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2화
루핀 씨의 임시 집무실은 작은 목제 책상이 있는, 돌로 이루어진 작은 방이었다. 루핀 씨가 어디 앉아있는지 볼 수는 없었기에, 아마 책상 앞에 있던 작은 의자일 것이다. 루핀 씨가 호그와트에 오래 있지 않거나 이 집무실을 많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에, 집요정들의 수고를 덜어주려 따로 부탁을 한 것 같다고 해리는 추측했다. 집요정까지 신경써주는 성격이라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 수가 있었다. 또한 그가 후플푸프에 배정되었을 거라는 의미도 있었다. 해리의 지식에 따르면 집요정들을 걱정하는 ‘비 후플푸프’는 헤르미온느밖에 없었으니까. (해리는 집요정에 대한 그녀의 거북함을 어이없다고 느끼는 입장이었다. 물론 가장 처음 집요정들을 만들어낸 자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헤르미온느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앉으렵, 해리,” 사내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의 정장은 상당히 저급해보였다, 너덜까지는 아니었으나, 복구 마법만으로는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가 느껴졌다; 그래, 첫인상은 ‘허름하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단지 고급 망토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권위가 느껴졌다. 고급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그야말로 허름한 상태에서만 느껴지는 그런 기묘한 권위. 이제껏 겸손함이라는 것을 말로만 들어왔으나, 실제로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그저 나는 이토록 겸손하니 어서 나를 찬양하라고 대놓고 말하는 듯한 사람들뿐이었다.
해리는 루핀 씨의 짧은 책상 앞에 놓여진 작은 목제 의자에 착석했다.
“와줘서 고맙구나,” 사내가 말했다.
“아뇨,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리가 말했다. “언젠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싶으실 때가 온다면 저를 부르세요.”
사내가 주저하는 듯 했다. “해리, 실례가 아니라면…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괜찮겠니?”
“물론이죠,” 해리가 말했다. “어차피 저도 질문이 산더미만큼 있으니까요.”
루핀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 양부모님들께서는 잘 대해주고 계시니?”
“부모님들인가요,” 해리가 말했다. “제겐 4명이죠. 마이클, 제임스, 페투니아, 그리고 릴리.”
“아,” 루핀 씨가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아” 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가 무언가를 참는 듯이 눈을 새차게 깜박거렸다. “그…그거 참 반가운 소리로구나, 해리, 덤블도어가 그 누구에게도 네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단다…그가 의도적으로 악독한 양부모에게 너를 맡기진 않았을까 싶어서….”
덤블도어와의 첫대면을 감안한다면 해리는 루핀 씨의 걱정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허나 이미 좋게 좋게 끝난 이야기였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 해리는 적당한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부모님들은 어땠나요? 그러니까, 그들에 대해 전부 알고 싶습니다.”
“그런가,” 루핀 씨가 말했다. 그가 이마를 한차례 손바닥으로 닦았다. “뭐, 일단 가장 처음부터 시작해야겠지. 네가 태어났을 때, 제임스는 장장 1주동안 지팡이를 만지기만 하면 휘황찬란한 금색으로 변할 정도로 광희난무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너를 안아주거나, 릴리가 너를 안거나, 네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그 과정이 반복했지 ─”
간혹가다 해리가 시계를 힐끔 볼때마다, 대략 30분이 지나있었다. 리무스가 저녁을 거르게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더욱이 해리는 그저 시간을 오후 7시로 돌려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대화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리무스가 해리로써는 전혀 상관없는 제임스의 퀴디치 전설을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을 때, 해리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질 일말의 용기를 발휘했다.
“그리고 그 순간,” 리무스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제임스가 삼중 회전 뮬해니 다이브를 펼쳤던 거야! 관중들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고, 심지어 몇몇 후플푸프들마저 환호했지 ─”
아주 현장감이 절절하게 느껴지는군요, 해리가 생각했다 ─ 뭐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 “루핀 씨?”
해리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힘이 실려있던 건지, 사내는 한창 영웅담을 늘어놓다 그대로 정지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녔나요?” 해리가 물었다.
리무스는 아주 오랫동안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랬지,” 리무스가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짓을 안하게 되더군. 그 말 어디서 들었니?”
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심을 불식할 만한 적당하면서도 진심어린 답변을 머리속으로 물색해봤지만, 이미 선수를 놓쳐버렸다.
“아니, 됐다,” 리무스가 한숨을 쉬었다. “누군지 대략 짐작이 가는구나.” 희미하게 흉터어린 얼굴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찌푸려졌다. “도대체 아이에게 이 무슨 ─”
“아버지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있었나요?” 해리가 말을 끊고 물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뭐 그런거? 아니면 그저…그저 타고났었나요?”
리무스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해리가 그에게서 처음 발견한 초조함이었다. “해리,” 리무스가 말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저질렀던 치기어린 행동으로 그를 정의할 순 없단다!”
“저도 어려요,”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전 스스로 제 자신을 정의합니다.”
그 말에 리무스가 눈을 두차례 꿈벅거렸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해좀 시켜줬으면 좋겠군요, 왜냐하면 제가 볼때 그런 행동에는 그 어떤 변명도 소용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짓들을 했는지 말해주세요, 좋게 포장안해도 되니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제가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요.
