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된 지혜로움 2화
“사실 물어볼 질문이 하나 더 있단다, 얘야,” 교장이 말했다. “기나긴 세월을 고민하고 또 고뇌해왔지만, 오늘 이 날까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의문이 있어. 어째서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고통마저 느껴졌다. “어째서 한 개인이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괴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악 그 자체를 위해 악을 숭배하는가? 어째서, 어째서 볼드모트인가?”
휘릭, 즈즈, 틱; 딩, 펑, 철퍽….
해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호그와트의 교장을 바라보았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해리가 말했다. “그 뭐냐, 제가 영웅인지 뭔지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어둠의 마왕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기라도 하는 건가요?”
“바로 그렇다!” 덤블도어가 외쳤다. “내 운명의 숙적은 바로 그린델왈드였고, 나는 그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린델왈드는 거울 속 나의 어둠이었다. 내 본질이 선하기에, 나는 항상 옳다고 믿고 싶은 충동에 자칫 몸을 맡겼다면 내가 그렇게 변모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었어. 보다 더 큰 ‘선’을 위하여, 그게 그의 구호이자 근원이었다; 그리고 마치 상처입은 맹수마냥 유럽 전역을 휩쓸기 시작한 그 시점조차 그는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어. 결국 끝에, 나는 그를 쓰러뜨렸다. 허나 그 뒤에 내가 수호한 영국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볼드모트가 강림하였지.” 표정에는 물론이고, 음성마저 덤블도어가 느끼고 있는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그린델왈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공포를 위해 공포를 추구했다. 단지 그의 발걸음을 늦추기 위해 나의 전부를 희생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 어째서냐, 해리? 어째서 그는 그런 극악무도한 짓들을 저지른거지? 그는 단 한번도 나의 숙적이 아니라, 너의 숙적이었다. 그러니 뭔가 짐작이라도 가는 바가 있으면, 해리, 제발 말해다오! 제발! 어째서인가?”
해리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사실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직 어둠의 마왕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요만큼도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교장님께서 원하는 답변은 그런 부류가 아닌 것만 같았다. “어둠의 의식을 과다로 행했을 수도 있겠죠, 아마?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 삼아 딱 한 번만 어둠의 의식을 행하려고 했는데, 그 단 한번의 의식으로 인해 선한 감정을 모두 희생당해버린 거죠. 그리고 선한 감정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어둠의 의식에 대한 기본적인 죄책감이 결여되어버렸고 거리낌없이 반복해서 하다가 포지티브 피드백에 의해 결국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대한 괴물이 되어버렸─”
“아니야!” 교장의 목소리는 고뇌에 가득차있었다. “난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해리! 그저 그 뿐일리가 없어!”
어째서 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해리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교장님께서는 이 세상은 마치 소설처럼 구성된 이야기이나 마찬가지고, 정말 그럴싸하고 중대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치명적인 비극은 일어날 수가 없다고 믿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만, 교장님. 아무리 봐도 어둠의 마왕은 거울 속 저의 어둠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예르미 위블의 가족의 피부를 벗겨 신문 편집실의 벽에 박아넣고싶다는 충동은 느끼질 못했다구요.”
“그 지혜를 베풀 자비심조차 없는거니 해리?” 덤블도어가 말했다. 마치 애원하는 듯이 절박한 목소리였다.
악은 그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해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저 ‘악은 나쁩니다’라는 상식을 제외한다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교훈도 없는 그런 거? 아마 어둠의 마왕은 누가 다쳐도 전혀 상관없는 이기적인 개자식이었거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실수를 수십가지나 저지른 그냥 바보였겠죠. 이 세계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현실에 운명 따위는 없어요; 만약 히틀러가 그가 열망했던 것처럼 건축학교에 입학했다면, 유럽의 역사는 아마 완벽하게 달라졌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악행은 분명한 이유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면, 애초에 악행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테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사실들은 교장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자욱한 연기 너머 여전히 해리를 직시하고 있는 노마법사의 노회한 눈에는 간절한 희망과, 고통어린 절박함이 느껴졌다.
뭐, 지혜롭게 들리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총명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쉬웠다. 예상치도 못한 말을 창조하거나 혜안까지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뇌가 정형화된 수많은 클리셰들을 조합하게 해, 뇌내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있는 철학자스러운 지혜를 적절하게 끌어올려 대충 첨가하면 만사 해결이다.
