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변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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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가에서 골목길로, 그리고 그 골목길 안에서 다시 골목길 안으로, 그렇게 몇번이나 들어가면 '위성으로 확인해도 보이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허름한 영화관을 찾을 수 있다.
영화관이라고 해도 그리 거창한것은 아니다. 아니,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까… 그도 그럴것이 이 영화관에서는 항상 이름도 모르는 감독의 B급 영화만 상영하기 때문이다. 매 상영시간마다 관객이 한명조차 없는건 예삿일이고, 관객수는 가끔 1명. 그리고 많으면 2명이다. 뭐, 그 2명의 관객이라고 해도 항상 같은사람 이지만 말이다.
보통의 영화관에서 상영할 '팔리는' 영화는 왜 없는걸까. 하고 생각을 해봐도 보통 같으면 그런 유명한 영화의 판권을 구입할 돈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하기엔, 항상 파리만 날리고 적자 투성이인 B급 영화관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이상한, 그런 영화관이다.
"우음. 구리네요"
아무도 없는것 같은 상영관의 특등석(이라고는 해도 좌석수 자체가 얼마 없지만)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이름은 키누하타 사이아이. B급 영화를 완전 좋아하는 전직 암살요원인 이 소녀는 앞서 말한 이 영화관의 고정 관객중 한명이다.
지금 키누하타가 보고 있던 영화는 10분짜리 영화를 한편 상영하고, 5분 휴식후 다시 10분짜리 영화가 상영되는 쇼트필름(단편영화).
검은색 화면에서는 THE AND 라고 짧은 영화의 끝을 알리며, 노골적으로 후속편이 예상되는 엔딩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엔딩을 보고 있던 키누하타는 손에 들고 있던 팝콘을 와구와구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진짜 완전 완전 완전 구리네요. 이건 완전 B급 영화에 대한 완전 모욕이에요. 내가 보고 싶은건 진심으로 할리우드를 때려부술 열정으로 만들었지만 중간에 꼬여서 결과물이 B급인 영화지, 이것처럼 완전 처음부터 B급을 노리고 일부러 퀄리티를 낮춘 작품을 원한게 완전 아닌데요"
영화관에서 이처럼 크게 소리를 지르는 소녀의 공공장소 예절이 의심됐지만, 손님이 한명이니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역시 하마즈라를 끌고올걸 그랬어요"
조금 뾰루퉁한 표정의 키누하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내내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완전 세게 찍혔어요' 라고 분해하면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이름 모를 감독과, 타키츠보와 데이트를 하느라 키누하타와의 약속을 깨버린 하마즈라에게 욕을 쏟아부었다.
돌아오는 길에 추가의 콜라를 구입한 후, 자신의 특등석으로 도착하자 타이밍 좋게도 정확히 다음 영화의 도입부 부분이 상영되고 있었다.
다음 영화가 상영된지 5분.
"누, 누구죠 이 신인감독!?"
'B급 영화 평론가'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영화를 감상하던 키누하타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상영중인 영화가 기존 유명한 B급 영화의 감독(미묘하다)들의 작품에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키누하타의 하트에 직격하는 정도의 수작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마즈라가 본다면 '뭐야 이 영화?' 라고 할 정도의 작품이지만.
"처음에 지나가는듯이 말했던 히로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바나나라는게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인간족의 왕녀가 사실은 원숭이라니 완전 무서운 반전이에요! 이런 영화를 혼자 봤다니 완전 아까울 정도!!"
"글쎄,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이걸 보고도 모를 수 있어요!? 종족을 뛰어넘은 사랑과 전쟁. 그 너머에 있는건 종의 화합이라는 완전 의미있는 교훈까지 주고 있잖아요 멍청한 하마즈……………엥?"
어느샌가 옆자리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얼떨결에 대답한 키누하타였지만. 지금쯤 제 3학구 쯤에서 놀고 있을 하마즈라가 이곳에 있을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섬짓. 하는 차가운 감각.
(기척이, 없었다구요!?)
아무리 영화에 신경이 팔렸다고 해도 키누하타는 오랫동안 학원도시의 '어둠'속에 있던 베테랑이다. 상영관의 문을 여는 소리. 자신의 옆자리까지 오는 기척을 자신이 놓칠일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이후의 움직임은 빨랐다.
키누하타는 내용물이 반쯤 들은 팝콘을 봉지채 남자의 얼굴에 던지고, 순식간에 자동차도 간단히 들수있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의 악력으로 상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누구죠 당신"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일격에 상대를 다진 고기로 만들 의지가 확실히 느껴지는 진지한 음색이었다.
"우왓. 나야 나. 얼굴을 보면 알잖아"
하지만 멱살을 잡혀있는 남자는 키누하타가 던진 팝콘 봉지를 머리에 쓰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키누하타는 눈을 가늘게 뜬채, 조심스럽게 멱살을 잡고 있는 반대쪽 손으로 팝콘의 종이봉지를 잡았다. 그리고 그 종이봉지를 올리려는 순간,
"!?"
