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렐 교수의 그 명령이 모두 그녀의 발전을 야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들, 그것은 하등 관계가 없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플리트윅 교수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스네이프 교수조차도 아마 그런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퀴렐 교수는 악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진실을 표현할만한 언어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고, 결코 해리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헤르미온느, 상급생들과 대화도 해봤어,” 해리가 설득조로 말했다. “어쩌면 퀴렐 교수님은 우리가 호그와트에서 보내는 7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날 방어술 교수 적임자일지도 모른다고. 다른 것들은 나중에 배워도 상관없어. 하지만 방어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올해가 아니면 안 돼. 방과 후 수업에 등록한 아이들은 분명 엄청난 것들을 배울 것이 분명하다고, 마법부가 규정한 1학년 수업을 월등히 초월한 레벨일 것은 뻔한 일이지 ─ 우리 패트로누스 마법을 배울 예정이라는 거, 알고 있어? 그것도 1월에?”
“패트로누스 마법이라고?” 경악한 듯이 높은 톤으로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책에 따르면 패트로누스는 현존하는 가장 '선한' 마법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어둠의 생물을 격퇴하는 데 용이하며, 순수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비로소 현현하는 마법. 악마 같은 퀴렐 교수가 그런 것을 가르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수업 일정을 잡아두었다는 것이 미심쩍기만 했다, 악마 퀴렐 교수가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광경은 그녀로써는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래,” 해리가 말했다. “보통 패트로누스 마법은 5학년이나 심지어는 그 이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겉핡기 식으로 배우게 된다고! 하지만 퀴렐 교수님은 마법부가 만들어낸 규율은 그냥 똥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패트로누스 마법의 발현 여무는 마법의 노련함과 숙련됨이 아니라 오로지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주장하셨어. 퀴렐 교수님은 모두에게 그러한 능력이 잠재되어있다고 판단을 내렸고, 이번 학년에 비로소 그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하셨지.”
퀴렐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리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경외감과 막연한 동경이 어려있었기에, 헤르미온느는 이를 갈며 그저 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이미 등록해두었어,” 자그마한 목소리로,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오늘 아침 등록했지. 그것도 전부 말야, 네가 원하던 대로. 이제 됐니?”
뭐 어쨌거나 뒤쳐지고 싶지는 않았고, 이기려면 배움 그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그럼 군대에 들어온다는 거지?” 해리의 목소리는 별안간 흥분감에 휩싸였다. “좋았어, 헤르미온느! 이미 병력 명단은 다 작성해둔 상태지만, 한 명더 부대에 추가시키는 건 퀴렐 교수님도 이해해주실거야─”
“네 군에는 들어가지 않아.” 헤르미온느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려있었다. 해리가 그렇게 생각한것도 이해는 가는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짜증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해리가 눈을 꿈벅였다. “설마 드레이코 말포이의 군대는 아니겠지. 그러면 제 3세력을 구축하겠단 말야? 누가 장군인지도 아직 모르는데?” 해리가 다소 의외라는 듯이 약간 상처받은 어조로 말하자, 헤르미온느는 분명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원망을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내 군대가 아닌건데?”
“좀 생각을 해봐,”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였다, “그러면 알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벙쪄있는 해리를 버려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퀴렐 교수님,” 드레이코가 지극히 사무적이고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교수님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제 3의 장군으로 임명해버린 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호오?” 여유롭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퀴렐 교수가 감탄사를 흘렸다. “어디 한번 제기해보거라, 말포이.”
“그레인저의 성격은 그러한 자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퀴렐 교수가 고민하는 듯이 볼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흠, 그래, 물론 그렇지. 다른 이의는 있나?”
“퀴렐 교수님,” 그의 옆에 서있던 해리 포터가 입을 열었다, “그레인저 양은 물론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이고 있으며 수많은 퀴렐 점수가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군을 통치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퀴렐 교수의 집무실로 함께 동행을 하겠다는 해리의 말을 듣고 드레이코는 안도를 했었다. 단지 퀴렐 교수에 한해서 해리가 거의 그의 애완동물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드레이코는 해리가 정말로 그레인저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행동을 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뭐 이제 좀 그럴 듯 해보였다.
“포터 군의 말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드레이코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장군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이 모든 건을 희극으로 돌변시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적인 말임에는 분명하지마,” 해리가 이어갔다, “말포이 군의 말을 저도 딱히 부정은 못하겠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살인 본능을 개미만큼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퀴렐 교수님.”
“그건,”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너희들은 내가 이미 이해하에 둔 이유만을 말하고 있군 그래.”
드레이코가 항변을 할 차례였지만, 그 말로 인해 대화의 맥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답변은 집무실로 오며 해리와 그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둔 예상 답변 목록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그 사실들을 잘 알고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당연할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실수를 기어코 저지르고 말겠다는 교육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던진단 말인가?
침묵이 이어졌다.
“이것 또한 무슨 계략이기라도 한건가요?”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는 행동 모두가 계략의 일부분이여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나?” 퀴렐 교수가 반박했다. “그저 순전히 재미를 위해 혼돈을 일으키고자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는건가?”
