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st
“자아~ 오늘 저녁은 모두가 좋아하는 거야.”
“와아~ 맛있겠다!!”
노리는 방긋 웃으며, 막 만들어낸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믹서에 간 소고기를 특유의 양념과 함께 뭉쳐서 오븐에 구워낸 햄버그. 케첩과 간장, 설탕, 양파 및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들어낸 향긋한 소스. 양념과 소스에 사용되는 재료와 그 배합은 그녀만의 비전. 그 위에 얹어진 예쁜 꽃잎을 펼친 계란 후라이. 터트리지 않은 노른자를 한가운데 놓는 것이 포인트.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요리이자, 이 집안의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꽃모양햄버그였다.
“죄송합니다. 항상 신세만 지게 되네요.”
“으응, 괜찮아. 신경 쓸 필요 없어. 식사는 여럿이 할수록 즐거운걸.”
“옳은 말이다예요! 이럴 때는 잔뜩 먹어주는 것이 성의야예요!!”
노리의 대답에 동의하며,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하는 스이세이세키. 소우세이세키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눈은 햄버그에 못 박혀있었다.
“꽃모양이다~ 꽃모양이다~ 어째서 당신은 맛있나요? 달걀과 고기의 조화~ 모두 함께 먹으며~ 음음~”
옆에서는 히나이치고가 신이 난 듯 노래를 부르며, 이미 열심히 포크를 놀리고 있었다. 입에 가득 찬 음식으로 인해 크게 부풀은 볼이 톡 찌르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아라? 신쿠쨩은?”
나머지 음식들을 식탁에 마저 차리던 노리가 의아한 듯 물었다. 마지막 한 자리, 신쿠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모르겠어. 그녀석, 식욕이 없다고 하고. 요새는 항상 찌푸린 얼굴이야.”
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쿠의 이런 행동은 며칠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큰일이네, 신쿠쨩. 몸이 안 좋은 걸까. 아라? 혹시.....”
“왜? 뭐 집히는 거라도 있어?”
“신쿠쨩, ‘그날’ 인 것이 아닐까?”
“켁!”
“쿨럭” “푸웃”
생긋 웃는 얼굴로 엄청난 말을 내뱉는 노리. 그 발언에 음식을 먹던 모두가 목이 매인 듯 가슴을 두드렸다. 오직 히나이치고만이 변함없이 열광적인 기세로 포크와 나이프를 놀릴 뿐이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애기야예요! 그런 걸 우리들이 할 리가 없어예요!!”
“끄응, 확실히 인형에게 그런게 가능할 리 없잖아?”
빨개진 얼굴로 도리질치며 부정하는 스이세이세키. 준도 미끌어진 안경을 고쳐쓰며 동의했다. 하지만 오히려 노리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아라라? 아닌걸까?”
“당연하지!” “당연해요!” “당연해예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식사도 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우웅~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리.
“그러면 혹시 모두들, 화장실도 안 가는거야?”
노리의 순진한 질문. 그와 동시에 식탁은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세계에는 ‘억지력’이라 불리는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세계에 있어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힘. 대상의 선악 같은 것은 개의치 않는다. 그저 제거할 뿐이다. 오직 그것만을 위한 힘.
따라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코멘트. 그것은 세계에 있어서 위협이 되는 것. 위협이 되는 존재, 위협이 되는 상황, 그 모든 것을 배제하기 위해 억지력이 발동했다. 발동한 억지력에 의해 모든 것은 수정되었다.
그 것이 가이아적인지 아라야적인지는 오직 수호자만이 알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랑 할머니께 안부 전해줘.”
“네, 잘 먹었어요.”
“또 놀러 올게요~”
식사를 무사히 마친 후 쌍둥이 자매는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다행히 억지력에 의한 존재말살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한 듯했다. 준, 노리, 히나이치고 모두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다음엔 현관으로 들어오라고.”
“가끔은 힘을 쓰는 편이 운동부족인 꼬맹이에겐 딱 좋아예요!!”
“뭐야?”
발끈하는 준. 스이세이세키는 깔깔 거리며 가방문을 닫았다. 그대로 날라가는 2개의 상자.
“조심하렴~”
노리의 목소리만이 뒤를 이었다.
“후아아암~ 이제 잘래.”
