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r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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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조 토우마는 온몸에 있는 상처 때문에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이커가 말한 죽지 않는 운명이라던가, 아레이스타가 말한 세계의 이상을 정화하는 힘이라던가, 그런것은 상관없다. 카미조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일어났다.
"나도 벗어나지 못한 운명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너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레이스타는 그런 카미조를 흥미가 있다는 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조롱일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정진정명 '세계의 신'에 적합한 아레이스타가 겨우 인간의 행동을 자신의 손으로 제지시킬 마음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레이스타가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레이스타의 힘이 완벽한 이 뒤틀린 세계의 축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은 저 회색의 천사다. 회색의 천사가 아무리 모든것이 파괴당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더라도 물리적으로는 이 회색의 천사야말로 세계의 신. 그렇기에 저 신을 막는다는 것은 아레이스타를 막는다는 것 보다 훨씬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아레이스타는 방해하지 않았다. 방해할 필요를 못느꼈다.
카미조 토우마는 그런 아레이스타의 조롱에 반응조차 하지 않은채, 눈 앞에 있는 회색의 천사를 노려봤다. 지금도 회색의 천사는 그 쓸쓸한 회색의 날개를 느릿느릿 꿈틀대며, 근처에 있는 모든것들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전달시키고 있었다.
거기서 카미조는 그 회색의 천사의 모습에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우방의, 피암마…)
겨우 인덱스의 머릿속에 있는 10만 3천권의 마도서의 지식을 끌어다 쓸수있는 영장인 '요한의 펜'을 얻기 위해서,
겨우 카미조 토우마라는 레벨 0(무능력자)의 오른팔을 얻기 위해서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숨따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피암마.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피암마가 악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카미조는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지도 않지만, 그런 피암마를 '악인이 아니다' 라고 감싸줄 마음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앞에서 피암마가 악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려줄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다.
시작은 분명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세계에 무언가의 커다란 문제가 있고,
그것을 자신만이 눈치채고 있고,
자신에게 그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방법이 있다.
피암마는 거기서 모르는척 하지 않았다. 힘과 명예. 권력, 그 모든것을 가졌음에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 움직였다. 이 행성에 사는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 같은 조건이라도 해도 과연 몇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상회하는 힘을 얻고, 그 고귀한 행동이 의미를 잃어갔을 것이다.
그 의지는 마치 뒤틀린 세계처럼 뒤틀렸다.
아니면 그 뒤틀린 세계를 바꾸려고 했기에 같이 뒤틀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계를 지키려고 했던 피암마는 결국 자신의 힘에 잡아먹힌셈이 됐다.
그리고 그것은, 회색의 천사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커)
그렇기에 카미조는 눈 앞에 있는 회색의 천사를 노려봤다.
눈 앞에 있는 적. 쓰러뜨러야 할 적.
하지만 그것이 '타도해야 할 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한다.
구원한다.
운명같은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자신의 의지로,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이를 구원할 뿐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카미조는 회색의 천사를 향해 뛰었다.
커다란 유리를 통째로 깎아 만든듯한 회색의 천사는, 외로움이 전해지는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카미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미조는 그런 회색의 천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 이상한 꼴이 되어서 만족하는 거야!? 모든 것을 포기해서 만족하는 거야!? 너에게도 지켜야할 무언가가 존재하는 거잖아!?"
회색의 천사는 그제서야 자신의 회색 날개를 흔들었다. 수천, 수만장의 회색의 깃털은 순식간에 온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로 늘어났고, 그것들은 전부 카미조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마! 너는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았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때도 너를 걱정해주는 저 여자애를, 그대로 잃어도 좋다는 거야!?"
카미조 토우마는 많은 사람들은 구원해줬다.
언제나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몸을 다쳐가며 구원해줬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에게 카미조 토우마는 구원받았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이 무사하게 돌아와달라고 빌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의 위험에, 목숨까지 걸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해 세계를 지키려던 사람이, 그 사람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그 모두다 불행해져야 하는게 운명이라면"
무서운 기세로 증식하는 회색의 깃털은 카미조 토우마의 오른손으로 제거할 수 없다. 그 키누하타 조차 피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깃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떠한 깃털도 카미조에게 닿지 못한다. 마치 자력을 가진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마치 카미조가 회색의 천사에게 도달하는 길을 만들어 주듯, 백색의 길을 만들어 낸다.
"우선은, 그 빌어먹을 운명부터 부서주지!!"
비틀, 얼굴에 아무런 능력도 없는 레벨 0(무능력자)의 주먹을 맞은 회색의 천사의 몸이 흔들렸다.
**
" "
아무것도 없는 세계였다.
나무도, 물도, 하늘도, 사람도 없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회색뿐.
