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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r


원작 |

조우 1화


"하아… 이게 무슨 꼴인지…"

학원도시 제 7학구에 있는 평범한 학생전용 기숙사.

그리고 그 평범한 학생전용 기숙사의 평범한 샤워실 바닥에서 조그마한 인영이 꿈틀대고 있었다.

인영의 정체는 쿠로요루 우미도리. 위험한 '신입생'이며, 동시에 그 '암흑의 5월 계획'의 몇 안되는 생존자.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제의 바지에 배꼽이 다 드러나는 줄무늬 나시티는 아무래도 12세 전후의 그녀에게는 그다지 어울리는 패션은 아니었다.

한여름인데도 무지하게 차가운 욕실의 바닥에서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감기라도 걸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의 열약한 환경에 쿠로요루는 양팔을 구속당한채 묶여있었다.

학원도시의 새로운 '어둠'이라고 자만하던 결과가 이 모양이다.

액셀러레이터와 하마즈라의 전투에서 패배. 거기다가 그 꼬마도 죽이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완벽한 패배. 그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쿠로요루는 뿌득, 하고 자신의 어금니를 세게 깨문다.

당연히 패배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 살아있는 체로 적에게 구속됬는 점도 매우 화가 났지만, 그런것보다 훨씬 화가 나는 이유가 있었다.

[분명 실패할걸? 따로 막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실패할거야]

오랜기간 준비해온 작전을 실행하기전, 쿠로요루는 꽤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됐.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처음부터 마음에 걸렸지만… 하지만 설마, 진짜로 그의 말대로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가 실패할거야.냐 그 도둑놈이!!"

쿠로요루는 그렇게 짜증을 내며, 샤워실 바닥에 앉은채로 다리를 휘저으며 바둥거린다.

짜증을 낼때 질소폭창으로 모든걸 날려버리는 그녀가 이런 귀여운 짜증을 내는 모습은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마음같으면 기계로 되있는 양팔을 떼어낸 후에 탈출하려면 탈출할 수도 있지만, 탈출한 후가 문제가 된다.

실버클로스는 죽었다. 준비했던 수많은 개량형 파워드 슈트는 파괴되었다. 자신의 비장의 수였던 수많은 기계손도 ​파​괴​되​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뾰족뾰족한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년의 정체를 알수없는 능력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내 모든 팔을 이용한 공격이 아니라고는 해도, 100개가 넘는 팔에서 나오는 창이었어. 복합장갑은 커녕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는데, 그걸 무효화했다고…?)

말도 안된다. 라고 생각해도, 쿠로요루는 그것보다 더 말도 안되는 녀석을 알고있다.

그렇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라고는 생각해도 의구심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모든 능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자가 있다… 단순한 도시전설인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일줄은… 아니, 하지만 저런 능력자가 있다면 여태까지의 정보망에 안잡힌것도 이상해)

설마하지만, 그 녀석이 이것까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실패한다'라고 말한걸까?

쿠로요루는 나중에 다시 한번 그 녀석을 잡아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어떻게 하면 여기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냐가 제일 급한 이야기겠지만.

"으으…"

거기까지 생각한 쿠로요루는 왠지 모르게 자기 혼자 있는 샤워실에서 약간 얼굴을 붉힌채로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 아무도 없지?)

신진대사를 조절해서 몸 밖으로 수분이 나가지 않게 하는것도 이미 한계.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그 뾰족한 머리의 소년이 주는 음식과 물을 먹어서 그런지 더이상 버틸수가 없다.

너무 장황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쿠로요루는 소변이 마려웠다.

(……)

눈을 감고 청각을 곤두세워, 적어도 샤워실 바로 바깥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쿠로요루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길. 마음에 드는 옷이긴 한데, 벗기는 더럽게 불편하단 말이야)

양팔이 뒤로 묶인채로, 엄지와 검지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자신이 입고 있는 가죽바지를 조심스럽게 벗는 쿠로요루.

겨우 골반 아래로 까지 바지를 내린 쿠로요루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면서 바죽바지를 조금씩 아래로 내렸다.

(좋았어…)

목숨이 오고가는 전투에서도 이렇게 긴장해본적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팬티를 내리려는 순간

"혹시 따로 먹고 싶은거라도 있어?"

