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유키는 얼이 나간 채로 겨우겨우 그 말만을 꺼냈다.
지금 유키가 서 있는 건 오늘부터 다니게 된 학교의 앞. 고등학생으로 진학해서 희망으로 흘러넘치는 학창생활을 앞두고 몸을 떨고 있는……상황일 리는 없다.
왜냐면.
“――우후후, 평안하세요.”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언니! 안녕하세요!”
눈에 들어오는 건 젊은 여자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 귀에 들어오는 건 발랄한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
애젊은 아가씨들이 다니는 배움터, 그곳은 ‘릴리안 여학원’.
“우예된겨…….”
유키는 무의식중에 짝퉁 사투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지금 자신의 입장을 믿을 수 없었다.
유키가 몸에 두르고 있는 건 녹색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검은 옷감으로 만든 세일러복. 검은 라인이 하나 들어간 아이보리색 세일러복 옷깃은 그대로 엮여서 타이가 된다.
그렇다. 유키가 지금 있는 곳은 ‘릴리안 여학원.’
“유키 쨩, 기운 내. 파이팅이야.”
옆에서 눈부신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유키를 격려해준다 해서 뭐가 바뀔 리도 없다.
얼이 나간 유키는 손을 붙잡혀 신발장까지 이끌린다. 휘청휘청 불안한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지금은 자신을 꾹 붙잡아준 부드러운 손이 정말로 따뜻하고 든든했다.
뭐 이리도 기구한 인생인지. 이런 일이 정말로 있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유키는 지금 현실로서 ‘릴리안 여학원’에 있다는 거다.
“하아…….”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고, 이런 꼴이 된 과정을 떠올려 본다.
그래, 터무니없는 일상이 시작된 날을――.
즐겁기는 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도 들었던 고등학교 3년간이 끝났다.
학생회장으로서 애쓰며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고교생활 중에 뭔가 부족했던 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을 멈출 수 없다.
“여어, 유키치. 둘 다 결국 여친도 못 만든 채로 졸업이네.”
뒤에서 코바야시가 말을 걸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윽……그건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앞으로 푹 쳐졌다.
아니,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은 들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거다.
남학교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다곤 해도, 릴리안 여학원과 교류가 있는데다가 유키는 학생회 멤버였기에 릴리안에 자주 발걸음도 옮겼고, 축제 때에 서로를 돕거나 하는 과정에서 릴리안 안에서 지명도도 나름 생겼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연애쪽에는 옛날부터 적극적이지 않았으니까, 학생회 일로 바쁘다는 식의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그런 기회에서 눈을 돌려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거구나.”
“그렇게 낙심하지 마. 그런 건 대학 때 부터잖아?”
“그럴 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선 새로운 만남도 생기겠지. 동아리나 세미나, 미팅 같은 것도 열릴 거고, 고교때보다 화려한 행사도 이래저래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교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고등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달콤새콤한 연애도 있었던 건 아닐지. 거기에 덧붙이자면, 릴리안 여학원의 굉장히 레벨 높은 여자애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고교시절이기에 가능했던게 아니었을까.
대학교에 들어가면 다들 뿔뿔히 흩어져 버린다. 릴리안 여대와도 연결은 있겠지만, 학생회 같은 연결은 없고.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아까운 짓을 한 기분이 들어.”
“그래도 뭐, 진심으로 노력했다고 해서 릴리안의 여자애들이랑 사귈 수 있었다곤 할 수 없으니까.”
그쯤은 알고 있지만, 애초에 움직이질 않으면 가능성은 제로인 거다. 나는 가능성을 스스로 없앴던 거다.
“마음 풀어. 후회한 채로 졸업하는 건 재미 없잖아?”
“뭐어……그렇지.”
딱히 후회 하고 있달 정도는 아니지만, 미련이 있달지, 좀 더 어찌 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는 건 틀림 없다.
“자, 뒷풀이에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어.”
“아, 아아.”
대답을 하고 앞을 바라보자, 아리스나 타카다가 평소랑 다름없는 모습으로 우리들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가볍게 손을 들곤 코바야시와 나란히 걷는다.
뒤를 돌아보자 3년간 배우고, 놀고, 갖가지 경험을 해 온 학교 건물이 내려다보였다. 드물게도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 마음 속으로 감사와 작별의 말을 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돌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래, 앞으로는 새로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거니까.
코바야시와 일단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이 뒤로 다시 한 번 반 애들이랑 모여서 사은회를 하기로 되어 있는 거다.
졸업, 그리고 대학과 새로운 생활에 약간 가슴이 뛰는 걸 느끼다 주의력이 흩어졌던 걸지도 모른다.
“――――위험해!”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에?”
질주하는 거대 트럭이 눈에 들어왔고, 그걸 볼 수 있었던 건 한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격렬한 충격과 함께 몸이 튕겨져 오른다.
아, 위험해, 죽을지도 모르겠어.
어째선지 침착하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라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설마 졸업 당일에 교통사고로 죽는다니, 농담도 못 된다.
아버지, 어머니, 유미, 미안.
먼저 가는 불효를 용서해 주세요――
거기서 유키의 의식은 끊겼다.
☆
눈이 뜨였다.
“…………에?!”
힘차게 몸을 일으킨다.
주위를 둘어보고, 자신의 몸을 보고, 만져 본다.
“살아 있어……꿈……?”
그럴 리가 없다. 그게 꿈이었다면 지나칠 정도로 리얼하다. 혹시나 그 뒤에 병원에 실려가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이어, 그 뒤에 한참 의식 불명 상태로 잠들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지금 있는 곳은 분명히 자기 방의 자기 침대였다.