드레이코는 경악성을 터뜨릴 뻔 했다.
“적어도 교수님이 가르치는 ‘전투 마법’에서는 말이죠,” 해리가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일단락했다. “다른 곳에서라면 그러셔도 뭐 어렵게나마 이해는 하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에요.”
퀴렐 교수가 한 쪽 눈썹을 치켜떴다.
해리는 그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드레이코는 그저 몸을 떨었다.
“뭐,” 퀴렐 교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지극히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보군. 그렇다면 그레인저 양을 대신해 과연 누구를 장군으로 임명해야 할까?”
“블레이즈 자비니요,” 드레이코가 주저없이 말했다.
“다른 의견은?” 심히 유쾌한 듯이 퀴렐 교수가 물었다.
그 이후에 떠오른 인물은 안토니 골드스타인과 어니 맥밀란이었지만, 이내 아무리 전투적으로 결투를 한들 잡종이나 후플푸프는 절대로 안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의해 드레이코는 그 생각을 지웠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드레이코는 그저 순수하게 물었다, “자비니의 뭐가 어때서죠?”
“알 것 같군….” 해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닌데,” 드레이코가 말했다. “어째서 자비니는 안 됩니까?”
퀴렐 교수가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어째서냐면, 말포이, 그거 아무리 노력을 한들 평생 너나 포터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충격에 드레이코가 휘청거렸다. “설마 교수님은 그레인저가 ─”
“헤르미온느에게 도박을 걸고 계신거야,”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가능성도 희박하지. 우리들과 아마 팽팽한 승부를 펼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수 개월이 걸리겠지. 하지만 우리 학년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건 그녀 뿐이야.”
드레이코의 손이 꿈틀거렸지만 결코 주먹을 쥐지는 않았다. 지지자인 척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빼는 행위는 전형적이면서도 모범적인 배신. 결국 해리 포터는 그레인저와 손을 잡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
“하지만 교수님,” 해리가 매끄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아직도 장군으로써의 헤르미온느가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너무나도 걱정이 됩니다. 승부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로써 말씀드립니다 퀴렐 교수님. 드레이코와 저는 우리들의 직위에 만족을 합니다만, 그녀를 장군직에 앉히는 건 무엇보다 그녀 본인에게도 좋지가 않단 말입니다!”
─ 아닌가보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의 우정에는 찬사를 보내도록 하지,”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메말라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동시에 드레이코 말포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더더욱 말이지. 훌륭하다, 훌륭해 포터.”
별안간 해리는 초조한 듯해 보였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실제로는 엄청나게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었기에, 드레이코는 속으로 작게 욕설을 토해냈다. 역시 해리가 퀴렐 교수를 속여넘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네 친구로써의 걱정을 과연 그레인저 양이 기뻐할지조차 의문이로군,” 퀴렐 교수가 덧붙였다. “나는 결코 그레인저 양에게 장군직을 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스스로가 부탁했으니까.”
해리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는 드레이코에게 미안한 감정과 경고, 그리고 ‘미안,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자극해서는 안될 것 같아’라는 심정을 눈짓으로 보내왔다.
“그녀가 불행할 거라는 생각도 터뜨려버리는 것이 좋다,” 이제는 희미한 미소를 띤 퀴렐 교수가 계속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녀는 그 지위와 함께 따라오는 가혹함을 잘 견뎌낼 것이고, 너희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전투 준비를 끝낼 터이니.”
충격과 공포에 해리와 드레이코는 입을 떡 벌렸다.
“혹시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하지는 않겠죠?” 경악을 하며 드레이코가 물었다.
“교수님과 싸우려고 등록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리가 처절하게 절규했다.
퀴렐 교수의 입가가 더욱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다. “사실, 그레인저의 첫 전투를 위해 몇가지 충고를 해주겠노라고 권유를 하기는 했었다.”
“퀴렐 교수님!” 해리가 절규했다.
“아, 걱정하진 말거라,” 퀴렐 교수가 웃었다. “그녀가 거부했으니까. 내 예상대로.”
드레이코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럴수가, 포터,” 퀴렐 교수가 말했다, “누군가를 직시하는 건 바르지 못한 행동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혹, 은밀하게 그녀를 돕거나 하지는 않겠죠?” 해리가 의심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퀴렐 교수가 물었다.
“네,” 드레이코와 해리가 동시에 말했다.
“이리도 제자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니, 충격이다. 뭐 그렇다면, 너희들 몰래 그레인저 장군을 돕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를 하도록 하지. 그러면 이제 너희들도 이만 돌아가 군대를 정비하는 것이 어떤가. 11월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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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렐 교수의 집무실을 나와 문을 채 닫기도 전에, 드레이코는 사건의 관련성을 깨달았다.
예전에 해리는 ‘사람을 다루는 행위’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드레이코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
눈치채지 말아라, 눈치채지 말아라….
