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변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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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표정의 페이커가 그 입을 천천히 열었다.
딱히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당황한 페이커가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야 하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버린 것이다.
"뭐,야 이 녀석은…"
모델케이스 멜트 다우너는 '요새형' 병기다.
파워드 슈트처럼 인간이 착용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싸우기 위해 설계된 병기가 아니다.
오로지, 거점을 사수하고 그 압도적인 화력으로 접근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병기.
같은 기술력에 같은 자원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파워드 슈트의 이동속도와 가벼움을 포기하는 대신 요새형 병기가 얻는 이점은 파워드 슈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내구력. 파괴력.
그리고.
"레벨 5(초능력)의 텔레키네시스(염동력)이라도 불가능해…"
무게다.
페이커의 예측대로라면 15톤은 되보이는 그 병기를, 아주 간단히 지상 20M 높이로 뛰운다는 것은 완전히 규격 외의 힘이었다.
금발 녹안의 남자는 페이커쪽을 쳐다보면서, 느긋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동시에 페이커는 몸을 움찔. 하며 그 움직임에 대해 경계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페이커의 뺨에서 식은땀이 한방울 흘렀다.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냐…"
페이커는 자신과,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쿠로요루도 겨우 들릴 정도로 중얼거린다.
자신이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페이커는 공황 상태였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해석하여 한없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페이커조차 알 수 없는 능력. 과학도, 마술도 아닌 그 제 3의 힘.
"크읏…"
하지만 페이커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힘의 총량이 높다고 하더라도 약점을 노린다면, 페이커의 다양한 능력으로 하나의 빈틈을 만든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반드시 존재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라고 해도 그것도 과학이나 마술같은 하나의 규칙이 있는 능력일것이다.
누구보다도 정보의 관찰과 해석이 능숙한 페이커가 전투중에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리도 없고, 이미 '과학'이라는 하나의 사이드에서 7명 밖에 없는 레벨 5(초능력자)인 페이커가 그것을 두려워 할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조'가 없는 공격은 어떠한가.
아무리 과학이라도, 마술이라도, 어떠한 현상이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것은 절대적.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
사람을 때리기 위해서는 그 신체를 뻗어서 맞춰야 하고, 총을 쏘기 위해서는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뇌의 신경을 총에 직접 연결해 생각만으로 총을 쏜다고 해도 마찬가지. 뇌에서 내리는 '신호'로 그 행동이 이루어지므로, '전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마술이라도 주문을 외우고 생명력을 마력으로 정제하는 그 '흐름'이 느껴진다.
얼핏 그런 '전조'가 보이지 않는 듯한 초능력조차, 능력이 발현되기 전 AIM확산역장에 의해 그 '전조'가 나타난다. 방금의 멜트 다우너가 페이커의 공격을 회피기동만으로 피한것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그 최소한의 '전조'마저 보이지 않았다.
"………"
모션 없음. 영창 없음. 행위 없음. 의식 없음.
그럼에도 발동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현상.
그런 '전조'가 없다는 것은 방어를 할수도, 회피를 할수도, 공격을 할수도, 약점을 찾을수도, 최소한의 대항책을 찾을수도 없다는 소리가 된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막고, 무효화하고, 약점을 찾는, 그러한 일반적인 전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과학이 틀렸다.
이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완전히, 세계의 룰에서 벗어나 있다.
그럼 이것을,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럼 도대체 뭐가 옳은거야…?"
"어이"
그런 페이커의 혼잣말을 못들어주겠는지, 그 등에 업혀 있는 상태의 쿠로요루가 말했다.
"언제까지 업고 있을…"
"닥쳐"
그런 쿠로요루의 말을, 흉악한 말투의 페이커가 일갈했다.
마치 그 학원도시 최강의 능력자 같은 말투.
그 피부를 찌르는 듯한 폭력의 상징과 같은 살기에, 쿠로요루는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쿠로요루가 말을 건 것 때문에 자신이 중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페이커는 생각했다.
(도주… 가능할까)
금발 녹안의 남자는, 폐허가 된듯한 공장에서 유일하게 안전지대였던 정체불명의 소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러시아어로 추정되는 말로 소녀에게 뭐라고 하자, 소녀는 울면서 그 남자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다시 몇마디의 대화를 나누는듯 하더니ㅡ
"뭐야, 학원도시의 회수부대가 아니었어?"
다시 유창한 일본어로, 아까의 압박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너, 이 아이를 구해주려고 했다지? 난 또 그 '원석' 회수부댄줄 알았다고"
"…원석?"
금발 녹안의 남자는 '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원석이 뭔지도 모르면서 구해주려고 한거면 너, 좋은 사람이구나"
"네 녀석… 능력자냐? 아니면, 마술사냐?"
"마술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건가. 하긴, 학원도시의 능력자가 학원도시 외부에 있다는 것만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페이커의 물음에, 금발 녹안의 남자는 위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음거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그 오른손을 건네며 말했다.
"내 이름은 올레루스. 마신(魔神)이 되지 못한 비참한 마술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