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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

Harry Potter and the Methods of Rationality


원작 |

역자 | 송장의간장

대죄


밝은 태양, 청량한 공기, 활기찬 학생들과 학부모들. 깨끗하게 정돈된 9.75 승강장이, 1992년 1월 5일 아침 9:45분 겨울의 햇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아직 어리고 풋풋한 몇몇 학생들은 벙어리 장갑과 목도리를 둘렀으나, 대다수는 그저 망토 하나로 끝이었다; 뭐, 마법사니까.

승강장 안으로 들어선 해리는 목도리와 코트를 벗고, 트렁크를 열어 그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잠시 1월의 차디찬 바람이 과연 어떠한지 제자리에서 그대로 느껴보았다.

해리는 트렁크에서 마법사용 망토를 꺼내고는, 대충 대충 몸에 걸쳤다.

그리고 마침내, 지팡이를 꺼냈다; 막 작별을 고한 부모님의 얼굴과, 그가 최근까지 속해있었던 세계가 벌써부터 아른거렸다….

기묘한 죄책감과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숙명을 느낀 해리는, 무심코 주문을 외웠다, “테르모스.”

온기가 순식간에 그의 몸을 잠식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가 되돌아왔다.

방학의 결말에 그 무엇보다 피로감을 느낀 해리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오늘 아침만큼은 교과서나 진지한 공상 과학 소설을 사양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건 바로 정신을 완벽하게 각성시켜줄 정도로 바보 같은 읽을거리였다….

공교롭게도 고작 4크넛을 소비하는 것으로 그러한 읽을거리를 근처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예언자 일보가 부패도가 높은 신문이고 ‘이러쿵 저러쿵’이 유일한 대적 신문이라면, 애써 덮으려고 한 진짜배기 정보가 그 곳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혹시 저번의 이러쿵저러쿵 1면 표제를 뛰어넘을 표제를 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해리는 일전의 그 신문판매대로 터벅터벅 향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해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으려던 판매원의 얼굴은, 손님의 이마에 새겨진 흉터를 확인하고 급격하게 변해갔다.

“해리 포터?” 판매원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땡, 틀렸습니다 듀리안 씨,” 사내의 명찰을 힐끗 훔쳐본 해리가 말했다, “그저 놀라울정도로 똑같이 흉내낸 것─”

순간 가판대에 쌓여진 이러쿵저러쿵의 반쯤 가려진 1면을 눈에 담고 만 해리는 입을 연 상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술에 취한 예언자의 비밀 폭로:
어둠의 마왕의 귀환,


찰나 동안 해리는 일그러지려던 얼굴을 감추려고 노력했으나, 도리어 이상할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취하는 것도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례합니다,” 해리가 말했다. 약간 경계섞인 목소리였지만 현재로썬 이게 과연 미심쩍게 들리는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과연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을 때도 이렇게 행동했을까. 배배 꼬인 성격의 슬리데린들과 너무 어울린 나머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부터 비밀을 숨기는 방법을 서서히 잊어버려가고 있었다. 4크넛이 가판대에 짤그랑거리며 내려앉았다. “이러쿵저러쿵 하나 주세요.”

“오, 물론이란다 포터 군!” 손을 흔들며 판매원이 잽싸게 말했다. “그게 ─ 아니, 그냥 ─”

날아오는 신문을 낚아챈 해리가 이내 1면을 펴고 헤드라인을 읽었다.


술에 취한 예언자의 비밀 폭로:
어둠의 마왕의 귀환,
목적은 드레이코 말포이와 결혼


“공짜란다,” 판매원이 말했다, “그러니까, 네게는─”

“아뇨,” 해리가 그를 저지했다, “어차피 하나 살 생각이었습니다.”

판매원에게 동전을 건네준 해리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

“와오,” 30초 후에 해리가 감탄사를 토해냈다, “예언자에게 스카치를 여섯 잔 먹이니 이럴수가, 온갖 비밀을 다 토해내버리고 마는군요. 도대체 그 누가 시리우스 블랙과 피터 페티그루가 실은 동일인물일거라는 생각을 단 1초라도 해봤겠어요?”

