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이론 4화
활화산마냥 끓어오르는 분노가 너무나도 거대한 나머지 드레이코는 가까스로 방을 뛰쳐나가려는 몸을 제지했다; 그를 저지한 건 지금이 매우 중대한 순간이라는 깨달음과, 미약하게나마 남은 우정 때문이었다. 찰나에 불과한 동정심. 잊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는 해리 또한 어둠의 마왕의 손에 의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이 이어졌다.
“말해 봐,” 해리가 입을 열었다, “말해 봐 드레이코, 화는 안낼 테니까 ─ 정말로, 그러니까, 나시사의 죽음이 릴리의 죽음보다 더 비극적이었다고 생각하는거야? 비교하는 것조차 모욕이라고 여기는 거야?”
“나도 어지간히 멍청했던 것 같군,” 드레이코가 말했다. “한번도, 지금껏 단 한번도 네가 부모님을 죽인 ‘죽음을 먹는 자’들을 증오할 거라는 생각을, 내가 덤블도어를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죽음을 먹는 자들을 여길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해리는 지금까지 침묵을 고수했었다. 드레이코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해 나불거릴 때조차 반응도 안하고 참은 것 ─ 그래, 드레이코는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해리가 말했다, “그게 아냐 ─ 그런게 아니라고 드레이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으로는,” 해리가 목이 메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런 생각으로는, 절대 패트로누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드레이코는 순간 가슴이 억죄여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고통을 느끼는 스스로가 싫었으나, 고통은 어김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네 부모님을 그냥 잊어버리겠다는 말이야? 어머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라고?”
“그러면 너와 내가 서로 적이 되어야 할까?” 이제는 해리의 목소리도 거칠어져가고 있었다. “우리가 적이 되어야 할정도로 서로에게 잘못을 저질렀나? 서로에게 억하심정이 있나? 개소리!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는 게 결코 정의일리가 없어, 말이 안된다고!” 말을 멈춘 해리가,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마구 손으로 쓸어넘겼다 ─ 드레이코가 얼핏 보기에도 해리의 손은 땀으로 축축하게 변해있었다. “이봐, 우리가 당장 타협안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드레이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어둠의 마왕이 우리 어머니를 살해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 그냥…그래, 그냥 ‘비극이었다’라고만 말해줘. 그 사건이 과연 필요했는지, 아니면 정당했는지도 논하지 말자. 그리고 나는 ‘나시사의 죽음 또한 비극이었다’라고 말할 게, 그녀의 목숨에도 분명 가치는 있었으니까.
당장 우리가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으나, 우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점, 그 누구의 죽음이라도 분명 슬픈 사건이라는 점에만 서로 동의한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의견이 일치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누구 말이 옳다는 게 아니고, 누구 말이 틀렸다는 건 더더욱 아니야. 그저 네 어머니의 죽음은 비극이고, 우리 어머니의 죽음도 비극이며, 헤르미온느가 죽는다면 그것도 비극이라는 거야. 모든 생명에는 가치가 있으니까. 적어도 이 점에만은 동의를 하고, 나머지는 훗날을 위해 기약을 하면 안되겠어? 단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동의해줄 수 있니 드레이코? 아마 이런 생각은…충분히 패트로누스를 불러내기에도 도움이 될거야.”
해리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갔다.
그리고 드레이코는 그동안 끓어오르던 분노를 표출했다. “덤블도어가 어머니를 살해했어, 그저 ‘비극적이다’라는 말 한마디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라고!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게씾만, 말포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앙갚음을 해야 해!” 가족의 죽음을 보복하지 않는 건 나약하거나 불명예하고는 차원이 틀린 중대 문제였다.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 없어,” 해리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릴리 포터의 죽음은 비극이었다’라고 말해주겠어? 그 한마디만 말해줄 수 있니?”
