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10권.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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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기 녀석에게 자취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권유를 듣게 됬다고 곧바로 자취를 할 정도로, 나는 행동력이 좋은 녀석은 아니다. 내가 키리노 같은 성격이었으면 100% 지금 당장 뛰쳐나갔겠지만.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자취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환상을 가지고 있겠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야할까, 부모님에게 억압받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뭐 그런것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딱 직접 자신이 하려고 하면 불안감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생 까지 혼자서 살아본 녀석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섣불리 부모님에게 그 말을 꺼내기는 힘들었다. 뭐, 겁쟁이라도 욕해도 어쩔 수 없지. 처음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공포를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써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일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쿄우스케, 있니?"
"네 있어요"
하루에 몇번이나, 어머니가 내 방에 무언가를 확인하러 올라오신다.
학교에 등교하기 전 아침에도 물론이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혹은 사람이 있는지, 예고조차 하지 않고 문을 열고 확 들어오신다.
'명백하게 의심 받고 있잖아!!'
어머니에게 의심받는 것도 의심받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컴퓨터를 이용해 여러가지의 자가발전을 해야하는 나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니까, 건장한 남자라면 어쩔 수 없다고 그런건.
(아직도 클리어 못한거야? 어제까지 다 끝내놓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동시에 키리노에게 할당받은 에로게임도 하지 못했기에 키리노에게도 혼나고 있는 마당.
아니면 지금처럼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들어오시는 어머니 때문에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고 있다. 성적 떨어지면 책임지실건가…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쥐어잡고,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자취하고 싶다…"
그러면 할당량을 받은 에로게임도 무사히 끝낼 수 있을텐데…… 아, 이건 아니고. 공부도 잘 될텐데…
그렇게 어머니가 나가신후 5분쯤 지나자, 다시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진짜 저놈의 잠금장치… 달아야 하려나.
"네네 있어요"
"뭐가 있어?"
"엉?"
당연히 또 어머니인줄 알았던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키리노 녀석이 바보를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집안이라고 해도 키리노는 짧은 반바지와 짧은 티셔츠라는 살의 면적이 많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후, 나는 살짝 한숨을 쉰후, 언짢은 눈빛으로 키리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아무리 집이라도 옷좀 제대로 입어라"
"하? 뭐야 너, 여동생한테 욕정이라도 하는 거야?"
그러자 키리노는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짜증이 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로 일일히 짜증내는건 어쩔 수 없다만, 요번에는 일이 나름 심각하니 나도 장난스럽게 대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거잖냐. 그러니까 옷이라도 잘 입으라는 거지"
"아… 뭐야, 엊그제 그거, 아직도 신경쓰고 있는 거야? 소심하네"
"아까도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신거 못들었냐? 하루에 몇번씩이나 감시하러 오신다고"
"아… 그게 그런거 였구나"
"그런거라니?"
나는 키리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어봤다. 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그런건지, 아니면 단순한 변덕인지 키리노는 의외로 성실히 대답해 줬다.
"그 날 이후로 나한테도 꽤나 전화가 자주 오더라구. 밥은 먹었니? 지금 어디 있니? 옆에 친구 있으면 목소리좀 들려줄래? 같은거"
우와… 새삼스럽지만 이 직접적인 차별에 눈물이 날것 같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 같은게 있기는 하겠지만…
"후… 그래서? 너는 또 무슨 용건인데?"
"내가 이 냄새나는 방까지 올 정도면 하나밖에 없잖아"
라며, 키리노는 헤헷 웃으며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 해맑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무얼 꺼내는지 보지도 않고 눈치챘지만.
"짠! 요번 신작이야! 이것도 적어도 다음주 까지 클리어 하도록 해!"
"너 임마…"
"왜? 뭐가 불만인데?"
키리노는 찌릿, 하고 나를 노려봤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키리노는 사실 멍청한거 아닐까…
"어째서 내가 에로게임을 못하고 있는지는 내가 설명하지 않았냐?"
"지금은 시간 있잖아"
"공부하고 있잖냐!!"
"뭐야, 그런건 머리가 나쁜 녀석들이나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라고"
"우왓!? 위험발언!?"
그리고 키리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게임 케이스를 휙, 하고 나한테 던졌다. 그게 또 머리에 맞을뻔 했지만, 나는 마치 칼날잡기를 하는 것 처럼 양손으로 정확히 받아냈다. 나이스 캐치!
