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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GULJi96aoSzS 2013/10/06(日) 05:32:01.35 ID:CiLAYRtYo
× × × ×
하룻밤 지나 학원에 있다.
오늘이 동기강습 마지막 날이다.
변함없이 강의 내용은 이해도 안 되는 수열의 전개가 진행되고 있어 난감하다.
하지만 일 년하고 조금 있으면 수험이 가장 치열한 때가 된다.
유키노가 신경 쓰였지만 판서와 메모만큼은 모르는 대로 필사적으로 받아썼다.
강의종료와 함께 가장 먼저 교실에서 뛰쳐나갔다.
현관으로 달려가자 어제와 변함없이 기다리는 유키노가 있었다.
「기다리게 했네, 유키노」
숨을 헐떡이며 말을 걸자 유키노는 쿡쿡 웃으며 목 언저리의 목도리를 바로잡아 주었다.
유키노가 웃을 때 새어나온 숨결이 닿아 간질거렸다.
「내가 하치만을 만나러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유키노하고 메일 주소랑 번호 교환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불안했어.」
숨을 고르며 정색하고 이렇게 받아쳤다.
사실 유키노가 기다려 줄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제 밤까지 같이 있을 수 있다.
「『조금』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땅을 보며 소곤소곤 말하는 유키노가 사랑스럽다.
「자, 주소 교환하자고」
휴대폰을 꺼내자 유키노도 토트백에서 *피처폰을 꺼냈다. (역주 : 원문은 가라케, 갈라파고스 휴대전화를 일컬음)
836: ◆GULJi96aoSzS 2013/10/06(日) 05:32:56.96 ID:CiLAYRtYo
「적외선 통신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더라?」
「내 스마트폰에 적외선 기능 없어.」
「그 스마트폰 하치만이랑 꼭 닮았네.」
「뭐?」
「그게, 쓸데없이 스펙만 높고, 가장 중요한 기능이 없는 걸.」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시원스럽게 매도한다.
시원한 거라면 매실주지만 그런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탄레이카라쿠치란 분명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마신 적 없지만. (역주 : 일본주의 한 종류)
하지만 이렇게 평소와 같이 유키노와 비슷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다.
837: ◆GULJi96aoSzS 2013/10/06(日) 05:36:16.40 ID:CiLAYRtYo
「그런데 하치만, 오늘은 어디에 데려가줄 생각인거야?」
유키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쪽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물어왔다.
그러니까 난 그런 몸짓 못 견딘다니까.
대로에서 얼굴이 빨갛게 되다니 무슨 수치 플레이냐고.
「오늘은 우리집 안가? 나, 돈 별로 없는데……. 그리고 유키노한테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내가 점심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어때? 어차피 부모님도 늦게 오시니까 저녁도 먹고 가.」
「그래도 너무 실례 아닐까……」
꼼지락거리며 유키노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모님은 항상 늦게 오고, 코마치는 저녁까지 학원 다녀. 저녁은 언제나 코마치하고 둘이서 먹으니까 유키노가 와주면 코마치도 좋아 할 거야……」
유키노는 아직 머뭇거리는 듯하다.
838: ◆GULJi96aoSzS 2013/10/06(日) 05:37:44.53 ID:CiLAYRtYo
「……그리고 우리집에 코마치가 없어서 쓸쓸해하고 있는 애가 있어. 카마쿠라는 유키노가 있어주면 분명 좋아할걸. 그게, 유키노 카와사키 일로 카마쿠라랑 대화할 때……」
「뭐?」
「볼 일 있어?」
앞과 뒤에서 동시에 얼어붙은 듯 날카로운 말이 날아들었다.
유키노와 카와사키였다.
실로 진퇴양난이란 이런 것이겠지.
「아니…… 아무것도……」
「……바보 아니야?」
이렇게 내뱉은 카와사키는 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하지, 유키……」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유키노는 턱에 손을 대고서 주문과 같이 외었다.
너무나 이상한 나머지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유키노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얼버무리려는 듯이 말했다.
「하치만한테 얻어먹기만 하면 미안하니까 저녁은 내가 만들어주는 게 어떨까?」
유키노가 손수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이의는 없다.
나와 유키노는 소부선에 타고 집으로 향했다.
839: ◆GULJi96aoSzS 2013/10/06(日) 05:40:24.72 ID:CiLAYRtYo
× × × ×
「다녀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도착했을 때는 13시 반이 지나있었다.
우선 배부터 채우자.
「식사 준비하는 동안 카마쿠라랑 놀고 있어.」
주방 카운터 너머 유키노에게 눈길을 주자 이미 카마쿠라를 무릎 위로 안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따르지 않는 주제에 유키노한테는 찰싹 달라붙어 있다.
「응, 그렇게 할게.」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미소 지으며 카마쿠라를 쓰다듬고 있다.
쓴웃음을 지으며 화장실에 가 카마쿠라의 식수를 새로 갈았다.
자, 오늘은 볶음밥하고 샐러드하고 콩소메를 만들까.
840: ◆GULJi96aoSzS 2013/10/06(日) 05:41:46.70 ID:CiLAYRtYo
카운터 너머 유키노를 힐끗힐끗 보면서 요리한다.
유키노는 카마쿠라에 정신이 팔려있다.
어젯밤 본 우는 얼굴과 달리 언제까지고 보고 싶을 정도로 싫증이 안 나는 미소였다.
파우치에서 꺼낸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아주고 기어오르는 카마쿠라의 앞발을 어깨에 태우고 뒷발 밑에 손을 넣어 껴안고 하면서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학교에서 보는 유키노와는 마치 다른 사람과 같았다.
이게 원래의 유키노시타 유키노겠지.
그런 유키노의 모습을 보면서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841: ◆GULJi96aoSzS 2013/10/06(日) 05:42:52.35 ID:CiLAYRtYo
점심 후에는 그대로 거실에서 지난번에 샀던 얇은 수열 문제집을 풀고 센터 수학 강의 2일분 복습을 하며 보냈다.
유키노가 알기 쉽게 가르쳐준 덕에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하고 생각하다가 연습문제에서 좌절했다.
「어제는 집에 가서는 공부 안 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자, 한 번 더 해보자……」
하는 느낌으로 저녁까지 계속했다.
유키노는 그동안 카마쿠라와 놀고 내 방에서 가져나온 야마카와 세계사 용어사전을 읽고, 고문 문제집을 풀었다.
842: ◆GULJi96aoSzS 2013/10/06(日) 05:45:27.74 ID:CiLAYRtYo
「다녀왔습니다, 오빠」
코마치가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냄새가 나네~」
하고 코를 벌룩이며 들어왔다.
개냐, 너.
「안녕하세요. 역시 유키노 언니가 와있네」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찔러댔다.
「어서 와, 코마치」
「코마치, 어서 와. 잠시 폐 끼치고 있어」
「오늘 저녁은 유키노 언니가 만든 거예요?」
「응. 하치만이 카레 먹고 싶다고 해서 시푸드 카레를 만들었어. 코마치 입에 맞을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