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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

Harry Potter and the Methods of Rationality


Original |

Translator | 송장의간장

공감 3화


네빌 롱바텀은 그의 앞을 가로막은 흉악한 생김새의 5학년들을 바라보며, 다리를 떨지 않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역시 해리 포터의 ‘권유’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녀석을 옹호해주는 거냐?” 곤혹스럽다는 듯이, 그리고 약간 적대적인 감정을 보이며 준수한 5학년이 물었다. “이녀석은 슬리데린이라고. 게다가 레스트랭.”

“그저 부모님을 잃은 아이일 뿐이야,” 네빌 롱바텀이 말했다. “그리고 그 기분은…잘 알고 있어.” 본인 스스로도 그가 어디에서 튀어나온 배짱으로 이러한 말들을 나불거리는지 네빌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해리 포터의 입에서 나오기라도 한 듯,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침착하고 멋졌던 것이다.

허나, 떨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네가 뭐길래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명백한 적의를 표출하며, 준수한 소년이 으르렁거렸다.

내 이름은 네빌. 가장 유서 깊은 귀족 가문, 롱바텀의 마지막 자제이자 후계자─

그러나 차마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엄두가 생기질 않았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배신자’ 같은데.” 한 그리핀도르가 그렇게 말하자, 네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알고 있었다. 아니, 더욱 더 빨리 깨우쳐야만 했었다. 해리 포터는 틀렸다. 상대방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아무리 네빌이 멈추라고 요구해도 고분고분 따를리가 없었다.

준수한 소년이 먼저 다가서자, 나머지 셋이 그를 뒤따랐다.

“그래서, 그렇다 이거지,” 기묘할정도로 뚜렷한 스스로의 목소리에 속으로 놀라며, 네빌은 말했다. “결국 너희들에게는 내가 레사스 레스트랭이건, 네빌 롱바텀이건 상관없었던 거야.”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엎어져있던 레사스 레스트랭이, 갑작스럽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악은 악이지,” 예의 그 소년이 사납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네가 악을 친구로 여긴다면, 너 또한 악일 수밖에 없어, 안 그래?”

네 명의 소년이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레사스는 비틀거리며, 서서히 일어섰다. 회색으로 변색된 얼굴로, 그는 몇 걸음 내딛고, 벽에 몸을 힘겹게 기댄 다음 침묵했다. 그의 눈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유일한 출구이자 도피처인, 복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친구라,” 네빌이 말했다. 그가 언성을 조금씩 조금씩 높혀갔다. “그래, 내게도 친구는 있어. 한 명은 ‘살아남은 아이’라고 불리고 있지.”

그 말과 함께 다가오던 그리핀도르들 중 몇 명의 표정에 걱정이 서렸다. 허나 준수한 생김새의 소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해리 포터는 지금 이 자리에 없어,”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었더라도, 롱바텀이 레스트랭을 옹호하는 모습을 반기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러자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섰고, 그들의 뒤에는 레사스가 벽에 기대어 주춤거리며, 도망갈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오른 손을 하늘로 뻗은 네빌이 엄지와 중지를 서로 굳게 맞대었다.

그리고 해리 포터가 절대로 눈을 뜨지 말라고 했기에, 그는 곧이곧대로 눈을 꼭 감았다.

만약 이 말도 안되는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불신하며 살 것이라고 속으로 맹세했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이 열리고, 몸과 정신의 상태와는 정반대로 너무나도 또렷한 음성이 씩씩하게 울려퍼졌다.

“해리 제임스 ​포​터​-​에​반​스​-​베​레​스​.​ 해리 제임스 ​포​터​-​에​반​스​-​베​레​스​.​ 해리 제임스 ​포​터​-​에​반​스​-​베​레​스​.​ 그대가 내게 진 빚과 그대의 진명을 대가로 소환을 청하오니, 차원을 뚫고 지금 이 자리에 현현해 주시옵소서!”

네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는 눈을 슬그머니 떴다.

레사스 레스트랭이 벙찐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명의 그리핀도르들이 멍청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준수한 생김새의 소년이 너털하게 웃자, 그것을 기점으로 나머지 셋이 박장대소를 해대기 시작했다.