지평선 끝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회색의 세계는 완전하게 공허했다.
자신은, 그 세계의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있었다.
"……? 어디야 여긴?"
지독한 악몽을 꾼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 깬것처럼, 필름이 끊길때까지 술을 마시고 일어난것처럼,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어라, 나는 누구지?"
그러자 물컹, 하고 자신이 앉아 있던 회색의 바닥이 흔들렸다. 거기에 깜짝 놀란 자신이 엉덩이를 들자, 거기엔 찰랑이는 물이 담긴것처럼 은은하게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생각한 자신의 생각과 비슷했다. 회색의 물이 담긴것처럼 찰랑거리는 바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
하지만 그 바닥에 비추어지고 있는 것은 회색의 사람이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사람. 아니 뭐, 눈과 코, 귀와 입이 없는 달걀귀신 같은 얼굴이 특징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혼자 있는 자신. 그리고 그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지성이 있는 생물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뭉클, 하고 자신을 비추고 있던 회색의 바닥이 다시 흔들렸다.
"…?"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던 그 거울과도 같은 바닥은, 다른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하얀색의 머리카락. 모든 것을 증오하는 듯한 표정과 피로 물든듯한 붉은 눈.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신은 팔다리를 움직여가며, 확실하게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동시에,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모든 기억이 파괴되고 마음이 부서지고, 정신이 망가졌어도 지금 자신은 '신' 그 자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은 그 이름에 어울리듯이 모든 진리를 알고 있었다. 원망스러운 힘은 다시 한번 자신의 기억을 살려냈다.
자신이 페이커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자신이라는 주체를 찾기 위해 움직이던 것도. 쿠로요루나 키누하타를 상처입힌 것도. 자신이 그 액셀러레이터의 클론이라는 것도, 이 회색의 세계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도, 이대로 다시 모든 것이 파괴되리라는 것도, 이 반복행위가, 벌써 1만번 이상 계속되었다는 것도.
"우,아아아아…"
단말마같은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한채, 페이커의 정신이, 마음이, 기억이, 모든 것이 다시 한번 파괴됐다.
아니, 파괴될뻔 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같은 것이, 자신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그 타격감에 페이커는 아무것도 없는 회색의 세계에서 혼자 추하게 넘어졌다. 얼얼하게 아픈 얼굴을 쓰다듬으며 일어난 페이커가 그것이 자신이 맞은 것이라고 깨닫기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단순한 기적따위가 아니다. 이 세계에 기적이 없다는 것쯤은, 신인 페이커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신 그 자체인 페이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란, 그와 동급의 힘을 가진 그 존재밖에 없을 것이다.
"에이와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에이와스는 페이커의 정신에 숨어들어 페이커의 정신이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순간적일 뿐. 시간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정신세계이기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체감적으로라면 5분이나 10분 후에 에이와스의 힘이 사라져 다시 페이커의 자아가 파괴될 것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
합리적이지 않은, 멍청한 행위.
페이커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대로, 자신의 정신이 다시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사라질 정신. 페이커 본연의 호기심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과 동급의 존재인 에이와스에 관련된 세계의 지식은 끌어다 쓸 수 없다. 에이와스의 생각은 읽을 수 없으며, 그가 어떤 의도로 움직이는지 파악하려면 그저 인간의 상상으로 추리해야할 것이다.
지금 에이와스가 자신의 정신이 파괴되는 것을 막은것도, 단순한 유희일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그렇다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잠깐. 유희?
그렇다면, 이 행위에서 에이와스는 어떠한 유희를 얻는다는 것일까?
페이커가 구원받을 확률은 수학으로 친다면 0%.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의 영역. 어차피 페이커의 정신은 다시 부서질 것이고, 그것은 그 에이와스 조차 막지 못한다. 이미 한번 신으로 격상한 인간은, 두번다시 자신의 의지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다.
그렇다면 복수? 그것도 불가능 하다.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경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아레이스타를, '이 세계'의 신인 자신이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에이와스도 알고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에이와스는 굳이 신으로써의 개입을 하면서 까지 몸을 움직인 것일까? 자신에게, 어떠한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에이와스는 분명, 아레이스타의 편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페이커의 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에이와스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즐길만한 유희. 재미있는 오락을 보는것처럼, 아레이스타의 계획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없다고 했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합리적이지가, 않다.
하지만 거기서 페이커는 문뜩 깨달았다.
유희라는 것은, 꽤나 심오한 것이다. 게임이든, 스포츠든, 팽팽하게 싸우는 경기가 재미있지 한쪽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경기는 보는 쪽도 재미가 없다. 그렇기에 지고 있는 쪽을 응원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역전극이 나오게 되면, 그 유희는 최고조에 달한다.