“…………에취!!”
몸이 덜덜 떨린다.
춥다.
봄이 되었을텐데, 한겨울로 돌아가 버린 듯한 추위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바로 침대 안으로 들어간 뒤 놀란다. 아무리 봐도 겨울용 이불이었으니까. 이건 역시, 부상 탓에 계속 잠들어 있다가 병원에서 실려나와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계절이 바뀌어 버린 것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혼란스런 상태로, 일단 이불 속에서 따끈함을 즐기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까지 멍하니 자고 있을 거니, 후딱 일어나!”
“흐갹?!”
급작스레 이불을 빼앗겼나 했더니, 난폭하게 어깨를 잡곤 침대에서 끌려나왔다. 깨우는 방법이 지나치게 난폭해서 불만을 내뱉으려 눈을 떠 봤더니.
“………….”
눈에 들어 온 건.
“오, 일어났니? 정말, 오늘쯤은 혼자서 일어나야지.”
모르는 여성이었다.
아마 20대 전반이나 중반 정도려나.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메이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눈둘곳이 없게 만드는 부분은.
“……파스텔 핑크.”
“아아?”
위에서 박력있는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여성.
“뭐가 파스텔 핑…….”
낯빛이 붉게 물들어 간다.
“――――으! 이게, 뭘 훔쳐보고 있는 거야!!”
“으악――――――?!!!”
여자가 유키를 밟기 시작해, 유키는 절규했다.
“너, 너말야, 슬슬 그런 건 그만둬. 안 그러면 아무리 나같이 온후한 사람이라도 화난다고?”
메이드는 숨을 하아하아 헐떡이며 유키의 고간을 신발로 짓밟았다. 고통으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옆에서 보면 그런 플레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거나 떠올린다.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시끄러운데. 일어났니, 유키?”
거기서, 새로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어째선지 들은 적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런, 아가씨가 왔어! 젠장, 네가 꾸물거리고 있으니까!”
불합리한 불만을 토하면서 메이드는 서둘러 유키를 침대 위에 일으켜, 이불을 하반신 위에 덮곤 흐트러진 유키의 파자마를 척척 고친다.
그리곤 자기 자신의 복장이 흐트러졌는지도 체크한 뒤, 분위기를 급변시킨다.
“유키, 일어났니?”
“안녕하세요, 아가씨. 유키 님은 지금 막 기침하신 참입니다.”
모습을 보인 건 등 뒤까지 흘러내려오는 칠흑빛 머리칼이 아름다운,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미소녀.
“사……사치코, 씨?”
틀림 없이 오가사와라 사치코였다.
사치코는 유키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머, 아직 잠에서 덜 깼니? 후후, 평소처럼 ‘사치코 언니’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내 사랑스런 유키.”
“――――에?!”
침대까지 걸어온 사치코는 봄의 햇살 같은 따스한 미소를 띠며 유키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긴장하고 있니? 괜찮아, 너라면, 평소처럼 힘을 내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유키 님은 제게 맡겨 주세요, 아가씨.”
“그렇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다곤 해도, 빨리 준비를 마치는 편이 좋겠어. 잘 부탁해, 앙리.”
“예.”
어깨를 아름답게 굽히며 깊히 머리를 숙여 방을 나가는 사치코를 배웅하는, 앙리라고 불린 메이드. 유키는 의미도 모른 채로 사치코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윽고, 사치코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어이, 임마. 내 팬티 본 거, 어떻게 할 건데……으, 젠장, 시간이 없어. 돌아오면 진짜 쳐 죽일테니까!”
“에, 아, 잠깐, 뭐가.”
앙리는 더러운 말을 잔뜩 내뱉으면서 유키의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곤 억지로 파자마를 벗겼다.
“꺄악?! 벼, 변태냐!”
“누가 변태야! 됐으니까 얌전히 있어!”
여자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유키의 몸에서 자유를 빼앗아, 억지로 몸단장을 시켜간다.
“아야야야야야!! 아파, 잠깐, 뭐 하는”
“입 쳐닫아!”
“아니아니아니, 이건 이상하잖아, 그, 아파―――?!”
“날뛰지 마!”
이렇게 우당탕거리며 격렬한 과정을 거쳐, 이윽고 지쳐서 저항하는 것도 괴로워진 유키는 앙리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30분쯤 뒤에 간신히 해방되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고 저떻게고, 여전히 완벽하잖아, 난. 감사하라고.”
짝짝 손뼉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엷은 가슴을 펴는 앙리.
그리고 유키는 방에 있었던 큰 전신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고 말을 잃었다.
하얀 브라우스에 빨간 리본, 짙은 녹색 재킷에 같은 색을 바탕으로 한 체크무늬 치마. 어깨에 걸리는 조금 긴 머리카락은 소탈해 보여도 사실은 섬세하게 세트되어 있고, 앞머리에는 머리핀으로 액센트를 더한 상태.
여장이다.
아니, 오히려 여자애라는 쪽에 가깝나.
어째서냐면, 코르셋으로 몸을 가늘게 꽉 조인데다가 브래지어로 가슴을 만들고, 고간에는 특수한 컵 같은 걸 덮은 뒤 여성용 팬티를 입고 있다. 완전히 여자로밖에 안 보이는 꼴이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야, 이거?!”
“글쎄, 후딱 가자고. 오늘은 릴리안 입학 시험날이니까.”
“하아?!”
