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적 우선순위
2월의 첫째날인 토요일 아침. 래번클로 테이블 쪽에는, 접시에 산더미마냥 쌓아올려진 갖가지 채소더미를 긴장어린 눈빛으로 관찰하며, 혹시 눈곱만큼의 육류라도 들어가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소년이 있었다.
과잉 반응일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찾아온 깨달음의 충격이 가시자, 되살아난 해리의 상식 부분이 ‘파셀통그’는 아마 뱀을 조종하기 위한 언어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불과하리라는 그럴싸한 가설을 내놓기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뱀이 인간에 근접하는 지성을 보유하고 있다면, 아직까지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했다. 해리의 지식에 따르면 언어적인 능력을 갖춘 생명체 가운데 가장 작은 뇌를 지닌 동물은 이렌느 페퍼버그가 조련한 아프리카 회색 앵무다. 그조차 복잡한 간통관계가 비일비재하고 다른 앵무를 흉내내야 비로소 가능한 종에서 일어나는 비체계적인 조어일 뿐. 그 반면 드레이코의 말에 따르면, 뱀들은 평범한 인간의 언어처럼 들리는 ‘파셀마우스’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즉,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구문론을 말이다. 거대한 뇌를 보유하고 사회도태가 뚜렷하게 드러난 인류도 까마득한 세월에 걸쳐 설계한 언어. 해리가 아는 바로 뱀에게는 사회성이 딱히 없었다. 그리고 몇천 개의 종이 전세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하나의 통일언어, ‘파셀통그’를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러한 추론은 전부 최근 신뢰성이 점차 결여되어가고 있는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하지만 분명 해리는 언젠가 TV에서 뱀의 쉿쉿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들어보았으니 어떤 소리인지 알고 있는 거니까. 허나 그때는 전혀 언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점은 확실히 다행스러운 부분…
…이었다. 그래, 처음에는. 문제는 드레이코가 파셀마우스로 뱀을 이용해 복잡한 임무도 수행시킬 수 있다는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파셀마우스는 말을 검으로써 뱀의 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따져본다면 이 방법으로 인해 뱀들에게 예전에 마법의 분류 모자가 실수로 그러했던 것처럼 강제로 자의식을 부여하게 된다는 거고.
그리고 해리가 그의 가설을 늘어놓자 별안간 드레이코가 한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주장을 해왔다. ─ 해리는 부디 그 이야기가 일개 동화에 불과하기를 크툴루에게 빌고 또 빌었다 ─ 해리의 기도가 무색하게도 그건 바로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용맹한 독사를 부려 다른 뱀들로부터 정보를 모아오라는 임무를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즉 만약 파셀마우스와 대화를 주고받은 파셀마우스가 다른 뱀들과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그들의 자의식을 구축해낼 수가 있는 거라면, 그건….
그건….
어째서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뇌가 지속적으로 “그건… 그건….” 이라며 되뇌이고 있는 건지 해리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사고 자체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대한 충격을 회피하기 위한 현실 도피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만약에, 누군가가 ‘소’와 소통을 하기 위해 그런 비슷한 부류의 마법을 개발했다면?
가령, ‘폴트리마우스’ 따위가 존재한다면?
(역주 – 폴트리: Poultry. 닭, 오리 따위의 가금류)
아니면 혹시….
포크로 찍은 당근이 입 속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번개처럼 찾아온 깨달음의 일격에 해리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결코, 결코 그럴리는 없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는 하나 아무리 마법사라도 그렇게 멍청할리는….
그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해리는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멍청할리 없다는 보장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마법사의 지혜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기고 있다는 것을.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머글에게 인간성이 결여되어있다는 비논리적인 상식을 고민없이 받아들인 것처럼 뱀의 지성 여부가 나타내는 도덕적 중요성 또한 단 한순간도 고려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는 이상 도덕적인 문제를 눈치채지 못하긴 하지만….
