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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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하는 것도 귀찮은지, 페이커를 추적하는 3명의 Equ.DarkMatter는 하나의 완전한 슬라임이 되어 있었다.
"대, 대체 뭐야 이것들은!!"
푸슉, 푸슉푸슉! 게임에서 나오는 효과음이라고 밖에 느끼지 못할 섬뜩한 소리가 계속해서 난다.
검은색의 슬라임은 온몸에서 가시를 내뿜는 단조로운 공격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단조로운 공격도 능숙한 컨트롤러가 조종을 한다면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슬라임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한, 180도 전방에서 나오는 수십개의 가시는 그 하나하나가 족히 10M 정도는 되보였다.
겨우 사람 3개 분의 질량에서 저 정도 규모의 가시가 나온다는 것은, 아마 그 가시의 속은 텅 비었을 것이다.
"좋은 움직임이야"
촌스러운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의 가면에서 나온 기괴한 모양의 날개.
여태까지의 Equ.DarkMatter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 양 쪽으로 2장씩 있던 날개는 4장로 늘어났고, 그 날개에는 커다란 사람의 눈 같은 것이 나있었다.
게다가 그 눈은 기분나쁘게 꾸물꾸물 움직이고, 그 날개는 마치 춤을 추듯 흐물거리고 있었다.
형태가 없는 검은 슬라임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유동적인 공격을 가한다.
족히 10M 는 되보이는 가시를 온몸으로 내뿜은 슬라임은, 그 가시의 끝 부분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다시 융합한다.
마치 그 가시의 끝부분 다른 부분을 끌어당기는것 처럼, 0.5초도 안되는 시간에 10M 를 전진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출렁출렁이는 형태로 돌아간 슬라임은 똑같은 방식으로 다음 공격을 가한다.
슬라임이 서 있는 땅 부분을 제외한 180도 전방향으로 나오는 수십개의 가시.
가시를 피해 후방으로 텔레포트를 하건, 공중으로 텔레포트를 하건, 그 가시의 수만큼의 선택지가 있는 검은 슬라임은 조금씩 페이커의 숨통을 죄여온다.
"크,큭…!"
이래뵈도, 실전의 전투경험은 무척이나 풍부한 페이커 였지만 그건 모두 다른 능력자나, 혹은 일반인, 아니면 파워드 슈트를 입은 군인 등, 어디까지나 '인간' 이었다.
이런 괴물같은 것과의 전투는, 경험은 커녕 상정한적도 없었다. 이것은 페이커 뿐만 아니라, 액셀러레이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페이커는마치 추적 미사일처럼,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거리를 좁히는 슬라임을 노려보며 딱! 하고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슬라임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주황색의 물결이 생겨났다. 마치 유리구슬을 장식하기 위해 안에 풀어놓은 물감같았다.
꾸물꾸물 하며, 슬라임의 내부에 생긴 주황색의 물결이 출렁이는듯 하더니, 순식간에 슬라임의 온몸이 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깨달을 때도 됬을텐데"
아까부터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은 말했다.
"이건 오로지, 너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야. 양산형 병기인 파이브 오버 내에서도 이질적인 것이지. 너는 최대 32수 안에 죽는다. 그 계산을 깨부술 만한 커다란 변화가 있지 않다면 말이야"
"하, 나는 저 1위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면 이기는거 아니였냐?"
"그것이 가능할때의 이야기지만"
그 가면에서 달려있는 4장의 날개가 왼쪽 아래 대각선에서, 오른쪽 위 대각선으로 무언가를 베듯 크게 움직였다.
동시에, 온몸이 불타고 있는 슬라임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시를 내뿜는다.
페이커는 여태까지 도망쳤던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크게 텔레포트하여 그 공격을 피했다.
(칫, 그냥 아주 멀리 도망치는건 일도 아니지만, 어찌됬든 나는 지금 그 1위에게 잡혀있는 몸이야. 이 빌어먹을 전극을 뗀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뇌가 오버히트 해버려서 죽어. 제길, 지금은 시간을 버는 수 밖에 없나)
페이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되는 슬라임의 공격을 피하며 어떻게 시간을 벌지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응?)
