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프리즘 후편
게이트를 통해 시설 안으로 들어가서, 유키도 제일 싼 수영복을 사서 갈아입은 뒤 약속한 대로 탈의실 가까이에 있는 기묘한 오브제 앞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덥다. 제발 빨리 와 주지 않는 걸까. 이렇게 되면, 생각도 못 하고 들어오는 상황이 되었다곤 해도 후딱 풀에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싶다.
“미안해, 기다렸지?”
“아, 아니”
하고 미나코 씨의 목소리를 등으로 받으며 그쪽을 돌아보자.
거기에는 훌륭하게 변신한 미나코 씨의 모습이 보였다.
흰 바탕에 새빨간 무궁화가 그려진 홀터 비키니, 쇼츠의 좌우와 가슴팍에서 흔들리고 있는 리본.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수영복을 몸에 두른 미나코 씨. 옷을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인지, 가슴도 제법 있고, 스타일도 꽤 좋다.
뒤쪽으로 묶어올린 포니테일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게 정말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수상쩍은 여성인걸까.
어쨌거나, 눈을 둘 곳이 없다.
“자, 가자!”
그런 유키의 생각은 무시하는 듯이 미나코 씨는 유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츄에이션은 대체 뭘까. 이건 마치 유키와 미나코 씨가 수영장 데이트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애초에, 곁을 걷고 있는 미나코 씨는 유키 따윈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눈길을 두리번두리번 옮기기만 하고 있다.
“그래도 미나코 씨, 이 넓은 풀에서 어떻게 세이 씨 일행을 찾을 건가요?”
그렇다. 여기는 워낙에 넓다. 평범한 풀이나 유수 풀, 파도 풀, 워터 슬라이드가 있는 커다란 풀, 다이빙대가 있는 풀 등등, 크고 작은 온갖 풀이 갖춰져 있다. 사람도 많다. 이 안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건 정말 힘든 게 아닐까.
“그렇구나, 짚이는 곳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봐야 찾기 힘들 것 같으니, 여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진을 치고 지켜보는 게……”
유키는 아니 잠깐, 좀 기다려 줘. 하고 생각했다.
지켜보다니, 이 무더위 속에서 말인가. 그것도 파라솔 아래 같은 자리를 잡으면 좀 낫겠지만, 못 잡았을 때는 문자 그대로 지옥이다. 거기에 두 사람분의 돈(게다가 수영복값 포함)을 내서 뭐가 아쉬워서 풀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건가. 여기까지 온 이상 있는 힘껏 풀에서 놀다 돌아가지 않으면 유키도 성이 풀리지 않는다.
“미나코 씨, 모처럼 풀에 왔으니 풀에 들어가지 않을래요?”
“에, 그래도 세이 님이.”
“분명히 세이 씨도 워터 슬라이드 같은 인기 있는 곳에 갈 거예요. 게다가 모처럼 수영복까지 샀으니까, 안 들어가는 쪽이 손해라고요.”
“으응ー, 그렇네에.”
신세를 지는 상황에서는 미나코 씨도 강하게 나올 수 없었겠지. 처음에는 망설이고 있었지만, 결국은 유키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풀을 실컷 만끽했다.
연상이라고는 해도 겨우 한 학년 차이. 놀기 시작하고 나니 미나코 씨도 평범한 여자애와 별로 다르지 않아, 남이 보기에는 단순히 사이 좋은 커플이 놀고 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경영용 풀에서 시합을 하고(뜻밖에 미나코 씨는 수영을 잘해서, 유키가 완패했다.), 유수 풀에서는 느긋이 튜브(빌린 것)에 몸을 맡기고, 파도 풀에서는 파도에 밀리고, 워터 슬라이드에서는 유키가 착수에 실패한 타이밍에 미나코 씨가 멋진 샤이닝 위저드를 먹였다.
놀고 있는 동안에는 당연하게 여러 일이 있었다. 특히 파도 풀에서는 파도가 덮쳐 와서 미나코 씨가 유키에게 안긴다고 하는, 전형적인 기쁜 해프닝이 일어났다. 유키 입장에서는 등에 눌려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심장이 뛰쳐나갈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미나코 씨는 유미랑 마찬가지로 천연계여서, 자신이 그렇다고 의식하지 않은 채로 남자가 곤란해할 것 같은(기쁜) 일들을 일으켜 온다. 여자에 대한 면역이 없는 유키 입장에서는 자극이 너무 강한 일들이 많았다.