“해리?”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벌써부터 후회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테리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왜 그런 얼굴로 포크를 노려보고 있는거니?”
“아니, 그저 마법을 불법으로 해야 한다는 자그마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해리가 대답했다. “마침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혹시 식물과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었던 마법사의 이야기 같은 거 들어본 적 있어?”
불행일지 다행일지 테리는 단 한번도 그런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등한 질문을 들은 래번클로 7학년들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결코 착석하지는 않은 해리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공허한 표정으로 접시에 가득 쌓인 채소를 내려다보았다. 배는 점점 더 고파졌고, 오후에는 ‘메리의 집’을 방문해 그들이 자랑하는 훌륭한 요리를 맛볼 일정까지 있건만…해리는 당장에라도 전부 망각해버리고 그냥 어제의 식습관으로 회귀하고픈 강렬한 열망까지 느꼈다.
뭐라도 먹긴 먹어야 할 거 아니냐, 내면의 슬리데린이 속삭였다. 게다가 가금류든 식물이든 누군가가 얼떨결에라도 지성을 부여했을 가능성은 동등하다고 봐도 좋아. 그러니 어차피 뭘 먹든 간에 그 동식물에 지성이 있었을 확률이 있다면, 차라리 훨씬 더 입맛에 맞는 ‘다이라카울’ 튀김 조각을 먹는 게 어때?
(역주 – 다이라카울 diracawl. 포동포동하고, 깃털이 덥수룩하나 날지 못하는 새. 위기를 감지할 경우 사라지는 능력이 있음. 신비한 동물사전에 수록.)
공리주의적인 논리로서 그닥 타당해보이지 않는데 ─
오, 공리주의적인 논리를 원하는 거야? 그렇다면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 설령 어떤 천치가 닭에게 지성을 부여하는 짓을 저질러버렸을지라도, 그 진실을 밝혀내고 뭐라도 해결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바로 네 연구야. 식단을 놓고 고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연구를 끝마친다면, 역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가장 효율적으로 지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들을 구별해내어 보호할 수 있겠지. 네가 접시에 무엇을 담든간에 집요정들이 이미 요리해버린지 오래이기도 하고 말이야.
해리는 가만히 이 생각을 고려해보았다. 상당히 유혹적인 이론이기는 하나 ─
그래 임마! 슬리데린이 외쳤다. 이제서야 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지성체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가장 도덕적인 행위임을 깨달았구나. 이렇게 기쁜 날이 있을까. 고작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반항조차 못하는 불쌍한 지성체들을 이빨로 찢어발기며 쾌락을 느끼 ─
뭐?! 해리가 항변했다. 너 도대체 누구 편이냐 이 자식아?!
내면의 슬리데린은 음침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너도 언젠가는 이 원칙을 두 팔 벌려 맞이하게 될거야…결과는 모든 과정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을. 슬리데린이 사악하게 웃었다.
해리가 식물에게도 지성이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을 무렵, 그의 ‘비’ 래번클로적인 내면의 조각들은 그가 느끼고 있는 도덕적인 갈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것에 애로사항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후플푸프는 해리가 어떤 음식이라도 떠올릴때마다 ‘식인이다!’라며 울부짖었고, 그리핀도르는 입 속으로 들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음식을 그리기 일쑤였다. 가령, 샌드위치라고 할지라도 ─
식인이다!
꺄아아아아 먹지 마 난 맛없어 ─
비명따윈 개나 줘버리고 먹어버려! 더 크나큰 목적을 위해서라면 때때로 도덕을 버려야하는 법. 다른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먹는 행위에 아무런 거부감도 보이지 않으니 평소처럼 네 합리성으로 반박할 수가 없어 ─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쉰 해리가 이내 생각했다. 좋아, 다만 만약 우리가 나중에 ‘연구를 못해 우리가 미처 지성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무지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더라도 불평하지 않기야.
오, 상관없어, 슬리데린이 동조했다. 나머지들도 전부 동의하냐? (내면의 조각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 그러면 이제 어서 다리아카울 튀김 조각을 먹는 게 어때?
