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r.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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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는 합리주의자다.
그는 만화에서나 소설에 나올법한 악당처럼 정정당당하게 적에게 싸움을 걸거나 하지 않는다.
가장 합리적인건 암살. 적은 리스크로, 적은 시간을 들여 확실하게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암흑의 5월 계획 이후 살아남아, 자신의 능력으로 먹고 살기 위해 세계를 오가며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을때도 마찬가지 였다.
학원도시 밖에서의 암살은 솔직히 말하자면,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정도의 난이도다.
학원도시 내부에서도 대응하기 어려운 텔레포터. 그것도 일반적인 능력자와는 다르게 여러개의 능력을 다루는 페이커를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개중엔 학원도시의 협력을 받아 레벨 4(대능력자) 클래스의 경호원을 수명 붙인 경우도 있지만, 레벨 5(초능력자)와 레벨 4(대능력자)의 단순한 전력차는 100배 이상. 전략병기 취급을 받는 레벨 4(대능력자)가 혼자서 군대와 싸움이 가능한 레벨 5(초능력자)를 이기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페이커는 예외 중의 예외.
단 하나의 능력만을 사용하는 학원도시의 능력자라는 룰을 깨부수어버린, 상식 외의 존재. 그렇기에 그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니,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 할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목숨을 노리는 목표는 페이커 이상의 예외였다.
초능력을 포함한 이능력. 심지어 마술조차도 무효화 하는 능력. 페이커의 예상에 의하면 그 범위는 적어도 오른손에서 오른손목까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다지 대단한 능력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단하고 가치가 높은 능력이긴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거의 완전하다 시피 무의미 하다.
적어도, 페이커의 관점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모든 이능력을 무효화 한다고 해도 오른손 한정. 그런 능력이 있다 해도 모든 공격을 오른손으로 막는다는건 불가능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를 공격하거나 주변지형을 이용하면 아주 간단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녀석의 능력은 단순히 허세에 불과하다. 갑자기 자신의 능력이 지워진 능력자가 당황해서 멋대로 겁을 먹고 녀석은 그 틈을 노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페이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다.
카미조 토우마. 라는 레벨 0(무능력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심지어, 액셀러레이터라는 학원도시 최강의 레벨 5(초능력자)를 쓰러뜨린 녀석.
페이커는 생각했다. 만일 자신에게 같은 능력이 있다고 하면 그 액셀러레이터를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
녀석에게는 무언가가 있다.
아레이스타의 플랜에 가장 중요한 인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녀석.
녀석의 오른손이, 정말로 단순히 모든 이능력을 지우는 능력뿐인걸까.
그래서 페이커는 만전을 기했다.
딸칵.
한낮인데도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대구경 저격총의 조립이 완료되는 소리가 울렸다.
지금 페이커가 있는 장소는 카미조 토우마의 기숙사의 반대편에 있는 기숙사다. 조금만 운동신경이 좋아도 옥상에서 옥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붙어 있는 이 기숙사는, 지금 시간이라면 거의 햇빛이 들지 않고 있다.
페이커는 정확히 그 현관문에서, 페이커는 검은색의 천을 위에 덮은채 엎드려 있었다.
"학원도시의 학생만 아니라면 일조권이니 뭐니 하면서 엄청 말이 많았을 텐데. 잘도 이런데 살고 있구만"
페이커는 마지막으로 총의 이상이 없는지 점검을 하며 중얼거렸다.
"안그래 형씨?"
"웁ㅡ 우웁!!"
페이커가 있는 어둠의 너머에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사지가 묶인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반응했다.
"웁,웁!!"
"어이, 죽이는 것도 아니니까 좀 조용히좀 하라고 말 했을텐데"
남자가 입이 막힌채 계속해서 우웁! 하고 소리를 지르자, 페이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살릴 의도도 없는 듯한 목소리에 남자가 다시 조용해지자 페이커는 조용히 스코프에 눈을 가져갔다.
"…칫"
그 너머로 보이는건 목표물인 카미조 토우마와 그의 동거인일터인 은발의 수녀. 그리고,
"제 3위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학원도시 3위의 레벨 5(초능력자). 레일건(초전자포) 였다.
"……"
얼굴을 찡그리고 조금 고민하던 페이커는 엎드린 자세로 총을 견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은 무르고, 나중에 표적이 혼자 있을때를 노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저격이 실패하면 독살을 시도해도 되고, 그것도 안된다면 기숙사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 능력의 다양성과 지독한 합리성 덕분에, 페이커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지금의 1위라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그 에이와스가 자신의 눈 앞에 직접 나타나서 말할 정도면, 아레이스타 녀석의 플랜은 거의 막바지.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다. 오늘 뿌리를 뽑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거리는 100m 이내… 풍속, 의미 없고. 습도, 역시 의미 없고. 이 거리라면 못맞추는게 더 신기할 정도겠네"
학원도시의 암부가 사용하는 총기류 중에서도, 이 녀석은 특별하게도 스마트 웨폰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 스스로 타겟의 거리, 재질과 습도, 풍향 등을 계산하여 가장 확실하게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탄환을 발사한다.
그 모든 것을 파악한 페이커는 천천히, 그 손가락에 걸려있는 방아쇠에 힘을 줬다.
투콰아앙!!
갑자기 소리를 듣는다면 귀가 멀 정도의 폭발같은 굉음과 함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확실하게 타겟의 목숨을 빼았는 탄환이 발사됐다.
하지만 총탄이 발사되는것과 거의 동시. 페이커는 분명히 보았다. 레일건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모습을.
