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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마리아 님을 사랑해

乙女はマリアさまに恋してる


원작 | ,

역자 | 淸風

프롤로그 ②


 릴리안으로 떠나게 된 그 날.
 앙리는 아직 짐 정리나 몸차림 준비 등이 덜되었기에 기숙사에는 나중에 들어가는 걸로 하고 일단 유키 혼자서 릴리안 기숙사를 향하게 되었다.
 갑자기 3년 전으로 타임 슬립을 한데다 가족은 행방불명이고 오가사와라 집안에 거둬들여져서 사치코의 ‘여동생’으로 지내다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을 릴리안의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유키는 당황했다. 이해자도 누구 하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생명이 있는 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애가 되어 여학교에 다니는데다 여자 기숙사에서 생활하라니 너무한 이야기다.
 나약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해 기숙사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자, 현관에서 여자 한 사람이 나왔다. 그 여성은 유키가 있다는 걸 깨닫곤 천천히 유키 쪽으로 다가왔다. 유키는 어떡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여성이 다가오는 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평안하세요. 혹시나 오늘 기숙사에 들어올 예정인 후쿠자와 양이니?”
“아……예, 예. 맞아요.”
 그 여성의 머리칼은 짧은 보브 컷이었고, 늠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행이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도착을 안 해서, 길을 헤메고 있나 싶었어.”
“아, 아뇨, 죄송해요.”
 당황하며 고개를 숙인다.
 늦어진 건 단순히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서, 생각을 하며 걸었던 탓이다.
“아, 그렇지. 자기 소개를 아직 안 했었구나. 저는 이 ‘가을 벚꽃 기숙사’의 기숙사장을 맡고 있는, 3학년 미즈노 요코예요. 잘 부탁해, ‘후쿠자와 유키’ 양.”
“앗……! 저, 저야 말로, 잘 부탁드려요.”
 다시금 인사를 하고, 기숙사장인 요코를 보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유키가 1학년일 때, 홍장미님이었던 요코.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지만, 학원 축제 뒤풀이 때 마주친 적이 있다. 정통파 미인이고, 유능한 반장같은 타입이고, 겉모습과 분위기를 놓고 봐도 기숙사장에 어울린다는 인상이다.
 덧붙여서 유키는 ‘후쿠자와 유키(福沢 祐麒)’에서 ‘후쿠자와 유키(福沢 祐紀)’로 개명당한 상태다.
“그럼, 모처럼 보게 됐으니 방에 가기 전에 기숙사에 대해 간단히 안내할게.”
“에, 쉬는 날에 그런 건 너무 죄송해요.”
“괜찮아,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결국은 그렇게 밀어붙인 요코에게 기숙사 안을 안내받게 되었다.
 우선은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뜰을 보여줬다. 예쁜 화단에서 튤립이 훌륭하게 피어 있다. 화단의 손질은 당번제로 한다는 모양. 그 외에 테이블과 의자 세트가 여럿 있어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밖에서 차를 마시거나 독서를 하거나 하는 기숙사생도 많다는 모양이다. 유키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가씨답다고 느껴 버린다.
 밖을 걸으며 둘러보자, 기숙사는 세 동으로 나뉘어 있어서 ‘ㄷ’자 꼴로 지어져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거기서 ‘ㄷ’자 가운데의 비어있는 부분이 안뜰인 상태.
 한바탕 둘러본 뒤 안으로 들어간다. 라운지는 넓고 밝은데다 깨끗하고, 소파나 탁자, TV나 PC, 자판기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기숙사생들의 교류장소로 쓰이고 있다.
 이어서 식당, 도서관, 목욕탕, 세탁실, 화장실, 미니 키친까지 둘러보곤, 다목적실에선 스크린을 써서 영화를 관람하거나 놓여있는 피아노를 써서 연주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 시설들은 목욕탕이나 화장실 처럼 세 동에 각각 있는 것과 도서실이나 식당 처럼 어느 한 동에밖에 없는 걸로 나뉜다는 모양. 학생의 방은 물론 각각 있는 모양이다.
 유키는 기숙사 같은 곳은 처음으로 봤지만, 생각 이상으로 호화스럽고 아름다워서 놀랐다. 학생 기숙사는 좁고 더럽고 너저분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릴리안 여학원. 학생 기숙사도 세련됐다.