“그건….” 드레이코는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네, 네 기분이 어떤지 나도 알아, 하지만 해리, 만약 내가 릴리 포터의 죽음은 비극이었다라고 말하면, 그건 벌써부터 ‘죽음을 먹는 자’들을 반하는 행동이 된다고!”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도 잘못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해 드레이코! 반드시, 그걸 못하면 더 이상 과학자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어, 그 길을 가로막는, 거역할 수 없는 ‘규율’이 생기는 거니까. 모든 변화가 진보는 아니지만, 모든 진보는 변화야. 여러가지 방향을 생각해낼 수 없으면 정체해버리게 되버리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 스스로를 차별화시켜야 한다고! 그래, 그건 심지어 네 아버지도 포함해서야 드레이코, 심지어 네 아버지도. 네 아버지가 했던 행동을 지적해서 틀렸다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만 해, 그도 완벽하지는 않으니까. 허나 그 말을 끝내 할 수 없다면, 넌 그저 그것뿐인 인간이야.”
호그와트로 떠나기 한달 전부터, 아버지는 자기 전 항상 그에게 이런 부류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경고를 하기 시작했었다.
“나를 아버지로부터 떨어뜨리려 하는거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의 일부분을 떨어뜨리려 하는거지,” 해리가 말했다. “네 아버지로부터 잘못 습득한 부분을 스스로 고치게 만드려는 거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너의 발전을 추구하는거야. 하지만 네 패트로누스를 망가뜨리려는 건 아냐!” 해리의 목소리가 사뭇 부드러워졌다. “그토록 눈부신 것을 부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누가 알아, 혹시 슬리데린 기숙사를 복구할 때도 필요할지….”
저도 모르게 드레이코는 설득당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문제였다, 아무리 설득력이 넘치더라도 해리의 주위에 있는 이상 항상 경계를 해야만 했다. 해리는 심지어 완전히 생구라를 치고 있다고 해도 주장을 기가 막히게 포장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네가 지금 인정하지 않는 건 바로 덤블도어가 말포이 경과 그의 아들 간의 유대를 단절시킴으로써 부모님의 죽음을 보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 ─”
“아니, 아냐. 그 부분은 완벽하게 빗나갔어.” 해리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호그와트에 오기 3일 전까지 덤블도어가 누군지도, 어둠의 마왕이 누군지도, 죽음을 먹는 자들이 무엇인지도,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몰랐으니까. 옷가게에서 너와 처음 만난 날에서야 비로소 알게 됐어. 그리고 덤블도어는 머글의 과학을 그리 달가워하지도 않더군, 아니 적어도 호의적이진 않다고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어, 예전에 한번 직접 떠볼 기회도 있었고. 너를 통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복수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옷가게에서 너를 만나기 전까지 말포이가 뭔지도 몰랐음에도, 난 네가 마음에 들었지.”
기나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냥 이대로 너를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네가 정말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면, 모든 게 훨씬 더 수월해질텐데 ─”
그리고 하나의 답이 불현듯 드레이코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슬리데린 기숙사의 복구와, 어머니의 죽음을 비극이라고 칭한 해리 포터의 의사가 과연 진실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불법일뿐더러, 아버지의 도움없이 해야하는 만큼 위험성이 다분했고, 심지어 해리 포터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 그러나….
“그래,” 드레이코가 말했다. “네 진의를 파악할 확실한 실험이 떠올랐어.”
“뭔데?”
“네가 베리타세룸을 한 방울 복용하는거야,” 드레이코가 말했다. “딱 한 방울만이면 거짓말은 절대로 못하겠지만, 네가 억지로 입을 열게 할만큼 강하지도 않으니. 어디서 구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구해볼 ─”
“어,” 해리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얼핏 무기력함마저 서려있었다. “저기 드레이코, 어 ─”
“다물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강하면서도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네가 거절하는 순간, 내 실험의 결과가 나오는 거니까.”
“드레이코, 나 사실 오클러맨스 ─”
“세상에 그딴 개소리를 나보고 믿으라고 ─”
“베스터 씨에게 단련받았어. 주선은 퀴렐 교수님께서 해주셨고. 드레이코 네가 구해오기만 한다면 베리타세룸 한 방울을 기꺼이 복용하겠지만, 우선 내가 오클러맨스라는 사실을 경고해주고 싶어서 그래. 완벽한 오클러맨스는 아니지만, 베스터 씨의 말에 따르면 거의 완벽한 정신 방벽을 구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마 베리타세룸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봐.”