“혹시 그렇게 하면 해리 포터가 저 모퉁이에서 느닷없이 등장이라도 하는 거였냐?” 준수한 소년이 비아냥거렸다. “안타깝네 안타까워.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구만.”

그가 네빌을 향해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나머지 셋이 그를 뒤따랐다.

“커흠,”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결코 나타날 수 없을 막다른 골목 근처,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해리 포터가 그들의 뒤에서 여유롭게 헛기침을 했다.

사람들이 공포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는 광경이 이리도 유쾌한 것이었나. 네빌은 어쩐지 약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어째서 그 행위를 즐기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해리 포터가 느릿하게 걸어오며, 레사스 레스트랭과 다른 이들 사이에 우뚝 섰다. 냉담하게 적색으로 장식된 옷을 입은 소년들을 한번 훑어본 그는, 이내 주동자로 보이는 준수한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칼 슬로퍼 군,” 해리 포터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비로소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만약 레사스 레스트랭이 운 없게 좋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아주 작은 악행이라도 저질렀다고 해도, 너는 그 악행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을테지. 내 말이 잘못되었다면, 슬로퍼 군, 지금 당장 정정해주기를 바라겠어.”

네빌은 다른 소년들의 얼굴에 어린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경악을 엿볼수있었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스스로가 가장 그러한 기분을 잘 느끼고 있었다. 해리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미리 털어놓았지만, 어떻게 이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녀석은 레스트랭이라고,” 주동자가 항변하듯이 말했다.

“아니, 부모를 잃은 불행한 아이겠지,” 해리 포터의 목소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냉담했다.

이번에야말로 다른 세 명의 그리핀도르들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그래서,” 해리 포터가 말했다. “너는 분명 롱바텀의 이름을 걸고 아무 잘못 없는 선량한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를 막으려는 네빌을 보았지. 허나 이 숭고한 행동에도 너는 콧방귀만 뀌었어. 하지만 만약 ‘살아남은 아이’가 네 행동은 잘못되었으며, 오늘 너는 굉장히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면, 조금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

리더격인 주동자 소년이 해리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나머지 셋은 그를 뒤따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칼,” 초조한 듯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명이 속삭였다.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사람들 말로는 네가 제 2의 어둠의 마왕이 될 것이라고 하던데,”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동자가 말했다.

해리 포터가 씨익 웃었다. “또한 내가 지네르바 위즐리와 비밀리에 약혼했으며, 우리 둘이 함께 프랑스를 정복해나갈 거라는 예언도 존재한다고 하지.” 그가 미소를 흐렸다. “우회적으로 말해봤자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칼 슬로퍼. 레사스를 내버려 둬. 그를 건드릴 경우, 내 귀에 들어올 테니 말이야.”

“호오, 이제보니 우리 귀여운 레시가 네게 꼰질렀군,” 주동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렇다고 해둘게,” 대꾸하는 해리 포터의 목소리는 메말라있었다, “뭐, 그것 말고도 오늘 네가 ‘마법’ 수업을 끝마친 이후, 인적이 없는 한적한 모 장소에서, 머리에 새하얀 리본을 달고 있는 어느 후플푸프 여학생과의 썸씽에 대해 듣기도 했는데─”

리더격 소년이 턱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그 순간 그리핀도르 학생 중 한 명이 겁에 질린 신음을 토하며, 뒤돌더니 그대로 모퉁이 너머로 쏜살같이 달려가 사라졌다. 그가 자아내는 발소리가 재빠르게 멀어져갔다.

그리고 여섯이 남았다.

“아,” 해리 포터가 유쾌하게 말했다,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 떠나버렸군. 남은 나머지 모두도 우리의 곁을 떠난 버트람 키르케를 좀 본받는 것이 어때, 더 이상의, 음, ‘말썽’에 휘말리기 전에 말이야.”

“그러니까, 교수님들에게 이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거냐 지금?” 준수한 그리핀도르 소년이 애써 살벌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는 그 대신 떨리기만 했다. “이르면 결코 좋은 꼴은 못 볼걸, 포터.”