검은색의 슬라임은 쫓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컨트롤러인 붉은색 슈트 녀석을 가리듯, 그 몸을 출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
아까부터 계속해서 뭐라고 떠들어 댔던 붉은색의 슈트 녀석이 조용했다.
계속되는 슬라임의 맹공에 주위를 파악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렇게 어느정도 거리가 벌려지고 생각해보니, 슬라임은 마치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에게 멀어지게 하려는듯, 마치 양떼를 모는 개처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갔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컨트롤러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고 했을거야)
하지만 그런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페이커는 머리보다 수많은 전투경험으로 인한 본능으로 깨달았다.
(처음 저 붉은색 슈트 녀석은 내 뒤에서 나타났어. 그렇다면 몸을 지킨다고 보기에는 어렵군. 그렇다면 뭐지? 그만한 규모의 공격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던 녀석이 두려워 할만한건…)
무언가를 깨달은듯, 페이커는 그 입을 길게 늘어트리고 웃으며
"아하, 그렇게 된거였구만?"
"오호, 뭐가 말이지?"
페이커의 말에,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다고. 네 녀석이 어떻게든 나를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고 하는 이유"
"……"
"일부러 처음에 맨몸으로 내 앞에 등장하고 도발해서, 상대가 자신있어 하는 큰 규모의 기술을 유도시킨다. 보통 같으면 목숨을 걸고 하는 짓이겠지만, 너는 아무렇지도 않았겠지. 거기에 있는건 본체가 아니니까"
대답이 없는 붉은색 슈트 녀석을 무시한채, 페이커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렇게 상대의 공격이 아무 효과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의 내구력은 무지막지하다는 둥의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걸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슬라임의 맹공까지 합세한다면, 적어도 컨트롤러인 네놈을 공격할 생각은 못하겠지. 불사(不死)의 슬라임과 불해(不害)의 컨트롤러인가. 좋은 전략이잖아? 아마 정신계 능력자의 간섭… 일 경우는 적고, 무언가의 기계를 이용한 입체영상, 아니면 네놈의 능력자라던가. 뭐, 하여튼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공격하는 슬라임의 정밀성을 생각한다면, 아마 이 근처에서 숨어있겠지"
"이런, 이런"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단하군. 어디서 눈치챘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것이 첫째. 그 다음으로, 아마 그슬림이겠지. 처음 공격을 불로 정한게 다행이었어. 아무리 내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정도의 규모라면 어딘가에 화상이나, 아니면 적어도 그 옷에 그슬림이 생겨야 정상이야. 이 거리에선 보이지 않지만, 이상할 정도로 깔끔한 네놈의 몸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려고 한거겠지"
"하지만"
붉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는 페이커의 말을 자르듯
"그렇다고 해서 너가 뭘 할 수 있지? 저것의 공격을 계속 피하면서 본체를 찾을건가? 앞으로 14수. 14수면 너는 죽어"
"그건 말 안해도 알아서…"
순간, 저 멀리서 쾅! 하는 커다란 파괴의 소리가 났다.
그것이, 액셀러레이터가 5명의 Equ.DarkMatter가 만든 고기의 벽을 부수는 소리인 것을 페이커가 알 수 있을리는 없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페이커의 뇌속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뭐, 뭐, 뭐야 이거!?"
주변의 모든 정보가 뇌속으로 들어온다. 처음 액셀러레이터의 능력을 훔칠때와 마찬가지.
다만, 그때와는 다르게 시스터즈의 백업으로 그것들을 해석하는것이 가능해졌다.
마치 꿈을 꾸는것 처럼, 데자뷰로 느껴지는 정보가 끈임없이 뇌속으로 들어온다.
주변, 자신을 기준으로 정확히 몇 미터인지 파악할 정도의 정신머리도 남아있지 않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게임속의 케릭터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그 케릭터를 조종하는 다른 거대한 존재는, 자신의 뒤에 있는 적이나 멀리 있는 적의 위치, 적이 사용할 스킬, 대부분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 그 커다란 존재가 된것처럼, 불확실성을 배제한 모든 것의 정보가 들어왔다.
동시에, 다시 핑- 하는 느낌과 함께 아까보다는 커다란 현기증이 올라온다.