“차라리 그냥 그레인저 년을 먼저 공격해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드레이코가 권유했다. “그녀를 먼저 제거하면, 우리는 아무런 방해없이 둘 만의 승부를 벌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녀에게 너무 불공평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해리가 발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뭔 상관이야?” 드레이코가 말했다. “네 라이벌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가 일말의 의심을 담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설마 지금껏 라이벌로 여겼는데, 이제와서 정말로 그녀를 친구로 여기게 되어버린 건 아니겠지….”
“글쎄,” 해리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드레이코?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것뿐이야. 그레인저도 마찬가지지. 선과 악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는 그녀는, 아마 십중팔구는 악을 먼저 처단하기 위해 움직일 거야. ‘말포이’라는 이름은 그 뭐냐, 너무 적나라하거든.”
빌어먹을!
“해리,” 다소 오만하면서도 상처를 받은 듯한 목소리로, 드레이코가 은근하게 물었다, “나와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싶지 않은거야?”
“그러니까 그레인저를 무찌르기 위해 사력을 다한 후 기진맥진한 채 병력이 동난 너를 뒷치기하지 말라는 거지?” 해리가 그의 중의적인 표현을 간단명료하게 풀어버렸다. “뭐, 흠. 나중에 항상 승리하는 게 지겨워지면 글쎄, 그 ‘정정당당’이라는 놈을 시도해볼지도 모르겠네.”
“그레인저가 널 공격할지도 몰라,” 드레이코가 반박했다. “무엇보다 넌 그녀의 라이벌이니까.”
“하지만 나는 선의의 라이벌이지,” 해리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난 생일도 챙겨주고 그 밖에 갖가지 선물로 뇌물 공세를 해왔다고. 그렇게 무참하게 선의의 라이벌을 방해할리가 없어.”
“정면 승부를 원하는 친구의 염원을 방해하는 건 되고?” 드레이코가 분노했다. “우린 친구잖아!”
“내 말을 정정할게,” 해리가 말했다. “그레인저는 선의의 라이벌은 방해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그건 그녀가 살인 본능을 개미만큼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넌 달라. 넌 분명 나를 방해할거야. 그리고 그거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젠장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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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장엄하고도 웅장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을 것이다.
녹색으로 장식된 망토를 입고 백금발을 완벽하게 정돈한 영웅의, 악당과의 대면.
평범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고 도드라진 덧니와 뺨을 가린 밤색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악당의, 영웅과의 대면.
오늘은 수요일, 10월 30일. 이번주 일요일이 바로 첫번째 전투가 잡힌 날짜였다.
드레이코는 작은 교실정도의 크기인 그레인저 장군의 사무실에 와있었다. (어째서 장군의 사무실이 이리도 큰지, 드레이코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로써는 의자와 책상만 있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애초에 어째서 장군들에게 사무실이 필요한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의 병사들은 그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허나 만약 퀴렐 교수가 그들의 직위를 명목으로 휘황찬란한 사무실을 의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라면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일 따름이었지만.)
그레인저는 문이 열린 사무실의 반대쪽 끝에서, 마치 왕좌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는 한 개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직사각형의 길쭉한 테이블이 사무실을 가로질렀고, 작은 원형의 테이블이 구석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지만, 의자는 오로지 사무실의 반대편 끝에 있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창문은 오직 한 쪽의 벽에만 존재했고, 개중 하나에서부터 뻗어나온 햇살이 그레인저의 머리카락을 비추어 마치 빛나는 왕관을 연상케 했다.
드레이코가 앞으로 느릿느릿하게 걸어갈 수만 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이블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드레이코가 그레인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테이블을 빙 둘러갈 수밖에 없었고, 도저히 장엄한 위엄을 보일 수가 없게 되었다. 설마 의도적인 배치일까? 아버지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소름돋는 배치였지만, 눈 앞에 있는 건 그레인저였기에 그럴리는 없었다.
그가 앉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것을 비웃는 듯이 그레인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드레이코는 분노어린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 드레이코 말포이 군,” 그가 마침내 그녀 앞에 다다르자 그레인저가 말했다, “면담을 요구한 네게 내가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허락했어. 그래서, ‘부탁’이란게 뭔데?”
응, 나와 함께 지금 당장 말포이 저택으로 가줬으면 좋겠어, 아버지와 내가 재미난 마법들을 몇가지 보여줄 테니까 우리 한번 즐겁게 놀아보자.
“네 라이벌인 포터가, 내게 제의를 해왔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드레이코가 말했다. “내게 지는 건 상관없다고 하지만, 네가 승리를 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건 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지. 그래서 나와 연합을 해 네 군대를 우선적으로 제거하자는 의사를 밝혔어, 단지 첫 전투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투에서 말이지. 만약 내가 그 제의를 거절하면, 포터는 적어도 내가 네 군대를 방해할 동안, 자신이 네게 총공격을 가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섰어.”
“그래,” 놀랍다는 얼굴을 한 그레인저가 말했다. “그러면 나를 도와주겠다고 제의를 하러 온거야?”