남은 두 명의 그리핀도르들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해리 포터가 날카롭게 웃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날 웃겨 죽일 작정이야? 나를 겁주려고? 잘 생각해봐, 정말로 너희들이 페레그린 데릭이나, 세베루스 스네이프, 아니면 ‘그 사람’보다 더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해?”

이번에는 리더격 소년마저 몸을 움찔거렸다.

그 때 갑작스럽게 해리 포터가 손을 치켜 올리고, 중지와 엄지를 맞대자, 세 그리핀도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뒤로 펄쩍 뛰며, 무심코 “안 돼!” 라고 절규했다─

“이것 봐,” 해리 포터가 비웃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면, 오늘 저녁 식사시간에는 사람들이 너희들의 정말 유쾌하기 그지없는 희극에 대해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치 않아 한다는 거야. 맥고나걸 교수님께서는 내가 너무 쉬운 길만 골라서 항상 일을 회피한다고 말씀하셨고, 퀴렐 교수님께서는 내게 패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지. 예전에 내가 상급생 슬리데린에게 합의하에 구타당했던 사건, 아직 기억해? 혹시 기억 나지 않는다면 내가 상기시켜주도록 하지. 너희들은 나를 괴롭히고, 나는 그것을 묵과하는거야. 하지만 그 때 내가 구타당한 이후, 그것을 마냥 지켜보고 있던 학우들에게 내가 보복성 행위를 일체 금지했었지? 이번에는 그 부분을 좀 건너뛰었으면 싶어. 뭐 그것말고는 바뀐건 없을 테니까, 사양하지 마. 어서 나를 괴롭혀보라고.”

해리 포터는 마치 그들을 초대라도 한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깨지기라도 한 듯 돌아서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가는 세 명의 그리핀도르 학생들 때문에, 밟히지 않기 위해 네빌은 재빨리 복도 벽에 찰싹 달라붙어야만 했다.

침묵이 일었고,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살을 에는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셋이 남았다.

해리 포터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마치 한숨처럼 내뱉었다. “후우,” 그가 말했다. “안녕 네빌?”

차분하게 대꾸하려던 네빌은 노력이 무색하게 끽끽거리며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방금 그건 정말, 정말 멋졌어.”

해리 포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상당히 멋졌다고, 네빌.”

그저 자신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한 형식뿐인 말이라는 것을 네빌은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해리는 레사스 레스트랭을 향해 몸을 돌렸다.

“괜찮아, 레스트랭?” 해리가 미처 뭐라고 말하기도 전, 네빌이 선수를 쳤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네빌으로써는 꿈에서조차 생각치 못한 기묘한 상황이었다.

레사스 레스트랭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네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물은 어느새 자국만이 남아있었고,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넌 내 기분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그의 목소리는 고성에 가까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우리 부모님은 아즈카반에서 썩고있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머리속에 ​침​투​한​다​고​…​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그곳에서 디멘터들에게 영혼을 먹히는 게 잘 된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어. 이거 알아? 차라리 내가 해리 포터 같은 처지였다면 이미 행복해서 미쳐버렸을거야, 적어도 그러면 부모님은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거든. 우리 부모님은 매일, 1초 1초를 고통 속에서 살고 계셔, 차라리 내가 너의 처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적어도 너는 가끔이라도 부모님을 만나 뵐 수 있잖아, 적어도 그들이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 나는, 나는 말이야, 만약, 만약 엄마가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하기라도 했다면, 그 감정은 벌써 디멘터들에게 먹힌지 오래일거라고─!”

네빌은 마치 망치에도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은 채 사고를 정지했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레사스는 충격과 공포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는 해리 포터에게,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레사스는 해리 포터의 앞에서 넙죽 엎드리며, 이마를 땅에 찧고는, 속삭이듯이 애원했다. “도와주세요.”

공간이 정지했다. 뭐라고 말할지 감히 입꼬리조차 달싹할 생각을 않은채 네빌은, 해리의 경악어린 표정을 보아하니 그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 부모님을 아즈카반에서 꺼내주세요, 평생동안 충실한 종으로 살게요, 목숨이고 뭐고 다 드릴 테니, 죽으라면 죽을 테니, 제발요, 제발 부탁드려요─!”

“레사스,”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해리가 말했다, “레사스, 그건 불가능 해, 난 전지전능하지 않아, 모두 그저 하찮은 속임수였다고.”