혹시, 에이와스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의미가 없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채, 확정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페이커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아레이스타의 플랜이 '준비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변화한, 그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그 순간만 바꿀 수 있다면, 다르게 가정한다면 지금의 결과가 바뀔 수 있을까?
액셀러레이터가 키하라 아마타에게 연구되어 레벨 5(초능력자)가 되었을때?
특력연(특례 능력자 다중조정기술 연구소)에서 듀얼 스킬(다중 능력자)에 대한 열구가 활발했을때?
액셀러레이터의 DNA로, 자신이 만들어졌을때?
AIM 확산역장의 집합체인, 카자키리 효우카라는 존재가 만들어졌을때?
전부 아니다.
아레이스타는 카미조 토우마란 존재가 플랜의 98%를 차지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이 파괴되었을 때, 아레이스타와 카미조 토우마의 대화라면, 이 세계의 신인 페이커도 알수있다.
카미조 토우마가 기억을 잃게 된 계기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같을 것이다.
마술? 인덱스? 청교도? 아레이스타의 플랜? 아니다. 그것들은 전부, 장식에 불과하다.
카미조 토우마가 기억을 잃은 7월 28일 까지 일어난 인덱스와 관련된 사건이 시작된 이유라고 한다면, 그 인덱스가 가지고 있는 10만 3천권의 마도서야말로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마도서.
마도서가 이야기의 시작이라면. 아레이스타가 남긴 마도서에도,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레이스타란 인간이 죽기 전의 이야기.
엄청나게 유명해진 아레이스타가 마술 세계에 남긴 최대급의 비밀.
법의 서.
그것이 집필되었을 때 부터, 모든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세계의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은, 이 세계의 신인 페이커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내용에 대해, 에이와스는 말했었다.
'뭐 사실 내용은 별거 아니… 흠. 아니, 이것은 말할 수 없군. 계약 위반이 되어버려. 난 아레이스타의 플랜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과정이 즐거울 뿐이니. 이 정도 이레귤러는 남겨놔야 재미있겠지'
이 정도 이레귤러.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에이와스의 목적인 유희를 채울 수 있는 재미를 찾은 것일까?
'그 후 자신이 신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크로울리는 그때까지 하던 모든 활동을 접고, 시칠리아 섬에 은거해 '법의 서'라는 마도서를 써냈다. 뭐, 사실 그걸 마도서라고 하기엔 조금은 애매하지. 굳이 분류하자면 마도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도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퍼뜨리는 것을 최우선 사항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아레이스타의 법의 서는 마도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그것은 자신의 지식을 퍼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거기서 번뜩. 하고 페이커의 의식이 강해졌다.
만약, 정말로 만약 에이와스가 '패배하는 쪽에서 나오는 역전극의 재미'를 바라는 것이라면, 페이커가 이길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뒀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옛날 동화처럼.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고작 인간인 용사는 거대한 드래곤을 죽일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 하다. 수학으로 생각한다면 0% 다.
절대로 기적이 발생할 수 없는 0 %를 1% 로 만드는 기적. 그 전설의 검과 같은 무기를 찾아낼 수 있다면, 기적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페이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조합했다.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계기인 마도서.
아레이스타가 집필한 법의 서.
그 에이와스 조차 '계약 위반' 이라며, 유희를 위해 남겨둔 이레귤러라며 말을 하지 않은 법의 서의 내용.
그리고,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경계에 숨어 있는 아레이스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연관성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부, 마도서 때문이 아니였을까?
아레이스타를 일종의 귀신. 환상 같은 존재로 규정한다면.
그 귀신을 불러들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마도서이자, 아레이스타가 쓴 '법의 서'
"……………"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무엇이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어차피 자신이라는 존재는 조금만 있으면 다시 파괴된다. 주체가 없는 자아는 다시 한번 파괴되어, 영겁의 시간동안 파괴와 재생을 반복할 것이다. 모자란 시간에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고생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합리적이지가, 않다.
'그대가 원하는 바를 하라. 그것이 그대의 법이다'
순간 에이와스의 목소리가 들린듯 했다.
'법의 서'의 표지에, 유일하게 읽을 수 있게 영어로 되어 있는 문장.
'확실히, 합리적인건 완전 효율적인 일이에요. 합리적인 인간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항상 합리적인걸 고집하는게,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요…?'
동시에, 키누하타의 목소리가 들린듯 했다.
'나의 존재에 겁먹지 말고 행동해라. 그것이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다. 나는 너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 지금 이상의 여흥을 가져다 줄지, 무척이나 기대를 하고 있다. 마음껏 발버둥쳐서,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내라. 불쌍한 가짜(Faker)여'
순간, 에이와스의 목소리가 들린듯 했다.
