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페어 스토리는 급작스레” - 도쿄BAY 라라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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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뭐 할거야? 목적도 뭣도 못 들었는데.”
“좀 새 재봉도구나 천이나 실 같은 걸 사고 싶어서.
살 수만 있으면 어디든 별 상관없었는데, 저녁까지 시간 때우기에는 여기가 괜찮으려나? 해서.”
“오―, 그랬나. 그러고 보면 너 재봉 특기였지.”
요즘은 공부만 해대느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사키는 옷에 관한 센스는 제법 좋다.
가지고 있는 소품들은 대부분 수제고, 교복에도 조금 손을 대고 있다.
분화제 기간동안, 입으로는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면서도 한 번 맡기 시작한 뒤론 옷을 슥슥 만들고 있었다.
뭐, 그때는 교실 모습을 별로 잘 못 봤었지만.
그런 당시의 많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녀석은 입이나 태도론 튕기든지 하면서도, 결국엔 남을 잘 돌보…….
아니, 돌보길 좋아하는 거다.
진짜 뭐야 얘, 엄마냐고.
돌보길 좋아한다……인가……부탁하면 나한테도 뭔가 만들어 주려나.
“원래 옷은 교복 정도밖에 안 만졌었는데, 이래저래 기회가 있어서.
조금씩 손을 대 보려고 해.”
“호~.”
“네 옷에.”
“내거냐?!”
부탁할 것 까지도 없었다.
“당연하잖아? 왜 익숙하지도 않은 짓을 내 옷에 하는데?”
“내 건 괜찮냐?! 디버그냐고!”
“그러니까 돈 안 드는 헌옷같은 것도 살 거야.
아, 그건 네 옷이니까 네가 내.”
“에에에―…….”
사양도 없었다.
“괜찮잖아? 너, 그런 데 관심 없으니까. 입을 수 있으면 뭐든 괜찮아~같은 느낌이고.”
“어차피 사복 입을 때는 집에 있을 때니까.”
“그러면 더더욱 옷 개조해도 상관 없잖아.”
“아…….”
젠장……어찌 보면 그 말 대로다…….
코마치까지도 집에 있을 때는 내 셔츠 입고 돌아다니고…….
요즘 사키는 날 구슬리는데 능숙해지고 있다.
나는 티슈냐. #1
“하치만, 넌 어떤 색 좋아해?”
“초록.”
뭐, 예전에 나갈 때는 사이카가 하자는 대로였으니, 오늘은 이 녀석한테도 적당히 어울려 주자.
나? 외출하고 싶다는 소리 같은 걸 할 리 없잖아. 방콕 만세.
“……너, 대체 얼마나 제멋대로인 거야?” #2
“어이 뭐야 그거. 녹색틱해서? 자연적이어서? 연극에서 나무 역할이라서?”
괜찮아 녹색 짱 자연이잖아. 자연에 녹아든 나한테 딱 어울리잖아.
나무를 숨긴다면 숲……아 그러니 나 보통 때도 아무한테도 안 걸리는 거겠구나.
요즘은 주위 벌채당해서 스텔스 기능이 약해지고 있지만.
사키사키는 전기톱을 장비했다!
이럼 갈갈이 찢기는 정도론 안 끝나잖아.
밑퉁 베인다고.
“자연이라고 할까……수초?”
“수초?! 마리모라거나 그런 거?!”
“아니 그거랑은 다르고……이끼?”
“이제 떨어지자, 응? 그쪽에서 떨어지자?”
……………
…………
………
……
…
“생각만큼 안 샀네, 이런 걸로 괜찮아?”
덧붙여서 옷도 포함해 전부 사키가 골랐다.
옷은 어쨌든, 그거 말곤 가방에 들어갈 정도였다.
뭐야? 에코? 응 그거, 초 에콜로지~. 줄이면 초로지~.
우와 진짜야? 에콜로 양 우습네~. #3
“다른 애들이 끝날 때까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짐 그렇게나 못 들어.”
물론 짐 담당은 나.
한 번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
아니 뭐……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는 것도 그것대로 귀찮지만.
“글네―. 그건 그렇고, 합류하면 그대로 식사하자는 식일테니, 지금부터 뭔가 먹기도 그렇네.”
“커피면 괜찮잖아? 양 적다고는 해도 한 번 봉투 놓아두고 싶지?”
“아아, 그렇네.”
이렇게 내게 짐 담당을 시키면서, 잊을만하면 배려를 해 주는 건 역시 누님같구나.
그렇게 커피 숍에 향하려 했을 때…….
“어라~? 히키가야잖아?”
최종보스보다 더 언니인, 보스의 등장이다.
“으에……유키노시타 씨…….”
“유키노시타……?”
“아아, 언니야…….”
유키노시타 씨는 친구에게 “잠깐 먼저 가 있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왠지 데자부.
“야헬롱~ 히키가야. 외출이라니 희안하네~.”
“안녕하세요, 그 인사 딱히 봉사부 전용같은 거 아니니까 그만둬 주세요.”
유행하면 어쩔거야, 버겁다고.
“우후후~, 그런 싫어하는 표정 짓지 마. 아니면, 만나기 싫은 타이밍이었어?”
유키노시타 씨가 슬쩍 사키를 바라본다.
“처음봐요~. 유키노는 알고 있으려나?”
“하아.”
“언니인 하루노예요. 잘 부탁해~.”
“저야말로요. 카와사키 사키예요.”
오~, 이 녀석 대단해. 하루노 씨가 지은 철의 미소를 강철의 표정으로 돌려줬다.
“그·런·데~…….”
아, 곤란해.
철가면 씨에게 조준당했다! 나만 놀리는 병기냐고!