“후후, 놀란 모양이네. 확실히 고등학생 기숙사 치고는 호화스럽지? 뭐, 좋은 집 아가씨들이 많고 비교적 새롭게 지어진데다가, 여러 가문의 기부나 요망사항 같은 것들도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
“하하…….”
 왠지 모르게 납득이 된다.
 확실히 요코에게 안내받는 동안에 본 학생들도 왠지 모르게 언행이 부드럽고 아가씨 오라같은 걸 내뿜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탓에 느끼는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자, 그럼 기대하던 네 방을 안내할게.”
“부, 부탁드려요.”
 그건 그렇고, 정말 보살핌 받고 있구나. 기숙사라곤 해도 꽤나 넓었고, 각 장소에서 정확히 설명도 해 줬으니, 제법 시간을 들인 셈이다. 요코의 안내와 설명이 굉장히 이해하기 편하면서도 피로를 부르지도 않았기에 완전히 신세 져 버렸다. 과연, 기숙사장씩이나 되면 남을 잘 돌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겠구나 싶다.
 그리고 요코의 안내에 따라 계단을 향한 그 순간.
“이 애가 새로 들어오는, 마지막 아기 고양이?”
“흐갹?!”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가 껴안아와서 비명을 지른다.
“오오, 꽤 재밌는 비명인데. 이 날씬하면서도 탄탄한 몸매는 꽤나 일품이야.”
“가, 가……가스, 가스!”
“가스?”
 가슴이 등에 닿고 있는데요!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그 정도만이 아니라, 왠지 옆얼굴에 뺨을 대서 달콤새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르고, 말을 꺼낼 때마다 토한 숨결이 목덜미를 근질인다.
 긴급사태에 유키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세이, 적당히 해. 불쌍하게 떨고 있잖아.”
“에~? 환영의 포옹인데. 거기에, 다른 아기 고양이들한테도 모두 했는데, 이 애한테만 안 하는 건 아깝잖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 하지 마, 성희롱으로 신고당한다?”
“으아~, 무셔.”
 장난스런 말투로 말한 뒤에서야 유키의 몸에서 떨어진다.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친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여자가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일본인 같지 않게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 여자의 이름은 사토 세이. 요코랑 마찬가지로 기숙사에 사는 3학년이라는 모양.
 물론 유키는 그녀를 알고 있다. 한때 정월에 사치코의 집에 묵으러 갔을 때, 유미랑 같이 방문해온 그녀를 본 적 있었다.
 듣기론, 아무래도 새로 기숙사에 들어온 1학년 여자 모두를 상대로 껴안는 기분을 확인했던 모양.
“총 24명의 애들을 껴안아 봤는데, 유키 쨩은 톱 3에 들어갈 정도로 껴안는 느낌이 좋았어! 그 비명소리를 더하면 No. 1일지도 모르겠는데~, 응응. 다른 여자애처럼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라, 독특하게 탄탄한 감촉이 들어서, 버릇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 어때? 내 전용 안는 베개 새끼 고양이가 안 될래?”
“후에엣?”
“세이, 적당히 해.”
 요코가 노려보자, 세이는 어깨를 떨구면서 슥 떨어졌다.
“……미안해, 어쨌거나, 세이한테는 주의해줘. 아무래도 못 참겠을 때는 나를 불러 줘. 혼내줄 테니까.”
 팔짱을 끼며, 먼 곳에 아직 보이는 세이를 바라보는 요코의 표정이 무섭다.
 그건 그렇고, 무시무시한 여자의 스킨십. 남자로선 기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후의 생활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과도한 스킨십은 사양해 줬으면 싶다.
“그럼, 다시금 안내할게.”
 계단을 올라가는 요코의 뒤를 따른다.
“지금 이 기숙사에는 3학년이 23명, 2학년이 19명, 그리고 당신을 포함한 1학년 24명을 더하면 총 66명이 들어와 있어. 기숙사의 방은 그리 많지 않아서, 여럿이 한방을 쓰게 돼.”
“엣, 그, 그런가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쨌든, 여럿이 사는 건 곤란하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랑 같은 방에 산다니, 편히 쉴 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니, 혹시나 앙리랑 같은 방일지도 몰라. 만약 그런 거면 오히려 운이 좋은데.
“그렇게 불안해 안 해도 괜찮아. 비슷한 또래인걸. 금방 친해질 거야.”
