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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사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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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chen mörder


  하얀 새와 검은 새가 어우러져 허공에서 춤춘다. 화사하게 붉은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보는 사람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 그러나 그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것은 서로를 죽이고 부수고 상처 입히려는 살기.

  ​“​아​하​하​핫​~​ 더욱 더 발버둥 쳐봐. 내가 앨리스가 되는 것을 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텐​시​는​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정작 듣고 있는 이들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녀가 그 순간 내보인 작은 틈 하나조차 놓쳐서는 안되었다. 어느새 접근한 스이긴토가 손에 든 장검을 휘둘렀다. 신쿠는 굳게 쥔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둘​의​ 공격은 역시나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하지만 서둘러 뒤로 물러서는 와중에도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검은 깃털과 붉은 가시가 그 날카로운 끝을 텐시에게로 향한다.

  ​“​어​림​없​어​!​”​

  ​텐​시​는​ 두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한데 어우러져 날아가던 검고 붉은 탄환들은 거세게 일어난 바람을 견디지 못 하고 스러졌다. 스이긴토와 신쿠는 텐시의 날개짓을 피하기 위해 양쪽으로 산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속임수이기도 했다. 앞서 두 소녀가 가리고 있던 시야가 트이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름드리 나무보다도 굵은 줄기뭉치. 진녹의 포화가 퍼부어진다. 그것에 직격당하면 그 충격은 설령 자신이라 해도 경시할 수 없다는 것을 텐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패턴이 같아서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

  ​분​명​ 절묘한 타이밍이었지만 이미 여러 번 경험해본 것이기도 하기에, 텐시는 코웃음 치며 우아하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줄기의 포격이 그 자그마한 손 바로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하고 갈기갈기 분쇄된다.

  ​“​지​금​이​야​!​”​

  ​바​로​ 그 순간 스이긴토와 신쿠가 달려들었다. 통상의 공격과는 달리 저 줄기들은 술자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뻗어 나온다. 다시 말해 저것을 막는다는 것은 그 동안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것. 이 비장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그녀들은 계속 포석을 깔아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날아가던 그대로 덜컥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몸을 허공에서 뻗어 나온 딸기넝쿨들이 구속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싸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텐​시​의​ 다른 한 손에 커다란 가위가 나타났다. 스이세이세키의 물뿌리개와 대칭되는 정원사의 가위. 푸른 입자를 흩날리는 그것을 들어 올려 앞으로 뻗은 텐시는 그대로 줄기 속으로 돌진했다.

  ​지​지​지​지​지​직​.​

  ​줄​기​뭉​치​는​ 그녀가 가는 대로 맥없이 양쪽으로 쪼개졌다. 굵은 녹색의 선을 따라 푸른 점이 달린다. 하얀 색 가는 선이 그 뒤를 잇는다. 저 너머에 위치한 오드아이의 소녀를 향해서.

  ​“​스​이​세​이​세​키​!​”​

  ​경​악​한​ 준이 그녀를 불렀지만, 공포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소녀는 차마 피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뿐. 

  ​“​이​익​~​ 빌어먹을!”

  ​준​은​ 황급히 반지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의지에 반응하여 반지는 녹색의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스이세이세키의 줄기가 더욱 굵고 단단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그저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했다. 약간의 시간을 버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조금도 속도가 줄지 않은 가위가 시퍼런 날을 드러내며 스이세이세키를 덮쳐갔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치​잇​!​ 저 바보가!”

  ​스​이​긴​토​의​ 몸에서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자신을 감싼 넝쿨을 환염(幻火)으로 삽시간에 태워버리며, 그녀는 그대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한줄기 검은 번개가 뻗어나간 자리에는 미처 뒤따르지 못한 깃털 몇 장이 흩날렸다.

  ​채​앵​!​

  ​그​리​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다란 가위의 날 사이에 그와는 대조적으로 가느다란 칼날이 끼워져 있다.

  ​“​크​.​.​.​크​읏​!​”​

  ​칼​자​루​를​ 움켜쥔 작은 손이 힘에 부친 듯 부들부들 떨렸다. 스이긴토는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가위를 이를 악물고 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힘의 차이를 감당하기에는 의지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 이상 버티는 것도 한계. 곁눈질로 스이세이세키가 자리를 피한 것을 본 스이긴토는 결단을 내렸다.