“그러니까 말이다,” 판매원이 말했다.

“심지어 둘이 같이 서서 찍은 사진까지 보니까, 과연 정말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좋을지 의문이군요.”

“그렇지,” 판매원이 동조했다. “정말 기가막힌 변장술이야, 그렇잖냐?”

“그리고 전 사실 65세의 노인이군요.”

“내 눈에는 그 반절도 안되어보이는데,” 판매원이 온화하게 말했다.

“그리고 전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벨라트릭스 블랙, 루나 러브굿, 그리고 이런 기사에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드레이코 말포이와 전부 약혼을 맺은 상황이라고 하네요….”

“그것 참 유쾌한 결혼식이 되겠구나,” 판매원이 말했다.

신문에서 눈을 뗀 해리는 멍하니 전방을 주시하며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저기요, 사실 전 처음 루나 러브굿의 머리가 꽃밭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정말로 미쳤는지, 아니면 실은 모두 연기였고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속으로 모두를 비웃고 있었을지 말이죠. 그리고 두번째로 이러쿵저러쿵의 1면을 보았을 때, 전 그녀가 결코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왜냐하면, 그런 혼돈스러운 내용을 그저 즉흥적으로 만들 수 있을리는 없잖아요? 필히 치밀한 계략 하에 작성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아요? 바로 ‘결국 루나 러브굿은 정말 미쳤을 것이다’예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머리를 싸고 창작혼을 발휘해도 절대로 이런 훌륭한 미친 작품은 만들래야 만들수가 없죠. 창작이라는 위대한 무언가에서 이딴 광기어린 물건이 튀어나올 수 있다면 우선 뇌의 건강상태를 심각하게 의심해봐야한단 말입니다!”

판매원이 해리를 멍하니 주시했다.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해리가 물었다. “도대체 어느 해괴한 사람이 이런 신문을 읽습니까?”

“너,” 판매원이 대답했다.

해리는 신문을 조금 더 자세히 읽기 위해 자리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저번에 처음으로 이 열차를 타기 위해 왔을 때 드레이코와 앉은 테이블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혹시 원치않는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르니까.

단지 그가 호그와트에서 보낸 첫째 주가 이러쿵저러쿵에 따르면, 무려 54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겸허하게 말하자면, 이미 엉킬대로 엉킨 그의 인생에 또다른 실타래를 추가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었다.

고로 해리는 대다수의 군중들, 그리고 간헐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순간이동해서 오는 학부모들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작은 철제 의자를 찾아, 이러쿵저러쿵에 혹시모를 정치적으로 덮어진 기사가 있는지 물색해나갔다.

이제는 당연하다시피 느껴지는 (기사들의 단 한줄이라도 진실이 섞여있다면 부디 신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어찌보면 낭만적인 가십거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설령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하등 쓸모가 없는 부류였다.

해리가 한창 마법부가 모든 혼인을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혼인법을 제출했다는 기사를 한창 읽어나가고 있을 때─

“해리 포터,” 갑작스럽게 들린 비단처럼 매끄러운 목소리에 해리는 등골에 오싹함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고개를 들었다.

“루시우스 말포이,” 해리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음 번에는 아예 여지를 주지 않게 오전 10:55분까지 킹스 크로스 머글 구역에서 기다리는 현명함을 발휘해야겠다.

루시우스는 머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그 기다란 백발을 어깨에 늘어뜨렸다. 여전히 사내는 은색의 뱀머리가 손잡이에 각인된 매끄러운 검은색 지팡이를 들고다녔다. 어째서인지 지팡이에 감겨진 그의 손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이건 그저 노인용 버팀대가 아니라 살육의 무기라고 말하는 듯 했다. 얼굴에는 일말의 표정조차 없었다.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두 사내들은 두 눈으로 쉴세없이 주변을 훑어보며 늘어뜨린 손으로 지팡이를 꽉 거머쥐고 있었다. 두 사내들은 마치 네 다리와 네 팔을 지닌 한 개체마냥 일체화되어 움직였다. 크레이브와 고일의 아버지들. 해리는 두 사람이 각각 누구의 아버지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루시우스의 부속물에 불과하니까.

