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 – 아오자키 토우코
아오자키 토우코는 옥상에 서 있었다. 한 차례 비가 지나간 직후 맑게 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다. 보석가루를 흩뿌린 듯 별들이 반짝거리는 밤하늘. 그때와 같은 하늘이건만 전혀 달랐다. 주먹을 굳게 움켜쥐며 결의를 다졌던 그날과는 달리 그녀는 그저 별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문득 토우코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건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토우코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천개(天蓋)의 중심에 향해 있었다.
그 순간 예고도 없이 토우코는 문득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듣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벌써 2년째인가. 그동안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 네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야. 터무니없는 요구를 완벽하게 처리해주었지. 내가 바라는 정보는 모두 찾아주었어. 생각해보면 처음 나의 공방에 찾아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어. 너는 그것이 어떠한 정보건 너무나 쉽게 찾아내었지. 보통 사람은 그 자료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데만 몇 년은 걸릴 일을 아주 짧은 시간에... 그래, 마치... 그것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토우코의 어조는 평이했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로 그저 담담히 서술하듯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사가미 후지노를 기억해? 그때 나는 말했지. 그 아이 만성충수염이었다고... 천공되어 복막염이 되었을 테니 생명이 위험하다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우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말하고 싶었기에, 더 이상 가슴 속에 담아두는 것은 싫었기에 하는 고백이었으니까.
“그거 거짓말이야. 만성충수염은 사실 임상적으로 큰 의미가 없어. 아사가미 후지노의 당시 병명은 자궁외임신. 그것도 그 시점이면 이미 파열된 상태였어. 본래라면 다량의 출혈, 혈복강 등을 일으켜 사망했을 테지. 하지만 말야. 놀랍게도 그녀는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어. 별다른 증세도 호소하지 않고, 생명도 무사했어. 마치... 누군가가 그녀에게 기적을 베풀어준 것처럼.”
충격적인 진실. 그녀는 모두를 속인 것이다. 후지노의 병을 고친 시키조차 ‘점’에만 치중했기에 정작 그 병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리라.
“후죠우 빌딩의 유령사건을 기억해? 그 당시의 너는 몰랐겠지만, 너는 그 일에 관계되어 3주일 동안 혼수상태였지. 보통의 경우 그렇게 되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흘만에 목숨을 잃어. 아자카나 시키는 내가 간병을 해주었기에 네가 무사했다고 여기고 있지. 하지만 말야.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토우코는 쓰게 웃었다. 죽음에 빙의하여 부유하던 소녀를 떠올리며. 그 때 소녀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고. 그래서 데려가고 싶었다고.
“코르넬리우스 아르바를 기억해? 너는 녀석에게 두 무릎을 베였지. 곧바로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로 심한 출혈이었어. 그리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그 동안 너의 몸은 방치되어 있었어.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혈류량성 쇼크로 사망하고도 남을 시간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우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떨리고 있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
“기원각성자 시라즈미 리오. 녀석은 너를 나이프로 찍었지. 이마에서 뺨까지, 왼쪽 눈 채로 베어버렸어. 그리고 곧장 료우기에게로 갔지. 어째서일까? 어째서 너를 죽었다고 단정하고 료우기에게 간 걸까? 기원을 각성하여 포식자 그 자체가 되어버린 녀석이 눈앞의 인간이 죽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걸까? 혹은.... 착각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 그 이전에... 녀석에게 그 정도의 공격을 받고서도 보통의 인간이 즉사를 면할 수 있을까?”
토우코의 입안은 말라있었다. 침조차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인츠베룬의 성에서 너는 텐시의 날개에 직격 당했어. 후유키시의 대공동에서도 역시 그녀의 날개에 공격받았어. 그것은 보구급 이상의 위력이야. 여러 겹의 결계로 맞서더라도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리겠지. 강철 같은 내구를 지녔다 해도 무참히 으스러져 버리겠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멀쩡했지?”
