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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

Harry Potter and the Methods of Rationality


원작 |

역자 | 송장의간장

인간성 이론 5화


교실로 다시 직행하는 대신 그들은 드레이코의 요청을 따라 작은 벽감에 걸터앉기로 했다. 사실 교실에 다다르기까지 해리의 대답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침묵 주문을 주변에 펼친 드레이코가 말없이 해리를 주시했다.

“고려해봤는데,” 해리가 말했다. “좋아, 할게. 하지만 조건이 다섯 개가 있어 ─”

“다섯 개?”

“그래, 다섯 개. 이봐 드레이코, 이런 부류의 맹세는 언젠가 잘못될 것이 분명하다고, 만약 이 상황이 연극이었다면 필시 참혹한 비극이라는 결과만이 남을 ─”

“근데 연극이 아니잖아!” 드레이코가 외쳤다. “덤블도어는 어머니를 살해했어. 그는 ‘악’이야. 쓸데없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간단명료하게 악이라고.”

“드레이코,” 해리의 목소리는 신중했다, “지금 내게 있는 유일한 정보는 덤블도어가 나시사를 살해했다는 루시우스의 말을 들은 네가 말한거야. 이 정보를 의심하지 않으려면, 너와 루시우스 그리고 덤블도어까지 신뢰해야 돼.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것처럼, 조건이 있어. 첫번째는 만약 네가 정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나를 그 맹세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다는 것. 물론 언어유희나 속임수 따위가 아니라, 순전히 네 의도가 그러하다면 말이지.”

“알았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딱히 문제는 없어보이는 조건이다.

“두번째 조건이야. 나는 나시사를 살해한 인물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합리주의적으로 그 인물을 적으로 인식하겠다고 맹세하겠어. 그게 덤블도어건 누구건 간에. 그리고 내 합리성을 걸고 내 판단을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정직하게 내리겠다고 약속할게. 동의?”

“마음에 안들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애당초 해리가 결코 덤블도어와 손을 잡지 않는 게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해리의 약속대로라면 분명 덤블도어의 내면을 얼마 안가 꿰뚫어보리라; 그리고 만약 정직하지 아니하다면, 이미 맹세를 어긴 셈이 되니… “하지만 그래, 동의해.”

“세번째 조건은 나시사가 의심할 여지 없이 산채로 불에 타죽었어야 한다는 것. 만약 그 부분이 모종의 이유로 강조되기 위해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되었거나 한다면, 그 맹세를 유지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겠어.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때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해. 하지만 고문에 가까운 방식으로 죽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야. 나는 나시사가 순전히 불에 타죽었기 때문에 가해자가 이유를 막론하고 악인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드레이코는 최선을 다해 분노를 가라앉혔다.

“네번째 조건. 나시사의 손도 그닥 깨끗한 것만은 아니라면 맹세는 무효. 가령, 만약 나시사가 누군가의 아이를 ‘크루시오 저주’로 미쳐버리게 만들어서 그 누군가가 복수로 그녀를 불태워 죽인거라는 배경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비록 그녀를 불태워 죽인 건 여전히 옳지 않은 행동이야, 고통없이 즉사시켰다면 모를까. 하지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선량하나 그저 루시우스의 아내였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것과는 차원이 달라. 그러면 마지막인 다섯번째 조건이야. 만약 나시사를 죽인 가해자가 세뇌당했다거나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고 진정한 배후가 있다면, 나는 그 배후만을 적으로 간주하겠어.”

“어쩐지 네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궁리만 해대는 것 같은데 ─”

“드레이코, 아무리 그래도 널 위해서 선한 사람을 적으로 삼을 순 없어. 너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야.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가 그들을 악인이라고 규정해야만 돼. 하지만 생각해본 결과, 만약 나시사가 스스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고 루시우스와 사랑에 빠졌기에 아내가 되었던거라면, 그녀를 살해한 인간이 선할 확률은 별로 없어. 그리고 난 그 인간이 덤블도어건 누구건 간에 적으로 삼겠다고 맹세할 게, 그러면 네가 의도적으로 나를 그 맹세에서 해방시키지만 않는다면 유효할거야. 이게 연극 속이었다면 결말이 분명 참담하겠지, 그러니 부디 연극이 아니기를 빌자고.”

​“​불​만​족​스​러​우​나​,​”​ 드레이코가 말했다. “알겠어. 네가 우리 어머니를 살해한 자를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맹세해주면, 나는 ─”

드레이코가 말을 끝맺을 때까지, 해리는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네가 슬리데린 기숙사의 머글 태생을 향한 증오 문제를 해결할 때 도와줄게,” 드레이코가 속삭이듯이 고했다. “그리고 릴리 포터의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라고도 인정하겠어.”