“방해해서 미안하게 되었네, 포터 군,” 매끄럽고 비단 같은 목소리가 굴러갔다. “허나 애석하게도 내 부엉이에는 전혀 답장을 하지 않았더군; 고로, 오늘이 자네를 만날 유일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

제발 저리 꺼져, 제발 꺼져줘….

회색빛 눈동자가 그를 향해 반짝였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군….” 말포이 경이 말했다. “흠. 그래, 조금이나마 장단을 맞춰주도록 하지. 말해보거라, 네 친한 친우이자 나의 아들이, 그 소녀와 공개적인 동맹을 맺게끔 유도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 해리가 가볍게 말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레인저와 협동한다면 드레이코는 머글 태생들도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테니까요. 푸. 하. 하. 하.”

루시우스의 입가가 희미하게나마 곡선을 이루었다. “그래, 정말이지 전형적인 덤블도어의 계략처럼밖에 들리지 않는군. 그렇기에 오히려 아니겠지.”

“정확하네요,” 해리가 말했다. “이건 덤블도어의 계략이 아니라 그저 저와 드레이코 간의 게임이라는 것만 밝혀두도록 하죠.”

“게임은 일단 제쳐두도록 하지,” 회색빛 눈동자를 굳히며 말포이 경이 말했다. “내 의혹이 정확하다면, 자네는 결코 덤블도어의 명령을 따를만한 인물이 아니다, 포터 군.”

침묵이 내려앉았다.

“눈치채셨군요,” 냉엄한 목소리였다. “혹시 언제부터 눈치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퀴렐 교수의 짤막한 연설에 따른 네 반응을 읽었을 때,” 백발의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했네, 도대체 누구를 대변한건지; 몇일 고민해보고 나니 누구를 대변한 반응이었는지 알게 됐고,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네가 어떤 의미로는 약자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지.”

“기막힌 추리력이시지만,” 여전히 냉담한 목소리로 해리가 말했다. “제 의도를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매끄럽기만 하던 목소리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내가 염려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네는 내 아들을 향한 이상한 꿍꿍이를 가지고 있어. 그것이 결코 우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볼 수가 없기에, 걱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루시우스가 두 손이 새하얘질정도로 지팡이에 온 무게를 실어 몸을 전방으로 향하자, 뒤의 떡대들이 몸을 긴장시켰다.

본능적으로 해리는 루시우스에게 두려움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그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들켜서는 안된다고 판단을 내렸다. 뭐 일단 공공장소인 승강장인만큼 두려워할 필요는 애초부터 없었지만─

“정말 흥미로운 점은 바로,” 해리도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제가 드레이코를 해코지함으로써 차지하는 이득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군요. 드레이코는 제 친구고, 저는 친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뭐라?” 루시우스가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이 순수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방해꾼입니다,” 졸개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해리는 그 목소리를 판단으로 그가 크레이브의 아버지라는 것을 파악했다.

순식간에 몸을 정자세로 한 루시우스가 뒤를 돌아보고는, 영 내키기 않는다는 듯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공포에 질린 듯하면서도 굳은 의지가 언뜻 보이는 표정의 네빌과, 두려움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위풍당당한 걸음을 자랑하는 장신의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롱바텀 부인,” 루시우스가 차갑게 내뱉었다.

“말포이 씨,” 그의 배는 더 차가운 목소리로 여인이 화답했다. “혹시 우리 해리 포터를 귀찮게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루시우스의 웃음소리는 묘하게도 씁쓸함이 느껴졌다. “하, 설마. 혹시 그를 저로부터 보호하려고 몸소 행차하신 겁니까?” 백발의 머리가 네빌을 향했다. “그렇다면 이쪽이 바로 포터 군의 충성스러운 부관이자 롱바텀의 마지막 자손인, 카오스를 자칭하는 네빌이겠군요. 세상이 참 기기묘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 어쩌면 미친 건 세상 그 자체가 아닐지, 하고 생각하니까.”