발버둥을 쳐라.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들어 내라.
에이와스는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어떤 반전극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너를 그렇게 합리적인 판단으로 몰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냥 간단히 생각하면 편하다고'
'재미있는 발언인데. 그래. 예를 들자면?'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거 아니야?'
순간, 쿠로요루의 목소리가 들린듯 했다.
그러자 동시에, 쨍! 하고, 아무것도 없는 회색의 세계의 하늘에서 금이 갔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태양이 떠올라 있는 검은색의 밤하늘.
빠각. 빠각! 순식간에 회색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회색이 부서졌다. 그리고 다시, 페이커는 현실로 돌아왔다.
무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레이스타.
씨익 웃고 있는 카미조 토우마.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액셀러레이터.
회색의 천사는, 자신의 입을 벌려 말했다.
"zqwpetm, dgdjnbjeq"
뭐야, 이거
"mef신adf라df gjw체jdj는wrfcf"
자신이라는 주체라는건
"겨asbr, 이런era였wqdq?"
겨우, 이런거였어?
합리적인 판단을 포기해라.
합리적이지 않게, 추하게 발버둥쳐라.
어차피 자신이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추하게 발버둥을 쳐 아레이스타의 얼굴에 똥칠을 해버릴테다.
나름대로의, 나만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바를 하라. 그것이 그대의 법이다'
법의 서라는 마도서의 내용은 결국 그러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전부 더미였다.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천사의 술식도, 위험한 다른 세계의 지식도 쓰여져 있지 않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표지에 쓰여져 있는 그 한마디.
그저, 어떤 세계에서든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진리.
자신이라는 존재가 파괴당하기 전 페이커는 마지막으로, 추하디 추한,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 유리로 만들어진 몸을 과장되게 움직이며, 페이커는 자신의 입으로 소리쳤다.
"이것이 나의 법이다. 빌어먹을 놈아"
동시에, 바티칸 도서관에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마도서. '법의 서'의 원전이, 완전무결한 신의 힘으로 파괴됐다.
**
한때 페이커였던 회색의 천사가 천박한 표정으로 아레이스타에게 자신의 중지를 내밀며 그렇게 외친 직후, 회색의 천사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발의 끝부분 부터 서서히, 마치 빛이 되어 사라지듯이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흠"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무심코 그렇게 소리를 낸듯한 아레이스타도 마찬가지 였다. 그 신체는 마치 신기루 같이 흔들리며, 발끝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레이스타는 그 표정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은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다 네놈이 꾸민 일이겠지. 에이와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금발에 황금의 날개를 가진 황금의 천사가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황금의 천사는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존재했다.
"어떻게 된거지?"
"꾸민 일이라니 듣기 거북하군. 난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말했을텐데"
황금의 천사는 가면같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너를 이 세계에 고정시키고 있던 '법의 서'가 부서졌다"
"이 세계 그 자체와 동기화 되어 있는 마도서를 부술 수 있는 방법은 없을텐데"
"너는 이 세계를, 다른 세계의 위상을 덮어 씌어 자신의 의식마술인 magick를 완성시켰지. 그렇다면 너의 것인 '법의 서'는 그 덮어 씌인 세계 내에서는 '다른 세계의 지식'이 쓰여져 있는 마도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뒤틀린 세계의 축을 맡고 있는 저 가짜(Faker)는 너를 고정시키고 있는 법의 서를 부숨과 동시에,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거지"
"…그럼, 나는 패배한 건가?"
"그래. 너는 패배했다"
"흠"
신기루와 같이 사라지는 아레이스타는 거기서 단념한듯 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후회감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무언가를 떨친듯한 표정이었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운명에 패배하는 거군"
"운명? 그런건 존재하지 않아. 저 가짜(Faker)는 훌륭하게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않았나"
"…그럼, 나는 뭐에 패배한 것이지?"
"두말할 것도 없지"
이제는 완전히 흐릿해 보이지 않게 되는 아레이스타에게, 에이와스는 대답했다.
"너는 저 가짜(Faker)에게 패배한 것이다"
"…………"
그 후, 페이커와 아레이스타는 완전히 소멸했다.
"최고의 유희였다"
에이와스는 그 황금의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아레이스타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완전히 사라진 페이커가 있던 곳을 향해 자신의 날개를 접으며, 그를 인정했다.
"정정하지. 이제는 가짜(Faker)라고 부를만한 녀석이 아니군"
그리고 이내, 에이와스의 모습도 사라졌다.
**
학원도시의 비밀조직. 신생 아이템은 단골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어느 때처럼 음식을 시키고, 음료를 마시면서 놀고 있었다.
