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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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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10권. 11화




마음같아서는 키리노의 뒤를 쫓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키리노를 쫓지 못했다.

첫째로는 우선 내 달리기 속도로는 진심이 된 키리노를 쫓아갈 수 없다는 이유와, 둘째로는 서로의 편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굴욕적이게 남의집 침대 아래에 숨어있는 아야세와 쿠로네코를 내버려 둔채 키리노를 쫓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저 아래에선 세계 3차 대전에 필적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을테니깐.

나는 이제 거의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기 직전의 키리노의 등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키리노가 뭐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나 있었고, 그리고 또 뭐 때문에 더 화가 난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정리되면 우선 키리노의 기분을 풀어줘야겠다.

현관문을 닫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나는 이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침대를 '꿀꺽' 침을 삼키며 쳐다봤다. 그리고,

"이,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

"………"

"히, 힉…"

나는 마치 어떤 공포영화의 한장면처럼 침대 아래에서 기어 나오는 아야세와 쿠로네코를 보고 무심코 그런 소리를 냈다. 시츄에이션도 시츄에이션이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 긴 앞머리가 눈을 가려서 한층 무섭게 느껴졌다.

…어느정도. 까지도 아니고, 이미 저곳에서 저런식으로 나올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무섭다고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응?"

다만, 아야세와 쿠로네코 둘다 약간 눈물이 맺힌 눈을 한채 한손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서로를 노려보는것을 보기전 까지는 말이다.

"어이… 너희들 설마, 아까 그 쿵 하던 소리가…"

"큿…"

아야세와 쿠로네코는 설마설마 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서로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뭔가 갑자기 침대 아래로 들어온 쿠로네코를 보고 서로 놀라서 부딪혔구나…

내가 거기서 한층 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하하…' 웃자, 아야세는 '크,크흠' 하고 목소리를 정돈하더니,

"오빠"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1년 정도 전에, 키리노에게 절교선언을 하던 그때의 표정과 비교할만큼 진지한 표정이었다.

"키리노. 안쫓아가도 괜찮은가요?"

"…아아. 일단 지금 급한건 너희들이니까"

"……"

아야세는 거기서 입에 살짝 바람을 넣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다봤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아직까지도 자신의 뒤통수를 어루만지고 있던 쿠로네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 설명해주지 않을래?"

"윽"

"…그러게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오빠?"

방금까지 사이가 좋기는 커녕, 서로를 잡아먹듯이 노려보던 아야세와 쿠로네코는 둘다 양팔을 팔짱낀채 나를 노려다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엄청 친해진다 너희!?

"그, 그게 말이야…"

"여, 역시 집에 여자애를 데려와서 으,음란한 ​짓​을​…​" ​

"설마 하지만 얼마나 됐다고 다른 여자를…"

내가 이미지적으로 눈동자에 불이 이글이글 거릴듯한 시선을 받으며 어떻게든 변명을 하기 위해 당황해 하고 있자, 그렇게 동시에 말한 아야세와 쿠로네코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당신은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그쪽이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거죠?"

가, 갑자기 분위기가 왜이래!?

"아, 아야세…? 쿠, 쿠로네코…?"

"오빠는 조용히 ​해​주​세​요​" ​

"당신은 입다물고 있어줘"

이번에는 아야세와 쿠로네코는 완벽하게 동시에 말했지만, 그 말이 중간에 끊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것을 신호로, 제일 먼저 쿠로네코가 훗. 하고 웃더니, 뒷머리칼을 한손으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당신은 선배와 무슨 관계이길래 이 돼지우리 같은 방에 혼자서 찾아온걸까"

그러자 아야세는 거기서 나를 확 하고 노려보더니,

"……선배, 라구요?"

"아 그, 말 안했었나? 얼마 전까지 내가 다니던 학교에 다녔었어. 지금은 전학갔지만"

"아…"

나의 대답을 들은 아야세는 큿, 하면서 자신의 엄지손톱을 살짝 깨물고는,

"언니가 말한 오빠를 뺏어갔다던 후배가 이사람이었나요…"

"엉? 언니?"

"에에잇. 지금은 상관없어요!"

