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된 지혜로움 3화
퀴렐 교수가 세 번이나 시범을 보이고서야 겨우 터득한 올바른 찻잔 쥐기를 선보이며, 해리는 조심스럽게 한모금 홀짝였다. ‘메리의 방’ 중심부를 차지한 기다란 테이블 건너편에는 퀴렐 교수가 그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는 해리가 발음조차 할 수 없는, 아니 적어도 그가 시도할때마다 퀴렐 교수가 계속해서 그를 정정했고, 이내 그를 포기하게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저번에 해리는 기적적으로 계산서를 훑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를 눈치챈 퀴렐 교수도 어째선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
계산서를 확인하기 전 그는 문득 ‘격뿜차’를 들이키고픈 충동에 휩싸였었다.
그것을 감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소스라치게 놀라 졸도 직전까지 갔던 그 날의 그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싸구려 차랑 다를 바 없는 맛인데…그토록 차이가 난단 말인가.
서서히 해리의 마음속에는 퀴렐이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일부러 미친듯이 비싼 차를 권해 해리에게 왠지모를 죄책감을 안겨다주고 있다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퀴렐 교수도 이 차를 그닥 즐겨하지 않는 게 아닐까. 어쩌면 사실 아무도 이 차를 즐기지 않고,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고가인 이유는 순전히 이 차를 선물받은 피해자를 가시방석에 앉히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실 이건 무엇도 아닌 평범한 차에 불과했고, 특정한 암구호를 말하면 이런 무식한 금액으로 뻥튀기 되는 게 아닐까….
퀴렐 교수의 표정은 고뇌에 잠겨있었다. “아니,” 퀴렐 교수가 말했다, “말포이 경과 나눈 대화를 교장님께 말씀드린 것은 네 실책이었다. 다음부터는 사고를 조금 더 빨리 회전시키도록, 포터 군.”
“죄송합니다 퀴렐 교수님,” 해리가 어수룩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한때 퀴렐 교수가 시야에 사로잡히면 어떻게든 그의 노련함을 흉내내려 하던 적이 있었으나, 그것도 옛날 이야기가 되버렸다.
“말포이 경은 알버스 덤블도어의 적이다,” 퀴렐 교수가 말했다. “적어도 당장에는 말이지. 영국 영토는 그들의 체스판이나 다름없으며, 모든 마법사들은 체스말. 생각해보거라: 만약 말포이 군에게 해를 끼칠 경우, 말포이 경은 그의 전부를 쏟아부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네게 복수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포터 군….?”
퀴렐 교수가 더 이상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명확해지자 해리는 조금 더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퍼즐을 끼어맞춘 해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덤블도어가 드레이코를 죽이고, 제가 한것처럼 가장해 누명을 씌우면, 루시우스가 나를 잡기 위해 덤블도어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건…결코 교장님 다운 행동이 아닌데요, 퀴렐 교수님….” 해리는 언젠가 드레이코가 비슷하게 말했던 경고를 향해서도 지금과 똑같이 답했던 그를 회상했다.
어깨를 으쓱인 퀴렐 교수가 찻잔을 올렸다.
해리 또한 그의 차를 홀짝이며 침묵을 고수했다. 테이블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테이블보에는 얼핏보면 평범해보이나, 유심히 살펴보면 은은하게 빛나며 피어오른 꽃들이 수놓고 있었다; 그에 맞추듯이 방의 커튼도 비슷한 문양을 선보였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도 신비롭게 펄럭였다. 그날 토요일 퀴렐 교수는 어쩐지 사색을 즐기는 듯한 기색이었고 해리 또한 그러했다. 보아하니 이 최고급을 자랑하는 ‘메리의 방’도 그들의 분위기를 눈치챈 듯 했다.
“퀴렐 교수님,” 해리가 불쑥 말했다, “사후세계는 존재합니까?”
해리는 신중하게 언어를 선별하여 질문을 던졌다. ‘사후세계를 믿으십니까?’ 가 아니라 그저 ‘사후세계는 존재합니까?’ 라는 질문을 말이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확신’하는 것과 ‘믿는 것’은 완전히 틀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늘은 푸르다’ 라고 말하지, ‘나는 하늘이 진정 푸르다고 굳게 믿는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심코 뱉어낸 말 사이에 사람의 본심이 숨겨져있는 법….
방어술 교수는 답변하기 전에 찻잔을 입가에 갖다댔다. 그의 얼굴이 신중하게 변했다. “만약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포터 군,” 퀴렐 교수가 말했다, “상당수의 마법사들이 불사의 행방을 찾기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소모한 셈이 되는군.”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군요,” 해리가 관측했다. 이러한 대화법은 이미 퀴렐 교수와 익히 대화를 나누면서 익숙해진 상태였다.
