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ösung
“우아앗!”
미키야는 기겁을 하며 벽에 달라붙었다. 휘청거리던 몸은 다행히 바닥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경험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후우, 큰일날 뻔 했네.”
한숨을 쉰 미키야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처럼 발을 헛딪는 사태에 대비해서 등을 벽에 바짝 붙인 채로 한걸음 한걸음 주의를 기울여가며.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에서 가장 고난은 세차게 부는 바람이지만, 이 곳은 숲 속이라 그런지 다행스럽게도 그런 바람은 없었다. 그저 살랑거리는 선선한 공기가 미키야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줄 뿐이었다.
이윽고 벽모서리가 손에 잡혔다. 미키야는 팔에 힘을 주어 그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두터운 유리. 그의 키보다 훨씬 큰 창문이었다. 돌로 된 벽에 커다란 유리창. 모두 평범한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성(城)
그렇다. 지금 미키야가 있는 곳은 성이었다. 그 것도 일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세 서양풍의 고성. 아마 독일에나 가야 이런 성을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 곳은 분명 일본이다. 비록 울창한 수해에 둘러싸인 외진 곳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마치 도둑처럼 2층 창문틀에 서있었다. 2층이라고는 하지만 성의 토대까지 합치면 그 높이는 10m 정도. 어지간한 3층 건물 높이다.
“하아, 이러다가 고소공포증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몰라.”
10m는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키야는 수십층 건물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다리 하나는 부러지고 말 터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린 미키야는 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커다란 홀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얼핏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그림들. 그에 어우러져 사람얼굴조상들이 홀 안을 꾸미고 있다. 그림과 조상들은 모두 밝게 빛을 내는 벽등의 조명으로 인해 더욱 화려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었다.
안에 있는 가구들 역시 예사 물건이 아니다. 미키야의 짧은 안목으로는 자세히 구분할 수 없었지만, 바로크나 로코코풍 같았다. 하다못해 테이블 다리 하나도 예술품처럼 아름다운 조각으로 치장되어 있다.
또한 흑과 백의 대리석을 번갈아 깐 바닥은 얼마나 매끄러운지, 그 윤기로 인해 조명빛을 환히 반사시키고 있다.
시선을 가운데로 돌리자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지금껏 본 것은 저 아래 1층의 광경이었던 것이다. 계단에는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이 깔려있다. 뛰어도 소리조차 나지 않을 것 같다. 난간은 1층의 가구와 마찬가지로 고풍스러웠으나, 훨씬 복잡하고 화려한 문양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금도금이라도 한 것인지 은은한 금빛을 뿌리고 있다.
계단 위로 올라가면 맞이하는 것은 커다란 아치의 문. 양쪽에 시녀처럼 2개의 작은 문을 거느리고 있다. 훤히 뚫려있는 3개의 문은 각각 꼭대기에 보석들로 치장된 샹들리에가 달려 있어서 2층을 밝히고 있다. 문 안쪽으로는 사람크기의 청동조형이 보인다.
하지만 어디에도 미키야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벽과 바닥, 가구, 장식품 모두를 둘러보아도 없었다. 혹시 지나쳤나 싶어, 다시 한 번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역시.....인 걸까.....”
미키야는 길게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포기한 채 허탈한 감정을 안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미키야는 ‘그 것’을 보았다.
“앗.....!!”
‘그 것’을 본 순간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아아... 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크게 뜬 눈에 한가득 ‘그 것’이 들어차있을 뿐. 손도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동안 뒤진 자료가 어느 정도이던가. 셀 수 조차 없다.
그가 만나본 사람은 몇이나 되던가. 수십은 될 터였다.
애매한 추측만을 가지고, 근거도 없는 확신만을 가지고 마침내 도착한 이 곳.
“아하하~ 아하하핫~~!”
미키야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에 대한 보상. 그 환희가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미키야의 입이 한껏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빙고!”
그의 시선이 향한 곳, 천장의 ‘그 것’은 미키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펜촉 같이 뾰족한 끝을 가진 금십자가.
그 한가운데 피어난 우아한 장미.
그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문양이었다.
어두운 방 안. 광원은 오직 컴퓨터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빛뿐.
위이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조차도 얼마가지 않아 잦아들었다. 모터의 공회전 소리만이 여운으로 맴돈다. 모니터 상의 메시지는 지금껏 수행하고 있던 작업의 종료를 나타내고 있다.
딸깍하고 커서가 확인 버튼을 클릭했다. 이윽고 화면을 무수한 글자와 숫자가 가득 채웠다. 그녀가 원하던 것은 가장 아래에 나와있었다.
마력흐름패턴 96.32%
마력파동패턴 93.76%
마력 양상 94.84%
마력회로 98.96%
마술회로 98.25%
전체분석결과 99.87%로 일치.
동일인임을 확인.
모니터에 비친 글자는 그대로 안경에 비추어졌다. 방 안에 들어찬 어둠 때문이리라.
‘동일인임을 확인.’
안경에 비친 글자는 마찬가지로 그 너머에 존재하는 눈의 망막에 상을 맺었다. 그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 그녀의 눈이 환희의 빛을 머금었다.
“빙고!”
마술사 아오자키 토우코의 입이 한껏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