“아니, 아니야!” 레사스의 날카로운 절규에는 절박함과 비통함이 느껴졌다. “내가 봤어, 봤다고, 소문이 사실이였어, 가능, 가능해!”

해리는 침을 삼켰다. “레사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일을 사전에 네빌과 철저하게 계획해두었어, 직접 물어봐!”

사실이었다, 비록 어떻게 할 것인지는 해리가 요만큼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면에서 고개를 치켜든 레사스의 얼굴은 마치 유령의 그것과 흡사했다. 고주파로 울려퍼지는 그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소리에 네빌은 귀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 더러운 잡종의 아들같으니라고! 사실 할 수 있잖아, 왜, 왜 꺼내주지 않는거냐고! 내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빌었는데 어째서 도와주지 않는 거야! 아, 그래, 알겠어, 넌 ‘살아남은 아이’였어, 그렇게 된 거였어, 너도 우리 엄마를 평생 그곳에 썩게 냅두고 싶은 거겠지!”

“아니, 정말로 불가능하다고!” 레사스만큼 절박한 어조로 해리가 외쳤다. “내가 원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난 그런 힘이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레사스는, 해리의 발 주변에 침을 거칠게 뱉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가 모퉁이를 도는 즉시, 발소리가 점차 더 빨라졌고, 이윽고 희미해져가는 순간 네빌은 누군가의 훌쩍임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이 남았다.

네빌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가 네빌을 마주보았다.

“어, 음,” 네빌이 나지막히 말했다. “도움을 받은 게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나보네.”

“내가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해리의 목은 잔뜩 쉬어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감정이 솟아올랐던 거라고.”

침을 꿀꺽 삼키고 네빌은, 마침내야 입을 열었다. “미안해.”

“뭐라?”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해리가 반문했다.

“저번에 네가 날 도와줬을때도, 난─”

“…그 때 네가 내게 향한 발언들은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어,” ‘살아남은 아이’가 대꾸했다.

“아니,” 네빌이 말했다, “아니야,”

서로가 서로를 부추켜세우며, 둘은 동시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원래라면 이루어졌을 수 없었던 일이라는 건 알아,” 네빌이 말했다, “네가 없었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하는 ‘척’이라고 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해리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네빌에게서부터 등을 돌린 해리는, 창가 너머로 꿀꿀한 날씨의 대명사인 먹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순간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 네빌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혹시 레사스의 부모님을 아즈카반에서 빼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니?”

“아니,” 해리가 말했다.

몇 초가 흘렀다.

“…응,” 해리가 말했다.

“참 이상한 성격이네,” 네빌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한번 더 되풀이해줄 필요는 없어,” 해리가 말했다.

“남이 부탁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줘야 성미에 맞는거야?”

살아남은 아이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며, 네빌의 눈을 직시했다. “들어준다? 아니. 들어주지 않아 죄책감을 느끼는가? 응.”

잠시 네빌은 도대체 뭐부터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느라 주춤거렸다. “어둠의 마왕이 죽자,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마법사가 되었어. 그렇기에 아즈카반으로 끌려갔고. 어둠의 마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우리 엄마와 아빠를 고문해 미쳐버리게 만들기도 했고─”

“알아,”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아냐! 넌 아무것도 몰라! 그녀는 분명 명백한 명분을 만들었고,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오러였어! 그리고 이것마저 그녀가 저지른 가장 악랄한 죄가 아니었다고!” 네빌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살아남은 아이의 시선은, 네빌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머나먼 장소를 향하듯이 몽롱해져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모두를 구원하고 모두 그대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기막힐정도로 훌륭한 방법이 존재할지도 몰라. 내가 조금만 더 머리가 뛰어났으면, 지금쯤이면 알아내고도 남았을텐데─”

“네겐 문제가 있어,” 네빌이 말했다. “혹시나 싶었지만 너는 정말로 레사스 레스트랭이 요구한 그 존재가 되야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거네.”

“맞아,” 살아남은 아이가 말했다. “정곡 수준인걸. 그래, 나는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기도하며 무언가를 부르짖을 때 그들의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한다면, 항상 어째서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지, 하고 한탄하고는 해.”

