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이론 3화
눈을 두 손바닥으로 가려 세상에서 단절된 채, 드레이코는 장시간 생각에 잠겼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와 해리의 숨소리뿐. 해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설득력 다분하게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한 열변 속에 눈곱만큼 섞인 진실들과, 뻔하고 지극히 당연히 있어야할 진짜 의도에 대한 가설이 부딪친다….
얼마 후, 드레이코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맞는 말로 들려,” 드레이코가 나지막히 고했다.
해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드레이코가 말을 이었다, “이제 이 기쁜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 나를 덤블도어에게 데려갈 차례인가?”
그가 최대한 목소리를 평탄하게 유지하며 말했다.
“아, 맞다,” 해리가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사실 의논할 게 있었는데 잊고 있었네 ─”
드레이코의 혈관이 꽁꽁 얼어붙으며 산산조각났다 ─
“퀴렐 교수님의 어떤 말씀을 듣고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됐어, 그리고, 어, 네가 이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하든 간에 더 일찍 네게 물어보지 않은 내가 바보니까, 응. 그리핀도르들은 전부 덤블도어를 성인군자로 취급하고 있고, 후플푸프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래번클로들은 실은 그가 그저 미친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기막힌 결론을 내린 것에 자화자찬을 하고 있지만, 슬리데린의 의견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이런 간단한 실수를 저지르다니 나도 아직 멀었네. 하지만 심지어 너조차 슬리데린 기숙사를 복구하는데 덤블도어와 결탁하는 것을 수긍하는 걸 보면, 딱히 슬리데린의 의견도 다른 기숙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군.”
…
…
…
“저기 말야,” 드레이코의 목소리에는 철저한 고려하에 벼려진 차분함이 깃들어있었다. “이런 상황이 들이닥칠때면 난 항상 생각하곤 해, 혹시 이 자식 일부러 이러고 있는건가? 하고. 일부러 날 짜증나게 하는건가? 우발적일 게 분명하다고, 사람인 이상 아무리 악을 써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기가 일쑤야. 그게, 지금 바로 네 목을 비틀어버리지 않는 이유고.”
“엉?”
그리고 그 후에 바로 스스로의 목을 졸라버리겠지. 해리는 머글 가정에서 자랐고, 덤블도어가 교묘하고 매끄럽게 그를 슬리데린에서 래번클로로 우회시킨 만큼 해리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공산이 컸다. 물론 드레이코가 딱히 말해줄 의사도 없었다는 점도 한몫했고.
아니면 드레이코가 덤블도어의 세력에 그리 쉽게 합류하지 않으리라는 해리의 추측마저 그저 덤블도어가 설계한 계략의 일부분에 불과하거나….
허나 해리가 정말 덤블도어의 진실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면,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에게 경고를 해야만 했다.
“좋아,” 생각을 충분히 정리한 드레이코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으니 아무데서나 시작하겠어.” 드레이코가 심호흡을 했다. 상당히 긴 대화가 될 듯 하다. “덤블도어는 자기 여동생을 죽이고도 아무 혐의 없이 풀려났어, 남동생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야 ─”
해리는 불안감과 심각함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느끼며 계속 들었다. 처음 계획은 순혈주의자들 쪽의 이야기를 일부만 신뢰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까놓고 보니 아무리 불신감을 갖고 일부분만 받아들인다 해도 결코 좋게 들리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덤블도어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용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아즈카반에서 사망했다. 그건 결코 덤블도어의 죄가 아니었으나, 공식 기록에는 평생 그 결과가 남는다. 이 부분은 악의에 가득 찬 순혈주의자들이 단순히 음해를 위해 창조해낸 개소리인지 아닌지 나중에 해리가 확실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덤블도어의 어머니의 죽음은 원인불명이었고, 얼마 후 그의 여동생마저 ‘오러들의 결론에 따르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 여동생은 어릴 적 머글들에게 심한 짓을 당한 이후로 실어증에 걸려버렸다고; 그리고 그러한 증상은 실패한 ‘오블리비아테’의 후유증과 흡사하다고 드레이코는 지적했다.