"다음주 까지야. 이번에도 못하면 알아서 해"
키리노는 그렇게 말하고 무엇이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 까지 부르며 내 방에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 키리노를 불러세웠다.
"키리노"
"응?"
"너, 내가 자취한다고 하면 말릴거냐?"
좀 바보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이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나도 잘은 몰랐지만 그 말을 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키리노가 미국에 가서 내가 외로워 했던 것처럼, 이 녀석은 내가 없다고 외로워 할까. 외로워 해주지 않을까.
……잠깐, 뭔가 에로게임 대사같은데. 이건 절대로 그런게 아니라, 나만 걱정해주면 손해보는 기분이 들잖아.
그러자 키리노는 순간 눈을 번쩍 하고 크게 뜨더니,
"뭐!? 자취!? 갑자기 자취같은걸 왜!!……………………… 뭐, 상관 없으려나"
"어이이이이이이!!?"
"뭐야, '오빠, 가지 말아요!' 하면서 붙잡아주기라도 바랬던 거야? 어우 밥맛"
손해봤어! 걱정해줘서 손해봤어! 또 유학가기만 해봐라!!
"자취하면 에로게임도 다 끝낼 수 있겠네? 그럼 자취하는게 어때? 내가 부모님한테 말해줄까?"
"됐거든요…"
그렇게 깜짝 놀란듯이 대한 주제에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바뀌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그러자 키리노는 씨익 웃더니 그대로 내 방에서 나갔다.
"………"
나는 키리노 녀석이 나간 내 방문을 한참을 노려봤다.
키리노 녀석에 대한 반발심리라고 할까, 그런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뭐라고 해야할까, 엄~청나게 손해를 본 기분이라고 해야되나…
음.자취하자. 이걸로 확정.
녀석이 울상이 되는 모습을 한번 꼭 보고 싶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자, 더 중요한 무언가가 생각났다.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그대로 거실로 내려가 아버지에게 향했다. 아버지가 엄청 엄하긴 하셔도, 적어도 나의 이야기는 존중해주시니까.
"아버지"
"뭐냐, 쿄우스케"
"저기, 부탁할게 있는데요"
"앉아라"
TV로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TV의 소리를 줄이셨다.
내가 아버지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자,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네가 부탁이 있다니 의외로구나"
"하하… 네, 뭐…"
"이야기 해 봐라"
왠지 평소보다도 훨씬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받아주시는 아버지 때문에, 이걸 이야기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쓸데없는걸 고민하던 나는 결국, 옆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들릴새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한번 자취라는걸 해보고 싶어서요…"
"자취? 쿄우스케 너 설마"
아버지는 거기서 표정을 찡그리셨다. 순간 '고3이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라면서 혼날거라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셨다.
"…요시노가 했던 말을 신경쓰고 있는 거냐?"
"아"
나도 모르게, 그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니, 저, 그게 뭐라고 할까…"
잘못한건 하나도 없는데도 왠지 나쁜 짓을 하려다 걸린것처럼 당황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가 그런 속 사정을 파고들어 생각하셨을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시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셨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든 자취를 해보고 싶다면 도와주도록 하마. 남자로써, 그런 경험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테니"
"가, 감사합니다…"
내가 쭈삣쭈삣 대답하자, 순간 아버지의 눈동자가 휙 하고 빛나는듯 하더니,
"멍청한 자식!"
"윽!?"
팡! 하고, 그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치셨다. 놀란것도 놀란것이지만, 엄청 아프다고 이거!!
양손으로 등을 만지려고 바둥바둥 거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넌 내 아들이다. 허리 곧게 펴고, 당당해지도록 해라!"
"~~~!"
"대답은!?"
"네, 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내가 전적으로 믿을만한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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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방이 잡혔다.
"……너무 빠른거 아니에요?"
"경험은 빠를수록 좋다"
저녁을 먹고나서, 아버지는 나를 불러서 이야기 하셨다.
아버지는 없는 시간을 쪼갠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킨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자취할 방을 하루만에 구하셨다.
위치도 이곳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고, 학교에 통학하기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내가 노리는 대학에 들어간다면 등교하기가 훨씬 편해지는 위치였다. 키리노의 행동력은 혹시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건가?