“그 당시 그리핀도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풍조였단다,” 리무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느릿하게 말했다. “그리고…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만…아마 제임스를 끌어들인 건 블랙이었을거다…블랙은 자신이 슬리데린과 대적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 혈통이 운명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외치는 듯이 ─”
“아니 해리,” 리무스가 고개를 저었다. “블랙이 어째서 도주 대신 피터를 쫓았는지는 아는 바가 없어. 마치 그 날 블랙은 단지 비극을 만들기 위해 비극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였어.” 사내의 목소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징조도, 경고도, 단서도 그 무엇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 설마 그가 그렇게 될 줄은 ─” 리무스의 목소리가 끊겼다.
해리는 눈물을 흘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만 해보는 것보다 직접 리무스에게서 들으니 가슴이 깨질듯이 아파왔다. 해리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부모님을 잃었고, 단지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리무스 루핀은 4명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두 잃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피터 페티그루의 죽음에는, 그야말로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아즈카반에 수감되어있을 그를 생각하면 고통스럽단다,” 리무스가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는 면회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해리, 나는 정말이지 다행스럽구나. 그를 방문조차 않는 내 자신을 애써 합리화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해리는 딸꾹질을 몇번 하고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가 있었다. “피터 페티그루에 대해서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듯한데 ─ 그러니까, 알아야 될 것 같아요, 기억해야 될 것 같아요 ─”
눈가에 눈물이 고인 리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해리, 피터가 자신이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리라고 알고 있었다면 ─” 그는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피터는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보다 어둠의 마왕을 두려워했어, 그리고 만약 그렇게 최후를 맞을 거라고 알았다면, 아마 아예 우리와 말도 섞지 않았겠지. 그러나 피터는 그 위험을 알고 있었다 해리, 그는 그 위험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알고 있었어, 언제나 가능성은 있다고. 허나 그래도 그는 끝까지 제임스와 릴리의 곁을 지켰단다. 호그와트의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어째서 피터가 슬리데린이나, 아니면 래번클로에 배정받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고는 했어, 피터는 비밀을 아주 좋아했으니까. 호기심을 감출 생각조차 안했지, 언제나 사람들의 비밀을 캐내고 다녔어, 철저하게 숨겨진 것들을 말이야 ─” 리무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그 비밀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단다 해리. 그저 알고 싶었던 것뿐이었어. 그리고 어둠의 마왕의 장막이 세계에 드리워졌을 때, 피터는 제임스와 릴리의 곁을 지키며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단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어째서 배정 모자가 그를 그리핀도르에 넣었는지 깨닫게 되었지.” 리무스의 목소리에는 강렬함과 친구를 향한 자부심이 섞여있었다. “고드릭 같은 영웅이 친구의 곁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야, 그래, 강인하고 당돌한 그리핀도르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감안하면 그렇지. 그러나 만약 우리들 중 어느 누구보다 겁이 많았던 피터가 그리했다면, 반대로 그가 가장 용기있는 인물이 되는 게 아닐까?”
“맞아요,” 해리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리 하실 수 있다면, 루핀 씨, 만약 시간이 되신다면, 피터 페티그루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은 학생이 있어요. 후플푸프의 1학년인, 네빌 롱바텀이라는 학생이에요.”
“앨리스와 프랭크의 아이인가,” 리무스의 목소리는 울적했다. “그래. 결코 희망찬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리,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해주도록 하마.”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찰나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블랙이 피터 페티그루와 모종의 갈등이 있었나요?” 해리가 물었다. “설령 살의가 아니라고 해도, 뭔가 페티그루 씨를 찾아나설 정도의 일이요. 가령 페티그루 씨가 알고 있던 비밀을 알고자 했거나, 아니면 비밀을 묻기 위해 살인멸구를 노렸거나.”
리무스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일렁였으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딱히 없군.”
“뭔가 있다는 말이군요,” 해리가 단정지었다.
멋들어진 콧수염 밑에 예의 그 쓴웃음이 지어졌다. “네게도 피터의 면모가 얼핏 보이는 것 같구나. 하지만 해리,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다.”
“저는 래번클로예요, 그리고 비밀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해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블랙이 그토록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페티그루 씨를 추적했다면, 중요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리무스는 어쩐지 조금 불편해보였다. “네가 조금 더 성숙해지면 기꺼이 말해줄 수 있겠다만, 정말이란다 해리, 신경쓸 필요 없어! 그저 학창 시절의 일일 뿐이니까.”
해리는 어째서 그가 이리도 석연찮은지 알면서도 모를 듯 했다; 리무스의 목소리에 실린 기묘한 초조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금 더 성숙해지면’이라는 사내의 언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깨달음이 번개처럼 해리의 직감을 스쳐지나갔다….
“아뇨,” 해리가 말했다, “죄송해요, 이미 눈치채버린 것 같군요.”
리무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정말이니?” 그가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군요, 그렇죠?”
사물이 어색하게 정지했다.
리무스가 느릿하고,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때,” 리무스가 말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 슬프고, 비극적으로 끝난 사이였어, 적어도 학창 시절 우리 눈으로는 그렇게 보였단다.” 그의 얼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허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숙해진 우정 속에 깊숙히 묻혀버렸고, 그걸로 영원히 잊혀진 줄로만 알았지. 그래, 블랙이 피터를 살해한 그 날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