 요코는 유키가 놀라는 걸 기숙사 생활에 대한 단순한 불안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안심 시키려는 듯 말을 꺼내 주었지만, 유키는 애매하게 웃어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앙리랑 같은 방이라는 희망도 무너진 모양이다.
“3학년은 수험도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3학년 끼리 살게 되지만, 1학년은 2학년이랑 같이 살아. 이건 모처럼 기숙사에 살게 되었으니, 상급생과 하급생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우려는 의도 외에도 2학년이 1학년을 지도하고 이끌어주도록 하려는 거야. 1학년이 모르는 부분을 2학년이 가르치고, 한 편 2학년은 상급생으로서 자각을 갖추게 돼. 물론, 같은 방이 된 1학년과 2학년이 자매가 되는 일도 역시 흔하고.”
 신학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같이 살게 되면야 당연히 친해지기도 하는 법이고, 그렇게 되면 그 상대와 자매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 그리 되는 거겠지. 하지만 유키 입장에선 안 그래도 여자애랑 같은 방에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긴장해야만 상황인데, 상급생과 함께라니 그쪽도 신경 써야 하는게 된다. 한숨이 나올 것만 같지만 어떻게든 그걸 참으며 요코의 뒤를 따른다.
 이윽고, 요코는 2층의 어느 방 앞에서 멈춰섰다.
“여기, ‘하양 동’의 203호가 당신의 방이 됩니다. 짐은 안에 넣어두면 그것도 곤란하니, 일단은 복도에 놓아뒀어. 나중에 정리해 주렴. 그래도 후쿠자와 양, 짐이 굉장히 적네.”
“그런가요? 그래도 가구류는 비치되어 있다고 들었으니, 별로 많을만한 이유도 없고.”
 애초에 오가사와라 집안에 주워진 몸, 받은 물건은 잔뜩 있었지만 그걸 자기 물건이라 생각하고 당연한 듯 가지고 올 만한 마음은 안 들었다. 더군다나 사치코나 사야코가 사 주는 물건들은 이것도 저것도 죄다 사랑스럽고 여자애다운 디자인의 물건들뿐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 그래서 가지고 올 물건들은 엄선했다.
“그래.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나중에 추가로 받아도 되니까. 그럼, 룸메이트를 소개할게. 이 시간에는 방에 있도록 부탁해 뒀으니까.”
 그 말을 하며 요코는 방 문을 노크한다.
“후쿠자와 양을 데리고 왔는데, 괜찮니?”
『――예, 괜찮아요.』
 안에서 들려온 소리에 긴장이 더해진다.
 요코는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듯한 눈을 향한 뒤에 문을 열었다.
 우선 방은 꽤 넓어 보였다. 기숙사의 방인데다 여럿이 쓰는 방이니 좁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도 아가씨들한테 맞췄다는 느낌. 사실은 둘러보고 있을 때 눈짐작에 방도 나름 넓어 보였었는데, 그걸 실제로 볼 때 까지 실감을 못했던 거다.
 2단 침대가 두 개 있고, 책상이 네 개. 옷장에 화장대, 책장, 탁자 등이 눈에 들어온다. 비좁다는 인상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이 넓지도 않다.
 그리고 방 안에는 여자 세 명이 있었다.
“여기는 4인실이야. 1, 2학년은 4인실을 세 명이나 네 명이서 쓰고 있어. 으음……. 그러면 이렇게 만났으니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해.”
 요코가 방 안에 있던 여학생 한 명에게 말을 걸자, 이야기를 들은 여학생은 가볍게 끄덕인 뒤 유키와 정면에서 마주본다.
“처음 뵙겠어요, 2학년 카니나 시즈카예요. 잘 부탁해요.”
 들린 목소리는, 단순히 간단한 인사를 한 것뿐인데도 아름답게 퍼져서 머릿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허리에 걸릴 정도로 길고 곧은 흑발도 멋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딘가 위엄이 느껴지는 미소녀다.
 시즈카는 우아하게 미소짓고는 옆에 선 소녀에게 눈을 슬쩍 향한다.
“에에, 마찬가지로 2학년인 츠키야마 미나코예요. 신문부 소속이고, 신입부원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니까요!”
 이쪽도 머리가 길지만, 뒤쪽에서 포니테일로 묶은 모습. 시즈카와는 대조적으로 밝고 발랄한 느낌으로 싱글벙글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뿐만 아니라, 유키를 평가하는 듯한 모습도 엿보인다. 조금 곤란한 건, 방이라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건지 복장이 조금 노출도가 높아서, 쇼트 팬츠에서 뻗어내리는 허벅지가 눈부셨다.