어느덧 9시. 착한 어린이는 잠드는 시간. 더불어서 로젠메이든들에게 역시 잠드는 시간이다. 히나이치고는 크게 하품을 하며 가방으로 걸어갔다. 졸린 듯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빈다.
“하암~ 신쿠는 아직 안 자?”
“조금 이따가.”
“응. 그럼 나 먼저 잘게.”
달칵~ 하고 가방이 닫혔다. 신쿠는 다시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신경 쓰인 듯 바라보던 준은 고개를 돌려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간은 어느덧 11시. 그 동안 들리는 것은 오직 신쿠의 책장 넘기는 소리와 준의 글씨 쓰는 소리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계속 정적이 감돌았다. 참지 못한 준은 연필을 놓았다. 어차피 집중이 되지 않아 공부도 되지 않았다.
“이봐.”
“왜?”
“너 요즘 계속 늦게 자네?”
“그래?”
“잠 자는 시간은 소중하다고 했으면서. 요즘 식사도 거르는 일이 많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준의 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신쿠를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동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걱정 어린 눈.
“....있지.”
“왜 그래?”
“저기......”
신쿠는 망설였다. 그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눈 앞의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하고. 하지만 이내 결심했다. 그는 그녀의 미디엄. 그녀의 계약자로서, 영혼의 절반을 공유하는 상대. 둘 사이에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직이 신쿠는 말을 꺼냈다.
“스이긴토가 찾아왔었어.”
“.......뭐?”
잠시 동안 준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녀가 언급한 이름의 주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존재. 따라서 그녀의 말이 전하는 정보는 있을 수 없는 사실. 그 모순을 깨달은 후에야 준은 그녀의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 죽은 게 아니었어?”
“그래. 그 말대로야, 준. 우리들의 경우에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긴 하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분명 그녀는 죽었었어.”
“그럼 뭐야? 좀비라도 되어 돌아왔다는 거야?”
“틀려, 준.”
신쿠는 고개를 저었다.
“생명을 구성하는 3요소는 육체-정신-영혼이야. 영혼이라는 종이에 정신이라는 글이 쓰여 있어. 육체는 그 내용을 현계시키는 것, 즉 책이라고 할 수 있어.”
그 이야기는 준도 들은 적이 있었다. 오컬트 쪽에 관해서는 인터넷으로 많이 접해보았으니까. 그가 통신판매로 사 모은 제품에도 오컬트 관련물품이 상당수 있었다.
육체-정신-영혼. 다른 말로는 혼백체(魂魄體). 체가 죽으면 혼은 승천하고, 백은 땅에 남아 귀신이 된다고 한다.
“우리들 로젠메이든에게 있어 영혼은, 종이의 역할을 하는 것은 로자미스티카야. 로자미스티카에 적힌 글로서 정신, 즉 인격이 존재해. 그리고 우리들 육체의 근원, 힘의 원천 역시 로자미스티카야.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몸은 단지 움직임과 힘을 구현시키는 수단일 뿐이지. 즉 우리들의 생명은 바로 로자 미스티카. 몸이 부서져도 로자미스티카만 온전하면 고칠 수 있어. 하지만 로자미스티카가 사라지면 우리들은 그저 단순한 인형으로 돌아갈 뿐이야.”
그 이야기 역시 준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망가진 신쿠의 팔을 고친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리고 앨리스게임은 바로 그 로자미스티카를 빼앗기 위한 싸움.
“그렇다면 스이긴토는 로자미스티카가 무사했다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일전의 싸움이 끝난 후, 불타버린 스이긴토의 잔해에서 그녀의 로자미스티카를 찾을 수 없었어. 그래서 당시에는 그 불길에 스이긴토의 로자미스티카도 함께 불타버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던 거야. 누간가가 모종의 수를 써서 빼돌린거지. 그리고 새롭게 육체를 만들어서 스이긴토를 부활시킨거야.”
긴장으로 인해 굳어진 준의 목으로 어느새인가 고인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스이긴토의 강력한 힘은 잘 알고 있었다. 스이세이세키, 소우세이세키, 히나이치고가 힘을 합쳐도 겨우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쿠 역시 준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넘쳐흐르기 전에는 그녀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지금 신쿠는 바로 그런 스이긴토가 다시 부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어서 모두에게 알려야.....”
“그만둬, 준.”
“무슨 소리야! 그 녀석 엄청나게 강하잖아? 모두 위험하다고. 일단 히나이치고라도 깨울게.”