반론할 틈도 없이 방에서 쫓겨나, 호화스런 식당에서 사치코나 사치코의 어머니인 사야코와 식사를 하고, 사치코에게 배웅받아 현관까지 나가서 보니, 틀림 없이 오가사와라 집안의 저택이었다.
“――여어, 시험은 어땠어?”
마중와준 앙리에게 방까지 안내받은 뒤, 다시금 앙리 쪽으로 몸을 돌린다.
“대강대강.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대체 몇년 며칠이야?! 애초에 난 어째서 사치코 씨의 집에서 이런 꼴을. 누나는”
“너, 멍청이가!”
앙리가 당황하며 입을 막았다.
“큰 소리로 ‘누나’니 뭐니 하지 마. 아가씨는 너를 ‘여자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에? 뭐, 뭐야 그거. 무슨 소리야? 저기, 왜 내가 여자애로서 사치코 씨의”
“이제와서 뭔 소릴 하는 거야. 너도 납득한 일이잖아?”
“저기, 부탁해. 제발 제가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됐는지 가르쳐 주지 않으실래요? 뭐랄까, 기억이…….”
“응~~? 아직도 기억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 건가. 이미 1년이나 지났는데…….”
앙리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가르쳐 주었다.
약 1년 전에 있었던 일. 사치코가 탄 오가사와라 집안의 송영차가 차도로 휘청휘청 걸어나온 유키를 쳐 버려서, 사치코가 바로 오가사와라 집안에서 고용하고 있는 의사들에게로 유키를 보내 치료를 시켰다. 다행히 유키의 부상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사고의 후유증으로 유키는 기억을 잃었다.
자신의 이름이나 일반 상식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그 이상에 대해선 거의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거기서 사치코는 오가사와라 집안의 힘을 써서 유키에 대해 조사해 보았지만, 신기하게도 정보를 전혀 찾지 못했다.
집으로 보내주려 해도 가족의 정보도 없어, 사치코는 곤란 끝에 결심을 굳혔다. 부상을 입히고 기억을 잃게 한 건 자신의 책임. 이렇게 된 이상 유키는 오가사와라 집안에서 책임을 지고 맡아 키우겠다고.
그렇게 되어 오가사와라 집안은 유키를 사치코의 ‘여동생’으로서 맞이하게 되었다.
“…………저기, 어째서 ‘여동생’인 건가요?”
“네가 차에 치였을 때 유니섹스한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길고 얼굴도 여자같아서. 거기다가 아가씨는 남성 혐오증이니까, 그렇게 믿어 버렸어.”
“그런. 그 정도는 얼마든지 뒤집을 기회가 있었던 게 아닌가요?”
“다들 아가씨를 제일 우선시하고, 여동생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으니까. 모두 너를 여자인 걸로 하기로 했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아가씨가 같이 목욕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고생했다고. 오가사와라 집안의 기술력을 집결해서, 특수한 바디 슈트로 여성으로 보이게 하느라.”
“무, 무슨 터무니 없는…….”
“어쨌든지, 그렇게 됐으니 너는 여기선 ‘여자’고, 아가씨의 ‘여동생’이야. 그걸 절대로 잊지 말라고?”
앙리가 으름장을 놓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심하다고 하지 마. 앙리가 내뿜는 오라는 어마어마한 전장을 빠져나온 진짜 아수라나 내뿜을 만한 거여서, 까고 말해서 무서웠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째서 릴리안에 수험을?”
“그거야, 아가씨가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해서 그런 게 당연하잖아. 덧붙여서, 아무리 오가사와라가 갑부라곤 해도 부정입학 알선은 안 한다고? 그런 건 아가씨가 정말 싫어하시니까. 실력으로 안 붙으면 의미가 없어.”
“아니, 그게…….”
애초에 릴리안 여학원의 ‘고등부’ 입학시험이라는 시점에서 이상한 거다. 유키는 대학 수험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참인데. 왜 또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하지만, 달력을 봐도 신문을 봐도 TV를 봐도 ‘지금’이 유키가 인식하고 있는 것 보다 3년 이른 시점이라는 사실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신문이나 뉴스의 내용도 예전에 본 적 있었던 것 같은 것들도 잔뜩 있어, 다같이 유키를 속이려 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일이 아닌 한 틀림 없어 보였다.
즉, 3년 전으로 돌아와 버린 거다.
계기는 틀림 없이 그 사고겠지. 거기서 3년 전에 갑자기 타임 슬립하곤, 오가사와라 집안에 들어가 버린다고 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거다.
애초에, 가족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건 무슨 소릴까. 유미나 부모님은 어디에 가 버린 건가. 친구들은 어떻게 된 건가. 신경 쓰이는 것들은 잔뜩 있지만, 지금의 유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어쨌든, 혹시나 남자라는 게 들통나면 아가씨한테 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주의하라고.”
앙리의 충고를 듣곤 소름이 올랐다. 오늘 사치코랑 만난 시간은 정말로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치코가 ‘여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게 사실은 여자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간담이 다 서늘하다.
“뭐, 그 부분은 앞으로 두 달 동안 내가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안심해.”
“하아……두 달이라뇨?”
“그도 그럴게, 릴리안에 합격하면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 거잖아? 그렇게 되면 옷을 입는 거나 메이크 같은 건 스스로 못 하면 곤란하고.”
“과연……아니, 왠 기숙사?! 에, 릴리안에 기숙사?!”
처음 듣는 소리였다.