“넌 고작 호그와트 1학년에 불과하잖아! 미친 어떻게 그럴수가!”
“혹시 믿을만한 레질리맨스를 알고 있어? 원한다면 시범을 보여줄 ─ 후우, 미안해 드레이코, 하지만 내가 순순히 사실을 밝힌것만으로도 나를 향한 신뢰도에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아? 사실 그냥 숨기고 베리타세룸을 복용했어도 됐는데, 안 그래?”
“왜? 왜 넌 항상 이런 식이야 해리? 어째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가 불가능할때도 기어이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냐고? 웃지마 이 자식아 너한텐 이 상황이 웃겨?!”
“미안, 미안, 웃을 상황이 아니란 건 알아, 하지만 ─”
드레이코가 침착함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었다.
허나 해리의 말이 옳았다. 해리에게는 드레이코가 베리타세룸을 처방할때가지 침묵을 고수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으니까. 만약 정말로 그가 오클러맨스라면…누구에게 레질리맨시를 부탁할 수 있을까. 정말 사실이라면 퀴렐 교수에게 부탁을…아니, 퀴렐 교수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어쩌면 퀴렐 교수는 사전에 해리와 이미 합의를 끝내고 정해진 대사를 줄줄이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때 해리가 퀴렐 교수에게 함께 물어보라는 또 하나의 말을 상기한 드레이코는 상념 끝에 또다른 실험을 구상할 수가 있었다.
“넌 전부 알고 있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슬리데린의 기숙사를 타락시키고 있는 건 머글 태생들을 향한 증오심이라는 추론과, 릴리 포터의 죽음이 비극적이라는 말을 내가 인정함으로써 무엇을 잃게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게 네 계획의 일부이기도 하고.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하지도 마.”
해리는 현명하게 침묵을 고수했다.
“대신 그 대가로 네게 원하는 게 있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리고 그 전에,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역주: BGM - To the Moon의 Once Upon a Memory를 추천합니다)
초상화의 길을 따라 드레이코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밤의 하늘이었다. 일전에 그가 해리를 떨어뜨린 지붕 같은 게 아니라 작지만 제대로 된, 공중 위의 마당. 그리고 돌로 이루어진 지면과 난간에 한없이 수놓아진 아름다운 문양들…호그와트의 창조에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이 들어갔을지 여전히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아마 이 성 자체를 과정없이 단 한번에 창조했을 게 확실하다, 그 어떤 천재라도 이토록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건축할 수 있을리는 없으니까. 성은 매번 그에게 새로운 느낌이었고 그때마다 항상 예측을 불허하는 예술적인 미를 선보였다. 오늘 날의 저물어가는 마법을 아득히 초월하는 이 경지는 아마 ‘호그와트’라는 증거가 이렇게 버젓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싸늘한, 한겨울의 밤하늘. 오늘 같은 1월말에는, 학생들의 통금시간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이렇게 어둑해지고는 한다.
맑은 대기를 뚫고 별들이 새초롬히 빛을 내뿜었다.
해리는 별의 아래에 있으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지팡이를 가슴팍에 갖다댄 드레이코가 숙련된 동작으로 손가락을 벌리고는 중얼거렸다, “테르모스.” 온화한 기운이 심장에서부터 전신에 깃들기 시작했다; 차디찬 바람은 여전히 칼날처럼 얼굴을 때렸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테르모스,” 해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멀리 떨어진 지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들은 난간 근처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들이 지금 있는 장소가 밖에서 바라보면 성벽에서 툭 튀어나온 첨탑중 하나인지 골몰히 생각하던 드레이코는 불현듯 바깥에서 호그와트의 전체적인 모습이 어떠한지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허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여느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희미한 윤곽으로나마 보이는 금지된 숲도, 호그와트 호수에 반짝이듯 비추는 달빛도.
