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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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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10권.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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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미와 헤어진후, 나는 곧바로 집에 들려서 짐을 챙긴 후 아버지가 잡아준 원룸으로 향했다. 향했다고는 해도 이미 전철의 안이지만.

전철을 타고 15분 정도 간 후, 내려서 다시 5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최근에 신축한듯한 깔끔한 건물을 눈앞에 두자, 가슴 속에서 묘한 벅찬감이 올라왔다.

'나, 이제 진짜로 자취하는 구나…'

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까, 내가 살 건물의 바로 옆에 딱! 하고 엄청나게 커다란 맨션이 붙어 있었다. 위치에 따라서는 햇볕도 안들겠구만…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철제 열쇠의 차가움을 느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신축했다고는 하나 건물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엘레베이터도 없고, 나는 3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눈 앞에 보이는 302 라고 써져있는 문. 나는 꿀꺽. 숨을 삼키고, 열쇠를 넣어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로 보이는건 문 앞에 놓여진 여러개의 박스들. 안에는 다른 계절 옷이나 컴퓨터, 최소한의 식기 같은 것과 자취생의 필수품이라고 하는 전자렌지와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새건데. 설마 아버지가 사주신건가…

요즘 입는 옷이나 책, 학용품. 그리고 무엇보다 조심히 옴겨야 하는 에로게임 CD들을 산악용 배낭에 가져온 나는 짐 정리를 해야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방 안을 둘러봤다.

"우와"

원룸이라고 해도 그렇게 좁지는 않았다. 원래 있었던 내 방보다 넓은 정도니, 기본적으로 장식을 하지 않는 나는 이 정도 크기의 방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

다행히도 앞으로 내가 살 302호 실은 옆에 있는 맨션과 딱 붙어있지는 않아, 햇볕도 문제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짐 정리를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휑한 방의 양쪽 구석에는 책상과 침대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소유물중 가장 부피가 큰 이 두가지는 미리 준비를 해주신듯 했다.

"정리나 하자…"

나는 그대로 신발을 벗은 후, 넘어지지 않게 박스를 넘어가려고 이동경로를 파악하며 신발을 정리하려고 했다.

"…엥?"

하지만 정확히 현관의 구석. 어디선가 본듯한 구두가 보였다. 아니, 구두라고 해봤자 보통 여학생들이 신는 그건데 말이야.

설마 안에 누가 있는 건가… 하면서 조심히 둘러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겸 샤워실은 불도 들어오지 않은 채였고. 으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 안에 들어가자, 자세히 보니 침대 위에 말려있는 이불이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꿀꺽…'

자신이 앞으로 살 집에, 그것도 짐도 다 옮겼는데 타인이 내 침대위에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아니, 보통 그런거 있잖냐.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그런거. ……설마설마 하지만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휘저어 그런 불안한 기분을 지우고 이불의 끝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그 이불을 조심스럽게 올리자 보이는건,

"…어이"

"우,웅…"

또 여동생이 나오는 꿈이라도 꾸는지, '우헤~' 하는 표정으로, 내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나의 여동생. 키리노였다.

얘는 또 왜 집주인보다 일찍 남의 방에 들어와서 자고 있지…

나는 이대로 깨워야 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키리노의 얼굴을 바라봤다. 매일 눈에 힘주고 다니는 녀석인데,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은 한층 더 귀엽긴 하구나…

뭐, 그렇게 결국 이대로 내버려 두고 짐이나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한 내가 몸을 돌리려는 그 순간, 핫? 하고 약간 멍한 표정의 키리노가 잠에서 깼다.

"우,웅… 오빠…?"

키리노는 멍한 표정을 한채 나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잠이 확 깼는지, 눈이 번뜩이며 커지더니,

​"​무​,​무​,​무​무​무​무​무​슨​ 짓이야!!?"

"우오오!?

휘익, 하고 이불을 감은채로 나의 머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이불 때문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불가능 했던 키리노의 타격이 맞을리는 없었고, 나는 곧바로 나의 안전을 위해 침대에서 멀리 ​떨​어​졌​다​. ​

"무슨 짓이긴!? 너야말로 뭐하고 있던 거냐!?"

"으,응?"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신체를 가리고 있는 듯한 키리노는 자신이 놓여져 있는 상황을 이제서야 이해했는지, '어…, 어?' 같은 소리를 내더니, 펑!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무, 뭘 착각하는 거야!!? 나는 딱히 그런게 아니라!! 그냥 피곤해서 깜빡 잠든거 뿐이니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가 왜 여기 있는 건데!!"

"왜! 짐정리라도 도와줄까 해서 왔지!!"

아무리 봐도 잠이 덜 깬것 같구만!

"너가 그럴리가 있냐… 내가 컴퓨터랑 에로게임을 잘 가져왔나 그거라도 확인하고 싶었겠지…"

"그, 마, 맞아! 어제 추천해준건 당연히 가져왔지? 지금 당장 플레이 하도록 해!"