퀴렐 교수가 찻잔을 받침에 내려놓자, 팅- 하고 유리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개중 몇몇 마법사들은 상당히 지혜롭고 유식했다, 포터 군. 고로 우리는 여기서 사후세계의 존재여부가 그리 간단하게 판단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지. 나또한 직접 이 논제에 대하여 심도깊게 연구해본 적이 있었다. 희망과 공포가 동시에 피어오를만한 주장들이 수없이 많았어. 허나 진실성이 다분한 기록들만 선별해서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마법의 장난일 가능성이 배제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망자들과의 의사소통을 부여하는 도구들이 존재한다고 하나, 이들은 그저 사용자의 머리속에 보관된 기억을 형상화하는 도구에 불과할 가능성이 커; 기억하는 것과 되돌아온 망자가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같아보이는 이유는 그게 바로 기억 그 자체이기 때문. 되돌아온 영혼은 그들이 생전 보유하고 있던 비밀이나 죽음 이후에 보유하게 된 지식, 즉 사용자가 알지 못하는 내용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부활의 돌이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마법 도구가 아닌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죠,” 해리가 말했다.
“정확하다,” 퀴렐 교수가 말했다, “허나 사용해볼 기회가 온다면 결코 사양하진 않겠다만.” 그의 입가에 메마른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어지고, 냉기를 품었다. “보아하니 그것도 덤블도어에게 말했나보군.”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튼이 어슴푸레하게 푸른 문양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테이블보에는 희미하게 서늘함이 느껴지면서도 유려한 눈송이의 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퀴렐 교수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하게 들렸다. “교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하게 되지. 혹, 그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는지?”
“하,” 해리가 코웃음을 쳤다.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구요.”
“그렇기를 비마,”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퀴렐 교수가 말했다. “교장님이 바보 같은 계략으로 인해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여행’이라는 허무맹랑한 망언을 네가 믿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발견해버린다면, 매우 실망할 테니 말이다.”
“사실 교장님께서도 자신의 말을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가 찻잔을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제게 도대체 영원이라는 시간으로 무엇을 하냐고, 그게 얼마나 지겹고 고통스러울지 아느냐는 아주 진부한 대사를 늘어놓은 반면, 그 논리와 스스로가 직접 발언한 ‘불멸의 영혼’이 서로 대립한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 듯 보였으니까요. 사실 자신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불멸의 영혼을 지녔다는 주장 전에 불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에 대해 엄청난 열변을 토해내기까지 했죠. 교장님의 머리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교장님께서도 사후세계에 도달해있는 자신을 상상으로 그릴 수조차 없었나봅니다….”
방 안의 온도가 하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컨데 너는,” 테이블 반대편에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덤블도어가 본인이 내뱉는 말의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거로군. 그의 원칙을 적당히 타협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니지도 않았다. 성격이 점차 부정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포터 군?”
해리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은요,” 해리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에, 최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추정되는 중국차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지…확실히 짜증나기 시작하긴 했죠.”
“그래,” 냉담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나 또한 그렇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해리가 찻잔을 향해 말했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아주 쓸만한 주문이 있긴 하지.”
희망섞인 눈빛으로 고개를 든 해리에게 보인 것은, 방어술 교수의 얼굴에 새겨진 차디찬 냉소였다.
그리고 해리는 깨달았다. “그러니까, ‘아바다 케다브라’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방어술 교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해리가 잽싸게 말을 이었다, “부활의 돌에 대한 당연한 추론을 덤블도어 앞에서 떠벌릴 정도로 생각없진 않았어요. 혹 정삼각형 안에 원형,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가르고 있는 세로선이 그려진 문양의 돌을 본 적이 없으시나요?”
죽음처럼 드리우는 냉기가 후퇴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퀴렐 교수도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없다,” 퀴렐 교수가 상념에 잠기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부활의 돌’의 외형인가?”
해리는 찻잔을 옆으로 치우고, 그의 망토에 새겨진 문양을 받침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미처 부양 마법을 걸기 위해 지팡이를 내기도 전, 받침이 붕 떠올라 퀴렐 교수쪽으로 유유히 날아갔다. 지팡이 없이 손으로 하는 마법을 당장에라도 배우고 싶었으나, 그 난이도가 그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종류이니 어쩔 수 없었다.
퀴렐 교수는 해리의 찻잔받침을 한동안 물끄러미 관찰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찻잔은 해리를 향해 두둥실 되돌아오고 있었다.
찻잔을 받침 위에 되돌려놓으려던 해리는, 그가 거기에 그렸던 문양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저런 상징이 새겨진 돌을 혹 발견하게 되고,” 해리가 말했다, “정말 현계와 사후세계를 연결해주는 도구라면 제발 제게 말씀해주세요. 멀린이나 아틀란티스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물어볼 질문이 셀 수도 없이 많으니.”
“물론,” 퀴렐 교수가 말했다. 그리고 찻잔을 다시금 입가에 갖다대던 방어술 교수는, 별안간 할말이 남았는지 중간에 행동을 멈추었다. “아, 참고로 오늘 다이애건 앨리의 방문은 이만 끝내야 할 것 같다 포터 군. 사실 ─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오늘 오후 다른 용무가 생겼다는 것만 말해두지.”
고개를 끄덕인 해리가 차를 단숨에 들이키고 일어서는 순간, 퀴렐 교수도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요,” 해리가 말하는 순간 퀴렐 교수의 코트가 옷걸이에서 스스로 떨어지더니 방어술 교수를 향해 유유히 날아갔다. “마법은 이미 이 세상에 만연해있고, 저는 예전과 달리 제 추측을 그다지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희망이나 기타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추론에만 의존한 상태에서, 교수님께서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글쎄, 만약 내가 믿었다면,” 퀴렐 교수가 코트를 입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왜 아직까지 여기 남아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