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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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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10권. 10화




"키, 키리노!?"

"열라니까"

키리노는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채, 짜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 조, 조금만 기다려봐!"

별다른 레파토리가 떠오르지 않은 나는, 침대 밑에서 숨어있는 아야세나 어딘가에 숨어있는 쿠로네코가 듣는다면 '또?' 라고 생각할 정도의 재미없는 변명을 내뱉으며 쾅! 하고 무심코 세게 문을 닫았다. 이미 화가 잔뜩 나 있는 키리노가 이것 때문에 더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며 귀를 기울였지만 문 너머의 키리노는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침대 옆에 서 있는 쿠로네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담하건데 이미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을것이다. 아야세 하나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것만 최악의 다음에는 최흉의 수가 ​있​었​다​!​! ​

몇일전 사오리가 말한것처럼, 혼자 자취하는 남자의 집에 여자애들이 놀러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라기 보단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평균 이상의 엄청난 미소녀들이라면 더욱 말이지. 하지만 그 미소녀들이 한번에, 그것도 약속도 없이 왔다는 것은 어찌됐든 파멸을 초래한다고!!

"후,후후…"

그런 나의 표정을 봐서 그런건지, 쿠로네코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덧없게 웃고 있었다. 마치 야마의 여왕처럼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로 '후,후후…' 하고 웃고 있긴 하지만, 입가가 살짝 경련하고 있는것이 당황하고 있다는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쿠, 쿠로네코!? 어떻게 할까!? 너라면 괜찮지 않냐!?"

거의 자포자기한듯한 나의 말에 쿠로네코는 여전히 입가를 경련하면서 대답했다.

"어, 언젠가는 또 다시 일어날 ​성​전​(​聖​戰​)​이​지​만​…​ 지, 지금은 때가 아니야"

"무슨 뜻이여!?"

"…지금이라면 나, 살해당할지도"

"너 설마 겁먹었냐!?"

"이, 이몸이 누구인줄 알고 겁을 머,먹었다고 하는 걸까. 멍청한 남자네"

"너 떨고 있는데?"

"아니, 이것은 적수를 만나 나의 요기가 진동하는 거야"

"그럼 그 사기안으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는 없는거야!?"

​"​우​리​엘​(​치​천​사​)​에​겐​ 나의 마안은 통하지 않아"

뭐라고 하는겨!!? 너도 지금 나 이상으로 당황하고 있구만! 쿠로네코가 이렇게 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인것 같은데!

쿠로네코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채찍질 하듯이 비틀비틀 움직여 창문가로 가더니 말했다.

"후,후후… 내 능력이라면 이, 이정도 높이는…"

"여기 3층이거든!!?"

절대 그냥은 넘길 수 없는 농담에 내가 테클을 걸자, 거의 동시에 쾅쾅쾅! 현관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났다. …뭔가 옛날에 했었던 공포게임에서 이런 시츄에이션이 있었던것 같았는데.

그렇게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것처럼 다리를 올리던 쿠로네코의 몸이 멈칫. 하고 굳었다. 그러더니,

"…잠깐, '너라면' 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꺄아아아아악!!! 진짜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그, 그것보다 키리노가 들어오면 곤란한거 아니냐!? 일단 숨는게 낫지 않아!?"

나는 마치 마임을 하는 마술사처럼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쿠로네코는 가느다랗게 눈을 뜬채 나를 노려보더니,

"어쩔 수 없네"

"그치? 그치? 일단 너는 화장실에 숨어있어!"

"거긴 싫어"

​"​우​째​서​어​어​어​어​어​어​어​어​!​!​?​"​

아야세도 그러더니, 여자애들은 왜 이렇게 화장실을 싫어하냐!? 딱히 더럽게 쓰지도 않았다고! 상처받잖냐!

"빨리 안열어!!!?"

쾅쾅쾅쾅! 문 밖에 있는 키리노는 문을 걷어차면서 소리질렀다. 진짜, 이웃한테도 민폐라고!!