 미나코가 가볍게 목례한 뒤에 마지막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와―, 같은 학년 애가 들어와서 다행이야! 나, 카츠라. 잘 부탁해!”
 단발에 활동적인 인상이 느껴지는 소녀가 얼굴 가득 기쁨을 띄우며 쌍수를 들어 유키를 환영해 주었다. 친절하고 싹싹한 느낌이라, 왠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약간 안심된다.
“뭐야, 카츠라 쨩. 우리들이랑 같이 사는 게 그렇게 싫었니?”
“엣?! 하와와왓, 그, 그런 게 아녜요오, 역시 같은 학년의 친구가 있는 편이 기쁨이 늘어난다는 것뿐이고, 언니들이랑 같은 방이어서 저 매일 감사 감격하고 있으니까!”
 표정이 휙휙 바뀌며 푸다닥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온다.
“하우우, 우, 웃었어?!”
“아, 미, 미안해요.”
“어머, 역시나 카츠라 쨩. 상장 감이야. 후쿠자와 양, 기숙사 안을 보고 있을 때도 계속 긴장하고 있었어. 오늘 처음으로 굉장히 자연스럽고 사랑스런 미소를 보여 주는거야.”
 요코가 그렇게 말하자,
“응, 응, 어깨 힘이 확 빠졌는 걸.”
“카츠라 쨩의 재능이네.”
“그 그, 그만둬 주세요―.”
 연이어 미나코와 시즈카에게도 칭찬을 듣자, 카츠라는 허둥지둥거리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그런 케이의 모습도 귀여워서 셋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자연스럽게 유키도 거기에 이끌려 웃어 버렸다.
 따스한 분위기, 풀어진 긴장감. 마음속으로 카츠라에게 감사한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카츠라 쨩에게 물어줘.”
“아, 감사했습니다, 요코, 님.”
 릴리안에서는 상급생 언니분들에게는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거라고 유미에게 뼛속까지 주입되었기에, 어떻게든 실수 없이 말할 수 있었다.
“후후, 무리하지 말아 줘.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면 돼.”
 그걸 꿰뚫어보고 있는 건지, 요코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방을 떠났다.
 요코가 모습을 감추자, 어쩐지 실내 분위기가 풀어진 기분이 든다. 최상급생, 거기다가 기숙사장이다 보니 역시나 어느정도는 긴장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 짐, 정리해 버릴까? 나도 도울게.”
“도움 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괜찮으니까. 도우면서 이야기하자. 기숙사에 대해서 가르쳐 줄게.”
 호의로 이야기 해 주는 거고,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미안하다 싶어서 순순히 도움을 받기로 했다. 2학년 둘은 카츠라에게 일을 맡긴 모양인지, 둘 다 방 안으로 돌아 간다.
 복도에 놓여있던 골판지를 방 안으로 옮기고 유키용 옷장이나 수납장에 담으면서 카츠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침은 7시에서 8시, 저녁은 18시 반부터 19시 반, 시간이 바뀔 때나 점심 도시락이 필요한 사람은 사전에 신청할 필요가 있다. 식사 뒤에는 자유시간이고, 목욕탕은 20시부터 23시까지, 소등 시간은 24시. 폐문 시간은 19시.
 기숙사 청소는 당번제고, 우편은 편지함으로 들어가고, 외박은 허가증이 필요하다거나, 3학년 언니분들에겐 시중 담당이 붙고, 기숙사 안에선 2학년의 누구누구가 멋지다거나 등등. 카츠라는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덕분에 유키는 맞장구를 치고만 있어도 괜찮아서, 실수 없이 끝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래서야 마치 매일 24시간 내내 계속 여자들과 함께하는 생활이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남학교에서 지냈었는데, 과연 정말로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불안을 참을 수 없다.
“에에, 이걸로 끝이려나? 짐 진짜 적구나. 그래도 뭐, 기숙사니까 물건은 적은 편이 괜찮아.”
 카츠라가 도와 준 덕분에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짐 정리가 끝났다.
“카츠라 쨩, 고마워.”
“엣?!”
 답례 인사를 했더니 왠지 깜짝 놀랐다.
“에, 뭐, 뭔가 이상한 소리 했어?”