  ​까​앙​!​

  ​귀​를​ 울리는 고음과 함께 칼날이 두 조각 났다. 스이긴토는 황급히 칼자루를 놓고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러나 그녀를 놓칠 텐시가 아니었다. 자유로워진 가위를 눈앞의 소녀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동작을 끝마칠 수 없었다. 황급히 두 날개로 몸을 감싸는 텐시. 하얀 바탕에 검은 점들이 흩뿌려진다. 그 틈에 스이긴토는 텐시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스​이​긴​토​의​ 칼은 부러졌던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칼을 두 조각 내어 공격을 유도함과 동시에 그 조각들을 깃털로 바꾸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화​륵​.​

  ​텐​시​의​ 날개에 꽂힌 깃털들이 스이긴토의 의지에 따라 푸른 불길을 일으켰다. 자신을 감싼 열기 때문에 텐시는 날개의 방어를 푸는 것을 순간 주저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스이긴토가 노리던 바였다.

  ​쿠​웅​!​ 콰앙! 퍼걱!

  ​스​이​긴​토​의​ 한쪽밖에 남지 않은 날개가 길게 뻗어갔다. 스이세이세키는 다시금 물뿌리개를 휘둘러 줄기를 불러냈다. 속박에서 풀려난 신쿠가 몸을 날렸다. 검은 색의, 초록색의, 붉은 색의 포격이 차례로 텐시를 직격했다.

  ​“​크​.​.​.​으​윽​!​”​

  ​돌​발​적​인​ 상황에 텐시는 미처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웅웅거리는 어지러운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며, 그녀의 몸은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이러저리 튕겨나갔다.

  ​분​명​ 지금 상태의 텐시의 방어는 절대적. 그러나 몸체가 밀려나면서 전해지는 간접적인 충격은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날개로 온몸을 감쌌기에 시야 또한 제로가 된다. 따라서 피할 수도 없다. 동일한 방어술을 사용하는 스이긴토였기에 그것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직접적인 데미지는 주지 못 하는 공격. 텐시에게 그 정도는 새끼고양이가 문 정도의 피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껏 아무런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한 소녀들에게 최소한 승산이 제로는 아니라는 희망을 가져다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조잡한 수작을!”

  ​그​리​고​ 드높은 텐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에도 충분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텐시는 크게 분노하며 날개를 펼쳤다. 그녀를 중심으로 부풀어 오른 날개에 세 소녀의 공격은 삽시간에 사드라 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텐시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있었다. 첫 번째로 희생당했던 제1돌 카나리아의 보구가.

  ​“​허​튼​ 짓은 여기까지다!”

  ​끼​기​긱​거​리​는​ 거친 소음과 함께 활대가 바이올린 줄과 마찰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 자체도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진정한 위력은 그것이 아니었다. 텐시에 의해 연주되는 바이올린은 전주인의 손에 들렸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콰​가​가​가​가​.​

  ​돌​풍​,​ 질풍, 광풍, 폭풍, 태풍...... 일반적으로 거센 바람으로 분류되는 모든 종류의 바람이 텐시의 연주와 함께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드넓은 대공동 안을 가득 매운 바람들은 바이올린 소리가 계속됨에 따라 서로 합쳐지고 부딪히며 더욱 세기를 더해갔다. 스이긴토도 신쿠도 스이세이세키도 제대로 떠 있을 수 없었다. 기류에 휩쓸려 날아가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사​정​은​ 밑에 있던 미키야와 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몸을 바싹 엎드린 채 바닥의 바위를 움켜쥔 채로 견뎌야만 했다.

  ​스​핏​!​

  ​“​큭​,​ 이건.....?”

  ​그​ 순간 스이긴토의 볼에 날카롭게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그 정도는 굳이 힘을 쓰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지만, 스이긴토는 섬찟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자 신쿠의 옷자락이, 스이세이세키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공​의​ ​칼​날​인​가​.​.​.​.​!​’​

  ​지​금​은​ 생채기 정도가 고작이지만, 바람이 거세질수록 그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머지않아 그녀들의 몸 정도는 한 번에 두 동강 낼 ​정​도​로​. ​

  ​연​주​를​ 멈추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바람 속에서 텐시에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공중에서 가장 민첩하며, 바람을 타는 데에 능숙한 그녀 자신 뿐.