“교장 선생님,” 해리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제 적들에 의해 저라는 객체의 정의가 내리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어째선지 작동들이 자아내는 기이한 소리 가운데에서도, 정적이 이는 것만 같았다.
해리의 의도와는 달리 철학자스러운 지혜가 지나치게 많이 첨가되어버린 모양이다.
“정말이지, 지혜롭구나 해리….” 교장이 천천히 말했다. “나도 가끔 소망하곤 한단다…나의 친우들에 의해,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소리에 실린 고통이 더욱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이 의도치 않은 어색한 기운을 불식시키기 위해 해리는 뭔가 그럴싸하게 다른 ‘지혜’가 없는지 뇌 속을 샅샅이 뒤져보기 시작했다─
“아니면,” 해리가 부드럽게 말했다, “적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핀도르가 존재하는 걸수도 있죠, 친구가 있기 때문에 후플푸프가 있고, 야망이 있기에 슬리데린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모든 세대를 통틀어, 수수께끼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과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넌 내 기숙사를 정말이지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에 빠뜨리는구나, 해리,” 교장이 말했다.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고통은 여전했다. “허나 돌이켜보면, 나 또한 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해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시야를 다시 내렸다. 대화의 우위를 선점했을 때 얌전히 닥치고 있어야 했었다.
“하지만 내 의문은 풀렸구나,”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듯이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슬리데린의 특성이라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래, 야망, 모든 건 그의 야망을 위해서; 그건 이제 분명해졌지만, 여전히 ‘어째서’인지는 모르겠구나….” 찰나의 시간동안 덤블도어의 시선이 어딘지 모르게 멍해졌다; 그리고는 다시 활기가 가득 채워진 채, 해리를 정면으로 직시했다.
“그리고, 해리,” 교장이 문득 말했다, “넌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칭한단 말이니?”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일말의 반감이 느껴졌다.
“혹, 과학을 싫어하시나요?” 해리가 지친듯이 말했다. 적어도 덤블도어만큼은 머글 문명에 호의적일줄 알았는데….
“지팡이가 없다면야 물론 유용한 지식이겠지,” 인상을 찡그린 덤블도어가 말했다. “허나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정의를 내리는 건 조금 이상하구나. 과학이 사랑만큼 중요하니? 다정함만큼? 우정만큼? 네가 미네르바 맥고나걸에게 친애를 표하는 게 과학에 의해서인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향한 마음이 과학으로 만들어지는가? 드레이코 말포이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겠다는 다짐을 한 연동력이, 과학에서부터 비롯되는가?”
저기요, 정말 슬픈 건 바로 당신이 지금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하고 지혜로운 논리를 내세웠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지혜롭게 응수했다고 소문이 날까….
“교장님께서는 래번클로가 아닙니다,” 해리가 차분하고도 위엄어리게 고했다. “그러니 아마 삶의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으며 진실을 추구하고 존중하는 그 행위 자체가, 누구에게는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을수도 있겠죠.”
교장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찌 그런 어린 나이에, 그만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어째선지 노마법사의 음성은 너무나도 슬프게 들려왔다. “그래, 그 또한 네게 가치가 있을 수 있겠구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는 노마법사의 감탄을 사기에는 분명 가치가 있겠죠, 해리는 생각했다. 사실 해리는 너무 쉽게 그의 말을 신뢰한 덤블도어에게 약간이지만 실망한 상태였다; 딱히 거짓말을 고한 것은 아니지만, 덤블도어는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이리저리 꼬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해리의 능력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찬사를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건 이런 게 아니라, 리차드 파인만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이 지니고 있는 지혜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평탄하고 간단한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인데 말이다….
“지혜보다는 사랑이 더 위대합니다,” 세부적인 분석은커녕 지극히 상투적인 클리셰에조차 감동하는 덤블도어의 넘치는 포용력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해리가 미끼를 툭 던져보았다.
교장님이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정론이구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해리는 쭉 기지개를 폈다. 자, 그럼 이제 뭐라도 사랑해보러 가볼까요?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가 어둠의 마왕을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죠. 그러니 다음에도 제게 조언을 구하신다면, 전 그냥 닥치고 제 사랑을 가득 담아 꼭 껴안아드릴게요─
“오늘 이 대화는 내게 크나큰 도움이 되었단다, 해리,” 교장이 말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네게 물어보고싶은 게 있구나.”
하하, 개판이군.
“다시 한번 네 지혜를 빌려주려무나 해리,” 교장이 말했다 (눈동자에는 여전히 일말의 고통이 느껴졌으나, 그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은 당혹함 그 자체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어둠의 마법사들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거니?”