“머글들이,” 드레이코의 옆에서 난간에 팔을 기댄 해리가 나지막히 말했다, “머글들이 깨닫지 못하는 점은, 바로 밤이 찾아와도 모든 불을 끄지 않는다는 거야. 한달에 단 한시간이라도, 1년에 단 15분이라도 말이지. 광자는 대기에 흩어져 가장 밝은 별을 제외한 모두를 꺼버려. 그러면 밤하늘은 더 이상 예전처럼 보이지 않지,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는 이상. 호그와트에서 이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별들이 빛을 잃은 머글 도시에서의 삶은 상상하기도 어려워. 호그와트의 밤하늘을 구경하는 순간, 평생을 머글 도시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게 되지.”
고개를 돌린 드레이코는, 목을 꺾어 끝없는 어둠 속을 찬란히 수놓는 은하수를 올려보는 해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해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지구에서는 결코 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대기가 항상 시야를 방해하니까. 정말 제대로 보고 싶으면, 강렬하고 고고하게 불타오르는 진실된 모습을 보고 싶으면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해. 이런 소원을 가져본 적 있어 드레이코? 저 밤하늘 속으로 뛰어들어, 우리 태양이 아닌 다른 태양들에는 과연 뭐가 있는지 구경해보고 싶다고? 만약 네 마법에 한계가 없다면,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침묵이 길어지자, 드레이코는 마침내 그게 질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네,” 드레이코가 말했다. 지금 당장에는 그 어떤 계략이나 의도도 없었기에, 해리의 것처럼 마냥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게 정말 인간에게 가능한 일일까?”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해리가 말했다. “이건 알아. 적어도 나는, 내 일생을 지구에서만 보낼 생각은 없어.”
이미 머글들이 마법을 쓰지도 않고 성공한 일이라는 것을 드레이코가 알지 못했더라면, 웃음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네 시험을 통과하자면,” 해리가 말했다, “이 사상이 내게 가지는 의미를 말해보도록 할게, 조금 전의 설명과는 달리 가감없이 전부. 하지만 아마 이 말을 들어도 비슷한 느낌이 날거야, 조금 더 막연했었지만. 그래서 이 사상에 대한 개인적은 견해는, 드레이코, 우리가 저 별들을 향해 나아간다면, 다른 존재들을 발견할지도 몰라.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외형일수도 있겠지. 온몸이 수정으로 이루어졌을지도, 아니면 맥동하는 살덩어리처럼 생겼을 수도 있어…생각해보니 마법 그 자체로 구성되었을 수도 있네. 그러면 그 수많은 기괴함 가운데, 사람은 어떻게 분별하지?
외형도 아니고, 사지가 얼마나 달려있는지도 중요치 않아. 무슨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살덩어리인지 수정인지 정체불명의 무언가일지 알게 뭐야. 우리는 그들의 ‘사고’로 그들을 파악할 수 있어. 물론 사고조차 우리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동하지 않을수도 있지.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살아있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한 이상 죽음을 맞이하기는 싫어해.
그래, 그건 슬픈 거야 드레이코, 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죽음은 슬픈 거라고. 저 밤하늘 어딘가에 있을 그들에 비하면, 유사이래 이 땅을 거닌 인간들은 너무나도 흡사해서 전부 서로의 형제, 남매, 자매들이나 마찬가지야. 저 밖에서 우리를 만난 그들은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을 만난 게 아냐, 구별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그들에게 보이는 건 그저 인간. 사랑을 하고, 증오를 하고, 웃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는 마치 깍지에 든 완두콩마냥 모두 똑같이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와 그들은 달라. 서로가 서로와 너무나도 다르지.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한들 우리는 물론이고, 그들도 절대 멈추지 않아. 분명,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해리가 지팡이를 들었고, 드레이코는 약속한대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고는 문이 있는 돌바닥과 돌벽을 향했다. 결코 그를 보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하여 철저히 함구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내겐 꿈이 있어,” 해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언젠가는 지적 존재들이 피부색이나 외형을 이루는 물질, 혹은 부모의 유무가 아닌 사고의 패턴에 의해 구별되는 날이 올거라는 꿈. 생각해 봐. 만약 언젠가는 우리가 수정 생명체와 어울리게 된다면, 그때도 우리와 똑같이 생기고, 같은 사고를 하는 머글 태생들을 차별하는 게 과연 당연시 여겨질까? 그 수정 생명체는 우리를 다른 객체로 구별조차 할 수 없을텐데 말이야.
