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과제 1화
현재 날짜는 11월 3일. 일요일인 오늘은, 학년의 3 거대 세력이나 마찬가지인 해리 포터, 드레이코 말포이, 그리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패자를 가리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단지 이 경쟁에 참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아이’가 절대적인 패권의 왕좌에서 3 세력중 하나로 격하되었다는 사실이 해리는 다소 불쾌했지만, 어차피 다시 탈환하면 끝나는 일이다.)
전장은 ‘금지된’이 아니라 ‘허가된 숲’의 일부분이었다. 아무리 첫 전투라고 해도 처음부터 모든 적군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건 너무 재미없다고 판단한 퀴렐 교수에 의해, 그 중에서도 나무가 울창한 지역이 선택되었다.
1학년 군대에 속하지 않은 학생들은 모두 적당히 전장의 주변에 모여 퀴렐 교수가 설치한 화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핀도르 4학년 세 명이 폼프리 부인의 병동에 투숙하여 불참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전원이 와있었다.
학생들은 통상적인 학교의 망토가 아니라, 퀴렐 교수가 직접 어딘가에서 공수해온 머글의 위장 군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학생들의 옷에 얼룩이지거나 찢어질까봐 마련된 복장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마법 따위로 간단히 고칠 수 있으니까. 군복을 지급받고 그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마법사 태생 학생들에게 퀴렐 교수는 말하였다. 위엄있고 정돈된 옷은 숲 속에서 위장을 하거나 나무 사이를 누비기에 적합한 복장이 아니라고.
그리고 각각 군복의 흉부 쪽에는, 각개 군대의 명칭과 휘장이 새겨져 땜질된 부분이 있었다. 작지만 육안으로도 구별이 가능했다. 이 대신 군대의 소속 인원을 멀리서도 구별하기 위해, 가령 밝은 색의 리본을 달고 적에게도 마음껏 위치를 노출시키고 싶다고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였다.
해리는 ‘드래곤 군대(Dragon Army)’라는 이름을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 뻔하다고 드레이코가 악을 썼다.
퀴렐 교수가 드레이코에게 우선적으로 군대에게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리는 그 이름을 차지하는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 이름을 보유한 군대와 맞서게 되었다.
그닥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았다.
드레이코는 휘장으로 뻔하디 뻔하고 식상하게 불을 뿜는 용의 머리가 아니라, 그저 간단하게 ‘불’ 그 자체를 사용하기로 선택했다. 단순하고, 우아하면서도 지극히 파괴적인 존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그 밖에 남지를 않는다는 암묵적인 경고일 것이리라. 말포이 답다면 말포이 답다고 해야 했다.
‘501군단’과 ‘해리와 재앙의 졸개들’ 따위의 차선택지 사이에서 고심하고 또 고심하던 해리는, 간단하고도 위엄 넘치게 그의 세력의 명칭을 ‘카오스 군단(Chaos Legion)’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휘장은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튕길 것만 같은’ 손이었다.
교내 한정으로 절대로 징조가 아니라고 전원이 받아들이고 있는 바로 그 손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착한 성품으로 소문난 여자아이라는 사실에 그녀의 산하에 있는 남자아이들이 우울해하고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 뻔했기에, 해리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무섭고 잔인한 휘장을 만들어 강인함을 보여주고 그들을 안심시키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가령 스페이스 마린이라거나.
헤르미온느는 군대의 이름을 ‘선샤인 연대(Sunshine Regiment)’라고 명명했다.
휘장은 웃는 얼굴.
그리고 십분 후, 그들은 처절한 혈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에게 할당받은 숲 속의 공터에서 내려오는 햇살을 만끽하며 해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때 이 공간을 차지했던 오래되고 썩어가던 나무기둥들은 무슨 연유에선지 깡그리 치워졌고, 지면은 여름의 열기를 기다리지 못한채 죽어버린 회색의 잔디와 갈색의 나뭇잎들로 덮혀있었다. 뜨겁다 못해 구워삶아질 정도로 살인적인 햇빛에 눈이 부셔왔다.