“어,” 해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이번만큼은 저도 어둠의 마법사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싶은데요.”
후웅, 파직, 샤랑; 꿀럭, 펑, 부글─
“뭐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죽음은 나빠요,” 조금 더 확실하게 대화를 나누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해리는 지혜로움 따위 내던져버린 상태였다. “아주 나쁘죠. 무지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독니를 가진 거대한 괴물을 두려워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각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건 절대로 아니라구요.”
교장의 시선은 마치 방금 고양이로 변해버린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좋아요,” 해리가 말했다, “이렇게 말해보죠. 교장님께서는 죽고싶으십니까? 만약 그런 충동을 느끼고 계시다면, 머글 세계에 자살 예방 상담 전화라는 아주 신비로운 물건이 있─”
“때가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 노마법사가 나지막히 말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만. 그 날이 다가오기를 재촉할 생각도 없지만, 동시에 당도한다고 해도 거부할 생각은 없단다.”
해리의 표정은 심각할정도로 굳어있었다. “삶을 향한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군요, 교장 선생님!”
“해리….” 노마법사의 목소리는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그는 그의 기다란 수염의 끝이 수정같이 맑은 어항에 빠져, 서서히 옅은 녹색으로 물들어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말을 정확히 해두지 않은 것 같구나. 어둠의 마법사들은 삶을 향해 갈구하지 않아. 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두려워한다. 저 찬란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아낸, 달도 별도 없이 칠흑 그 자체인 어둠의 필연적인 접근에서부터 필사적으로 도주하지.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즐거운 삶이 아니라, ‘불사’; 그리고 그를 손에 거머쥐기 위해서라면 영혼마저 기꺼이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됐단 말이다! 말해보거라 해리, 넌 영원토록 살기를 원하니?”
“네, 그리고 교장님께서도 그럴 겁니다,” 해리가 주저없이 말했다. “저는 단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내일이 된다고 해도 바뀌지 않겠죠. 고로 양의 정수에 대한 귀납법에 따르면, 전 영원히 살고싶은 겁니다. 교장님께서 죽음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곧 영원히 살고 싶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만약 영원히 살기가 싫으시다면, 그건 곧 죽고 싶다는 것과 같고. 이거 아니면 저거밖에 선택지가 없는데…전혀 이해하고 계시지 않는군요, 그렇죠.”
두 상반된 문화는 거대한 비교불가능성의 절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1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왔단다,” 노마법사가 나지막히 읊조렸다 (그렇게 말하며 어항에서 수염을 꺼내고는, 색을 없애기 위해 탈탈 털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정말이지 거대한 위업과 악업들을 여러가지 저지르고 말았지, 개중에는 차라리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것도 셀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후회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조그맣던 학생들이 자라가는 모습은 아직 나의 스러지지 않은 즐거움이니까. 허나 그 즐거움이 스러질때까지 살아가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도대체 영원이라는 시간으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해리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세계 각지의 기인들과 유명인사들을 만나고, 뛰어난 작가들의 책을 읽은 뒤 그보다 더 훌륭한 책을 써보고, 달의 표면에서 첫 손자의 1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토성의 고리에서 고손자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보고, 자연의 진리와 마지막 법칙을 연구하고, 의식의 원리를 이해해보고, 어째서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지 밝혀내고, 다른 별에 여행을 떠나고, 외계인을 발견하고, 외계인을 만들어보고, 전역을 밝혀낸 뒤 한참 지난 우리 은하의 반대편에서 모두와 만나 파티를 열어보고, ‘옛지구’에서 태어났던 모든 인류와 합류해 태양이 마침내 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겠죠.
예전에는 세계에서 네겐트로피가 바닥을 치기 전에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물리의 법칙은 그저 선택적인 설명지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네요.”
“대부분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덤블도어가 말했다. “우선 네가 말한 모든 것들이 네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항들인지, 아니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상해낸 것들인지 물어보고 싶구나.”
“삶은 죽을 때까지 유한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나 둘씩 끝내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해리가 굳건하게 대답했다.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거라구요. 만약 제가 무언가를 하다가 그만둔다면 그건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았기 때문일겁니다.