몇 번 정도 해리의 방해 끝에, 드레이코는 대략적인 흐름을 잡았는지 체계적으로 견해를 먼저 밝히고는 그의 추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래서 내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아도 괜찮지만,” 드레이코가 말했다, “네게도 보이지? 슬리데린이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어. 덤블도어는 그가 가장 돋보일 수 있을 완벽한 때까지 그린델왈드와의 결투를 미루었어. 그린델왈드가 유럽의 대부분을 망가뜨리고 역사상 가장 흉악한 어둠의 마법사라는 악명을 얻었을 때를, 그리고 머글 졸개들에게서 착취하던 자본과 희생을 점차 잃어가며 내리막길을 가기 직전을 노렸지. 만약 덤블도어가 그의 명성에 걸맞는 고귀한 마법사였다면, 그 이전에 이미 그린델왈드를 치고도 남았을 거야. 아마 덤블도어도 유럽을 망가뜨리고 싶었던 거겠지, 분명 함께 예정한 계획의 일부분이었을 테니. 꼭두각시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린델왈드를 공격한 거고. 그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된 결투도 전부 조작에 불과해, 두 마법사가 우연찮게 완벽하게 대등한 실력을 지녀서 무려 20시간동안 하나가 탈진할 때까지 쉴세없이 전투를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더 화려하게 보이게끔 덤블도어가 교묘하게 꾸며낸 거야.” 드레이코의 목소리에는 분개마저 섞여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로 인해 덤블도어에게 위즌가모트의 의장 자리가 주어졌어! ‘멀린의 계승되는 혈통’이, 1500년만에 더럽혀졌다고! 그리고 그마저도 모자라 국제 마법사 연맹의 회장까지 겸임하고, 무적의 요새로써 손색이 없는 호그와트까지 보유하게 됐지 ─ 호그와트의 교장이자 위즌가모트 의장이자 국제 마법사 연맹의 회장,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완수해내는 건 불가능해. 어째서 사람들은 아직도 덤블도어가 세계정복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거지?”
“잠깐,” 해리가 생각을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건 스탈린의 러시아에서 서독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전부 지어낸 이이야기밖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험악한 내용을 조작했다면 순혈주의자들의 신변에 이상이 없을리 없…나? 가장 공신력이 높은 ‘예언자 일보’마저 고의적으로 오보를 내는데 정평이 나있는데…허나 위즐리 막내와의 약혼이라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기사를 냈을때는 적절한 지적을 받고 적절하게 망신을 당했었다….
눈을 개안한 해리는 고저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드레이코를 확인했다.
“그러면 이제 너를 덤블도어에게 데려갈 차례냐고 물어본 건, 일종의 시험이었네.”
드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전에, 맞는 말로 들린다는 건 ─”
“맞아, 맞는 말로 들렸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네게 믿음이 썩 안가. 혹시 내가 너를 시험한 게 못마땅한 건 아니겠지, 포터 군? 내가 우롱을 했다고 말할 셈이야? 네 생각을 유도했다고?”
여기서는 친절한 사람이 그러하듯 응당 웃어보이는 게 맞았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실망감에 도저히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네 말이 맞아, 지극히 공평하니 불평은 못하겠군,” 해리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악하지는 않은가보지?”
드레이코가 씁쓸한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지금 덤블도어를 깎아내리고 대신 아버지를 추켜세우는 것처럼 보이는가보군. 그리고 내가 순전히 아버지가 해준 말들을 그대로 네게 전해주고 있다 생각할테고.”
“그 또한 고려하고 있는 가능성이니까,” 해리가 평이하게 대꾸했다.
드레이코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격렬해졌다. “알고 계셨어.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들도 모두 알고 계셨어. 어둠의 마왕이 잔인무도한 악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하지만 덤블도어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유일하게 그와 맞설 정도로 강대한 마법사! 물론 정말 악인 그 자체은 죽음을 먹는 자들도 없는 건 아니었지, 벨라트릭스 블랙처럼 ─ 아버지는 그런 부류가 아냐 ─ 하지만 아버지의 세력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 해리,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었지, 덤블도어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니까. 어둠의 마왕은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어!”
