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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GULJi96aoSzS 2013/08/25(日) 05:22:01.33 ID:p8Qx37VE0
유키노시타의 시선에 계속 붙잡혀 있는 통에 결국 단념하고 대답했다.
「히라츠카 선생님이야.」
「그래…」
큰 관심은 없었던 것인가, 앞으로 돌아선다.
안도한 가슴을 쓰다듬어 내리는 것도 잠깐, 옆에서 턱에 손을 얹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체 어떤 결론이 나온 건지 갑작스레 험악한 표정으로 바뀐다.
「히키가야군, 그리고 보니 언제인가 히라츠카 선생님하고 메일을 주고 받는 듯한 말투로 말했었지……」
얼굴은 웃지만 눈은 화내고 있는데…
「……무슨 말이 오갔는지 보여줄 수 있어?」
117: ◆GULJi96aoSzS 2013/08/25(日) 05:23:52.39 ID:p8Qx37VE0
무, 무섭다. 무서워요, 유키노시타씨.
조금씩 시선을 돌리자 얼굴째 움직여 내 눈을 가만히 노려본다.
「아니, 조금 미묘한 문제가 있어서……」
말을 계속하려 했지만, 단번에 자르고 들어왔다.
「나한테 있어서도 미묘한 문제인데……」
히라츠카 선생님, 어째서 이런 타이밍에 이런 메일을 보내는 거지.
혹시 내가 데려가야 하는 건가?
「히키가야군……, 너 나한테……,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내릴 역에 도착했다.
134: ◆GULJi96aoSzS 2013/08/25(日) 15:36:09.30 ID:p8Qx37VE0
나와 유키노시타는 둘이서 나란히 다음 역 플랫폼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케이요선에서도 특별히 이용객이 적은 이 역.
아직 저녁 러쉬 시간대가 되지 않은 탓인가, 플랫폼 위에는 사람이 드문드문 밖에 없었다.
왜 이런 곳에 있느냐고?
전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일어섰지만 유키노시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반응이 없었다.
모처럼 둘이서 새로운 티컵을 사러 온 거다.
이대로 가버리는 것은 본말전도다.
알고 싶어하는 것 전부 이야기할 테니 다음 역에서 같이 내려달라고 설득해 이곳에 찾아오게 된 것이다.
135: ◆GULJi96aoSzS 2013/08/25(日) 15:38:03.04 ID:p8Qx37VE0
하지만 나도 유키노시타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무의미하게 시선을 발밑으로 보내, 그저 아무 말도 않은 채 앉아 있다.
내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 이른 유키노시타의 표정은, 수학여행에서 에비나에게 거짓 고백을 했을 때 나에게 향한 것과 똑같았다.
그때, 잰걸음으로 떠난 유키노시타를 뒤쫓아가는 것은 나에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유키노시타의 등을 보고 있는 것이 더 괴로웠다.
두 번 다시 그런 유키노시타의 표정 따위 보고 싶지 않고,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136: ◆GULJi96aoSzS 2013/08/25(日) 15:39:14.28 ID:p8Qx37VE0
쾌속전차가 힘차게 지나간다.
무시무시한 풍압과 함께 무언가 감촉이 다른 것이 뺨에 닿는다.
물방울…… 아니, 유키노시타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한량이 눈앞을 지나가자 석양에 비쳐 반짝 물방울이 빛났다.
그리고 내 뺨에 닿아 튀었다.
플랫폼 위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유키노시타와 이야기하려면 지금뿐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런 기분이 들어 입을 열었다.
137: ◆GULJi96aoSzS 2013/08/25(日) 15:41:48.10 ID:p8Qx37VE0
「유키노시타……」
길게 느껴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유키노시타가 대답했다.
「뭔데?」
「아까, 나중에 전부 이야기한다고 했었지……」
「그래……」
유키노시타에게 닿아야 할 석양은 내 몸이 가리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다.
「그건 말이지……, 절대로 너를 실망하게 할만한 게 아니라……」
「그래……」
발밑을 희미하게 보고 있는 유키노시타의 표정은 아무래도 모르겠다.
138: ◆GULJi96aoSzS 2013/08/25(日) 15:43:42.88 ID:p8Qx37VE0
지평선으로 이글거림을 더해가는 겨울의 태양으로 얼굴을 돌렸다.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 내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너한테는 어이없는 일일지도 몰라…….」
유키노시타가 맥없이 처진 손바닥을 갑자기 꽉 쥐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비스듬하게 돌렸다.
그 분위기에 당황해 나도 유키노시타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석양에 비친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눈부셔 보였다.