"책상이나 침대, 컴퓨터 같은건 사람을 시켜 옮길테니, 나머지는 스스로 옮기도록 해라"
그 말을 듣고 드디어 실감이 났다. 자취,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얼굴 표정에 불안감이 비추어 졌는지, 그런 나의 표정을 보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디까지나 경험이다. 그게 적성에 맞아서 계속 자취를 해도 괜찮지만, 힘들거면 도움을 청해라. 도저히 못하겠으면 포기하고 돌아와라. 알겠나?"
일말의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용서하지 않는 말.
그 올곧은 목소리를 듣고 내 가슴속에 있던 불안감도 사라져갔다. 그래 뭐, 이것은 아버지의 말대로 경험이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나의 적성에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다음날 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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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네코가 전학을 가버린 이후, 다시 쓸쓸해진 나는 마나미와 하교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건 나름대로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때 연인이었던 쿠로네코가 생각나 적막한 마음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제는 쿠로네코가 없으므로 부활동에 돌아갈 리도 없기에, 나는 게임 연구부에는 완전한 유령 부원으로 정착됐다. 마카베나 부장도 다 이해해주는 분위기고, 왠지 나를 동정해주는 눈길까지 보여줬다. 설마 하지만 어디선가 들은건 아니겠지.
오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잡아주신 원룸으로 가야했다. 옷이나 학용품같이 상대적으로 부피는 작지만 양이 많은 짐들을 옮겨야 하니까. 으음. 그게 다 들어갈만한 가방이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옆에서 걷고 있던 마나미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아. 쿄우, 자취 시작한다면서?"
"…어떻게 알았어?"
"응? 쿄우네 어머니가 동네방네 소문 다 내시던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어머닌가.
"뭐 어쩌다 보니. 아버지는 경험이 된다고 하시고, 나도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으니까"
"으음. 쿄우도 힘내고 있구나~"
"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나미는 헤헤. 하고 보는 쪽이 포근해질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쿠로네코 씨랑 헤어지고 나서 힘든 마음을 달래려는거 아니야?"
"엥, 그렇게 보여?"
"응. 그렇게도 보이지만, 쿄우도 이제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라고 말해도 될까? 그렇게 느껴져"
"부끄러운 말을 참 잘도 한다"
내가 얼굴을 살짝 붉히고 그렇게 말하자, 마나미는 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헤헷. 하고 다시 웃었다. 이 녀석은 정말로, 편하구만.
"내가 말했지? 쿠로네코 씨가 힘내준 덕분에 주변의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아마 쿄우도 많이 성장할거라고 생각해"
내가 쿠로네코와 헤어지고 나서, 마나미는 여러 말을 해줬었다. 마나미는 나 자신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 우리 어머니 보다 더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고 조언을 해준다. 그것들은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 처럼, 도움이 안되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나도 쿄우를 사랑하니까'
마나미가 한 말이 기억나 순간 확,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쿄우?"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아니, 무슨 의미라고 하기보단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마나미가 나를 격려해주기 위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진심일수도 있고.
하지만 마나미가 말한대로 '당장 눈 앞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은 절대 바뀔 수 없는 마음 같지만, 그것은 마나미의 말대로 나중에는 변화할 것이다.
'네 자신의 마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세요'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들을 말만 하는 녀석. 그 덕분에 나도 기운을 차릴 수 있었지.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내가 마나미에게 감사를 느끼며,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마나미는 나에게 이로운 일만 해줄거라 믿고 있었을 때,
"아야세한테도 이야기 해줬어~"
"네?"
엄청난 것을 말했다.
"저기요, 마나미씨? 지금 뭐라고…?"
"으응? 어제 아야세랑 통화할때, 쿄우가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말해준건데 왜? 말하면 안되는 거였어?"
"아니, 딱히 문제가 있는건 아닌데…"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니, 아야세가 오해하고 있는 나와 키리노의 관계가 어느정도 해결될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되려나. 아야세는 나 때문에 키리노가 오염당했다고 생각하니까. 으음. 문제네.
"자취하는거, 힘들텐데"
"아까도 말했듯이 뭐 경험이니까"
"제일 중요한건 식사야. 혼자 산다고 대충 먹으면 건강 금방 망가지니까? 나라도 괜찮으면 요리하러 가줘도 되는데. 힘들면 도움을 청하는게 좋아"
마나미는 왠지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자취하는 의미가 없잖냐. 뭐, 가끔 네 요리가 먹고 싶을땐 환영이지만"
"그거면 충분해요~"
헤헤. 하고 웃는 마나미.
나는 그런 마나미의 얼굴을 보고, 왠지 모르게 올라오는 불안감을 지우며 대답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