증오에 타락한 슬리데린 기숙사가 저 별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동반자로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까? 사고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정립하고, 죽음을 원하지 않는 생명체는 모두 소중해. 릴리 포터의 생명은 소중했고, 나시사 말포이의 생명도 소중했어. 물론 지금은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비극이야. 하지만 아직도 살아남아 지켜야 할 생명들이 많이 남아있어. 네 생명, 나의 생명,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생명, 지구의 모든 생명, 그리고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예비 친구들도.
모두를, 지켜주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들이 있는 거야.
익스펙토 패트로눔!”
그리고 빛이 있었다.
빛에 닿은 모든 것이 은색으로 물들었다. 돌벽도, 돌바닥도, 난간도 예외없이. 반사광만으로도 너무나 휘황찬란했다. 심지어 대기마저 빛에 물들어갔으나, 빛은 사그라들 틈 없이 점차 커지고, 밝아지고 밝아져 ─
마침내 빛이 사그라들자 충격에 휩싸인 드레이코의 손이 반사적으로 망토를 향해 손수건을 꺼냈다. 그제서야, 그는 마침내 그가 쉴세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바로 네 실험 결과야,” 해리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이번에는 진심이었어.”
드레이코가 지팡이를 내린 해리를 향해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 그거, 속임수지, 맞지?” 드레이코가 말했다. 이미 충격량 초월 상태였다. “네 패트로누스가 ─ 아니, 그렇게 밝을 수는 없어 ─” 허나 그렇게 말해도 그건 분명 패트로누스의 빛이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다른 무언가로 오인할 수 없으니까.
“그건 패트로누스 마법의 진정한 모습이었어,” 해리가 설명했다. “그 어떤 내적 방해도 없이 온 힘을 패트로누스에 불어넣을 수 있으면 가능해. 그리고 네가 물어보기 전에 참고로 말하는데, 덤블도어가 가르쳐준 건 아냐. 그조차 이 패트로누스의 비밀을 모르고, 설령 알아낸다고 해도 결코 불러낼 수 없을테지. 나는 혼자 힘으로 수수께끼를 풀었어. 그리고 이해한 순간, 이 주문은 절대로 섣불리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깨달았어. 너를 위해서 이런 시험을 감수한거지만; 부디 입을 함구해줬으면 해, 드레이코.”
드레이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진정한 힘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과연 무엇이 정의인지 분간이 안갔다. 이중적인 시선, 이중적인 사고. 해리의 이상을 나약함이라고, 후플푸프적의 아둔함이라고,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군중들을 향해 늘어놓는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매도하고 싶었다. 너는 현혹된거다,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미친 방식으로 해버린거다, 저 드높은 별들에 닿을 때까지 ─
무척이나 아름답고 유혹적이며, 신비롭고 환하게 빛나는 무언가에 ─
“나도,”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런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있을까?”
“언제나 진실만을 갈망하고,” 해리가 답했다, “그 진실을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온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가능할거야.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란 없어. 그래, 그게 비록 저 멀리 별이라 할지라도.”
드레이코가 다시금 손수건으로 붉어진 눈자욱을 닦았다.
“그만 들어가는 게 좋을거야,” 드레이코가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봤을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밝은 빛이었으니 ─”
고개를 끄덕인 해리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올려 밤하늘을 마지막으로 응시한 뒤, 드레이코도 뒤따랐다.
살아남은 아이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오클러맨스이며, 여러가지 기상천외한 일들이 가능하고, 패트로누스 마법의 진신을 소환하기까지…해리의 패트로누스는 무슨 형태일까, 그리고 어째서 비밀로 부쳐야 한다는 걸까?
드레이코는 그런 의문들을 물어볼 생각조차 안했다. 어쩌면 해리가 정말로 대답해버릴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드레이코는 과도한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의 충격이라도 받으면 머리가 어깨에서 분리되어 통, 통 거리며 호그와트의 복도에 튕겨 굴러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