하마즈라는 비록 얼마 전에 세계가 뒤틀리고, 그날 바로 세계가 구원받는 모습을 지켜본 지구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얼마 되지 않을, 원래라면 역사서에 쓰일만한 중요한 인물중 하나가 되었지만, 다른 인원들의 음료수를 배달해야 하는 운명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자"
하마즈라만 내버려 두고 즐겁게 떠들고 있던 아이템의 인원들은, 두번째의 음료수를 리필해 가져온 하마즈라에게 대강 감사인사를 한 뒤(물론 타키츠보는 제대로 했다)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마즈라는 자신의 몫인 콜라를 들고 자리에 서 있는 채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 귀를 집중했다.
「새롭게 학원도시의 이사장으로 선출된 오야후네 모나카씨는 기존에 존재하던 학원도시의 비리나 어둠에 대해 인정. 그 내용을 여가없이 공개했습니다. 더러운 학원도시의 이면을 공개하며, 그 남은 잔재까지 없애는데 주력할것이라는 말에 고레벨 능력자들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원래의 학원도시의 총괄 이사장이 '행방불명' 된지 5일. 원래라면 당연히 새로운 이사장이 투표로 선출되어야 하지만, 그 아레이스타를 따르던 측근들은 그것을 공개하지 않은채 자신들중 누군가가 총괄 이사장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학원도시 최고의 천재인 쿠모카와 세리아의 작업과 이간질로, 2일도 채 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사태가 일어나 결국 총괄 이사회의 대부분은 '사고'라는 명목으로 목숨을 잃었다. 뭐, 그것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하얀색 머리를 가진 흉폭한 레벨 5(초능력자)가 움직였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오야후네가 예전부터 주장하던 '학생들의 투표권리'가 실현됐다. 그렇게 남은 이사회와 학원도시 내의 성인들, 그리고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의 투표로 오야후네가 이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 이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측근인 카이즈미 츠구토시와 같이 이사장직을 겸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짜, 학원도시의 어둠이 박멸되겠네"
"오야후네라면 가능할거야"
하마즈라가 그 라디오를 멍하니 듣고 있자, 무기노와 타키츠보가 대답했다. 그리고 무기노는 신경질적이게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제 할만한 일은 학원도시 바깥으로 나가 암살일을 하던지, 아니면 재미없는 호위일밖에 안남았잖아!"
"무슨 소리야? 네 능력은 쓸데가 많잖아?"
"앙?"
무기노는 하마즈라의 말에,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나이프를 역수로 잡으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하마즈라가 그것에 기겁을 하고 몸을 뒤로 빼자, 옆에 있던 타키츠보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레벨 5(초능력자)의 순위는 결국 얼마나 돈이 되는가. 니까. 무기노의 능력을 이용해서 연구의 속도를 빠르게 올리던지, 아니면 원자나 전자 관련으로 가기만 해도…"
"아,"
무기노는 깜빡 했다는 듯이 멍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하마즈라는 실실 웃으며,
"뭐야 너, 그것도 까먹고 있던 거냐? 아니면 그런 생산적인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던가?"
"죽인다"
"히익!?"
푹! 하고 자신의 머리 옆에 박힌 나이프에 하마즈라가 벌벌 떨자, 무기노는 거기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키누하타는?"
무기노의 질문에 하마즈라도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파에 박힌 나이프를 빼면서,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키누하타는ㅡ"
**
"아 진짜, 그 이후로 진짜 죽을것 같아!!!!!"
미사카 미코토는 길 한복판에서,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그런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뭐가 문젠데 그래?"
"그러게요. 언니는 비타민C의 섭취가 모자란것 같습니다. 하고 미사카는 주기적으로 섭취한 비타민C로 인한 탱탱한 피부를 자랑하며 말합니다"
그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것은 카미조 토우마와 인덱스. 그리고 미사카 동생이었다.
몇일 전까지는 이렇게 자신의 클론과 사람이 많은 거리를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거봐!!"
미코토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어떻게 넣었는지, 퍼엉! 하는 기세로 엄청난 양의 편지가 폭발하듯이 튀어나왔다.
"오야후네씨가 레벨 6 시프트 실험(절대 능력자 진화 실험)에 대해 말하고 나서, 그 날부터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편지가 온다고!!! 그래 날 동정하거나 걱정하는건 좋아! 근데 '18만엔에 하나 구입하고 싶습니다. 더블도 가능' 은 누구야!? 진짜 죽여버릴까보다!!"
"하,하하…"
"혹시 당신도 구매하고 싶습니까? 하고 미사카는 희망찬 눈빛으로 당신을 쳐다봅니다"
"넌 좀 시끄러워!!!"