“물론이지,” 드레이코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긍정했다. “포터의 제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네게는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았으니까.”
“참 다정하구나, 말포이 군은,” 그레인저가 상냥하게 말했다. “예전에 내 발언은 사과할게. 우리 친구하자. 앞으로 널 ‘드레이키’라고 불러도 되니?”
그 말에 머리속에 경종이 울리며 드레이코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녀가 진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 드레이코가 받아쳤다, “앞으로 널 ‘헤르미’라고 불러도 된다면 말야.”
그녀의 얼굴이 순간 뒤틀린 것을 드레이코는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드레이코가 말했다, “우리 둘이 연합해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포터 놈을 먼저 제거해야 타당할 거 같아.”
“하지만 그건 포터 군에게 불공평하지 않을까?” 그레인저가 반박했다.
“내 생각에는 굉장히 공평한 것 같은데,”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런 계획을 먼저 획책해 네게 써먹으려 했던 놈이라고.”
그 순간 그레인저가 만약 그가 말포이가 아니라 후플푸프 따위였다면 충분히 위축될정도로 강렬하게 인상을 썼다. “내가 어지간히 바보같아 보이는가 보구나, 말포이 군?”
드레이코가 매력적으로 미소지었다. “아니 그레인저 양, 그저 확인해보려 했던 것뿐이야. 그래서, 무엇을 원하지?”
“날 매수하겠다는 거야?” 그레인저가 물었다.
“물론,” 드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네 주머니 속에 갈레온 한 닢을 쑤셔넣어 줄 테니까, 앞으로 나는 내버려두고 포터만 철저하게 짓밟아주겠니?”
“아니,” 그레인저가 말했다, “오히려, 내게 10갈레온을 준다면 ‘너만’ 공격하는 대신, 너희 둘 모두를 공평하게 공격하도록 하겠어, 어때?”
“10갈레온은 상당한 돈이야,” 드레이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포이 가문이 가난한 줄은 몰랐는 걸,” 그레인저가 웃었다.
드레이코는 그레인저를 응시했다.
뭔가, 이 대화에 대해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방금 그건 눈 앞에서 앉아있는 이 계집의 입에서 튀어나올 법한 말이 절대로 아니었다.
“뭐,” 드레이코가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돈을 낭비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포이 군, 네가 혹시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들어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둘 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계시고 10갈레온 이하의 금액은 내 눈에도 들어오지 않아.”
“3갈레온,” 탐색전을 펼치기 위해 드레이코는 일단 적당히 던져보았다.
“아니,” 그레인저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말포이가 정녕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면, 10갈레온 조차 하지 않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드레이코는 이 대화에 대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안돼,” 드레이코가 단언했다.
“안돼?” 그레인저가 반문했다. “이 제의에는 제한 시간이 있어, 말포이 군. 정말 ‘살아남은 아이’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는 1년을 보내고 싶어? 말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꼴이잖아, 안 그래?”
너무나도 설득력 있고 거부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지만, 모든 정황이 함정이라고 나타내고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돈을 낭비하는 건 부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안돼,” 드레이코가 말했다.
“일요일에 보자,” 그레인저가 간단히 말했다.
드레이코는 말없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이건 뭔가 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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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온느,” 해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린 서로를 향해 모략을 짜야만 하는 입장이야. 설령 전투 도중에 나를 배신한다고 해도 사적인 감정으로 번지지는 않을 거라고 왜 이해를 못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건 나쁜 짓이야, 해리.”
해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의욕이 결여되어있는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
‘그건 나쁘다’. 기어이 말하고야 말았다.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인상에 대해 수치스러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평소에 그토록 순진하고 나약하게 보이는지에 대해 걱정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았다.
슬슬 화제 전환을 시도해야했다.
“어쨌거나, 내일 뭐라도 하는 거 있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무엇보다 내일은─”
그리고 그녀가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래, 헤르미온느,” 해리가 분노를 참는 듯이 되물었다, “내일이 과연 무슨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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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한때, 영국 마법세계에서 10월 31일이 ‘할로윈’이라고 불렸던 날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해리 포터 날’이라고 일컬어진다.
해리는 훗날 그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마법부 장관 퍼지의 권유를 포함한 모든 제의를 이를 악물며 거절했다. 모두들 이 날을 축하하지만, 해리에게 10월 31일은 영원토록 ‘어둠의 마왕이 부모님을 죽인 날’로 기억될 테니까. 그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조용하고 엄숙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을법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 날을 축하하기 위해 호그와트는 모든 수업 일정을 취소했다. 심지어 슬리데린 학생들조차 기숙사 밖에서 감히 검정색 옷을 입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특별한 행사와 특별한 음식들이 마련되었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교수님들은 고개를 돌려 일부러 못본 척 해주었다. 뭐, 10주년이니 그들도 기쁜 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 행복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 해리는 트렁크 속으로 들어가 밥 대신 영양바를 먹고, 슬픈 분위기의 공상과학 소설을(판타지가 아닌) 읽거나, 평소보다 더 길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그 날을 조용히 보냈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플리트윅 교수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스네이프 교수조차도 아마 그런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퀴렐 교수는 악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진실을 표현할만한 언어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고, 결코 해리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헤르미온느, 상급생들과 대화도 해봤어,” 해리가 설득조로 말했다. “어쩌면 퀴렐 교수님은 우리가 호그와트에서 보내는 7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날 방어술 교수 적임자일지도 모른다고. 다른 것들은 나중에 배워도 상관없어. 하지만 방어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올해가 아니면 안 돼. 방과 후 수업에 등록한 아이들은 분명 엄청난 것들을 배울 것이 분명하다고, 마법부가 규정한 1학년 수업을 월등히 초월한 레벨일 것은 뻔한 일이지 ─ 우리 패트로누스 마법을 배울 예정이라는 거, 알고 있어? 그것도 1월에?”