"어처구니가 없군. 이거 괴물이잖아"
한심하게도 페이커는 자신도 같은 레벨 5(초능력자)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너머에 있는 있는 다른 레벨 5(초능력자)은 스마트 웨폰에 드는 전류, 혹은 단순히 격철이 탄알을 때릴때 발생하는 미세한 전류를 파악하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강력한 자력을 발생시키는 전류를 만들어내 100m 이내에서 발사된 대구경 저격총의 탄환을 문자 그대로 '밀어냈다'.
이것이 3위의 능력 운용법.
단신으로 군대와 싸울 수 있는 정도의 능력.
"하-!"
페이커는 들고 있는 저격총을 집어던지고, 목표물의 뒤로 텔레포트 했다.
그리고 곧바로 갑자기 베란다의 창문이 깨져 당황하고 있는 카미조의 경추(頸椎)를,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두르고 있는 주먹으로 내려쳤다.
하지만 동시에, 페이커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레벨의 전격이 날아왔다. 페이커는 자신도 순간적으로 전격사의 능력을 사용해, 뻗고 있는 주먹을 피뢰침처럼 이용하여 그 전격을 흡수했다.
"6위!!!!"
"우왓!?"
달려가듯이 앞으로 뛰쳐나온 미코토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카미조의 뒷덜미를 냅다 당기며, 마치 방패처럼 카미조의 앞에 서자마자 거리가 좀 있는 인덱스의 수녀복에 달려있는 옷핀을 전류로 끌어당겨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온몸에서 파직. 파직. 하고 나오는 전류와, 그 이상으로 찌릿찌릿하게 느껴질 정도의 분노에 가득찬 시선.
하지만 당황한듯한 표정인 페이커의 시선엔 그녀가 아닌, 레벨 0(무능력자)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반응, 했다고…? 그걸? 어떻게?)
페이커가 텔레포트를 한 것과 동시. 카미조는 자신의 등 뒤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같은 텔레포터면 모를까, 레벨 0(무능력자) 따위가 텔레포트의 좌표값을 미리 알아냈다고…? 아니, 능력의 전조를 미리 눈치챈건가? 그따위 일이 가능할리가!)
"미, 미사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 녀석이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지금 무슨 얼빠진 소리를 하는 거야 넌!?"
미코토의 외침에 페이커의 의식이 각성했다.
기분탓. 아니면 그저 우연일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페이커는 카미조 토우마를 죽이러 왔다. 녀석이 죽는다면 그런 의문 따위는 사라질 것이다.
"넌… 저번에 액셀러레이터랑 같이 다니던 녀석이잖아"
드디어 상황을 인식한 카미조는 그 오른손을 쥐고 자세를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자신의 목숨이 노려졌다는 분노가 아닌, 아군에게 공격받아 '어째서 네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썩어 빠질 정도로 착한 녀석이었어. 착하다고 할까, 무르다고 할까, 그 기묘한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람 자체가 껄끄럽게 느껴진다고 해야되나… 너나 내가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혀질걸?'
이곳에 오기 전, 쿠로요루가 했던 말.
(이런 뜻이었나.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얼굴이라니, 믿기지가 않는군. 얼마나 착해빠진거야?)
페이커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멍청이를 보는듯한,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네가 토우마를 노리는 거야…?"
그러자, 정면에서 페이커와 대치하고 있는 미코토가 말했다.
"대답해! 지금은 쿠로코 때와는 달라! 이 바보가 너한테 해로운 일을 했을리도 없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야!? 또 그 잘난 '어둠'이야!?"
그 질문에 페이커는 기분이 나쁜듯 얼굴을 찡그렸다.
마치 자신이 어둠의 상층부. 즉, 아레이스타의 꼭두각시 처럼 움직인다는 발언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페이커는 대답했다.
"아니, 이것은 단순한 내 의지다"
"…뭐?"
"어이, 카미조 토우마"
페이커는 미코토의 말을 자르며, 용건이 있는건 너라는 듯이 카미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농담같은게 아니야. 이건 진짜다. 학원도시 전체를 위해서… 아니, 세계를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테냐?"
"대답할 필요도 없잖아"
카미조는 양쪽 눈에 결의에 가득찬 힘을 주며,
"그런 비겁한 사실이 존재한다면, 우선 그 웃기지도 않는 환상을 부숴주지"
"합리적이지 않아"
페이커는 카미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너는 한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60억명의 목숨을 저울질 한거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이건. 1과 60억.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설명을 해줘야 하나?"
그렇게 말하는 페이커의 양 눈은, 카미조 이상의 결의에 불타고 있었다.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 시선에 카미조가 흠칫. 하고 몸을 떨자, 페이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죽인다. 죽어야 하는 대상이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도. 아니, 그게 만일 내 자신이라도 나는 죽는다. 그것이 합리적인 일이니까"
"……"
"그러니까, 죽어"
핑- 하는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페이커의 능력이 발동됐다.
주변의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페이커의 뇌 속으로 들어온다. 모든 공기 분자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예측할 정도의 해석능력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와 변수를 파악해 '한없이 확정된 미래'가 보인다.
기본적으로 남을 모방하는 재주 밖에 없는 페이커. 그는 그 이름대로, 남을 흉내내기 위해 극한까지 발달한 관찰능력과 정보 해석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이해했다. 마술을 이해했다. 에이와스라는 이능의 존재를 이해했다.
(30분 정도면, 충분해)
제 3위의 공격 및 방어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리고 동시에, 카미조 토우마를 죽인다.
(조심해야 할건, 해봤자 저 오른손 뿐이야. 실수로라도 닿으면은 미래예측은 없어지겠지)
그렇게, 페이커는 '미래예측'을 사용하면서, 녀석의 오른손을 '인식' 했다.
"뭐,야…?"
페이커의 고운 얼굴이,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페이커는 완전히 매말라 갈라져 검은색의 무언가를 토할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