무슨 말인지 네빌은 정확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해리.”

해리가 한숨을 토했다.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것쯤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떻게 하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된 거 아냐?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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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멀어져가는 네빌의 뒷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물론 그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해결책은 바로 그가 한시라도 빨리 전지전능한 신으로 거듭나는 것이었으니까.

네빌의 발소리가 흐려져가며, 이윽고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하나가 남았다.

“커흠,” 그의 바로 뒤에서,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비명을 내지른 해리는 곧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고 저주했다.

천천히, 해리는 고개를 돌렸다.

얼룩진 망토을 걸친, 기름져보이는 장신의 사내는 일전에 해리가 차지했던 자리에서 그 자세 그대로 벽에 몸을 편히 기댄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한 투명 망토로군, 포터,” 마법의 약 교수가 느릿하게 말했다. “이로써 많은 의문점들이 해소되는군.”

이런 우라질.

“그리고 내가, 덤블도어에게 물들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세베루스가 말했다, “혹시 그건 그 진정한 ‘투명 망토’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구나.”

그 즉시 해리는 ‘투명 망토’에 대해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음과 동시에 세베루스가 생각하는 해리의 명석함 또한 똑같이 지닌 누군가로 위장했다.

“뭐, 그럴수도 있겠죠,” 해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의미를, 알고 계시겠죠?”

그 말에 세베루스가 거들먹거렸다.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포터? 허세치곤 상당히 어수룩했다.”

(퀴렐 교수와 점심 식사를 가졌을 때, 그는 만약 상대방이 언급하기 껄끄러운 화제를 들고 일어섰을 때, 무감정한 얼굴로 대처하는 것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해리에게 충고했다. 그리고는 가장, 이중가장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로 지금 이 상황은 세베루스가 해리의 행동을 일중가장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세베루스는 이중가장일 것이고, 해리의 삼중가장은 성공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중가장을 한 스네이프가 의도적으로 해리가 그의 삼중가장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참고로 그 때 해리는 웃으며 ‘그럼 교수님은 어떻습니까?’라고 장난삼아 물어보았고, 퀴렐 교수는 미소를 되돌려주며, ‘언제나 너보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여태까지 저희를 지켜보고 계셨군요,” 해리가 말했다. “환멸 마법이었나, 그렇게 불린 것 같았는데.”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교사로써 학생을 위험에서부터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발로였다.”

“그리고 교수님의 ‘시험’ 결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으셨겠죠,” 해리가 말을 끝맺었다. “그래서. 제가 친아버지와 좀 닮았습니까?”

그 말과 함께, 장신의 사내의 얼굴에는 찰나의 시간 동안, 왠지 모르게 비통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연유에서든 간에,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전에 말해두어야 겠는데, 포터, 너는 오히려─”

세베루스가 말을 흐렸다.

그가 해리를 바라보았다.

“레스트랭은 너를 ‘잡종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세베루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너는 그 욕설을 듣고도 그다지 상관 안하는 것 같더군.”

해리의 눈썹을 치켜올렸다. “상황이 상황이고 정황이 ​정​황​이​었​으​니​까​요​.​”​

“친절하게 도움까지 줬는데,” 세베루스가 말했다. 그의 두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감사의 인사 대신 욕설을 퍼부었지. 그런 모욕감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테지?”

“그저 힘든 시기를 거쳤을 뿐이에요, 그녀석은,” 해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새파란 애송로밖에 보이지 않는 1학년에게 도움을 받으면 저라도 자존심이 상했을겁니다.”

“뭐, 레스트랭은 사실 네게 아무것도 아니니,” 그렇게 말하는 세베루스의 목소리는, 다소 이상하게마저 들렸다, “그렇게 쉽게 용서를 할 수 있는 거겠지. 그저 좀 이상한 슬리데린에 불과하니까. 허나 만약, 그게 레스트랭이 아니라 네 친구였다면, 너는 그의 말에 정신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것이 분명하다. 내 말이 틀렸나?”

“만약 그가 제 친구였다면,” 해리가 말했다, “오히려 더욱 그를 너그럽게 용서해줘야 하겠죠.”

