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그 멋진 ‘착각’을 다시 한 번” - 방과후 (2)
“하치만이 생각한 일인걸. 시간이 없거나, 막다른 길에 몰린 상황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어.”
“…….”
“그래도, 우리들이 듣고 싶었던 건 하치만의 그런 고민 같은 거야.”
“미안했어…….”
“안돼. 용서 못 해줘.”
으아아!
토, 토츠카한테……토츠카한테 버림받는다?!
“그러니까 부탁을 조금 들어줬으면 해.”
“아, 알았어!”
토츠카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
아, 이 대답 패턴이나 부탁 패턴은 코마치랑 닮았는데.
이런 세세한 대화까지 가르친 건가…….
“앞으로는, 나를 이름으로 불러 줘?”
“에?! 아…….”
“……사이카.”
“응! 하치만!”
못 이기겠네…….
“그럼, 나는 끝. 다음은 카와사키 차례야.”
“엣, 아, 아아…….”
“난 잠깐 주스 사러 다 올게.”
“아, 잠까…….”
토츠……사이카는 가 버렸다.
카와사키는 아무래도 말하기 껄끄러운 듯이 주저하고 있다.
도시락 워 때는 연기기도 했고, 코마치에게 들은 정보로 예비연습 하거나 해서 괜찮았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결국 말솜씨가 부족하구나.
부러 심호흡을 하자, 간신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히키가야……아까 나는 ‘진상까지 듣고 보니 별 일은 아니’라고 말했었지?”
“아아.”
“별 일 아니야. 네가 이상한 해결법으로 자폭한다거나, 자신에게 기만적인 부분을 느꼈다거나 해서 신경쓰진 않아.”
“에……?”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나가는 건 무리야.”
“아, 아아…….”
“그러니까, 네가 깊게 생각한 방법이라면,
멋지게 무덤을 파도,
자폭해도,
미움받을 만한 일을 해도
……나도 토츠카도 멀어져 주지 않아.”
!?
?!
누구야 말주변 없단 소리 한 놈.
아아, 나였지. 최근 1주일 동안 이 녀석이랑 계속 떠들어 온 나였어.
이 녀석은 이제 나에게 사양같은 건 하지 않는 거리에 있는 거구나…….
같은 동아리에서 그만큼 함께 지내온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불러들이지 않았던 불가침영역.
17년간, 코마치만이 들어와 있던 외딴 섬.
겨우 1주일로……이 두 사람은……내가 도랑을 만들 틈을 주지 않고 쳐들어 왔다.
“너는 남이랑 자신 사이에 도랑을 파는 게 특기인 것 같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어. 우리에겐 더는 통하지 않아.”
“………….”
“토츠카가 1주일 전에 뭐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도랑을 메우는 방법이 아니라 뛰어넘을 방법이랬어.”
“으엑…….”
반칙이잖아……아, 룰 같은 건 딱히 없었나.
“너, 아래쪽만 보느라 위쪽은 못 깨달은 거 아냐?”
“지당하십니다…….”
시스콤브라콤전쟁은 내가 아래를 보게 하기 위한 페이크.
그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와서야 이길 도리가 없나……어떻게 날아온 거야…….
아, 아차……사이카는 천사였나. 그야, 하늘도 날겠구나 진짜 천사.
깨달았다.
터무니없는 억지에,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 그런 방법을 언제나 써온 인물.
……나잖아.
스스로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그런 악마 같은 방법같은 걸 생각해 내다니…….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외톨이 정도가 아니면…….
아, 이 녀석도 외톨이였지. 그야, 이런 억지스런 방법을 떠올릴 법 하구나 진짜 악마.
“그, 그런데 어째서 너까지 나한테 다가오려는 거야?”
“응?”
“그, 그게……너는 그……여자고……? 그렇게 너무 억지로 다가오려고 하면 그…….”
“아아, 그 이야기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내게 다가온다.
똑바로 이쪽을 보고.
고동이 빨라진다.
눈을 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내 눈 앞까지 와서.
“사랑한다고, 히키가야.”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