덤블도어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손가락이 시계를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손가락이 시계의 표면가 맞닿을 때마다 숫자들은 해독할 수 없는 기이한 문자로 시시각각 변했고, 침들 또한 제각각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내가 150세까지 이 삶을 연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지만,” 노마법사가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때까지는 나도 별 생각이 없겠지. 드러나 200세까지 이 세계에 머문다면 그건 지나칠 정도의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닐까 하는구나.”
“음, 뭐,” 해리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엄마 아빠에게 할당된 짧은 수명을 상기하지 해리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 교장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00세인 세상에서는 200세에 운명을 달리하나 80세에 세상을 떠나거나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비극일 겁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자 해리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강렬해져있었다.
“그렇겠지,” 노마법사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난 나의 친구들보다 일찍 죽을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남을 생각은 없단다. 가장 절망스러운 나날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이가 먼저 곁을 떠났으나, 다른 이들은 아직 곁에 있을 때지. 도대체 어느 쪽을 위하여,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하는가….” 덤블도어의 눈동자는 해리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리고, 점차 촉촉해져갔다. “혹시 내가 떠날 시간이 도래해도, 부디 너무 슬퍼하지는 말거라; 나는 그저 내가 그토록 그리던 사람들과 함께, 또 하나의 위대한 모험을 떠나러 향하는 것이니까.”
“아!” 불현듯 찾아온 자각에 해리가 탄성을 내질렀다. “사후 세계를 믿으시는군요. 그렇지만 마법사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툭. 삐이. 쿵.
“어찌 불신할 수 있단 말이냐?” 대경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교장이 물었다. “해리, 넌 마법사다! 유령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했잖니!”
“유령이라,” 해리가 평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움직이는 초상화들 같은 거 말이군요, 본인이 살아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보관된 기억과 생전의 행동들이, 갑작스러운 마법사의 죽음과 폭발적인 마법과 맞물려 주변의 물질에 반강제로 각인되어버린 현상─”
“그 이론은 이미 예전에 들어봤다,” 한껏 날이 선 목소리로 교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냉소를 지혜로 착각하고, 남들을 무시하며 깔보는 행위가 스스로의 위상을 드높이는거라 생각하는 마법사들에 의해 수도 없이 내세워졌지. 그것이야말로 이 110년동안 내가 들어본 이야기들 중에 가장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이론이었어! 그래, 물론 유령들은 더 이상 그 어떤 지식도 습득하지 못하고 성장하지도 못하지만, 그건 그들이 이승에 허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은 다음 여행으로 나아가야 하는 입장일 터, 이 곳에서의 삶은 이미 끝난지 오래! 무엇보다 유령이 존재할 수 없다면, ‘베일’은 무엇이지? 또 ‘부활의 돌’은 무엇이고?”
“좋아요 좋아,” 해리가 목소리를 최대한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과학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따라, 일단 교장님께서 늘어놓는 증거들을 들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주 재밌고 신나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도록 하죠.” 해리의 목소리가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제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킹스 크로스 역의 기차에서, 그러니까 어제가 아니라 9월쯤 기차에서 내렸을 때, 교장님,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태어나서 단 한번도 유령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곧 유령을 볼거라고 예상해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제가 태어나서 처음 그들을 봤을 때, 교장 선생님, 전 정말이지 멍청하고 무식한 짓을 저질렀어요. 네. 전 속단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전 사후 세계가 정말 있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어요, 아무도 실제로 죽었던 게 아니라고, 인류 역사상 사그라들었던 이들은 사실 모두 괜찮은거라고. 마법사들은 정말로 다음 세계로 떠난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접촉을 할 수 있어, 그저 죽은 사람들을 소환하는 적절한 마법을 배우면 돼, 마법사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저를 위해 기꺼이 그 목숨을 건 친부모님들도 만날 수 있어, 그리고 그 사람들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 아들이 그 숭고한 희생에 대하여 모두 전해들었노라고, 이렇게 잘 크고 있다고─”
“해리,” 덤블도어가 그를 나지막히 불렀다. 노쇠한 마법사의 눈가에 점차 이슬이 맺혀갔다. 그가 한 발자국 교장실을 가로질러 그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려고 했다─
