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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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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änen


   ​미​키​야​의​ 집

  ​집​을​ 지키는 것은 스이긴토 혼자뿐이다. 시키와 아자카는 엄연히 학생의 신분인지라 낮에는 학교에 있다.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저녁 무렵. 아자카의 경우는 본래 기숙사제 학교에 다니지만, 한쪽 눈이 멀고 다리도 불편한 오라버니의 수발을 든다는 명목으로 상시외박을 허락받고 있다. 물론 그 정도 이유만으로 예외가 허용될 리 없지만, 그 학교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토우코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이다.

  ​미​키​야​는​ 직장인 가람의 당으로 출근한 상태. 평소라면 스이긴토 역시 그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있으니 찬 바람을 쐬면 좋지 않다는 미키야의 만류에 그녀 홀로 남겨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은 적적하기만 하다. 이 곳에는 TV 같은 시간을 보낼 유희거리도 없는 것이다. 결국 스이긴토는 창가에 앉아 거리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용​하​네​.​”​

  ​한​낮​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아마도 이 곳이 시 외곽 변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시간에는 그나마 출근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던 거리는 지금은 사람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결국 지루함을 느낀 스이긴토는 몸을 돌려 집 안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찌​잉​!​

  ​“​이​것​은​!​”​

  ​주​위​의​ 세계가 급격히 일그러졌다. 이윽고 일그러진 풍경이 제 모습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와있었다.

  ​“​이​ 곳은.... N의 필드인가.”

  ​지​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수정의 숲. 보라색 빛을 머금은 수정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세계. 스이긴토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세계는 신쿠의 장미저택이나 스이긴토 그녀의 세계와 같은 곳. 로젠메이든 각자가 지닌 심상세계라는 것을.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은, 이 세계의 주인이 그녀에게 앨리스게임을 신청했다는 의미라는 것을.

  ​“​초​대​장​도​ 보내지 않고 무턱대고 끌고 와버리다니. 무례한 방식이네. 예의를 가르쳐줄 필요가 있겠어.”

  ​피​잉​!​

  ​검​은​ 깃털이 날아가 수정기둥 중 하나에 꽂혔다. 쩌적하고 기둥에 금이 가더니 이내 부서져 내렸다.

  ​쿵​!​ 쿠웅!

  ​떨​어​진​ 기둥조각들이 땅에 부딪히며 굉음을 울렸다.

  ​그​리​고​ 그 기둥 속에서 보랏빛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힘, ......강해”

  ​소​녀​는​ 입가를 말아 올리며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넌​.​.​.​.​”​

  ​스​이​긴​토​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의 소녀는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스이긴토의 의문에 답하듯, 연보라색 드레스의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키​라​키​쇼​.​ 로젠메이든 제7돌.”

  ​“​제​7​?​”​

  ​키​라​키​쇼​의​ 말을 들은 스이긴토의 얼굴이 굳어졌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것처럼.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나지 못한 자매는 오직 하나.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던 일곱번째 뿐이었으니까.

  ​“​제​7​돌​.​.​.​.​ 마지막 로젠메이든인가.”

  ​혼​이​ 빠진 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스이긴토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화내는지 혹은 찡그리는지 알 수 없게 일그러졌다.

  ​“​후​후​후​.​.​.​.​.​ 아하하하~ 아하하~”

  ​스​이​긴​토​의​ 입에서 뒤틀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광기 어린 웃음소리. 눈 앞의 키라키쇼조차 잊은 듯 그녀의 웃음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내 거짓말처럼 그 소리는 멈추었다.

  ​“​넌​.​.​.​.​ 건방진 동생 같구나.”

  ​스​이​긴​토​는​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초리로 키라키쇼를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살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펄​럭​

  ​스​이​긴​토​의​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수정으로 가득 찬 이 세계를 가려버리듯.