「그 말, 믿어도 되는 거지?」
「당연하지!」
다음 순간 유키노시타가 킥하고 미소지을 때 본 빨갛게 물든 그 아름다운 미소는 결코 잊을 수 없겠지……
139: ◆GULJi96aoSzS 2013/08/25(日) 15:46:45.77 ID:p8Qx37VE0
「일단은 개찰구로 나와 갈아탈까.」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려 하자, 유키노시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 코마치가『믿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잖아……」
「그래……」
「그때는 아직 중학생이면서 대단하네 하고 코마치에게 감탄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 말을 가르쳐준 코마치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고맙게 생각해.」
솔직한 눈을 하고 이렇게 말한 다음,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 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코마치가 그렇게 똑 부러지게 자란 데에는,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 역할이 컸을 거야.」
코마치의 오빠로서인지는 조금 미묘하지만, 내 쓰레기짓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건 말이지……, 유키노시타와 코마치라면 오래도록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라니 어이. 나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냐.
혼자서 망상에 부풀어버려, 저절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140: ◆GULJi96aoSzS 2013/08/25(日) 15:50:44.42 ID:p8Qx37VE0
다시 케이요선에 타고 역 근처 거대상업지구에 있는 홍차전문점을 찾았다.
눈이 마주친 점원은「어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교복 입은 고등학생 둘이 몇 번이고 찾아올 가게는 아니다.
게다가 몇 번인가 들러 낯이 익을 유키노시타도 평소에는 혼자서 왔을 터이니.
가게 안에 들어가자, 유키노시타는 나에게서 유체이탈을 한 혼과 같이 휙하고 떨어졌다.
슬프도다, 외톨이의 습성이요.
141: ◆GULJi96aoSzS 2013/08/25(日) 15:54:13.17 ID:p8Qx37VE0
나는 바로 유키노시타의 옆에 서서, 함께 티컵을 들여다본다.
「히, 히키가야군……」
얼굴을 붉히며, 한걸음 뒷걸음질치면서 가냘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간만에 둘이서 보러 온 거잖아……」
너 뭐하고 있냐? 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어본다.
나한테 바보취급 당하는 일은 유키노시타에게 있어 최대의 굴욕일 터이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뭐가 그렇게 초조한 걸까.
「그, 그게……, ……부끄럽잖아.」
목소리가 너무 작아, 무엇을 말하는지도 들리지 않는다.
142: ◆GULJi96aoSzS 2013/08/25(日) 15:55:29.18 ID:p8Qx37VE0
무심코 훗하는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뭘 웃는 거야!?」
이 이상 웃었다간 죽일 거야 하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쏘아본다.
「아니야……. 방금까지의 내가 시시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스스로의 시시한 수순라는 것에 얽매여서, 유키노시타를 잃어버릴 뻔 했다.
그 어리석음을 이제 와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145: ◆GULJi96aoSzS 2013/08/25(日) 16:00:36.21 ID:p8Qx37VE0
내가 유키노시타의 옆에 서서, 같이 컵을 들여다보며, 일부러 옆에서 한 발 뒷걸음질치는 유키노시타에게 쓴웃음 지으며, 우리는 같은 모양의 티컵을 골랐다.
내가 드물게도 진지하게 보고 있던 컵을 유키노시타가 마음에 들어해 그것으로 결정했다.
「썩은 눈을 하고 있으면서 이런 물건을 찾아내는 건 할 수 있구나.」
맥빠진 동작으로 이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
뭐야, 그 동작……
너무 귀엽잖아!
내가 점원을 부르러 갔을 동안에, 가게 안을 혼자서 둘러보는 유키노시타.
계산을 마치려고 계산대 앞에 서 있자, 불쑥 다가왔다.
146: ◆GULJi96aoSzS 2013/08/25(日) 16:03:20.36 ID:p8Qx37VE0
점원이 카운터 안쪽에서 티컵 박스를 가지고 온다.
그걸 보는 유키노시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아, 이건가……. 이건 말이지-」
내 설명에 귀를 기울여 납득한 유키노시타.
그리고 그 표정이 온화함을 되찾았다.
151: ◆GULJi96aoSzS 2013/08/25(日) 20:44:44.48 ID:p8Qx37VE0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는 우리.
이제 슬슬 본론이군.
유키노시타를 재촉해 내가 앞에서 걷기 시작한다.
당황해 불쑥 내 옆으로 와 나란히 걷는 유키노시타.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네 곁을 떠날 리가 없잖아…….
152: ◆GULJi96aoSzS 2013/08/25(日) 20:46:28.21 ID:p8Qx37VE0
시원하게 트인 광장을 향해 걷는다.
여기부터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윗층을 가면 내가 가고자 하는 장소가 나온다.
광장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다.
리얼충들이 신봉하는 우상이다.
평소라면 당장 신계 밖으로 내쫓길 테지만,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탓일까, 오늘의 나는 평소와 약간 달랐다.
문득, 높이는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뿌리부터 꼭대기에 있는 별까지 슬쩍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하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발도 갑자기 멈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