그의 주위에는 퀴렐 교수가 몸소 지정해준 23명의 병사가 시립해있었다. 그리핀도르의 전원에 가까운 숫자가 이 방과후 활동에 참여했고, 반절 이상의 슬리데린, 반절 이하의 후플푸프, 그리고 손에 꼽을 정도의 래번클로 학생들이 등록했다. 해리의 군대는 12명의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6명, 후플푸프 4명에다가 래번클로는 오직 그 한명이었다…동일한 군복을 착용한 지금에 와서는 구별조차 할 수가 없지만. 붉은색도, 녹색도, 노란색도, 푸른색도 없다. 그저 머글의 위장 무늬와, 흉부에 새겨진 손가락을 튕기려고 하는 손의 그림만 있을 뿐.
해리는 단체라는 개념은 그 흉부 쪽의 그림과 군복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23명의 병사들을 물끄러미 살폈다.
그리고 해리는 미소지었다. 이러한 활동이 퀴렐 교수의 거대한 계략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참에 해리는 그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이 활동을 십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사회심리학에서 이미 전설로 남아버린 ‘로버스 동굴 실험’의 예를 들어보도록 할까. 실험은 2차 대전의 여파가 아직도 만연한 당시에, 집단간의 대립의 원인과 방지법을 알아내고자 구성되었다. 과학자들은 22개의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안정된 중산층 집안의 22명의 소년들을 엄선해 여름 합숙을 마련했다. 실험의 첫번째 단계는 집단간에 대립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22명의 소년들은 각각 11명의 두 집단으로 나뉘었고 ─
─ 거기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적의와 대립은 두 집단이 주립 공원에서 두 집단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맞닥뜨렸을 때, 다짜고짜 튀어나온 욕설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집단을 각각 ‘이글즈(Eagles)’와 ‘래틀러즈(Rattlers)’로 명명하고는 (공원 내에 그들 밖에 없는 줄 알았던 당시에는 특정한 이름을 부여할 필요성을 못느낀 것이다) 서로와 대칭하는 관념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래틀러스는 욕설을 찍찍 내뱉으며 거칠고 마초스럽게 행동하는 반면, 이글스는 그와 대칭되게 바른 말투를 구사하며 귀족처럼 행동했다.
실험의 또다른 목적은 이 집단 간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소년들을 다 같이 불러서 불꽃놀이를 감상한다는 첫번째 시도는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인신공격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질 않았다. 공원에 건달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몰래 경고하는 것과, 먹통이 된 공원의 수도 시설을 고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치고 나서야 대립은 해결되었다. 공공의 과제와, 공공의 적.
이러한 실험 결과를 기본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기에 퀴렐 교수가 고의적으로 학년 당 군대의 개수를 3개로 한정시키지 않았나, 하고 해리는 의심했다.
3개의 군대.
4개가 아니라.
게다가 기숙사 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었다…뭐, 드레이코에게 배정된 슬리데린은 크레이브와 고일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해리는 퀴렐 교수의 어둠의 면모와 선과 악의 대립 간에 보이는 중립적인 태도들을 직접 접했음에도, 그가 실은 ‘선’ 쪽에 더 기울어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면전에서 이러한 그의 생각을 털어놓을 깡은 절대로 없었지만.
그리고 해리는 집단의 정체성을그의 방식대로 부여하려는 퀴렐 교수의 계략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래틀러즈는 이글즈를 맞닥뜨렸을 때, 마초적인 이미지를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고, 그 마음에 걸맞게 행동하였다.
이글즈는 정돈되고 차분한 말투를 구사하며 귀족적으로 행동했고.
그리고 햇빛이 내려쬐고 썩은 그루터기에 둘러싸인 숲 속의 공터에, 포터 장군과 23명의 병사들은 대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흐트러져있었다. 몇은 서있고, 몇은 앉았고, 몇 명은 그나마 개성을 위해 한쪽 발로 서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카오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보기 좋게 정렬해서 시립할 이유가 없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게 해리의 논리였다.