“그리고,” 증오어린 목소리로 해리가 말을 툭 뱉어냈다. 그 날의 아둔했던 스스로와 세계를 향해 차가운 분노를 불태우며, “헤르미온느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그들이 그저 잔상에 불과하다더군요, 마법사의 죽음에 의해 성벽에 새겨진 각인, 마치 히로시마의 건물벽에 남겨진 윤곽처럼.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알아챘어야 했는데! 단 1초라도 믿지 않았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왜냐하면 만약 사람들에게 정녕 영혼이 존재한다면 뇌손상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테죠, 만약 뇌 전체가 날아가버렸는데도 영혼이 멀쩡하게 지껄일 수가 있다면, 어째서 좌대뇌 반구의 손상이 인간의 언어 구사력을 통째로 앗아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요?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제게 부모님의 죽음을 설명하셨을 때, 마치 그들이 어딘가 먼 나라로 여행을 간 듯 말씀하시진 않았어요. 아직 비행기가 없을 시절에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갔다고 설명하는 어투는 절대로 아니었다구요.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쓸데없이 망상하지 않고,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분명 죽은 사람을 거론할 때도 분명 그런 식으로 말했을텐데. 그래, 모든 게 달랐을 거야, 전쟁에서 누가 어떻게 누구를 잃었든 간에 별 상관이 없었겠지, 물론 슬프겠지만 끔찍한 비극은 아니니까! 그때 전 비로소 깨닫고 말았죠, 부모님은 정말 죽어 영원히 내 곁을 떠나고 말았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앞으로 평생동안 그들을 한번이라도 만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며,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하, 다른 학생들은 제가 유령들이 무서워서 목놓아 울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어─”
경악에 가득찬 표정을 띤 노마법사가,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 당장 말하세요 교장님! 증거를 내놓으시라구요! 하지만 부디 티끌만큼도 과장이 섞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제가 또다시 헛된 희망을 가지고, 나중에 당신이 내놓은 증거가 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당신을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베일은 무엇입니까!”
그가 내지른 비명에 교장실의 유리 장치들이 진동을 멈추자, 해리는 팔을 들어 뺨을 슥슥 문질렀다.
“베일은,” 조금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노마법사가 말을 꺼냈다,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치형 구조물이란다, 미스터리부가 보관하고 있지; 망자의 땅과 이어지는 관문이란다.”
“어째서 그걸 알 수가 있죠?” 해리가 말했다. “교장님이 믿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본 사실만을 말하라는 겁니다!”
두 세계를 잇는 결계의 물질적인 현현은 바로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치형 구조물이다; 높디 높고 거대한 그 구조물의 입구는 마치 수면처럼 넘실거리는 너덜너덜한 검은색의 베일로 뒤덮혀있다. 베일 앞에 서있으면 들릴 듯 말 듯한 망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르고, 계속 서있으며 귀를 기울이면 점차 말을 거는 그들의 음성이 커져가고 그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들을 경우, 그 사람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베일의 표면을 건들고 말고, 그 즉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흥미조차 일지 않는 수준의 사기군요,” 더 이상 헛된 희망을 품을 수도, 희망이 무너져 솟아오를 분노도 없었기에 해리의 목소리는 한껏 평온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 아치형 구조물을 만들었고, 건드는 사람은 전부 어딘가로 이동시키는 검은색 물결치는 수면을 입구에 만들어, 최면 마법과 사람을 향해 지속적으로 속삭이는 마법을 시전한 겁니다.”
“해리….” 교장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진실을 말해줄 수 있지만, 네가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말에도 흥미없다. “부활의 돌은 무엇이죠?”
“원칙대로라면 결코 말해줄 수 없으나,” 교장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 어마어마한 불신이 네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너무나도 두려우니 어쩔 수가 없구나…그러니 듣거라, 해리, 제발 듣거라….”
부활의 돌은 해리의 망토처럼 전설의 ‘죽음의 성물’ 세 개중 하나이다. 부활의 돌은 사후 세계에서 망자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 즉, 저승에서 이승으로 불러온다는 것이다. 캐드머스 피브렐이 돌을 사용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를 불러왔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사후 세계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 사실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녀와 진정으로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해리는 손을 번쩍 들었다.
“무엇이지?” 교장이 마지못해 물었다.
“부활이 돌이 정말로 망자를 불러오는지 아니면 사용자의 뇌 속에 있는 기억을 형상화시키는건지 판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되돌아온 자에게 자신은 답을 모르나, 죽은 사람은 분명히 아는 질문을 물어보는 거죠. 그건 이 세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실험이니까요. 가령─”
해리는 잠시 말을 멈춰, 가까스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고려해보았다. 가장 처음 떠오른 이름을 섣불리 발설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죽은 아내를 소환해, 잃어버린 귀걸이를 어디다 숨겨두었는지 따위를 물어보는 거 말입니다,” 해리가 말을 끝맺었다. “누가 부활의 돌로 그런 실험을 해본 적이 있었나요?”