"갸악- 비운의 클론을 오리지널이 괴롭힙니다!! 하고 미사카는 영웅씨의 품에 안기면서 소리칩니다"
"이게 진짜아아아아아아!!!!"
카미조 토우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학원도시의 총괄 이사장인 아레이스타가 '행방불명'이 되고 오야후네 모나카가 이사장이 된 후, 미사카 미코토의 인생은 고달퍼졌다.
학원도시의 어둠을 뿌리부터 근절하겠다는 명목으로, 여태까지 일어난 모든 어둠을 공개한 오야후네 덕분에 미코토의 클론들의 존재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그 이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기는 하지만 당당히 다같이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오리지널에게 앙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불순한 감정으로 클론에게 접근한 녀석들은 의외로(???) 전투력이 높은 동생들에게 패배. 손가락 끝이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는 적과 1만번 이상 싸워온 그 실력은, 어중간한 레벨의 능력자도 건드릴 수 없는 경지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사카 동생들의 감정도 다양해지고, 이제 숨길것이 없어 당당해진 미코토였지만 저런 복합적인 달콤쌉쌀한 기분에 지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보다, 그 수많은 일을 해결한 영웅씨는 왜 언론에 나오지 않고 조용한 건데!?"
"글쎄다. 아무 능력도 없는 레벨 0(무능력자)라 그런거 아니야?"
"어디가!! 그날도 거의 네가 다 해결했잖……"
아, 하고. 미코토의 말이 멈췄다.
이유를 모르는 미사카 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미코토는 조심스럽게 카미조에게 말했다.
"…그, 결국 페이커는 어떻게 된거야? 신이 됐다고, 했었잖아. 근데 눈 앞에서 그렇게 사라졌고… 설마 죽은거야?"
"…글쎄, 신이 되었다고 했으니까, 그대로 하늘로 돌아간거 아닐까?"
"그럴까…"
카미조는 일부러 그런 침울해 하는 분위기를 지우듯, 억지로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 녀석이 신이 됐다면, 나의 이 불행도 지워주지 않으려나? ……응?"
그러자 옆에서, 왠지 모르게 몇일동안 계속 침울해 하던 인덱스가 카미조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무슨 일이야 인덱스?"
"아, 그…"
인덱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얼굴로 카미조를 올려다봤다.
몇일동안 몇십번이나, 몇백번이나 주저하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던 인덱스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토우마, 그러니까ㅡ"
"괜찮아. 인덱스"
카미조는 씨익 웃으며, 인덱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괜찮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아-"
인덱스는 카미조를 한참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토우마는… 아직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응? 당연하잖아"
카미조는 씨익 웃으며,
"나는 충분히, 행복해"
미코토는 그런 카미조의 모습을 보고 뿌듯한듯 미소지었다.
그러자 카미조는 길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듯, 갑자기 멈춰서서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걸음을 멈춰서 카미조를 기다려주던 미코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미조의 얼굴을 살피자, 카미조는 거의 얼굴에 경련이 날듯이 멋쩍게 웃더니ㅡ
"만엔, 주웠다"
물론, 곧바로 근처 파출소에 전해줬지만 말이다.
**
어떠한 국가든, 조직이든, 그것을 통솔하던 자가 바뀌게 되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것도 여태까지의 방식과 전혀 반대의 방식을 고집하는 자라면,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득이 줄어들 것이고, 그것에 대해 앙심을 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어느 곳보다 어둠의 만연한 학원도시도 두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타겟. 도착.」
어둠에서 퇴출당해 자신의 밥벌이를 잃어버린 이런 이름도 모를 조직이 그런 좋은 예였다. 나름 꽤 고레벨의 능력자를 상대해본적이 있는 이 조직은, 자신들의 일감이 없어지자 학원도시에 다시 어둠이 돌아오길 바랬다.
그렇다면, 그만한 인간들이 생각할만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다 준비해둬. 오야후네가 나온다」
일종의 분풀이라고 해도 맞을 것이다.
그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학원도시의 새로운 이사장이 된 오야후네 모나카를 암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당연히 보디가드가 붙어 있을꺼야. 그것도 꽤나 고레벨의 능력자일걸」
「상관없어. 그딴거」
그 조직원들중,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녀석이 무전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능력자라고 해도 인간. AIM 재머와 결합한 확산형 MWD. 아무리 강력한 능력자라도 이 순간 폭발을 견딜 수는 없어. B조. 준비 됐나?」
「날릴 준비만 남았어」
그 대장은 망원경으로 오야후네가 내리는 것을 파악한 후 말했다.