“네가 떼쓴거잖아. 너무 응석을 받아 주면 자립심이 안 생긴다고 하면서. 내 입장에선 터무니없이 무모한 짓이란 느낌이었지만, 사용인 신분으로 아가씨들 앞에서 멋대로 의견을 말할 수도 없고. 결국 유키의 설득에 아가씨가 꺾여서 네 기숙사 생활이 정해진 거야.”
“기숙사라니, 서, 설마, 여자 기숙사?!”
“당연하잖아, 릴리안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겠단 거야. 남자라는 게 들키거나 했다간, 창피를 당하는 건 아가씨니까.”
팔짱을 끼고 버텨서선 유키를 내려다보는 앙리에게, 유키는 전율을 느꼈다.
그로부터 2달 뒤, 예고한 대로 앙리의 사정없는 특훈이 주어졌다. 자력으로 여자용 속옷부터 시작해 온갖 옷들을 입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헤어 메이크를 할 수 있도록, 간단한 화장을 할 수 있도록. 앙리는 유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말투도 태도도 불량배같은 여자였지만, 실력은 확실했다.
뜻밖에도 ‘여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두 달 동안, 그래도 앙리나 사치코의 부모님들은 유키가 원래는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고, 오가사와라 집안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으니 들킬 걱정 따윈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시간은 흘러 가는 법이라, 4월이 되어 드디어 릴리안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짐은 업자에게 맡겨, 이 뒤에는 간단한 수화물을 들고 유키 자신이 들어가기만 하면 끝.
“유키, 조심해? 물은 끓여서 마시도록.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도록. 남자에겐 다가가지 않도록.”
“사, 사치코 언니. 릴리안 기숙사에 가는 거니까, 괜찮다니까요.”
사치코의 걱정도 너무 지나쳐, 유키 쪽이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두 달 동안 딱히 갈 곳도 없는 유키는 오가사와라 저택에 머무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사치코의 ‘여동생’으로서의 입장에도 익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사치코 언니’라는 호칭에는 익숙해졌다고 해도 여자 차림을 하는 거나 메이크, 말이나 행동까지 익숙해 진 건 아니라, 온갖 고생을 해가며 앙리에게 혼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도 어제로 끝나 오늘부터는 기숙사 생활이 된다. 불안도 있지만 오가사와라 저택에 계속 신세지는 것도 진정이 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었다. 기숙사생들과 잘 사귀어 가기만 하면, 자신만의 시간도 보낼 수 있을 거다. 학교가 여고라는 건 지금은 머릿속에서 지워두기로 한 상태다.
“그럼 사치코 언니, 저는 이제 출발하겠어요.”
꾸벅 고개를 숙인다.
어떤 경위가 있었다곤 해도 사고를 맞아 기억을 잃은(모양인) 유키를 돌봐줬던 건 틀림 없으니, 아무리 감사를 해도 부족하겠지.
“……역시, 지금부턴 나도 기숙사에 들어갈까.”
“그만둬 주세요, 아가씨.”
관록 있는 메이드 장이 나무란다. 사치코는 유감스런 표정을 짓긴 했지만 단념했는지 한숨을 한 번 내쉬곤 유키 앞까지 걸어와서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
친애의 증표겠지만 아무리 되풀이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언제나 얼굴이 새빨개져 버린다. 그리고 그런 유키를 보고 사치코는 미소짓는 거다.
“귀여운 유키, 너는 어디에 가도 내 사랑스런 여동생이라는 건 변함 없어. 그걸 잊지 말렴.”
“예, 감사해요.”
“걱정이겠지만……괜찮아, 안심하렴. 제대로, 앙리도 함께 보낼 테니까.”
“…………예?”
사치코의 말에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이름이 나온 메이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앙리도 유키랑 마찬가지로 얼이 나가 있었다.
“저어, 아가씨. 지금 말씀은 어떤 의미신지요? 저, 저도 함께라는 건.”
조심조심 앙리가 물어보자.
“말 그대로의 의미야. 앙리도 유키랑 같이 릴리안에 가서, 유키의 신변을 돌봐주도록 하렴. 이러면 유키도 안심이잖아? 앙리하고는 정말로 사이가 좋았으니까.”
한 점 흐린데 없는 미소를 짓는 사치코. 그 미소에는 여동생을 신경 쓰는 상냥한 언니로서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아가씨,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만?!”
“그게, 앙리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전에 말했다간 거절했을 거잖아?”
“그……그건, 저기.”
“괜찮아, 절차는 이쪽에서 전부 마쳐 뒀으니까, 앙리도 4월부터는 릴리안 여학원의 학생이야. 그리고 앙리는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말했었잖아?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그――아, 아가씨, 저, 저는 이미 24세입니다만?! 그, 그런 상태서 고등학생이라니 너무 무리스럽고, 애초에 그런 부정은 아가씨가 정말로 싫어하시는 일이신 게”
“어머, 부정은 아니야. 제대로 시험을 받았잖니?”
“에……그,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셨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유키가 모르는 곳에서 뭔지 모를 일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덜컥 고개를 숙이는 앙리.
그래도, 앙리에게는 면목없지만 조금 안심한 건 사실이다. 유키가 남자인 걸 알고 있는 아군이 있다는 건 여차했을 때 굉장히 든든하고, 옷매무새나 메이크 같은 것도 잘 봐줄 게 틀림 없다. 그 외에는 말과 행동이 착실해지고 금방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 없어지면 좋겠는데.
“그럼 유키, 학교에서 다시 보자.”
사치코의 그 말과 함께.
유키와 앙리는 오가사와라 저택 밖으로 나가게 된 거다.
유키는 얼이 나간 채로 겨우겨우 그 말만을 꺼냈다.