토우코는 물었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인츠베룬 성의 사건이 있고서... 너는 상처 입은 스이긴토를 안고서 가람의 당에 뛰어 들어왔어. 스이긴토는 다쳤던 그 순간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어. 기껏해야 몇 분은 버텼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살아있었어. 후유키시에서 이곳까지 차로 달려 최소한 두 시간 이상. 그런데도 그녀는 살아있었어. 피조차 아직 굳지 않은 상태였어. 그렇다고 다량의 실혈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 아아, 그래. 마치 바로 이곳에서 방금 다친 것처럼.”
토우코는 목구멍에 걸린 듯 나오지 않는 말을 간신히 뱉어냈다. 그리고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최후의 그곳에서... 스이긴토는 앨리스가 되었지. 아이러니의 극치야. 오직 그녀만이 앨리스가 될 수 있었어. 다른 로젠메이든은 완성체가 아니니까. 앨리스가 될 그릇으로 진화하게끔 만들어졌으니까.... 로자미스티카 하나로는 「 」에 도달할 수 없었지. 오직 처음부터 완성체로 만들어진 그녀에게만 가능했어. 하지만.... 그렇다면 로젠은 왜 실패했던 걸까? 과거 로젠이 그녀를 만들었을 때와 지금의 차이가 뭘까?”
토우코는 탄식했다. 한 마법사가 수백년동안 준비해온 비원. 그것은 근본적인 착상에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불가능했다. 그녀 자신이 짜놓은 계획. 그것은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연이 겹쳐져 혹은 필연으로 이루어져 앨리스는 탄생한 것이다.
“료우기 시키. 코쿠토 아자카. 시라즈미 리오. 후죠우 키리에. 아사가미 후지노. 그리고.... 스이긴토.”
나직한 음성과 함께 이름들이 열거된다. 용모, 성격, 출생, 성별.... 모두 제각각인 이들.
그러나 공통점은 있었다.
“모두 어긋난 존재들이야. 경계에서 벗어난 자들. 다시는 테두리 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 해. 그저 외톨이일 뿐. 보듬어주고 이해해주는 이 없이 혼자일 뿐이야. 예외가 있다면.... 오직 하나.”
토우코는 이를 악물었다.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그것을 애써 토해냈다.
“그것은 바로 이 세계야. 아무리 어긋나고 벗어나고 비틀렸다 해도.... 그들은 이 세계에 속해있어. 존재하는 한 분명히 세계의 품 안에 안겨있어. 그러니까 무조건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어. 상식이나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어.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기반한 사실이니까! 이 사람은 이런 자신이라도 보듬어준다는... 설령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받고 미움 받고 냉대 받더라도.... 이 사람만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여준다는 명확한 사실이니까!”
토우코는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선 이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딱딱 끊어지는 어조로, 경외를 담은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그렇지? 코쿠토 미키야. 이 세계에 깃든 유일의지. 위대한 정신이여.”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토우코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녀로서는 까마득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미키야는 입을 열었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틀려요, 그건.”
“뭐.....?”
“육체, 정신, 영혼. 존재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토우코씨의 말은 저의 육체가 이 세계이고, 지금의 저는 바로 정신이라는 거죠? 다분히 가이아론적인 생각이네요.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라요.”
미키야는 담담히 말했다. 지난날을 회상하듯 아득한 눈빛으로.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 했어요. 그저 이 세계의 인물들 중 하나로 살고 있었죠. 하지만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죽음’을 겪어갔죠. 자신을 상실한 그 모호한 의식 속에 잠겨 흔들리고 있었어요. 눈을 감고 바다 속에 가라앉은 것 마냥. 그러던 중 스이긴토가 날아올랐죠. ‘그 곳’을 볼 수 있었어요. 그제야 저는 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긴 채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미키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슴에 손을 얹었다.
“꿈꾸고 있는 내가 나인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나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인가. 어이가 없군. 상상하던 것보다 터무니없는 존재였잖아! 이 세계가 고작 너의 꿈에 불과하다는 건가?”
“글쎄요. 개인적인 이미지는 나비보다는 잠자리 쪽인데. 그리고 고작이라고 비하하지 마세요. 일단은 자각몽이니까 저도 이 꿈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미키야는 빙그레 웃었다.
그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그의 꿈이라는 것은 그의 내면의 투영이라는 뜻. 이 세상 모든 ‘특별한’ 요소는 그로부터 연유했다는 뜻.