"그, 그럼 일단 아무데나 숨어! 금방 돌려보낼테니까! 알았지!?"

"으,응…"

자신이 없다는 듯이 대답한 쿠로네코는 주위를 살펴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쿠로네코의 대답을 듣자마자, 현관문으로 뛰어가서 소리쳤다.

"이제 다 됐어!!"

"아 진짜!"

문을 열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쿠로네코의 모습을 확인했지만, 쿠로네코도 벌써 숨었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천히 현관문을 열자 키리노는 살짝 열린 문을 자신의 손으로 콱! 하고 잡더니, 밀치듯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 오우… 무슨 일이냐?"

그리고 그 순간,

쿵! 하고, 나무로된 상자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눈을 살짝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는 키리노의 옆에서 아무것도 못들었다는 듯이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지만,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타이밍으로 연달아 쿵!! 하는, 똑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침대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다.

아. ​신​이​시​여​… ​

하나는 닌자에 하나는 야마의 여왕인가. 왜 숨어도 하필 거기로…

"왜,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올 수 있는거야?"

"딱히 그런건 아니다만…"

"그럼 문제 없잖아"

하지만 키리노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눈치를 못챘는지(상황을 모르면 당연하겠지만) 나를 찌릿- 노려보면서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더니,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야세도 그렇지만, 도대체 이 녀석도 무슨 생각을 하고 온거야?

눈으로 보지도 않은채 발로만 대충 신발을 집어던진 키리노는 제일 먼저 내 책상에 턱하고 앉더니, 곧바로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키다니, 훌륭한 오타쿠의 표본이구나 이녀석.

"최소한 ​신​발​정​리​는​…​…​…​…​…​…​!​?​

키리노에게 최소한의 훈계를 하며(물론 잔뜩 화가 난것 같으니 강하게 하지는 못했다) 키리노의 신발을 정리하려고 고개를 숙이자, 나의 시야에는 바닥의 한쪽 구석에 있는 신발 두켤레가 들어왔다.

"신발이 뭐"

​"​우​오​오​오​오​오​오​!​?​"​

나는 옆으로 하고 있던 몸을 빠르게 돌려, 곧바로 등을 사용해 키리노의 시야를 막았다. 세이프다! 세이프라고!! 아, 그러고보니 왠지 오늘 집에 찾아온 녀석들은 전부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듯한 모습이는데, 아야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쿠로네코도 아야세의 신발을 발견하지 못했을 줄이야… 어찌됐건 나에게는 행운이지만 말이다.

키리노는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쥐고 있는 채로 고개만 돌려, 나의 바보짓을 마치 벌레를 보는듯한 시선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뭘 하는 거야?"

"아, 아무것도…"

"………바보같아"

그래. 지금이라면 몇번이라고 나를 바보라고 해도 용서해주마!

컴퓨터의 부팅이 끝나자, 키리노는 무척이나 따분하다는 표정을 한채 한손으로 턱을 괴고 딸칵 딸칵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 직후 키리노가 곧바로 시작한것은 에로게임. 그것도, 아직 내가 한번도 플레이 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그 화면까지 확인한 내가 아야세와 쿠로네코의 신발을 화장실에다가 숨기고 있자, 키리노가 소리쳤다.

"뭐야, 이거 아직도 클리어 못했어?"

"그거 말고, 그 빛나는 어쩌구 여동생인가? 그거는 클리어 했어"

"…그럼 됐어. 마실거나 가져와"

"오, 오우…"

나는 왠지 모르게 잔뜩 짜증이 나 있는 잘난 여동생님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조그마한 소형 냉장고로 향해, 그 안에서 먹다남은 오렌지 쥬스를 꺼냈다. 그것을 대충 컵에 따르면서도 나의 시선은 침대를 향하고 있었다. 저 아래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 상상하기 싫다 정말.