드레이코는 굳은 눈동자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보며, 해리는 머리를 굴렸다. 주인공이 스스로를 악당으로 여기는 자서전은 없다 ─ 볼드모트 경이나, 벨라트릭스 블랙은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드레이코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악’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허나 요점은 그게 아니었다.
이 이야기에 악당이 한 명인지, 아니면 두 명인지가 바로….
“설득당하지 않은 얼굴이구나,” 드레이코가 말했다. 근심이 가득하고, 조금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해리로써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드레이코는 스스로의 말에 신뢰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럼 설득 당해야 한다고 생각해?” 해리가 되물었다.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고작 네가 믿기 때문에? 네 믿음이 강력한 증거가 될정도로 이성적인 합리주의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설령 네 말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자신 있어?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네 말에는 전부 신빙성이 결여되어있었지. 지금까지 네 모든 말들을 한번 잘 생각해 봐. 과학자로 각성한 뒤에 사고를 재구성해서 말한건지, 아니면 그저 자라나면서 주워들은 말을 생각없이 토해낸건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맹세할 수 있어? 말포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네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오류도 없으며, 만약 이게 덤블도어를 깎아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진작에 눈치챘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니?”
드레이코가 입을 열려고 하자 해리가 손사래를 쳤다, “하지 마. 말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뿐이니까. 넌 아직 확고하지 않고, 너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해. 내 말 들어 드레이코. 사실 나도 걱정스러운 점을 몇 개 발견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도 분명한 것도 없지, 그저 추론과 가설과 신빙성 없는 증언만 난무하니…게다가 네 이야기도 결국 확실한 것은 아니야. 덤블도어가 그린델왈드와의 결투를 조금 더 당기지 않은 건 다른 마땅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 물론 머글 세계에서 일어나던 일을 감안하다면 정말 타당한 이유여야 하겠지만…어쨌든. 내가 더 의문을 느끼기 전에, 덤블도어가 확실하게 저지른 악행을 말해줄 수 있어?”
드레이코의 숨이 거칠어졌다. “좋아,” 목소리가 불분명하게 나왔다, “덤블도어가 한 짓거리를 말해주지.” 드레이코가 망토에서 지팡이를 드리우고는 주문을 외웠다, “콰이어투스,” 그리고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콰이어터스”, 그러나 자꾸만 주문의 발음을 틀리는 나머지 결국 해리가 지팡이를 꺼내 대신 해주었다.
“옛날,” 드레이코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있었어. 그 소녀의 이름은 나시사, 슬리데린의 기숙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명석하고, 지혜로웠지.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고, 둘은 결혼식을 올렸어. 그녀는 죽음을 먹는 자도 아니었고, 전투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저 아버지를 사랑했을 뿐 ─”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자 드레이코는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해리는 위장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드레이코는 단 한번도 그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어째서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그…눈먼 저주에 당하신거니?”
드레이코가 울부짖었다. “덤블도어가 침실에 있던 어머니를 불태워 죽였어!”
은은한 은빛으로 물든 교실 안에서 소매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눈가를 닦으며 흐느끼는 소년을, 또 한 명의 소년이 지켜보았다.
해리는 균형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이성을 유지하기에는 지나칠정도로 감정이 몰려왔다. 드레이코를 향한 동정으로 두 눈에 물기가 차오를 것만 같은 충동과, 여전히 피어오르는 의혹….
덤블도어가 침실에 있던 어머니를 불태워 죽였어!
이건…
…아무리 봐도 덤블도어답지 않은데…
…하지만 상황도 이렇게 되면 ‘누구답다’라는 개념 자체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법이다.