기나긴 침묵이 일었다. 해리는 마치 공기가 서서히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이 방의 대기가 조금씩 조금씩, 긴장감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때 세베루스가 사뭇 안도를 했다는 듯이 미소를 짓자, 긴장감이 삽시간에 소멸했다.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군,”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세베루스가 말했다. “아무래도 네 양아버지인 마이클 베레스-에반스 씨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이겠구나.”

“사실 아빠보다는 아빠의 공상과학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책으로 배웠습니다,” 해리가 말했다. “이제는 제 다섯 번째 부모님이나 다름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죠. 그 책들의 주인공의 삶을 대신 살며, 그들의 강대한 정신력과 지혜, 현기를 흡수하는 거에요. 아무래도 그런 주인공들이나 등장인물들 중에 레사스 같은 인물이 있었겠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그의 마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러한 인물에 대한 대처법또한, 책에서 배웠습니다. 선인은, 언제나 끝에는 용서를 하는 법이라고.”

세베루스는 다소 유쾌하다는 듯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네가 선인에 대해서 말해도, 나는 알아듣지 못할게 분명하다.”

해리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인간을 보았다. 그 말에, 어쩐지 조금 울적해졌다. “원하신다면 선량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빌려드릴게요.”

“그 전에, 네 조언이 한번 더 필요하다,” 세베루스가 태평스럽게 말했다. “사실 나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슬리데린 5학년을 한 명 더 알고 있다. 그는 한 아름답고 매력적인 머글 출신 여학생을 연모하고 있었고, 그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괴롭힘을 당할 때, 용감하게 나서서 구해주려고 했지. 허나 그는 도와주려고 했던 그녀를 ‘더러운 잡종’이라고 불렀고, 그것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이났다. 그 슬리데린 학생은 여러 번, 수백 번을 사과하고 또 사죄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과연 이 이야기 속의 소년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말했더라면, 네가 레스트랭을 용서한 것처럼 그녀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어,” 해리가 말했다, “지금 이 이야기만을 토대로 하면, 그 소년에게만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저라면 그렇게 용서에 인색한 사람과 어울리지 말라고 그 소년에게 충고를 했을 겁니다.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들이 결혼에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과연 그 둘이 이끌어갈 가정이, 과연 행복하리라고 보십니까?”

정적이 내려앉았다.

“오, 하지만 그녀는 용서했단다,” 상황 자체가 재밌다는 듯, 세베루스의 목소리는 발랄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에, 그녀는 그 슬리데린 학생을 괴롭히던 소년의 연인이 되었으니까. 말해보아라, 어째서 그녀는 괴롭히는 쪽을 용서하고, 괴롭힘을 당한 쪽은 용서를 하지 않았지?”

해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괴롭히던 쪽은 다른 사람을 상처입혔고, 괴롭힘을 받던 쪽은 다른 이가 아닌 ‘그녀’를 조금이라도 상처입혔죠. 도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요. 좋게 말하자면 방어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주의적. 이게 아니라, 조금 더 확실한 측면으로 바라보자면, 그 뭐냐, 괴롭히던 쪽이 굉장히 잘생겼나요? 아니면, 부호의 자제였거나?”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둘 다 맞다,” 세베루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뭘 말할 필요도 없겠군요,” 해리가 말했다. “뭐 제가 고등학교를 다녀본 적이 있겠냐만은, 제 책의 지혜를 바탕으로, 십대 소녀들은 평범하고 가난한 이성에게서부터 아주 작은 모욕감이라도 느끼면 이성을 잃는 반면, 잘생기고 돈이 많은 이성에게는 잔소리는 해도 결국 저도 모르게 너그럽게 용서해버린다고 해요. 속된 말로, ‘가벼운 여자’라고 하죠. 뭐, 괴롭힘을 당한 불쌍한 슬리데린 학생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에게 제 말을 전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네가 좋아하던 그녀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으니, 어서 털고 일어나 다음에는 외적인 면보다는 내적인 면을 더 중요시 여기라고’ 말입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타오르는 눈동자로, 세베루스는 침묵 속에 해리를 주시했다. 미소가 서서히 흐려지자, 세베루스가 애써 경련을 일으켰지만, 이내 되돌아오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어쩐지 해리는 초조해짐을 느꼈다. “어, 당연하게도 제가 이런 분야에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 책의 ‘위대한 현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네요.”