“부활의 돌은 소실된 지 벌써 몇백년이나 지났단다, 해리,” 교장이 조용히 말했다.
해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따. “뭐, 전 과학자니까 언제든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만약 교장님께서 부활의 돌이 정말 그러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으신다면 ─ 제가 주장한 실험도 문제없이 성공할거라 보는 거겠죠? 자, 그럼 혹시 부활의 돌의 행방에 대해 뭔가 아는 바가 없으십니까? 마침 제가 아주 신비롭고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인해 죽음의 성물 중 하나를 이미 소지하게 되었는데, 세상이 다 그렇듯이 하나가 들어오면 나머지도 어떻게 해서든지 손에 들어오기 마련이니까요.”
덤블도어가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리는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교장을 마주보았다.
이윽고 노마법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미친 짓이야.”
(해리는 가까스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덤블도어는 해리를 향해 투명 망토를 주머니에서 꺼내기를 부탁했다; 교장의 지시에 따라 머리 부분의 뒤쪽을 유심히 살펴보자, 은빛의 표면에 마치 말라붙은 피처럼 희미하게 새겨진 죽음의 성물의 표식이 과연 존재했다: 삼각형 안에 둥근 원이, 그리고 그를 세로로 동등하게 나누는 선 하나.
“감사합니다,” 해리가 정중하게 말했다. “혹시 땅에 이런 표식이 새겨진 돌이 있는지 항상 눈여겨보도록 할게요. 혹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덤블도어는 내면 속에서 굉장한 갈등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해리,” 노마법사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은 지극히 위험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이 길에서 벗어나야만 해! 해리, 만약 볼드모트가 영혼이 없었다면 어찌 육신의 죽음에서부터도 생존할 수 있었겠니?”
그리고 해리는 비로소 맥고나걸 교수에게 가장 처음으로 어둠의 마왕이 살아있다는 말을 전한 인물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세계는 클리셰적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이 미쳐버린 학교의 미쳐버린 교장이었던 것이다.
“좋은 질문입니다,” 대화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속으로 고심을 끝낸 뒤 해리가 말했다. “어쩌면 부활의 돌의 지닌 힘 같은 걸 증폭하는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죠, 뇌의 사고 전체를 미리 복사해 어느 특정한 물건에 집어넣었다거나, 뭐 그런거.” 문득 해리는 그가 떠벌리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냥 어둠의 마왕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교장님의 지식과 무엇이 그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견해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해줄 수 있으십니까?” 물론 어둠의 마왕이 ‘이러쿵 저러쿵’의 헤드라인에서만 생존한 존재가 아니라는 가정에서.
“날 속일 수는 없다 해리,” 노마법사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10년은 더 늙어보였으나, 그에 가중된 것은 그저 세월만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난 그 질문을 물어본 네 진짜 의도를 파악해버리고 말았구나. 아니, 난 네 마음을 읽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지, 네 망설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넌 어둠의 마왕이 알아낸 불사의 비밀을 알아내 네 스스로에게 직접 사용하려는 것이지 않느냐!”
“틀려요! 전 어둠의 마왕이 알아낸 불사의 비밀을 밝혀 모두를 위해 사용하고 싶은 겁니다!”
틱, 짤그랑, 샤아….
알버스 퍼시벌 울프릭 브라이언 덤블도어는 입을 멍청하게 벌린 채 해리를 멍하니 응시했다.
(날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의 정신을 아득한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낸 기념으로, 해리는 이 월요일을 자축하기로 했다.)
“참고로,” 해리가 말했다, “제가 모두라고 칭한 건 단지 마법사 뿐만이 아니라, 머글도 포함입니다.”
“아니야,” 노마법사가 고개를 새차게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언성이 점차 커져갔다. “아냐, 아냐, 아냐! 이건 미쳤어, 미쳤단 말이다!”
“푸핫핫!” 해리가 웃었다.
노마법사가 걱정과 분노로 얼굴을 굳혀갔다. “볼드모트는 그가 염원하던 비밀이 적혀있던 책을 훔쳤다; 내가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없었지. 허나 이건 꼭 말해야만 하겠구나; 그의 불사력은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야말로 혐오스럽기 짝이없는 의식에 의해 비로소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 때문에 죽은 건 머틀,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여운 머틀이었어; 그의 불사에는 희생이 뒤따라야만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당연히 사람을 죽여야만 쟁취하는 불사를 대중적으로 만들리가 없잖습니까!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말잖아요!”