그 말에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분간이 안 간 해리는 입을 꾹 닫고 있었고, 네빌은 겁에 질린 채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롱바텀 부인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흡족함마저 서려있었다. “영 상쾌한 표정이 아니군요, 말포이 씨. 퀴렐 교수님의 연설이 있고나서부터 동료들이 몇 명 사라졌나보지요?”

“확실히 제 처지를 감안한다면 나름 뛰어난 모략이었죠,” 루시우스가 냉엄하게 말했다, “허나 그것도 고작해야 제가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에 가담했다고 굳게 믿는 아둔한 자들에게만 효과적이었을 뿐입니다.”

“뭐라고요?” 네빌이 별안간 경악성을 토해냈다.

“난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있었다 얘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루시우스가 설명했다. “말포이 가문의 협력이 없었다면 어둠의 마왕은 순혈 가문을 세력하에 둘 수조차 없었겠지. 나는 제안을 거절했고, 그는 나를 강제했다. 팔뚝에 새겨진 표식 때문에 그를 따르는 죽음을 먹는 자들은 한참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러나 단 한번도 그에게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기에, 표식의 영향중 하나인 강제성은 내게 없다. 몇몇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아직도 내가 그들 세력의 주도자 중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고, 나는 그들을 통제하고 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그러한 생각들을 딱히 고쳐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 그래, 나는 종말이 훤히 보이는 그런 허황된 모험가를 맹목적으로 따를 만큼 아둔한 버러지가 아니었─”

“그냥 무시하거라,” 롱바텀 부인이 해리는 물론이고 네빌을 향해서도 충고했다. “저놈은 앞으로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가야되니 말이다. 베리타세룸을 복용하고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바에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애꿎은 변명이나 해대는 저 꼬락서니하고는.” 그녀의 언행에는 악의어린 통쾌함이 내제되어있었다.

경멸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등을 돌린 루시우스가 다시 해리를 직시했다. “부디 이 성질 고약한 부인을 물려주지 않겠나, 포터 군?”

“그럴 수는 없군요,” 해리가 메마르게 말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제 또래의 말포이 가문을 더 선호하니까 말이죠.”

장시간 침묵이 일었다. 회색빛 눈동자가 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군….” 이윽고 루시우스가 천천히 읊조렸다. “내가 바보였어. 여태까지 이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듯한 행동은, 모조리 연기였군.”

그의 눈동자를 직시한 해리는 침묵을 고수했다.

루시우스가 바닥에서 지팡이를 몇센티정도 들어올리더니, 이내 다시금 바닥을 강력하게 내리쳤다.

세상이 창백하게 물들어갔고, 모든 소리가 멎었으며, 얼마 안가 남은 거라고는 해리와 루시우스, 그리고 뱀머리 지팡이뿐이었다.

“아들은 내 전부나 마찬가지다,” 말포이 경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유일하게 남은 가치있는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빌어 우애를 다지는 의미로 말하도록 하지: 명심해라, 드레이코에게 해를 끼친다면, 나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를 할 것이야. 허나 그렇지 않다면, 부디 자네 앞길에 무운을 빌도록 하지. 자네가 달리 내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으니, 나도 그에 대한 답례로 그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

그리고 창백한 연무가 거두어지더니, 이내 크레이브에게 가로막혀 격노하고 있는 롱바텀 부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의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있었다.

“감히 네놈이!” 그녀가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루시우스가 고일을 향해 몸을 돌리자 그의 짙은 검정색 망토와 새하얀 백발이 나부꼈다. “말포이 저택으로 돌아간다.”

펑, 하며 순간이동이 자아내는 소리 세 번과 함께, 그들은 사라졌다.

곧이어 정적이 일었다.

“맙소사,” 롱바텀 부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니?”

해리는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네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빌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정말 고마웠어 네빌,” 해리가 말했다. “아주 기막힌 타이밍에 도와주러 왔네. 근데, 내 생각에는 좀 앉아서 쉬는 게 좋을 거 같아.”

“알았어 장군,” 그렇게 말한 네빌은 해리의 근처에 있는 또다른 의자에 앉는 대신, 반쯤 보도에 철푸덕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네 덕분에 우리 손자의 성향이 그 사이에 상당히 변화했더구나,” 롱바텀 부인이 말했다. “몇 개는 지당하다고 생각한다만, 또 그런가하면 몇 개는 석연치않았단다.”