“패트로누스 마법이라고?” 경악한 듯이 높은 톤으로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책에 따르면 패트로누스는 현존하는 가장 '선한' 마법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어둠의 생물을 격퇴하는 데 용이하며, 순수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비로소 현현하는 마법. 악마 같은 퀴렐 교수가 그런 것을 가르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수업 일정을 잡아두었다는 것이 미심쩍기만 했다, 악마 퀴렐 교수가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광경은 그녀로써는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래,” 해리가 말했다. “보통 패트로누스 마법은 5학년이나 심지어는 그 이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겉핡기 식으로 배우게 된다고! 하지만 퀴렐 교수님은 마법부가 만들어낸 규율은 그냥 똥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패트로누스 마법의 발현 여무는 마법의 노련함과 숙련됨이 아니라 오로지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주장하셨어. 퀴렐 교수님은 모두에게 그러한 능력이 잠재되어있다고 판단을 내렸고, 이번 학년에 비로소 그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하셨지.”
퀴렐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리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경외감과 막연한 동경이 어려있었기에, 헤르미온느는 이를 갈며 그저 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이미 등록해두었어,” 자그마한 목소리로,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오늘 아침 등록했지. 그것도 전부 말야, 네가 원하던 대로. 이제 됐니?”
뭐 어쨌거나 뒤쳐지고 싶지는 않았고, 이기려면 배움 그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그럼 군대에 들어온다는 거지?” 해리의 목소리는 별안간 흥분감에 휩싸였다. “좋았어, 헤르미온느! 이미 병력 명단은 다 작성해둔 상태지만, 한 명더 부대에 추가시키는 건 퀴렐 교수님도 이해해주실거야─”
“네 군에는 들어가지 않아.” 헤르미온느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려있었다. 해리가 그렇게 생각한것도 이해는 가는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짜증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해리가 눈을 꿈벅였다. “설마 드레이코 말포이의 군대는 아니겠지. 그러면 제 3세력을 구축하겠단 말야? 누가 장군인지도 아직 모르는데?” 해리가 다소 의외라는 듯이 약간 상처받은 어조로 말하자, 헤르미온느는 분명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원망을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내 군대가 아닌건데?”
“좀 생각을 해봐,”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였다, “그러면 알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벙쪄있는 해리를 버려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자기중심적 편파 2화
“퀴렐 교수님,” 드레이코가 지극히 사무적이고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교수님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제 3의 장군으로 임명해버린 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호오?” 여유롭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퀴렐 교수가 감탄사를 흘렸다. “어디 한번 제기해보거라, 말포이.”
“그레인저의 성격은 그러한 자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퀴렐 교수가 고민하는 듯이 볼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흠, 그래, 물론 그렇지. 다른 이의는 있나?”
“퀴렐 교수님,” 그의 옆에 서있던 해리 포터가 입을 열었다, “그레인저 양은 물론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이고 있으며 수많은 퀴렐 점수가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군을 통치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퀴렐 교수의 집무실로 함께 동행을 하겠다는 해리의 말을 듣고 드레이코는 안도를 했었다. 단지 퀴렐 교수에 한해서 해리가 거의 그의 애완동물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드레이코는 해리가 정말로 그레인저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행동을 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뭐 이제 좀 그럴 듯 해보였다.
“포터 군의 말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드레이코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장군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이 모든 건을 희극으로 돌변시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적인 말임에는 분명하지마,” 해리가 이어갔다, “말포이 군의 말을 저도 딱히 부정은 못하겠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살인 본능을 개미만큼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퀴렐 교수님.”
“그건,”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너희들은 내가 이미 이해하에 둔 이유만을 말하고 있군 그래.”
드레이코가 항변을 할 차례였지만, 그 말로 인해 대화의 맥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답변은 집무실로 오며 해리와 그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둔 예상 답변 목록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그 사실들을 잘 알고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당연할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실수를 기어코 저지르고 말겠다는 교육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던진단 말인가?
침묵이 이어졌다.
“이것 또한 무슨 계략이기라도 한건가요?”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는 행동 모두가 계략의 일부분이여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나?” 퀴렐 교수가 반박했다. “그저 순전히 재미를 위해 혼돈을 일으키고자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는건가?”