“저, 정말 고통스러우셨을 거야,” 드레이코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아버지는 결코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셔, 물론 앞에서 그 일에 대해 언급하는 건 자살행위지. 하지만 맥네어 씨가 내게 말해줬어, 그슬린 자국이 침실 구석구석에 존재했다고. 덤블도어에 의해 타죽어가며 어머니가 얼마나 괴로워하셨으면…그래, 이게 덤블도어가 말포이 가문에 진 빚이고, 우린 그의 목숨을 대가로 받아낼 거다!”
“드레이코,” 해리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달리 가다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차분한 목소리라는 것도 이상하니까, “미안해, 물어봐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야 해, 어떻게 그게 덤블도어였다는 걸 알 수 있 ─”
“덤블도어가 직접 자신의 짓이라고 실토했어, 그리고는 일종의 경고로 여기라고 아버지에게 지껄이더군! 오클러맨스였던 아버지는 베리타세룸을 복용하고 증언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덤블도어를 재판으로 보낼 수도 없었어. 하, 덤블도어가 공석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해버린 이후로는 심지어 아버지를 추종하는 세력들마저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게 됐으니.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알고 있지. 아버지가 절대로 그런 거짓말을 꾸며낼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우리가 응당 대가를 치뤄야 할 사람을 향해 복수의 칼날이 향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라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거냐 해리!” 드레이코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물론 루시우스 본인이 직접 저질렀고, 죄를 덤블도어한테 뒤집어씌운 게 아니라면 말이지.
허나…그 추측 속의 루시우스 또한 루시우스답지 않았다. 만약 그가 나시사를 살해했다면, 정치적 이익과 신뢰를 희생하면서까지 굳이 덤블도어를 겨냥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쉬운 상대를 골라 책임을 전가했을 터….
그 와중 울음을 멈춘 드레이코가 해리를 표독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때?” 그가 단어 하나 하나를 씹어뱉듯이 말했다. “이 정도면 악행으로 보기에 충분할까, 포터 군?”
해리는 의자의 등받이에 놓여진 그의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드레이코의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 내제된 고통이 너무나도 적나라했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해리가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나도 더 이상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모르겠다고!” 발악하듯이 외친 드레이코가 덜컹거리며 책상에서 일어섰다 ─
“어둠의 마왕이 우리 부모님을 살해하는 광경이 되살아났어,” 해리가 말했다. “처음으로 디멘터와 맞닥뜨렸을 때 내게 들이닥친 기억이야, 내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악몽. 까마득한 과거임에도 말이지. 그들의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어. 내 목숨만은 구제해달라고 어둠의 마왕을 향해 빌던 어머니의 목소리. 제발 안된다고,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라고, 대신 자기를 죽여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지. 어둠의 마왕은 그런그녀를 신랄하게 비난하며 비웃었어. 그리고는, 그 녹색의 섬광이 시야를 ─”
해리가 드레이코를 올려보았다.
“그러니까 싸우자,” 해리가 이어갔다, “지금까지 지속했던 싸움을 계속 해나가는거야. 너는 우리 어머니가 ‘죽음을 먹는 자’를 살해한 제임스의 아내였기 때문에 죽어 마땅했다는 거겠지. 허나 네 어머니는 무고했기에 억울한 죽음이었다는 거고. 그러면 나는 네 어머니의 죽음은 정당하다고 말할 권리가 있고, 덤블도어에게는 침실에 있던 그녀를 불태워 죽여버릴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할 권리가 있고, 우리 어머니의 죽음은 옳지 않았다고 말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드레이코, 이렇게 되면 양측 다 지극히 편향적인 시각이라는 게 뻔히 보이잖아? 왜냐하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건 규율에 어긋나기 때문이야. 그 규율은 네 어머니건 우리 어머니건 다를 바 없이 적용돼, 어느 쪽이든지. 릴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적이었고 적을 죽이는 건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덤블도어가 나시사를 죽인 건 옳은 행위가 되어버려, 그의 적이었으니까.” 해리의 목소리가 마구 갈라졌다.
“그러니까 절충해서 타협안을 내놓자면, 어느 쪽의 죽음도 옳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 누구의 어머니도 돌아가셔서는 안된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