아야세는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흔들며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쿠로네코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는 듯이 손등으로 입을 가린채 '후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아야세의 하얀 이마에서 빠직. 하고 힘줄이 솟는듯 했지만, 아야세는 거기서 두손을 공손히 모으더니, 싱긋 하고 청량감까지 느껴지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럼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오빠가 엄~청 좋.아 하는 아라가키 아야세 라고 합니다. 그쪽은 뭐… 쿠로네코, 라고 했었나요? 이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호, 호오오…"

그러자 쿠로네코는 삐걱삐걱. 기름칠을 안한 철제기계처럼 부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매우 ​조​,​조​,​좋​아​하​는​…​?​"​

"아니야 쿠로네코! 오해다!"

"뭐가 오해라는 건가요 오.빠?"

"히, 히익!"

거기서 물어죽일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지 말라고 아야세! 그거 진짜로 ​무​섭​다​고​!​! ​

아야세는 거기서 추가로, '웃' 하고 갑자기 기가 죽은듯한 쿠로네코에게 쏘아부치듯이 말했다.

"그럼 쿠로네코씨야말로, 오빠랑 무슨 관계길래 남자 혼자 사는 방까지 온거죠?"

"아, 그, 나는…"

쿠로네코는 무척이나 당황한듯, 자신도 모르게 두발자국 정도 뒤로 움직여 거리를 벌렸지만, 아야세는 마치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똑같은 보폭수로 쿠로네코를 쫓아갔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아야세는 먼저 쿠로네코가 한 질문에 답변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쿠로네코는 그것조차 잊고 있는듯 했다.

"……이 남자의 여자친…"

"'전' 여자친구겠죠"

"……"

"그럼,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쿠로네코씨와는 상관없는거 아닌가요?"

"상관 있어"

고개를 푹 숙인채, 어깨를 흠칫흠칫 떨던 쿠로네코는 그 조그마한 주먹을 꽉 쥐고,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내가 더…"

"그럼"

아야세는 그 검은 눈을 빛내며 쿠로네코의 말을 끊었다. 나까지 느껴지는 소리 없는 박력에, 쿠로네코는 몸을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럼 쿠로네코씨는, 오빠한테서 결혼해달라는 이야기. 들어본적 있나요?"

"…무, 무슨…"

"어, 어이 아야세!?"

당황한 내가 손을 파닥거리면서 바보같은 표정을 짓자, 아야세는 그런 나를 보면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이잖아요 오빠"

"윽…"

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그 말을 꺼내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게 그렇게 좋냐!? 누가 보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몇일도 안되서 다른 여자한테 찝적댄 쓰레기로 보이잖아!

"후, 후욱… 후욱…"

아야세의 이야기를 들은 쿠로네코는 숨이 가쁜지, 한손을 가슴위에 올려놓고 괴로운듯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거의 울기 직전으로 보이는 새빨간 얼굴을 한채, 나를 노려보면서 힘들게 말을 이었다.

"다, 당신의 일이라면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아, 알것 가, 같지만… 나, 나중에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이,있겠지…"

"오, 오우!!"

"글쎄요. 설명이라고 해도…"

"그러니까 자꾸 불난데 기름 뿌리지 마!!"

그러자 쿠로네코는 약간 몸을 비틀거리며 문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쿠로네코와 아야세의 신발은 내가 화장실에 숨겼기에 당연히 신발이 없는데도 말이다.

"자, 잠깐!"

내가 쏜살같이 몸을 움직여 침대위에 대충 숨겨놨었던 쿠로네코의 검은색 웃옷을 집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아야세와 쿠로네코의 신발을 가져와 맨발로 나가려던 쿠로네코에게 소리를 치니, 쿠로네코는 그때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주섬주섬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

나는 그렇게 아직도 정신줄을 놓은듯 멍한 쿠로네코에게 그 웃옷을 뒤에서 입혀주며 말했다.

"그, 아까 숨기느라 혹시라도 땀냄새가 날지도 모르겠는데 미안! 사과할게! 오늘 이야기 못한것까지 나중에 다 설명할테니까!"

"!"

거기서 쿠로네코는 다시 흠칫. 하고 몸을 떨더니, 무심코 입었다는 듯이 자신의 검은 드레스를 좌우로 살펴봤다. 그리고는 옷의 팔목부분을 잡아당겨 자신의 손을 반쯤 안으로 집어넣더니,

​"​…​…​…​…​…​…​…​…​…​…​그​럼​,​ 오늘은 이걸로 봐줄게"

"이, 이거라니?"