“히키가야 구운~? 유키노라는 상대도 있으면서, 오늘은 다른 여자애랑 데이트~? 좋게 보기 힘드네~.”
“죄송하지만, 댁의 유키노시타 아가씨와의 사이는 기대에 부응할 수 없어서.”
“진짜로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히키가야가 설마 내가 만난 적 없는 여자애랑 데이트 하고 있다니.”
“한 덩어리가 아니었던 거예요. 유키노시타 씨도 여전하네요.”
이럴 때는 흘리기를 고수하는 히키가야 하치만.
“카와사키랬나? 히키가야에게 손을 대는 건 안 되잖아? 히키가야는 유키노 거니까~.”
“확실히 얼마 전까진 유키노시타가 조금씩 손대고 있던 모양이네요.”
“그랬다고~. 그게 얼마 전까진 별로 가까이 오려 안 했던 모양이라서~.
언니는 정말 애가 터져서~.”
“하하, 지금은 괜찮나요?”
“그래 그래! 또 조금 기운 내 줬구나~! 훗훙~? 히키가야를 어떻게 공략한 거려나~?”
당신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다른데서 살고 있잖아.
게다가 사키도 이야기에 잘도 맞춰서 시원하게 흘려보내는데.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얼마나 저랑 유키노시타를 들러 붙이고 싶은 건가요.”
“응~? 나랑 들러붙어 줘도 괜·찮·은·데~?”
이거 보라는 듯이 팔을 얽어오는 유키노시타 씨.
사키를 멀리할 속셈인가? 얕보지 말아 줘……사키는 이 정도로…….
찰칵!
“……에?”
“오잉?”
사키는 어느샌가 휴대폰을 꺼내, 내 팔이 딱 바스트홀드 되어있는 순간을 촬영했다.
아……그 웃음이 흘러나오는 얼굴은…….
“아~아, 봐~버렸다.”
얕보고 있던 건…….
“코마치한테 이 사진 보내 버릴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자자자자잠깐사키이이이ㅣ?! 그건 너무하지 않아?!”
“왓.”
유키노시타 씨의 팔을 떨치고 사키에게 다가간다.
“괜찮잖아, 나는 하치만의 약점이라면 얼마든지 가지고 싶은데.”
“아니아니아니안괜찮아! 뭐야 약점은! 네 휴대폰은 내 트라우마 대륙이냐?!”
“내 휴대폰 꺼내면 네 얼빠진 표정 앨범이 돌아올 정도론 하고 싶은데~.”
터무니 없는 소리를 꺼냈다.
“뭐가 얼빠진 얼굴이야!
타이시한테 네 얼빠진 얼굴 나온 스티커 사진 안 보여주려 하고 있는 거 알고 있다고?!”
“보여줄 수 있겠어?! 어쩌다 그런 거 찾아냈다간 어째줄거야!
집에선 의지되는 누나라고! 그런 거 보였다간 누나의 위엄 제로잖아!”
“너?! 그런 사진 보냈다간 내 있을 곳이 제로잖아!
매일 휴일이 될 때마다 『오빠 왜 집에 있는 거야……?』같은 눈으로 이쪽 보게 될 거라고?!”
“밖에 나가라는 거면 건강적이잖아?!
사진의 여자랑 데이트 다녀오라고 배려해 주는 것 뿐이잖아 그거!”
“안 그래도 나 카마쿠라보다 위계 아래라고!
너희 집 스티커사진 한 장이랑은 상황이 달라! 머릿속 몇 할이 남동생으로 채워진 건데!”
“여동생으로 10할 채워진 너보다는 훨씬 낮아!
그러니까 제대로된 계산식도 머리에 안 들어가는 거잖아?!”
“코마치에 대한 내 마음이 10할 정도로 끝날 리가 없잖아!
진즉에 오버플로라고! 계산식같은게 통할까 보냐!”
“자랑할 부분이 아니잖아!”
“시꺼 브라콤 자식!”
“시끄러 시스콤 녀석!”
“자, 잠깐 두 사람…….”
““왜 그러시나요 시스콤 씨?””
“호흡 딱 맞아?! 게다가 지독해! ……으~, 내가 이야기에 못 끼다니~~.”
유키노시타 씨는 조금 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후, 뭐, 아는 애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은 이 즈음에서 물러날게.
히키가야, 카와사키, 또 봐.”
우리의 말싸움에 밀린 건지, 유키노시타 씨는 떠나갔다.
저 사람까지도 밀리는 건가…….
“후우…….”
“땡큐~, 사키. 살았다고.”
저 사람을 물릴 수 있었던 건 이게 처음일지도 모른다.
“정말 쓸데없이 체력 써 버렸네. 커피 값은 하치만이 내.”
“알았다고.”
다른 애들과 합류할 때 까지, 질릴일 없는 시간은 이어진다.
합류해도 질릴일 없는 시간은 이어진다.
뭐야 우리 최강이잖아
#1 요즘 사키는 날 구슬리는데 능숙해지고 있다. 나는 티슈냐. 일본어로 구슬리다(丸め込める)와 구겨넣다(丸め込める)가 동음이의어라는 걸 이용한 말장난.
#2 “……너, 대체 얼마나 제멋대로인 거야?” 녹색을 의미하는 미도리(緑)와 내키는대로 고르는 걸 뜻하는 미도리(見取り)의 발음이 같은 걸 이용한 말장난.
#3 뭐야? 에코? 응 그거, 초 에콜로지~. 줄이면 초로지~. 우와 진짜야? 에콜로 양 우습네~. 초로지(チョロジ―)와 우습다(チョロい)의 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말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