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ädchen
"좋은 아침입니다."
검은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왼쪽 앞머리를 길게 길러서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코쿠토 미키야. 일단은 이 가람의 당의 직원이지만, 본래 업무보다는 사장의 횡포로 인해 이런저런 잡일에 많이 시달리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사무실 안에는 그의 인사를 받아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텅 비어 있는 사무실의 아침. 벌써 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광경이다.
"흐음... 아직도 일이 안 끝난걸까?"
이 곳 가람의 당의 사장인 아오자키 토우코는 얼마 전 왠 가방을 들고 돌아와서는 혼자 해야하는 중요한 작업이 있다면서 며칠째 공방에 틀어박혀 있는 중이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며 미키야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한 쪽에 있는 탁자에는 아직 김이 나고 있는 찻잔이 놓여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음을 확인한 미키야는 토우코를 찾아 옆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도 토우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당히 어수선하게 자재들이 널려있을 뿐.
"정말이지... 의외로 어지럽히는 버릇이 있단 말이야, 토우코씨는. 이따가 청소라도 해야겠는걸"
외모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고용주의 기벽을 한탄하며, 미키야는 몸을 돌리려 했다.
그리고 보았다.
"......."
소녀는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인상은 그야말로 순백. 하얗고 깨끗한 소녀의 모습은 일순 성결함까지 느끼게 했다. 마치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감겨있는 눈은 길다란 속눈썹이 꽃술처럼 뻗어 있다. 조각과도 같이 매끈한 콧날. 입술은 꽃잎과도 같은 붉은 빛.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자신의 가슴에도 못 미칠 자그마한 몸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아, 소녀의 가녀리고도 굴곡 있는 몸매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천사."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말에 멍해져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뜻밖의 상황에 굳어있던 미키야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간의 정적.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의아해진 그는 천천히 정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 같이 눈 앞에 존재하는 것은 새하얀 소녀의 나신. 그녀는 아무 반응 없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미키야는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만히 손을 들어 소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따뜻해...."
문득 떠오른 생각은 지금이 비록 봄이긴 하지만 아침이라 제법 쌀쌀하다는 것. 이런 모습으로 자고 있으면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미키야는 겉옷을 벗어 덮어주기 위해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막 옷을 벗었을 때,
"토우코씨, 안녕하세요~"
벌컥~하고 사무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그의 여동생, 코쿠토 아자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오라버니, 무슨....?"
상반신을 벗은 미키야를 이상하게 여긴 여동생이 오빠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아자카, 이건.."
"....오라버니, 어떻게 이럴수가..... 실망이예요!!!"
식은 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미키야에게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몸은 어찌할 수 없는 당혹과 분노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저기....그러니까 오해야. 이건 단지...."
"듣기 싫어요!!!"
다시 소리를 지른 아자카는 고개를 들어 미키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물기에 젖어 글썽였다.
"겨우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저는, 저는 대체...."
"그쯤 해두도록 해, 두 사람."
순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곳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의 토우코가 담배를 빼어 물고 서 있었다. 며칠째의 작업 때문인지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생겨있고 헝클어진 옷차림이지만, 여느 때와 변함없이 날카로운 분위기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구경이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쉰 마술사는 자신의 제자에게 말했다.
"나는 말이지, 이래뵈도 인형사야. 자신이 만들어낸 인형에 욕정을 품는 위험한 인물을 직원으로 채용할 것 같아?"
뒤이어 작게 '성행위가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지만' 하는 중얼거림. 하지만 그 소리는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인형.....이요?"
"인형이라고요? 이 아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는 두 사람. 그런 그들에게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토우코.
"하지만 분명히 체온도 느껴지고...."
"이런이런, 미키야. 그렇다면 지금 너의 눈 앞에 있는 나는 어떻지? 지금 이 몸도 틀림없는 인형이라고."
그제서야 납득한 두 사람. 그들의 눈 앞에 있는 마술사는 겉보기엔 완벽히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형-감기까지 걸릴 정도로 놀랄 만큼 사람과 흡사한 인형-인 것이다.
"오라버니, 그렇다면 아까 옷을 벗고 계셨던 것은?"
"아, 그건 그저 추워보이길래 옷을 덮어주려고 한 것 뿐이야."
"그러셨군요."
진정이 된 둘을 보며 토우코는 말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두 사람 모두 도와주지 않겠어?"
"도움이요?"
"그래. 원래 이것은 내가 만든 인형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만든 인형이 부서진 것을 내가 가져와 고친거지."
안으로 들어와 인형 앞에 선 토우코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리와 복원은 모두 완벽. 그런데 움직이지 않아. 아무래도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듯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어. 그래서 두 사람이 자료 찾는 것을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그런 거라면 기꺼이 찾아드리죠."
"물론이죠, 토우코씨."
"두 사람 모두 고마워. 그럼 이제 서재로 가볼까?"
작업실을 나서는 세 사람. 그 때 막 문으로 향하던 미키야는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다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나체로 누워있는 소녀의 모습.
'아무리 인형이라고 해도 일단은 여자아이니까....'
테이블로 돌아간 그는 벗고 있던 겉옷을 소녀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아오자키 토우코의 서재는 자료의 양이 방대하다. 인형사일 뿐만 아니라, 마술사이며,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뒷세계의 의뢰와 손이 닿아있는 주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서재 안에 들어있었다. 작은 도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십 평의 공간을 가득 매운 책들을 바라보며 미키야가 물었다.
"그런데 토우코씨. 자료를 찾으려면 단서가 필요한데, 저 인형에 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미키야."
자신의 고용인에게 부드럽게 대답하는 토우코. 거기에는 '찾는 자'인 그라면 이번에도 틀림없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담겨있었다.
"그녀는 로젠메이든 시리즈 중 하나. 전설 속의 인형사 로젠의 작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