨다.
"정말, 예전에도 딸바보인 아빠이긴 했지만 요즘들어서 좀 너무한거 아니에요 당신?"
세월이 흘러도, 왠지 조금도 늙는것 같지 않은 쿠로네코의 어머니(4x세)셨다.
"코우사카군"
"아, 네"
"남편은 신경쓰지 말아요. 코우사카군이라면 우리 내외는 조금도 불만이 없어요"
쿠로네코의 어머니는 싱긋. 하며 포근해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루리, 행복하게 해줄 수 있죠?"
"물론입니다 어머님!"
그런 모습을 보며, 이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쿠로네코의 아버지는 쿠로네코의 손을 잡으시며 말했다.
"결혼하더라도, 자주 와야한다 루리야!"
"걱정말아요 아버지. 자주 올게요"
그런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으며, 쿠로네코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싱긋 웃었다.
**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집.
"어머니, 아버지. 나. 결혼하려고 해"
"어머, 어머어머어머어머!"
어머니는 무언가 동네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아줌마들 처럼,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시더니
"루리양"
"네, 네 어머님…"
정말로 긴장한듯.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린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쿠로네코가 대답했다.
"벌써부터 어머님이라니. 얼마나 예의 바른 아이인지!"
나이에 안맞게 꺄꺄ㅡ 하면서 몸을 비틀던 어머니는
"정말로 부족한 아들내미지만, 잘 부탁해요. 우리 아들이랑은 다르게 루리양은 사랑스러우니까"
"아, 아니에요… 그, 쿄우스케도… 좋은 남자니까…"
어머니는 수줍게 말하는 쿠로네코를 보며, 나의 등을 팡! 하고 때렸다.
"!?"
"정말 쿄우스케! 정말 너는 운 하나는 좋구나. 여자복이 터졌네 터졌어"
"저기, 조금이라도 좋으니 아들좀 띄어주시면 안될까요"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들을 깎아내리시는 어머니라니, 묘한 기분이군.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곰곰히 생각하시는듯 하더니
"쿄우스케"
낮고 진지한 음색으로 나를 부르셨다.
"고코우양의 부모님들에게 허락은 받았느냐"
"아, 네…"
"그럼…"
아버지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쿠로네코가 앉아있는 소파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셨다. 그리고
"부족함 많고 멍청한 아들이지만 부디 꼭, 잘 부탁하오. 고코우양"
그렇게 말씀하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아, 아버님!"
자신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떻게 해야할지,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하던 쿠로네코는 자신도 고개를 푹 숙이며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완전히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
여차저차 해서 결혼식 당일.
사실은 조금 더 일찍 식을 올릴 수도 있었지만, 키리노가 일본에 돌아오는 날짜에 맞추다 보니 늦어졌다.
결혼식장은 키리노의 지인인 후시마 미사키씨에게 도움을 받아, 아키하바라 근처에 있는 큰 호텔에 딸려있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됬다.
경치좋은 언덕 위에 새파랗게 뻗은 숲이 있었고, 그 숲 안에 길다란 언덕길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언덕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교회의 예배당이 있다.
언뜻봐서는 호텔 부지 내에 있는것이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어딘가 별세계에 있는듯이 신비한 교회였다.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에, 돌로된 조그마한 길이 나있고 그 끝에는 하얀색의 예배당의 입구. 그리고 교회 중앙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
정말, 상상속이나 영화에서 볼법한 호화스러운 건물을 거의 거저나 다름없이 빌린건 전부 후지마 미사키씨의 위력이다.
대부분의 지인도 결혼식에 참가했다.
카나코,브리짓,아야세,마나미,히나타,타마키,세나,마카베,미우라 부장,뚱뚱보들,아카기, 그리고 대학교 친구들이나, 쿠로네코의 고등학교 친구들도 참가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온 키리노도.
"……"
키리노가 일본으로 돌아오고, 내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리자 키리노는
'아, 그래?'
라고 말하더니 말았다.
아니, 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일주일 정도 거의 말을 안하고 있다.
마치, 키리노의 취미를 알기 전의 옛날처럼.
그런 일이 있었어도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됬다.
예배당 앞에 있는 야외에서 모여있는 나의 지인들.