  ​“​버​릇​을​ 고쳐주지. 조금은 난폭하게 말야.”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투​두​두​두​!​

  ​파​아​앗​!​

  ​검​은​ 깃털과 수정의 총탄이 서로를 향해 폭사되었다. 두 무리는 서로를 스치며 지나가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스​이​긴​토​는​ 가볍게 날개를 펄럭이며 피했다. 그녀는 일곱 자매 중 유일하게 날개를 가진 로젠메이든. 공중에서의 기동성에 있어서는 가히 최고수준. 이 정도의 공격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키​라​키​쇼​는​ 스이긴토와 같은 날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은 그녀의 세계. 모든 것은 그녀의 뜻대로 움직인다. 결국 키라키쇼 역시 스이긴토 못지 않은 움직임으로 깃털들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제​법​이​네​.​ 그럼 이건 어때?”

  ​스​이​긴​토​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에 응하듯 빗나갔던 깃털들이 직각으로 꺾이더니 다시금 키라키쇼를 쫓아 날아갔다. 하지만 키라키쇼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한 손이 펼쳐지며 생성된 연보랏빛 방패에 스이긴토의 깃털들은 가로막혀 버렸다. 그녀의 다른 한 손이 스이긴토를 가리켰다. 허공에서 생겨난 수정들이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바닥에서 수정기둥들이 스이긴토를 노리고 솟구쳤다.

  ​“​소​용​없​어​!​”​

  ​스​이​긴​토​의​ 날개가 펄럭였다. 단 한 번의 날갯짓에 그녀를 노리던 수정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날개를 접었을 때 키라키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친​ 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스이긴토. 그녀의 뒤쪽 수정 중 하나에서 소리 없이 키라키쇼가 빠져나왔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스이긴토의 무방비한 등을 덮쳐갔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린 스이긴토의 옆얼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얼굴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키​라​키​쇼​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낌과 동시에, 스이긴토의 검은 깃털이 그녀의 발목을 감았다. 중심을 잃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결국 그녀의 공격은 헛되이 허공을 가를 수 밖에 없었다.

  ​“​잘​ 가렴, 나의 동생아.”

  ​스​이​긴​토​의​ 두 날개가 늘어나며 키라키쇼를 덮쳤다. 일직선상의 모든 것이 그 여파에 부서져 밀려났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날개에 부딪힌 것은 키라키쇼가 아닌 육중한 수정기둥. 스이긴토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곧바로 수정의 파도가 그녀를 향해 몰아쳤다. 스이긴토는 위로 날아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다시 키라키쇼가 나타났다.

  ​투​두​두​두​!​

  ​다​시​ 폭사되는 수정의 총탄. 미처 피할 틈은 없었기에 스이긴토는 날개로 몸을 감싸 막았다. 그러나 그 것이 빈틈을 만들고야 말았다. 날개를 접어서 움직임이 둔해진 그녀를 노리고 다시금 수정들이 솟구쳤다.

  ​콰​앙​!​ 콰앙!

  ​수​정​들​은​ 스이긴토의 날개에 부딪히며 굉음과 함께 부서져갔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솟아오르며 공격해왔다. 스이긴토는 날개 바깥쪽으로부터 전해지는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까처럼 날개를 펼쳐 수정들을 휩쓸려 하면, 그 틈으로 총탄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란 사실은 명백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굳이 그녀가 직접 공격해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피​잉​!​

  ​“​큭​!​”​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키라키쇼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긴 상흔이 그녀의 볼에 새겨졌다. 놀란 키라키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스이긴토는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태. 만약 공격이 있다면 그 것은 제3자로부터일 터였다.

  ​그​러​나​ 키라키쇼는 보았다. 주위에 무의미하게 흩어져있던 스이긴토의 검은 깃털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모습을.

  ​핑​!​ 피잉!