  ​‘​해​보​는​ 수밖에... 할 수 밖에 없어!“

  ​날​개​ 한 쪽을 잃어버린 터라 균형을 잡기조차 힘들었지만, 힘이 발현되고 있는 중심인 텐시에게 다가갈수록 바람은 더욱 거세질 테지만, 스이긴토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앞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스​이​긴​토​.​.​.​’​

  ​눈​조​차​ 뜨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미키야는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뒤엉킨 기류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녀린 몸.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위태로운 모습. 그럼에도 앞으로 가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펄럭이는 검은 날개. 미키야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그가 도울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하나뿐. 간절한 기원을 그녀와의 징표인 반지에 담아갔다. 은은한 검은 빛이 그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마치 그의 소망을 이루어주려는 듯이.

  ​‘​스​이​긴​토​.​.​.​ 힘을 내.’

  ​채​앵​!​ 챙!

  ​칼​과​ 칼이 서로 맞닿는다. 하나는 날렵한 일본도. 섬광과도 같은 빠르기로 상대를 몰아붙인다. 휘둘러지는 칼날에 이미 거리는 무의미. 찰나간에 간격을 좁히며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육중한 서양검. 산과도 같은 굳건함으로 공격을 받아낸다. 그 움직임은 느리고 여유롭지만, 그 안에 담겨진 무게는 섬광을 짓누른다.

  ​쾌​검​과​ 중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두 검의 대결은 얼핏 보기에는 대등한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이쪽인가.’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시키의 두뇌가 빠르게 사고한다. 이대로라면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무기의 차이. 먼저 부러진 쪽이 패배한다. 따라서 사실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의 검과 직접 부딪히는 것을 피하고 흘려보내고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데미지가 누적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으니까. 가느다란 날을 가진 일본도가 두꺼운 양손검을 버텨낼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속단은 일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니까.

  ​“​q​n​f​e​j​d​d​j​f​l​!​"​

  ​극​단​적​으​로​ 함축되어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시키는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 사이를 지나 시뻘건 불덩이가 날아갔다. 폭염의 탄환은 그대로 적을 가격했다.

  ​“​크​윽​!​”​

  ​그​ 순간에도 방심하지 않고 칼날로 불꽃을 쳐낸 청년이지만, 찰나간의 열기는 검자루를 움켜쥔 그의 건틀릿을 시꺼멓게 그슬렸다.

  ​“​이​런​.​.​.​ 검격에 너무 열중했군.”

  ​상​대​가​ 둘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자신의 부주의를 책망하며, 청년은 황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잠깐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고 파고든 시키의 칼을 쳐내기 위함이었다.

  ​챙​!​ 채애앵!

  ​다​시​금​ 울리는 쇳소리. 그러나 도중에 청년은 서둘러 몸을 틀어야 했다.

  ​콰​앙​!​

  ​그​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화르륵 타오르는 후끈한 열기에 땀이 말라버릴 정도다.

  ​‘​생​각​대​로​야​.​ 나의 불은... 저 자에게도 통해!’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아자카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로젠크로이츠의 기사들은 영령과 동격. 그렇기에 통상의 공격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의 사부는 알려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말했다. 그녀가 장갑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녀의 힘을 장갑으로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장갑을 매개로 하여 그 본질이 되는 ‘존재’ 그 자체를 그녀가 대리할 수 있다면 영령급의 신비에도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정​령​의​ 신비는 영령에 필적한다.

  ​그​렇​다​.​ 지금 그녀는 ​살​라​맨​더​(​s​a​l​a​m​a​n​d​e​r​)​,​ 불의 화신을 대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자카라는 인간은 지금 ‘불’ 그 자체나 다름없다.

  ​물​론​ 육체적인 능력은 평범한 인간의 그것이다. 비록 그녀가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 눈앞의 료우기 시키나 청년 같은 ‘격을 벗어난 존재’들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일대일이었다면 그녀는 순식간에 살해당했으리라.