"축하해 쿄우~ 고코우양 힘들게 하면 안돼?"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하게 축복해주는 마나미와
"결국 그 도둑고… 고코우씨랑 결혼하시는 건가요. 최악이네요 오빠"
독설을 뱉으며 내 정강이를 있는 힘껏 차는 아야세.
"아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아!"
이제 TV를 키면 자주 보이는 신인 아이돌인 주제에 언론에 나가면 꽤 위험한 발언을 하는 카나코.
"매, 매니져씨! 행복해야 해요!"
정식으로 아이돌 제의를 받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 아직도 아키하바라의 여신으로 남아있는 브리짓.
"코우사카. 그래서 너 결국은 첫사랑에 첫여자친구랑 결혼하는 거냐? 진짜 대단하네…"
아직도 자신의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아카기 녀석.
"흐,흑… 코우사카 선배라면 당연히 우리 오빠랑 결혼할줄 알았는데! 하지만 상대가 고코우면 어쩔 수 없나요… 솔직하게 기뻐해 드릴게요"
그 아카기의 옆에서, 이제는 선배가 아닌데도 선배라고 부르는 세나.
그것보다, 내가 아카기 녀석이랑 왜 결혼을 하냐 이 부녀자야. 게다가 자기는 부녀자인 주제에 남자랑 사귀고 있으면서.
"우와… 몇년전부터 친했던 지인들이 결혼을 한다는건 왠지 모르게 신비한 느낌이 드네요"
현재 세나와 알콩달콩하게 사귀고 있는 마카베.
아, 여담으로. 이녀석 세나한테 잡혀살고 있다고 한다.
"핫핫핫! 마음 같아서는 내가 주례를 봐주고 싶구만! 미연시 느낌으로!"
이제 미연시를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취미를 일로 승화시킨 미우라 부장.
"저거봐 타마키! 파이프 오르간이야!"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이라니, 정말로 로맨틱해요 히나타 언니"
"그러게~ 평범한 예식장보다 엄청 로맨틱하지! 쿄우스케 오빠. 루리언니 말고 차라리 나랑 결혼하는게 어때!? 완전 영계잖아!?"
"히나타 언니…"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 허리까지 길게 길은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고 있는 히나타와, 그런 히나타보다 정신적으로는 훨씬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아직은 초등학생인 타마키.
(물론, 히나타는 나중에 쿠로네코에게 불려가 심각하게 설교를 받았다)
"후후후. 정말로 축하해요 쿄우스케 오라버니. 제가 만든 서클 내에서 결혼하는 사람이 나오다니, 언니때랑 조금은 비슷한것 같네요. 아.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서클이 해체되거나 하진 않는다구요?"
자신의 언니에게 가업을 떠넘기고 새로운 오타쿠 문화를 생산하는 입장인 사오리.
"다들 정말로, 와줘서 고마워"
몇년전. 우연히 키리노의 취미를 알게되고 나서 벌어진 일들.
남매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냉전 상태였던 남매사이가 서로의 오해가 풀려서 다시 친해지고, 키리노의 오타쿠 친구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쿠로네코와 사귀게 되고, 결국 결혼식까지 올리게 됬다.
결국, 전부 키리노의 덕분이겠지.
하지만 그 키리노는 결혼식이 시작될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가한건 확실한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신부, 입장"
사회자의 멘트에, 문이 열리고 하얀 웨딩 드레스 차림의 쿠로네코가 여동생들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어깨와 목이 다 드러나는, 노출이 조금 많은편인 신세대의 웨딩 드레스.
양손에 있는 하얀 장갑은 중지와 약지 사이를 한번 돌아 장갑의 역할을 겨우 하고 있었다.
그 덕에 쿠로네코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머리에 쓰고있는 투명한 면사포의 안쪽 머리에 분홍색 장미꽃이 달려있었다.
예전에 항상 하던 퀸 오브 나이트메어의 코스프레와 조금은 비슷한것에, 조금은 옛날 생각이 났다.
똑같은 분홍색 장미꽃은 허리를 한바퀴 도는 형태로 더 있었다. 그리고, 길게 프릴이 잡혀있는 드레스의 아래에도.
정말로, 그 때 어머니가 말한데로 나는 행운아다.