당혹어린 침묵이 내려앉았다.
노마법사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가셨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은 여전했다. “인간을 제물로 사용하는 의식을 치루진 않겠다고.”
“도대체 절 어떻게 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격노에 타오르며 해리가 차갑게 씹어뱉었다, “여기서 사람을 살리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저’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모두를 구하고 싶은 바로 그 사람! 그리고 당신은 죽음은 아주 멋지기에 모두가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구요!”
“심히 당황스럽구나, 해리,” 노마법사가 말했다. 그가 다시금 느릿하게 이 기묘한 교장실을 거닐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가 타오르는 손을 담은 듯한 수정구를 들어올리더니, 울적한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지, 네가 나를 너무나도 오해하고 있다는 것만 알겠구나…난 모두가 죽기를 원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해리!”
“그래요, 그저 아무도 불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거겠죠,” 해리가 반어법으로 비꼬았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에게는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는 논리적 동어반복인 모두 x: 죽음(x) = 없다 x: 안 죽음(x) 따위조차 상식 밖의 개념인 모양이었다.
노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보다는 걱정이 가셨으나, 역시 염려스럽기만 하구나, 해리,” 그가 나지막히 고했다. 세월의 풍파에 잔주름이 가득해졌으나 여전히 강인한 손이, 쥐고있던 수정구를 다시 내려놓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씁쓸함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란다, 비틀리고 비뚫어진 영혼의 ‘병’이야. 그 암울한 길을 걸어간 어둠의 마법사는 단지 볼드모드뿐만이 아니었어, 비록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그 길을 향해 더 많이 전진한 것 같지만.”
“그러면 교장님께서는 자신이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해리는 목소리에 스며든 불신을 숨길 생각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노마법사의 표정이 평온하게 변모했다. “나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란다 해리, 허나 적어도 죽음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성공한 것 같구나.”
“퍽이나,” 해리가 말했다. “세상에는 인지 부조화라는, 간단하게 말해서 ‘그건 그저 신 포도일 뿐이야’라는 게 있죠. 만약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한 달에 한 번씩 경찰봉으로 머리를 두들겨맞게 되며, 아무도 그 경찰봉을 막을 수 없다고 가정해보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님의 말씀대로 지혜로운 척 하는 철학자들이 튀어나와 한 달에 한 번씩 경찰봉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음으로써 찾아오는 혜택들을 주절거리기 시작할 겁니다. 가령 맷집을 길러준다거나, 경찰봉을 맞지 않는 날은 좀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거나. 하지만 머리를 맞고있지 않은, 요컨데 ‘원래 세계’의 인물에게 다가가 이러이러한 혜택이 있으니 어서 한 달에 한 번씩 경찰봉으로 두들겨 맞으라고 권유한다면, 대답은 백이면 백 부정적일 겁니다.
그리고 만약 교수님께서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고,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에서 온 인물일 경우, 제가 ‘와, 죽음이란 참 아름다운 거예요, 노회하고 피부가 주름져가고 먼지로 화하는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라고 말씀드린다면 아마 절 개 패듯이 팬 뒤 언덕 위 하얀집에 집어넣어버리시겠죠! 그렇다면 어째서 죽음을 반겨야 한다는 망발을 할 수가 있는가? 바로 교장님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속으로는 죽고 싶지 않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기합리를 해버리는 거라구요, 고통을 덜기 위해서, 더 이상 그 끔찍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아니다, 해리,” 노마법사가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수면에 맞닿으면 신비한 종소리를 내며 빛나는 물 웅덩이 속에서 춤을 추었다. “다만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것 같구나.”
“어둠의 마법사들을 이해하고 싶으신가요?” 강렬하고 어두운 목소리로 해리가 말을 지속했다. “그렇다면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 그 자체에서부터 도망치는 자신의 내면을, 그 공포가 너무나도 두려워 차라리 죽음을 친구로 여겨 두 팔 벌리고 받아들이기를 선택하는 그 본질을, 어둠과 하나가 되어 심연의 지배자가 되었노라고 착각해버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은 만물의 가장 악독하고 추악한 개념을 포용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변호마저 하고 있단 말입니다! 거기서 조금만 비뚫어지면 선량한 사람들이 학살당한 비극을 가리키며 우정이라고 부르겠군요. 죽음이 삶보다 낫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스스로의 주관을 무차별적으로─”
“내 생각에,” 그렇게 말을 끊은 덤블도어가 손가락을 털자, 물방울이 수면과 맞닿으며 자그마한 종소리를 자아냈다, “너는 어둠의 마법사들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뜻을 함께하지는 않는 것 같군.” 그의 음성에는 해리를 향한 일말의 책망조차 담겨있지 않고 진지했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이해는 아직 결여되어 있는 것 같구나.” 노마법사의 얼굴에는 다시금 미소가 번져있었고, 목소리에도 다정함이 깃들어갔다.