해리는 그의 병력을 각각 4명의 병사로 구성된 6개의 분대로 나누고, 각개의 분대에 분대장을 임명했다. 해리는 전 병력에게 개별적인 상황에 내려진 명령이 아무리 적절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되어도 무조건적으로 불복종할 것을 명령하였다, 물론 이 명령도 포함해서 말이다…예외적으로 분대장이나 해리가 “멀린의 이름으로”라는 접두사로 명령을 내렸을 경우에만 실제로 그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다. 일종의 암호이자 적군을 교란시키기 위한 계략이다.
카오스 군단의 전술이란 바로 사방으로 흩어진다음, 무작위로 행동의 방향을 틀어대며 마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수면 주문’으로 적군을 사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적의 시선을 방해하거나 교란시킬 수 있을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
스피드. 창의력 대장. 예측불허. 불규칙적. 그저 명령을 수행하기만할 뿐인 꼭두각시가 아니라, 제대로 사고를 하며 스스로가 판단을 내리는 궁극의 군단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해리도 확신은 할 수 없었기에 실은 그저 이 전술이 현존하는 최상의 병법인 척하며 생구라를 치고 있는 것이다…허나 몇몇 학생들의 기본적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고방식을 송두리째로 뒤집어놓을 이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칠 수는 없었다.
해리의 시계에 따르면, 전투 시작까지 대략 5분이 남았다.
포터 장군은 빗자루를 땀이 범벅된 손으로 꽉 쥔채 긴장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공군을 향해 (행진이 아니라) 걸어갔다.
“전 공군, 상황 보고!” 포터 장군이 일갈했다. 이미 저번 토요일에 있었던 훈련 시간에 대사를 복습하고 또 복습했기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레드 리더 대기 중,”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시무스 피니간이 말했다.
“레드-5 대기 중,”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왔던 딘 토마스가 감격의 얼굴로 보고했다.
“그린 리더 대기 중,” 테오도르 노트가 다소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린-41 대기 중,” 트레이시 데이비스가 말했다.
“종이 울리는 순간, 너희들은 공중에 있을 거다,” 포터 장군이 진중하게 말했다. “교전은 허가하지 않는다. 반복하지, 교전은 허가하지 않는다. 공격을 받을 경우 신속히 대피하도록.” (물론 빗자루를 향해 수면 주문을 날리는 그런 위험한 짓은 금지되었다; 그저 적중하면 일시적으로 붉은색 빛을 감돌게 하는 안전한 주문만을 날릴 뿐. 빗자루나 빗자루를 타고 있는 사람이 주문에 적중해 붉은색이 될 경우, 그 병사는 전투에서 제외된다.) “레드 리더와 레드-5, 종과 동시에 말포이의 군대를 향해 날아가도록. 가급적 고도를 유지하되 육안으로 정찰하고, 그들의 저의가 파악되면 돌아와 보고를 해라. 마찬가지로 그린 리더도 그레인저의 군대를 정찰하고. 그린-41은 본대의 위에서 활공하며 접근하는 적 빗자루나 병사를 살펴라, 예외적으로 네게만은 교전을 허가하도록 하지.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이 명령이 아무리 ‘멀린의 이름으로’라는 접두사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정보는 정말로, 정말로 필수부가결하다. 자, 그러면…카오스를 위하여!”
“카오스를 위하여!” 오만가지의 감정이 뒤범벅된 4명의 함성이 뒤따랐다.
헤르미온느가 바로 드레이코에게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해리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 즉시 병력을 몰아 그녀를 엄호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그녀와 드레이코가 어느 정도 병력을 잃고난 후가 될 것이다. 좋게 좋게 포장할 수만 있다면, ‘영웅의 등장’이라고나 할까; 선샤인이 카오스를 아군이라고 여기지 않고 적대하면 좋을 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녀가 드레이코를 치지 않을 경우에는…뭐, 그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린 리더가 정황을 보고할 때까지 카오스 군단이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드레이코는 오로지 사리사욕을 위해서만 움직일 것이다. 분명 헤르미온느의 공격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겠지; 하지만 그는 아마 둘의 전투가 끝날때까지는 행동하지 않겠다는 해리의 선언이 모조리 거짓말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터. 그래도 해리는 만약 드레이코가 실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고, 또 혹시 그와 고일이나 크레이브가 날아다니는 빗자루를 쏘아 떨어뜨릴 정도의 명사수일 경우를 대비해 빗자루 두 대를 정찰 보내기로 하였다.