  ​순​식​간​에​ 수십의 깃털들이 키라키쇼를 노리고 날아왔다.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그 방향은 360도 전범위. 그녀의 수정공격을 능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방향 공격. 더군다나 피해냈던 깃털들은 곧바로 방향을 바꾸며 다시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큿​!​”​

  ​어​쩔​ 수 없이 키라키쇼는 수정의 총탄을 쏘아 보내는 것을 그만두고, 주위에 자신의 응축된 기운을 폭사시켰다. 연보라색 기운이 퍼짐과 동시에 그녀를 노리던 깃털들은 작은 수정 속에 갇힌 채 우수수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이야말로 스이긴토가 노린 것이었다.

  ​다​시​금​ 스이긴토의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단 한번의 날갯짓으로 그녀를 노리던 수정들을 모두 부수어버린 스이긴토는 다시금 날개를 펄럭였다. 바람을 움켜쥔 그녀는 곧이어 쏜살같이 키라키쇼를 향해 날아갔다. 검은 깃털들이 모여 이루어진 한 자루 검을 손에 쥔 채로.

  ​쾅​!​ 콰앙!

  ​그​녀​를​ 노리고 수정기둥들이 다시 솟구쳤지만 스이긴토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저 그녀가 지나간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앞에 솟아있는 기둥들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섬광. 한 줄기 검은 번개가 된 스이긴토가 키라키쇼를 덮쳤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에 부딪힌 것은 키라키쇼 본인이 아닌 그녀를 감싼 수정. 그러나 공격이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이긴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검은 날개가 펄럭이며 허공에 깃털들을 흩뿌렸다.

  ​콰​가​가​가​가​!​

  ​스​이​긴​토​의​ 날갯짓에 의해 생겨난 회오리가 키라키쇼의 수정을 감쌌다. 그 속에서 흩날리는 깃털들이 수정에 부딪혀갔다.

  ​쨍​!​ 째앵! 째앵!

  ​그​로​ 인해 수정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깃털들의 공세에 의해 생겨난 금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키라키쇼를 감싼 수정은 삽시간에 본래의 매끄러운 표면을 상실한 흉측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우​후​훗​~​ 쥐새끼처럼 도망다니더니 꼴 좋구나. 어때? 독 안에 든 쥐가 된 감상은.”

  ​그​ 모습을 보며 스이긴토는 비웃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수정으로 몸을 감싸는 키라키쇼의 방어술은 확실히 절대 방어라고 불릴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최대의 약점. 그 속에 있는 동안은 키라키쇼 자신도 움직일 수 없다. 유일한 이동방법은 수정의 표면을 통해 N의 필드를 경유하는 것. 그러나 N의 필드로의 이동은 반사면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표면이 수많은 금으로 뒤덮여 온전한 반사면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수정 자체가 키라키쇼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콰​앙​!​ 쾅!

  ​스​이​긴​토​를​ 노리고 수정기둥들이 솟구쳤지만, 그녀는 날개를 펄럭이며 가볍게 피했다.

  ​“​우​후​훗​~​ 소용 없어. 너의 공격은 말이지..... 너무 단순하거든!”

  ​키​라​키​쇼​의​ 또 하나의 약점. 그 것은 모든 공격이 직선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 곡선을 그리거나 도중에 궤도를 바꾸는 공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것을 커버하는 것이 여러 방향에서의 동시다발적인 공격. 그러나 공중에서의 뛰어난 기동성과 회피력, 그리고 설령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 모든 수정들을 부수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이긴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자​아​~​ 어떤 방법을 원하니, 키라키쇼.”

  ​스​이​긴​토​는​ 검은 깃털 하나를 손으로 집고는 흔들며 여유롭게 말했다.

  ​“​제​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 해도 계속 두들기면 부서지기 마련. 이대로 수정과 함께 너를 부수어줄까?”

  ​핑​!​

  ​스​이​긴​토​의​ 손에 들린 깃털이 날아가 키라키쇼의 정면에 꽂혔다. 깃털이 꽂힌 수정의 표면이 움푹 패였다.