지금 유키가 서 있는 건 오늘부터 다니게 된 학교의 앞. 고등학생으로 진학해서 희망으로 흘러넘치는 학창생활을 앞두고 몸을 떨고 있는……상황일 리는 없다.
왜냐면.
“――우후후, 평안하세요.”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언니! 안녕하세요!”
눈에 들어오는 건 젊은 여자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 귀에 들어오는 건 발랄한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
애젊은 아가씨들이 다니는 배움터, 그곳은 ‘릴리안 여학원’.
“우예된겨…….”
유키는 무의식중에 짝퉁 사투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지금 자신의 입장을 믿을 수 없었다.
유키가 몸에 두르고 있는 건 녹색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검은 옷감으로 만든 세일러복. 검은 라인이 하나 들어간 아이보리색 세일러복 옷깃은 그대로 엮여서 타이가 된다.
그렇다. 유키가 지금 있는 곳은 ‘릴리안 여학원.’
“유키 쨩, 기운 내. 파이팅이야.”
옆에서 눈부신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유키를 격려해준다 해서 뭐가 바뀔 리도 없다.
얼이 나간 유키는 손을 붙잡혀 신발장까지 이끌린다. 휘청휘청 불안한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지금은 자신을 꾹 붙잡아준 부드러운 손이 정말로 따뜻하고 든든했다.
뭐 이리도 기구한 인생인지. 이런 일이 정말로 있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유키는 지금 현실로서 ‘릴리안 여학원’에 있다는 거다.
“하아…….”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고, 이런 꼴이 된 과정을 떠올려 본다.
그래, 터무니없는 일상이 시작된 날을――.
프롤로그 ①
즐겁기는 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도 들었던 고등학교 3년간이 끝났다.
학생회장으로서 애쓰며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고교생활 중에 뭔가 부족했던 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을 멈출 수 없다.
“여어, 유키치. 둘 다 결국 여친도 못 만든 채로 졸업이네.”
뒤에서 코바야시가 말을 걸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윽……그건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앞으로 푹 쳐졌다.
아니,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은 들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거다.
남학교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다곤 해도, 릴리안 여학원과 교류가 있는데다가 유키는 학생회 멤버였기에 릴리안에 자주 발걸음도 옮겼고, 축제 때에 서로를 돕거나 하는 과정에서 릴리안 안에서 지명도도 나름 생겼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연애쪽에는 옛날부터 적극적이지 않았으니까, 학생회 일로 바쁘다는 식의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그런 기회에서 눈을 돌려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거구나.”
“그렇게 낙심하지 마. 그런 건 대학 때 부터잖아?”
“그럴 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선 새로운 만남도 생기겠지. 동아리나 세미나, 미팅 같은 것도 열릴 거고, 고교때보다 화려한 행사도 이래저래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교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고등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달콤새콤한 연애도 있었던 건 아닐지. 거기에 덧붙이자면, 릴리안 여학원의 굉장히 레벨 높은 여자애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고교시절이기에 가능했던게 아니었을까.
대학교에 들어가면 다들 뿔뿔히 흩어져 버린다. 릴리안 여대와도 연결은 있겠지만, 학생회 같은 연결은 없고.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아까운 짓을 한 기분이 들어.”
“그래도 뭐, 진심으로 노력했다고 해서 릴리안의 여자애들이랑 사귈 수 있었다곤 할 수 없으니까.”
그쯤은 알고 있지만, 애초에 움직이질 않으면 가능성은 제로인 거다. 나는 가능성을 스스로 없앴던 거다.
“마음 풀어. 후회한 채로 졸업하는 건 재미 없잖아?”
“뭐어……그렇지.”
딱히 후회 하고 있달 정도는 아니지만, 미련이 있달지, 좀 더 어찌 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는 건 틀림 없다.
“자, 뒷풀이에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어.”
“아, 아아.”
대답을 하고 앞을 바라보자, 아리스나 타카다가 평소랑 다름없는 모습으로 우리들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가볍게 손을 들곤 코바야시와 나란히 걷는다.
뒤를 돌아보자 3년간 배우고, 놀고, 갖가지 경험을 해 온 학교 건물이 내려다보였다. 드물게도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 마음 속으로 감사와 작별의 말을 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뒤돌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래, 앞으로는 새로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거니까.
코바야시와 일단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이 뒤로 다시 한 번 반 애들이랑 모여서 사은회를 하기로 되어 있는 거다.
졸업, 그리고 대학과 새로운 생활에 약간 가슴이 뛰는 걸 느끼다 주의력이 흩어졌던 걸지도 모른다.
“――――위험해!”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에?”
질주하는 거대 트럭이 눈에 들어왔고, 그걸 볼 수 있었던 건 한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격렬한 충격과 함께 몸이 튕겨져 오른다.
아, 위험해, 죽을지도 모르겠어.
어째선지 침착하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라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설마 졸업 당일에 교통사고로 죽는다니, 농담도 못 된다.
아버지, 어머니, 유미, 미안.
먼저 가는 불효를 용서해 주세요――
거기서 유키의 의식은 끊겼다.
☆
눈이 뜨였다.
“…………에?!”
힘차게 몸을 일으킨다.
주위를 둘어보고, 자신의 몸을 보고, 만져 본다.
“살아 있어……꿈……?”
그럴 리가 없다. 그게 꿈이었다면 지나칠 정도로 리얼하다. 혹시나 그 뒤에 병원에 실려가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이어, 그 뒤에 한참 의식 불명 상태로 잠들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지금 있는 곳은 분명히 자기 방의 자기 침대였다.