그런 얼빠진, 사람 좋아보이는 목소리와 함께 찰칵 하고 문이 열렸다.

"엣…"

"아."

다시 바지를 올리려고 해도 양팔이 묶이고, 당황한 상태에서는 무리다.

​"​우​,​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주, 죽인다 너!!"

"미, 미안!"

얼굴을 새빨갛게 한채 화를 내는 쿠로요루의 기백에 놀란건지, 카미조는 쾅!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샤워실의 문을 닫았고-

"토우마는 토우마는!! 아는 여자애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적한테 까지 추태를 부리고!!"

"으갸아아아악!? 인덱스씨!? 방금 같이 봤잖아!? 사고라고 사고!!"

쿠로요루는 자신이 100개의 팔로 쏘았던 질소폭창으로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던 소년이 조그마한 수녀에게 완전히 제압당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거의 울먹이면서도 용변을 마친 쿠로요루는 바닥에 앉은채로 시간을 들여 바지를 올리고, 왠지 모르지만 욕조 안에 있던 이불을 몸에 감은채, 욕조안으로 들어가서 중얼거린다.

"우우… 이제 이짓도 싫어…"

**

"엣취!"

같은 시각. 쿠로요루가 울먹이며 욕조안에서 잠이 들었을 때, 페이커는 학원도시의 뒷골목에서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고 있었다.

"누가 내 이야기라도 했나?"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 하얀색의 구슬같은 것을 손안에서 굴리던 페이커는 갑자기 나온 재채기에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달린다.

달리고 있는 페이커는 검은색의 티셔츠 위에 회색 쟈켓. 그리고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무렇게나 기른듯한 흑발이었지만, 대조적으로 앞머리는 짧게 깎아 양쪽 눈썹이 다 보인다.

그리고 바지의 왼쪽 주머니에는 은색 체인. 왼쪽 귓볼에는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눈이 있는 조그마한 주사위 모양의 피어스를 하고 있는 조금은 양아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페이커의 헤어 스타일이나 악세사리는 몇년전 유행했던 연예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수있겠지.

페이커가 뛰고 있는 골목길은 스킬아웃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중 하나인지, 뒷골목의 벽에는 자신들의 그룹 포스터와 함께 바닥에 못을 뿌려놓았다던가 하는 조악한 함정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 조잡한 함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고 미로같은 뒷골목을 몇번이나 방향을 바꿔가며 달리던 페이커의 눈앞에, 순간 하늘에서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내려와 길을 막았다.

이상한 외계인처럼 생긴, 눈이 여러개 달려있는 듯한 형상을 한 가면같은 것을 쓰고 있는 남자는 그 가면에서 무언가 촉수같은 것을 꺼낸다.

"자. 너는 이거나 먹어라"

페이커는 그렇게 말하며, 그 기분나쁘게 생긴 가면의 한가운데에 오른팔을 쑤욱 하고 쳐넣었다.

달려오던 상대에게 라이트 훅을 맞은 충격에 뒤로 부웅 하고 넘어진 남자는 순간 머리쪽이 순간 공간채로 일그러지듯 압축되더니, 이내 노란색 불꽃을 내뿜으며 터져버렸다.

"흐응… 앞으로 2개인가"

계속해서 달리는 페이커는 손안에 있는 구슬을 달그락 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앞의 적은 처리했고, 아까의 녀석과 똑같은 가면을 쓴 녀석들이 뒤에서 두명이 더 쫓아오고 있다.

따로 모은 정보가 있기도 하지만, 저 외계인 같은 가면을 쓴 녀석들은 ​E​q​u​.​D​a​r​k​M​a​t​t​e​r​.​ 학원도시의 초능력자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양산형 병기인 '파이브 오버' 중 하나.

그 가면에서 나오는 이상한 날개로 공격할때, 아에 가면의 중앙에 ​E​q​u​.​D​a​r​k​M​a​t​t​e​r​ 라는 문자가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처음 그 모습을 본 페이커는 '참 친절한 녀석들이구만…' 이라고 중얼거리며, 힘들게 얻은 정보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슬퍼했다.