뭐가 지성체이고 뭐가 아닌지 조금 더 확실하게 연구하기 전에는 그럴 수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좀 닥쳐주렴. 그리고 해리는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야채가 가득 담긴 접시에서 눈을 돌리고는 도서관을 향했다 ─
좋아, 이렇게 된 이상 학생들을 먹어치우는 게 어때, 후플푸프가 뜬금없이 말했다. 걔네들은 지성체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잖아.
먹고 싶지? 그렇지? 그리핀도르가 맞장구쳤다. 어리면 어린 놈일수록 야들야들하고 맛있을거야.
해리는 디멘터의 영향 때문에 가상의 인격들이 파손되어버린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솔직하게 말할게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호그와트 도서관의 약초학 책장을 눈빛만으로 살펴보던 앳된 소녀의 목소리는 다소 날카로웠다. 아침을 그대로 거른 해리는 그녀에게 아침 식사 후 바로 도서관으로 내려올 수 있냐는 전언을 남겼다. 그리고 해리가 소개한 오늘의 주제가 그녀는 별로 탐탁치 않은 듯 했다. “네 문제가 뭔지 알아? 네게는 우선 순위라는 게 없어. 뭔가 떠오르면 다른 건 전부 생략하고 곧바로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저만치 나아가버린다구.”
“나만큼 우선 순위가 명백한 인간도 없는데 무슨 소리래,” 해리가 반박했다. 그리고는 캐시 맥나마라 저 ‘채소의 지혜’라는 책을 집어들어 페이지를 촤라락 넘기더니 목차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당근을 먹기 전에 식물들에게 의사가 존재하는지 ‘우선적’으로 확인하고싶은거지.”
“이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거니?”
마치 드레이코처럼 말하네, 속으로 생각한 해리였으나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이라고는 뭐하지만 그가 말했다, “식물에게 지성이 존재한다는 발견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해리가 목차를 계속 읽어 내려나갈동안, 헤르미온느는 할 말을 잃은 듯이 침묵했다. 그런 와중 ‘식물의 언어’라는 장을 발견한 해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가 다급하게 페이지를 넘겨가던 무렵,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입을 열었다.
“가끔씩은 말야, 네 그 머리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해 미칠 때가 있어.”
“헤르미온느, 이건 간단한 숫자놀음이야, 알겠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식물이 있지, 사람의 수는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로. 만약 식물들이 지성체가 아니라면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만약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덕적인 무게성은 순식간에 이 세상의 모든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하게 돼. 자, 물론 네 본능은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거야, 왜냐하면 네 뇌는 숫자의 실체를 모르니까. 만약 캐나다의 평범한 가정 세군데를 대상으로 기름 웅덩이 때문에 죽어가는 조류를 차례대로 2천마리, 2만마리, 그리고 20만마리를 구하기 위해 얼마의 기부금을 낼 수 있냐고 물어본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각각 78달러, 88달러, 그리고 80달러를 낼 의향이 있다고 할거야. 다시 말해, 차이가 없다는 거지.
그걸 범위에 대한 무감각이라고 불러. 네 뇌는 한 마리의 가련한 새가 기름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내고, 그 상상도는 곧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네가 지갑을 열게 만들지. 하지만 2천이라는 가공할 만큼의 수를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결국 숫자는 상상에서 아예 제외되어버리고 말아. 자 그럼 그 편향된 시각을 고치기 위해 우선 전세계에 펼쳐진 수십조의 지성적인 잔디를 생각해 봐. 어쩌면 이건 전 인류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항이 될 수도 있다고…아자토스시여 감사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의사소통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의 식물은 몇 종류가 없고, 그마저도 인간의 언어를 소리내어 전달한다고 하네. 게다가 평범한 식물과 대화하게 하는 마법도 없다고 하고 ─”
“어제 아침 론과 이야기를 했어,” 헤르미온느가 불쑥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아있었고, 어딘지 울적하게도 들렸고, 심지어 약간이지만 두려움마저 실려있었다. “내가 너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대. 네가 디멘터에게 사로잡혔을 때, 속에 감추고 있던 어둠이 드러난 것을 보지 못했냐고 추궁했어. 그리고 만약 내가 어둠의 마법사의 추종자로 남을거라면, 더 이상 내 군대에 남아있을 자신이 없다고….”