드레이코는 경악성을 터뜨릴 뻔 했다.
“적어도 교수님이 가르치는 ‘전투 마법’에서는 말이죠,” 해리가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일단락했다. “다른 곳에서라면 그러셔도 뭐 어렵게나마 이해는 하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에요.”
퀴렐 교수가 한 쪽 눈썹을 치켜떴다.
해리는 그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드레이코는 그저 몸을 떨었다.
“뭐,” 퀴렐 교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지극히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보군. 그렇다면 그레인저 양을 대신해 과연 누구를 장군으로 임명해야 할까?”
“블레이즈 자비니요,” 드레이코가 주저없이 말했다.
“다른 의견은?” 심히 유쾌한 듯이 퀴렐 교수가 물었다.
그 이후에 떠오른 인물은 안토니 골드스타인과 어니 맥밀란이었지만, 이내 아무리 전투적으로 결투를 한들 잡종이나 후플푸프는 절대로 안된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의해 드레이코는 그 생각을 지웠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드레이코는 그저 순수하게 물었다, “자비니의 뭐가 어때서죠?”
“알 것 같군….” 해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닌데,” 드레이코가 말했다. “어째서 자비니는 안 됩니까?”
퀴렐 교수가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어째서냐면, 말포이, 그거 아무리 노력을 한들 평생 너나 포터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충격에 드레이코가 휘청거렸다. “설마 교수님은 그레인저가 ─”
“헤르미온느에게 도박을 걸고 계신거야,”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가능성도 희박하지. 우리들과 아마 팽팽한 승부를 펼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수 개월이 걸리겠지. 하지만 우리 학년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건 그녀 뿐이야.”
드레이코의 손이 꿈틀거렸지만 결코 주먹을 쥐지는 않았다. 지지자인 척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빼는 행위는 전형적이면서도 모범적인 배신. 결국 해리 포터는 그레인저와 손을 잡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
“하지만 교수님,” 해리가 매끄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아직도 장군으로써의 헤르미온느가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너무나도 걱정이 됩니다. 승부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로써 말씀드립니다 퀴렐 교수님. 드레이코와 저는 우리들의 직위에 만족을 합니다만, 그녀를 장군직에 앉히는 건 무엇보다 그녀 본인에게도 좋지가 않단 말입니다!”
─ 아닌가보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의 우정에는 찬사를 보내도록 하지,”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메말라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동시에 드레이코 말포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더더욱 말이지. 훌륭하다, 훌륭해 포터.”
별안간 해리는 초조한 듯해 보였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실제로는 엄청나게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었기에, 드레이코는 속으로 작게 욕설을 토해냈다. 역시 해리가 퀴렐 교수를 속여넘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네 친구로써의 걱정을 과연 그레인저 양이 기뻐할지조차 의문이로군,” 퀴렐 교수가 덧붙였다. “나는 결코 그레인저 양에게 장군직을 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스스로가 부탁했으니까.”
해리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는 드레이코에게 미안한 감정과 경고, 그리고 ‘미안,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자극해서는 안될 것 같아’라는 심정을 눈짓으로 보내왔다.
“그녀가 불행할 거라는 생각도 터뜨려버리는 것이 좋다,” 이제는 희미한 미소를 띤 퀴렐 교수가 계속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녀는 그 지위와 함께 따라오는 가혹함을 잘 견뎌낼 것이고, 너희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전투 준비를 끝낼 터이니.”
충격과 공포에 해리와 드레이코는 입을 떡 벌렸다.
“혹시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하지는 않겠죠?” 경악을 하며 드레이코가 물었다.
“교수님과 싸우려고 등록하지는 않았습니다!” 해리가 처절하게 절규했다.
퀴렐 교수의 입가가 더욱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다. “사실, 그레인저의 첫 전투를 위해 몇가지 충고를 해주겠노라고 권유를 하기는 했었다.”
“퀴렐 교수님!” 해리가 절규했다.
“아, 걱정하진 말거라,” 퀴렐 교수가 웃었다. “그녀가 거부했으니까. 내 예상대로.”
드레이코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럴수가, 포터,” 퀴렐 교수가 말했다, “누군가를 직시하는 건 바르지 못한 행동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혹, 은밀하게 그녀를 돕거나 하지는 않겠죠?” 해리가 의심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퀴렐 교수가 물었다.
“네,” 드레이코와 해리가 동시에 말했다.
“이리도 제자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니, 충격이다. 뭐 그렇다면, 너희들 몰래 그레인저 장군을 돕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를 하도록 하지. 그러면 이제 너희들도 이만 돌아가 군대를 정비하는 것이 어떤가. 11월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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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렐 교수의 집무실을 나와 문을 채 닫기도 전에, 드레이코는 사건의 관련성을 깨달았다.
예전에 해리는 ‘사람을 다루는 행위’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드레이코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
눈치채지 말아라, 눈치채지 말아라….