정확히 8.235초 뒤에 검은색 슬라임이 아까처럼 공격을 해온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공격을 피해, 어느 곳으로 도망치든 계속해서 도망친다.
그렇게 정확히 5번째의 공격을 피할때, 좌측 12m 전방으로 텔레포트를 한 자신은 이번엔 아까 붉은색 슈트를 공격했던 능력폭탄으로 공격한다.
수백… 아니, 정확히 215개의 조각으로 터진 슬라임은 3.512초 만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나는 그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고 앞으로 9번째 공격을 피했다고 생각했을 때, 아까 조각났던 슬라임의 잔해에서 가시가 솟고- 그대로 두개골을 꿰뚫려 사망한다.
너무나도 리얼한 영상 때문 이었을까, 아니면 순식간에 뇌가 오버히트 된걸까, 페이커는 무심코 휘청거렸다.
"그 몸으론 2수도 버티지 못하겠군"
그 목소리에, 다시한번 의식이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에게 집중된다.
녀석은 숨을 쉴때, 정확히 다섯번마다 왼쪽 검지 손가락을 2mm 정도 꿈틀거린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정보가 들어오는 위치는ㅡ
"거기냐!"
페이커가 처음 있었던 병실의 아래층 병실이었다.
6.25초가 지났다. 검은색 슬라임이 반응하기까지 1.985초. 페이커는 문답무용으로 그 병실로 텔레포트 했다.
역시나, 그 곳엔 붉은색 슈트를 입고, 이상한 가면을 쓴 녀석이 당황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내구력이 무지막지하다고 말한것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다.
어중간한 능력은 통하지 않는다. 제 2위의 능력으로 인해,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물질로 만들어진 슈트. 그것이, 가해지는 거의 모든 초능력의 위력을 약화시킨다.
유효한 것은 물리적인 타격. 능력으로 인해 강화된 타격이라도 약화되기 전 가해지는 충격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페이커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최대한으로 전개한뒤, 그 오른손으로 주먹을 쥔다.
그리고, 또다시 미래와도 같은 정보가 페이커의 뇌속으로 들어온다.
"내 거짓말을 잘 파악했군. 하지만,"
붉은색 슈트 녀석의 가면에서 나와있는 4장의 날개.
그 중, 아래에 있는 2장의 날개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붉은색 슈트 녀석의 마지막 거짓말.
"공격능력이 없단 것도 거짓말이다!" "공격능력이 없단 것도 거… 뭣!?"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모니를 이룬다.
중간에, 자신이 할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페이커의 모습에 당황한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이 말을 멈췄지만 말이다.
페이커는 능숙하게, 그 날개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러자 번쩍- 하는 눈부심과 함께, 페이커의 뒤쪽에 있던 병실의 벽이 직경 3M 되는 정도의 구멍을 내며 사라졌다.
처음, 쌍소멸 반응을 내는 정체불명의 공격은 이 붉은색 슈트 녀석들의 전용 무장이었다.
페이커는다시 그 오른손으로 주먹을 꽈악- 하고 쥐며,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구한테도 완전 질것 같지 않다고!"
"그 말투… 아이템의…"
자신의 몸 주위 몇 cm에 질소를 조종하는 능력. 그 질소로 인해, 물리법칙을 무시할 정도의 괴력을 낼 수 있는, 진심이라면 인간조차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주먹이 내어진다.
가면 위라 보이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새파란 얼굴이 된 붉은색 슈트의 녀석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이 당황하며
"설마, 너는 그 계획의 생존…!"
파앙! 페이커의 주먹이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의 복부에 작렬한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풍선이 내부에서 터진 것처럼,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의 복부는 형체를 알수가 없게 되고, 양 팔과 양 다리, 그리고 머리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헉, 허억, 헉…"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머릿속에서 연결된 무언가의 선이, 다시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능력을 사용해봤지만, 역시나 능력이 발동되지는 않았다.
아까의 그 기묘한 정보도, 더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서 있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양 무릎에 팔을 올린 상태로 페이커가 헉헉 대고 있자
"화려하게도 해주셨구만"
방금 만들어진 구멍에서, 지긋지긋 하다는 표정의 액셀러레이터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