해리는 서서히 그를 잠식해나가는 냉기를 떨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정신은 거대한 격노로 불타올랐다. 덤블도어의 같잖은 겸양에, 그리고 설득력있는 반박 대신 바보 같은 현자처럼 웃음으로 대응하는 그 몰골에. “참 웃기죠, 안 그래요? 전 지금까지 드레이코 말포이야말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여겼는데 이게 웬걸, 여리고 순수한 그가 당신보다 백 배는 더 강인했다니.”
노마법사의 얼굴에 당혹함이 스쳐지나갔다. “무슨 소리니?”
“제 말은,”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씹었다, “드레이코는 적어도 스스로의 신념에 진지하게 의문을 던지고 제 말을 분석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누구처럼 우월감에 도취되어 자애롭게 미소지으며 남의 의견 따위는 창 밖으로 던져버리지 않고 말이죠. 교장님은 오랜 세월을 살았고 지나칠정도로 현명한 나머지 제 말을 눈치채지도 못 하는군요! 이해는커녕, 눈치조차!”
“난 네 말을 분명히 들었단다, 해리,” 덤블도어가 더욱 더 결연하게 말했다, “허나 단지 들었다고 해서 동의하는 건 아니지. 서로간의 의견 충돌은 제쳐 두고, 내가 어느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니?”
만약 정말로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당신은 당장 성 뭉고 병원으로 가 네빌의 부모님인 앨리스와 프랭크 롱바텀을 죽여버려, 현재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의 영혼을 해방해 ‘또 다른 위대한 여행’의 길로 떠나보냈을 거라는 점입니다─
해리는 가까스로, 정말 가까스로 그 말을 삼켰다.
“좋아요,” 해리가 냉담하게 말했다. “교수님의 본래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죠. 교장님께서는 어째서 어둠의 마법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자, 백 보 양보해 교장님게서 정말로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으시다고 가정해보도록 하죠. 누구나 당장 영혼이 존재한다고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는 가정입니다. 자, 그러면 만약 그러한 세계에서 영혼을 파괴해버리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까? 그 또 다른 위대한 여행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내 갈기갈기 찢어버리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야말로 우주 역사상 가장 잔인무도하고 흉악한 그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겠죠? 죽음의 실체가 바로 그런 거예요 ─ 영혼의 붕괴란 말입니다!”
노마법사는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해가 가는 것 같구나,”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호오?” 해리가 말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볼드모트,” 노마법사가 말했다. “마침내 그를 이해하게 되었어. 정말로 세계가 그런 끔찍한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면, ‘정의’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근원부터 무저갱 같은 어둠으로 이루어져있다고도 믿는 거나 다름없지. 내가 어째서 볼드모트는 괴물이 되었는가 물음을 던졌을 때, 너는 마땅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안 될 이유가 있나?”
기다란 망토를 입은 노마법사와, 이마에 번개 모양 흉터가 새겨진 소년은 미동마저 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말해주려무나, 해리,” 노마법사가 말했다, “넌 괴물이 될 생각이니?”
“아뇨,” 강철같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소년이 대답했다.
“안 될 이유가 있나?” 노마법사가 되물었다.
소년은 거리낌 없이 등을 펴고, 턱을 자랑스럽게 올리며 고했다: 자연의 법칙에 정의란 존재하지 않고, 운동 방정식에 공평함이란 없습니다 교장님. 세계는 선도 악도 아니라, 그저 만물을 방관할 뿐이죠. 별도, 태양도, 찬란한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나 어차피 그들의 간섭은 필요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니까! 이 세계에 분명히 빛은 존재해요, 바로 ‘우리’입니다!”
“네가 무엇으로 거듭날지 정말 궁금해지는구나,” 노마법사가 말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기묘한 호기심과 후회로 점철되어있었다. “그를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소년은 마치 비꼬는 듯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퇴실했다; 이내 쾅, 소리를 내며 오크 나무 문이 닫히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