“…………에취!!”
몸이 덜덜 떨린다.
춥다.
봄이 되었을텐데, 한겨울로 돌아가 버린 듯한 추위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바로 침대 안으로 들어간 뒤 놀란다. 아무리 봐도 겨울용 이불이었으니까. 이건 역시, 부상 탓에 계속 잠들어 있다가 병원에서 실려나와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계절이 바뀌어 버린 것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혼란스런 상태로, 일단 이불 속에서 따끈함을 즐기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까지 멍하니 자고 있을 거니, 후딱 일어나!”
“흐갹?!”
급작스레 이불을 빼앗겼나 했더니, 난폭하게 어깨를 잡곤 침대에서 끌려나왔다. 깨우는 방법이 지나치게 난폭해서 불만을 내뱉으려 눈을 떠 봤더니.
“………….”
눈에 들어 온 건.
“오, 일어났니? 정말, 오늘쯤은 혼자서 일어나야지.”
모르는 여성이었다.
아마 20대 전반이나 중반 정도려나.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메이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눈둘곳이 없게 만드는 부분은.
“……파스텔 핑크.”
“아아?”
위에서 박력있는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여성.
“뭐가 파스텔 핑…….”
낯빛이 붉게 물들어 간다.
“――――으! 이게, 뭘 훔쳐보고 있는 거야!!”
“으악――――――?!!!”
여자가 유키를 밟기 시작해, 유키는 절규했다.
“너, 너말야, 슬슬 그런 건 그만둬. 안 그러면 아무리 나같이 온후한 사람이라도 화난다고?”
메이드는 숨을 하아하아 헐떡이며 유키의 고간을 신발로 짓밟았다. 고통으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옆에서 보면 그런 플레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거나 떠올린다.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시끄러운데. 일어났니, 유키?”
거기서, 새로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어째선지 들은 적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런, 아가씨가 왔어! 젠장, 네가 꾸물거리고 있으니까!”
불합리한 불만을 토하면서 메이드는 서둘러 유키를 침대 위에 일으켜, 이불을 하반신 위에 덮곤 흐트러진 유키의 파자마를 척척 고친다.
그리곤 자기 자신의 복장이 흐트러졌는지도 체크한 뒤, 분위기를 급변시킨다.
“유키, 일어났니?”
“안녕하세요, 아가씨. 유키 님은 지금 막 기침하신 참입니다.”
모습을 보인 건 등 뒤까지 흘러내려오는 칠흑빛 머리칼이 아름다운,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미소녀.
“사……사치코, 씨?”
틀림 없이 오가사와라 사치코였다.
사치코는 유키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머, 아직 잠에서 덜 깼니? 후후, 평소처럼 ‘사치코 언니’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내 사랑스런 유키.”
“――――에?!”
침대까지 걸어온 사치코는 봄의 햇살 같은 따스한 미소를 띠며 유키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긴장하고 있니? 괜찮아, 너라면, 평소처럼 힘을 내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유키 님은 제게 맡겨 주세요, 아가씨.”
“그렇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다곤 해도, 빨리 준비를 마치는 편이 좋겠어. 잘 부탁해, 앙리.”
“예.”
어깨를 아름답게 굽히며 깊히 머리를 숙여 방을 나가는 사치코를 배웅하는, 앙리라고 불린 메이드. 유키는 의미도 모른 채로 사치코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윽고, 사치코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어이, 임마. 내 팬티 본 거, 어떻게 할 건데……으, 젠장, 시간이 없어. 돌아오면 진짜 쳐 죽일테니까!”
“에, 아, 잠깐, 뭐가.”
앙리는 더러운 말을 잔뜩 내뱉으면서 유키의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곤 억지로 파자마를 벗겼다.
“꺄악?! 벼, 변태냐!”
“누가 변태야! 됐으니까 얌전히 있어!”
여자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유키의 몸에서 자유를 빼앗아, 억지로 몸단장을 시켜간다.
“아야야야야야!! 아파, 잠깐, 뭐 하는”
“입 쳐닫아!”
“아니아니아니, 이건 이상하잖아, 그, 아파―――?!”
“날뛰지 마!”
이렇게 우당탕거리며 격렬한 과정을 거쳐, 이윽고 지쳐서 저항하는 것도 괴로워진 유키는 앙리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30분쯤 뒤에 간신히 해방되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고 저떻게고, 여전히 완벽하잖아, 난. 감사하라고.”
짝짝 손뼉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엷은 가슴을 펴는 앙리.
그리고 유키는 방에 있었던 큰 전신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고 말을 잃었다.
하얀 브라우스에 빨간 리본, 짙은 녹색 재킷에 같은 색을 바탕으로 한 체크무늬 치마. 어깨에 걸리는 조금 긴 머리카락은 소탈해 보여도 사실은 섬세하게 세트되어 있고, 앞머리에는 머리핀으로 액센트를 더한 상태.
여장이다.
아니, 오히려 여자애라는 쪽에 가깝나.
어째서냐면, 코르셋으로 몸을 가늘게 꽉 조인데다가 브래지어로 가슴을 만들고, 고간에는 특수한 컵 같은 걸 덮은 뒤 여성용 팬티를 입고 있다. 완전히 여자로밖에 안 보이는 꼴이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야, 이거?!”
“글쎄, 후딱 가자고. 오늘은 릴리안 입학 시험날이니까.”
“하아?!”