떠오르는 문자만 봐도 누구나 알수있듯이, 제 2위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부산물들. 유일하게 무언가를 '창조'하는 녀석이어서 그런지, 녀석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채 '저런것'을 만들기 위한 기계가 되버렸다.

"아레이스타의 세컨드 플랜도 참 안쓰러운 결말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페이커는 달리던 도중, 갑작스럽게 왼쪽 골목으로 꺾었다.

그리고 쫓아오던 두명중, 한명이 페이커를 쫓아가고 마지막 녀석이 왼쪽 골목으로 꺾으려는 순간

"한마리 더"

"!?"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페이커의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쫓던 녀석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가면에 있는 외계인의 눈 같은것이 번쩍이더니, 가면의 양 옆에서 번쩍 하고 커다란 새의 날개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기이이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꾸불꾸불 거리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의 무언가가 날개에서 발사되었고, 정확히 페이커의 위치에 떨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페이커는 무척이나 괴로운 얼굴로, 비명을 질렀지만

"……인줄 알았지? 이름도 까먹었는데, 상대의 눈에 들어오는 빛을 살짝 굴절시켜서 인식을 어긋나게 하는 능력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페이커는 그 가면에 다시 들고있는 하얀색 구슬을 쳐박는다.

다시 공간채로 일그러지듯 압축되더니 노란색 불꽃을 내면서 형체도 없이 터져버리는 ​E​q​u​.​D​a​r​k​M​a​t​t​e​r​ 의 폭발을 페이커는 대충 피한후,

"엇차"

페이커는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구슬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구슬의 바깥쪽을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는 방식으로 굴린다

하지만 구슬은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마치 초음속으로 이동하는 파란 고슴도치가 부스터를 하듯이, 제자리에서 돌기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방금 자신이 텔레포트 해서 온 골목길 쪽의 벽이 쾅! 하고 갈라지더니 다섯개의 촉수가 벽을 찢고 나타났다.

네개의 촉수는 순식간에 페이커의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목을 구속했다.

그리고 확실히 페이커를 죽이기 위해서인지 촉수가 나온 방향의 벽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나타난 ​E​q​u​.​D​a​r​k​M​a​t​t​e​r​는​ 아까 당한 녀석처럼 그 가면의 양쪽에서 커다란 새의 날개같은것을 꺼냈다.

기이이이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한번 무언가를 발사하려던 ​E​q​u​.​D​a​r​k​M​a​t​t​e​r​는​ 왠지 여유가 가득한 표정의 페이커를 보고 의아한지 고개를 까닥 움직였다.

동시에, 여태까지 바닥에서 돌고 있었던 하얀색 구슬은 팽팽히 당겨진 줄이 끊어진 것처럼 전방이 아닌 위쪽으로 튀었고, 그 구슬은 당연하게도 ​E​q​u​.​D​a​r​k​M​a​t​t​e​r​의​ 턱을 깨부수며 들어가서 아까의 녀석들 보다는 좀 높은 위치에서 터졌다.

그 때문인지, 마지막으로 당한 ​E​q​u​.​D​a​r​k​M​a​t​t​e​r​는​ 흔적도 남지 않게 터져 죽은 녀석들과는 다르게,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양 다리의 무릎 아래쪽만 남긴채 죽었다.

​"​하​아​…​" ​

아주 간단하게 이긴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커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다음 녀석은 그라비톤이 면역인가… 이제 진짜 슬슬 위험한데…"

제 2위의 뇌가 세등분 되어 시험관 속에 떠다니게 된 이후, 틈만나면 계속해서 저 녀석들이 자신을 습격해온다.

그것도, 어느 능력에 당하면 그 다음 녀석들은 그 능력의 대부분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2위의 능력이라면, 계속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능력자의 자연발화 유도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 그 물질에서, 한번더 세포가 붕괴되는 능력이 통하지 않는 물질로. 계속해서 진화한다.

"으음… 어떻게 해야되나…"

페이커는 마지막으로 죽은 녀석이 남긴 양쪽 발을, 마치 하교하는 학생이 돌을 차면서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뻥뻥 차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역시, 그 수 밖에 없나…"

예전부터 생각은 해왔지만 실현하지 못한일. 그것은-

"제 1위의 능력을… 훔쳐야 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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