페이지를 넘기던 해리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해리의 뇌 또한 아직 숫자에 대한 적절한 감정을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고통받거나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수십조의 지성체일 수도 있는 잔디들보다, 당장에는 거리적으로 가깝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개 인간의 풀죽은 모습이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론은 이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멍청이잖아,” 해리가 말했다. “이제와서는 뉴스거리도 아닌 자타공인인걸. 그래서, 론을 해고한 뒤 녀석의 사지를 몇 개나 부러뜨렸니?”
“그렇지 않다고 설득시키려 노력했어,”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아있었다. “넌 결코 그렇지 않다고, 그리고 우리도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근데 내가 말하면 말할수록…론의 반응은 더 심해졌고.”
“뭐 그렇겠지,” 해리가 말했다. 위즐리 대위를 향한 분노가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게 조금 예상외였지만, 아마 헤르미온느를 향한 걱정이 그 감정을 덮은 것이 분명하리라.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뿐이야. 네게 의혹을 가질 권한이 있다는 거지. 자기가 심문관이 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그런 힘을 갖게 되면, 귀를 막은 그들에게 밀리게 되고.” 해리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발하다고 생각한 말포이와의 수업 내용이기도 했다. 자기 방어를 취하며 스스로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심문자들에 의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까다롭게 질문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설령 그 질문들에 전부 대답을 한다 해도 심문관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허나 처음부터 명백하게 자신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속해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경우,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세부 사항까지 비집고 들어오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번에 론이 래번클로 테이블 쪽에 앉아있던 내게 와 네 곁에서 떨어지라고 지랄을 떨었을 때, 내가 손을 하늘 높이 올리고는 말해줬지, ‘이 손이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 보임? 나와 말 한마디라도 섞으려면 이 높이까지 지혜를 쌓고 오셈.’ 그러자 녀석은 나를 매도하기 시작했지, 그래, 분명 ‘헤르미온느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던가. 난 대답대신 혀를 차기만 했어. 그래도 눈치없이 계속 나불거리자 그냥 친히 침묵 주문을 걸어주었지. 아마 다시는 나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을걸?”
“네가 왜 그랬는지는 이해해,” 헤르미온느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고는 싶었어. 그렇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했는데…네가 그러면, 나만 더 곤란해져 해리!”
해리는 ‘채소의 지혜’에서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단 한 페이지도 못 읽을 판이다; 그 순간 그는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페이지를 넘겼다.
“내 생각에는 네가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해,”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 너는 너야. 누구를 친구로 삼을지는 네가 정해. 네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나가서 숨지라고 해버려.”
헤르미온느는 그저 고개를 흔들고는, 페이지를 넘겼다.
“두번째 선택지는,” 해리가 말을 이어갔다. “프레드와 조지한테 가서, 가정 교육을 판타지로 받은 동생 녀석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눠보라고 말해버리는 거야. 그 쌍둥이는 보기와는 달리 정말 괜찮은 인간들 ─”
“론뿐만이 아니야,”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많은 애들이 그런 말을 해, 해리. 심지어 맨디도 내가 안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걱정스럽게 바라본다고. 웃기지? 지금까지 나는 퀴렐 교수님께서 너를 어둠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아 걱정했는데,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내게 같은 경고를 하고 있으니까.”
“뭐, 그러네,” 해리가 말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나 퀴렐 교수님에 대해서 조금 안심스러워지지 않아?”
“한마디로 말하자면,”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었다, “않아.”