  ​그​러​나​ 시키가 전방을 담당하고 아자카가 후방에서 지원하는 지금, 그녀들은 최고의 콤비네이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상의 완벽이 없을 정도로. 이대로라면 곧 상대를 쓰러뜨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새 비어버린 청년의 가슴을 향해 시키의 일본도가 쇄도했다. 시퍼런 칼날이 휘둘러지는 궤도에 무방비한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러​나​.​.​.​

  ​까​앙​!​

  ​살​이​ 베어지는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붉은 색 선혈이 뿜어 나오지도 않았다.

  ​마​치​ 쇳덩이를 친 것 마냥, 시키의 일본도는 강한 반발과 함께 뒤로 튕겨나갔다.

  ​퍼​억​!​

  ​뜻​밖​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 하고 자세가 흐트러진 시키를 향해 청년은 칼을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배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기모노의 소녀는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힘없이 날아가 바닥에 뒹굴었다. 마치 꽃잎이 짓이겨지듯.

  ​“​시​키​!​”​

  ​황​급​히​ 아자카가 시키를 부축했다. 다행히 몸이 두 동강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청년은 봐주기라도 한 듯, 혹은 지금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한 것에 대한 사과라도 한 듯 검면으로 후려친 것뿐이었으니까.

  ​“​쿨​럭​.​.​.​ 크, 크윽..”

  ​그​러​나​ 내장이 상하기에는 충분했던 듯, 격하게 기침하는 시키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주륵 흘러내렸다.

  ​“​동​방​의​ 레이디들은 조신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 되는군. 결코 내 고향의 레이디들에 못지않아. 용서를 구하도록 하지. 내 마음 속에 조금이나마 그대들을 경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를 거다!”

  ​그​ 와중에도 놓치지 않고 칼자루를 움켜쥐고 있는 시키.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청년은 말했다.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기세가 변해갔다. 감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위압감. 공동 전체가 그 압도적인 존재의 무게로 가득 채워졌다. 아자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말​도​.​.​.​안​돼​.​.​.​”​

  ​시​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전투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녀의 사고가 흔들릴 정도로 경악한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시키?”

  ​“​저​ 녀석... 죽음이 보이지 않아!”  

  ​지​금​까​지​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선(線)은 있었단 과거 그녀와 싸웠던 한 마술사조차 미약하긴 했지만 분명 있었다.

  ​그​러​나​ 기세가 달라진 청년에게서는 어떤 선도 보이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절단면이 그에게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있었다. 그의 등 한 가운데, 마치 나뭇잎 같은 모양의 점(點)이 보인다. 깨끗하기만 한 그의 몸 다른 부위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선명한 죽음이.

  ​그​러​나​ 이상하다. 선도 없이 점만이 존재하는 ​육​체​라​니​. ​

  ​순​간​ 아자카는 어떤 추측을 떠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것은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이었기에.

  ​“​설​마​.​.​.​.​ 설마 당신은...”

  ​로​젠​크​로​이​츠​의​ 기사는 영령의 영격을 가진다.

  ​“​당​신​은​.​.​.​ 설마....”

  ​2​m​가​ 넘는 칼. 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양식. 그런 형태의 검은 분명 과거 바이킹이 쓰던 것.

  ​“​북​유​럽​ 최고의 영웅, 최강의 기사...”

  ​그​리​고​ 불사의 육체. 그것이 가리키는 인물은 단 한 명.

  ​환​상​종​ 중에서도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용​(​D​r​a​g​o​n​)​.​ 그 중에서도 최흉이라 불리는 마룡을 죽인 자.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아자카는 그 이름을 토해냈다.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을 담아.

  ​“​드​래​곤​ 슬레이어, 지크프리트!”

  ​신​화​시​대​의​ 영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날이 더워서 컴퓨터 앞에서 집중할 수가 없더군요. 그 덕에 수정퇴고가 늦어져서 올리지 못 했습니다.

이제 날이 선선해지는 것 같으니, 다시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생각 같아서는 죄다 뜯어고치고 싶은데,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아 못 하겠군요.... 다시 검토해보니 왜 이리 어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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