마치 노렸다는듯, 멱살을 잡히고 있는 남자가 키누하타를 향해 빠르게 양팔을 뻗었다.
한손으로는 상대의 멱살을 잡고 있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팝콘봉지를 잡고 있는 상황.
아무리 키누하타가 경계를 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남자보다 빠르게 반응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조금 올라간 봉지의 밑에 보이는, 씨익ㅡ 크게 웃고 있는 남자의 입.
(아뿔싸, 당했…!)
본능 레벨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에 늦게나마 주먹을 고친 키누하타였지만.
"아이스께끼~!!"
펄럭, 하고.
보는것 만으로 폭신폭신함이 느껴지는 키누하타의 니트제 원피스가 올라가, 그 안에 숨겨서 보여주지 말아야 할 천쪼가리를 오픈시켰다.
상황을 이해 하지 못해 주먹을 뻗는 자세로 그대로 굳은 키누하타가 '에?'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자, 상대는 '이, 이거' 라고 중얼거리더니
"엥, 레이스 달린 흰팬티? 너한텐 별로 안어울리는데"
키누하타는 방금까지 'B급 영화 평론가'의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던 자신의 표정의 진지함을 가볍게 뛰어넘을듯한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팬티를 감상하고 있는 '팬티 평론가'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페이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전혀 위력을 조절하지 않은 최대급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의 주먹을 그 얼굴에 내려꽃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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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누하타 사이아이는 영화관에서 나와 무의미하게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전직 '어둠'인 그녀가 이렇게 계획도 없이 돌아다녀도 괜찮은가, 싶지만 뭐 어떠랴. 학원도시의 어둠은 해체됬으니, 겉으로 보면 그녀도 학원도시의 평범한 학생이다.
그렇다곤 해도 확실히 키누하타에게도 오늘의 스케쥴은 제대로 잡혀 있었다. 오후부터 2시간 정도 영화관에서 B급 영화를 감상하다가 적당히 데이트가 끝났을 타키츠보와 하마즈라를 급습. 그때부터 하루종일 하마즈라를 놀리면서 충실한 하루를 지내면 그것으로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영화관에서 나온 키누하타는 하마즈라 일행쪽으로 이동하지도 않고, 멍한 표정으로 그저 아무런 목적없이 흐느적 흐느적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라고 하면,
"이야, 죽는줄 알았네. 하의실종 패션이라는건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손부터 나간다고"
"…"
꽤나 그리운 얼굴이지만, 동시에 앞으로도 안마주쳤으면. 하던 악연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사용하고 있다는걸 알아도 너무한거 아냐?"
"……"
"너는 무의식중에도 사용하는 패시브일지 몰라도 나는 의식을 해야한단 말이야. 실수로 깜빡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
"응? 키누하타"
"아아, 정말!"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중얼중얼 말하는 소년에게 몸을 돌려 우왁! 하고 화를 낸 키누하타는 그 조그마한 신체를 들썩이면서 말했다.
"왜 아까부터 내 뒤를 그렇게 완전 졸졸 쫓아다니는 거에요 페이커?"
"응? 글쎄~ 그거보다 왜이렇게 쌀쌀맞아? 세달만인가? 아니, 최근에 병원에서 본적이 있던가"
키누하타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그렇게 맨날 텔레포트로 슝슝 돌아다니면서 만났다고 완전 주장해도 이쪽은 기억 완전 기억 못하거든요. 아니면 뭐에요? 완전 스토킹이라도 한거에요?"
"앗. 들켰다"
"진짜……"
항상 어디서나 쿨뷰티(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봐도 쿨데레)인 키누하타를 이렇게 까지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은 학원도시. 아니, 전 세계를 뒤져봐도 페이커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벼워 보이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표정. 하지만 그런 페이커의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 소녀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키누하타는 히죽히죽. 하고 약간은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페이커에게 말했다.
"이번 성격은 완전 가벼워 보이네요. 하마즈라가 멋있어 보일 정도로"
"뭐, 변화무쌍한 성격이라는게 내 아이덴티티잖아?"
변화무쌍…이라기 보다는 남을 흉내내는것 뿐이지만요.
키누하타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그것이 '금구'라는것은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은듯한 장난스러운 음색으로 화제를 돌렸다.
"쿠로요루는요? 같이 행동하고 있던게 아니었나요?"
"몇일전까지만 해도 같이 다니긴 했는데 말이야. 응? 잠깐. 내가 너한테 말했던가?"
"말은 안했지만 완전 당연하죠. 페이커는 완전 로리콘이니까. 완전 로리로리한 쿠로요루에게 완전 들러붙을게 완전 뻔하니깐요"
"어이 임마… 아무리 그래도 완전이 네 번이나 들어가냐…"
"그래서요? 그 완전 전쟁광인 여자는 어떻게 됐는데요?"