침묵이 더 길어졌다.

이맘 때쯤 화제를 전환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의 시험이 무엇이었든 간에, 제가 통과했습니까?”

“내 생각에,” 마침내 세베루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인연은, 아무래도 여기서 끝인 것 같군, 포터.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언급하지 않는 게 네 신상에도 이로울 것이다.”

해리가 눈을 꿈벅거렸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혹 물어봐도 됩니까?”

“너는 나를 모욕했어,” 세베루스가 말했다. “고로 네 지혜는 더 이상 믿지를 못하겠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해리는 세베루스를 멍하니 응시했다.

“하지만 네 조언은 분명 진실된 것이었으니,”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 답례로 나 또한 진실된 조언을 해주마.” 그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몇백 톤이라는 무게를 견디며, 팽팽하게 늘어진 가느다란 실을 연상시켰다. “포터, 너는 오늘 자칫하면 죽을 뻔 했다. 훗날에는, 너와 상대방 둘다 화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고 확신한 뒤, 네 그 같잖은 지혜를 베풀도록.”

그리고 마침내 해리는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었다.

“교수님이 바로 그─”

순간 오늘 죽을 뻔 했다라는 세베루스의 충고를 떠올린 해리가 입을 탁 틀어막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그래,” 세베루스가 말했다, “나였다.”

그리고 댐이 폭발하듯이 다시금 긴장감이 방을 메워쌌다.

해리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패배를 시인해라. 당장.

“…몰랐어요,” 해리가 중얼거렸다. “죄송─”

“아니,” 세베루스가 말했다. 고작 한 마디만을 고했다.

침묵 속에 우두커니 선 해리는, 필사적으로 선택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세베루스는 창문과 그의 사이에 서있었다, 이 정도 높이라면 떨어져도 마법사는 죽지 않을 테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책은 너를 배신했다, 포터,”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진 실과도 같은 목소리로 세베루스가 말했다. “네게 가장 필요한 한가지를 가르쳐주지 않았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고작 소설이나 이야기로 깨우칠 수 없다.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어.”

“아버지,” 해리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지금 그를 구해줄 단 하나의 선택지이자, 최선의 추측이었다. “아버지가 괴롭힘을 당하던 교수님을 보호해줬군요.”

유령과도 같은 미소가 번져가며, 세베루스는 해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대로 그를 지나쳤다.

“잘 가라, 포터,”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세베루스가 말했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 우리들이 대화를 나눌 일은 없겠지.”

모퉁이를 돌기 전, 마법의 약 교수는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 마지막으로 고했다.

“네 아버지가, 바로 그 괴롭히던 쪽이었다,” 세베루스가 말했다, “그리고 네 어머니가 그의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오늘 이 날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는 떠났다.

몸을 돌린 해리는 창가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떨리는 두 손이 창틀을 거머쥐었다.

너와 상대방 둘다 화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고 확신한 뒤, 네 그 같잖은 지혜를 베풀도록. 좋아.

해리는 저 멀리 펼쳐진 먹구름과 느긋하게 내리는 보슬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문은 동쪽 운동장만을 비추었고, 현재 시각은 오후였으니, 설령 해가 구름을 뚫고 보인다고 하더라도 해리로써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손의 떨림은 멈추었지만, 해리의 가슴은 마치 밧줄로 꽁꽁 묶은 것처럼 먹먹하기만 했다.

괴롭히던 자가 아버지.

가벼운 여자가 어머니.

훗날 철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맥고나걸 교수님 같은 선인이 그 둘을 끔찍하게 아끼는 듯 했으니, 그녀에게 그 둘은 그저 숭고한 희생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곧 청소년으로 거듭날, 그리고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이 될지 한창 궁금해하고 있을 열한 살짜리 아이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찌 이리 끔찍할 수가.

어찌 이리 비통할 수가.

어째서 내 인생은 이 모양 이 꼴일까.

유전적인 친부모님이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쩌면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애처롭게 땅바닥에 엎어져 오열해야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레사스 레스트랭에게 가서 푸념이라도 해볼까.

