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경계를 넘어서
새벽이 가까워진다.
밤을 새는 건 해리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돌리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됐으니까. 해리는 지금껏 크리스마스 이브가 크리스마스 날이 되는 그 시점에 깨어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면 주기를 조정해왔던 것이다; 산타 클로스를 믿기에는 너무나도 성숙해버렸지만, 의심마저 하지 않을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았으니까.
밤에 몰래 집안으로 침입해 선물을 한아름 들고 들어오는 의문의 신형이 창문 밖으로 보이면 참 좋을텐데 말….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흉포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
음습하게 기어오는 공포.
재앙의 조짐.
해리는 침대에서 덜컥 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퀴렐 교수님?” 해리가 나지막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퀴렐 교수가 대답 대신 손을 위로 올리자, 마치 이끌려가는 듯이 해리의 창문 또한 벌컥 위로 열렸다. 단박에 차디찬 겨울 바람이 따뜻한 방안으로 침범했고, 점박이 마냥 부분적으로 박힌 구름과 짙은 회색의 밤하늘을 수놓는 별을 질투하는 듯이 하나 둘 내리는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진정하거라, 포터 군,” 방어술 교수의 어조는 차분해싸. “일찌감치 네 부모님들은 마법으로 재워드렸다; 내가 떠날 때까지 의식을 차릴 일은 없다.”
“아니, 아무도 제 거주지가 어딘지 알아서는 안된다구요!” 해리가 또다시 나지막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심지어 부엉이 마저도 호그와트로 우편을 보내지, 여기는 찾아오지도 않는데!” 이 부분은 해리도 기꺼이 반긴 사안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죽음을 먹는 자가 그의 거주지를 찾아내 마법으로 발동되는 소형 수류탄을 우편물로 보내는 것으로 그 즉시 이 기나긴 전쟁이 참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릴지도 모르지 않는가.
창문에서 보이는 뒷마당에 우뚝 선 퀴렐 교수는 씨익 미소지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포터 군. 탐지 마법을 저지하는 결계가 있을뿐더러, 그 어떤 순혈주의자들도 차마 전화번호부를 뒤져볼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 그의 미소가 더욱 더 짙어졌다. “게다가 나조차 교장님께서 직접 이 집에 펼친 결계를 넘어서기까지 상당한 기력이 소모되었으니 말이다 ─ 뭐 물론 네 집주소를 아는 자라면 그저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네가 튀어나오는 순간 급습하면 끝나는 일이지.”
해리는 잠시간 퀴렐 교수를 멍하니 응시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해리가 마침내 말했다.
퀴렐 교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나는 사과를 하러 왔다, 포터 군,” 방어술 교수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때, 그렇게 심하게 매도할 필요따위는 없었을─”
“그만,” 해리가 말을 끊었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며 무심코 잠옷에 두른 이불을 바라보았다. “그냥, 하지 말아요.”
“그토록, 내 언동에 상처를 받은 건가?” 퀴렐 교수가 나지막히 물었다.
“아뇨,” 해리가 부정했다. “하지만 제게 사과를 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그렇군,” 그렇게 말한 퀴렐 교수가, 삽시간에 어조를 바꿔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너를 나와 동등한 인물로 대하겠다, 포터 군. 우선적으로 넌 우호적인 슬리데린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질러 우를 범하였다. 만약 다른 이와 두뇌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전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렇게 남의 계획을 망치는 건 그릇된 행동이지. 어째서냐, 바로 그들의 진정한 저의가 무엇이며, 그들이 무엇을 걸고 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적을 양성하기에 참 좋은 방법이다, 포터 군.”
“죄송합니다,” 해리도 퀴렐 교수처럼 조용히 말했다.
“그 사과를 받아들이겠다,”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래도,” 해리가 나지막히 덧붙였다, “언젠가 정말 저와 한번 정치에 대해 심도 깊은 토의를 나눠봐야할 것 같군요, 교수님.”
퀴렐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 “너라는 인물과 겸손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먼 관계라는 건 알고 있지만─”
과소평가였다.
“여기서 내가 확실하게 해두지 않는다면,” 퀴렐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건 더 심한 겸손을 떠는 것이겠지. 포터 군, 너는 아직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인생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전부 교수님의 견해를 옹호하는 겁니까?” 해리가 차분히 반박했다.
“퀴디치를 즐기는 사람에게 인생 경험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 퀴렐 교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네가 언젠가는 그런 사고방식을 고쳐먹으리라 믿는다. 그래, 네가 믿음을 주었던 이들에게 전부 배신을 당하고, 사회를 조금 더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방어술 교수는 그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 나머지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사실처럼 다가왔다. 두 명이 자아내는 침묵 속에서, 별이 빛나는 겨울 밤하늘에서 하나 둘씩 내려오는 작디 작은 눈송이가 냉기와 함께 그를 지나쳤다.
“그러고보니 미처 잊고 있었네요,” 해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 것 같군,” 퀴렐 교수가 말했다. “무엇보다 사과가 싫다면, 적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있어야겠지. 뭐,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다만.”
해리는 로저 베이컨의 연구 일기를 읽기 위한 라틴어 공부를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을 섣불리 말할 생각은 추호조차 없었다.
“코트를 입고 나오도록,” 퀴렐 교수가 말했다, “혹시 있다면 온화 마법약을 복용하거나; 그리고 밖, 별의 아래까지 오거라.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유지해보도록 노력해보겠다.”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해리는 득달같이 옷장으로 달려가 미치광이처럼 코트를 꾸겨입었다.
그 이후로 퀴렐 교수는 별의 마법을 무려 한 시간 이상이나 지속시켰다. 그리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안색으로, 장시간동안 앉아있어야 했다. 해리는 작게나마 더 보고 싶다는 욕망을 피력했으나, 단번에 묵살당했다.
시공간과 지구의 자전이 의미없는 세계 속에서,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의 경계선을 넘었다.
그 무한히 유지되는 진정한 ‘고요한 밤’을 감히 무엇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약속했던대로, 해리의 부모님은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쥐죽은 듯이 잠들어있었다. 해리가 무사히 그의 방으로 돌아오고, 방어술 교수가 그 곳에서 사라질때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