“좋아,” 해리가 말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드레이코는 무의식적으로 균열이 더욱 더 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이 아니라, 매우. 마치 떠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행방불명이 되어가는 낯선 감각, 해변에서 점차 낯선 조류로 흘러들어가는 느낌, 아늑한 집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지는….

“잠시 실례좀 할게,” 드레이코가 말했다. 등을 돌린 드레이코가 심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시험이었기에, 고작 긴장감이나 수치심 따위로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드레이코가 패트로누스 마법의 준비 동작을 위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빗자루에서 떨어졌을 때의 고통과 공포를 기억해내라. 그리고 그 감정의 원인은 바로 커다란 누더기 망토의 인영. 물에 불어터진 시체마냥 소름끼치는 무언가.

그리고 드레이코는 눈을 감았다. 차디찬 손을 강하지만 따스하게 감싸주던, 아버지의 온기를 더 자세하게 떠올리기 위해.

두려워 말거라 아들아, 내가 있잖니….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지팡이가 공중에 커다란 횡을 그렸다. 그 행동에 담긴 힘에 드레이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순간, 그는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니다. 영원토록 잃지 않을 것이다. 그가 훗날 어떻게 되든 무관하게,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드레이코가 눈을 떴다.

전과 다를바 없이 광채를 뿜고 있는 뱀이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마치 안도하듯이 해리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이코는 가만히 그 새하얀 빛을 바라보았다. 그래, 아직 완벽하게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구나.

“그러고보니 마침 기억난건데,” 얼마 후 해리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패트로누스를 사용한 의사 전달에 대한 내 가설을 시험해볼 수 있을까?”

“혹시 내가 그 결과에 충격이라도 받을 가능성이 있니?” 드레이코가 물었다. “오늘은 이미 넘치도록 놀라서 더 이상은 무리거든.”



발상 자체는 별로 대단한 게 없으니 드레이코가 충격받을 이유가 없을거라는 해리의 주장에 오히려 드레이코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긴급 상황에 전언을 전달할만한 수단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적어도 해리의 가설에 따르면, 바로 희소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의사’다. 패트로누스를 소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행복한 기억에 대한 진실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의지. 이 경우에는 언어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패트로누스 자체가 바로 전언이다. 전달한다는 의지가 있다면, 패트로누스는 상대방에게 간다는 것.

“해리에게 전달해 줘,” 해리가 그와 불과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나, 드레이코는 아랑곳 않고 빛의 뱀을 향해 고했다, “그, 어, 녹색 원숭이를 조심하라,” 언젠가 드레이코가 보았던 연극에서 나온 사인이었다.

그리고 킹스 크로스 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드레이코는 그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해리가 알아주기를 염원했다; 허나 이번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행복한 기억 그 자체로 설명을 해보기로 했다.

빛의 집합체 같은 뱀이 방을 가로질러 기어갔다. 돌바닥보다는 허공을 유영하듯이 기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 짧은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에 다다른 뱀은 ─

─ 그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목소리로 해리에게 말했다, “녹색 원숭이를 조심하라.”

“시이이 쉬잇 쉬이이이,” 해리가 대꾸했다.

뱀이 방을 가로질러 드레이코에게 되돌아왔다.

“해리가 말하기를, 전언은 잘 받았고 알겠어.” 빛나는 블루 크레이트가 드레이코의 목소리로 전달했다.

“흠,” 해리가 말했다. “패트로누스한테 말을 거는 건 좀 이상한 기분이네.”









“뭐야 그 눈,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말했다.



여파:

해리는 드레이코를 가만히 주시했다.

“그러니까 즉, 마법의 뱀에게만 해당된다는 거지?”

“아, 아니야,” 드레이코가 부정했다. 지나치게 창백해보이는 인상의 드레이코는 아직도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지만, 사실 조금 전까지 내던 의미불명의 신음소리가 멈췄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넌 파셀마우스야. 파셀통그, 즉 모든 뱀의 통일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것. 어떤 뱀의 말이라도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네가 하는 말도 뱀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해리,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래번클로에 배정받은 거야! 너, 넌 슬리데린의 후계자라고!”











“뱀에게…지성이 있다고?”
인간성 이론, 끝

드디어 해리가 파셀마우스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슬리데린의 후계자라는 명칭보다 뱀의 지적 유무에 더 경악하는 해리 포터.

이제 해리에게 숙제가 또 하나 생겼네요. 나시사를 죽인 진범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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