왠지 쿠로네코는 그 하얀 볼을 붉게 물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분이 안좋아보이더니 갑자기 무슨 변덕이래?

"마중, 나가줄까?"

"그런건 필요없어. 아니. 나오지 마. 혼자여야 하니까. 아, 아니. 혼자가고 싶으니까. 아, 물론. 공평하게 저 여자도 혼자 보내"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려뎐 쿠로네코는 멈칫. 하고 살짝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만 돌려 아야세를 쳐다보더니,

"훗"

하고, 아야세를 업신여기는듯한 미소를 짓고는 아야세의 반응을 확인하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오, 오우… 잘가라"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지만, 콧노래를 부르는것 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쿠로네코에게 대충 인사를 한뒤, 나는 이마에 맺혀있던 땀을 손등으로 치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후후… 꽤나 얕볼 수 없는 상대네요"

그렇게 말한 아야세는 침대 아래로 들어가서 흐트러진 옷을 주섬주섬 정돈하더니, 자신도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오빠는, 저 여자랑 사귈때 엄청 휘둘리셨겠네요"

"그, 그래 보여?"

"네. 안봐도 뻔해요"

탁탁. 약간 들어가지 않은 발을 넣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제스처인지, 아야세는 신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그럼, 저도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 오우…"

"마중, 안나오셔도 되니깐요"

"너 혹시나 하는데 쿠로네코한테 해코지 하지마라. 응?"

"오빠는 저를 어떻게 보고 있길래…"

아야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긴. 그건 네가 더 잘알고 있을것 같은데… 가슴위에 손을 올리고 말해봐라.

"말 안해도 아시겠지만"

현관문을 닫기 전, 아야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키리노. 요즘 컨디션이 안좋은것 같으니까 잘 부탁드려요"

"컨디션이 안좋다니? 무슨 소리야?"

"그대로의 의미에요. 촬영할때도, 학교에서도,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안좋아보이는건 ​사​실​이​니​깐​요​. ​

"………"

아야세의 말을 듣자 불현듯 아까 기분이 나빴던 키리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짜증이 난건지, 화가 난건지 모르겠던 그 모습은 그런 이유가 있던 것이었나.

(나도 자취, 해볼까)

아마 그것은 키리노가 평소에 하던 것들이 잘 되지 않기에 답답해서 말한 것일 것이다. 딱히 나만 그러는건 아니겠지만, 사람은 힘들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것만으로도 후련해지니깐. 독자모델일을, 학업을,, 육상을, 소설을. 그 많은 것들을 동시에 하나도 빠짐없이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키리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한​다​. ​

(그렇게 답답한 곳을 집이라고 말하는 것도 싫어)

그렇기에, 항상 키리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랑은 달리 키리노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부모님에게도 자신의 컨디션에 대해 말을 하지 못했겠지. 아마 그래서 집을 불편해하고 있지 않을까.

키리노라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은 친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야세던, 카나코던, 심지어는 쿠로네코나 사오리여도 철저하게 숨기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한 키리노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건,

"…혹시, 키리노가 컨디션이 안좋은 이유. 알고 있어?"

나 뿐이다.

여러모로 키리노에게 도움만 받아 빚도 많고, 키리노의 최대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오타쿠 취미도 가장 먼저 알아챘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이유따위는 겉절이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것은, 나는 그 녀석의 오빠고, 키리노는 내 동생이라는 점이니까.

"이유는 알고 있지만, 오빠에겐 말해주지 않을 거에요"

"아야세, 난 지금 장난하는게…"

"물론, 저도 오빠랑 같을 정도로 키리노가 걱정되요"

"……"

아야세는 살짝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오빠에게 말해서 해결된다면, 사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것과 같아요"

"……"

"오빠는, 키리노의 자랑스러운 오빠잖아요?"

아야세는 싱긋 웃으며,

"그럼 자신의 힘으로 키리노를 도와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야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원룸의 계단을 내려갔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방금 아야세의 말은 전혀 말이 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야세의 말은 내 가슴속을 파고들듯이 박혔다. 납득은 할 수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고 할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 키리노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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