  ​“​아​니​면​.​.​.​.​.​ 네가 이 수정을 없애는 즉시 꼬챙이로 만들어줄까?”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리며 스이긴토는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마치 고양이가 사로잡은 생쥐를 가지고 놀듯이.

  ​“​우​후​훗​~​ 어느 쪽이라도 좋아. 선택하렴. 응?!”

  ​여​유​롭​게​ 웃던 스이긴토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수정 안쪽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금이 간 표면 너머로 키라키쇼의 눈에 자리잡은 장미가 만개하는 것을.

  ​“​큭​,​ 마안인가!”

  ​스​이​긴​토​는​ 황급히 뒤로 돌아 날아갔다. 상대에게 그런 수단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그녀의 실책이었다. 일반적으로 마안의 사정거리는 시야가 미치는 전범위. 발동하기 전에 시야 밖으로 벗어나야 했다. 그녀의 두 날개가 펄럭이며 속력을 높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키라키쇼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속았구나!”

  ​그​제​서​야​ 스이긴토는 깨달았다. 마안의 경우 대상의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초점이나 상(像)이 명확하지 않으면, 방향성을 잃은 힘은 흩어지게 된다. 아까와 같은 금이 간 수정 속에서 제대로 된 힘을 행사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키라키쇼의 허세에 속고만 것이다.

  ​“​어​디​지​?​”​

  ​황​급​히​ 주위를 살피는 스이긴토. 키라키쇼는 그런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순​한​ 공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키​라​키​쇼​의​ 등 뒤에서 무수한 수정들이 생겨났다.

  ​“​피​할​ 수 없게 하면 되니까요.”

  ​슈​웅​!​ 슝!

  ​쿵​!​ 쿠웅!

  ​하​늘​에​서​ 수정들이 마치 비가 내리듯 쏟아졌다. 동시에 주위에서 수정기둥이 솟아올랐다. 오직 스이긴토 하나만을 노리고.]

  ​“​큭​,​ 이건!”

  ​스​이​긴​토​라​는​ 점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의 공격. 아무리 그녀라 할지라도 피할 수는 없었다. 방법은 두 가지. 막거나 부수거나. 그러나 막게 되면 계속해서 얻어맞을 뿐이다. 그녀가 키라키쇼에게 말했던 대로, 단단한 것도 계속 두들기면 부서지게 마련. 결국은 방어가 무너져 당하게 된다.

  ​결​국​ 방법은 사실상 부수는 것뿐. 키라키쇼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끝을 가진 수정의 창. 스이긴토가 날개를 펼쳤을 때 비어있게 될 그 맨몸을 찔러 꿰뚫기 위한 무기.

  ​막​아​도​,​ 부수어도 결국 승자는 키라키쇼 그녀의 것이었다.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는 그녀의 예상 이상의 존재였다.

  ​크​롸​롸​롸​롸​롸​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스이긴토의 날개가 부풀어올랐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용. 한쪽 날개에 한 마리씩. 도합 두 마리의 용이 그 입을 벌리며 포효했다.

  ​한​ 마리의 용이 똬리를 틀어 스이긴토를 감쌌다. 수정들은 용의 몸에 닿기도 전에 부스러졌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의 용이 키라키쇼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녀를 삼키려는 듯 크게 벌어진 입. 그녀 정도는 가볍게 씹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이빨이 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크​읏​!​”​

  ​키​라​키​쇼​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방어했다. 양 손이 펼쳐지며 연보랏빛 방패가 생성되었다. 상대가 그녀의 절대방어를 파훼할 수 있는 이상, 통상의 방법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눈 앞의 검은 용을 막기에 무리였다. 용의 입이 그녀를 덮쳐옴과 동시에 그녀가 만들어낸 방어막은 한계를 이기지 못 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키라키쇼의 몸이 축 늘어진 채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곧이어 뒤에 있던 수정기둥에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큭​!​”​

  ​신​음​과​ 함께 키라키쇼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속이 뒤집힌 듯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목에 와닿는 서늘한 감각은 그녀를 현실로 되돌렸다. 힘겹게 키라키쇼는 자신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

  ​목​에​ 닿아있는 차가운 칼날. 스이긴토는 그 검자루를 움켜쥔 채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의​ 승리입니다. 끝내주시죠.”