“그런 사항들을 정확히 구별해서 제게 목록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해리가 답변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해보도록 노력할게요.”

네빌이 신음을 토해냈지만, 달리 항변은 하지 않았다.

롱바텀 부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도록 하마 꼬마 신사 분, 고맙구나.” 그녀가 느닷없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포터 군…우리 나라는 퀴렐 교수님의 연설 같은 무언가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고 고대했었단다. 그 연설에 관한 네 지적에 대해서는 뭐라 섣불리 말하질 못하겠구나.”

“그 충고를 심도 깊게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리가 발랄하게 말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구나,” 할 말을 끝냈는지 롱바텀 부인이 그녀의 손자에게로 다시 고개를 향했다. “아직 내가─”

“이만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할머니,” 네빌이 말했다. “이번에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래, 물론 그래야지,” 빙긋 웃어보인 롱바텀 부인이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두 소년은 잠시 동안 침묵 속에서 그저 자리를 고수했다.

먼저 힘겹게 입을 연 것은 네빌이었다. “넌 할머니가 ‘지당하다고’ 생각한 변화들만 골라서 고쳐버릴 생각인거지? 그렇지?”

“전부는 아냐,” 해리가 순진하게 대답했다. “그저 혹시 내가 널 타락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싶어서.”




드레이코는 걱정되서 미칠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력하게 주장한대로 해리의 트렁크 속으로 들어가, 그저 소음 방해 마법 정도가 아니라 진짜 ‘침묵 주문’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신 불안하다는 듯 이리저리 곁눈질을 하며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돌려댔다.

“아버지께 도대체 무슨 망발을 지껄인거지?” 침묵 마법이 효과를 발휘하고 9와 3/4 승강장의 소음이 사라졌을 때 드레이코가 불쑥 말했다.

“난…일단 그 전에, 널 데려다주면서 네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겟어? 해리가 말했다.

“네가 협박하는 것 같아보이면 당장 자기한테 와서 말하라고,” 드레이코가 단번에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 내가 널 협박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당장 자기한테 와서 말하라고 하셨어! 아버지는 너를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었어 해리, 네가 오늘 아버지께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말에 아버지는 두려움을 느끼셨다고! 그리고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행동을 하는 건 절대로, 절대로 현명한 생각이 아니야!”

아, 놔….

“대답해. 무슨 대화를 한거야?” 드레이코가 계속해서 추궁했다.

해리는 트렁크의 지하에 그가 안착해둔 접이식 의자에 힘없이 등을 기대었다. “그거 알아 드레이코? 합리성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고찰해야할 질문이 바로 ‘나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째서 그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가?’인 것처럼 대죄, 즉 그의 반대도 있기 마련이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그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마음껏 활개를 치며 ‘만물은 물이다’나 ‘만물은 불이다’ 따위의 개소리를 말하고 다녔어. 정작 ‘잠깐, 설령 만물이 물이라고 쳐도, 난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 그 가능성을 다른 모든 가능성들과 차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증거가 있는지, 만약 그 이론이 틀리다고 가정했을 때 맞닥뜨리는 것이 불가능한 증거를 확보했는지 자문해보기는 커녕─

“해리,”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음성으로 드레이코가 으르렁거렸다. “아버지와, 무슨, 대화를, 했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해리가 말했다, “그러니 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섣불리 말하지 않─”

그날 해리는 드레이코가 초음파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신문 기사에는 늘 드레이코 말포이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군요. 거의 필수요소급. 오마케에서도 그렇고 말포이는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건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말포이 오오.

아무튼 이제 호그와트로 돌아갑니다. 앞으로 여러모로 스펙타클 해지겠네요.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가 요즘 다시 번역하는 게 재밌어지려고 합니다. 그동안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이 한동안 훈훈함을 컨셉으로 잡고 있어서인지 뭔가 의욕이 안났었는데, 이제 다시 본래의 분위기로 되돌아갈 기미를 보이는군요. 역시 전 이런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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