그렇기에 평범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특별성의 통합이기에 보편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수의 생각. 대립하는 의견. 상반된 의문.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존재.
그렇기에 그것은 그야말로 ‘특별’.
“물론.... 그녀들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으니까. 제가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작은 구원 뿐. 그나마도 이렇게 각성하기 전에는 그저 무의식하에 행해온 것에 불과하지만요.”
“예외가 되는 것은 시키와 스이긴토인가?”
“네에, 그렇죠.”
그는 그야말로 외톨이.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 속한 이들은 그가 가진 의사(意思)의 일부. 자신의 부분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지만, 그들을 특별하게 인식할 수도 없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손가락과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요소를 포함한 존재. 이를테면 「 」에 닿은 존재들.
근원의 일부인 육체를 가진 료우기 시키.
근원에 도달한 소녀, 앨리스로 각성한 스이긴토.
“제가 처음에 시키에게 끌렸던 것은 분명 무의식 중에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녀라면 이런 나조차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이긴토 역시 마찬가지예요. 앨리스로 각성한 지금의 그녀는 알고 있어요. 미키야라는 존재는 스이긴토라는 존재에게 끌릴 수 밖에 없다고.”
“과연… 최근 들어 스이긴토가 노골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인가?”
“네에, 그렇죠. 제가 ‘아직까지는’ 일반인의 윤리관을 유지하고 있기에 적절히 모른 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 계속되면 솔직히 위험할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자각해버린 이상, 어차피 인간의 도덕관념 따윈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도 선을 넘어버리기 일보직전이랄까 아슬아슬하다고 할까...”
“아자카만 불쌍하게 됐군. 지금의 너라면 알고 있지? 그 녀석, 친오빠인 너에게 금단의 감정을 품고 있다고.”
“네. 그래도 일단 가능성은 개화했어요.”
“....너, 너! 역시 아자카가 반정령이니 하는 요상한 게 된 건 네 짓이었냐?”
“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제시해주었을 뿐 이예요. 그것을 움켜쥔 것은 그 아이의 의지입니다. 앞으로 도달하는지의 여부는 그 아이의 노력에 달려있고요.”
굳센 아이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라는 표정으로 웃는 미키야. 토우코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각성했다더니 놀려먹기 좋은 사원은 어디로 가고 능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선 것이다.
“뭐, 좋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토우코는 자세를 바로하고는 미키야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다지듯 한 번 깊게 숨을 들이키고는 말했다.
“자아, 미키야. 나를 어떻게 할 거지?”
“.....무슨 뜻이죠?”
“나는 너를 이용했어. 「 」에 이르는 수단으로. 억지력을 피하기 위해서. 네가 스이긴토의 미디엄이 된 것도 모두 나의 계략이었어. 너라면 억지력은 작용하지 않을 테니까. 세계의 의지라 믿고 있었으니까. 뭐, 그건 꿈꾸는 초월자이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토우코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고해성사를 하듯 그 모습은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자아... 「 」에 도달하려한 발칙한 자를, 너를 이용하려 한 무엄한 자를... 네 뜻대로 벌해줘.”
그 말은 끝으로 토우코는 눈을 감았다. 무방비하게 미키야의 행동을 기다렸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서린 모습.
“어째서... 제가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글쎄, 왜일까? 어쩌면 나도 그녀들처럼 너에게 끌렸는지도....”
토우코는 살짝 미소 짓고는 이내 웃음을 지웠다.
“비록 스이긴토가 앨리스가 되어 목적한 바는 이루었지만, 그건 내 계획이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얼떨결에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런 건 나의 자존심이 용납 못 해. 패배는 솔직히 인정해야지. 나는 다시금 좌절해야만 해.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억지력이 작용하겠지만... 기왕이면 그 주체인 너에게 처분을 맡기고 싶어.”
엄청난 고집쟁이의 말이다. 결국 자기 손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면 필요 없다는 의미니까.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노력 없이 순전히 운만으로 이득을 보는 부류를 싫어하니까. 그녀를 여기까지 몰아세운 인간이 바로 그런 부류니까.