"일단 짐정리부터 하고"

아까부터 그러는데, 이녀석 뭘 그렇게 당황한거지?

나는 그런 키리노를 내버려 둔채, 일단 가방을 내려뒀다. 옷같은 가벼운 짐정리는 나중에 한다고 해도, 우선은 전자렌지나 작은 가구같은 것을 옮기는 것이 먼저겠지.

그렇게 문 앞에 있는 상자들을 가져와서 포장을 뜯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라고 해도 다른 이사에 비해 많지도 않고,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것 같았다.

키리노는 내 침대 위에서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가만히 있기 미안한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정리를 도와주나, 싶었지만 역시나, 키리노는 제일 먼저 컴퓨터를 가져와 그것을 책상 위에 설치하고 있었다. 뭐, 저거라도 도와주는게 어디냐.

"후, 끝났다"

30분 정도 움직이자 방의 정리가 끝났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대충 손등으로 훔쳐냈다.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냉장고를 설치한지 얼마 안됬기에, 차가운 물을 바랄 수는 없었다. 아쉬운 지고.

가져온 옷들은 대충 펼쳐 방의 한 구석에 널어놨다. 음. 조금 있다가 근처 100엔샵에서 벽에 거는 옷걸이라도 사와야 겠다. 못이랑 망치… 아, 망치는 괜찮으려나.

내가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컴퓨터의 설치를 끝낸 키리노가 무엇을 했냐면,

"설치 다 해놨으니까"

전원이 들어와 있는 컴퓨터에서 삐링, 하는 귀여운 효과음이 났다.

이미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각기 다른 5개의 에로게임의 실행파일을 보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다​. ​

"넌 안가보냐?"

"말 안해도 갈거야"

딸칵 딸칵. 다음 에로게임의 설치를 하면서 키리노는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어이 키리노"

"왜"

"그러고 보니, 이제 주말에 녀석들이랑 노는건 어떻게 할거야? 여기서 할거야?"

"하?"

내가 막 던진 말에, 키리노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양 두 눈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봤다.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커다란 TV도 없고, 게임기도 없고, 별다른 놀이기구도 없고, 남자 혼자 자취하는 냄새나는 방에 여자애 셋을 데리고 올셈? 제정신이야? 당연히 네 쪽이 우리 집으로 와야지"

확실히 일리는 있다만… 그럼 필연적으로 또 키리노의 방에 들어가게 되는데. 별다른 문제가 안생길려나.

"그리고"

그러자 키리노는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그 녀석들한테는 자취한다는거 말하지 마"

"어, 왜?"

"고3 이나 되서 갑자기 자취한다니 바보같잖아"

"그, 그러냐…"

"아니면 뭐야, 어째서 자취하게 됬는지 과정이라도 나불나불 말할 셈이야?"

"그건 아니다만"

"그럼 내 말대로 해"

"오, 오우…"

근데 이미, 동네에 소문이 쫙 났는뎁쇼.

뭐, 내 책임은 아닐테니 상관없나.

"그럼 가볼테니까. 그거 꼭 해봐"

"분부대로 하죠"

내가 건성으로 대답하자, 키리노는 찌릿, 하고 나를 째려보더니, 성큼성큼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고 나가버렸다.

키리노의 잔소리도 슬슬 짜증이 날 정도니, 적어도 오늘은 남은 게임을 클리어 해야겠다…

그렇게 키리노가 간후, 나는 밖에 나가서 자취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생각날때마다 사왔다. 일단 100엔샵에서 옷걸이를 삿고, 철물점에서는 못을,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생수를 사오고, 깜빡 잊은 샴푸도 다시 사왔다.

집에서 망치 대신으로 쓸만한 단단한 것으로 벽에 못질을 하고 나서 옷걸이를 걸고,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대충 저녁을 떼우고, 키리노가 설치하고 간 에로게임을 조금 하다보니,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다.

무심코 시계를 보니 바늘은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이대로 공부를 하던지, 다른 것을 하기엔 시간이 모자르기도 하고, 오늘은 이만 자는게 좋을것 같다.

화장실 겸 샤워실이 침대와 가깝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조건이었다. 샤워를 하고 몸을 말리자마자 푹신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니, 온몸이 침대 안에 빨려들것 같은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혼자 사는 생활. 그 집에서 처음 지내는 밤.

마치 처음 수학여행을 간것처럼,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집은 불을 끄자 더욱 익숙하지 않았고, 다시 혼자 산다는 실감과 함께 약간의 불안감도 ​생​겨​났​다​. ​

"뭔가 요리 같은거, 조금씩이라도 배우는게 좋으려나"

나는 어두운 천장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편의점 도시락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으음. 내일은 요리책이라도 사볼까.

그렇게 오늘 있었던 약간의 노동과 긴장감. 그리고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 후의 나는 이불 안에서 미세하게 나는 듯한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그대로 잠에 들었다.



키리노는 어떻게 문을 따고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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