반론할 틈도 없이 방에서 쫓겨나, 호화스런 식당에서 사치코나 사치코의 어머니인 사야코와 식사를 하고, 사치코에게 배웅받아 현관까지 나가서 보니, 틀림 없이 오가사와라 집안의 저택이었다.
“――여어, 시험은 어땠어?”
마중와준 앙리에게 방까지 안내받은 뒤, 다시금 앙리 쪽으로 몸을 돌린다.
“대강대강.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대체 몇년 며칠이야?! 애초에 난 어째서 사치코 씨의 집에서 이런 꼴을. 누나는”
“너, 멍청이가!”
앙리가 당황하며 입을 막았다.
“큰 소리로 ‘누나’니 뭐니 하지 마. 아가씨는 너를 ‘여자애’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에? 뭐, 뭐야 그거. 무슨 소리야? 저기, 왜 내가 여자애로서 사치코 씨의”
“이제와서 뭔 소릴 하는 거야. 너도 납득한 일이잖아?”
“저기, 부탁해. 제발 제가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됐는지 가르쳐 주지 않으실래요? 뭐랄까, 기억이…….”
“응~~? 아직도 기억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 건가. 이미 1년이나 지났는데…….”
앙리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가르쳐 주었다.
약 1년 전에 있었던 일. 사치코가 탄 오가사와라 집안의 송영차가 차도로 휘청휘청 걸어나온 유키를 쳐 버려서, 사치코가 바로 오가사와라 집안에서 고용하고 있는 의사들에게로 유키를 보내 치료를 시켰다. 다행히 유키의 부상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사고의 후유증으로 유키는 기억을 잃었다.
자신의 이름이나 일반 상식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그 이상에 대해선 거의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거기서 사치코는 오가사와라 집안의 힘을 써서 유키에 대해 조사해 보았지만, 신기하게도 정보를 전혀 찾지 못했다.
집으로 보내주려 해도 가족의 정보도 없어, 사치코는 곤란 끝에 결심을 굳혔다. 부상을 입히고 기억을 잃게 한 건 자신의 책임. 이렇게 된 이상 유키는 오가사와라 집안에서 책임을 지고 맡아 키우겠다고.
그렇게 되어 오가사와라 집안은 유키를 사치코의 ‘여동생’으로서 맞이하게 되었다.
“…………저기, 어째서 ‘여동생’인 건가요?”
“네가 차에 치였을 때 유니섹스한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길고 얼굴도 여자같아서. 거기다가 아가씨는 남성 혐오증이니까, 그렇게 믿어 버렸어.”
“그런. 그 정도는 얼마든지 뒤집을 기회가 있었던 게 아닌가요?”
“다들 아가씨를 제일 우선시하고, 여동생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으니까. 모두 너를 여자인 걸로 하기로 했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아가씨가 같이 목욕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고생했다고. 오가사와라 집안의 기술력을 집결해서, 특수한 바디 슈트로 여성으로 보이게 하느라.”
“무, 무슨 터무니 없는…….”
“어쨌든지, 그렇게 됐으니 너는 여기선 ‘여자’고, 아가씨의 ‘여동생’이야. 그걸 절대로 잊지 말라고?”
앙리가 으름장을 놓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심하다고 하지 마. 앙리가 내뿜는 오라는 어마어마한 전장을 빠져나온 진짜 아수라나 내뿜을 만한 거여서, 까고 말해서 무서웠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째서 릴리안에 수험을?”
“그거야, 아가씨가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해서 그런 게 당연하잖아. 덧붙여서, 아무리 오가사와라가 갑부라곤 해도 부정입학 알선은 안 한다고? 그런 건 아가씨가 정말 싫어하시니까. 실력으로 안 붙으면 의미가 없어.”
“아니, 그게…….”
애초에 릴리안 여학원의 ‘고등부’ 입학시험이라는 시점에서 이상한 거다. 유키는 대학 수험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참인데. 왜 또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하지만, 달력을 봐도 신문을 봐도 TV를 봐도 ‘지금’이 유키가 인식하고 있는 것 보다 3년 이른 시점이라는 사실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신문이나 뉴스의 내용도 예전에 본 적 있었던 것 같은 것들도 잔뜩 있어, 다같이 유키를 속이려 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일이 아닌 한 틀림 없어 보였다.
즉, 3년 전으로 돌아와 버린 거다.
계기는 틀림 없이 그 사고겠지. 거기서 3년 전에 갑자기 타임 슬립하곤, 오가사와라 집안에 들어가 버린다고 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거다.
애초에, 가족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건 무슨 소릴까. 유미나 부모님은 어디에 가 버린 건가. 친구들은 어떻게 된 건가. 신경 쓰이는 것들은 잔뜩 있지만, 지금의 유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어쨌든, 혹시나 남자라는 게 들통나면 아가씨한테 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주의하라고.”
앙리의 충고를 듣곤 소름이 올랐다. 오늘 사치코랑 만난 시간은 정말로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치코가 ‘여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게 사실은 여자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간담이 다 서늘하다.
“뭐, 그 부분은 앞으로 두 달 동안 내가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안심해.”
“하아……두 달이라뇨?”
“그도 그럴게, 릴리안에 합격하면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 거잖아? 그렇게 되면 옷을 입는 거나 메이크 같은 건 스스로 못 하면 곤란하고.”
“과연……아니, 왠 기숙사?! 에, 릴리안에 기숙사?!”
처음 듣는 소리였다.