하여간, 한 번 놀기 시작하니 사람을 찾으려 했다는 건 완전히 머리서 떠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저녁이 되었다.
결국 그 뒤에도 세이 일행을 발견하는 일 없이 두 사람은 풀을 나섰다.
“우와ー, 오늘 하루로 무지 타버렸네.”
옷을 갈아입고 합류한 뒤, 미나코 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여름의 햇빛 아래서 온종일 풀을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당연하겠지.
“봐, 수영복 자국이 선명히 남았어.”
“윽.”
“응, 왜 그래?”
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무방비하다고 할까. 갑자기 셔츠를 치워서 탄 자국을 보여주리라고는. 물론 그렇게 대담하게 보여준 건 아니었지만, 젊디젊은 소녀, 그것도 아가씨가 그건 좀 그렇잖아. 유키도 남자니까.
당황해서 화제를 바꾼다.
“아니, 결국 세이 씨 일행은 찾지 못해서 죄송했어요.”
“응? 아ー, 그건 이제 됐어. 신세 진 몸이기도 하고.”
양팔을 위로 들고 쫙 뻗는 미나코 씨.
“게다가, 오늘은 그냥 즐거웠어. 실컷 놀며 몸도 움직였고. 수험공부 같은 걸로 모르는 새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던 걸까, 이래저래 개운찮았던 게 완전히 날아가 버렸어.”
그렇게 말하며 유키 쪽을 보고 꾸밈없는 미소를 보여주는 미나코 씨.
포니테일을 푼 긴 머리카락은 아직 미묘하게 물기에 젖어 있어서, 미나코 씨의 햇볕에 탄 뺨이나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다. 포니테일일 때는 예쁜 스트레이트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젖은 머리 특유의 웨이브가 미묘하게 걸려 있다.
여름 태양이 높게 떠 아직 저녁놀이 질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은 미나코 씨의 옆얼굴은 정말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돌아가는 전차에서는 그리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K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폐를 끼쳐서 미안해. 언젠가 오늘의 답례는 꼭 할 테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 건 좀 그래. 역시, 이런 건 제대로 해 둬야지.”
그리고 미나코 씨는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유키도 역시 손을 흔들어 응하자, 걸어가던 미나코 씨가 뭔가를 떠올린 듯 뒤를 돌아보고 유키를 향해 검지로 가리켰다.
“맞아. 잊었었어. 다음번에, 너에 대해서도 취재할 테니까!”
기괴한 행동을 취한다 생각했더니 나이에 걸맞은 여자애의 얼굴이 되었다가. 생각지도 못하는 언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성인 여성 같은 분위기를 피운다. 여름 햇빛을 받을 때마다 여러 가지 모습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보여줘서.
이래저래 유키를 휘두르고. 휘둘리고.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미나코 씨는 떠나갔다.
며칠 뒤 -
햇볕에 탄 탓에 따끔따끔하던 게 간신히 익숙해져 갈 무렵, 그 일이 갑자기 찾아왔다.
“유키―, 전할 물건이래.”
“에, 나한테?”
“그래. 게다가 츠키야마 미나코 님한테서. 유키 너, 미나코 님하고 아는 사이니?”
“엣, 미나코 씨?!”
갑작스레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러고 보면 답례를 한다든가 했었는데, 그걸까. 당황하며 유미의 손에서 우편물을 집으려 했는데, 왠지 유미에게 방해당했다.
“수상해. 유키, 미나코 님하고 무슨 일 있었니?”
“관계없잖아, 줘, 어이.”
“안돼, 제대로 이야기 해ー”
하고 유미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힘이 들어가 봉투가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털썩 유미의 얼굴에 덮였다.
“우왓, 뭐야 이거?!”
“엑…….”
유미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여성의 요츠. 그리고 머리에 씌워져 있는 건 틀림없이 브라다. 흰 바탕에 멋진 무궁화가 그려져 있는 ‘그것’은 틀림없이 저번에 풀에서 미나코 씨가 입고 있던 수영복이었다.
아무래도 미나코 씨는 의리 있게도 세탁을 마친 뒤 돌려준 모양이었지만.
애초에 남자에게 여자 수영복을 돌려줘서 어떡하라고. 게다가 이 타이밍은.
“유, 유, 유키―――――――――――――――――――!! 대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기다려, 유미, 오해야!!!”
유미에게 쫓겨 도망 다니는 유키를 새빨간 무궁화만이 태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끝