“차라리 그냥 그레인저 년을 먼저 공격해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드레이코가 권유했다. “그녀를 먼저 제거하면, 우리는 아무런 방해없이 둘 만의 승부를 벌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녀에게 너무 불공평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해리가 발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뭔 상관이야?” 드레이코가 말했다. “네 라이벌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가 일말의 의심을 담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설마 지금껏 라이벌로 여겼는데, 이제와서 정말로 그녀를 친구로 여기게 되어버린 건 아니겠지….”
“글쎄,” 해리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드레이코?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것뿐이야. 그레인저도 마찬가지지. 선과 악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는 그녀는, 아마 십중팔구는 악을 먼저 처단하기 위해 움직일 거야. ‘말포이’라는 이름은 그 뭐냐, 너무 적나라하거든.”
빌어먹을!
“해리,” 다소 오만하면서도 상처를 받은 듯한 목소리로, 드레이코가 은근하게 물었다, “나와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싶지 않은거야?”
“그러니까 그레인저를 무찌르기 위해 사력을 다한 후 기진맥진한 채 병력이 동난 너를 뒷치기하지 말라는 거지?” 해리가 그의 중의적인 표현을 간단명료하게 풀어버렸다. “뭐, 흠. 나중에 항상 승리하는 게 지겨워지면 글쎄, 그 ‘정정당당’이라는 놈을 시도해볼지도 모르겠네.”
“그레인저가 널 공격할지도 몰라,” 드레이코가 반박했다. “무엇보다 넌 그녀의 라이벌이니까.”
“하지만 나는 선의의 라이벌이지,” 해리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난 생일도 챙겨주고 그 밖에 갖가지 선물로 뇌물 공세를 해왔다고. 그렇게 무참하게 선의의 라이벌을 방해할리가 없어.”
“정면 승부를 원하는 친구의 염원을 방해하는 건 되고?” 드레이코가 분노했다. “우린 친구잖아!”
“내 말을 정정할게,” 해리가 말했다. “그레인저는 선의의 라이벌은 방해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그건 그녀가 살인 본능을 개미만큼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넌 달라. 넌 분명 나를 방해할거야. 그리고 그거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젠장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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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장엄하고도 웅장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을 것이다.
녹색으로 장식된 망토를 입고 백금발을 완벽하게 정돈한 영웅의, 악당과의 대면.
평범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고 도드라진 덧니와 뺨을 가린 밤색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악당의, 영웅과의 대면.
오늘은 수요일, 10월 30일. 이번주 일요일이 바로 첫번째 전투가 잡힌 날짜였다.
드레이코는 작은 교실정도의 크기인 그레인저 장군의 사무실에 와있었다. (어째서 장군의 사무실이 이리도 큰지, 드레이코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로써는 의자와 책상만 있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애초에 어째서 장군들에게 사무실이 필요한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의 병사들은 그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허나 만약 퀴렐 교수가 그들의 직위를 명목으로 휘황찬란한 사무실을 의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라면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일 따름이었지만.)
그레인저는 문이 열린 사무실의 반대쪽 끝에서, 마치 왕좌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는 한 개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직사각형의 길쭉한 테이블이 사무실을 가로질렀고, 작은 원형의 테이블이 구석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지만, 의자는 오로지 사무실의 반대편 끝에 있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창문은 오직 한 쪽의 벽에만 존재했고, 개중 하나에서부터 뻗어나온 햇살이 그레인저의 머리카락을 비추어 마치 빛나는 왕관을 연상케 했다.
드레이코가 앞으로 느릿느릿하게 걸어갈 수만 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이블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드레이코가 그레인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테이블을 빙 둘러갈 수밖에 없었고, 도저히 장엄한 위엄을 보일 수가 없게 되었다. 설마 의도적인 배치일까? 아버지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로 소름돋는 배치였지만, 눈 앞에 있는 건 그레인저였기에 그럴리는 없었다.
그가 앉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것을 비웃는 듯이 그레인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드레이코는 분노어린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 드레이코 말포이 군,” 그가 마침내 그녀 앞에 다다르자 그레인저가 말했다, “면담을 요구한 네게 내가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허락했어. 그래서, ‘부탁’이란게 뭔데?”
응, 나와 함께 지금 당장 말포이 저택으로 가줬으면 좋겠어, 아버지와 내가 재미난 마법들을 몇가지 보여줄 테니까 우리 한번 즐겁게 놀아보자.
“네 라이벌인 포터가, 내게 제의를 해왔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드레이코가 말했다. “내게 지는 건 상관없다고 하지만, 네가 승리를 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건 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지. 그래서 나와 연합을 해 네 군대를 우선적으로 제거하자는 의사를 밝혔어, 단지 첫 전투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투에서 말이지. 만약 내가 그 제의를 거절하면, 포터는 적어도 내가 네 군대를 방해할 동안, 자신이 네게 총공격을 가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섰어.”
“그래,” 놀랍다는 얼굴을 한 그레인저가 말했다. “그러면 나를 도와주겠다고 제의를 하러 온거야?”
“물론이지,” 드레이코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긍정했다. “포터의 제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네게는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았으니까.”