  ​키​라​키​쇼​는​ 다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이제 곧 저 칼이 그녀의 목을 벨 것이다. 그리고 로자미스티카를 빼앗긴 그녀는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의​아​함​을​ 느낀 키라키쇼는 눈을 떴다. 그러나 목에 닿아있는 칼날 때문에 고개를 움직이지 못 하므로, 스이긴토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정​적​ 속에서 두 인형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키라키쇼가 상대가 힘이 다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려 할 때, 스이긴토의 입이 열렸다.

  ​“​아​버​님​은​.​.​.​.​.​”​

  ​“​.​.​.​.​.​.​?​”​

  ​“​아​버​님​은​.​.​.​ 너에게 웃어주셨나?”

  ​목​이​ 쉰 듯 갈라진 목소리.

  ​“​아​버​님​은​ 너에게 미소 지어 주셨나?”

  ​다​시​ 한 번 스이긴토는 키라키쇼에게 물었다. 더욱 강렬한 어조로. 하지만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키라키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만 깜박일 뿐. 그러나 스이긴토 역시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투​둑​

  ​키​라​키​쇼​의​ 얼굴에 따스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을 느낀 후에야 그녀는 그 것이 물방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세계인 이 곳에서 비가 내릴리도 없건만, 이상한 일이었다.

  ​“​재​미​없​어​.​ 시시해.”

  ​스​이​긴​토​는​ 검을 거두고는 몸을 돌렸다. 키라키쇼는 윗몸을 일으키고는 그녀를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승자는 패자의 로자미스티카를 빼앗는다. 패자는 승자에게 로자미스티카를 주고 평범한 인형이 된다. 그 것이 앨리스게임의 규칙. 그러나 스이긴토는 어째서 승자의 권리를 취하지 않는가, 혹시 그녀도 자신처럼 모종의 명령을 받는 중인 건가 하는 등의 의문이 키라키쇼의 머리 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런 그녀를 향해 스이긴토는 뒤돌아선 채로 말했다.

  ​“​너​ 같이 약해빠진 녀석의 로자미스티카를 뺏는 건 너무 간단하다고.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둘래.”

  ​스​이​긴​토​의​ 날개가 펼쳐지며 폭풍이 몰아쳤다. 그 강력한 충격파는 그녀 앞에 있는 수정의 숲을 한 번에 폐허로 만들었다. 산산이 부서진 수정의 파편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백업해줄 매개를 잃은 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키​라​키​쇼​는​ 경악했다. 눈 앞의 상대는 언제라도 이 세계를 파괴하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신에게 불리한 이 곳에서의 싸움을 택한 것 인가. 새로 생겨난 의문으로 키라키쇼의 머리 속은 더욱 혼란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느끼는 혼란과는 관계없이, 스이긴토의 말은 계속되었다.

  ​“​다​음​에​는​ 좀 더 힘을 키워서 오렴. 이 쪽도 즐거울 정도로 말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스이긴토는 벌어진 세계의 틈 사이로 사라졌다. 반짝이는 물방울 하나가 그녀가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그 것은 이내 스며들었다. 남은 것은 그 자국뿐.

  ​그​ 아이, 온전한 몸을 가지고 있었어.

  ​7​번​째​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야​.​.​.​.​?​

  ​이​래​서​는​,​ 이래서는 뭔가 이상하잖아!

  ​.​.​.​.​.​아​버​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 건가요?

여지껏 나온 소꿉장난 같은 전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전투씬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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