해리는 디멘터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차가운 냉기와 어둠, 그리고 공포가 둘러싸고, 행복한 기억들을 흡수해 끔찍한 악몽들을 수면 위로 강제 부상시키는 혐오스러운 생명체.

그는 레사스의 마음과 공감해, 그 어느 누구도 탈옥한 적이 없는 아즈카반에, 부모님이 수감되어있다는 현실을 상상해보았다.

레사스는 매일, 공포와 냉기, 그리고 어둠에 사로잡힌채, 끔찍한 악몽의 기억들만을 1초에 몇 번씩이고 되뇌이고 또 되뇌이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절망할것이다.

아주 잠깐 동안 해리는 그의 엄마와 아빠가 아즈카반에 수감되어 행복한 기억들, 그리고 그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디멘터들에게 빼앗기는 광경을 상상했다. 단숨에 그 흉물스러운 상상이 깨지며, 그의 뇌는 그런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사고를 절단했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흉악한 범죄자라고 해도, 정녕 그것이 올바른 조치일까?

아니, 책 속의 위대한 현자가 말했다, 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다른 방도가 없다면, 외도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들의 감옥만큼 마법사들의 사법제도가 완벽하지 ─ 어쩐지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도, 불가능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않은 이상, 아즈카반 어딘가에 한 명, 아니면 한 명 이상의 선량한 시민이 불행하게 수감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목이 타오르고, 눈동자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해리는 아즈카반의 죄수들을 모조리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켜, 운석을 소환해 그 소름끼치는 인외마경을 먼지더미로 날려버리고만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기에.

그 순간 해리는, 퀴렐 교수가 은하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혼잣말과도 같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간혹, 이 오류로 가득찬 세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증오스럽게만 느껴질 때 나는 혹 저 미지의 세계 어딘가에, 원래 내가 존재했어야 할 장소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허나 과연 그 장소가 어떠할지 나로써는 짐작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조차 없다면 어떻게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을지. 하지만 그래도 이 세계는 너무나도, 지극히도 광대하기에, 어디에선가 존재할 수도 있다. 허나 별들은 하나같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멀지. 설령 방향과 길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 도착하려면 영겁의 세월이 ​걸​릴​거​다​…​그​럴​때​마​다​ 나는 만약 내가 아주 기나긴 시간동안 잠이 든다면, 과연 무슨 꿈을 꿀지 가끔씩 생각하고는 한단다.

지금, 이 오류로 가득찬 세계는 이상할정도로 증오스러웠다.

해리는 퀴렐 교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구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였을 수도 있고, 인공지능의 컴퓨터 언어였을 수도, 아니면 해리의 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복잡한 다중의미적 언어였을 수도 있다. 

허나 이것만은 확실히 알아들었다.

아즈카반 같은 지옥을 고향 행성에 남겨두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다만 남아서 항전할 뿐이다.

27화, 공감 完

잡종이라는 욕을 하고, 후회하며 용서를 구한 세베루스 스네이프.

용서를 구하는 그를 매몰차게 거절하며, 끝끝내 그를 용서하지 못한 릴리 포터.

범죄자들은 아즈카반에서 고통받아도 싸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고 한들 아즈카반은 인간의 도리를 넘었다.

해리 포터 팬덤에서도 제임스나 많이 까이고 스네이프가 간혹 까이지만, 정작 릴리는 거의 까이지를 않더군요. 어릴 때 읽을 때는 몰랐지만, 커서 생각해보니 분명 스네이프의 잘못도 있었지만, 릴리 에반스도 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물론 릴리가 스네이프를 용서하기 힘들었던 이유들도 분명히 있었고, 스네이프가 해리에게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런 추측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역시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그것도 '친구'는 분명 용서해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즈카반에 투옥된 죄수들을 과연 한 인격체로 구분해야 하는가. 이건 정의의 대립이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분명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일수도 있죠. 인륜을 거스른 자들이지만 과연 인간 이하로 치부해 디멘터들에게 고통을 받아도 되는지도 의문이고. 이건 여러모로 민감한 부분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분명 장르는 코믹물인데 나름 진지. 걱정마세요. 곧 본래의 분위기를 회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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