“참 다정하구나, 말포이 군은,” 그레인저가 상냥하게 말했다. “예전에 내 발언은 사과할게. 우리 친구하자. 앞으로 널 ‘드레이키’라고 불러도 되니?”
그 말에 머리속에 경종이 울리며 드레이코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녀가 진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 드레이코가 받아쳤다, “앞으로 널 ‘헤르미’라고 불러도 된다면 말야.”
그녀의 얼굴이 순간 뒤틀린 것을 드레이코는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드레이코가 말했다, “우리 둘이 연합해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포터 놈을 먼저 제거해야 타당할 거 같아.”
“하지만 그건 포터 군에게 불공평하지 않을까?” 그레인저가 반박했다.
“내 생각에는 굉장히 공평한 것 같은데,”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런 계획을 먼저 획책해 네게 써먹으려 했던 놈이라고.”
그 순간 그레인저가 만약 그가 말포이가 아니라 후플푸프 따위였다면 충분히 위축될정도로 강렬하게 인상을 썼다. “내가 어지간히 바보같아 보이는가 보구나, 말포이 군?”
드레이코가 매력적으로 미소지었다. “아니 그레인저 양, 그저 확인해보려 했던 것뿐이야. 그래서, 무엇을 원하지?”
“날 매수하겠다는 거야?” 그레인저가 물었다.
“물론,” 드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네 주머니 속에 갈레온 한 닢을 쑤셔넣어 줄 테니까, 앞으로 나는 내버려두고 포터만 철저하게 짓밟아주겠니?”
“아니,” 그레인저가 말했다, “오히려, 내게 10갈레온을 준다면 ‘너만’ 공격하는 대신, 너희 둘 모두를 공평하게 공격하도록 하겠어, 어때?”
“10갈레온은 상당한 돈이야,” 드레이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포이 가문이 가난한 줄은 몰랐는 걸,” 그레인저가 웃었다.
드레이코는 그레인저를 응시했다.
뭔가, 이 대화에 대해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방금 그건 눈 앞에서 앉아있는 이 계집의 입에서 튀어나올 법한 말이 절대로 아니었다.
“뭐,” 드레이코가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돈을 낭비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포이 군, 네가 혹시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들어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둘 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계시고 10갈레온 이하의 금액은 내 눈에도 들어오지 않아.”
“3갈레온,” 탐색전을 펼치기 위해 드레이코는 일단 적당히 던져보았다.
“아니,” 그레인저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말포이가 정녕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면, 10갈레온 조차 하지 않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드레이코는 이 대화에 대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안돼,” 드레이코가 단언했다.
“안돼?” 그레인저가 반문했다. “이 제의에는 제한 시간이 있어, 말포이 군. 정말 ‘살아남은 아이’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는 1년을 보내고 싶어? 말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꼴이잖아, 안 그래?”
너무나도 설득력 있고 거부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지만, 모든 정황이 함정이라고 나타내고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돈을 낭비하는 건 부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안돼,” 드레이코가 말했다.
“일요일에 보자,” 그레인저가 간단히 말했다.
드레이코는 말없이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이건 뭔가 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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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온느,” 해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린 서로를 향해 모략을 짜야만 하는 입장이야. 설령 전투 도중에 나를 배신한다고 해도 사적인 감정으로 번지지는 않을 거라고 왜 이해를 못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건 나쁜 짓이야, 해리.”
해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의욕이 결여되어있는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
‘그건 나쁘다’. 기어이 말하고야 말았다.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인상에 대해 수치스러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녀가 평소에 그토록 순진하고 나약하게 보이는지에 대해 걱정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았다.
슬슬 화제 전환을 시도해야했다.
“어쨌거나, 내일 뭐라도 하는 거 있니?”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무엇보다 내일은─”
그리고 그녀가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래, 헤르미온느,” 해리가 분노를 참는 듯이 되물었다, “내일이 과연 무슨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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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한때, 영국 마법세계에서 10월 31일이 ‘할로윈’이라고 불렸던 날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해리 포터 날’이라고 일컬어진다.
해리는 훗날 그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마법부 장관 퍼지의 권유를 포함한 모든 제의를 이를 악물며 거절했다. 모두들 이 날을 축하하지만, 해리에게 10월 31일은 영원토록 ‘어둠의 마왕이 부모님을 죽인 날’로 기억될 테니까. 그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조용하고 엄숙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을법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 날을 축하하기 위해 호그와트는 모든 수업 일정을 취소했다. 심지어 슬리데린 학생들조차 기숙사 밖에서 감히 검정색 옷을 입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특별한 행사와 특별한 음식들이 마련되었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교수님들은 고개를 돌려 일부러 못본 척 해주었다. 뭐, 10주년이니 그들도 기쁜 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 행복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 해리는 트렁크 속으로 들어가 밥 대신 영양바를 먹고, 슬픈 분위기의 공상과학 소설을(판타지가 아닌) 읽거나, 평소보다 더 길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그 날을 조용히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