“아, 으으응. 그게~, 나도 릴리안에서 계속 지내 왔으니까, 동급생한테 ‘쨩’ 붙여서 불리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깜짝 놀란 것 뿐이야.”
“아! 미, 미안.”
 그랬다. 동급생한테 부를 때는 이름 + ‘양’으로 불러야 했다. 시즈카나 미나코가 보통 ‘쨩’을 붙여 부르고 있었으니, 유키의 머릿속에도 그게 들러붙었던 거다.
“난 괜찮아. 아니 오히려, 좀 더 친한 느낌이 들어서 대환영! 이란 느낌. 그럼 기숙사에 있을 때는 서로한테 ‘쨩’ 붙이기로 하지 않을래? 유키 쨩?”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손뼉을 치는 카츠라의 기세에 떠밀려, 유키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방에 사는 셋 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걱정스럽다. 서로 안 건드리는 느낌이었으면 유키가 뭘 해도 신경 안 쓰고, 유키도 다른 사람한테 신경 안 쓸 수 있을텐데, 꽤나 사이가 좋아 보인다.
 기숙사에서의 첫날, 최대의 난관은 목욕탕이었지만 오늘은 이사랑 긴장 탓에 지쳐서 컨디션이 나빠 사양하겠다고 하고 도망쳤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지만, 해결방법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긴장하면서도 하루를 마쳐 푹 잠들고, 아침이 된 뒤 슬금슬금 교복으로 갈아입는데. 교복은 몇 년 전까지 원피스 타입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교복 차림을 열심히 칭찬해 주는 카츠라 양과 함께 등교해, 교사로 이어지는 길을 걷게 디었는데.
 중간에서 마리아 상에게 기도를 하고, 게시판에서 반 배정을 확인한다.
“앗, 유키 짱이랑 나, 같은 반이야! 와, 나이스!”
“앗, 자, 잠깐, 카츠라 쨩!”
 갑자기 매달리듯 몸을 들이대는 카츠라에게, 무심코 허둥지둥거린다. 가슴이 닿아서 저도 모르게 몸을 뺀다.
“앞으로 1년, 방에서도 학교에서도 잘 부탁해!”
“으, 응, 나야 말로.”
 기뻐해 주는 건 좋지만, 이 과도한 스킨십은 어떻게든 안 되려나. 그래도, 여자애들 끼리는 이런 법인 걸까.
“응? 왜 그래? 교실로 가자.”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잡아오는 카츠라. 작고 부드러운 손을 뿌려치지도 못하고, 유키는 카츠라와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신발장까지 걸어갔다.
 교실에 들어가서 출석번호순으로 배정된 자리에 짐을 놓은 뒤, 입학식을 위해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덧붙여서 개학식은 오전 중에 이미 진행되었고, 오후에 입학식을 진행하는 스케줄이었다.
“아, 으, 미안, 화장실에 좀.”
 여자애들만 있는 곳이라서 조금 긴장한 걸지도 모른다. 입학식 중간에 가고 싶어 져도 곤란하니, 잽싸게 마치기로 했다.
 안내하겠다는 카츠라를 만류한 뒤 홀로 잽싸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여자애는 어째서 같이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며 독실로 들어가,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거울에 비친 자기를 바라보면 완전히 여자애나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원래 얼굴이 여자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여자애로 완전히 둔갑할 줄은 몰라 쇼크를 받았다.
 미묘하게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화장실을 나와서, 급히 카츠라가 있던 곳까지 돌아가려고 품위 없게 치마차림으로 달리면서 계단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을 때, 앞을 걷고 있던 여학생이랑 부딪쳐 버렸다. 모퉁이 탓에 사각이 생겨서 안 보였던 거다.
“꺅……?!”
 여학생의 몸이 기운다. 그 앞은 계단이어서, 떨어졌다간 조금 다치는 걸로 안 끝날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유키는 여자애의 팔을 잡고 붙들려 했지만, 자기도 달리던 기세가 남아서 멈추지 못하고 둘이서 뒤얽히듯 계단을 굴러 떨어져 버렸다.
​“​―​―​―​―​아​…​…​야​야​야​야​!​”​
 층계참까지 굴러떨어진 뒤, 몸은 어떻게든 무사하다는 걸 깨닫고 몸을 일으킨다. 어깨랑 허리를 부딪쳤는지 통증은 있지만,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는 것 같아서 한숨 돌렸다.