「날려버려」
「라져」
"큭큭큭. 네년의 최후가 어떤지 확실히 감상해주지"
그렇게 망원경으로 다시 눈을 가져가자, 녀석은 오야후네가 내린 후 다른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큭큭. 거리면서 웃고 있던 입이 떡. 하고 굳더니, 그 입을 크게 벌린채 시야가 흔들리고 있었다.
"자, 잠깐만… 노, 농담이지? 설마, 설마!!? 어째서 저 녀석이!!?"
하얀색의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
한손에는 현대식 지팡이를 한채,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한 능력자.
적어도, 어둠에 속해있던 자라면 그 능력자를 모를리는 없었다.
조직의 대장같은 녀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무전기에 손을 가져갔다.
「자, 잠깐 나다! 계획 중…!」
하지만 손을 너무나 떨어서 그런건지, 무전기를 놓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젠장, 하고 욕짓거리를 뱉으면서 그 무전기에 손을 가져다 대자.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야 너 이새끼! 마, 말도 안…」
「괴, 괴물이다!!」
「항복! 항복! 제발 목숨만 카하아악!!」
떨어진 무전기의 너머로, 무지막지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
모든것이 늦어버렸다.
그 대장같은 녀석은 자신의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떨리는 손으로 망원경을 가져가 다시 오야후네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나게 확대되어 있는 하얀색 악마를 보았다.
콰앙!! 하고, 건물의 창문에서 하얀색의 악마가 튀어나왔다.
"굉장한 실력이네요…"
오야후네 모나카는 몸을 살짝 떨면서도, 진심으로 액셀러레이터에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말했다.
"흥"
액셀러레이터는 역시나 귀찮은듯 건성으로 대답하며,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것을 던졌다. 한명도 목숨을 잃지 않은 채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기절해 있는 5명의 테러리스트 였다.
오야후네의 비서는 어째서인지 준비해둔 수갑으로 그들의 팔다리를 묶고 있었고, 오야후네는 그렇게 묶이는 남자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겠죠. 제가 가는 길은 어떻게 보자면 왕도는 아니니깐요"
"왕도 따위, 아무런 의미 없어. 누가 그런걸 인정해준다는 거야?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들면 돼"
"그렇겠죠"
액셀러레이터는 투덜거리면서, 오야후네의 뒤를 따라갔다. 오야후네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학원도시 최강의 레벨 5(초능력자)에 겁을 먹지도 않은채, 그를 의식하며 말했다.
"저는 학원도시의 모든 어둠을 걷어내고 싶어요"
액셀러레이터는 대답하지 않는다.
오야후네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기에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방법은 달라도, 뜻이 같은 당신의 힘이"
"그래서?"
액셀러레이터는 새끼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면서 대답했다. 오야후네는 그런 무례한 행동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액셀러레이터"
"쳇"
액셀러레이터는 귀찮은 듯이, 자신의 바지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으며 대답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고"
**
"………"
삐ㅡㅡㅡㅡㅡㅡ 하는 이명음을 들으며, 키누하타 사이아이의 의식이 돌아왔다.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려다 보니, 자신의 왼팔에 링거가 꼽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병원, 인가요…?"
몇일이나 움직이지 않아 뻑뻑한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 키누하타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기, 왜…"
빠직, 하고 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왔다. 마치 커다란 쇠망치로 머리를 맞아 기절한듯한 기분나쁨에 눈을 찡그려 한손을 머리로 가져갔지만, 자신의 마음처럼 자신의 머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에 의문을 느낀 키누하타는 자신의 양 손을 아래로 내려, 그 양 손바닥을 쳐다봤다. 그 양손에는 몇겹이나 붕대가 겹쳐져 있어서, 물건을 집거나 하는 행위가 불가능한 정도였다.
순간 손이 잘린건가? 하고 손가락을 꿈틀거린 키누하타는 확실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파악하고 안심했다.
병원은 넓은 1인실 이었다. 옆에 있는 테이블에는 과일 바구니나 여러개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어떻게든 상체를 비틀여 그 메모를 보니, '정신차려면 연락해' 라는 하마즈라의 삐뚤삐뚤한 글씨나, '걱정하고 있어요' 라는 타키츠보의 귀여운 글씨도, '그 녀석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테니까' 라는 고급스러운 무기노의 글씨도 보였다.
자신을 걱정해줬다는 것에 감사하며, 키누하타는 옅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라뇨…?"
아.
하고,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페이커가 회색의 천사로 변한것도, 그리고 그대로 아레이스타와 같이 소멸한것도.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것도.
"아…………"
뚝. 하고, 침대 시트에 뭔가가 떨어졌다.
