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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 ◆GULJi96aoSzS 2013/09/28(土) 23:51:44.34 ID:6WESvmZNo
「그런데 유키노시타는 뭘 받았어?」
토츠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질문한다.
토츠카,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귀엽다고.
내 선물이 되어주지 않을래.
「원고용지야. 뭘 좀 써볼까.」
턱에 손을 괸 채 생각에 빠졌다.
「그만둬라. 너는 불행의 편지 같은 거 써버릴 것 같으니까 말이지.」
「그래. 너한테만 보내줄 거야.」
만면에 미소를 향하지만 눈에서는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가 전해져 왔다.
무섭다고. 아무튼 무서워. 진짜 무서워.
789: ◆GULJi96aoSzS 2013/09/28(土) 23:53:14.66 ID:6WESvmZNo
「그럼 노력상과 꼴찌를 같이 발표할게요. 노력상, 오빠. 꼴찌는 히라츠카 선생님이에요.」
「그럼 난 이걸……」
뻗은 손을 찰싹 얻어맞는다.
「아야……」
「어이, 히키가야. 그래선 선물 교환이 아니잖아.」
슈퍼 종이봉투를 열자…….
고등어된장조림에 호테이 캔닭꼬치, 말린 오징어, 말린 감과 땅콩이 들어있었다.
그냥 술안주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사람은.
790: ◆GULJi96aoSzS 2013/09/28(土) 23:54:53.73 ID:6WESvmZNo
「오, 히키가야. 술꾼을 잘 아는 구나. 스낵 과자에 쥬스라니.
집에 가면 이 쥬스를 좀 타서 과자 집어먹으면 저녁 반주가 되겠네.」
아니, 아직도 마실 생각이야?
이건 그건가? 기분 좋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일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잊는 것으로는 부족해 기억 자체를 지우기 위해 마신다는 그거?
아이고 무서워. 노동이란 이렇게나 고행인건가.
역시 나는 전업주부가 좋다.
「자, 잔치도 한창인데 슬슬 끝내도록 하죠.」
언제부터인가 코마치의 페이스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797: ◆GULJi96aoSzS 2013/09/30(月) 20:16:48.53 ID:NTKquP+co
× × × ×
「건~배!」
히라츠카 선생님의 건배사로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하기 보다는 송년회라고 하는 게 좋을 야단법석이 막을 내렸다.
방금 막 지불을 마친 유이가하마가 나와 가게 앞에 전원 집합한 참이었다.
우린 아직 고등학생이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파티를 하기도 하겠지.
그래서 여기서 자연스럽게 해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밖에 없어.
이 타이밍을 놓치면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유이가하마와는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된다.
유키노 쪽을 보자 내 생각을 읽었는지 슥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798: ◆GULJi96aoSzS 2013/09/30(月) 20:17:55.17 ID:NTKquP+co
「……할 말이 있어. 들어주길 바라.」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 히키가야 하치만과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오늘부터 사귀기로 했습니다.」
유키노가 꽉 손을 잡아 왔다.
「오, 오빠가……. 축하해~!」
「축하해! 하치만, 유키노. 잘 어울려.」
「히키가야, 유키노시타,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축하한다.」
「무, 무, 무……. 하, 하치만 이놈, 날 속였구나…….」
코마치, 토츠카, 히라츠카 선생님 순서대로 축복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자이모쿠자, 속이고 뭐고 너하곤 관계없잖니.
799: ◆GULJi96aoSzS 2013/09/30(月) 20:18:47.82 ID:NTKquP+co
「히, 힛키가…… 유키농하고……. 거짓말이지…….」
유이가하마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스팔트에 점점이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정신이 들고 보니 유키노의 손에서도 힘이 빠져 자연스럽게 풀리고 말았다.
「유, 유이가하…….」
무의식 중에 몸이 반응하고 말았다.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가려는 나를 히라츠카 선생님은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더니 귓가에 소곤거리듯 타일렀다.
「히키가야, 아까 맡겨달라고 말했을 텐데. 네가 지금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건 유키노시타야. 그렇지 않니?」
800: ◆GULJi96aoSzS 2013/09/30(月) 20:20:26.10 ID:NTKquP+co
-- 그렇다.
그 말대로다.
돌아보자 유키노도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키노에게 유이가하마는 처음 생긴 친구다.
또한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기도 하다.
유키노는 분명히 사랑의 승자이다.
하지만 그것과 맞바꿔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대가는 유키노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801: ◆GULJi96aoSzS 2013/09/30(月) 20:22:31.98 ID:NTKquP+co
-- 한 번 부서진 물건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향하는 호의를 눈치 못 챈 척 무시해 왔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 나만 상처받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만이 상처받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 탓하는 건 그만두자.
소중한 사람이 상처 입는 자신을 보고 슬퍼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느 샌가 스스로가 상처입기를 부정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 대신에 다른 누군가가 상처입기를 긍정한 것도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유키노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서 누를 수 없게 된 내가 있었다.
스스로의 마음에 이제 이 이상의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상처 입는 결과가 된다 하더라도 한 발자국 걷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