“네가 떼쓴거잖아. 너무 응석을 받아 주면 자립심이 안 생긴다고 하면서. 내 입장에선 터무니없이 무모한 짓이란 느낌이었지만, 사용인 신분으로 아가씨들 앞에서 멋대로 의견을 말할 수도 없고. 결국 유키의 설득에 아가씨가 꺾여서 네 기숙사 생활이 정해진 거야.”
“기숙사라니, 서, 설마, 여자 기숙사?!”
“당연하잖아, 릴리안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겠단 거야. 남자라는 게 들키거나 했다간, 창피를 당하는 건 아가씨니까.”
팔짱을 끼고 버텨서선 유키를 내려다보는 앙리에게, 유키는 전율을 느꼈다.
그로부터 2달 뒤, 예고한 대로 앙리의 사정없는 특훈이 주어졌다. 자력으로 여자용 속옷부터 시작해 온갖 옷들을 입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헤어 메이크를 할 수 있도록, 간단한 화장을 할 수 있도록. 앙리는 유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말투도 태도도 불량배같은 여자였지만, 실력은 확실했다.
뜻밖에도 ‘여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두 달 동안, 그래도 앙리나 사치코의 부모님들은 유키가 원래는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고, 오가사와라 집안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으니 들킬 걱정 따윈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시간은 흘러 가는 법이라, 4월이 되어 드디어 릴리안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짐은 업자에게 맡겨, 이 뒤에는 간단한 수화물을 들고 유키 자신이 들어가기만 하면 끝.
“유키, 조심해? 물은 끓여서 마시도록.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도록. 남자에겐 다가가지 않도록.”
“사, 사치코 언니. 릴리안 기숙사에 가는 거니까, 괜찮다니까요.”
사치코의 걱정도 너무 지나쳐, 유키 쪽이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두 달 동안 딱히 갈 곳도 없는 유키는 오가사와라 저택에 머무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사치코의 ‘여동생’으로서의 입장에도 익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사치코 언니’라는 호칭에는 익숙해졌다고 해도 여자 차림을 하는 거나 메이크, 말이나 행동까지 익숙해 진 건 아니라, 온갖 고생을 해가며 앙리에게 혼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도 어제로 끝나 오늘부터는 기숙사 생활이 된다. 불안도 있지만 오가사와라 저택에 계속 신세지는 것도 진정이 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었다. 기숙사생들과 잘 사귀어 가기만 하면, 자신만의 시간도 보낼 수 있을 거다. 학교가 여고라는 건 지금은 머릿속에서 지워두기로 한 상태다.
“그럼 사치코 언니, 저는 이제 출발하겠어요.”
꾸벅 고개를 숙인다.
어떤 경위가 있었다곤 해도 사고를 맞아 기억을 잃은(모양인) 유키를 돌봐줬던 건 틀림 없으니, 아무리 감사를 해도 부족하겠지.
“……역시, 지금부턴 나도 기숙사에 들어갈까.”
“그만둬 주세요, 아가씨.”
관록 있는 메이드 장이 나무란다. 사치코는 유감스런 표정을 짓긴 했지만 단념했는지 한숨을 한 번 내쉬곤 유키 앞까지 걸어와서 뺨에 살짝 입맞춤했다.
친애의 증표겠지만 아무리 되풀이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언제나 얼굴이 새빨개져 버린다. 그리고 그런 유키를 보고 사치코는 미소짓는 거다.
“귀여운 유키, 너는 어디에 가도 내 사랑스런 여동생이라는 건 변함 없어. 그걸 잊지 말렴.”
“예, 감사해요.”
“걱정이겠지만……괜찮아, 안심하렴. 제대로, 앙리도 함께 보낼 테니까.”
“…………예?”
사치코의 말에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이름이 나온 메이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앙리도 유키랑 마찬가지로 얼이 나가 있었다.
“저어, 아가씨. 지금 말씀은 어떤 의미신지요? 저, 저도 함께라는 건.”
조심조심 앙리가 물어보자.
“말 그대로의 의미야. 앙리도 유키랑 같이 릴리안에 가서, 유키의 신변을 돌봐주도록 하렴. 이러면 유키도 안심이잖아? 앙리하고는 정말로 사이가 좋았으니까.”
한 점 흐린데 없는 미소를 짓는 사치코. 그 미소에는 여동생을 신경 쓰는 상냥한 언니로서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아가씨,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만?!”
“그게, 앙리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전에 말했다간 거절했을 거잖아?”
“그……그건, 저기.”
“괜찮아, 절차는 이쪽에서 전부 마쳐 뒀으니까, 앙리도 4월부터는 릴리안 여학원의 학생이야. 그리고 앙리는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말했었잖아?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그――아, 아가씨, 저, 저는 이미 24세입니다만?! 그, 그런 상태서 고등학생이라니 너무 무리스럽고, 애초에 그런 부정은 아가씨가 정말로 싫어하시는 일이신 게”
“어머, 부정은 아니야. 제대로 시험을 받았잖니?”
“에……그,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셨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유키가 모르는 곳에서 뭔지 모를 일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덜컥 고개를 숙이는 앙리.
그래도, 앙리에게는 면목없지만 조금 안심한 건 사실이다. 유키가 남자인 걸 알고 있는 아군이 있다는 건 여차했을 때 굉장히 든든하고, 옷매무새나 메이크 같은 것도 잘 봐줄 게 틀림 없다. 그 외에는 말과 행동이 착실해지고 금방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 없어지면 좋겠는데.
“그럼 유키, 학교에서 다시 보자.”
사치코의 그 말과 함께.
유키와 앙리는 오가사와라 저택 밖으로 나가게 된 거다.
프롤로그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