그것이 자신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라는 것을 깨닫기가 무섭게, 뚝.뚝. 하고 떨어지던 눈물은 뚝 뚝 뚝 뚝 매서운 기세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흑, 흐윽, 흐으윽……"
녀석이라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항상 합리적인것을 고집하는 그 멍청이는 자신이 위험한 일에는 절대 고개를 들이밀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녀석이 무리를 하는 것은, 자신이나 쿠로요루가 연관되어 있는 일 밖에 없다.
"페이커, 페이커어…"
그 멍청이는, 자신이나 쿠로요루가 그 멍청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동시에 그 녀석은 자신들에 대해 단지 '변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만든 인연'이라는 이유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아아아… 흑, 흐아아아앙!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흑, 흐아아아앙!"
키누하타는 그 붕대투성이의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울었다.
가슴의 한 가운데에 뻥, 하고 머리도 들어갈듯한 구멍이 생긴것 같았다.
가슴뿐만이 아니라, 다리나 머리에서 조차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전해져 왔다.
"뭐야, 정신이 들었냐?"
붕대 투성이의 양 손은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열겹이 넘을 정도의 붕대의 가장 안쪽까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눈물샘이 다 말라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느껴질 쯔음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에?"
눈물과 콧물에 범벅이 된 키누하타가 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검은 머리에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소녀. 쿠로요루 우미도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뭐야, 너 왜 우냐?"
쿠로요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너가 질질 짜는건 상관없고, 페이커는?"
"아,"
그것에 대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걸까.
페이커는 죽었다고. 아레이스타에게 복수를 하고, 우리를 구해주고 나서 소멸했다고. 그렇게 말해야 되는 걸까?
가슴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 차가운 바람이 관통하는 듯한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으며, 키누하타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뚝. 뚝. 하고 그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짜증나네. 내가 물어보잖아"
쿠로요루는 그렇게 말하며,
"그 자식 아직 안왔냐고"
"………에?"
아직?
의미를 알수없는 소리에, 당황한 키누하타가 놀란 표정 그대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자, 드르륵, 창문이 열리더니,
"오오, 정신 차렸네"
창문 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키누하타가 팍! 하고 고개를 돌리니,
"페, 페이커…?"
"앙? 너 울었냐?"
열린 창문에 걸터 앉아 있는 페이커는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한채 키누하타에게 물어왔다. 어째서 페이커가 살아있지? 같은것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등에 조그마한 두장의 백색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어, 어째서 당신이…?"
"아, 이거?"
어떻게 살아있냐. 라는 질문이었지만, 페이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을 보면서 대답했다.
"어떻게든 집어넣으려고 하고는 있는데, 이 빌어먹을 메르헨 날개가 된통 떨어지지를 않네. 쪽팔려 죽겠다 진짜"
"아니 그, 그것보다!! 당신, 죽은거 아니었어요!!?"
"엥? 죽어? 아아, 그거 말인가"
페이커는 멋쩍은 표정을 한채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긁으며,
"이야, 신에서 떨어졌슴다☆"
"………뭐라구요?"
"아니 그 뭐라고 할까, 어쩌다가 마지막에 그 자격에서 떨어졌다고 해야되나, 그래서 지금 이몸은 지상에 떨어졌다는 소리지"
"그, 그게 무슨……"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쿠로요루는 피식, 하고 웃더니,
"뭐야 너, 설마 저 녀석이 죽었을거라고 생각해서 울고 있던 거냐?"
"무, 무, 무, 그건 당신이라도!!!"
"그날. 내가 저 녀석한테 죽지 말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죽을 리가 없지. 저 멍청이는 나한테 빚진게 있으니까, 그대로 죽어버리게 내둘것 같아?"
"뭐에요 저 완전 말도 안되는 논리는!!?"
키누하타는 완전 홍당무 같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입을 뻐끔뻐금 벌리며 소리쳤다.
"서, 설마 그 말도!!"
"응? 뭐가?"
"왜 시선을 돌려요!! 역시 기억하고 있지! 완전 기억하고 있는거지!!!!!"
"이야, 나는 잘 모르겠네"
"갸아아아아아아악!!!"
페이커는 내버려두면 조금 위험할 정도로 온몸을 들썩이는 키누하타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것만으로 키누하타는 아, 하고 그 들썩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숙였다.
"…지상에 떨어졌다는 건, 지금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에요?"
"아니 뭐, 천사의 힘이라고 해야하나? 그거 포기했거든. 예전이랑 다를건 별로 없어"
그 세계를 부술 수도 있는 커다란 힘을 포기했다.
라고, 페이커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후회하지, 않아요? 완전 비합리적인 일이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페이커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두명의 소녀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명의 소녀에게 대답했다.
"너희를 볼 수 있으니까, 완전 합리적인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