쿠로네코와 사귄지도 꽤 되고, 쿠로네코의 여러 모습을 보았지만 이 정도로 숨이 막힐듯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인것 같았다.
모든 여자들이 결혼식때 특히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그런 타인의 결혼식에서 받는 느낌과는 절대 달랐다. 나에게는 마치, 여신이나 다름없다고!
내가 얼굴을 붉히고, 숨을 쉬는것도 잊을 정도로 넋이 나가있자 쿠로네코는 여동생들을 제자리로 보내고 얼굴을 붉힌채 소리없이 다가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에헴. 신랑 신부는…"
결혼식이 시작되고, 경험많은 신부님께서 주례를 봐주셨다.
신부님의 따분한 연설은 꽤 길었지만, 옆에 있는 쿠로네코의 온기를 느끼며 어떻게든 참았다.
"두분. 앞으로도 평생, 행복하게 사십시오"
신부님의 연설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중에는 휘파람을 불며 "행복해야 한다 임마!" 라고 소리지르는 아카기 녀석도 있고, 왠지 모르게 울먹이는 아야세나 카나코도 있었다.
결혼식의 묘미중 하나인 부케 던지기.
신부가 던지는 부케를 받은 사람은, 금방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응? 부케는 어디있어?"
"……"
신부가 들고 입장해야 할 부케를, 쿠로네코는 들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쿠로네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 순간
또각또각. 하며 잔디 사이에 있는 돌길을 따라, 마치 주인공이 입장하듯ㅡ 키리노가 부케를 들고 걸어왔다.
"키리노…"
"………"
어느새 우리 앞에 도착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키리노는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떠는듯 하더니
"…단 말이야"
"응?"
"싫단 말이야! 오래비가, 오래비가 결혼하는거 사실 싫단 말이야!"
"……"
몇일동안 대화다운 대화도 하지 않은 키리노가, 갑자기 나타나 지금은 울고 있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키리노의 행동에, 결혼식에 참가한 지인들은 '무슨 일이야?' 라며 조금 술렁이고 있었다.
"그런게 어딨어! 여동생보다 일찍 애인을 만들더니, 여동생보다 일찍 결혼하는 오빠가 대체 이 세상에 어디있어! 게다가 상대는 내 친구잖아! 나 때문에 만나게 된 친구잖아! 소중하다고… 내가 제일 소중하다고 했으면서…!"
"……"
내가 무슨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자, 옆에서 쿠로네코가 나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쿠로네코는 결의가 담긴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행동에 어느정도 용기를 얻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키리노의 머리위에 손을 올렸다.
"우에…?"
"정말,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거냐 너는?"
"……"
"말했잖냐. 내가 애인이 생기든, 결혼을 하든, 아이가 생기든, 나에게 있어 첫번째는 너야. 둘도 없는, 나의 소중한 여동생이야. 어디로 도망가는게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에 있어도, 나는 언제나 너를 걱정하는 오빠다"
"쿄우…스케…"
키리노는 씨익 웃으며 말하는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흐아아아앙! 흐앙! 흐,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나를 꼬옥 안아, 얼굴을 내 가슴에 퍼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런 키리노를 나도 꼬옥 안아주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살짝 돌리자 아야세나 아버지가 귀신의 형상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조금 큰일난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이 다 보는데도 한참을 울던 키리노는, 코를 훌쩍이며 나에게 떨어져 두걸음 정도 뒤로 가더니 나에게 말했다.
"쿄우스케. 반드시 행복해야돼"
"오우. 걱정마라"
그리고 코를 훌쩍이며 쿠로네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우리 오빠. 반드시 행복하게 해야돼"
"아라. 당신은 왜 입 아프게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걸까?"
"……우습게 보나본데. 쿄우스케를 슬프게 한다면 반드시 이혼시킬테니까"
"이 얼마나 무서운 브라콘…"
쿠로네코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한발자국 물러나는듯 하더니
"훗. 걱정마. 이 남자는 나의 반신.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거야"
"……"
결의가 담긴듯한 쿠로네코의 표정을 보고, 키리노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부터 들고있던 부케를, 자신의 양손으로 건내면서 말했다.
"고마워 쿄우스케. 나의 오빠여서, 고마워"
"나야말로. 너가 내 여동생이어서, 고맙다 키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