허나 가장 예측불허인 상대는 바로 그레인저 장군이었기에, 해리는 그녀의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는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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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짙게 깔려 햇빛을 차단하고 있는 숲의 중심에서, 말포이 장군은 상대적으로 나무가 적은 곳에 서 차분하지만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서열한 그의 군대를 응시했다. 각각 3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6개의 분대, 공군 (그레고리를 포함해서) 4기, 그리고 그와 빈센트가 포함된 사령 부대. 토요일 날에 주어진 시간은 적었기에 훈련도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설명은 끝마쳤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반드시 한 명 이상과 동행하고, 등 뒤를 맡기고 서로를 보호하라. 하나의 개체와도 같이 행동하라. 명령에 복종하고 두려움을 보이지 말아라. 겨냥, 발사, 이동, 겨냥, 그리고 다시 발사 등.
6개의 분대는 드레이코를 방어적으로 둘러싼 대형을 갖추고, 숲의 전방을 경계어린 눈빛으ㅡ로 주시했다. 서로의 등에 등을 맞대고, 그들은 언제든지 주문을 쏘기 위해 지팡이를 손이 새하얘지도록 쥐었다.
훈련 시간은 적었지만, 그들은 일전에 드레이코가 아버지를 따라 사찰을 돌 때 보았던 오러 부대의 대형과 굉장히 흡사했다.
카오스와 선샤인은 아마 뼈도 못추릴 것이다.
“주목,” 말포이 장군이 낮게 말했다.
6개의 분대가 흩어지며 드레이코를 마주보았고, 공군은 빗자루의 머리를 제자리에서 그를 향해 돌렸다.
첫번째 전투를 성공적으로 승리하고,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학생들이 말포이에게 조금이나마 충심을 가질 때까지 드레이코는 정중한 경례는 바라지도 않기로 다짐했었다.
허나 그의 병사들, 특히 그리핀도르 출신들은 너무나도 훌륭하게 시립하고 있어서 과연 그 다짐이 필요한 것이었을지 드레이코는 의심마저 했다. 그레고리의 보고에 따르면 방어술 수업 당시 퀴렐 교수가 해리에게 ‘패하는 법’을 가르쳤을 때, 해리 포터의 주문을 기꺼이 맞겠다는 의연한 태도 덕분에 그의 장군으로써의 가능성을 대다수의 병사들이 납득한 모양이다. 적어도 굳이 그의 군대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 들이닥친다면 이었지만. 모든 슬리데린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런 슬리데린이 있는가 하면, 저런 슬리데린도 있다는 것이 드레이코의 군대 안의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생각보다 손 쉽게 통솔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드레이코는 내심 놀랍기 그지없었다. 처음 드레이코는 그에게 단 한 명의 슬리데린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항의했지만, 퀴렐 교수는 만약 그가 전국을 정치적으로 제패한 사상 첫 말포이로 거듭나고프다면, 우선적으로 인구의 남은 4분의 3을 통치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 겸 의견으로 그를 묵살시켰다. 이러한 점 덕분에 드레이코는 퀴렐 교수가 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선한 인물들을 향해 조금 더 강항 연민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실제 전투는 아마 훨씬 더 골치 아플 것이다, 하물며 그레인저가 드래곤을 먼저 공격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터. 드레이코는 차라리 종이 울리자마자 냅다 전 병력을 그레인저를 향해 꼬나박아 선제 공격을 취할 생각까지 하며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허나 두가지의 불안감이 그를 방해했다. (1) 그레인저의 행동반경과 취할 행동에 대한 해리의 정보는 생구라였고, (2) 그레인저가 공격할 때까지 전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해리의 다짐조차 생구라였기 때문이다.