침묵은 헤르미온느가 또 하나의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는, 그녀가 정말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리고 파드마가 말하고 다녔어, 내가 패, 패트로누스 마법이 불가능한 건, 내가 차, 착한 척을 하고 있는 즈, 증거라고….”
“파드마는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어!” 해리가 격노했다. “네가 양의 탈을 쓴 어둠의 마녀라면, 모든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패트로누스 마법을 시도하지 않았겠지, 널 무슨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헤르미온느가 슬며시 미소지어보이고는, 마치 무언가를 참는 듯이 두 눈을 깜박였다.
“저기, 나는 ‘실제로’ 악인이 될까봐 걱정해야하는 입장이라고. 여기서 최악의 상황은 사람들이 네가 겉으로 보이는 것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근데 그렇다고 네가 죽어?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니?”
울적한 얼굴을 한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헤르미온느…그렇게 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네가 여기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이 여기는 네가 다르다고 그렇게 우울해지면, 넌 평생 우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결정나는거나 마찬가지야. 우리가 보는 우리와, 타인이 보는 우리가 일치하는 건 불가능 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슬픈 기색이 감도는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했다. “어쩌면 넌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해리.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뿐이야. 해리, 만약 내가 너를 악인으로 여기게 된다면, 무슨 기분이 들겠니?”
“음….” 해리가 상상을 해보았다. “어, 가슴이 아플거야. 찢어지도록. 근데 너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대처하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그 점에 관해서는 네가 나보다 뛰어나.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네가 판단을 내렸다면, 정말 그런거겠지. 너를 제외한다면 내가 이런 신뢰를 보일만한 학생은 없어, 넌 내 생각에 가장 ─”
“그렇게 살 수는 없어 해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나는.”
소녀가 다시 침묵 속에서 3페이지 정도 넘기는 사이, 해리 또한 자신의 책으로 시선을 돌려 최대한 집중을 하려 노력했다. 그 때, 헤르미온느가 마침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 정말 패트로누스 마법의 발현법을 알면 안되는 거니…?”
“나….” 해리는 마치 거대한 돌을 삼킨 듯이 말을 흐렸다. 순간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패트로누스를 불러올 수 없는 자신, 드레이코에게 마법을 보여줄 수 없는 자신, 그리고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헤르미온느, 그러면 네 패트로누스는 빛이 나도 다른 것들과는 틀릴 거야, 다른 사람들의 패트로누스와는 다른 모습일거고. 그걸 본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분명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그 비밀을 말해줘도 넌 다른 사람들에게, 적어도 정면으로는 그 패트로누스를 보여줄 수가 없게 돼. 그리고, 그리고…비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비밀이 존재한다는 지식 자체야. 즉, 비밀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맹세 하에, 최대 한두 명의 가장 신뢰하는 친구에게만 보여줄 수 있고….” 제약을 늘어놓던 해리가 목소리를 힘없이 흐렸다.
“그래도 괜찮아.” 그녀의 대답은 굉장히 작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즉시 바로 비밀을 토해내고픈 충동을 억누른 건 해리의 초인적인 정신력 덕분이었다.
“아, 안 돼, 말할 수 없어, 위험해 헤르미온느. 그 비밀이 알려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장담할 수 없어! 셋이 아는 비밀은 둘이 죽어야 지켜진다는 속담 들어봤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말하는 건 곧 이 세상 전원에게 알리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들만을 믿을 게 아니라, 그들이 믿는 사람들까지 믿어야 하기 때문이야. 이건 너무 중요해, 위험성이 너무 커, 학교에서 한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깨뜨릴만한 그런 게 아니라고!”
“알았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녀가 책을 덮고는 책장에다가 도로 꽂아두었다. “지금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겠구나, 미안해 해리. 정말 미안해.”
“달리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냥, 네가 모두에게 조금만 더 상냥해졌으면 좋겠어.”
소녀는 책장 사이를 걸어나가면서도 결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남겨진 소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으니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소년은 다시금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