그러니까 토우코는 묵묵히 기다렸다. 그런 그녀의 귀에 뚜벅 하고 미키야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우코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당황한 토우코는 눈을 떴다. 미키야는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미키야!”
토우코의 부름에 미키야는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왜지? 여기에 온 것은 나를 징벌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어째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아?”
울분이 섞인 절규. 토우코는 그녀답지 않게 격해져 있었다.
“벌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어차피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 억지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야?”
“뭔가 잘못 알고 있군요, 토우코씨.”
미키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첫째. 제가 여기 온 것은 요 사이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 상담해드리려 한 겁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별 일이 아니기에 돌아가려 하는 거고요.”
뜻밖의 말에 토우코의 눈이 동그래졌다.
“둘째. 저는 억지력 같은 건 구사하지 않아요. 그런 건 저의 꿈 속에 구축된 이 세계 내부의 자율적인 힘일 뿐. 가이아적인 것이든 아라야적인 것이든 제가 알 바 아니예요.”
꿈을 꾸는 이는 그 꿈의 요소 하나하나를 조종하지 않는다. 미키야 역시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물론 자각몽이기에 뭐든 뜻대로 할 수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가끔 부리는 변덕을 제외하면.
“그리고 마지막. 토우코씨, 마법이 무엇이라 생각해요?”
마법. 그것은 억지력에서 벗어난 증거. 현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이적(異跡).
“죽은 이를 살리는 정도면... 충분히 마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뭐?”
토우코는 몸을 굳혔다. 곰곰이 미키야가 한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난 또 뭐라고. 로젠메이든들을 되살린 것을 말하는 건가? 그것은 그녀들의 혼인 로자미스티카가 있기에 가능했던 거야. 로젠이 남긴 제3법에 다시 시동을 건 것에 불과해.”
그러나 미키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보다 조금 더 전의 이야기예요.”
미키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문을 닫았다.
끼이이익. 쾅.
철문이 닫혔다. 미키야의 모습은 그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뭐지? 대체 무슨 소리야?’
다시 조용해진 옥상 위에서 토우코는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그가 남긴 말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서.
‘죽은 이를 살렸다? 언제? 어디서? 지금의 나를 말하는 건가? 아니야. 그건 단순히 육체를 바꾼 것뿐이야.’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런 이적을 행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 난 그런 적이 없어. 죽은 이를 살렸다니? 그런 건 로젠메이든들 밖에 없어. 하지만 그건 로자미스티카 덕분이었다고! 그러니까....아?!’
순간 그녀의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 하고 있었던 것. 본래 그녀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진실을 알게 되었어도 미처 인식하지 못 했던 것.
비어버린 의식 속에 떠오른 것은 한 소녀의 모습. 칠흑의 드레스. 하얀 머리카락. 적보라빛 눈동자. 한 쌍의 검은 날개.
‘스이긴토!’
토우코는 비명이 새어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마음속에서 번져가는 전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직 한 가지 물음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죽었던 그녀를 어떻게 살려냈는가?
‘로자미스티카 때문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아오자키 토우코는 죽었던 그녀를 어떻게 살려냈는가?
‘하지만 아니야. 스이긴토는 사실은 로젠메이든이 아니었어. 로자미스티카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어.’
아오자키 토우코는 죽었던 그녀를 어떻게 살려냈는가?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그래. 그때부터 계속 다급한 사건의 연속이었어. 그래서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 했던 거야.’
아오자키 토우코는 죽었던 그녀를 어떻게 살려냈는가?
‘그랬던 건가... 그랬던... 건가....’
아오자키 토우코는 죽었던 그녀를 어떻게 살려냈는가?
“아...하하 아하하핫~”
힘없이 새어나오는 웃음. 처음 느낀 기분은 허탈함.
“후후후.... 아하하하~”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구도자는 길도 없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야할 방향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눈앞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흩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정상이라는 것을.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핫~”
마지막으로 묻겠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어떻게 스이긴토를 살려낼 수 있었는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허공 가득히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담아. 흘러넘치는 기쁨을 담아.
이 날 세상에는 또 한 명의 마법사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그곳에 이르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