 이어서, 부딪쳐 버린 상대는 괜찮은지 눈길을 향한다. 자신의 아래에 몸이 있어, 혹시나 유키에게 쿠션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키보다도 지독한 부상을 입었을 지도 모르니, 서둘러 용태를 확인하려고 하다가 움직임이 멈춘다.
“…………에?”
 왜냐하면.
 유키가 본 건 아까 화장실 거울로 본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내뱉은 소리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도 깨달았다.
 깜짝 놀라 얼굴을 만져보고,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다가 가슴에 닿았다. 전혀 가짜로 느껴지지 않는 크고 질감 가득한 굉장히 훌륭한 가슴이 손바닥 위에 놓여, 출렁출렁 흔들리고 있었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읏……응…….”
 그 때 눈 앞에 있는 유키의 얼굴을 한 여학생(?)이 신음소리를 냈다.
“곤란해, 에, 이거 어떡해야 돼?!”
 패닉에 빠져서 허둥지둥거리다, 눈을 뜨려고 하고 있던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으, 아, 대체 뭐, 에?!”
“으갹?!”
 힘차게 몸을 일으키려고 한 자신의 몸과 자신 사이에 이마와 이마가 힘껏 부딪쳐 버렸다. 격렬한 고통에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눈물을 참는다.
“으읏, 아, 아야야야…….”
“아파아아~.”
 정신이 들었을 땐, 어느샌가 바닥에 위를 향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눈을 뜨자 뿌연 시야에 들어오는 여학생의 모습. 그건 유키가 아니었다.
 살랑살랑 흘러 내려오는 세미롱의 머리카락을 머리띠로 묶어서, 깨끗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래도 그 이마에 부딪쳐 버린 모양인지 이마는 빨갛게 부워 있었다.
“죄, 죄송해요. 괜찮으신가요?”
“으으, 어찌저찌……아프긴 하지만. 너는 괜찮니?”
“아, 예, 어떻게든요.”
 다행히도 몸은 남자고, 야구부 시대에 몸을 날려 공을 잡거나 하느라 낙법 연습도 꽤 했었기에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계단에서 떨어진 것 치곤 굉장히 다행스런 결과다.
“그래, 그건……아, 미안해, 나도 참.”
 유키의 몸 위에 올라타서 다리를 M자로 벌리고 있는 걸 깨닫고 머리띠를 한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떨어졌지만, 치마 아래의 하얀 허벅지와 그 안쪽에서 엿보인 새하얀 팬티는 제대로 유키의 눈 안에 들어와 버렸다.
“으으응, 괘, 괜찮아. 저야 말로, 부딪쳐 버려서 미안해요. 에에, 부상은 안 입었나요?”
 몸을 일으킨 뒤 유키도 흐트러진 치맛자락을 누르지만, 이건 굳이 말하자면 반응해 버린 하반신을 숨기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조금 아픔은 남았지만, 괜찮아. 그보다 네 쪽이 나한테 깔려 버렸는데, 몸은 괜찮니?”
“아, 아, 괜찮아요! 그, 그럼 서두르고 있으니, 실례하겠습니다.”
 일어난 뒤 손을 빌려줘서 상대도 일으키고 나서, 유키는 뒤로 돌아 계단을 내려간다. 부끄러웠기도 하고, 뭣보다 무섭기도 했다.
“아, 잠깐…….”
 불러 세우려는 여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지만, 유키는 당황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까 전 일은 뭐였던 걸까. 단순히 계단을 굴러떨어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에 본, 짧은 꿈이나 환상 같은 거였던 걸까.
 그래도, 그건 꿈이었던 것 같지 않다. 소리도, 손도, 가슴도, 모두가 진짜였다. 눈앞에 누워 있던 자신의 몸도.
 그게 진실이라고 하면, 짧은 시간동안이라곤 해도 몸이 뒤바뀌었다고 하는 걸까?
“…………설마.”
 자신이 생각한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서 지운다.

 릴리안 여학원 입학 첫날은,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다.



프롤로그 ③에 계속
~추신~
……말하고 싶은 건 이것저것 있지만, 프롤로그 ③의 뒤에!

역자의 말:
 오토마리 프롤로그 2화도 이렇게 끝났습니다. ……읽고 계시는 분은 안 계시는 것 같지만, 제 취향이라서 그만.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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