물론 방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밀 병기가 하나도 아닌 무려 세 개를 준비했기에, 어쩌면 두 군대가 동시에 그를 덮쳐도 한꺼번에 몰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투가 시작하는 시각이 닥쳐왔고, 슬슬 드레이코는 그가 직접 작성하고 암기한 전투 전 연설의 시간이 강림했음을 직감했다.
“곧 전투가 시작한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또박또박했다. “나와 크레이브, 그리고 고일이 시범한 내용들을 결코 잊지 말도록. 보다 절제되고 전투적인 군대가 승리를 쟁취하는 법이다. 포터 장군과 카오스 군단은 이름만 봐도 그렇지만, 절제력이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저와 선샤인 연대는 전투적이지 않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드래곤이지. 곧 전투가 시작할 것이고, 곧 우리의 승리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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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세번째 날, 1991년, 오후 2:56분경. 첫번째 전투 시작 전, 카오스 군단을 향한 포터 장군의 즉흥적인 연설:)
병사들이여, 거짓은 고하지 않겠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상황은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드래곤 군대는 단 한번의 패배조차 모르는 졍예중의 정예들. 그리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기억력이 굉장히 뛰어나지. 참혹한 진실을 말하자면, 오늘 이 자리에 서있는 제군의 대다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며 지옥을 살아갈 터. 허나 우리는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한다. 언젠가, 먼 훗날 언젠가 우리들의 자손이 평화롭게 초콜릿을 먹을 수 있도록 우리는 승리해야만 한다! 이 전투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말 그대로, 전부. 패배는 곧 꺼져버린 전구처럼 순식간에 이 세계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대다수의 제군은 전구가 무엇인지 모르겠군. 고로 주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자면, 패배는 곧 절망이다. 허나 나는 정녕 이 차가운 대지에 쓰러져야 한다면, 적어도 영웅들처럼 끝까지 맞서싸우며 쓰러지고 싶다. 그럼 어둠이 우리의 숨통을 죄여올 때, 우리는 그래도 ‘즐거웠다’고, 만족하며 잠들 수 있겠지.
제군들, 죽음이 두려운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자각한다. 옷 속으로 누군가가 아이스크림을 펌프질하는 것 마냥 그 차디찬 두려움이 공포스럽다. 허나…역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군복으로 갈아입을 때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신나게 사진이라도 찍고 있었겠지. 제군들이여, 역사란 승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다. 승리를 쟁취하면,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쓰게 되는 것이다. 호그와트가 4명의 변절자 집요정들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그런 역사를.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역사를 모두에게 가르칠 수 있으며, 시험에서 우리가 가르친 답을 적지 않을 경우에는…낙제 점수를 받게 되겠지. 보아라, 기꺼이 목숨을 걸만한 업적이지 않은가?
아니, 대답은 하지 마. 세상에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은 것도 있으니까. 나를 포함해, 제군은 어째서 지금 이 곳에 와있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어째서 이런 전투를 하는지조차도.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이 신비한 숲 속이었고, 우리의 이름과 기억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지. 두 개의 다른 세력에 존재하는 학생들도…우리와 마찬가지의 처지다. 그들도 죽음을 원치않아. 그들도 유일하게 남은 친우들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항전할 것이다. 비록 그들의 기억에는 없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맞서싸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어쩌면 그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도 있겠지. 허나 우리에게는 그보다 좀 더 중대한 명분이 있다.
전투가 즐겁기에 싸운다. 시공간의 저편에 도사리는 위대한 옛것들의 흥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싸운다. 우리가 ‘카오스’이기에 싸운다. 곧 마지막 전투가 시작할 터. 다음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르니 지금 여기에서 말하지. 비록 짧은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제군들의 사령관이 된 것은 내 일생의 영광이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심하도록. 제군들의 목표는 단지 적군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놈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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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전역에 종소리가 거대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선샤인 연대가, 행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