아주 조금은 진지해진 키누하타의 질문에, 페이커는 으음. 하고 조금 생각하는듯 하더니
"뭐, 내가 지긋지긋해졌는지 그대로 나가버렸어. 또 전쟁준비라도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키누하타는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괜찮은 걸까. 레벨 6 시프트 실험(절대 능력자 진화 실험)이 실패한 이후, 묘하게 그 1위가 물러졌다는 소문은 있지만,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1위가 바보는 아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자신에게 이빨을 들이민 상대를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말리지 않은건가요?"
"말릴 상황이 아니었기도 했지만 말이지. 그 녀석이 말린다고 들어먹을 녀석이냐"
"하긴, 그건 그렇네요. 암흑의 5월 계획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 똥고집은 완전 유명했거든요"
"아아. 그러냐"
"……"
"………"
너무 무리해서 화제를 바꾸려고 한걸까. 둘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에 페이커도, 그 말을 한 키누하타도,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그 연구소의 생활이 떠올랐을 것이다.
"엥. 근데 잠깐. 쿠로요루도 그러더만, 어쩌다 보니 내가 로리콘으로 굳어진거야?"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억지로 밝게 하듯, 페이커가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페이커가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화제를 돌린건지, 아니면 지금 흉내내고 있는 사람의 성격이 적당적당한건지, 그것만은 키누하타도 알 길이 없었다.
페이커에 대해 사적으로 가장 깊게 알고 있을 키누하타도 이모양이다. 혹시나 하지만 페이커 본인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쿠로요루한테 들이미는거 자체가 완전 로리콘이라고"
"아니 아니 잠깐만. 나는 너한테도 들이대는데?"
"응?"
완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요?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키누하타.
"그렇군. 너도 로리한 포지션이었나. 하긴 발육상태는…"
"완전 죽어볼래요!?"
퍼억!! 하고 키누하타가 페이커의 배에 어퍼컷을 날리자, 마치 개그만화의 한장면처럼 페이커는 5M 정도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텔레포트로 제자리로 돌아온 페이커는 훗. 하고 씨익 웃었다.
"때리면서 말하는건 반칙"
키누하타의 능력은 자신의 몸 주변에 얇은 질소의 막을 만드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
그 능력으로 물리적인 공격에는 거의 면역이 될 정도의 방어적 능력과, 동시에 자동차도 종이장처럼 들어 던질 수 있는 괴력을 가진 키누하타는 근접전에서는 거의 무적의 전투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상대도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사용한다면 물로 물을 베는것과 마찬가지였다.
페이커에게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것이 화가 나는건지, 아니면 자신의 발육상태를 지적받은것이 화가 나는건지, 키누하타는 빨개진 얼굴로 가으가가가가가ㅡ! 하는 의미를 알수없는 소리를 내더니
"이래뵈도 벗으면 완전 굉장한 편이라구요!"
"글쎄…"
"진짜 이 완전 멍청한 놈이이이이이이이이이!!"
다시 퍼억!! 하고 키누하타가 페이커의 얼굴을 옆으로 때리자, 부웅. 하는 효과음이 어울릴 정도로 멀리 날아가는 페이커. 하지만 멀리 날아간 페이커는 어느새 키누하타의 옆에 있었다.
"근데 말이야. 로리콘이라는건 대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하는거지? 8세부터 14세. 이런식으로 정해져 있는건가? 그것도 아니면 남자의 나이에서 -10 뭐 이런다던가?"
"…완전 하마즈라가 보고싶어요……"
키누하타는 아까 전에 화제를 돌린것은 100% 아무런 생각 없이 한거라고 생각하며,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옆에서 저런 의미없는 소리를 하는 페이커를 무시한채, 옆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콜라를 집어들었다.
"그럼 나도"
라고 촐싹거리며 들어온 페이커 역시 콜라를 집어들었다. 딱히 바라지도 않았지만 두개의 콜라는 페이커가 계산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는 점원의 말을 뒤로한채 편의점의 자동문을 넘어온 키누하타는 콜라의 뚜껑을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순식간에 350ml 짜리 콜라의 내용물을 비워버린 키누하타는 그 콜라캔을 한손으로 콱 하고 쥐면서 물었다.
"그래서. 완전 무슨 용무가 있어서 그런가요. 페이커"
방금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완전히 지우는 진지한 목소리.
'작업'에 들어갔을때의 표정을 한 키누하타는 근처의 쓰레기통으로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에 의해 동전 크기만큼 압축된 콜라캔을 휙, 하고 집어던졌다.
"별건 아니고, 조그마한 물건이 하나 필요해서 말이야"
그러자 페이커 역시, 350ml 짜리 콜라를 꿀꺽꿀꺽. 순식간에 비우더니, 그 콜라캔을 키누하타처럼 압축해 쓰레기통에 던졌다.
아까의 남자와 정말 동일인물이 맞는건지 의심이 갈 정도의 진지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눈 앞에 있는 페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 나한테 양도해줬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