“히나이치고는 이미 알고 있어.”
“그게 무슨.... 난 그런 이야기 듣지 못 했어!”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애기했어.”
“뭐.....?”
준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신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을 합쳐도 부족할 상황에 그녀는 무슨 생각인 것인가. 찡그린 준의 얼굴을 보며, 신쿠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준. 히나이치고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한 듯 하지만.”
씁쓸한 표정으로 신쿠는 말을 이었다.
“그 당시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는 준의 마음 속이지?”
“아아~”
“마음, 즉 심상세계를 다루는 술(術)은 인간은 쓰기 어려운 힘이야. 현실세계와는 괴리된 법칙에 속해있으니까. 우리들 중에서는 심상세계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것은 정원사의 물뿌리개와 가위를 지닌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 밖에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는 심상세계에 들어온 거야. 그 것도 준, 너의 마음 속이라는 특정한 심상세계를 골라서. 그리고 스이긴토의 로자 미스티카를 빼돌린 거지.”
“......그래서?”
“그것만이 아니야.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로젠메이든은 나, 히나이치고, 스이세이세키, 소우세이세키. 넷이야. 그런 우리들의 눈을 피해서 로자미스티카를 빼돌렸다고? 어다까지나 인간의 능력으로? 그런 것은 불가능에 최소한 아버님 정도의 마술사이며, 우리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형사가 아닌 이상은!”
신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토해내듯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스이긴토의 육체를 만들었다고? 우리들 로젠메이든은 아버님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야. 전설 속의 인형사 로젠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낸 존재라고! 그런 우리들과 동등한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아버님 외에 생각할 수 있을까?”
그 말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아버님은 화내고 계신 것인지도 몰라. 앨리스게임의 규칙, 로자미스티카를 빼앗는 것을 거부한 나에 대해서. 그래서 이미 죽은 스이긴토를 부활시킨 것인지도 몰라.”
신쿠의 가녀린 몸은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추론한 사실은 그녀의 이상, 가치관, 그리고 의지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준은 두 팔을 뻗었다. 그리고 신쿠를 품에 안았다. 가슴을 통해 그녀의 불안이, 그녀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준은 문득 지난 일을 떠올렸다. 그때의 신쿠도, 팔을 잃어버린 그녀도 지금과 같았다. 항상 도도하게 굴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여렸다.
“나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준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자신의 품에 채 다 들어오지도 못 하는 자그마한 그녀를 향해서.
“일단은.... 다른 녀석들에게 말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안돼. 그 아이들이 그런 걸 견딜 수 있을리 없어. 히나이치고가 다른 자매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것 같아?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키는 같은 쌍둥이끼리 죽여야만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혼자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 계속해서 끙끙 가슴앓이나 하면서.”
“준.....”
준은 신쿠의 어깨를 짚었다. 자신의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나를 봐, 신쿠, 나는 혼자서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었어. 이 세상에서 나 혼자뿐, 단지 외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자신의 지난 날. 주변의 걱정도 외면한 채 혼자서 살아가던 날들을 떠올리며, 준은 신쿠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과거의 자신과 같았기에.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어. 모두들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어. 누나, 토모에, 아빠, 엄마, 그리고 너희들. 모두가 나의 마음을 자신들에게 이야기해주길 바랬어. 나를 도와주고 싶어했어. 나의 짐을 나누어 들기를 바랬어.”
“준......”
소년의 목소리는 격안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비추듯. 그리고 그녀를 비추듯.
“다른 녀석들도 걱정하고 있어. 누나도 히나이치고도 스이세이세키와 소우세이세키도.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식사를 거른다고, 늦게 잠든다고, 항상 근심어린 표정이라고 걱정하고 있어.”
“준, 나는....”
“말하고 난 뒤에 어떤 결과가 올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혼자서 끙끙거리다가는 아무 것도 못 하게 돼. 어차피 나중에는 모두 알게 될 일이잖아? 최소한 미리 짐을 나누어 드는 편이 나는 좋다고 생각해.”
“준.....”
신쿠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진 소년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손은 그녀의 손으로는 모두 감싸기 힘들 정도로 컸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항상 곁에서 챙겨줘야만 했던 소년은 어느새 기댈 수 있을 만큼 크게 성장해있었다.
“응, 그럴게.”
신쿠는 방긋 웃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