"자"

"……"

나는 대답이 없는 키리노에게 오렌지 쥬스가 담긴 컵을 건내주고는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그 아래에 쿠로네코와 아야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딱 하나 있는 의자를 키리노가 차지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방 안에서는 키리노가 플레이하는 에로게임의 성우들의 로리로리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방 안을 정적이 감싸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키리노가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더 크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분명 책상의 옆에 있는 그 빈 도시락 통을 가지고 뭐라고 물을 수도 있을텐데, 키리노는 딱히 그것에 대해 무언가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기분이 나쁜듯이 계속해서 에로게임의 지문을 읽을 뿐이었다. 나는 그 키리노의 뒤에 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진짜론 무슨 이유로 연락도 없이 온거냐?"

"보면 몰라? 게임하러 왔잖아"

"게임이라면 우리집에서도 실컷할 수 있잖냐"

딸칵. 딸칵. 

키리노는 멍한 눈으로, 갑자기 말했다.

"그렇게 답답한 곳을 집이라고 말하는 것도 싫어"

"…왜. 집에서 무슨 일 있냐?"

"아무것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분명 뭔가가 있구만.

다시 딸칵딸칵. 하는 묘한 정적이 계속됐다. 10초 정도가 지나자 키리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오렌지 쥬스를 후룩, 하고 마시더니,

"자취, 할만해?"

"뭐… 최근엔 엄청 힘들었지"

편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20년 가까이 있던 정든 집을 떠난 것이고, 부모님의 손길없이 전부 자신이 혼자서 해야하는 일상에 그렇게 빨리 적응할리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히 힘들다고 ​대​답​했​다​. ​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침대에 앉은채로 양팔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무언가 부드러운 천 같은것이 손에 닿았다. 응? 같은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그것을 한손으로 집어 올려다 보니, 무언가 검은색의 옷이었다. 중앙에는 붉은색의 장미같은것이 있……

"그, 그럼 역시 너도…"

​"​우​오​오​오​오​오​오​!​!​?​"​

에로게임을 하느라 모니터를 보던 키리노가 무언가를 말하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기에, 나는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쿠로네코의 상의를 내 티셔츠의 안에, 그러니까 등과 옷 사이에 넣어서 숨겼다. 딱히 숨길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

"바, 방금 뭐라고 했냐?"

​"​…​…​…​…​아​무​것​도​"​

아까보다 더 기분이 나빠진것 같은 키리노는 계속해서 에로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마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간단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자취. 해볼까"

"하?"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래?

"그럼 나도 혼자서 에로게임 실컷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자취를 하겠다는 거냐? 중3자리 여자애 혼자서?"

"뭐야, 너는 되고 나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냐"

키리노의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소리에,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여자애가, 그것도 너 나이 또래의 여자애가 자취를 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것도 너는 보통의 여중생이랑은 달라. 어느정도 얼굴이 팔려있는 유명인인 주제에, 그런 위험한짓을 하게 놔둘것 같냐?"

"……자기는"

키리노는 거의 울것같은 눈을 한채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자기는, 혼자사는 방 안에 여자애나 데려오는 주제에"

"뭐…"

설마, 눈치채고 있었다고?

"안봐도 뻔해. 이 도시락도, 그 촌년이 가져다준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그 까만거일까"

"윽…"

"그러니까 내 말에 집중도 하지 않고, 깊게 생각하지 않은채로 대충 대답하는 거겠지"

"아, 아니야 키리노! 나는…"

"됐어"

키리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번개같이 자신의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는 해도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손가방 뿐이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사라져줄테니까"

"키리노!"

키리노는 내가 잡기도 전에,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현관문으로 달려가서 대충 신발을 구겨신고 밖으로 뛰어갔다. 늦게나마 그 뒤를 쫓아도, 이미 밖으로 나간 키리노는 거의 전속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하하. 수습하기 힘들어 보이죠?

네.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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